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troke RAW novel - Chapter 986
983화. 문지기는 누구인가?
양공은 천천히 서신을 읽어내려갔다. 전반부는 허칠안이 남강에서 많은 사람과 논쟁을 벌인 얘기였다.
당대 제일의 무쌍한 말재간으로 고족을 설득하고, 고상한 정서로 고족을 감화하여 마침내 고족이 품었던 의혹을 말끔히 풀고 군대를 북상시켜 대봉을 지원하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양공은 살짝 고개를 갸웃했다. 뭐, 말재간이야 있을 수도 있겠지만 정서는……. 약간 의심할 필요가 있었다.
그 밑에는 각 부족에서 파견된 병력의 숫자가 적혀 있었다.
‘심고부 비수군 5백…….’
첫 줄을 보고 양공은 그대로 멍해졌다. 허칠안이 뭔가 잘못 쓴 건 아닐까 의심이 들었다. 그해 산해관전역에 대봉 비수군이 1,500명이었다.
그 산해관전역이 끝난 뒤 몇 년 지나지 않아 조정은 비수 병영 절반을 해산시키고 적미열응을 대량으로 팔았다. 무엇 때문에? 키울 돈이 없어서였다.
중장기병이 먹는 게 은자라면 비수군이 먹는 건 금이었다.
비수군 5백이라 함은, 아마 심고부 비수군 절반에 가까운 숫자일 터였다.
양공은 계속해서 서신을 읽었다.
역고부 전사 4백, 시고부 공시수 6백, 암영부 정예병 8백. 여기에 비수군 5백을 더하면…….
양공은 마음이 무거워졌다. 놀랍고 기쁘면서도 걱정스러웠다.
기쁜 건 당연히 고족의 이 정예 전사들이 현재 쇠퇴하는 청주군 형세를 완화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걱정이 되는 건 고족이 사람을 너무 많이 보냈다는 사실이었다. 분명 바라는 바가 적지 않을 터, 양 포정사는 허칠안이 멋대로 조정에서 받아들일 수 없는 약조를 제시했을까 걱정이 되었다.
양공은 다시 눈살을 찌푸리고 친필 서신의 말미를 보았다. 이는 허칠안이 고족에게 한 약속이기도 했다.
‘이건…….’
양공은 다시 또 허칠안이 뭔가를 잘못 쓴 건 아닌지 의심했다.
지금까지만 해도 비수군 숫자가 너무 많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대가가 너무 작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헐값인데……?’
어느새 양공의 등이 빳빳하게 펴졌다. 그는 여전히 판에 박힌 듯한 위엄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두 눈은 이미 유달리 밝아져 있었다.
양공은 아무 내색 없이 서신을 거두고 탑막을 응시했다.
“이 서신에 적힌 내용, 심고부 족장도 보았소?”
탑막은 질문의 의도를 알아들을 수 없어 잠시 생각하다가 비로소 깨닫고 침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양 포정사, 안심하시지요. 서신에 적힌 내용은 틀림없습니다.”
확실히 심고사는 보편적으로 머리가 좋았다. 수준급 이상이었다. 이 역시 허칠안이 그들에게 친필 서신을 맡긴 이유이기도 했다.
역고부였다면 아마 이렇게 답하지 않았을까?
“내가 어찌 압니까!”
“나도 마찬가지요!”
…….
과연 허칠안의 선택은 탁월했다.
탑막이 계속해서 말했다.
“양 포정사, 하루빨리 조정에 상소를 올려 이 일을 확정하시길 바랍니다.”
양공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했소. 탑막 대인께서 먼 길을 오셨으니 고단하실 테지. 우선 내려가 휴식을 취하시오. 저녁에 연회를 베풀어 제대로 모시겠소.”
곧 양공은 사람을 불러 탑막에게 숙소를 잘 안내하라고 명했다.
탑막이 떠나고, 양공은 천천히 숨을 뱉으며 탁자 옆 막료들을 보았다.
각 분야에 정통하고 박학다식한 막료들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이모백이 당장에 사람들을 대표해 질문했다.
“칠안이 서신에 뭐라고 썼는가? 비수군이 얼마나 있다고 하던가?”
양공이 미소를 지었다.
“5백이네.”
“5백?!”
탁자 옆에서 경악하는 소리가 울렸다. 먼 곳에서 분주히 움직이던 하급 관리들도 분분히 하던 일을 멈추고 깜짝 놀라 쳐다보았다.
이모백은 다급히 손을 내밀었다.
“내게도 좀 보여주게.”
“자.”
양공이 들고 있던 서신이 갑자기 사라졌다가 이모백 손에 나타났다.
이모백은 즉각 서신을 펼쳤다. 보면 볼수록 호흡이 조금씩 가빠지고 서신을 쥔 손도 몇 차례 가볍게 떨렸으나 다시금 가라앉았다.
막료들도 전부 서신을 돌려 읽었다. 하나같이 서신을 든 손이 떨렸고, 얼굴에는 감격하고 흥분된 표정이 역력했다.
고족 정예병, 그것은 이 시기 청주에게 때맞춰 내린 단비 같았다. 메마른 전쟁터에 물을 주고 있었다.
“고작 이런 대가로 그 많은 고족 정예병을 불러오다니. 허 은라의 고상한 정조는 고족 사람조차도 감동시킬 수 있나 봅니다.”
한 막료가 수염을 어루만지며 감탄했다.
이모백과 양공은 동시에 그를 쳐다보았다.
‘순진하군…….’
곧이어 이모백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쩌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대가를 칠안이 알아서 치렀을지도 모르네.”
분위기는 점점 부드러워지고, 막료들은 감개하면서 담소를 나눴다.
“허 은라가 언제 남강 일을 다 처리할 수 있을지 모르겠군. 그가 만약 청주에 올 수 있다면 반란군이 어찌 근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는 비록 전쟁터에 없지만, 여전히 마음은 청주에 묶여 있네. 아닌가?”
주제는 오직 하나, 명망을 떨치는 그 무사에 관한 얘기였다.
자리에 있는 자들이 전부 지식인이라고 해도 속으로는 그를 숭배하고 존경했다. 무려 저속한 무사를 가장 업신여기는 문인들의 태도였다.
“다시 보니 위 공께 감사해야겠네. 대봉을 지키는 기둥을 잇지 않았는가. 그의 희생으로 무너지지 않은 것이야.”
이제 대봉에는 위연이 사라졌지만, 허칠안의 등장으로 여전히 그 빛은 꺼지지 않고 계승되었다.
그때, 이모백이 눈살을 찌푸리더니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칠안은 역시 내 제자답구먼! 동맹술이 최고봉에 이르렀네. 여러 해 동안 지도한 보람이 있구먼, 그래.”
허칠안은 그의 명목상 학생이었다.
양공은 무표정하게 동창이자 벗을 자세히 살피며 말했다.
“그러게. 본관도 허칠안 이 서생에 아주 만족하네. 몇 년 동안 주머니에 있는 돈을 다 털어 가르쳤던 본관을 부끄럽게 한 적이 없지.”
운록서원의 두 대유는 서로 눈을 마주쳤다.
잔잔한 공기 중에, 강렬한 불꽃이 부딪치는 듯했다.
* * *
이틀 뒤, 완군 10리 밖, 운주군 본거지.
하늘에서 불처럼 붉은 거대한 새 8마리가 날아와 막사를 스치고 군영 서북쪽에 내려앉았다.
현재 척광백은 책사와 각 병영 장수들과 가상 전투 훈련 중이었다.
“저희 병력으로 완군을 강공하면 열흘 내 점령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완군에는 대유 장진이 주둔하고 있지요. 이 자는 주로 병법을 수련했습니다. 우습게 보면 안 됩니다. 강공하면 아마 저희 군 정예병을 잃을 겁니다.”
갈문선이 모래판을 바라보며 분석했다.
곁에서는 각 병영 장수들이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 그러나 갈문선은 그리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나지막이 말을 이어갔다.
“앞서 말씀드렸지요. 청주를 치는 데 가장 중요한 건 속도가 아니라 안정입니다. 빠르게 칠수록 정예병을 잃는 속도도 빨라질 겁니다. 저희가 경성을 칠 때 정예 부대가 얼마 남지 않아서는 안 되겠지요.
그러므로 완군을 상대하려면 포위한 채 공격하지 않고 질질 끌며 서서히 죽이는 게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만약 청주군에 지원군이 온다면 저희는 반드시 잡아먹힙니다. 오는 만큼 잡아먹힐 거예요.”
네모난 얼굴의 한 장수가 고개를 저었다.
“천천히 공격하려면 송산현 점령이 전제돼야 합니다. 송산현과 동릉을 먹어야만 청주군이 전력을 다해 완군을 지키도록 압박할 수 있지요.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완벽하게 송산현을 거점으로 하여 군대를 파견하고 동릉 수비군과 합류해 희현의 대오를 해치울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완군은 오히려 저희 군 주력을 꼼짝 못 하게 하는 잡석이 될 겁니다.”
3군 총사령관 척광백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탁호연은 정보를 전해왔는가?”
며칠 전, 탁호연이 인솔한 6천 정예병이 송산현에서 수비군의 완강한 저항에 맞닥뜨려 지원병을 요청한다고 급보를 전해왔었다.
그에 척광백은 주작군 40기를 파견하였다. 그들은 가장 빠른 속도로 달려갔다.
이치대로면, 지금쯤 송산현이 점령될 차례였다.
“본 장군은 허신년이 아주 의외였네. 탁호연이 공성에 능하지는 않지만, 휘하의 6천 정예병은 용맹하고 싸움에 능한데 아직 약관인 소년이 그 정도까지 할 수 있다는 건 확실히 쉽지 않거든. 장군감이야.”
척광백이 웃으며 말하던 그때, 미친 듯 달려온 발소리가 군막 밖에 멈췄다. 척광백은 바로 활짝 열린 막사 밖을 바라보았다.
멀리서 병사 한 명이 다가오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통보하는 병사가 큰 소리로 말했다.
“주작군이 이미 정보를 가지고 군영으로 돌아왔습니다. 송산현에 출병한 정예병 6천이 전군 전멸했습니다. 탁호연은 도망쳐 행적을 알 수 없습니다. 주작군 40기 중 고작 8기만 돌아왔습니다.”
말하는 동시에 그는 정보 서신을 건넸다.
“…….”
군막 안, 모든 장수의 안색이 변했다.
척광백은 다소 굳은 얼굴로 눈을 가늘게 떴다. 그는 그대로 성큼성큼 걸어가 병사가 들고 있던 정보 서신을 펼쳐 읽었다.
“……대장군?”
갈문선이 조심스레 척광백을 불렀다.
척광백은 별다른 표정 없이 손에 든 서신을 건넸다.
다 읽은 뒤, 갈문선도 깊이 침묵했다.
각 병영 장수들 사이에 정보가 다 퍼졌다.
침묵 속, 드디어 누군가 참지 못하고 이를 부득부득 갈며 말했다.
“고족이 대봉과 동맹을 맺었군!”
얼마 전 갈문선이 군영으로 돌아와 고족과의 동맹에 실패했다고 알렸다. 이미 운주군 고위층은 그때부터 어렴풋이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었다.
모든 장수가 잇따라 척광백을 쳐다보았다.
한참을 침묵하던 이 운주군 최고 통솔자가 서서히 입을 뗐다.
“허, 재미있군.”
그해, 그가 처음으로 군에 들어왔을 때 내뱉은 말이 바로 이 두 글자였다. 허평봉과 가상 전투 훈련을 할 때도 이 말을 내뱉었었다.
* * *
동릉, 남성문이 무너져 아예 폐허가 되었다.
맨 처음 대봉 수비군과 우주군은 성 안에서 시가전을 벌였고, 전화는 성 내 모든 땅을 불태웠다.
시가전은 6일이나 지속됐고, 성에 사는 인구는 절반이나 줄어버렸다.
일부 백성은 동릉을 탈출했고, 일부는 운주군이나 대봉군에게 강제 징용돼 입대했으며, 일부는 전화의 여파에 죽었다.
그 후, 대봉 수비군은 동릉에서 철수해 운주군과 야전을 펼쳤다.
그제야 성 내 전쟁 불길이 진정됐으나 운주군의 약탈이 뒤따랐다. 백성들은 집안의 재산이며 여인이며 모조리 다 빼앗기고 말았다.
* * *
온전히 보존된 소원 안에, 창백한 얼굴의 허평봉이 연속해서 기침했다. 입에서 손을 떼니, 손바닥에 붉은 피가 스며 나왔다.
가나수 보살은 부들방석 위에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그의 존재로 인해, 소원의 온도는 한여름처럼 뜨거웠다.
“몇 년간 이리 심한 중상은 입은 적 없는데 스승님은 역시 스승님이군.”
중상을 입었지만 허평봉의 눈에는 웃음기가 배어 있었다.
그는 바로 가나수를 쳐다보며 말했다.
“하지만 스승님이라고 해도 자네에게 중상을 입히지는 못했군.”
가나수는 눈을 감고 좌선하며 담담하게 말했다.
“그해 초대 감정 역시 나를 해치지 않았지. 만요국을 멸망시킬 때 신수의 손에 죽을 뻔한 걸 제외하면 나는 이미 500년 동안 부상을 입지 않았네. 고족이 참전한 것 같군.”
허평봉은 전혀 개의치 않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전부 작은 일입니다. 고족과 동맹을 맺는 건 그저 구실일 뿐이죠. 백제의 화신을 보내 고신과 만나는 게 목적이지요. 내 그 장자가 도약하라고 하지요. 합도로 승직할 때야 내 적수가 될 자격이 생길 테니까. 에휴, 이렇게 여러 해가 지나서야 마침내 가슴 속 곤혹을 풀겠구먼.”
가나수는 눈을 뜨고 그를 응시했다.
“무슨 일인가.”
허평봉이 웃으며 말했다.
“문지기가 누구인지 알 것 같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