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word Sense RAW novel - Chapter 101
38화 정체불명의 시험 (4) >
누구라고 모호하게 표현했지만 가리키는 대상은 분명했다.
그런 나의 말에 오히려 조성원이 이래도 되는 건가 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상대는 백혜향.
혈교의 두 교주 후보 중 한 사람이다.
그 심기를 건드리면 어떻게 나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응은 다행히도 나의 예상에 가까웠다.
무림 맹주 백향묵과 손을 섞었다는 말에 잠시 놀라워하던 백혜향의 붉고 앵두 같은 입술이 뭐가 그리 즐거운지 실룩거렸다.
“운이 좋네. 맹주와도 부딪치고. 부러운걸.”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에 나는 등골부터 소름이 올라왔다.
호승심이 아니라 그녀는 진지하게 말하고 있었다.
무림의 정점이라 불리는 팔대고수를 상대로 전의를 불태우고 있는 건가?
“그런데 놈에게서 재미를 본 게 왜 나라고 생각하는 거지?”
“장인이 없어졌으니까요.”
“장인이 없어진 것이 나와 무슨 관계인데? 설마 단순한 직감?”
그녀가 시치미를 뗐다.
“정황상이라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어떤 정황?”
나는 부서진 커다란 향로를 눈짓으로 가리켰다.
“저것을 본 자가 아가씨 밑에 있던 자거든요. 오혈성의 제자라고 했던가요. 그와 저 이외에 향로 안에 들어있던 그 검들을 본 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런 나의 말에 그녀가 빙그레 웃었다.
그리고 가까이 다가오며 말했다.
“아아. 들켜버렸네.”
“…….”
애초에 숨길 생각 따윈 일체 없어 보였다.
이렇게 쉽게 밝힐 줄은 몰랐다.
정파 무림의 성지이자 무림 연맹의 코앞, 심지어 맹주가 직접 의뢰까지 하고 주기적으로 살피고 있는 장인을 납치하다니 정말 대담함을 넘어서 오만하기마저 하다.
“…….뒷수습이 가능하시겠습니까?”
어차피 본인이 한 짓이라 밝혔으니 굳이 돌려서 말할 이유가 있겠는가.
그녀는 지금 무림 연맹의 맹주의 꼬리를 밟고 서있다.
논무가 시작되기도 전에 사달이 날 수 있다.
“뒷수습을 왜 해?”
“맹주가 장인을 찾으려 들 겁니다.”
그런 나의 말에 그녀가 피식하고 웃으며 말했다.
“대놓고 못 찾아.”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그것까진 몰라도 돼.”
하긴 그것까지 이야기 해줄 리야 없겠지.
하지만 짐작 가는 것이 있다.
아마도 그 모조 묵선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천기로 보았던 그 검신이 붉게 물들면서 금이 가는 현상이 마음에 걸렸다.
“그보다 나도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말이야.”
“……어떤 것을?”
백혜향이 고개 짓을 하며 사마영을 가리켰다.
“얘까지는 마음에 드니까 받아줄게.”
“……..”
입에 물을 머금고 있었다면 순간 뿜을 뻔 했다.
이걸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난감해 하고 있는 오히려 사마영이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누가 누굴 받아준다고요?”
“너는 마음에 들거든. 셋이 같이 밤을 즐겨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쿨럭.”
눈치를 보고 있던 조성원이 사레들린 사람처럼 기침을 해댔다.
얼굴까지 빨개져서 어쩔 줄 몰라서 시선을 회피하고 있었다.
“농이 지나치십니다.”
그런 나의 말에 백혜향이 혀로 윗입술을 핥으며 말했다.
“농 같아?”
아. 혼란스럽다. 혼란스러워.
그 와중에 사마영도 얼굴을 붉히고서 당혹스러워하더니 말까지 더듬으면서 화를 냈다.
“누. 누가 당신이랑 밤을 즐긴다는 거에요!”
“순진한 척 하는 거지?”
“아니거든요!”
“재미없네. 난 순진한 거 싫은데.”
“까진 것 보다 낫거든요.”
-놀리는 것 같지?
소담검의 말대로 사마영이 말려들고 있었다.
사마영도 만만치 않은 여잔데 그녀를 저렇게 놀리는 걸 보면 정말 보통이 아니다.
그냥 내버려두면 그녀의 놀림이 계속 될 것 같기에 끼어들었다.
“……말씀처럼 대놓고 못 찾는다고 해도 계속 여기서 있으면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그런 나의 말에 백혜향이 말했다.
“왜 추적이라도 들어올 까봐?”
“같이 죽자는 게 아니라면 이쯤에서 해산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항상 퇴로를 준비하는 구나. 너는.”
“살아야 하니까요.”
“솔직하네. 뭐 좋아.”
백혜향이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리고는 내게 던졌다.
가죽에 감싸져 있던 것이었는데, 풀어보니 손잡이가 없는 단검 날이 들어 있었다.
“그거 네 거라지?”
‘아…..’
장인이 만든 그것인 듯 했다.
‘이렇게 만들었구나.’
단검의 날은 소담검에 덧씌울 수 있도록 제작되었다.
그래서 소담검에 검병 위쪽에 구멍들을 내서 끼워서 고정할 수 있도록 만든 모양이다.
이걸 갖고 있는 걸 보니 납치의 범인은 그녀가 확실해졌다.
“이걸로 빚은 없다. 다음에도 성 밖에서 마주치면 이렇게 그냥 보내는 일은 없을 거야.”
“…..?”
백혜향이 죽립을 눌러쓰고서 몸을 돌렸다.
껄끄러운 일이 벌어질 거라는 예상과 다르게 그녀는 화통하게 나왔다.
그저 제멋대로이고 포악스럽다고만 여겼는데, 생각보다 그녀의 그릇은 컸다.
밖으로 나가려던 그녀가 잠시 멈춰 서서 말했다.
“맹주의 추적자는 이쪽에서 처리할 거지만 네게 정보를 흘린 자에 관한 건 알아서 처신해야 할 거야.”
“……..”
“나라면 함정을 파놓고 아무도 걸려들지 않아도 의심이 커질 테니까.”
그 말을 마지막으로 백혜향은 대장간을 홀연히 나가버렸다.
그런 그녀를 보면서 조성원이 혀를 내둘렀다.
“쉽지 않겠는데요.”
내가 하고 싶은 말이었다.
무림 맹주, 총군사 제갈원명, 백혜향마저 얽힌 이 판국에서 과연 혈마검을 무사히 탈취할 수 있을지 한 치 앞을 살피기가 어려워졌다.
* * *
어두운 골목에 추격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복면을 쓴 두 명이 도망을 가고 있었고, 이를 죽립을 쓴 무사들이 뒤쫓고 있었다.
한참을 도망가던 복면인들의 앞을 죽립의 무사들이 가로막았다.
지붕으로 도망치려고 했지만, 지붕 역시도 무사들이 막고 있는 바람에 퇴로는 전부 막혀버리고 말았다.
죽립을 쓴 자들 중에 한 사람이 걸어 나왔다.
“도망갈 시도는 버려라. 네놈들이 납치한 장인은 어디에 있지?”
“…….”
입을 다물고 있는 복면인을 보며 죽립의 남자가 혀를 찼다.
“쯧쯧. 그래. 쉽게 열지 않겠지. 제압해라.”
남자의 명이 떨어지자 죽립인들이 그들을 덮치려고 했다.
그 순간 복면인들이 고함을 외쳤다.
“무쌍성은 원한을 잊지 않고 있다!”
“뭣?”
외침과 함께 복면인 두 사람이 들고 있던 병기로 자신들의 목을 그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막아볼 틈도 없었다.
“이런…..”
쓰러진 그들을 보며 죽립인들을 통솔하는 남자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들이 무쌍성을 거론하면서 자결할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
늦은 저녁이었지만 외침 소리에 어느새 인근으로 사람들이 몰려드는 기척이 느껴졌다.
입술을 질끈 깨물던 남자가 명했다.
“시신을 가지고 철수한다.”
“충!”
죽립인들이 서둘러 복면인들의 시신을 챙겨서 황급히 자리를 피했다.
* * *
조성원이 들려주는 말에 나는 물었다.
“어디서 들은 거야?”
“성내 소문이 파다하게 났습니다.”
“거기까지 가서 아침 식사를 하고 온 게 이런 이유에서였냐?”
“사람이 많은 곳일수록 정보를 얻기 좋으니까요.”
나는 녀석을 보면서 혀를 내둘렀다.
상(上)급 객당의 경우 시종들이 방으로 식사를 가지고 온다.
그런 반면 중소문파들이나 무가들은 워낙 인원이 많기에 객당의 대형 식당을 이용한다.
“귀동냥을 하기 좋더군요.”
개방 출신이 아니랄까봐 대단한 녀석이었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아침부터 어딜 가나 싶었더니 정보를 모으고 다녔다.
맹주부터 백혜향까지 엮인 것이 불안했는지, 제 살길을 알아서 잘 모색한다.
“무쌍성은 원한을 잊지 않고 있다라……”
나는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대체 어떤 식으로 맹주의 추적을 따돌리나 했더니, 이런 묘수를 썼을 줄이야.
다른 이들은 모르겠지만 나는 이것이 백혜향의 수라고 확신했다.
-속아 넘어가겠어?
‘속이는 게 목적이 아니야.’
-그럼?
‘혼란을 가중시키는 거지.’
그 외침과 함께 핏자국들이 남아 있었다고 했다.
예상이 맞다면 아마도 혼란을 가중시키는 정보를 고의적으로 내뱉고 자결을 했을 것이다.
종종 적에게 잡힐 위협이 생기면 첩자들이 써먹는 방법이다.
제 삼의 세력으로 시선을 돌리게 만드는 것이다.
9할로 믿지 않더라도 1할의 미심쩍음 때문에 혼란을 주게 된다.
‘확실하게 누가 납치했는지 모르는 상황이니까 혼선은 제대로 줬네.’
대신 이 방법은 희생이 불가피하다.
수하들을 이런 식으로 소모성으로 써먹다니, 참 무서운 여자다.
-그건 백련하도 마찬가지지 않아?
…….하긴. 도긴개긴이다.
그녀 역시도 육혈곡을 탈출할 때 이목을 끄는 역할로 몇몇을 희생시켰으니까.
이게 지극히 혈교, 아니 사파다운 방법이긴 했다.
희생까지는 모르겠지만 나라도 이런 식으로 시선을 돌리게 했을 것 같긴 하다.
-왜?
백혜향의 수는 맹주가 보낸 추적자들의 시선을 피하는 것만이 목적이 아니다.
무림 연맹과 무쌍성 사이에 더욱 파문을 주는 게 목적이다.
안 그래도 동맹이 파기된 마당에 이런 식으로 계속 불을 지펴주면 무슨 사달이 벌어질지 누구도 모를 일이다.
-약았네. 약았어.
이걸 약았다고 볼 수 있을까?
아무튼 백혜향을 신경 쓸 때가 아니다.
“어디 가십니까?”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조성원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일군사부.”
“네?”
그녀의 말대로 나도 강구한 대책으로 의심을 피해야 하지 않겠나.
* * *
근 반 시진이 넘게 기다려서야 나는 일군사인 제갈원명을 만날 수 있었다.
아침부터 업무 때문에 바빠서 그런가 싶었는데, 무림 연맹 내에 긴급 회의가 있어 제갈원명이 늦게 일군사부로 복귀해서였다.
아마도 예상에는 어젯밤에 그 사건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추측되었다.
나를 보자마자 제갈원명이 물었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네. 회의가 생각보다 길어졌네. 대회와 후기지수 논무가 코앞이라 그런지 많이 바쁘네. 그려. 용건만 간단히 말해줄 수 있겠나?”
말투를 보면 정말로 바빠 보였다.
내일부터 후기지수 논무가 시작되니 당연한 걸지도 몰랐다.
나 역시도 차를 마시면서 괜히 오래 말을 섞는 것보다야 그게 나았다.
나는 곧바로 본론을 꺼냈다.
“요전에 군사께서 말씀하신 것이 떠올라서 찾아뵈었습니다.”
“내가 말한 것? 그게 무언가?”
“후기지수 논무에 출전하여 혈교의 세작을 간별 해달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 말을 들은 제갈원명이 급격히 관심을 보였다.
“그렇게 말했지.”
“무림 연맹 소속이 아님에도 이런 말씀을 드려도 될지 조심스럽습니다.”
나는 일부러 망설이는 모습을 보였다.
원래 이런 식으로 운을 떼야 상대의 흥미를 끌 수 있는 법이다.
제갈원명과 같이 머릿속에 천 마리의 구렁이가 들은 자에게 통할 기술은 아니었지만 그냥 꺼내는 것보단 효과적이다.
제갈원명이 물끄러미 쳐다보다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그게 무언가? 어려워하지 말고 이야기해보게. 정파의 앞날을 책임질 젊은이의 의견을 어찌 가벼이 여기겠는가.”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어서 말해보게.”
“그때 혈교의 세작들이 노리는 바 중에 혈마검도 포함되어 있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제갈원명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눈빛이 마치 나를 관통하는 것 같다.
긴장된다.
무공을 떠나서 혜안이나 지혜만으로 경지에 이른 제갈원명이기에 작은 말실수로도 파고들 여지가 생긴다.
나를 빤히 쳐다보던 제갈원명이 입술을 뗐다.
“……그래. 그렇게 이야기했지.”
“그런데 논무에서 색출하는 것보다 차라리 이렇게 하면 더욱 쉽게 세작들을 잡아낼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게 무슨 소린가?”
“조금이라도 수상한 자를 색출하여 정보를 흘리는 겁니다.”
“……정보를 흘려?”
나의 그 말에 제갈원명의 표정이 묘해졌다.
이를 개의치 않고 말을 이어갔다.
“그렇습니다. 가령 저들이 원하는 혈마검이 옮겨지는 시기와 장소를 흘리는 거죠.”
“호오.”
“이때 중요한 건 이것이 가짜 정보여야 합니다.”
“가짜 정보?”
“굳이 모험을 걸 필요가 없으니까요.”
“흥미롭군. 계속 이야기 해보게.”
“이렇게 가짜 정보를 흘리면 분명 혈교의 세작들이 움직이게 될 겁니다. 그들의 목적 중 하나가 혈마검이라면 더더욱 말이죠.”
제갈원명의 눈가의 주름이 미세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표정에는 변화가 없으나 내가 자신의 계책을 그대로 읊고 있으니, 반응을 아무리 감추려고 해도 드러날 수밖에 없을 거다.
“그래서?”
나는 호기로운 목소리로 주먹과 손바닥을 모으며 말했다.
“이때 그들을 추포하는 겁니다. 운이 좋으면 한 번에 혈교의 세작들을 대거 일망타진 시킬 수 있는 기회가 아니겠습니까?”
“……..”
말이 끝났는데 제갈원명은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데,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잠시 후 제갈원명이 내게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하하핫. 이 어찌 훌륭한 계책인가. 오늘처럼 호종대 대협이 부럽게 느껴지는 날도 없을 걸세.”
“과찬이십니다.”
제갈원명이 웃는 얼굴로 내게 말했다.
“사실 본 군사 역시도 같은 생각을 했다네. 자네 같은 전도유망한 젊은이가 있으니 이 정파의 미래도 어둡지만은 않네. 그려.”
다행히 통한 것 같다.
이로써 함정에 아무도 걸려들지 않더라도 적어도 그 정보의 유출은 나일 거라고는 의심하기 어려울 것이다.
누가 단검이 자신들의 정보를 엿들었을 거라 짐작할 수 있겠는가.
* * *
소운휘가 집무실을 나가고 얼마 후, 제갈원명이 곁에 있는 중년의 호위무사에게 말했다.
“지금부터 일군사부의 모든 보안을 다시 재구축한다.”
중년의 호위무사가 인상을 찡그리며 물었다.
“……정보가 내부에서 유출되었다고 보십니까?”
“3할 확률로.”
“알겠습니다. 집무실의 호위무사들과 일군사부의 주요 인력을 제외하고 전부 교체시키겠습니다. 나머지 7할은 어디로 보시는지?”
“북영도성과 그 제자에게도 사람을 붙여라. 일거수일투족 절대 놓치지 말도록.”
의심의 화살은 예기치 못한 곳으로 불똥이 튀었다.
하지만 그것이 다가 아니었다.
“명대로 하겠습니다.”
호위무사가 물려나려 하자, 제갈원명이 이를 제지했다.
“잠깐.”
“……?”
“소운휘에게도 사람을 붙여라.”
“의심의 여지가 있는 겁니까?”
“조금도 여지가 없는 게 일 푼 정도 걸리는군.”
일할 보다 확연하게 줄어들었다.
아주 미약한 의심이다.
하지만 그 작은 미약함도 놓칠 수가 없는 것이 군사의 소임이었다.
“알겠습니다. 사람을 붙이겠습니다.”
“만약 확실히 이쪽 사람이라면…..”
“이라면?”
“맹주께 아뢰어 후임 군사로 키워보고 싶구나.”
“아아!”
끝
ⓒ 한중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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