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word Sense RAW novel - Chapter 102
39화 1차 예선전 (1) >
“오라버니!”
일군사부를 나와 숙소로 돌아왔는데 뜻밖의 손님이 와있었다.
바로 누이 동생인 소영영이었다.
지금까지 형산파의 일정 때문에 바빠서 보지 못했는데, 본인이 직접 찾아올 줄이야.
말이 속가제자이지 형산여협의 수제자로 소문이 나서 그런지 정도 무림 지회부터 용봉 지회라던가 그런 모임까지 참여하느라 얼굴을 보기가 힘들었었다.
“흠흠.”
나의 헛기침에 영영이가 슬그머니 사마영에게서 떨어졌다.
아직도 여자인 것을 모르나보다.
다 큰 처자가 저렇게 자기감정을 숨기지 못해서 달라붙어서야.
-뭘. 그래. 사마영도 너한테 그러는데.
그래.
사마영도 은근히 내게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한다.
하지만 이건 다르지 않나.
영영이와 사마영은 같은 여자라고.
-그럼 이야기 해줘. 인피면구를 확 벗겨버리던지.
‘…….’
그럼 상황이 제대로 복잡해지겠지.
나도 사실을 밝히고 싶지만 지금은 시기상조였다.
영영이를 확실하게 지켜줄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된다면 사마영이 여자이든 아니면 내가 그 동안 겪었던 일들을 밝힐 수 있겠지.
그때까지는 모르는 편이 영영이의 신상에도 좋다.
지금 당장에는 형산파가 이 아이의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어서 그게 안심이다.
“모쪼록 왔는데 점심이나 할래?”
“아……그게 오늘 점심은 용봉지회의 사람들과 하기로 약속이 되어 있어. 얼굴이라도 보러 온 거야.”
겉보기에는 괄괄해 보여도 영영이는 사교성이 좋다.
심지어 사람들을 잘 이끌어나가서 회귀 전에 봉황당의 부당주로 명성을 날리기도 한다.
못난 오라버니보다 나은 아이다.
“이야. 많이 바쁜데.”
“지금 놀리는 거지?”
“놀리기는. 누이 동생이 잘 나가는데 싫어할 오라버니가 어디 있겠어.”
“웃기시네.”
통통 튀는 말투는 여전하네.
대화를 나누고 있는 우리를 조성원이 흡족한 얼굴로 쳐다보고 있었다.
누가 보면 네가 우리 남매의 부모님인 줄 알겠다.
그런데 사마영도 꽤 아련한 얼굴로 나와 영영이를 쳐다보고 있었다.
가족을 떠올린 것일까?
-사대악인도 딸에게는 상냥할까?
글쎄.
맹수도 제 새끼는 정성스레 핥아서 키우지 않는가.
하나뿐인 딸한테는 다를 지도 모른다.
그때 영영이가 말을 이어갔다.
“지금 정도 무림 지회나 용봉 지회의 최고 화제 거리 중 하나가 뭔지 알고 하는 소리야?”
“뭔데?”
“바로 오라버니야. 사라졌던 남천검객의 제자!”
“나?”
소문이 빠르기는 정말 빨랐다.
어느 정도 의도하기는 했지만 벌써 화제가 된 모양이다.
정도 무림 지회, 용봉 지회에서 화제라면 어지간한 무림인들은 전부 나를 알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오라버니는 지금 삼신성 중 한 명으로 불리고 있어.”
“삼신성?”
삼신성(三新星)?
회귀 전에도 들어본 적이 없는 호칭이다.
내 기억이 맞다면 당시에 가장 유력한 우승 후보로 불렸던 쌍용은 황룡당주가 될 모용수와 형산일검의 제자인 서일주였다.
“열왕패도 진균의 손자인 진용, 북영도성 곽형직의 제자인 장명, 그리고 남천검객의 제자인 오라버니까지 삼신성이라 부르고 있어.”
-어라? 그 팔대고수의 공동 전인은 없네?
아아…..이정겸.
팔대고수인 무한제일검 백향묵과 태극검제 종선 진인의 공동 전인이다.
그의 정체는 후에 우승과 동시에 밝혀졌다.
그 전까지는 무림 연맹에서도 철저히 숨겼기 때문에 극적으로 드러냈다.
-왜?
‘말했잖아. 극적인 연출.’
만약의 사태로 우승을 하지 못한다면 꼴이 우습지 않은가.
하지만 두 팔대고수의 공동 전인인 이정겸은 압도적인 무위로 우승을 차지한다.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천재라 불리는 녀석답게 모든 출전자를 10초식을 넘기지 않고 쓰러뜨려서 첫 별호로 십초무적이라고마저 불렸다.
‘흠.’
회귀 전과 양상이 완전히 달라졌다.
원래 나를 포함해 삼신성이라 칭해졌던 모두가 후기지수 논무에 출전자들이 아니다.
이렇게 되면 후기지수 논무가 어떻게 진행될지 예측하기 힘들어진다.
“휴.”
영영이가 뭔가 불쾌하다는 듯이 말했다.
“사실 오라버니를 용봉 지회에 초대하고 싶었거든.”
[귀엽네요. 영영 누이가 부단주님을 다른 사람들한테 자랑하고 싶었나 봐요.]사마영이 싱글거리는 얼굴로 내게 전음을 보냈다.
저기 그런데 소저한테는 누이가 아니거든요.
연기를 하고 있어서인가 본인을 남자라고 착각하는 것 같다.
그러거나 말거나 영영이가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그냥 안 가는 편이 나을 것 같아.”
“응?”
초대를 하려다 말았다는 말이지 않나?
“왜?”
“가면 짜증나는 녀석들이 있거든.”
“짜증나는 녀석들?”
“호남 무림 지회 녀석들이 여러 인맥을 통해서 오라버니에 관한 안 좋은 소문들을 퍼뜨렸나봐. 그래서 그런지 모용세가의 모용수부터 하북팽가의 팽우진, 황보세가의 황보동현, 화산파의 양정까지 오라버니를 깎아내리기 바빠. 그런 재수 없는…”
“방금 모용수라고 했어?”
“알아?”
알다마다.
탐욕 때문에 내 배에 검을 쑤셔 박은 놈인데 잊을 리가 있나.
되갚아줄 날만 벼르고 있던 놈이다.
될성 싶은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그렇게 호기로운 척 하던 놈이 막 약관의 나이일 때는 그렇지 만도 않은 모양이다.
보이지 않는다고 남을 깎아내리는 걸 보면 말이다.
“누가 누굴 깎아내려요?”
사마영이 눈에 불을 켜고 영영이에게 물었다.
당장 달려가서 놈들을 손봐줄 기세다.
그러자 영영이가 씨익하고 웃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괜찮아요. 안 그래도 제가 있는 앞에서 그러기에 모두가 보는 앞에서 팽우진의 따귀를 날려줬거든요.”
이야…….
용봉지회에서 그랬다고?
-네 누이 동생 멋진데?
[부단주님 누이 동생 마음에 드는걸요.]소담검과 사마영이 동시에 내게 말했다.
그래. 멋지긴 한데 단지 괜히 그런 짓을 했다가 혹시 다른 정파 후기지수들한테 밉보이는 게 아닐까봐 오라버니로서 걱정된다.
“음…..고맙긴 한데 괜찮아?”
“괜찮아. 단지 귀찮은 게 들러붙어서 그게 짜증나지만.”
“그건 무슨 소리야?”
“미친놈이 자기 뺨을 때린 여자는 처음이라면서 들러붙잖아. 사람들만 없었어도 그 자리에서 따귀를 한 대 더 날려줄 걸 그랬어.”
분이 안 풀린 사람처럼 씩씩대고 있다.
뺨을 맞고 들러붙었다고?
-네 누이 동생 잘 보호해야 겠다.
동감이다.
팽우진 그 녀석 처음 봤을 때도 그랬는데, 생각 이상으로 특이한 놈이다.
송좌백 녀석이 평범하게 느껴질 정도다.
어쨌거나 이걸로 정파 후기지수들 사이에서 호의적이지 않은 녀석들을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아 맞다. 그보다 오라버니한테 이걸 알려주려고 왔는데.”
“응?”
“오늘 아침에 무림 연맹 회의에서 2차 예선전의 진행방식이 바뀌었어.”
“2차 예선전? 그걸 네가 어떻게….아.”
생각해보니 형산파 역시도 무림 연맹의 요직을 맡고 있다.
당연히 아침에 긴급 회의가 있었다면 억지로 숨기지 않는 이상, 그 정보는 자연스레 영영이의 귀에 들어오는 게 당연했다.
그런데 예선전의 진행방식이 바뀌었다니 그게 무슨 말이지?
“원래 2차와 3차 예선전이 있는데, 그걸 하나로 통합해서 진행한데. 더 많은 후기지수들에게 기회를 주기위해서래.”
“어떻게 진행되기에 그러는 거야?”
“그게 좀 황당해.”
“황당하다니?”
“각 구별 예선전의 통과자들이 전부 넓은 단상에서 겨뤄.”
“한 번에?”
그럼 전부 올라가서 겨룬다는 말인건가?
이게 후기지수들에게 기회를 주는 건지 아니면 시간 소요를 줄이기 위한 건지 알 수 없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방식이 특이해.”
“어떤 방식인데?”
“1차 예선전의 성적 순으로 가장 뛰어난 후기 지수와 차등 성적의 후기지수가 먼저 올라가서 겨뤄.”
“먼저라니? 그럼 설마….”
“그러다가 일정 시간 간격으로 한 명씩 올려 보낸데.”
‘!?’
아니 이건 대체 무슨 방식이라는 거야.
그럼 가장 성적이 높은 후기지수들끼리 겨루다가 한 명씩 추가로 단상 위로 진입시킨다는 건데, 이렇게 되면 성적이 높은 자는 체력적으로 가장 불리해질 수밖에 없다.
“어이가 없지? 그런데 이게 공평한 예선전을 위해서래. 후기지수 참가자만 4,000명이 넘기 때문에 같은 방식으로 하면 중소 문파나 상대적으로 약한 후기지수들은 본선에도 참가하지 못해 이름도 알릴 수 없기에 고안했대. 그런데 이렇게 하면 진짜 성적이 높은 후기지수들이 많이 불리해지잖아.”
많이가 아니다.
굉장히 불리해진다고 할 수 있다.
만약 작정하고 시간 간격 당 올라오는 후기지수들이 담합해서 가장 강한 후기지수를 노린다면 최악의 경우 제일 먼저 탈락하는 변수가 생긴다.
“담합하면 어쩌려고?”
“그걸 대비해서 규칙에 시간 간격 차로 올라간 후기지수들이 먼저 있던 자들을 상대로 3명 이상 합공하는 걸 금한다고 해.”
다수가 합공하는 것을 막는 규칙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2명까지는 합공을 할 수 있다는 것도 크다.
가장 강한 후기지수는 예선전이 끝날 때까지 계속 합공을 상대해야 할 공산이 크니까 말이다.
-특이한 방식이네.
-확실히 특정 층에는 불리하다고 할 수 있지만, 중소문파나 약한 후기지수들에게 기회가 주어지는 것만큼은 확실한 것 같다.
남천철검은 이 방식이 나쁘지 않다고 여기는 모양이다.
어째서 그런 거지?
-변별성이 생기지 않나. 그만큼 강자에게는 제약을 주고 약자에게는 기회를 준다. 하지만 이걸 뚫고 올라오는 강자는 이런 불리한 조건에도 이겨낼 만큼 뛰어난 무위를 지녔다는 것도 증빙이 된다.
흠. 생각해보니 녀석의 말도 맞다.
만약 2차 예선전을 통과하게 된다면 더욱 각광을 받게 될 것이다.
대신 굉장한 시련이 되겠다.
상위권에 속하는 후기지수들이나 대문파에게만 불리하게 적용되는 규칙인 셈이니, 완전히 불공정하다는 말도 하기 힘들 것 같다.
-그런데 운휘. 이 방식을 취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예선전부터 실력을 숨기지 못하고 발휘할 수밖에 없게 될 수도 있다.
‘하!’
남천철검의 이 말에 나의 머릿속에 누군가가 스쳐지나갔다.
이런 기상천외한 논무 방식을 고안한 자.
그 자가 누구인지 알 것 같다.
“혹시 이걸 누가 고안했는지도 알아?”
“제갈 군사가 제안했는데, 그 이유를 들어보고 다들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대.”
역시였다.
이걸 제안한 자는 제갈원명이었다.
남천철검의 말을 듣고 나서 나는 이 예선전 방식에 숨겨진 진의를 깨달았다.
이런 식으로 진행된다면 어설프게 실력을 숨겼다가는 탈락이었고, 결국에는 뿌리까지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정말 대단하다. 대단해.’
기가 막힌 묘수라고 할 수 있었다.
이렇게 된다면 본선이 시작되기 전에 후기지수 논무에 침투한 첩자를 사전에 잡아낼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게다가 중소 문파의 민심을 달래주면서 전보다 더 변별성도 높일 수 있고.
이렇게 머리가 잘 돌아가다니 탄성이 절로 나온다.
괜히 일군사가 아니었다.
* * *
이튿날 이른 아침.
드디어 무림 대회가 시작되었다.
무림 연맹의 맹주 백향묵의 개회사를 시작으로 무림 연맹 내의 여러 행사들이 성내 각 지역별로 동시에 개최되었다.
물론 그 최고의 관심사는 후기지수 논무였다.
1차 예선전을 시작으로 2차 예선전, 3차 본선까지 장장 열흘에 걸쳐서 진행된다.
후기지수 논무가 시작되는 수천 평에 이르는 대 연무장은 수많은 예선 참가자들과 관객들로 붐비고 있었다.
거의 수만 명에 이르는 대인원의 향연이었다.
처음에 이곳에 들어서고 나서 엄청난 검들의 이명에 순간 두통으로 쓰러질 뻔 했다.
적응이 되었다 싶었는데 확실히 많기는 많았다.
정파 무림인들의 7할 가까이가 만병지왕이자 병장기의 군자라 불리는 검을 선호하기 때문에 그렇기도 했다.
-진짜 많네.
4,000명이 넘게 참가한다는 게 새삼 실감이 간다.
대연무장을 남녀후기지수들이 가득 메우고 있었다.
이 중에서 어설픈 녀석들을 제외하고 1차 예선을 통과하는 자는 기껏해야 몇 분지의 일에 불과할 것이다.
“사형 힘내세요!”
“무운을 빕니다!”
1차 예선전이 시작되기 전에 나를 응원한 사마영과 조성원이 관람석으로 이동했다.
지금부터 본격적인 혈마검 탈취를 위한 임무의 시작이었다.
나름 긴장이 된다.
회귀 전에는 논무에 참석할 기회조차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나마 후기지수로서 논무의 우승을 노릴 기회가 왔다.
-있잖아. 운휘야. 전부터 묻고 싶었는데 그냥 비무 대회라 하면 되는데. 왜 논무라고 하는 거야?
대기 기간이 길어서 그런지 소담검이 내게 물었다.
그 이유가 궁금했나 보다.
‘무림에서 가장 유명한 비무 대회가 뭐였던 것 같아?’
-뭔데?
녀석의 물음을 대답한 건 내가 아닌 남천철검이었다.
-화산논검.
맞다.
가장 큰 규모의 비무.
수백 년 전 정사가 지금보다 모호하던 시절, 천하의 모든 고수들이 화산에 모여서 천하제일을 다뤘던 것이 화산논검이었다.
-논검? 검을 논한다는 거야?
‘지금도 그랬지만 예전에도 검을 최고의 무기로 칭했거든.
검이야 말로 만병지왕으로 무(武)를 상징하던 시절이다.
검을 논하는 것이 결국 무학을 논하고 겨루는 것과 일맥상통한다고 해서 논검이라 불렀던 시절이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특정 무기만을 높이기보다 순수한 무(武)를 논한다고 해서 논무라는 형태로 이름이 고착되었다.
-되게 격조를 따지네.
‘뭐 정파 특유의 방식이지.’
어찌 보면 논무라는 말 자체가 품격을 높이려고 쓴 말이다.
사실상 무를 겨루기 위한 비무 대회였다.
그때 귓가로 전음이 들려왔다.
목소리의 주인은 다름 아닌 송좌백이었다.
어디서 들려오나 찾아보니 멀지 않은 곳에 녀석이 서있었다.
하여간 곱게 말하는 법이 없다.
실력이 많이 늘기는 했는데, 이번 논무에 정파의 괴물 후기지수들과 백혜향 측의 고수들까지 참여했기에 저 녀석이 제대로 통과할지 걱정된다.
내 전음에 따지고 들려던 녀석이 고개를 돌렸다.
수천 명에 이르는 후기지수들이 잘 보일 수 있도록 높은 단상 위로 후기지수 논무의 예선전을 진행할 담당자가 올라왔다.
백발의 성성한 남색 도복의 노인이었다.
‘아!’
그는 무림 연맹의 제 2장로인 화산파의 매화백검 호양 진인이었다.
한 자루의 검으로 떨어지는 매화 꽃잎을 백 장을 베었다고 알려진 검의 고수였다.
거의 팔대고수를 제외하면 무림의 수위 속하는 자다.
호양 진인이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후기지수 논무의 예선전을 시작하겠소이다!”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대연무장을 울려 퍼졌다.
저 왜소한 체구에서 이런 심후한 내공이 실린 목소리가 나온다는 게 대단했다.
“와아아아아아아!!!”
이에 부응이라도 하듯 후기지수들이 일제히 함성을 내질렀다.
지금이야 다들 전의가 올랐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들 바뀌게 될 거다.
호양 진인의 후기지수 논무에 관한 개회사와 더불어 대회 진행 방식에 관한 설명이 시작되었다.
1차 예선전은 가장 간단한 방식이었다.
이것은 직위 시험을 치를 때 이미 경험했던 것이었다.
격세석에 흔적을 남기는 것이다.
다른 게 있다면 여기에 단순한 방식을 제외한 초식의 흔적을 남겨야 한다.
“격세석에 남긴 흔적들을 바탕으로 2차 예선전을 위한 차등 성적이 매겨지니 괜히 떨어지기 싫다면 허투루 내공을 숨기는 짓은 삼가길 바라오.”
어설프게 내공을 숨기면 운이 없으면 떨어질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과연 2차 예선의 통과 기준은 몇 명일까?
“총 오백 명을 가르는 예선전인 만큼 모두가 최선을 다해 좋은 결과를 얻길 바라오. 그럼 1차 예선전을 시작하겠소.”
오백 명?
1차 예선전에서 굉장히 많이 떨어뜨린다.
자그마치 3,500명이 탈락한다면 그 기준이 굉장히 높아질 수밖에 없다.
괜히 2차 예선전을 의식해서 어설프게 내공을 숨겼다간 도리어 2차 예선전은 꿈도 못 꾸게 생겼다.
* * *
4,000명에 이르는 후기지수들이 줄을 지어서 각 구역으로 나누어졌다.
내가 지정된 곳은 을(乙)이라 적힌 구역이었다.
한 구역 당 이백여 명이 모여서 두 줄로 줄을 서서 차례대로 격세석에 흔적을 남기는 식으로 1차 예선이 진행되었다.
두 줄로 진행되다 보니, 옆 줄과 거의 비슷하게 맞춰나가게 되는 듯 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내 바로 옆이 황보세가의 황보동현이 있었다.
뒤에서 나를 깎아내리는데 선동했다는 녀석이다.
굳이 아는 척 할 필요가 없다고 여기는데, 녀석이 먼저 선뜻 말을 걸었다.
“어이. 율랑현 망아지. 운 좋게 남천검객의 제자가 됐다지?”
‘?’
뭐지? 이 녀석.
초면에 말버릇이 없다.
“스승이 명성이 높다고 해서 제자까지 대우 받는 게 참 부끄럽지 않나?”
일부러 시비를 걸고 있었다.
황보세가 역시도 하북팽가와 더불어 무인들의 성정이 호전적인 것은 알고 있지만 이런 식으로 상대를 자극하는 것은 본인의 그릇의 문제겠지?
“왜 대답이 없지? 호남 무림 지회 친구들을 상대로는 함부로 모욕을 줄 수 있어도 대 황보세가 앞에서는 한 마디 내뱉는 게 어려운가 보지?”
아아.
호남 무림 지회 녀석들의 사주를 받은 건가.
얼마나 뒤에서 이 녀석의 궁둥이를 토닥여 줬으면 내게 시비를 거는 건지 모르겠다.
아무 말을 하지 않고 있자 녀석이 비웃음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배짱도 없는 놈이군.”
일부러 주위 후기지수들이 들으라는 듯이 말하고 있었다.
덕분에 시선이 집중되고 있었다.
나는 차갑게 식은 눈빛으로 조용히 녀석을 쳐다보았다.
“왜 아니꼬워? 그럼 나와 내기할까?”
“내기?”
“그래. 저기 격세석 보이지? 저기서 흔적을 적게 남긴 쪽이 많이 남긴 쪽에게 무릎 꿇고 원하는 부탁을 들어주는 게 어때?”
이게 목적이었나?
일부러 자극하고서 자신의 판으로 끌어들이고 있었다.
다른 후기지수들이 보고 있으니 여기서 거절하면 실력에 자신이 없어서 그러는 게 되어버린다.
“왜? 자신 없어?”
이에 나는 빙그레 웃었다.
그리고 녀석의 눈을 쳐다보고서 정중히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어찌 제가 황보세가의 황 형을 상대로 그런 내기를 할 수 있겠습니까? 부디 말씀 거두어주시지요.”
“하!”
녀석이 콧방귀를 뀌었다.
그리고는 이내 눈이 맹하게 풀렸다.
맹하게 풀린 황보동현이 나를 향해 소리를 지르며 도를 뽑았다.
-챙!
“겁쟁이 새끼. 그럼 이 자리에서 붙자!”
“헛!”
“황보 형!”
녀석이 도를 휘두르자, 주변의 후기지수들이 당황해서 그를 붙들었다.
황보동현의 눈동자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후기지수들이 자신을 붙들고 있자 녀석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때 앞에서 진행을 맡고 있는 당주 한 사람이 다가왔다.
“이게 무슨 소란인가?”
도를 뽑은 채 붙들려 있던 황보동현이 당황해서 해명을 했다.
“이, 이러려고 한 게 아니라….”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뗐지만 주위 후기지수들의 증언은 전혀 아니었다.
“황 형이 소 형을 도발하다가 공격했습니다.”
“소 형이 정중하게 달랬는데도 막무가내로 구는 것을 저희들이….”
그들의 증언에 황보동현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미 정황이 녀석을 몰아갔기에 당주의 결정은 단호하기 짝이 없었다.
“황보동현 강제 탈락 조치합니다!”
녀석을 향해 나는 작게 입 꼬리를 올렸다.
‘!?’
“자, 잠깐만.”
“뭐가 잠깐이야! 당장 끌어내.”
그러거나 말거나 녀석은 진행 무사들에 의해 밖으로 끌려나갔다.
-하여간 너는.
소담검이 키득거리며 혀를 내둘렀다.
뭘 일일이 시비 거는 걸 상대하고 앉아 있나.
적당히 보내면 될 일을.
끝
ⓒ 한중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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