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troke RAW novel - Chapter 996
993화. 대윤회법상
곧이어 허칠안 품에서 어두운 금색 영롱한 탑이 떠올라 머리 위에 걸렸다.
탑 꼭대기에는 염화미소를 지은 법상이 떠올라 있었고, 머리 뒤에는 지혜를 상징하는 빛의 고리가 있었다.
“부도보탑!”
도액 나한도 그 불문 법보를 감지하고,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이내 허칠안이 크게 소리쳤다.
“도액 나한, 저 여인이 요병을 이끌고 불문 제자를 학살하고, 불문 성지를 공격했다! 시도 때도 없이 복국을 생각하고 있지. 저 여인이 죽지 않으면 남강은 영원히 태평하지 않을 것이다. 저 여인이 살아있는 한 요족은 영원히 단념하지 않을 거다. 어서 저 여인을 죽여라!”
부도보탑 꼭대기, 대지혜법상 머리 뒤쪽 빛의 고리가 거꾸로 돌았다.
순간 도액 나한은 크나큰 깨우침을 얻은 듯했다. 구미천호에 대한 분노는 절정에 달해 그녀를 요족의 큰 화근으로 여겼고, 무엇 하나 고려하지 않고 당장에 죽여야 할 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즉시 양손을 합장하고 계율을 시전했다.
“자비위회(*慈悲爲懷: 자비를 베풀다)!”
간단한 네 글자로 절세미인의 악기와 살의를 꺾었다.
지극히 아름다운 얼굴은 한동안 멍해졌다.
기회를 잡은 도액 나한 머리 뒤쪽 지혜 광륜은 전에 없던 빛을 발했다.
그는 그대로 손바닥을 들어 세차게 내리쳤다.
밤하늘, 수십 장(丈) 길이에 달하는 부처의 손바닥이 응집되었다. 찬란한 금빛은 아래쪽 성벽을 밝게 비추었다.
멍한 상태의 구미천호는 반항할 의지 같은 건 조금도 생기지 않았다. 오히려 가슴에 자비를 품고 기꺼이 사지로 향하길 원했다.
쿵!
부처의 손바닥이 고공에서 구미천호를 세차게 내리쳤다. 구미천호는 단단한 바위에 찍혔고, 만요산에는 마치 지진이 난 것만 같았다.
비로소 기회를 잡은 허칠안은 모든 기기를 무너뜨리고 모든 감정을 추스른 뒤, 단전을 검은 구멍으로 만들어 신체의 역량을 삼켰다.
선처럼 가느다랗고 낮처럼 밝은 도광이 다시 솟아올랐다. 모든 걸 벨 듯한 위력은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 2품 나한의 가세를 읽고 108명의 선사만 남은 진법을 내리쳤다.
선사들 몸 표면에 뒤덮인 금빛은 삽시간에 흩어져 빛 부스러기가 된 채 사방으로 흩어졌다. 108명의 선사는 비처럼 추락했다.
마침내 진을 부순 것이었다.
자신을 한껏 내세운 허칠안은 본래는 상투적인 수법을 다시 쓸 생각이었다. 다시금 불꽃을 흔들고자 했으나 생각 끝에 포기했다.
‘특수 효과는 반복하면 안 되지. 얼마 안 되는 재주가 바닥난 것처럼 보일 거야…….’
그는 한동안 새로운 특수 효과를 떠올리지 못한 것이 못내 개탄스러웠다.
* * *
어느 성벽 위.
야희는 주위 수비군과 무승을 거의 다 죽였다. 발은 피범벅이 돼 있었다.
그러다 문득 진법이 깨졌음을 눈치챈 그녀는 갑자기 고개를 돌렸다. 시선 끝에, 공중에 검을 들고 서 있는 허칠안이 잡혔다.
“흥!”
옆에서 들려온 차가운 콧방귀 소리에 야희가 고개를 돌렸다.
청봉검을 들고 선 청희는 얼굴에 불쾌한 기색이 선명했다.
“너 자매간의 약속을 어기고 인족 사내를 제멋대로 사랑했더구나.”
야희가 아름답게 웃으며 말했다.
“약속? 증서 있니? 그래, 나 인족 사내를 사랑하게 됐어. 너 질투하는 거지? 내 사내가 비범한 기개를 지닌 영웅이라 질투하니?”
청희는 거만하고 자부심 넘치는 야희의 표정을 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보는 여인마다 사랑하는 그런 색마를 질투할 가치가 있나?”
두 사람 모두 가벼운 천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드러난 눈은 거의 틀에 박힌 여우 눈이었고, 분위기는 각기 달라도 아주 아름다운 미인들이었다.
이내 야희가 웃었다. 그녀는 요리를 좋아하는 이 여인에게 치킨스톡의 발명가가 허칠안이라 알리지 않았다.
마마는 아홉 자매 모두 그와 사랑에 빠지기만 하면 허칠안은 당연히 만요국 부마가 될 거라 했었지만, 과연 누가 그를 부마로 맞을 수 있겠는가.
* * *
한편, 구미천호는 공중으로 올랐다. 현재 은발은 끈적끈적한 피로 물들어 있고, 한쪽 여우 귀는 축 늘어져 있었다. 궁지에 몰린 듯 보였다.
구미천호는 추락한 선사들을 그 자리에서 죽였다. 그리고 이를 부득부득 갈며 전음했다.
“못된 놈 같으니!”
허칠안은 미소로 전음했다.
“마마, 일단 제 말부터 들어보세요. 저와 마마 중 누가 더 선진을 부술 능력이 탁월합니까? 대지혜법상의 광륜이 거꾸로 돌면서 법상에게 주시당하던 사람의 지혜 역시 역전됐다곤 하나, 도액은 어쨌거나 나한입니다. 도액이 마마를 포기하고 억지로 저를 상대하게 했다가 만약이라도 이상한 걸 눈치채서 지혜 역전의 영향에서 벗어나면 어쩝니까? 그럼 저희는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습니다.”
대지혜법상은 법제 보살이 남긴 것으로 부도보탑의 최강 능력 중 하나였다. 물론 원본보다 떨어지는 건 틀림없지만, 짧은 시간 동안 2품 나한에게 영향을 미칠 수는 있었다.
말하는 동시에 허칠안은 부도보탑을 조종해 ‘약사법상’을 불러냈다. 옥병에서 부스러기 빛을 뿌려 구미천호가 살적의 힘을 제거하도록 도왔다.
기운은 떨어지지 않았다. 내실이 튼튼하고 내구성이 강했다. 그녀는 요족으로 단연 합격이었다.
도액 나한은 허공에 가부좌를 틀고 죽어가는 선사들을 애처롭게 바라보며 조용히 불호를 외웠다.
“보살께서 나서서 우리 불문 제자의 목숨을 구해주십시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그는 목에 걸린 어느 염주를 비틀어 산산 조각냈다.
그러자 개똥벌레 같은 금빛이 공중에 구불구불 이어지더니 붉은색, 노란색이 뒤섞인 가사를 걸친 소년 승려로 응집되었다.
소년은 아직 성년이 되지 않은 듯, 앳된 얼굴이었다. 그러나 그 눈빛은 자비로우면서도 애처로웠다. 세상의 모든 걸 가없이 사랑하는 듯했다.
“아미타불!”
소년 승려는 양손을 합장하고, 고개를 숙인 채 불호를 외웠다.
그 뒤로 거대한 불기(佛器)가 응집되었다. 그건 황금으로 주조한 회전판으로, 회전판 중심에는 ‘만(卍)’자가 새겨져 있고, 가장자리에는 ‘천(天), 인(人), 아수라, 금수, 아귀, 지옥’이 새겨져 있었다.
회전판은 물차처럼 거대했고, 황금으로 주조한 까닭에 묵직한 금속 질감이 배어 있었다. 그 회전판이 천천히 회전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사람의 상식을 뒤엎는 장면이 벌어졌다.
방금 구미천호에게 죽임을 당한 108명의 선사들이 눈을 뜨고 망연히 일어나 앉았다. 성벽 위에도, 성벽 아래에도 나뒹굴던 시체들이 잇따라 일어나 멍하니 사방을 둘러보았다.
본래 전사했던 사람과 요괴들이 전부 다 부활하였다.
단, 영혼이 흩어진 사자(死者)들은 제외였다.
충격적인 장면 속에, 허칠안은 구미천호의 굳은 목소리를 들었다.
“대윤회법상…….”
‘대윤회법상,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고? 너무 신기한데……?’
허칠안은 순간 멍해질 뻔했다.
그도 불문에 9대 법상이 있다는 걸 알았고, 금강법상의 강대함, 약사법상의 신기함, 대지혜법상의 지혜 떨어트리기도 다 겪어봤다.
하지만 눈앞의 대윤회법상은 무려 죽은 사람을 다시 살렸다.
허칠안은 이 상황에 너무도 큰 충격을 받았다.
칵- 칵- 칵…….
금색 회전판이 천천히 돌아가며 죽은 자들이 계속해서 다시 살아났다.
그들은 망연한 눈빛으로 자신을 관찰하고, 주위를 자세히 살폈다.
“나, 나 죽었던 거 아닌가?”
“환각? 아닌 것 같은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아소라 존자와 그 요왕이 죽었나? 누가 죽인 거지? 구미천호인가?”
상황을 잘 모르기에 다시 살아난 사람과 요족은 상대적으로 냉정한 편이었다. 바로 함께 목숨을 걸고 싸우지 않고, 경계하면서 주위를 살핀 후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자 했다.
허칠안은 한참 동안 냉정하게 관찰한 뒤, 구미천호에게 전음했다.
“대윤회법상의 영역 안에 있는 죽은 자 모두가 소생할 겁니다. 하지만 혼백이 흩어진 자는 예외입니까?”
구미천호가 가볍게 웃었다. 과연, 이 못난 사내는 대윤회법상의 중요한 첫 번째 능력을 거의 파악한 상태였다.
“관찰력이 예리하군. 역시 사건 해결 천재다워. 대윤회법상은 2가지 능력이 있네. 자네가 본 건 그중 하나지. 두 번째는 짧은 시간 내 사람이 한번 윤회를 겪게 할 수 있어. 그해 아소라가 우리 어머니께 죽임 당했으나 광현이 그가 다시 태어나 수행하도록 도와서 목숨을 부지한 게지.”
허칠안은 고개를 끄덕인 후, 경계하며 주위를 훑었다.
“광현의 분신이 온 것 같군요.”
“응.”
구미천호와 허칠안 모두 따로 말할 필요가 없었다. 전에 둘은 아소라가 빠져나갈 길을 준 이유에 대해 토론한 바 있고, 2가지 추측을 했었다.
아소라의 사심과 불문의 음모.
후자는 아마 광현 보살의 진짜 몸이 강림해 그들을 모조리 해치우려는 것일 터, 하지만 지금은 광현 보살의 분신이 등장했다. 그럼 답은 뻔했다.
“아소라는 요족과 관련된 어느 사건을 통해 보살 과위를 성취하고 1품에 발을 들여놓고 싶은 걸까요?”
허칠안이 전음으로 말했다.
바로 구미천호의 전음도 이어졌다.
“광현의 진짜 몸이 근처에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네. 자네 주의하게. 기회를 보다가 심상치 않으면 계획대로 일을 처리하라고.”
대화를 나누는 사이, 광현 보살은 자비로운 눈빛으로 웅왕과 아소라의 시체와 머리를 바라보았다.
그곳은 ‘무인지대’로, 무릇 접근한 자는 이미 바닥에 쓰러져 일어나지 못하고 깊은 잠에 빠졌다.
“아직도 깨어나지 않는가?”
광현 보살이 담담하게 말했다.
찰칵-
회전판이 돌면서 광속이 투사되더니 아소라와 웅왕의 ‘시체’를 비췄다.
두 초범 강자의 머리가 천천히 눈을 떴다. 몸뚱이 두 구도 일어서서는 자신의 머리를 양손으로 받친 후 목으로 끼웠다.
이후 혈육이 꿈틀거리며 목이 다 자라났다. 흉터는 하나도 없었다.
웅왕은 하품을 한 후, 몸을 틀어 구미천호와 허칠안 옆으로 걸어갔고, 아소라는 광현 보살 옆으로 돌아가 양손을 합장하고 고개를 떨군 채 시립했다.
도액 나한은 다른 쪽에 있었다.
광현 보살이 자비로운 눈으로 양손을 합장했다.
“아미타불, 500년 전 전투로 백성이 도탄에 빠졌습니다. 서역, 요족 모두 사상자가 엄청났지요. 시주께선 어찌 또 경솔하게 전쟁을 치르려 하십니까.”
구미천호가 매혹적인 웃음을 지었다.
“광현 보살 말씀에 일리가 있습니다. 그럼 불문이 십만대산을 돌려주고 남강에서 물러난다면 당연히 더는 백성이 도탄에 빠질 리가 없겠지요.”
예상외로 광현 보살은 고개를 끄덕였다.
“본좌가 결정할 수 있습니다. 십만대산의 본거지 절반을 돌려드리지요. 만요산을 경계로 요족은 동쪽에 살고, 불문은 서쪽에 사는 겁니다.”
잠시 멈칫하던 그가 말을 덧붙였다.
“이건 불문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양보입니다. 본좌는 하늘에 맹세할 수 있고, 절대 번복하지 않을 겁니다. 만요간 동쪽 지역은 충분히 넓으니 지금의 요족을 수용하기에 여유롭지요.”
그의 말은 사람을 복종시킬 만한 힘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주위의 요족들도 다 듣고 나서 동요하는 기색을 보였다.
광현 보살의 제안이 썩 훌륭했다. 그러면 족인의 전사도 피할 수 있고, 드넓고 비옥한 토지에서 서식할 수도 있었다.
“좋지 않다! 나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웅왕이 고개를 저으며 천천히 말했다.
소년 승려 형상의 광현 보살이 온화한 표정으로 물었다.
“시주께서는 어떤 고견이 있으신지요?”
웅왕은 콧방귀를 뀐 후 느릿하게 말했다.
“나는 곤란한 요구를 하겠다……. 북쪽 대나무가 너무 적어서 좋지 않다……. 나는 서남쪽의 삼천 묘 대나무숲을 원한다……. 이런 좋은 지역을 너희 불문이 기꺼이 할양하겠다면 나는 너희들의 성의를 믿겠다…….”
광현 보살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웅왕이 콩알 같은 눈을 부릅떴다. 믿기 어려웠다. 불문이 이렇게 과분한 요구에 동의하다니. 삼천 묘 대나무숲의 좋은 땅마저 할양하길 원한다는 건 확실히 성의가 있었다.
그때, 허칠안은 남몰래 눈살을 찌푸렸다.
광현 보살의 이 수는 뜻밖에도 요족을 진정시켰다. 이 수는 불문이 병력을 동원해 중원으로 정벌을 나가 운주 반란군을 도와 대봉을 전복시킬 수 있도록 했다. 게다가 고작 만요산 동쪽 근거지를 내줬을 뿐, 불문은 여전히 이 남강 십만대산의 첫 번째 좋은 땅을 점거하고 있으니 기운이 손상되지도 않았다.
가장 작은 대가로 이익을 극대화한 셈이었다.
하지만 그는 큰 우려 같은 건 하지 않았다. 구미천호가 타협할 리가 없었다. 이렇게 쉬이 복종할 거라면 500년이나 꾹 참지도 않았을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