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troke RAW novel - Chapter 997
994화. 낯선 소녀
이내 구미천호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내 고향을 빼앗고, 내 족인을 죽이고, 우리 요족의 영토로 우리에게 베풀겠다니. 불문은 우리 남요 혈통을 거지로 취급하는 건가?”
그녀는 입은 웃고 있었지만, 눈에는 웃음기가 전혀 없었다.
허칠안은 이 틈에 심고의 ‘공감’ 능력을 발동해 주위 요족에 영향을 줬다.
갑자기 요족들은 쌓이고 쌓인 원한이 끊임없이 들끓기 시작했다. 다들 재차 투지와 분노를 불태우며 잠시 설렜던 마음에 부끄러움을 느꼈다.
광현 보살은 탄식하였으나 여전히 화는 내지 않았다. 하지만 구미천호를 다시 설득하려하지는 않고, 돌아서 허칠안을 쳐다보았다.
“불자, 본좌가 자네에게 불문에 들어오라고 청한 것은 자네의 기운을 탐내서가 아니네. 자네는 대승불법을 창시할 수 있었네. 불문과 인연이 있는 자일세. 불문에서 과위를 수행하게. 과위가 대표하는 건 그저 힘이 아니라 정신이자 자비일세.
본좌의 눈에 자네는 부처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자야. 만약 자네가 불문에 귀의하여 천하 불자들이 대승불법을 깨닫도록 지도하고 싶다면 본좌가 자네의 국운을 제거해줄 수 있네. 그렇게 되면 대봉은 멸망해도 자네는 죽지 않을 것이야.”
허칠안과 불문의 가장 큰 갈등은 불문이 운주 반란군을 도와 대봉을 멸하려하기 때문이었다. 그리 되면 몸에 국운 절반을 짊어진 허칠안은 반드시 순국할 것이었다.
허칠안이 요족, 고족과 연합하여 한 모든 행위는 우선 자신을 보호하기 위함이었다. 살고 싶은 건 인간의 가장 본능적인 욕구고, 지극히 당연한 이치이지 않은가. 살아있어야만 복수도 할 수 있었다.
복수의 대상은 말할 것도 없이 허평봉이었다. 거기엔 허칠안의 개인적인 원한도 있지만, 중원 백성을 대신한 원한도 있었다.
허평봉이 자신의 사욕을 위해 국운을 훔치지 않았다면, 대봉도 20년간 천재와 인재가 계속되진 않았을 터였다. 허평봉이 자신의 사욕을 위해 반란을 일으키지 않았다면, 청주 백성들도 도탄에 빠질 일이 없었다.
허칠안의 입가에 시린 냉소가 걸렸다.
“아, 그럼 난 광현 보살이 죽이지 않은 은혜에 감사해야겠군? 너희 불문이 대봉을 멸하려 하고, 중원 영토를 침략하려 하니 난 불문에 귀의해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을 버리고, 나를 신뢰하는 중원 백성을 버리고, 불문의 불자가 되어 불문을 더 발전시키는 사업을 위해 적은 힘이나마 이바지해야겠구나.
이를 원치 않으면 나는 바로 죽어야 하고? 광현 보살의 눈에 나는 약하고 약한 약자라 선택권이 없어 보이나보군. 나를 그리도 추앙한다면, 왜 나를 위해 가나수를 필두로 한 소승불법과 관계를 끊지 않는가. 대봉에 귀의해 대봉의 반란을 평정해야 하는 것 아닌가? 본 은라, 약조할 수 있다. 천하가 태평해진 뒤, 대승불법은 중원에서 눈부시게 발전할 것이다.”
“고려해본 적 있다.”
광현 보살의 거리낌 없는 대답에, 허칠안은 잠시 어리둥절해졌다. 자신이 뭔가 잘못 들은 것은 아닌지 의심이 될 지경이었다.
광현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대봉과 불문은 실력 차가 너무 크다. 본좌가 신분을 버리고 대승불법 전파만 위한다고 해도, 실력이 더 강한 서역을 초석으로 삼아야 한다. 게다가 서역 불국은 곳곳에 있어 대승불법을 받아들이기 더 쉬운데 본좌가 무엇이 안타까워 대봉을 택하겠는가?”
‘아, 그러니까 대봉은 실력이 안 되고, 내 실력도 안 되니 내가 아니라 불문을 선택했다는 말인 거지? 놀라울 정도로 솔직하네…….’
잠시 생각하던 허칠안이 말했다.
“광현 보살, 내 마지막 봉마정을 뽑아줄 수 있겠는가?”
광현 보살은 고개를 저었다.
“불자가 우리 불문에 들어오지 않는 이상, 본좌는 화근을 자초하는 일을 하지 않네.”
‘지나치게 솔직해…….’
허칠안은 순간 무언가 떠올라 물었다.
“그해 불문이 무종 황제의 반란을 도왔는데 광현 보살도 개입했는가?”
광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마터면 초대 감정에 의해 윤회할 뻔했지.”
정말 그는 한결같이 솔직했다.
‘술사 1품이 자기 본거지에서 1품 여러 명을 무찌를 수 있다는 건 지금 감정의 실력이 초대에 미치지 못하는 게 분명해…….’
“너희는 초대를 어떻게 죽인 건가?”
허칠안은 질문과 동시에 부도보탑을 조종해 약사법상이 광휘를 뿌리도록 했다. 이로써 웅왕의 상처와 소모한 기혈이 회복됐다.
광현 보살이 말했다.
“지금과 똑같다. 무종이 동쪽에서 거사를 일으키고 경성까지 치고 나갔지. 불문 승병은 서쪽 전선에서 밀고 나가 양측이 경성에서 합류했다. 한 걸음, 한 걸음씩 초대를 약화시키고 결국은 그를 죽였지. 지금과 다른 점은 거사 초기에 지금 감정의 실력은 초대에 훨씬 못 미쳤다. 무종의 준비는 허평봉만큼 충분하지 않았지.”
‘그래서 당시에 1품 보살이 나서야 했군…….’
허칠안은 눈살을 찌푸렸다.
“초대는 어떻게 배치했지?”
광현 보살은 잠시 잠자코 있다가 천천히 말했다.
“그런 적 없다. 지혜와 계략을 논하자면 초대는 당대에 비해 적잖이 뒤처졌다. 거사 초기엔 대봉 조정이 급작스레 응하여 손쓸 틈 없이 당했고.”
‘손쓸 틈 없이 당했다고? 농담하는 거지? 그 사람은 천명사라고…….’
허칠안이 양손을 합장하고 말했다.
“알려줘서 고맙다.”
그는 모든 의문을 빠르게 억누르고 전투 태세로 돌입했다.
“고마워할 필요 없다. 본좌 역시 시간을 끌고 있는 것이니.”
광현 보살이 거리낌 없이 말했다.
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다소 어두웠던 회전판이 다시 금빛을 발산했다. 회전판 위, ‘축생(畜生)’ 글자가 빛나기 시작하며 광속을 내뿜었고, 정확히 구미천호에게 명중했다.
뒤이어 ‘인(人)’ 글자도 빛을 내며 광속을 내뿜어 허칠안을 비췄다.
허칠안은 비로소 구미천호가 피하지 않은 이유를 깨달았다. 금빛이 발사되는 찰나, 계율의 힘에 영향을 받아 피해야겠다는 생각이 사라진 것이었다.
‘부상을 입지는 않았네…….’
허칠안은 이 생각이 스친 동시에, 구미천호의 키가 갑자기 줄어드는 걸 보았다. 짐승 가죽에 덮인 체구도 육안으로 볼 수 있을 속도로 오그라들었다.
눈 깜짝할 사이, 여우 귀에 아름다운 은발을 휘날리던 미인이 12~13살 정도의 소녀로 변했다. 하얀 털을 가진 귀여운 소녀는 천진난만하면서도 뭔가 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마마……?”
허칠안은 저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가, 이내 그 소녀와 자신의 키가 비슷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안색이 급변해 자신을 살펴보았다. 딱 맞았던 옷은 완전히 커져버렸고, 바지통도 헐렁했다. 마치 아이가 어른의 옷을 입은 것만 같았다.
‘나도 어려졌네. 기기와 힘도 다 약해졌지만 심각한 편은 아니야…….’
허칠안도 확실히 깨달았다. 이는 윤회법상의 두 번째 능력이었다.
기회를 잡은 아소라는 두 무릎을 살짝 굽혔다. 그대로 포탄처럼 구미천호를 향해 날아간 순간, 지면이 무너져 내렸다.
쿵!
웅왕 역시 포탄처럼 발사되어 아소라의 공격을 막았다.
쿵!
아소라는 역학을 거스르는 찰나, 즉각 멈춰 섰다. 그는 두 무릎을 약간 굽히고 머리를 숙인 채 웅왕의 공격을 피했다. 뒤이어 아소라가 허리를 튕기자, 두 주먹은 잔영이 되어 웅왕의 가슴을 타격했다.
퍽! 퍽! 퍽…….
순식간에 수십, 수백 대의 주먹 폭격이 이어졌다. 웅왕의 가슴은 피범벅이 됐고, 기기 물결은 무시무시한 광풍을 일으켰다.
그때였다. 갑자기 여우 꼬리가 날아와 웅왕을 감싸더니 그대로 낚아채면서 아소라의 연속기를 피했다.
구미천호 꼬리 중 하나가 빛나더니 수축해 짧게 변했다.
동시에 저 멀리 청희가 낮게 읊자 늘씬한 몸이 빠른 속도로 줄며 열두세 살 남짓의 소녀로 변했다.
구미천호는 다시 그 아름다운 미인의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자네, 아주 귀여운데?”
구미천호가 허칠안을 보며 호탕하게 웃었다.
“…….”
허칠안을 다 비웃은 뒤, 구미천호는 하늘을 우러러 큰소리로 부르짖었다.
소리는 천지 사이에 메아리치며 멀리 퍼져갔다.
이내 고공에서 웬 사람 형체가 요란한 소리와 함께 한복판에 내리쳤다.
불완전한 몸으로, 오른손과 머리가 없고 피부색은 칠흑같이 까맸다. 그러나 피부와 혈육은 한 조각, 한 조각 드높은 힘이 깃들어 있었다.
순식간에 강대하고 무시무시한 기운이 장내를 뒤덮었다.
평범한 병사와 소요는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정신이 무너지고 감정이 초조해진다는 생각뿐이었다.
저 무언가가 자신을 포함한 모든 걸 괴멸시키려는 것 같았다.
“신수…….”
광현 보살의 얼굴이 굳었다.
“광현, 또 만나는군!”
신수의 가슴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전해졌다.
몸통과 두 다리, 왼팔이 융합된 후의 신수는 원신도 마음에 꼭 들게 융합되었다. 왼팔의 오만한 악의가 부드러운 몸에 중화되고, 다리의 경솔함과 무모함이 성격을 더 나쁘게 만들었다. 기쁨과 분노가 수시로 교차하고 있었다.
그는 단지 그곳에 서 있기만 했는데도, 자리에 있는 모든 생명들의 정신을 착란시키고, 초조하게 만들었다.
무릇 그를 직시하면 귓가에 무시무시한 잠꼬대가 들렸고, 눈앞엔 환각이 생겼다. 자신을 포함해 주위의 모든 걸 죽이지 못해 한스러울 지경이었다.
광현 보살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뒤에 있는 회전판이 천천히 움직이더니 ‘아소라’ 세 글자가 빛나기 시작했다.
글자는 금빛을 뿜으며 그대로 신수에게로 향했다.
하지만 광속이 친 건 그저 잔영이었다. 신수는 귀신처럼 광현 앞에 나타나 왼손으로 공기를 폭발시켰다.
펑!
이후 신수는 왼팔을 들고 허리를 뒤로 잡아당겨 광현을 세차게 내리쳤다.
쿵!
이 주먹도 공기에 명중했고, 광현의 신체는 금빛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신수의 주먹이 지표면을 내리치며 직경 3m 정도의 구덩이가 생겼다.
난폭한 힘이 지면을 따라 헤엄쳤는데 땅에 균열이 생겼다.
땅의 균열은 먼 곳에 있는 성벽까지 이어졌다.
펑!
험한 소리와 함께 성벽이 갈라지며 돌 파편이 흩날렸다.
‘광현의 윤회 금빛이 신수에게 명중하지 않았다는 건 그 계율에 기효(*奇效: 뛰어난 효과)가 없다는 소리야. 지금 신수의 품계는 적어도 1품…….’
허칠안은 냉정하게 소매를 걷고, 허리띠를 조인 후 바지통을 거뒀다. 아마도 지금 자신은 열두세 살의 어린이거나 그보다 더 앳될지도 몰랐다. 그게 아니면 구미천호도 그렇게 비웃었을 리가 없었다.
곧이어 금빛이 공중에 모여 소년 승려의 모습으로 응집되었다. 이에 따라 윤회법상은 다소 어두워졌다.
방금 그는 신수의 주먹을 피할 수 없었기에 이미 한 번 죽었다.
이 분신의 힘은 딱 세 번밖에 죽을 수 없었다.
신수는 몸을 곧게 펴더니 웅장한 포효 소리를 냈다. 꼭 오랫동안 깊이 잠든 맹수가 깨어나 천하에 자신의 위력을 드러내려는 것만 같았다.
성벽 위는 혼란에 빠졌다. 서역 수비군, 승병, 요족이 아군과 적군을 가르지 않고 잔인하게 죽이기 시작했다.
다시 광현 보살 머리 뒤쪽 윤회법상이 은밀히 사라지더니 3장(丈) 높이의 금신법상이 응집했다. 이 법상은 양손을 합장하고 머리를 떨구고 있었는데 얼굴에는 자비로운 기색이 충만했다.
광현 보살은 양손을 합장하고 낮은 소리로 낭송했다.
“부처님의 자비로움이여, 나태하지 않고 태만하지 않으며, 언제나 선한 일을 추구하며, 모든 것을 이롭게하리라.”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천지간에 이따금 불경 외는 소리가 들려왔다.
3장 법상은 1만장(丈)에 달하는 금빛을 퍼뜨려 어두운 밤을 환히 비췄다.
한순간 피비린내 나는 이 전장이 상서로운 보살 도장(道場)이 된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