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troke RAW novel - Chapter 989
986화. 운명을 따르는 자와 겁(劫)을 따르는 자 (1)
허칠안은 백희를 안고 2층에 왔다.
이곳에는 금강 조각상이 곧게 서 있었다. 다들 하나같이 눈을 부라리고 있거나 싸울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어 삼엄하고 무시무시했다.
이 조각상들은 특정한 진법을 구성하고 있었다. 불법을 부여받아 부도보탑 3층을 구성하면서 강대한 수행자를 봉인하는 감옥으로만 쓰였다. 2층에 넘쳐흐르는 ‘진옥(鎭獄)’의 힘은 일시적으로 2품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
두 조각상 사이, 시행이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그녀는 본래 자색이 매우 뛰어난 미인이었으나 지금은 그저 애처롭고 가련한 처지였다. 볼은 창백하고 야위었으며 머리카락은 산발이었다. 장기간 구금으로 점점 더 연약해져서 보는 것만으로 동정심을 절로 일으켰다.
과거 묘재방이 있을 때는 옥졸처럼 정기적으로 음식을 주고 오줌통을 갈아주었었다. 또한 그녀는 7일마다 외출해 활동할 기회가 한 번씩 있었다. 그때마다 시행은 틈틈이 세수하고 양치질하고 목욕도 했다.
묘재방이 떠난 뒤, 음식을 주는 임무는 모남치의 몫이 됐다. 오줌통을 갈아주는 것은 탑령 노승이 담당했다. 노승은 생각만으로도 탑 안의 어떠한 물건도 다 옮길 수 있었다. 물론 신수의 단수는 제외였다.
“오랜 수감 생활이 당신의 기기를 더욱 두텁게 하고 수련 경지를 키울 줄은 생각지도 못했소.”
허칠안이 웃으며 말했다.
시행은 눈을 뜨고 그를 쳐다보더니 분수를 지키며 말했다.
“기기를 토납하고 단련하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요. 누구라도 저처럼 수련 경지가 크게 오를걸요.”
잠시 멈칫하던 그녀가 다소 부드러워진 표정으로 물었다.
“이랑은 요즘 잘 지내나요?”
허칠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유랑민 군대를 조직하여 청주에 싸우러 갈 준비를 하고 있소. 그대가 부도보탑에 머무는 동안 한재가 폭발하여 중원 백성이 살 곳을 찾아 헤매고 있소. 운주 반란군은 북상하여 청주를 공격했고, 전황은 교착된 상태요.”
시행은 잠시 잠자코 있다가 쓴웃음을 지었다.
“작은 부도보탑이 피신처가 됐군요.”
‘피신처가 맞지. 앞에 한 말은 탑령이 인정하는지 아닌지 물어보고…….’
허칠안은 더 이상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고, 품에서 짐승 가죽으로 된 지도 절반을 꺼냈다.
“한번 보시오. 이게 그대 조상이 남긴 그 반쪽짜리 지도요?”
시행이 받아 지도를 펼쳐 보았다.
“그런 것 같은데요. 그해 궁주가 시가에서 가져간 지도와 재질이 같아요.”
“지도의 다른 절반을 본 적이 있소?”
허칠안의 물음에, 시행은 다시 쓴웃음을 지었다.
“허 은라가 생각하기에는 제게 알 자격이 있나요?”
“당신 시가의 조상에 대해 또 뭘 알고 있소?”
시행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금 시가에서 과거를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선조는 남강에서 돌아온 그분뿐입니다. 더 위로는 멸문을 당한 적이 있어 철저하게 몰락했고요.”
허칠안은 어쩔 수 없이 짐승 가죽의 지도를 도로 거두었다.
‘이거 좀 답답하네……. 허평봉 눈에 들 수 있다는 건 절대 평범한 게 아니야. 무덤 주인이 누구일까. 허평봉은 또 시가를 어떻게 안 건가……. 에휴, 지금 이 일이 급한 게 아니니 우선 천천히 하자고.’
* * *
남루한 장식의 침실에서 낙옥형은 나른히 하품하다가 수납 자루를 열었다. 그 안에서 깨끗하고 단정한 속옷을 느긋하게 입고, 우의 장포를 걸쳤다.
그녀는 손으로 연화관을 만지작거리며 탁자 위 영롱한 탑을 지긋이 바라본 뒤, 입꼬리를 치켜올렸다.
“3품 무사가 고작?”
낙옥형은 연화관을 아무렇게나 탁자 위에 내던지고 침실을 나섰다.
* * *
종족의 청장년이 출정하면서 산에 올라 사냥하는 사람 수가 확 줄었다. 이에 족장 용도는 어쩔 수 없이 다시 산에 올라 일을 해야 했다.
역고부에서 족장은 손에 권력을 쥔 자인 동시에 책임감이 가장 막중한 사람이었다. 인력이 부족하고 먹을 것이 부족해졌다면 족장은 마땅히 산에 올라 사냥을 해야 했다,
낙옥형은 마당 밖에 이르러 나무 그늘에 웅크려 앉은 허영음과 리나를 보았다. 모닥불이 피어오르고, 모닥불 옆에는 가죽이 깨끗하게 벗겨진 쥐가 6마리 끼워져 있었다.
“쥐를 다 먹으면 불더미 아래 고구마도 다 구워질 거야. 기대되지?”
리나가 흥얼거리며 말했다.
“기대돼요!”
콩알이는 침을 닦았다.
“가서 물주머니 좀 가져오렴. 목이 마르구나.”
리나의 분부에, 순간 콩알이가 경계하며 사부를 쳐다보았다.
“그, 그럼 몰래 먹지 마세요!”
사부의 다짐을 받은 후에야 콩알이는 비로소 짧은 다리를 움직였다.
“국사, 안녕하세요.”
리나가 낙옥형을 보고 공손히 인사했다.
그녀는 허영음처럼 영 바보는 아니었다. 눈앞의 이 낙옥형의 강대함과 초연한 지위를 잘 알고 있었다.
최근 낙옥형과 허칠안이 극연에서 적지 않은 힘을 썼다. 쌍수 도려가 극연을 휩쓸었다는 전설이 이미 고족에 널리 퍼진 상황이었다.
낙옥형이 리나를 자세히 살피다 말했다.
“자네 그, 그 지서 파편 소지자구나.”
리나는 깜짝 놀랐다. 국사가 자신의 신분을 알 줄이야…….
낙옥형은 걸음을 멈추지 않고 계속 밖으로 걸어갔다.
리나의 시선은 계속 그녀를 따라 움직였다. 오늘 국사가 좀 이상하다는 걸 예리하게 눈치챈 것이었다.
이내 리나는 시선을 거두고 입맛을 다시며 곧 다 구워질 쥐를…….
응?! 쥐가 사라졌다! 모닥불 옆이 거짓말처럼 텅 빈 상태였다.
망연자실한 리나는 얼른 일어나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쥐는! 그렇게 많던 내 구운 쥐는!!!’
콩! 콩! 콩…….
동시에 허영음이 물주머니를 안고 뛰어왔다.
아이도 이내 모닥불 옆이 텅 빈 것을 보고 그대로 굳어버렸다.
사제 둘은 서로 멀뚱멀뚱 쳐다만 보았다.
이후, 리나가 먼저 힘겹게 입술을 움직였다.
“……쥐가 스스로 도망쳤다면 믿을 수 있겠니?”
“으앙~!”
콩알이는 물주머니를 내던지고 바닥에 앉아 다리를 콩콩 찧으며 울었다.
먼 곳, 어느 산들바람이 부는 곳에 우의와 머리칼이 마구 흩날렸다.
꽃처럼 어여쁘게 웃는 낙옥형은 요염하면서도 더없이 아름다웠다.
* * *
남법사.
무너진 봉인탑 밖 광장에 머리 뒤쪽 일곱 빛깔 불의 고리가 빛나는 도액 나한이 부들방석에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손에는 금 사발을 받친 채였다.
“팔고진(八苦陳)을 지나고 문심관(問心關) 받는 건 광현 보살의 뜻이네. 자네가 이 두 관문을 지나면, 봉인된 탑이 훼손된 일은 끝을 맺을 걸세.”
까무잡잡하고 여윈 노승이 차분한 눈으로 맞은편의 아소라를 바라보았다.
“제자, 이해했습니다.”
아소라는 양손을 합장하고 한 걸음 뛰어넘어 금 사발에 들어갔다.
도액 나한이 손을 거두자 금 사발이 서서히 공중으로 떠올랐다.
사발 주둥이에서 빛의 장막이 투사되었다.
빛의 장막엔 몸에 가사를 걸친 아소라가 양손을 합장하고 당당히 서 있었다. 그러나 그는 팔고진 앞에서 꾸물거리며 좀처럼 진에 들어가지 않았다.
팔고진, 이는 불문 고승이 깨닫는 데 쓰이는 진법으로 이 진법을 지나면 번뇌가 사라지고 마음에 불념이 생겼다.
그로써 불문에 귀의하고, 그로써 불법이 깊어지는 것이다.
반대로 영원히 팔고에 추락하면 원신이 붕괴되었다.
물론 팔고진에 들어가 불심을 연마하는 모든 승려는 나한이나 보살의 관심을 받아 원신을 안전하게 보호받았다.
간단히 말해 팔고진은 사실 불문의 ‘사대개공(*四大皆空: 세상의 모든 현상은 공허하다)’ 중 일부였다.
아소라가 여전히 아소라고, 불은(佛恩)에 귀의한 그 수라자라면 그는 팔고진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을 터였다.
아소라가 오래도록 팔고진에 들어가지 않자, 도액이 담담하게 말했다.
“아미타불, 아소라, 왜 주저하는가?”
목소리는 법기를 통해 금 사발 안의 불계로 전달되었다.
아소라가 담담하게 말했다.
“옛일을 떠올리는 것뿐입니다. 진작에 이미 구름처럼 흩어진 옛일들이요.”
말을 마친 그는 더 이상 주저하지 않고 팔고진에 발을 들였다.
도액은 눈을 가늘게 뜨고 팔고진 속의 아소라를 자세히 살폈다.
용모가 추하면서도 용맹스럽고 비범한 이 수라왕의 막내아들은 걸음걸이는 느려도 이상하리만큼 확고히 팔고진을 지나쳤다.
그 과정에 아소라의 표정은 시종일관 침착했다.
팔고진을 지나친 뒤, 아소라는 걸음을 멈추고 계단을 올랐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산꼭대기 오래된 사찰에 이르렀다.
오래된 사찰 꼭대기에는 청동 대종이 있었다.
아소라는 천천히 누각을 올라 청동 대종 앞에서 합장하고 불호를 외웠다.
땡~
아소라가 종을 치자, 첫소리가 울렸다.
청동 대종에선 광활한 종소리와 잔잔한 물결 같은 금빛이 메아리쳤다.
땡~ 땡~ 땡…….
종소리가 끊임없이 울리며 잔잔한 물결 형태의 금빛이 아소라의 몸을 겹겹이 쓸어내렸다. 처음엔 미간에 금빛이 반짝였고 뒤이어선 몸에 옅은 광채가 뒤덮였다. 맑고 투명했다.
총 81번의 종소리가 울린 뒤, 아소라는 종을 놓고 합장한 채 고개를 숙이고 눈을 깔았다.
도액 나한이 염화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불심은 순결하네. 본좌가 광현 보살에게 아뢸 것이야. 최근 십만대산 외곽에 요괴의 기운이 하늘을 찌르더군. 남요가 나라를 되찾겠다는 야심을 500년간 참았다가 이번에 십만대산을 다 태우려고 하는 게지. 우리는 명을 받들어 남강을 지킬 걸세. 방심해서는 안 돼.”
아소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그래야지요.”
* * *
남강.
리나는 마당에서 고구마를 먹으며 옆에 있는 조그만 등을 쳐다봤다.
“쥐는 정말로 내가 먹은 게 아니야.”
콩알이는 말없이 고구마만 베어 먹고 있었다. 지금 고 쪼끄만 등과 동그란 뒤통수가 모든 걸 말하고 있었다. 사부에게 단단히 토라진 것이었다.
잠시 아이를 보던 리나는 허영음의 어깨를 톡, 건드렸다.
하지만 허영음은 바로 짧은 어깨를 움직이며 리나의 손길을 피했다.
“자, 자, 고구마 네가 먹어, 됐지?”
하얀 피부의 리나가 말했다.
홱!
허영음은 잽싸게 뒤돌아 까만 눈을 반짝였다.
“정말요?”
리나는 방금 딱 한입 먹은 고구마를 애처롭게 쳐다보다가, 힘겹게 고통을 참으며 제자에게 고구마를 건넸다.
허영음은 히히 웃으며 소중히 품에 넣었다.
“화 안 낼 거지?”
“네!”
사제 둘은 다시 사이가 좋아졌다.
이내 리나가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그럼 맛있는 게 있으면 사부와 나눠야 하지 않을까? 고구마 하나 주렴.”
콩알이도 싱글벙글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퉤! 퉤!”
리나의 고구마는 콩알이의 침 세례를 받았다.
“…….”
* * *
부도보탑을 나온 허칠안은 방 안을 둘러봤으나 낙옥형이 보이지 않았다.
공기 중엔 국사의 은은한 체취와 이상한 냄새가 남아 있고, 침상 깔개는 난잡하게 어질러져 있었다.
흰 여우는 새끼지만 철이 들었다.
여우는 새까만 눈을 굴리다가 침대 깔개를 보곤 화를 냈다.
“야희 언니한테 말할 거예요. 다른 여인과 잘 지내는 걸 속이고 있잖아요.”
‘쪼그만 요괴가 아주 똑똑하네…….’
허칠안은 여우를 흘기며 언짢은 얼굴을 했다.
“무슨 근거로 내가 다른 여인과 잘 지낸다고 말할 건데? 증거 있나?”
흰 여우는 발을 들고 탁자를 툭툭 치더니 뾰로통하게 화를 냈다.
“매번 야희 언니와 잠자리를 갖고 나서도 침상이 이렇게 어지러웠어요. 저는 당신이 그녀에게 달려드는 것도 똑똑히 봤다고요.”
말을 마친 뒤, 흰 여우는 갑자기 꼬리를 덮어 엉덩이를 가렸다.
결국 허칠안은 인상을 쓰고 손가락으로 흰 여우의 머리를 톡 밀었다.
“이 어린놈의 새끼가 뭘 안다고. 그건 그냥 내가 대신 모기를 잡아준 것이야! 일 있으니 얼른 마마나 소환해.”
허 은라의 짜증에 백희도 이내 굴복하고 탁자 위에 웅크렸다.
백희가 꼬리로 몸을 덮자, 그 몸에서 난폭한 의지력이 각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