Absolute Stroke RAW novel - Chapter 985
982화. 지원병 (2)
탁호연은 한창 군막 안에서 영기(*營妓: 군영에 배치한 기녀)를 희롱하고 있다가 척후병의 보고를 받았다.
그 여인들 가운데 일부는 행군 중에 잡혀 온 사람이고, 일부는 청주의 1차 방어선을 함락했을 때, 각 군현에서 약탈해온 미인이었다.
여인들을 함부로 납치하는 이 범죄는 대장군 척광백도 저지하지 못했다. 안타깝게도 영기가 있으면 병사들 사기가 진작되니, 군대에선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고 말았다. 특히 전쟁이 불리한 국면에선 더더욱 필요로 했다.
‘비수군 수백?!’
언뜻 소식을 듣고, 탁호연은 척후병이 거짓 보고했다고 단정 지었다.
청주에 언제 그런 규모의 비수군이 있었던가? 그야말로 터무니가 없었다.
그는 즉시 바지를 치켜올리고 무기를 든 채 군영을 뛰쳐나왔고, 어공하여 성벽을 멀리 바라보았다.
그리고서야 탁호연은 비로소 이 황당한 소식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성벽 위에 얇은 막 날개를 모은 검은 비늘 짐승이 가득 서 있었다.
“청주에 언제 이런 규모의 비수군이 있었지?”
두 주먹을 불끈 쥔 탁호연은 얼굴에 경련까지 일었다.
성 함락이 임박했는데 수비군이 갑자기 수백 규모의 비수군 지원병을 맞이했다. 탁호연은 너무 화가 나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그는 빠르게 착지해 군영으로 돌아왔고, 바로 철수 명령을 내렸다.
군영 내 주작군은 30여 기(騎)뿐이라 저 비수군에 전혀 맞설 수 없었다.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형세는 단숨에 역전되었다.
지금 도망쳐야 하는 건 자신들이었다. 철수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군영은 단숨에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가까스로 남은 몇백 명 장병들은 수중의 모든 일을 내던지고 모든 물자와 지원을 버린 채 빠른 말에 올라탔다. 모두가 탁호연의 통솔하에 군영을 뛰쳐나와 먼지를 휘날리며 떠났다.
30여 기의 주작군은 날개를 흔들며 날아올라 화급하게 퇴각했다. 하지만 탁호연이 전혀 생각지 못한 건 그다음 일이었다.
탁호연 측이 막 철수하자마자 뒤에서 웅장한 포효 소리가 들렸다.
기병들은 뒤를 돌았고, 겁에 질린 나머지 간담이 다 서늘해졌다.
후방 하늘에선 새까만 비수군이 먹구름처럼 밀려왔다. 검은 비늘의 거대한 짐승은 날개를 흔들어 빠른 속도로 기마병을 추격했고, 등 위의 심고사들은 큰소리로 마음껏 부르짖었다.
순식간에 잘 훈련된 군마가 완전히 통제 불능이 됐다. 급히 달리다 바닥에 엎어지고, 사람과 말이 함께 뒹굴어 떨어졌다. 대혼란의 연속이었다.
이후로도 심고사들은 아래로 포탄과 기름통을 투척하거나 활시위를 당겨 아래쪽 적군을 향해 화살을 퍼부었다.
“허신년!”
탁호연은 하늘을 우러러보며 큰 소리로 울부짖었다.
그는 6천 정예병 전부를 송산현에서 잃었다.
탁호연이 반평생을 쌓아온 영명은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추락했다.
* * *
반 시진 후.
허신년은 반쯤 무너진 옹성 안, 탁자에 앉아있었다.
그는 사람들을 찬찬히 둘러보다가 빙그레 웃음을 그렸다.
“비수군이 적의 기마병 3백을 토벌하고 28명을 포로로 잡았다. 주작군을 20기를 토벌하고, 3명을 포로로 잡았으며, 8기는 도망쳤다. 탁호연은 부장군과 도망쳐 종적을 감췄다.”
허신년은 비수군이 4품 무사를 포로로 잡을 수 있으리라 기대는 하지 않았다. 난도가 너무 높았다. 지금 얻은 성과로도 이미 아주 만족스러웠다.
자리에 있는 건 수비군에 가까스로 남은 백부장 둘, 죽균, 묘재방 그리고 심고부 비수군의 족장 탑막이었다.
허신년의 보고를 다 듣고, 다들 얼굴에는 희색이 넘쳐흘렀다.
결국 자신들은 무너지지 않았다.
“이 몸은 허 은라가 남강에 있으면서 전략을 세울 수 있을 거라곤 정말 생각지도 못했네. 1천 리 밖에서 승리를 거뒀군!”
“헛소리! 자네는 허 은라가 병서를 쓴 병법 대가임을 생각지 못했는가!”
백부장 둘은 흥분해서 한 마디씩 주고받았다. 그들의 대화 속에서 허칠안은 거의 신이 되어가고 있었다.
경솔하게 웃지 않는 죽균 역시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이내 허신년은 탑막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심고부 비수군이 대봉의 급한 불을 꺼주었습니다. 이따가 제가 서신을 한 통 쓸 테니 그걸 가지고 청주성에 다녀오십시오. 동맹 맺는 일을 양 포정사께 맡겨 처리하면 됩니다.”
고족과 대봉의 동맹은 아직까진 구두 약조였다. 양공이 조정에 상소를 올려 정식 공문서를 받아야 했다. 조정이 동의해야만 비로소 효력이 생겼다.
허신년이 보기에 그건 조정이 간절히 바라는 일일 것이었다.
그래도 밟아야 할 절차는 밟아야 했다.
“양 포정사께서 허 은라가 청주를 위해 비수군 5백을 데리고 돌아왔다는 걸 아신다면 틀림없이 미친 듯이 기뻐하실 겁니다.”
죽균의 입가에 웃음이 점점 짙어졌다.
그때, 탑막이 무언가 떠오른 듯 말했다.
“아, 말씀드린다는 걸 잊었습니다. 저희 심고부 외에 역고, 시고, 암고의 형제들도 있습니다.”
옹성 안이 갑자기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허신년은 점점 호흡이 가빠져, 탁자를 받치고 일어났다.
“더 있다고요? 수가 얼마나 됩니까? 다들 어디에 있습니까?”
탑막은 잠시 침음한 후에 말했다.
“세 부족을 통합하면 아마 1천여 명은 더 있을 겁니다.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저희가 남강을 떠난 뒤에 병력을 나눴습니다. 어쨌거나 비기는 그렇게 많은 사람을 태울 수 없으니까요.”
‘세 부족을 더하면 1천여 명이 더 있다고……?’
허신년 등은 흥분하기 시작했다.
무릇 산해관전역을 잘 아는 사람이라면 고족의 전사가 얼마나 성가신지 이해했다. 확실히 고족은 인구가 많지 않아 툭하면 수십만인 대봉의 대군과 비교할 순 없었다. 다만 그 기이하고 성가신 고술만으로도 산해관전역에서 대봉 군에 여러 차례 손해를 입혔었다.
그 고족 1천여 명에 비수군 5백까지 더한다……?
전쟁터에서 그보다 빛을 발하는 무기는 없을 터였다.
허신년은 얼마나 흥분한 것인지 얼굴이 다 빨개졌다. 그는 손을 살짝 떨며 얼른 붓대를 쥐었다.
“지금 바로 양 포정사께 서신을 쓰겠습니다.”
그가 다시 고개를 돌려 부장군에게 말했다.
“자네는 탑막을 따라 청주성에 다녀오게.”
이내 탑막은 대봉 깃발을 메고 홀로 검은 비늘의 비수를 몰아 송산현을 떠났다. 방향은 청주성 쪽이었다.
* * *
이틀 뒤, 포정사사 대당 안.
양공은 책상 앞에 펼쳐진 지도 속 ‘송산현’ 세 글자를 뚫어지게 주시했다.
곧 그의 입에서 나지막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우리는 송산현 함락에 대해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하네.”
이모백을 포함한 모든 막료는 마음이 무거웠다. 파견 나간 척후병이 아직 회신하진 않았지만, 송산현의 병력 배치와 적군의 진용만 비교해도 결과는 쉽게 추측할 수 있었다.
이모백은 짙은 탄식을 내뱉었다.
“지원군이 이미 무장하고 출발을 기다리고 있네. 척후병이 돌아와 상세한 정보를 전하기만 하면, 즉시 송산현으로 출병해 이 성을 되찾을 수 있어.”
2차 방어선의 전체적인 상황에 근거해 세운 계획은 우선 송산현을 지키는 것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동릉은 야전으로 바뀌어 나아갈 수도, 물러날 수도 있으니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완군은 운주 반란군이 주력으로 포위하고 있고, 또 비수군이 머리 위에 선회하고 있었다.
그 완군의 곤경을 해결하려면 얼마나 많은 병력을 채워야 할지 모르고, 무엇보다 그렇게 한들 지킬 수 있을 것이란 보장이 없었다. 그렇게 비교하면 송산현을 되찾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책이었다.
적군이 송산현을 점령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운주 대군이 짧은 시간 내 송산현에 도착해 주둔하기도 불가능했다.
이럴 때 출병하면, 송산현을 탈환할 가능성은 아주 컸다. 그 후엔 송산현에 병력을 배치해 사수하면서 2차 방어선의 마지막 거점을 지킬 계획이었다.
‘신년은 병법을 훤히 꿰뚫고 있고 진부한 자가 아니니 아마 성에 목숨을 바치지 않을 거야.’
이모백은 속으로 기도했다.
이윽고 양공이 사람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비수군 상대에 여러분은 어떤 묘책이 있는가?”
한 막료가 말했다.
“비수군을 상대할 가장 좋은 방법은 당연히 비수군을 보유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잠시 멈칫하던 그가 다시 말을 이어붙였다.
“이 외에 상노를 개조해 대공 발사하면 비수군을 제압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적군과 아군의 전력이 크게 차이 나지 않는 상황이라면 4품 고수를 출격시키는 것도 좋은 계책이라 사료됩니다.”
한창 말하던 와중, 한 하급 관리가 황급히 들어와 큰 소리로 외쳤다.
“포정사 대인! 성 밖에 대봉 깃발을 멘 비기가 왔습니다. 자칭 고족 사람이라고 합니다.”
‘대봉 깃발을 멘 고족 비기라…….’
대당 내 하급 관리, 막료들 모두가 순간 멍해졌다.
대봉 군기와 고족, 도무지 연결점이 없는 단어였다.
‘음……? 비기?’
그러다 서서히 요점을 파악한 이들이 일제히 양공을 바라보았다.
양공은 잠시 침음하더니 급하지도 느리지도 않게 말했다.
“무기를 바친 뒤 들어오라고 하거라.”
* * *
일각(*一刻: 15분) 뒤.
포정사사의 호위병이 두 사람을 데리고 대당에 들어왔다.
양공, 이모백 그리고 모든 막료가 들어온 이들을 주목했다.
왼쪽에 있는 이는 남강 사람으로 피부색이 까무잡잡하고 눈이 연푸른색이며, 선천적인 곱슬머리였다. 옷차림과 탄탄한 근육이 야성미를 더했고, 연푸른색 눈에는 지혜의 빛이 스며 있었다.
‘확실히 심고사군…….’
한 주(州)의 최고 집정관 양공은 엄숙하게 위엄을 유지하며 탑막 옆에 있는 군인에게 시선을 옮겼다. 그는 허신년의 부장군, 고계(顧啓)였다.
고계는 금세 포정사 대인의 의문을 읽고, 허리를 굽히고 읍했다.
“소직 고계, 허신년 대인의 부장군입니다.”
잠시 멈칫하던 그는 양공이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고 계속해서 말했다.
“이분은 고족 심고부의 탑막입니다. 비수군의 총사령관으로 허 은라가 모신 지원군입니다.”
이모백과 막료들은 속으로 크게 기뻐했다. 하늘에 맹세컨대, 열흘간 들은 말 중에 이보다 더 듣기 좋고 아름다운 소리는 없었다.
‘허 은라가 언제 또 남강 고족에 갔지? 고족의 비수군까지 청해 왔다고?’
‘얼마나 많은 비수군이 어디에 있는 것이며 작전 능력은 어떠하지?’
하나같이 궁금증이 폭발했으나, 양공이 묻기 전까진 잘 참았다. 그러나 가슴이 조금씩 뜨거워지는 건 막을 수 없었다.
양공은 등을 꼿꼿히 세우고 고계를 뚫어지게 응시했다.
“고족의 비수군이 왜 자네와 함께 온 거지?”
과연 그는 막료들 마음속의 의문점을 물었다.
고계가 말했다.
“심고부 용사들이 허 은라의 명을 받들어 송산현에 지원하러 왔습니다. 수비군을 도와 적군을 물리쳤습니다. 여기, 허 대인의 서신이 그 증거입니다.”
말하는 동시에 고계는 품에서 서신을 더듬어 꺼냈다.
하급 관리는 고계에게 서신을 받아 양공 앞에 공손히 건넸다. 양공은 서신을 펼쳐 읽고, 자신을 뚫어지게 보는 막료들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송산현을 지켰다……!
막료들은 서로 눈을 마주치며 놀라움과 기쁨을 금치 못했다.
이때, 탑막도 품에서 서신 하나를 꺼냈다.
“이건 허 은라의 친필 서신입니다. 제가 청주에 도착하면 양 포정사께 전하라 했습니다.”
이번에 양공은 직접 손을 들어 원격으로 서신을 빨아들였다. 더는 한시도 지체할 수 없어 당장에 서신을 펼쳤다.
역시 허칠안의 필체였다. 그의 글씨는 깔끔하고 기품 있는 허신년의 친필과는 완전히 달랐다. 아주 삐뚤빼뚤 못생긴 글자체였다. 그냥 억지로 획을 꾸역꾸역 짜 맞춘 느낌이랄까.
‘맞다! 칠안의 글자야!’
양공은 이제 완전히 의심을 거뒀다.
천하에 허칠안의 글자를 모방할 수 있는 자가 없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허칠안의 글씨는 극히 보기 드물었다.
오늘날 구주에서 운록서원과 경성 허부를 제외하고는 허칠안의 필적을 거의 볼 수 없었다.
허칠안은 체면을 중시하는 사람이었다. 자신의 글씨를 매우 소중히 여기기에 절대로 세상에 퍼뜨리지 않았다. 그래서 누군가 모방하고 싶어도 견본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