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word Sense RAW novel - Chapter 100
38화 정체불명의 시험 (3) >
-운휘!
-정신차려라. 운휘.
“부단주님!”
머릿속과 귓가를 울리는 목소리들.
눈을 떠보니 조성원이 나를 쳐다보며 안도의 숨을 내쉬고 있었다.
-어휴. 너 죽은 줄 알았잖아.
그렇네.
나도 의식을 잃을 때 설마 죽는 건가 싶었다.
하지만 마지막에 흐릿하게 들려오던 말을 듣고서 그게 아님을 깨달았다.
머리가 지끈거린다.
이마로 관통하는 그 기운은 예기와는 차원이 다른 무언가였다.
한 번도 겪어본 적이 없는 기운.
-쿵! 쿵!
심장이 빠르게 뛰면서 뜨거운 기운이 몸 전체로 도는 걸 보면 선천진기가 나를 빠르게 회복시켜나고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던 겁니까?”
조성원이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
그가 돌아보는 주변은 거의 반 이상 초토화되다시피 되어 있었다.
부서진 향로, 부서진 바닥, 부서진 벽면.
그 모든 것이 이곳에서 한 바탕 전투가 벌어졌음을 넌지시 알려주고 있었다.
나는 조성원에게 물었다.
“언제 깨어난 거야? 그리고 난 얼마큼 기절해 있던 거고?”
“하나만 물어보시죠. 아니 그런데 이럴 때마다 꼭 여쭤보고 싶었는데 사마 대주한테는 경어로 대우해주시고 저한테만 반말…”
“묻는 말에나 답하자. 거지.”
“에휴. 이건 무슨 남녀차별도 아니고. 아무튼……저도 막 깨어났습니다. 깨어나자마자 부단주님을 깨웠고요.”
남녀 차별은 무슨.
너도 사마영의 정체를 알고 나면 경어가 절로 나올 거다.
머릿속으로 소담검에게 물었다.
“얼마큼 기절했던 거야?”
-오래 안됐어. 한 이각 정도?
고작 이각?
정말 오래 되지 않았다.
조성원마저 금방 깨어난 것을 보면 해를 가할 생각이 없었던 듯 했다.
무림 맹주 무한제일검 백향묵.
대체 무슨 생각으로 나를 시험하고 유유히 사라진 것일까?
‘아!’
잠깐만.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고 보면 이곳에 나타났던 백향묵은 대장간 내부를 살피고 있었다.
그 말은 그 역시도 이 상황에 대해서 전혀 몰랐다는 의미가 된다.
‘그럼 장인이 스스로 사라졌다고?’
아니다.
이건 타인의 소행이다.
제 삼자가 장인을 납치한 게 틀림없었다.
며칠 동안 이곳에 들리면서 몇 차례 방문객이 있었으나, 장인은 그들을 모두 돌려보냈다.
그걸 보면 나 역시도 묵선의 모조검을 부쉈던 인연이 아니었다면 돌려보냈을 지도….
‘설마.’
그 순간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한 남자.
오혈성의 둘째 제자라고 했던 요업.
향로에 있던 모조검을 보았던 자는 오직 그뿐이었다.
‘백혜향?’
자연스럽게 방향은 백혜향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째서 그녀가 장인을 납치한단 말인가.
도무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유일하게 미심쩍은 부분은 백혜향이 지니고 있던 그 괴로워하던 검들과 모조 묵선검의 상태가 비슷하다는 점이었다.
“부단주님?”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바닥에 꽂혀 있던 소담검을 회수하고, 검집에 남천철검을 집어넣은 후에 조성원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뭔가 있어.”
“뭐가요?”
이건 말해두는 편이 나을 것 같다.
“우리를 이렇게 만든 자는….”
-흠칫!
나는 하던 말을 멈추고 대장간의 입구 쪽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전혀 예상지 못한 인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죽립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지만 턱선과 입술이 드러나면서 누군지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바로 백혜향이었다.
그런데 더 당혹스러운 것은 백혜향의 뒤에 사마영이 따라 들어오고 있었다.
“이거 꽤 재미있는 일이 있었나봐?”
백혜향이 입 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나는 이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어서 사마영을 쳐다보았다.
사마영이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라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 * *
불과 반 시진 채 되지 않았을 무렵.
사마영은 속으로 투덜거리면서 등정 객잔으로 향하고 있었다.
‘눈치 없는 거지. 칫.’
적당히 빠져줬음 오죽 좋았겠나 싶었다.
덕분에 단 둘이 있을 수 있는 기회를 빼앗겨서 아쉬운 그녀였다.
그래도 다시 동파육을 먹을 생각에 기분은 좋아졌다.
객잔의 입구에서부터 나는 동파육 특유의 팔각향이 코를 자극하며 군침이 돌게 만들었다.
객잔에 들어가 포장 주문을 했는데 다행히 재고가 남아있었다.
“준비하는 동안 기다려주십쇼.”
점소이가 가고 나서 그녀는 객잔의 기둥에 기대서 기다리려 했다.
사람들이 먹는 모습을 구경하던 그녀는 묘한 시선을 느꼈다.
‘……..’
객잔의 일층에 있는 몇 명이 자신은 몰래 힐끔 쳐다보고 있었다.
여러 손님들도 많은데 왜 자신을 쳐다볼까?
심지어 인피면구를 하고 있어서 원래의 얼굴도 아닌데, 그 시선이 마음에 걸렸다.
‘…….조용해.’
그러고 보니 평소와 달리 윗층이 조용했다.
아직까지 초저녁이라 객잔에 손님이 바글거려야 했다.
그런데 윗층이 상당히 조용하다.
신경을 끌까 싶었는데 자신을 살펴보는 시선에서 불쾌감을 느낀 그녀는 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마영은 조용히 윗층으로 올라갔다.
2층에는 평소처럼 자리가 가득 차 있었다.
한데 2층의 손님들은 동파육을 먹고, 술을 마시면서도 조용조용한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
그런데 한 가지 더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그녀가 올라왔는데 근방의 탁자에 있는 손님들도 그렇고 전혀 눈길 하나 주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이 더 부자연스럽게 느껴질 정도였다.
의아해하고 있는 사마영의 눈에 누군가가 띄었다.
창가 쪽에 유일하게 혼자 탁자에 앉아서 술을 홀짝 거리며 동파육에 젓가락을 가져가고 있는 청년이 보였다.
탁자의 한쪽에 올려져 있는 죽립.
그리고 왜소한 체구.
사마영이 쳐다보자 탁자에 있는 청년이 그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2층에 있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시선을 전혀 피할 생각이 없는지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사마영은 천천히 창가 쪽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창가 주변의 탁자에 앉아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움직였다.
사마영이 피식하고 웃었다.
그리고 탁자로 다가가 혼자 앉아 있는 청년의 앞에 턱하고 앉았다.
-팍!
그 순간 주변에 있던 자들의 손이 각자의 병장기로 향했다.
동파육을 씹으면서 맛보고 있는 청년이 손을 들었다.
신기하게도 주변에 있던 자들이 병장기에서 손을 떼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청년이 입을 열었다.
“그럭저럭 먹을 만하네.”
목소리가 여자의 것이 흘러나왔다.
사마영의 눈에 이채가 띠였다.
청년이 입가심을 하듯이 술잔을 들이키더니 잔은 내려놓고서 말했다.
“너. 소운휘 밑에 있던 걔 맞지?”
“당신은 그 여자일 테고요? 이름이 백혜향이라고 했던가요?”
-팍!
“감히!”
탁자에 있던 자들 중 누군가가 격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에 청년이 쳐다보지도 않은 채 입을 열었다.
“앉아.”
“하나…..”
“앉으라고 했다.”
경고를 받은 누군가가 몸을 살짝 파르르 떨더니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가 앉고 나자 청년이 물었다.
“어떻게 알았지?”
“남자에게서 날 법한 향이 아니거든요.”
“향?”
그 말에 청년이 자신의 옷 냄새를 킁킁 거리며 맡았다.
그리고는 어처구니없다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게 맡아져?”
“제가 코가 좀 예민해서 말이죠. 그리고 팔각향 사이로 흘러나오는 이 향이 맡아지지 않을 리도 없고. 남자의 향치고 야시시하잖아요.”
청년의 눈매가 날카롭게 가늘어졌다.
“재밌네. 너.”
목소리에 미묘하게 살기가 베여있는데도 사마영은 전혀 기가 죽지 않았다.
오히려 할 말을 고스란히 입으로 내뱉었다.
“피 냄새가 그런다고 가려지나요?”
“그렇네. 하도 몸에 배서 좀 죽이려고 했는데.”
그 말과 함께 청년이 자신의 귀밑의 피부를 잡고서 거칠게 뜯어냈다.
그러자 그 속에 감춰져 있던 진짜 얼굴이 드러났다.
그녀는 바로 백혜향이었다.
“인피면구가 아깝지 않나봐요.”
“한 번 들킨 인피면구를 뭐 하러 쓰겠어. 그리고 여분이야 넘쳐나지. 한데 말이야. 나도 너 같이 잘생긴 남자는 싫어하지 않는데……그 눈빛은 마음에 안 드네.”
-팟!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백혜향의 수도가 사마영을 찔러왔다.
얼마나 쾌속했는지 육안으로 놓칠 정도였는데, 놀랍게도 사마영은 자리에 앉아서 그 손을 그대로 잡아냈다.
수도를 잡아내자 백혜향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심지어 주변 탁자에 앉아 있는 자들조차도 놀랐는지 눈이 휘둥그레졌다.
“막아?”
백혜향의 입 꼬리가 비릿하게 올라갔다.
그 눈빛이 호승심으로 물들고 있었다.
“막으면 안 되나요?”
백혜향의 시선이 사마영의 손으로 향했다.
그녀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손바닥의 굳은살이 많긴 한데…..손이 좀 곱상하네?”
-팟!
백혜향의 왼손이 사마영의 얼굴로 뻗어왔다.
얼굴에 닿으려는 순간 사마영이 탁자를 위로 걷어찼다.
탁자의 목판 일부가 갈라지며 위로 튀어나와 백혜향의 턱밑으로 날아왔다.
백혜향이 좌수의 방향을 틀어 이를 내리쳤다.
-탕!
목판이 으스러지며 힘없이 떨어졌다.
그와 동시에 강한 반탄력이 생겨나며 백혜향의 우수를 잡고 있던 사마영의 오른손이 튕겨졌다.
-파파파파팍!
순식간에 두 사람의 손이 부딪쳤다.
얼굴로 향하는 손과 이를 막으려는 손 간의 대결이었다.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격렬하게 부딪치던 손 간의 대결은 백혜향의 승으로 돌아갔다.
백혜향의 손에 반쯤 찢겨진 인피가 쥐어져 있었다.
사마영이 반쯤 붙어있던 남은 인피면구를 스스로 떼어냈다.
“하!”
백혜향이 코웃음을 쳤다.
그녀의 얼굴을 보고서 상당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반면 인피면구가 찢겨나가면서 드러난 절세가인이 얼굴에 주위 탁자에서 지켜보던 사내들의 눈이 달라졌다.
“계집도 달고 다니네.”
“본인 것은 본인이 챙겨야죠.”
백혜향의 그 말에 사마영이 당돌하게 받아쳤다.
“본인 것?”
“점찍은 건 빼앗기지 않는 주의라.”
그 말에 백혜향의 눈동자에 더욱 살기가 감돌았다.
“나랑 비슷하네. 나도 점찍은 건 꼭 가져야 하는 주의거든.”
“뜻이 통했네요.”
“목숨이 두 개라도 되나봐. 내 앞에서 이렇게 입을 나불대고 살아서 걸어간 사람이 몇 안 되거든.”
“제가 그 몇 안 되는 사람이 포함되겠네요.”
“어째서?”
“당신도 혈마검을 노린다면서요? 무림 연맹의 성 앞에서 그것도 이렇게 유명한 객잔에서 소리 소문 없이 절 제압할 자신이 있나요?”
사마영의 도발에 백혜향이 표정이 묘해졌다.
뭔가 불쾌하거나 기분이 나쁘다기보다는 흥미로운 표정에 가까웠다.
“실력에 자부심이 있나봐?”
“한바탕 난리칠 수 있을 정도는 되죠.”
“한 번 시험해보겠어? 네가 난리치기 전에 죽을지, 아니면 난리를 쳐서 나를 곤란하게 만드는 게 먼저일지?”
“그것도 재미있겠네요. 한데 그럴 생각이었다면 진즉에 저를 공격했겠죠?”
사마영이 싱긋하고 웃었다.
그 초승달을 그리는 눈매는 매력적이기 짝이 없었다.
이를 본 백혜향이 묘한 표정을 짓더니 혀로 자신의 윗입술을 핥았다.
그것이 야릇해 보이기까지 했다.
사마영이 미간을 찡그렸다.
“너 좀 매력 있네.”
“……..그쪽으로도 관심 있나 봐요.”
“글쎄.”
이도저도 아닌 대답이었지만 그것이 일말의 긍정처럼 들렸기에 사마영은 속으로 몸서리를 쳤다.
“저는 관심이 없다고 말씀드릴게요.”
백혜향이 피식하고 웃었다.
그리고 자리에 앉아 술잔에 술을 따르며 말했다.
“재밌네. 그래. 하고 싶은 말이 뭐지?”
“…….”
“굳이 모른 척 할 수 있는데, 위험까지 무릅쓰고서 내게 접근한 이유가 있을 거 아냐?”
백혜향의 말에 사마영은 속으로 생각했다.
생각보다 만만치 않은 여자라고 말이다.
하지만 이내 속내를 털어놨다.
“부단주님께서 전달해드리려고 하는 정보가 있거든요.”
백혜향의 한 쪽 눈썹이 위로 치켜 올라갔다.
“소운휘가?”
* * *
사마영의 간략한 전음으로 된 설명에 나는 인상을 찡그렸다.
우연히 등정 객잔에 백혜향이 있는 것을 보고서 데려왔다고 하는데, 얼굴에 인피면구까지 뜯어진 것을 보면 뭔가 그 사이에 일이 있었던 것 같다.
백혜향이 내게 말했다.
“할 말이 있다고 들었는데?”
그렇게 물으면서도 시선은 대장간 내부에 부서진 흔적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렇습니다.”
“그새 생각이 바뀌었어?”
그녀가 혀로 입술을 매만지며 유혹하듯이 물었다.
이에 빠르게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그런 게 아닙니다.”
“그럼 뭐 하러 날 보자고 한 거지? 이대로 잡혀가고 싶은 것은 아닐 테고?”
“단도직입적으로 묻죠. 닷새 후에 혈마검이 무림 연맹에서 무당으로 옮겨진다는 정보 들은 적 있습니까?”
그런 나의 물음에 백혜향이 미간을 찡그렸다.
그녀의 반응을 보니 역시나 그 정보를 들은 모양이었다.
역시 무림 연맹의 일군사 제갈원명이었다.
나 하나만이 아니라 이 참에 조금이라도 수상한 자가 있다면 모조리 일망타진할 계획이었나 보다.
“그 정보 신뢰하십니까?”
“5할 정도.”
“5할?”
“그런데 지금 네 말을 듣고서 1할로 내려갔어.”
그녀의 말에 나는 내심 탄성을 흘렸다.
함정이라는 말을 직접적으로 꺼낸 것이 아니었는데, 내가 알고 있다는 사실만을 듣고서 신뢰성이 떨어지는 정보라고 단번에 판단한 것이다.
백혜향이 날 보며 입 꼬리를 올리더니 말했다.
“내게 그걸 알려주고 싶어서 보자고 한 거야?”
“그렇습니다.”
“어째서?”
“아가씨 측과 이쪽은 한 몸뚱어리나 다름없으니까요.”
“잘 이해하고 있네. 역시 마음에 들어.”
탐욕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는데 굉장히 부담스러웠다.
이래서 접촉하는 것이 꽤 껄끄러웠다.
백혜향이 주변에 부서진 흔적들을 향해 고개를 스윽하고 돌리더니 내게 물었다.
“누구랑 이렇게 격렬하게 대화를 나눈 거지?”
그녀의 물음에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무한제일검.”
그 말을 듣자 그녀의 표정이 지금까지와 달라졌다.
“…….무림 맹주와 손을 섞었다고?”
나는 백혜향을 쳐다보고서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누구 덕분에 말이죠.”
끝
ⓒ 한중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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