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word Sense RAW novel - Chapter 103
39화 1차 예선전 (2) >
줄을 서면서 나는 고민에 빠졌다.
과연 어떻게 하는 편이 임무를 수행하는데 도움이 될까?
누이 동생인 영영이의 말대로 2차 예선전은 1차 예선전의 성적에 따라서 결정이 된다고 했다.
얼핏 잘하면 잘할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다.
하지만 허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꼼수를 부릴 수 있었다.
-적당한 수준으로 흔적을 남기면 되잖아. 딱 중간 정도만 되게.
소담검의 말대로였다.
격세석에 흔적을 적게 가해서 성적이 높게 가지 않도록 하면 된다.
그렇게 된다면 2차 예선전에서 첫 번째로 비무에 나서게 되는 불상사는 막을 수 있다.
실리를 선택한다면 그 편이 임무를 위해서 좋겠지.
-내 생각은 다르다. 운휘.
‘응?’
-모든 사람들이 너를 남천검객의 제자로 생각하고 있다.
그야 그렇지.
-일부러 힘을 숨긴다면 괜한 오해를 살 거다. 어려운 길을 가더라도 명성에 걸맞는 힘을 보여주는 편이 낫다.
-에휴. 참 복잡하다. 복잡해.
복잡한 수 싸움에 소담검은 이해할 수 없다며 중얼거렸다.
사실 남천철검의 말이 맞다.
다른 첩자들은 자신들의 실력을 조금이라도 더 숨기는 편이 이득이지만, 나는 그만큼 명성이 높은 위치에 있어서 그렇지 못하다.
게다가 2차 예선전에서는 어떤 식으로든 실력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
그걸 감안한다면 오히려 무림 연맹이나 정파에 신뢰를 쌓기 위해서라도 너무 전략적으로만 굴어선 안 된다 .
‘어느 정도는 보여야 한다.’
적어도 어지간한 후기지수들은 압도하는 수준으로 말이다.
일류 수준이 평균이자 중간 정도다.
그 이상을 보여줘야 한다는 소리가 된다.
“우오오오!”
“저걸 봐.”
그때 주위의 후기지수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내 뒤쪽에서 들려서 고개를 돌리니 뒤편에 있는 후기지수들이 축임(丑壬) 구역의 단상 위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곳에는 반듯한 사각이었던 격세석이 독특한 형태로 베여있는 것이 보였다.
흠집을 낸 게 아니라 격세석 자체를 검초로 모양을 바꿔놓은 것이다.
이를 행한 자는 다름 아닌,
‘진용.’
열왕패도 진균의 손자인 진용이었다.
녀석은 실력을 전혀 숨길 필요가 없다는 듯이 격세석을 잘도 저렇게 만들어놓았다.
비파 형태처럼 생긴 패열도를 허리에 차면서 손을 들어보였다.
“와아아아아아아!!!”
관람석에서 함성 소리가 들렸다.
녀석의 압도적인 실력에 관중들이 매료되었나 보다.
그런데 그 옆쪽에서도 난리가 났다.
축계(丑癸) 구역이었다.
격세석의 한 가운데가 구멍이 휑하니 뚫려 있는데 주먹이 튀어나와 있었다.
다른 부분에 금조차 가지 않았다.
‘누구지?’
얼굴이 전혀 알려지지 않은 자였다.
처음 보는 실력자의 등장에 후기지수들이 웅성거리며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흠.’
-왜 아는 자야?
‘아니.’
하지만 왠지 백혜향 측의 사람일 것 같다.
정파 측의 실력자들의 얼굴은 심지어 이정겸조차 나는 알고 있었다.
그런데 저 정도 높은 수준의 기술을 보여준다는 것은 정파가 아닌 백혜향 측일 확률이 높았다.
-어째서? 그럼 오히려 실력을 보이지 않아야 하는 거 아냐?
내 생각도 그렇다.
2차 예선전에서 불리해질 수 있는데 실력을 드러냈다.
그 정도는 감수하겠다는 의미인가.
어쨌거나 저 얼굴을 머릿속에 새겨둬야 겠다.
-어? 운휘야. 재 좌백이 아니야?
같은 단상 위로 올라오는 자는 바로 송좌백이었다.
송좌백 녀석이 비장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제발 분위기에 흔들리지 않고 적당 수준만 보여주고서 2차 예선전을 통과할 수 있도록 하는 편이 나을 텐데.
“와아아아아아아!”
송좌백 구역 쪽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녀석의 주먹이 보기 좋게 격세석의 한 가운데를 뚫었고, 심지어 주변에 금조차 가지 않았다.
전과는 확연하게 발전된 권이었다.
다만,
‘골 때리네.’
녀석은 관람석을 향해 두 손을 크게 들어 보이며 의기양양해했다.
아주 분위기를 제대로 즐기고 있었다.
이젠 빼도 박도 하지 못하고 상위권에 걸리게 생겼다.
적어도 다섯 번째 이내로 2차 예선전에 올라가게 될 것이다.
그런데 단상을 내려가는 송좌백이 앞서 비슷한 수준의 권을 보여준 그 자를 날카로운 눈매로 노려보고 있었다.
그 자 역시도 눈을 마주하고 있었고 말이다.
‘역시 백혜향 측인가.’
저쪽과 다르게 우리는 인피면구가 아니라 신분이 노출되어 있다.
어쩌면 저쪽에서 도발했을 지도 모른다.
‘뭐라고 도발했기에 저렇게 노려보고 있는 거야?’
우려가 된다.
나와 달리 녀석은 첩자 교육을 받지 못했다.
사전에 며칠 정도 교육 받은 것 정도로는 감정을 능숙하게 조절하는 게 불가능하다.
예선전이 끝나고 경고를 해둬야 겠다.
-네 차례도 멀지 않았어.
소담검의 말대로 앞에 세 사람을 남겨두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옆옆 쪽인 정(丁) 구역의 단상 위로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아!’
-누구야?
‘……이정겸!’
-생각보다 맹해보이는데?
소담검의 말에 나 역시도 살짝 동의했다.
좀 더 어릴 적의 모습은 처음 보는데 눈이 반쯤 풀려서 반쯤 자다 깬 얼굴을 하고 있었다.
뭔가 의욕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저렇게 보여도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기재라 불리는 놈이다.
이번 임무에 있어서 가장 큰 고지이다.
과연 어느 정도 수준일까?
이정겸이 진행을 맡은 당주의 지시에 따라 격세석의 앞에 섰다.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고 있었다.
그때 녀석이 천천히 검을 뽑았다.
그리고는 아무렇지 않게 격세석의 허리 쪽을 향해 일(一)자로 베고서, 다시 허리춤의 검집에 검을 집어넣었다.
그러자,
-쩌저저적!
격세석이 반으로 갈라져서 그대로 위쪽이 뒤로 넘어가고 말았다.
그것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내 함성이 터져 나왔다.
“와아아아아아아!!!”
……..과연 괴물 같은 놈이었다.
아마도 알아볼 자들은 전부 알아보지 않았을까?
녀석의 검은 유검(柔劍)의 극치에 이르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부드러웠다.
조금의 힘도 들이지 않고 완벽한 부드러움으로 격세석을 베어냈다.
상승의 무리를 제대로 보여줬다.
‘…….역시 절정의 벽을 넘어섰어.’
팔대고수의 공동 전인 이정겸.
놈은 초절정의 고수였다.
이미 후기지수의 영역을 한참 넘어서고 있었다.
-저 정도면 2차 예선전에서 가장 처음으로 출전하는 거 아냐?
‘아마도 그렇겠지.’
저런 실력을 가진 녀석이니 의욕이 없는 것도 당연하다.
굳이 이런 후기지수들 사이에서 껴서 실력을 드러내느니 좀 더 높은 수준의 고수를 상대로 비무를 요청하는 편이 나을 테니 말이다.
‘난항이네.’
우승을 하려면 필연적으로 놈과 부딪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것도 진짜 실력을 드러내야 할 판국이다.
이정겸은 만사가 귀찮다 듯이 하품을 쩌억하면서 단상 밑으로 내려갔다.
사람들의 함성에는 전혀 관심도 없어보였다.
-이제 네 차례야.
소담검의 말에 고개를 앞으로 돌리니 앞 사람이 단상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앞의 후기지수는 기감으로는 일류에 약간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역시 예상대로 약간의 흠집을 남긴 게 다였다.
아쉽다는 표정으로 내려오는데 차라리 여기서 떨어지는 편이 나을 거다.
이번 대회는 회귀 전과는 수준 격차가 심하니까.
“84번 소운휘.”
부르는 호명이 나는 단상 위로 천천히 올라갔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 역시 남천검객의 후인이기에 관심이 쏠리는 것 같았다.
-어설프게 하기도 힘든 상황이네.
‘그렇네.’
그런데 단상을 오르면서 문득 내 눈에 들어오는 한 사람이 보였다.
이정겸이 있었던 정 구역 쪽에서 나와 같이 단상에 오르는 자가 있었는데, 그는 다름 아닌 모용수였다.
‘모용수!’
회귀 전 마지막으로 봤던 두 얼굴 중 한 명.
속에서 뜨거운 분노가 치솟았다.
영웅의 탈을 쓰고서 호연지기가 넘치는 척 구는 가증스러운 놈이다.
자신의 탐욕을 위해서 사람을 죽이는 것을 조금도 망설이지 않는 숨겨진 이면을 지녔다.
녀석도 나를 의식했는지 쳐다보고 있었다.
“모용수다.”
“우승 후보야!”
후기지수들부터 사람들이 관심을 보였다.
모용수가 시작도 하기 전에 관람석을 향해 포권을 취하며 예를 표했다.
-겉보기에는 멀쩡해 보이는데.
그래서 나도 속지 않았나.
다행스러운 것은 녀석도 아직 어려서 그 영악함이 완성되지 않았다는 거다.
마치 내게 도전을 하듯이 호승심이 넘치는 눈으로 쳐다보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었다.
녀석이 나를 쳐다보다 눈짓으로 격세석을 가리켰다.
-겨루자는 것 같은데.
그런 것 같다.
눈빛이 격세석으로 서로의 실력을 겨뤄보자고 하는 듯 하다.
모용수가 나보다 먼저 검을 들고서 격세석에 겨냥했다.
그리고 검초를 펼쳤다.
검초가 호연지기가 넘치는 궤적을 그리며 격세석을 갈랐다.
‘건곤유수구검.’
모용세가의 상승검법이다.
남궁세가의 창궁무애검법과 더불어 무가에서 최고로 꼽히고 있는 검법 중 하나다.
건곤(乾坤)이라는 말처럼 천지, 음양의 조화를 중시하는 검법답게 유와 강이 잘 버무려져서 검의 궤적을 그리고 있었다.
-쿵! 쿵!
조각을 한 것처럼 격세석이 일부가 잘려나갔다.
이로써 녀석의 실력을 알 수 있었다.
녀석의 수준은 절정 초입에 이르고 있었다.
하단전만 개방했을 때의 나와 거의 비슷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었다.
“과연 모용세가!”
“대단하다.”
후기지수들이 녀석의 실력에 탄성을 흘렸다.
초식을 마친 모용수가 나를 쳐다보며 실력을 보여달라는 듯이 정중하게 손을 내밀었다.
이에 후기지수들과 관람석의 사람들이 나에게로 시선이 돌렸다.
“지금 둘이 겨루는 거야?”
“우승 후보들 간에 간접 대결?”
녀석의 연출 덕분에 주위에서 오해를 하고 있었다.
용봉지회 때 나를 깎아내렸다는 녀석이 사람들 앞에서는 잘도 연기를 하고 있다.
그런데 연기는 너만 할 줄 아는게 아니다.
-슥!
나는 두 손을 모아 공손하게 녀석에게 포권을 취했다.
대결을 받아들인다는 표시였다.
주위 후기지수들이 흥미진진하다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격세석의 앞에 섰다.
그리고 남천철검을 뽑아들었다.
“오오!”
“저게 남천검객의 검!”
검을 알아본 이들이 호들갑을 떨었다.
-인기가 많네. 남천.
-흠흠.
녀석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격세석을 쳐다보며 검을 겨냥했다.
모두가 내가 어떻게 격세석에 흔적을 남길지 집중하고 있었다.
나는 검 끝에 모든 공력을 집중시켰다.
그리고 검을 격세석에 찔러 넣었다.
-푹!
진흙이라도 된 것처럼 검이 격세석 안을 파고들었다.
진행자인 당주가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뭘 하려나 싶나 보다.
‘후우.’
굳이 중단전을 개방하지 않아도 지금이라면 따라할 수 있을 것 같다.
검이 격세석을 완전히 통과하는 순간 나는 바닥을 향해 진각을 밟으며, 검병에 힘을 가했다.
-쿵!
그 순간 파고든 검을 중심으로 격세석이 회오리치듯이 갈라졌다.
가운데 부근이 안에서부터 갉아먹듯이 회오리 형태로 갈라진 격세석.
‘됐다.’
반신반의 했는데 성공했다.
진행자인 당주를 비롯해 후기지수들이 멍한 표정으로 격세석을 쳐다보고 있었다.
-운휘. 이거 검결 아닌가?
남천철검이 놀랍다는 듯이 말했다.
맞다.
지금 내가 펼친 것은 성명검법 제 6초식 축아회검(逐亞回劍)을 검결로 구현했다.
초식의 자세를 제대로 펼치지 않고 오직 결로만 펼쳐냈다.
팔대고수인 무한제일검 백향묵이 검결로만 초식을 펼치는 것을 수십 번이나 천기로 보고, 실제로 경험하면서 깨달았다.
실전에서 사용할 수준은 아니지만 움직이지 못하는 사물을 대상으로는 이런 식으로 구현이 가능했다.
“와아아아아아아!!!”
관람석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나는 모용수를 쳐다보았다.
놈의 인상이 잔뜩 굳어져 있었다.
내공이나 무위의 경지를 떠나서 검으로서 그 솜씨가 완전히 격이 다름을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너만 띄워준 꼴이네.
소담검이 키득거렸다.
끝
ⓒ 한중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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