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troke RAW novel - Chapter 999
996화. 통제 상실
붉은빛과 까만빛이 순식간에 폭발해 장막처럼 밖으로 퍼져나갔다.
쿵!
폭발과 함께 순수하면서도 난폭한 핏빛 폭우가 이어졌다.
주위의 무성한 숲이 마치 시든 풀처럼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허칠안, 웅왕, 구미천호까지 동시에 손을 떼고 신수 쪽을 돌아보았다.
신수는 역량으로 녹아버린 구덩이 안에 서 있었다. 왼손에서는 화학 연기가 발산되고 발 옆에는 훼손된 까만 시체가 있었다.
시체는 머리와 가슴이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죽었나?’
허칠안은 정신을 집중해 감지했으나 아소라의 원신은 포착되지 않았다.
초범경 무사의 생명력은 왕성했다. 육체에 난 상처가 아무리 몸서리칠 정도라 해도 단순 기혈을 소모할 뿐, 초범 무사를 정말로 죽일 수는 없었다. 잘린 사지가 다시 자라나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원신이 소멸되어 철저하게 사라진다면, 초범경 무사는 ‘불사’의 껍데기만 남겨놓고 완벽하게 죽을 것이었다.
각 체계에서 초범 무사를 죽이는 방법은 2가지밖에 없었다.
첫째, 끊임없이 타격을 주어 무사가 힘이 다할 때까지 기혈을 소모한 뒤 시체를 갈라 봉인한다.
둘째, 특수한 수단을 통해 무사의 원신을 뽑아낸 뒤 오랜 시간 연화를 거쳐 원신을 소멸해 죽인다.
그때 무사에게 남는 건 껍데기뿐이었다.
물론 무사의 원신을 뽑아내는 건 결코 쉽지 않았다. 이 방면은 도문과 주술사 체계만 시도할 수 있는데 꼭 성공할 수 있을 거란 보장도 없었다.
한편 아소라를 대하는 신수의 방식이라면, 순전히 위격상의 제압이었다.
기술적 함량은 조금도 없이 거칠고 단순했다.
‘이상하다. 신수의 그 수는 강대하긴 해도 물리적 측면의 공격으로는 아소라의 원신을 죽이긴 충분치 않은데…….’
이내 허칠안의 헐렁한 바지에서 검은 벌레가 빽빽이 뚫고 나와 사라졌다.
슉! 슉!
갑자기 좌측에서 염주가 습격해왔다. 상황과는 달리, 오색찬란하고 화려한 반딧불이 무리처럼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허칠안이 마침 검을 휘둘러 막으려는데 눈앞의 경물이 갑자기 변했다.
피로 물든 성벽, 나뒹구는 시체, 우뚝 솟은 산맥이 이유를 알 수 없이 사라졌다.
이를 대체한 건 빽빽이 늘어선 고층 건물, 철근 콘크리트의 산림, 끊임없이 오가는 차량……. 현대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그림이었다.
띵! 띵! 띵…….
날카로운 충돌 소리가 허칠안을 깨웠다. 그 순간 전생의 그림이 산산이 조각나고 다시 현실의 경물이 눈앞에 나타났다.
태평도와 진국검이 주인을 조종해 습격해오는 염주 일부를 막았다. 그리고 다른 일부는 웅왕이 발을 휘둘러 쳐냈다.
웅왕의 두 발이 피범벅이 되었다. 살적의 힘의 침식에 상처는 짧은 시간 내 아물기 어려웠다.
동시에 먼 곳의 구미천호가 손을 들어 아래로 눌렀다. 하늘에서 드높은 기기가 내려와 살적의 힘을 머금은 염주를 제압했다. 염주는 허공에 응고되어 아무리 흔들어봤자 끄떡도 하지 않았다.
“감사합니다!”
정신을 차린 허칠안은 웅왕을 향해 공수했다.
웅웅~
태평도가 진동하며 분노를 드러냈다.
전투 중에 정신이 나간 주인을 질책하는 것이었다.
‘넌 이미 성숙한 칼이니까 주인을 조종해 싸우는 법도 배워야지…….’
허칠안이 위로를 전하고 계속 아소라의 상황을 주시하려는데, 저 멀리 은발 미인이 웃으며 하는 말이 들렸다.
“자네 또 어려졌네. 정말 무시무시하군. 남강에 남아 내 아들이 되게.”
허칠안은 그제야 단단히 맨 바지통과 허리띠가 또 느슨해졌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의 나이는 다시금 세월을 거슬러 10살짜리 사내아이로 변했다. 기기와 기혈도 많이 쇠퇴했고, 전력 하락은 더욱 심각해졌다.
‘이건…….’
눈동자가 약간 움츠러든 허칠안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 계속 어려지는 겁니까?”
구미천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전음했다.
“앞으로 두 시진 동안 자네는 갓난아기가 될 때까지 계속 어려질 걸세. 이건 대윤회법상의 역전이네. 시계 방향으로 회전한다면, 목표 인물을 노쇠하게 할 수 있지.
하지만 자네도, 나도 그렇고 전부 전봉에 놓여 있지 않나. 우리 수명에 근거했을 때 시계 방향으로 회전해도 내일까지 노쇠하지 않을지 몰라. 하지만 역전한다면……. 자네가 초범이 되는 데 고작 얼마나 걸렸더라?”
허칠안은 다시 한번 9대 법상의 무시무시함을 깨달았다. 그것들은 공격에 능하지 않을지 몰라도 각자 신이를 지녀, 기이하고 헤아리기 어려웠다.
“윤회법상은 과거 일을 기억나게 할 수도 있습니까?”
허칠안의 물음에, 구미천호가 다시 전음으로 말했다.
“전설에 따르면 대윤회법상이 전생과 현세를 기억나게 할 수 있다고 하던데 진실인지 거짓인지는 모르겠네.”
곧 그녀는 고개를 돌려 신수를 향해 큰 소리로 상기시켰다.
“신수! 아소라의 정혈을 삼켜라.”
일을 질질 끌다가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었다.
아소라가 죽었든 죽지 않았든 그의 정혈을 삼키면 죽지 않아도 죽어야 했다. 아소라만 해결한다면 이 전투는 어떠한 이변도, 파동도 없을 것이었다.
동시에 10살짜리 사내아이와 아름다운 미인은 약속이나 한 듯 각자의 상대를 찾아 적을 붙들어 맸다.
“후후!”
신수는 괴상하게 웃으며 머리가 없는 아소라의 몸을 들었다.
후~
손바닥에선 회오리바람이 일더니 아소라의 생명력을 앗아갔다.
수라왕 막내아들의 칠흑같이 까만 신체와 영혼이 활기를 잃고 빠른 속도로 오그라들고 있었다. 두 눈으로도 확연히 볼 수 있을 정도였다.
바로 그때, 아소라의 칠흑같은 몸 표면에 ‘만(卍)’자가 빛나기 시작했다.
만(卍)자는 천천히 회전했고, 신수 뒤에선 아소라의 원신이 나타났다. 원신의 머리 뒤에는 금속 질감의 회전판이 있었다.
회전판 가운데는 ‘만(卍)’자가, 회전판 바깥 둘레에는 ‘천, 인, 축생, 아수라, 아귀, 지옥’이 새겨져 있었다.
대윤회법상!
칵- 칵- 칵!
회전판이 돌면서 그 위 ‘아소라’ 세 글자가 빛나기 시작했다.
금빛 한 줄기는 신수와 아소라를 그 안으로 비추었다.
그러자 신수의 건장한 몸이 갑자기 굳었다. 회오리바람이 사라지고 아소라의 ‘미라’는 땅으로 떨어졌다.
동시에 고공에 가부좌를 튼 광현 보살은 부스러기 빛이 되어 흩어졌다.
다음 순간, 광현 보살은 신수 앞에 나타났다.
그건 얼마 전 아소라 몸속으로 들어간 금빛으로, 바로 윤회법상의 힘이었다. 아소라의 근접전 편의를 빌려, 윤회법상의 힘이 신수를 뒤덮은 것이었다.
신수는 여전히 조각상처럼 굳어 있었다.
광현 보살을 직접 보고도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나는 누구인가…….’
신수의 가슴 속, 멍하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전해져왔다.
달빛 아래, 무너진 성벽과 곳곳에 널린 시체들.
쓸쓸한 달빛이 이 처참한 땅을 밝게 비추었다. 서역 수비군과 요족 대군이 떠난 이곳은 유달리 적막감이 진했다. 오직 신수가 중얼거리며 자문하는 소리 사이로, 불꽃이 반주하듯 서로 부딪히는 소리를 낼 뿐이었다.
윤회 회전판이 거대한 방전관처럼 천천히 움직였다. 발사된 금빛이 계속해서 신수를 뒤덮었다.
광현 보살은 양손을 합장하고 자비로운 얼굴로 말했다.
“근본이 없는 자여. 당신이 윤회에서 귀착점을 찾을 수 있길 바랍니다!”
허황되고 투명한 그의 형체는 곧 힘을 다 소모할 것만 같았다.
신수는 서서히 평정심을 되찾고, 주저하며 왼손을 세운 뒤 한 손바닥만 합장했다. 가슴에서는 평화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미…….’
갑자기 목소리가 뚝 끊겼다. 그는 모종의 본능, 불문에 귀의하려는 본능에 저항하고 있었다.
허칠안과 구미천호는 고개를 돌려 서로의 눈에 비친 경악의 빛을 보았다.
신수에 대한 대윤회법상의 영향은 그들의 예상을 완벽히 벗어났다.
허칠안은 방금 본 현대 도시를 떠올리며 뭔가를 짐작했다.
‘대윤회법상이 신수 과거의 기억을 불러일으키고, 불성을 각성시켰다고?’
그때, 갑자기 아소라의 머리 없는 시체가 벌떡 뛰어오르더니 공중에서 발을 들어 돌려차기를 했다.
탁!
걷어차인 공기가 폭발한 듯했다. 발끝에서 무시무시한 기기가 터져 나와 광현 보살의 몸을 갈기갈기 찢었다.
그 발로 분신의 힘을 철저하게 흩트렸다.
광현 보살의 탄식이 밤하늘에 메아리쳤다.
그에 따라 윤회 회전판이 금빛으로 뿔뿔이 흩어지고, 아소라의 원신은 몸속으로 되돌아왔다.
아소라의 잔구(殘軀)는 천천히 일어났다. 세포가 미친 듯 증식하고, 혈육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먼저 척추뼈가 자라나 목뼈를 보완한 후, 두개골은 경추골에서 자라났다. 골격이 다 자란 뒤엔 불그레한 혈육이 빠른 속도로 뒤덮였고, 다음은 칠흑같이 까만 피부였다.
그가 되살아난 뒤 제일 첫 번째로 한 일은 바로 몸속에 있는 시고 10여 마리를 잘게 부순 것이었다.
“잘했군!”
구미천호는 꼬맹이를 곁눈질하며 미소를 지었다.
아소라가 ‘죽은’ 뒤, 시체에 이상하리만큼 민감한 허칠안은 이를 기회라고 여겼다. 그는 즉시 시고의 자고를 분화해내 암암리에 아소라를 침식했다.
물론, 침식이 조종과 변화를 대표하진 않았다. 현재 시고의 경지로는 2품경의 시체를 완전하게 통제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를 조종해 단순 공격성 동작을 취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방금 광현 보살의 분신을 잘게 부순 발차기는 그렇게 탄생한 것이었다.
꼬맹이도 웃음으로 답했다. 지금 광현 보살의 분신이 흩어졌고, 아소라는 중상을 입었다. 이제 싸울 수 있는 건 오직 도액 나한뿐이었다.
윤회법상의 영향을 잃은 뒤에도 신수는 여전히 망연한 상태였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
그 순간, 구미천호가 소리 높여 말했다.
듣기 좋은 목소리가 사방으로 메아리쳤다.
“너는 신수이자 수라왕이다! 신수족 불굴의 전사!”
“수라왕…….”
신수는 약간 차분해졌다가 갑자기 또 중얼거리며 자문하기 시작했다.
“나는 누구인가, 수라왕은 누구인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미망한 혼잣말은 점점 거친 포효 소리로 변했다.
“내가 누구지?! 내가 도대체 누구냐고!”
구미천호는 연거푸 그가 신수이자 수라왕이라 말해줬지만 전혀 소용이 없었다.
그녀와 허칠안은 서로 눈을 마주쳤고,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신수는 통제를 잃은 상태였다.
허칠안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은발의 미인을 쳐다보았다.
“대윤회법상이 신수를 억제할 수 있습니까?”
은발 미인이 눈살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
“자네는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신수의 위격과 전투력이라면, 대윤회법상이 그를 약화시키고 영향을 미칠지는 모르겠지만, 완전히 억제하기는 불가능했다.
‘신수 그 자체에 문제가 생기지 않는 이상…….’
허칠안은 가슴이 철렁했다. 비로소 한 가지 일을 깨달았다.
만약 그날 아소라가 고의로 져준 게 사심에서 비롯된 거라면 대체 뭘 도모하려던 것인가.
광현 보살은 진짜 몸으로 요족을 일망타진하려던 게 아니었다. 신수의 잔구가 있다는 것을 아는데, 광현 보살은 왜 오늘 분신으로 강림한 것일까.
설마 분신 한 구와 2품 둘만으로 신수를 막을 수 있다고 자신해서? 허칠안과 구미천호, 웅왕까지 있는데?
그리고 지금 미친 듯 기세를 떨치는 신수를 보며 허칠안은 해답을 얻었다.
윤회법상은 그저 미끼로, 신수의 ‘광기’를 유발하려는 목적이었다.
그 이유까진 허칠안도 이해하지 못했다. 허칠안도, 구미천호도 사실 신수에 관해 아는 것이 너무 부족했다.
이 반보 무신을 가장 잘 아는 건 불문뿐이었다.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
무시무시한 광음이 만요산에 메아리쳤다.
다음으로 신수 몸속에서 갑자기 핏덩어리가 솟구치더니 빠른 속도로 팽창해 길가의 모든 사물을 삼켰다.
자리에 있는 초범 강자 다섯은 동시에 뛰어올라 쏜살같이 뒤로 물러났다.
핏빛은 직경 10장(丈)의 빛 덩어리로 팽창했다가 굉음과 함께 폭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