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troke RAW novel - Chapter 998
995화. 익숙한 기운
콰당!
연이어 무기가 땅에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지금 사람이든 요족이든 할 것 없이 모두가 무기를 내버리고 살육을 꺼렸다.
방금까지 목숨을 걸고 싸운 적들이 이제는 서로 눈을 마주쳤다. 눈에는 자비와 생명에 대한 뜨거운 사랑만 가득했다.
사람, 요족이 껴안고 ‘형제’라 부르지 않은 건 마지막 남은 이성이었다.
신수의 몸에 영향을 받아 극도로 초조해진 승병, 병사와 요족은 잇따라 이탈했다. 자비가 넘치는 그들은 더 전투할 마음이 없어졌고, 초범경 전투를 꺼려 질서 있게 전장에서 물러났다. 영향을 받지 않기 위함이었다.
“대자대비법상…….”
구미천호는 아름다운 눈썹을 잔뜩 찌푸렸다. 불광 세례를 받은 그녀는 마음속 증오, 음모, 원망, 야심이 모두 불광에 사라져 없어졌다.
하지만 난폭한 원신은 강한 이성을 뜻해서, 그녀는 이런 감정이 옳지 않고 불문과 요족이 철천지원수임을 알았다.
이성과 감정이 교착 상태에 빠진 것이다.
구미천호는 ‘대자대비법상’의 영향을 막을 수 없었다.
대자대비법상은 매우 특수한데, 그건 공격 능력이 없었다. 그것의 유일한 역할은 광현 보살의 ‘도(道)’를 드러내는 것이었다.
2품경의 합도 무사를 제외하고선 이미 자신의 길을 다 걸었다. 그렇지 않다면 1품 아래 그 어떤 체계라도 ‘대자대비법상’의 영향을 받게 될 터였다.
요족은 ‘도’를 걷지 않고 천부적인 신통력을 수행했다. 다만 지금은 불문이 이 기회를 틈타 습격할 걱정은 할 필요 없었다. 도액이든, 아소라든 이 순간에는 자비가 충만했기 때문이었다.
“이 대자대비법상은 대윤회법상처럼 적군과 아군을 구분하지 않습니다. 광현 보살은 말썽꾸러기예요.”
허칠안 역시 불문 사람들의 상태를 주목했다.
“자네…….”
구미천호는 의아한 듯 그를 쳐다보았다. 눈앞의 이 조그만 어린아이는 ‘자비’의 영향을 조금도 받지 않은 듯했다.
동시에 그녀는 허칠안 손에 칼이 한 자루 늘어났음을 깨달았다. 가느다란 칼은 길이가 길고 어두운 금색을 띠었다.
지금 현장에 ‘대자대비법상’의 영향을 받지 않은 건 허칠안과 신수, 단 둘뿐이었다. 이에 의아해진 구미천호를 보고, 허칠안이 설명했다.
“자비는 제 도(道)가 아닙니다. 이것이야말로 제 도(道)이지요.”
허칠안이 손에 쥔 칼을 들어보였다.
구미천호는 칼자루에 가까이 있는 도신(刀身) 위치에 ‘태평’이라 새겨진 두 글자를 보았다. 그녀는 잠시 침음하다가 물었다.
“자네, 입명(立命)한건가?”
구미천호의 눈에는 숨길 수 없는 질투가 묻어났다.
입명은 유가 3품의 명칭으로, 입명에 대한 유가의 해석은 이러했다.
‘몸을 바로잡고 천명을 기다린다.’
입명과 ‘도(道)’는 길은 다르나, 이르는 곳은 같았다.
허칠안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탄식했다.
“네, 아마 몸에 국운을 짊어졌기 때문일 겁니다. 이름을 지을 때, 저도 영문을 모른 채 입명했습니다. 애초에 수련 경지가 아직 미천해 아는 게 많지 않았지요. 만약 다시 한번 더 한다면 이런 명을 세우지 않았을 겁니다.”
구미천호가 그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자네, 무슨 명을 세웠지?”
‘아마 색마나 기루에서 노래 듣는 걸로 세웠겠지……?’
허칠안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맞혀보시지요.”
그때, 신수의 배꼽이 갈라지더니 입이 되어 괴상한 웃음소리를 냈다.
“웅웅~ 대자대비? 나한테 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배꼽이 탈바꿈한 입이 갑자기 피의 화살을 내품었다.
“퉤!”
화살은 바로 대자대비법상에 명중했고, 순식간에 찬란한 금신을 더럽혔다. 3장 높이의 법상은 한순간 검붉은 핏빛으로 뒤덮였다.
광현 보살의 얼굴이 가벼운 경련을 일으켰다. 엄청난 고통을 받는 듯했다.
쿵! 쿵! 쿵…….
신수는 미친 듯이 내달렸다. 달빛 아래, 씩씩한 몸짓을 따라 힘이 충만하고, 근육이 울긋불긋했다.
하지만 신수의 목표는 광현 보살이 아니었다. 저 멀리의 성벽이었다.
쿵!
높이 솟은 성벽이 마치 수십, 수백 톤 폭약으로 인해 폭발한 듯했다. 충격파로 자갈은 탄환이 되어 사방팔방으로 발사되었다.
남쪽 성벽 위치에 10m 너비 가까이 되는 균열이 생겼다.
이제 요족 대군이 이 균열로 뛰어 들어가기만 하면, 단시간 내 남성을 공격해 만요산을 탈환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요족이든, 서역 수비군이든 이미 이 구역에서 물러난 지 오래였다. 먼 곳에서 서로 싸우거나 저 멀리에서 지켜만 보고 있었다.
무너진 성벽을 내려다보는 광현 보살은 분노하는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듯 ‘대자대비법상’을 거두었다.
허칠안은 줄곧 상대의 표정을 살피며 의중을 헤아리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마음에 한 가지 생각이 스쳤다.
광현이 ‘대자대비법상’을 시전한 진정한 의도는 성벽 위의 싸움을 멈추고, 하층 병사와 요족이 받은 신수 기운의 영향, 초조함과 착란에 빠진 정신을 완화시키는 것이었다.
소리 소문 없이 그림자가 광현 보살을 뒤덮었다. 그건 달빛을 가린 신수였다. 그는 어느새 다시 고공에 이르렀다.
마치 토끼를 후려치는 매 같았다.
배꼽에서 변한 입은 찢어져 섬뜩한 웃음을 지었다.
그때, 기울어진 땅에서 금빛 찬란한 형체가 발사되더니 신수를 날렸다. 무언가가 그와 뒤엉킨 채 뒹굴뒹굴 구르며 먼 곳으로 떨어졌다.
아소라였다.
견줄 데 없이 탁월한 힘으로 가득 찬 용맹한 신체와 영혼이 나뒹굴며 싸움을 벌였다. 손, 발, 팔꿈치, 무릎까지 신체 모든 부위가 신병이 되어 무시무시한 상처를 입혔다.
칵- 칵-
광현 뒤쪽 회전판이 움직이며 금빛을 투사해 아소라의 몸을 비추었다. 그의 미간에는 ‘만(卍)’자가 찍혔다.
한편, 더 이상 ‘대자대비법상’의 영향을 받지 않는 구미천호가 꼬리 8개로 땅을 받치고 서서 높이 도약했다.
그녀는 그대로 공중에 있는 광현 보살에게 달려들었다.
꼬리 여덟 개는 뒤에서 이리저리 구부러지며 흔들렸다.
괴이하면서도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아미타불!”
광현 보살은 즉각 몸을 굽히고 가부좌를 틀더니 양손을 합장했다.
그의 몸 표면에서 옅은 금빛이 피었다.
좌선공(坐禪功)!
땅! 땅! 땅…….
여덟 꼬리가 촉수처럼 광현 보살의 몸을 쳤고, 한차례 금빛이 넘실댔다.
이를 본 도액 나한은 목덜미에 걸린 염주를 떼어 가볍게 찢어발겼다.
염주 99알은 그의 주위로 떠올라 하나하나 오색찬란한 빛으로 물들었다.
“가라!”
도액 나한이 소매를 휘둘러 염주를 모조리 뿌렸다.
화려하고 찬란한 ‘폭우’는 밤하늘을 가르며 구미천호를 습격했다.
그러자 은발 미인의 그림자에서 소년이 뛰쳐나와 왼손의 칼과 오른손의 검을 휘둘러 빈틈없는 수호에 나섰다.
띵! 띵! 띵!
불꽃이 튀며 단번에 현란한 염주가 튕겨져 날아갔다.
‘대봉에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진국검을 이용해서 중생의 힘을 모을 수 있을 테고, 어쩌면 단검에 광현의 선공을 쪼갤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허칠안은 주변을 휙 둘러보았다. 염주는 벌레 떼처럼 한 바퀴를 돌더니 다시 옆에서 구미천호를 습격했다.
염주들은 살적의 힘을 머금고 있었다. 구미천호가 아무리 초범 무사라고 한들, 그것들이 멋대로 그녀의 몸을 치게끔 내버려 둘 순 없었다.
순간 부도보탑이 흔들리며 진옥의 힘이 확산되었고, 폭우처럼 조밀한 염주를 단숨에 제압했다.
‘광현 보살은 마마가 상대하고 있고, 아소라는 신수가 제압하고 있어. 지금이 도액 나한을 사로잡을 최적기야. 도액을 사로잡으면 내 마지막 봉마정도 풀 수 있어…….’
허칠안은 그림자에 녹아들어 도액 나한의 그림자를 뚫고 나왔다.
진국검은 휘황찬란한 검광을 터뜨리며 등을 기습 공격했다.
그러나 허칠안은 진국검으로 등을 찌를 수 없었다. 살생하면 안 된다는 불문의 계율이 그를 뒤덮은 것이다.
웅~
부도보탑이 흔들리더니 다시 진옥의 힘을 방출했다.
이는 계율의 힘을 상쇄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도액 나한에게 작용해 후속 대처를 제압하려는 것이었다.
이로써 허칠안은 도액 뒤쪽 그림자를 뚫고 나왔다.
허칠안은 검을 쥔 채 등을 찌를 계획이었으나 찌르지 못했다.
도액 나한 역시 그를 등진 채 아무 대응도 하지 않았다.
다음 1초, 계율과 진옥의 힘 시효가 지나갔다. 진국검은 방해받지 않고 확고부동하게 도액 나한의 등 가운데를 찔렀다.
도액 머리 뒤의 광륜이 빠른 속도로 회전하며 가사가 펄럭였다. 순간 무지개 같은 찬란한 빛이 밖으로 일렁였다.
이 거대한 힘에 허칠안이 밀려 날아갔다. 뒤이어 바람 부는 소리가 간간이 들려왔고, 99알 염주가 흐르는 불꽃처럼 발사되었다.
다른 한편, 신수는 한쪽 팔로 아소라의 목덜미를 잡고 공중에 들어 올린 채 괴상한 웃음소리를 냈다.
“웅웅~ 이 자식, 네 몸에 익숙한 기운이 있구나.”
아소라 머리 뒤의 화염 고리가 꺼지며 오색찬란한 광륜이 빛나기 시작했다. 눈빛에서는 금색 불길이 번뜩였다.
“살생하면 안 되는 법!”
계율은 효과가 없었다.
이에 그는 침착하게 가부좌를 틀고 선공을 시전했다.
삽시간에 몸 표면이 옅은 금빛으로 뒤덮였다.
처컥!
금빛은 금세 신수에 의해 자잘하게 부스러졌다. 좌선공은 효과가 없었다.
곧이어 아소라 주먹에서 오색찬란한 빛이 타올랐다. 그는 살적의 힘을 극치로 끌어올려, 바람처럼 주먹을 날려 신수의 가슴을 쳤다.
퍽!
엄청난 울림과 함께 주먹의 기운이 신수의 몸을 뚫었다. 세찬 바람과 거센 파도처럼 수백 장(丈)을 급습해 길가의 가옥, 성벽을 모조리 무너뜨렸다.
퍽! 퍽! 퍽…….
아소라의 주먹이 신수의 가슴에서 끊임없이 폭파했다.
주먹의 기운은 신체를 뚫고 지나가 신수 몸 뒤쪽 100장(丈) 범위의 불규칙한 진공 지대를 깨끗하게 정리했다.
“자네, 간지럽히는 건가?”
신수의 배꼽이 입을 떼고 의아한 어조로 물었다.
한순간 비처럼 촘촘한 아소라의 주먹이 살짝 굳은 채 정체되었다.
‘이렇게 얘기했어야지. 고 앙증맞은 솜 주먹으로 내 가슴에 노크 중인가?’
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허칠안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는 교만하지도, 조급해하지도 않고 도액 나한의 염주를 상대하고 있었다. 또 전혀 급급해하지 않고 웅왕과 좌우로 도액 나한을 견제하고 있었다.
여전히 3품과 2품의 격차는 매우 컸다. 더욱이 도액 나한같이 숙련된 2품이라면 더더욱 입댈 것도 없었다.
살적의 힘은 허칠안과 웅왕에게 엄청난 상처를 입힐 수 있었다. 거기에 불문의 각종 법술까지 더해졌다. 현재 가장 좋은 책략이 있다면 도액과 광현을 상대하지 않고, 신수가 아소라를 죽이길 가만히 앉아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신수가 아소라를 들어 올려 힘껏 내던졌다.
요란한 굉음을 듣고, 허칠안은 마치 유도탄이 폭발한 줄로 알았다. 발밑에도 격렬한 진동이 전해졌다.
잘 다져진 땅은 갑자기 가라앉으며 갈라졌다. 균열은 아래로 뻗어 나갔고, 만요산 내부의 암석이 갈라졌다.
아소라는 눈을 둥그러니 뜨고 목구멍에서는 피를 벌컥벌컥 내뿜었다.
둥! 둥! 둥! 둥…….
묵직한 심장박동 소리 사이로, 아소라의 피부에 어두운 금색이 벗겨지고 피부는 칠흑처럼 까매졌다.
이는 그가 자신의 수라 정혈을 더 이상 억누르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마음속의 전의를 방출한 그는 불굴의 전사이자 불패의 전신이자 또…….
펑!
신수가 아소라를 짓밟아 땅속으로 밀어 넣자, 산속의 암석이 점점 더 심하게 갈라졌다. 신수는 아소라를 밟는 동시에 한마디 중얼거렸다.
“아주 익숙한 기운이군. 네게 아주 익숙한 기운이 있어.”
흉골이 무너진 아소라는 끊임없이 객혈했다. 수라족 불굴의 전사 역시도 신수의 거대한 발을 버틸 수가 없었다.
아소라는 입을 씩 벌렸다. 잇몸은 이미 새빨개진 뒤였다.
붉은 입가에선 조롱의 한마디가 이어졌다.
“참 가엽군.”
신수는 흥분하고 분노한 듯했다. 그가 오른손을 들자, 손바닥에서 검붉은 덩어리가 솟아올랐다.
내핵은 칠흑같이 까맣고, 바깥층은 핏빛으로 뒤덮여 있었다. 칠흑같이 까만 내핵이 끊임없이 붕괴하며 검은 불꽃을 내뿜었다.
신수는 이 역량 덩어리를 움켜쥔 채 아소라의 머리 위를 세게 내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