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word Sense RAW novel - Chapter 105
40화 새로운 패 (2) >
이런 식으로 감시받는 상황을 유용하게 써먹게 되다니.
역시 뭐든지 이용하기 나름인 것 같다.
감시자들을 발견한 안대의 사내가 의심스러운 목소리로 내게 전음으로 물었다.
그런 그의 물음에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당신이 필요해서요.] [내가……필요하다고?]안대의 사내, 명경인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반문했다.
[설마 그냥 도와주는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하!]명경인이 기가 막혀 하다가 주위를 의식했는지 표정 관리를 했다.
[네놈이 돕지 않아도 나 자신은 스스로 지킬 수 있다.] [그러신 분이 감시조차 파악하지 못한 겁니까?] [그건……] [가만히 두면 들킬 것 같더군요.] [……네놈 대체 정체가 뭐야?] [저는 소운휘입니다.]그 말에 안대의 사내, 아니 명경인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네가 그 남천검객의 제자?] [그렇습니다.] [……들은 소문과는 많이 다르군.]그렇게 들었다니 다행스럽다.
의도대로 나에 대한 인식이 퍼져나가고 있는 것이니 말이다.
그런 나의 말에 명경인이 눈빛이 강렬해졌다.
그 눈빛에는 씁쓸함과 더불어 짙은 분노가 묻어나고 있었다.
-왜 이렇게 감정변화가 들쑥날쑥 한 거야?
‘내가 자극했거든.’
멸문한 곤륜.
하룻밤 사이에 모든 문도가 살해당하는 비극을 당했다.
-하룻밤 사이에? 완전 대사건 아니야?
그래.
대사건이다.
이 정도면 무림 연맹에서 나서서 조사해야 할 만큼의 사건이다.
하지만 무림 연맹은 이것을 그저 정사 대전 도중에 사파 쪽에서 저지른 미결 사건으로 덮어버렸다.
-응? 어째서?
‘곤륜이 밉보였으니까.’
-뭘 밉보였는데?
이십여 년 전, 정사 대전은 모든 무림을 전쟁의 화마 속에 뛰어들었다.
무림 연맹, 무쌍성, 혈교, 사파, 흑도할 것 없이 피가 마를 날이 없을 만큼 전쟁의 도가니 속에 빠졌을 때 유일하게 전쟁에 참여하지 않은 문파가 있었으니, 바로 곤륜파였다.
-왜 참여하지 않았대?
‘곤륜은 무가의 성향이 짙은 다른 도가 문파들보다도 선도를 지향하기 때문에 정사를 개의치 않고 선민을 행했거든.’
정파였지만 곤륜은 누구의 편도 들지 않는다.
그들은 늘 중도의 입장이었다.
그 의도는 선의에서 비롯되었으나 정사 대전으로 수많은 피를 본 다른 정파인들의 입장에서는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흑백으로만 가르네. 인간은.
소담검이 한심하다는 듯이 혀를 찼다.
그래. 안타깝지만 당금의 무림은 적이 아니면 아군 둘 중 하나다.
어찌 되었든 곤륜에는 생존자가 없었기 때문에 무림 연맹의 입장에서는 굳이 인력을 투입해가며 도울 이유가 없었다.
-명색이 정파인데 눈치 보이지 않나.
눈치 볼 게 없었다.
애초에 정파 쪽 여론도 정사 대전에 참여하지 않았던 곤륜에 차가웠다.
분노를 숨기지 못하는 그에게 내가 말했다.
그 말에 명경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사실 무림 연맹에서는 이때까지 곤륜에 마지막 생존자가 있는 걸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랬다면 어떤 식으로든 손을 쓰지 않았겠는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명경인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가 이렇게 격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가 있었다.
명경인은 무림 대회의 꽃이라 불리는 후기지수 논무에 우승하여 곤륜의 생존자가 있음을 알리고 무림 연맹에게 공식적으로 도움을 요청할 셈이었다.
-논무에서 이정겸이 우승했다고 하지 않았어?
‘어.
-그 말은….
‘우승 근처도 못 갔어.’
명경인은 팔강에서 이정겸과 만나 탈락하고 말았다.
그런데 차라리 패해서 떨어졌으면 문제가 없었는데, 명경인은 이때 강적인 이정겸을 상대로 곤륜파의 무공까지 드러내면서 도중에 비무가 중단되는 사태가 벌어진다.
-왜?
멸문한 곤륜의 무공을 사용하는 바람에 오히려 첩자로 오인을 받게 된 것이었다.
이때 명경인은 인피면구를 벗고서 자신이 마지막 곤륜의 후인이라고 밝혔지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후기지수 논무의 규정을 어긴 바람에 더욱 의심만 가중되어버렸다.
원래의 목적과 다르게 명경인은 그 자리에서 무림 연맹의 금옥에 갇혀버렸고, 사건이 일파만파 커져서 후기지수 논무가 사흘이나 중지되었었다.
-아하! 그래서 찾으라고 한 거였구나.
맞다.
도중에 그런 사태가 또 벌어지면 일이 틀어지게 된다.
대대적으로 첩자를 색출한다고 난리를 치게 되면 혈마검이고 뭐고 도망치기 바쁜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혹시나 명경인이 후기지수 논무에 출전하는 상황에 대비해야만 했다.
-오. 거기에 대비도 하고, 좋은 일도 하고, 써먹을 패도 늘리고 일석삼조네!
일석이조는 맞는데, 좋은 일까지는 모르겠다.
-!?
나중에 신분 확인이 끝나고 무림 연맹에서 곤륜파 재건을 돕는다고 했거든.
후에 명경인은 곤륜독안이라는 별호로 명성을 날리게 된다.
곤륜의 재건을 위해 원래 선도를 지향하던 것도 마다하지 않고 사파, 혈교와 싸우는데 앞장 선다.
-………너는 참.
소담검이 혀를 내둘렀다.
왜?
나도 곤륜을 재건시키는데 한 손 거들겠다고 할 거다.
단지 주체가 무림 연맹에서 나로 바뀌는 것뿐이다.
나는 명경인에게 전음을 보냈다.
고심에 빠진 듯이 가늘어진 눈으로 나를 쳐다보던 그가 전음을 보냈다. [뭘 원하는 거지?]
입 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명경인과 전음으로 모종의 대화를 나눈 나는 곧바로 누군가에게로 향했다.
그 누군가는 나를 감시하고 있는 이들 중 한 사람이었다.
-뭐 하려고? 모른 척 하려던 거 아냐?
소담검이 의아한지 물었다.
원래는 내버려둘 생각이었는데 이것도 써먹을 수 있겠는데.
-!?
후기지수 논무의 진행 무사로 분하고 있던 사내가 내가 다가가자, 모른 척하고서 피하려고 했지만 그를 붙잡았다.
“혹시 제 뒤를 밟고 계시는 겁니까?”
“그게 무슨 소리요?”
사내가 아무 것도 모르는 척 시치미를 뗐다.
당연히 그렇게 나오시겠지.
나는 눈짓으로 명경인을 가리키며 조용히 속삭이듯이 말했다.
“제 지인께서 저기 저 분과 저 분, 저 분….귀하까지 총 네 분이서 계속 저를 주시하고 있다고 말해주셨는데 그게 사실인지 묻는 겁니다.”
정확하게 감시자들을 짚자 사내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나는 그에게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말했다.
“당신들 혹시 혈교의 세…”
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사내가 소리를 버럭 질렀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요! 나는 논무의 진행을 맡고 있는 맹의 무사요. 지금 함부로 사람을 의심하는 거요?”
훈련을 받긴 했나보다.
당황해서 물러나거나 실수할 수도 있는데, 더 강하게 나왔다.
“아니면 아니지. 왜 이렇게 흥분하는 겁니까? 정말 혈….”
“에헤이. 여기서 왜 혈…..아무튼 그게 튀어나오는 거요.”
“그럼 왜 저를 감시하고 있는 겁니까? 진짜 진행을 맡고 있는 맹의 무사가 맞습니까? 아니면 저기 계신 당주께…..”
“허참. 생사람을 잡는 구려.”
몇 번의 실랑이가 오가면서 그는 아니라고 강하게 선을 긋다가 이내 도망치듯이 자리를 빠져나갔다.
다른 세 명의 감시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차례대로 그들이 사라지고 나서 나는 명경인에게 전음을 보내며 눈을 찡긋했다.
감시자들도 치우고 호의도 사고 이게 진짜 일석이조지.
소담검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그건 그런데 괜찮겠어? 감시자들을 돌려보내봐야 다른 자들로 교체되는 거 아냐?
‘뭐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고?
* * *
일군사부.
제갈원명의 집무실.
그곳에 네 명의 무림 연맹의 무사들의 보고에 제갈원명의 옆에 서있는 중년의 호위무사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당장 다른 자들로 교체….”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제갈원명이 갑자기 큰소리로 웃어댔다.
“하하하하하하핫!”
“군사 어른?”
“됐다. 사람은 그만 붙여도 될 듯하구나.”
그 말에 중년의 호위무사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더 탁월한 자들로 붙이면 되는데 어찌하여?”
“녀석이 놀린 게다. 보면 모르겠느냐?”
“놀리다니 그게 무슨?”
“혈교의 첩자는 무슨. 소운휘 그 아이가 정말로 그리 생각했다면 가만히 보냈을 것 같으냐? 당장 내게 찾아와 보고하거나 이 녀석들을 붙잡으려 들었겠지.”
“그 말씀은?”
“그래. 군사부에서 붙인 걸 눈치 챈 것이겠지.”
“하!”
중년의 호위무사가 그 말에 혀를 내둘렀다.
“이런 식으로 본 군사를 물 먹이다니.”
제갈원명이 흥미롭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설사 눈치 챈다고 해도 오히려 의심을 받지 않기 위해 감시자들을 모르는 척 할 거라 여겼는데, 뜻밖이었다.
“영특하다 못해 당돌하기도 하구나.”
그런 그에게 중년의 호위무사가 물었다.
“하면 소운휘에 대한 1푼의 여지는 거두시는 겁니까?”
“아직은 이른 것 같구나. 하나 2차 예선전 때 확실하게 알게 되겠지.”
제갈원명이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책상 위의 서지들을 바라보았다.
서지들에는 1차 예선전의 통과자들의 명단이 격세석의 성적 순으로 나열되어 있었다.
* * *
이튿날 이른 아침,
2차 예선전을 하기 전에 후기지수 논무의 진행자인 무림 연맹의 제 2장로인 화산파의 매화백검 호양 진인의 설명이 시작되었다.
설명은 누이 동생인 영영이에게 들었던 그대로였다.
시간 간격으로 1차 예선의 성적 순으로 후기지수가 대결 단상에 올라가 승부를 한다.
한 사람의 후기지수를 셋 이상 공격하는 것은 금하고, 마지막에 남는 단 한 사람이 본선에 진출한다.
총 16개의 대결 단상이 있다.
고로 16명이 본선으로 올라가 우승을 다투게 된다.
‘흠.’
그런데 이렇게 되면 20명은 따로 겨루는 게 아닌가?
-왜?
‘500명이 통과했는데, 16명이 진출한다면 한 단상 당 최소 30명이 올라가. 그럼 20명이 남는데, 단상은 16개라는 건 그 20명도 16개 단상에 껴서 겨루게 된다는 소리잖아.’
적어도 4개의 단상 위로 2명이 더 추가된다.
그럼 상대적으로 더 격렬해질 수밖에 없다.
이게 제비뽑기로 진행될지 아니면 어떤 식으로 진행될 지 알 수 없었다.
그런 의문을 매화백검 호양 진인이 풀어주었다.
“보다시피 20명이 남는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거요. 20명의 후기지수들을 따로 겨루게 된다면 형평성에 맞지 않겠지. 그렇기에 각 단상에 한 명씩 더 올라가게 될 것이고, 1차 예선전의 가장 상위 실력자들의 단상에 4명이 추가로 올라갈거요.”
‘이런.’
하필 나까지 끊겨버린다.
어제 저녁 쯤에 상위 열 명이 발표되었다.
1위는 팔대고수의 공동 전인인 이정겸, 2위는 일존의 제자인 권영하, 3위는 열왕패도 진균의 손자인 진용, 4위가 나였다.
다른 녀석들보다 격세석에 큰 흔적을 남기지 않았는데, 초식이 아닌 검결을 쓴 게 컸는지 4위가 되고 말았다.
안 그래도 가장 처음으로 올라가는데 31명과 겨루게 생겼다.
“자 지금부터 진행 요원들이 갑을병정 패를 줄 거요. 각 패를 받은 후기지수들은 갑을병정이 표기된 단상으로 모이시오.”
당주들과 진행 무사들이 나와 호명하며 패를 나눠줬다.
내가 받은 패는 정(丁) 패였다.
상위 열여섯 명은 갑을병정 순으로 그대로 끊은 것 같았다.
가장 먼저 정 단상에 도착한 나는 그 위로 올라갔다.
연달아서 비무를 치를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피곤해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윽고 누군가 정 단상 밑으로 다가왔다.
‘아.’
1차 예선전에서 축계 구역에 격세석에 금이 가지 않고서 주먹을 관통시킨 그 후기지수였다.
-의심 간다고 했던 그 녀석 아니야?
‘맞아.’
녀석과 눈이 마주쳤는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역시 백혜향 측의 사람이 맞는 듯 했다.
눈에 묘한 호승심과 더불어 살기가 비치고 있는데, 혹시 녀석이 그 권영하가 경고했던 자가 아닐까?
공교롭게도 2차 예선전에서 만날 줄이야.
‘……차라리 이게 나을지도.’
백혜향 측은 조금이라도 빨리 만나서 떨어뜨리는 게 이득이었다.
어떻게 나올 지도 모르고 말이다.
그런데 이윽고 누군가가 또 정 단상으로 다가왔는데, 그는 바로,
‘!?’
송좌백이었다.
‘이런……’
녀석도 나를 보고서 적잖게 당황했는지 순간 멈칫했다.
이것 참 난감한 상황이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송좌백은 이렇게 예선전에서 만나게 되면 손해나 다름없었다.
송좌백이 내게 어처구니가 없다는 목소리로 전음을 보냈다.
이에 나는 그냥 답을 하지 않고 모른 척 했다.
단상 위에 있기 때문에 내가 녀석을 쳐다보든 안 하든 전음을 보내는 것은 위험부담이 컸다.
녀석도 그걸 알아차렸는지 별 다른 전음을 보내지 않았다.
그때 뒤를 이어서 정 단상 쪽으로 또 다른 후기지수가 걸어왔다.
그런데,
‘……하!’
나는 그것을 보고서 속으로 기가 막힐 수밖에 없었다.
또 다시 전혀 알려지지 않은 얼굴의 후기지수였는데, 이 자 역시도 내가 백혜향 측이 아닐까 의구심을 가졌던 후기지수였다.
먼저 왔던 백혜향 측의 후기지수도 녀석을 보고서 흠칫 놀랐는지 시선을 곧바로 돌렸다.
‘설마……’
나는 을 단상 쪽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도 후기지수들이 속속 모여들고 있었는데, 그곳에 나와 조성원이 첩자로 의심 간다고 짚었던 몇 명이 단상 밑에 굳은 인상으로 서있었다.
나의 머릿속에 누군가가 빠르게 스쳐지나갔다.
‘제갈원명.’
대진표를 이렇게 손 쓸 수 있는 자는 오직 단 한 사람뿐이었다.
첩자로 의심되는 자들이 죄다 을과 정 단상에 모였다.
멀리 무림 연맹의 진행석으로 누군가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는데, 바로 일군사인 제갈원명이었다.
‘대단하군. 대단해.’
만약 격세석의 성과 순이 아니었다면 전부 한 자리에 모아놓았을 것이다.
* * *
제갈원명이 을 단상과 정 단상을 쳐다보며 슬며시 웃었다.
이걸로 확실하게 첩자를 구분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었기 때문이었다.
저들이 공조를 하게 된다면 확실하게 구분할 수 있게 된다.
옆 좌석에 앉아 있던 화산파의 장문인 매화백검 호양 진인이 감탄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멋진 수요. 군사 어른. 외통수를 두셨소.”
“아직 확실한 건 아니니 너무 선입견은 두지 마시지요. 진인.”
“빈도는 군사의 안목을 믿소.”
“저도 틀릴 때가 있습니다.”
“허허허, 원 겸양도.”
“진인께서 을 단상을 잘 살펴주십시오. 저는 정 단상을 살피겠습니다.”
“알겠소. 저들이 조금이라도 허투루 비무에 임하거나 수상한 행동을 보이면 빈도가 반드시 잡아내겠소이다.”
“부탁드립니다. 진인.”
이 수는 여러 변수들을 전부 고려한 것이었다.
전력을 다하지 않고 상대를 봐준다면 세작일 가능성이 다분히 높아진다.
그리고 일부러 경기를 지연시키고 다른 후기지수들이 올라오는 것을 나눠서 상대하게 되도 세작일 가능성이 높아진다.
어떤 식으로든 그 확률을 엿볼 수 있게 된다.
‘의심을 피하기 위해 희생을 택한다고 해도 올라갈 수 있는 것은 단 둘. 물론 그마저도 31명을 이겼을 때 가능한 일이다.’
제갈원명의 시선이 정 단상을 매처럼 주시하고 있었다.
한편 정 단상 밑에서 두 번째로 대기하고 있는 청년은 내심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인피면구 속에 가려진 그의 정체는 오혈성의 첫째 제자인 상현명이었다.
‘소운휘.’
이런 기회가 오기만을 간절히 바라왔었다.
비무를 빙자해서 놈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어차피 의심받지 않으려면 최선을 다해서 상대를 공격해야 했는데, 자신에게는 전혀 나쁠 것이 없었다.
‘권 형만 곤란하게 되었군.’
이쪽은 백련하 측과 백혜향 측이 골고루 섞였다.
서로 거칠게 싸워도 전혀 나쁠 게 없는 상황이지만, 을 단상은 백혜향 측으로만 이뤄져서 어떤 식으로든 손해를 감수해야 했다.
‘내가 신경 쓸 바가 아니지.’
자신은 백혜향을 노리는 저 건방진 애송이 놈만 처리하면 그만이었다.
‘부군의 자리는 오직 내 것이다.’
소운휘를 처리하고 혈마검을 갖다 바치게 되면 그녀도 자신을 달리 볼 것이라 믿었다.
그때 단상 위에 있는 당주가 그를 호명했다.
“2번 후기지수 도별수 위로 올라오도록!”
도별수는 그의 가명이었다.
상현명이 단상 위로 올라갔다.
여덟 보 정도 떨어진 위치에 소운휘와 대치한 상태로 섰다.
선량한 얼굴을 하고서 가증스럽게 주위 관람석을 향해 포권을 취하는 모습에 심기가 불편해졌다.
‘어디서 연기질이야.’
자신의 계책마저 파악하고 뒤통수를 칠 만큼 영악한 놈이다.
지금 제거할 수 있을 때 제거해야 한다.
상현명은 머릿속으로 계산했다.
‘곧바로 살수를 날리게 된다면 어디선가 지켜볼 아가씨나 뒤에 올라올 자들의 경각심을 사게 될 거다. 적어도 10초식 이상은 겨룬다.’
자신은 이 승부를 이끌어나갈 수 있을 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격세석을 더 부술 수 있었는데도 여력을 조금이라도 감춘 이유는 후기지수들을 방심시키기 위해서였다.
‘절정 초입. 우습군.’
명색이 사존의 제자라는 놈이 약해빠졌다.
자신은 절정의 극에 달하는 실력을 지녔기에 언제라도 놈을 갖고 놀 수 있었다.
‘딱 10초식. 놈의 심장에 일격을 가한다.’
심판으로 서있는 당주가 손을 높이 치켜 올렸다.
그리고 시작을 알렸다.
“개(開)!”
상현명이 자신만만하게 소운휘를 향해 신형을 날렸다.
그리고 사문의 권초를 펼치려는 순간,
소운휘가 무서운 기세로 자신을 향해 뻗어오더니 이내 바닥에 강하게 진각을 밟았다.
-쾅!
그와 동시에 눈앞에서 갑자기 회오리가 일렁였다.
‘!?’
날카로운 검세가 일으키는 회오리에 당황한 상현명이 권초를 바꾸었다.
평범한 초식으로 도저히 막을 만한 기세가 아니었다.
그러나 회오리가 치고 들어오는 속도는 그가 상상한 것을 너무도 우습게 상회해버렸다.
-촤촤촤촤!
권갑을 끼고 있는 손과 팔목을 파고드는 예기.
그는 그제야 깨달았다.
‘이, 이 새끼 절정의 초입이 아니….’
하지만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
회오리치는 검세가 그의 권초를 가뿐히 파훼하고서 전신을 휩쓸었다.
‘젠장!’
검세의 회오리에 휩쓸린 그의 몸이 뒤로 밀려나더니, 이내 부웅하고 뜨고서 몇 바퀴나 회전하더니 이내 뒤로 튕겨져 나가고 말았다.
“허억!”
-쿠당탕!
바닥을 몇 차례나 튕겨나간 상현명의 상태는 말이 아니었다.
옷이 넝마가 되어 검흔으로 여기저기서 피가 흘러내렸다.
‘실력을 숨겼다니…..’
꼴이 말이 아니었다.
자신이 봐주고 할 그런 상대가 아니었다.
어떻게든 전력을 다해야 하는 그런 적수였다.
그런데 그의 귓가로 이해할 수 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음 부탁드립니다.”
소운휘의 목소리였다.
그와 함께 관람석에서 우레와 같은 함성이 터져 나왔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이해가 안 돼서 겨우겨우 몸을 일으켜 세워보니 그는 깨달을 수 있었다.
어디까지 튕겨져 나왔는지 말이다.
‘이, 이놈!’
그가 밟고 있는 곳은 다름 아닌 단상 아래였다.
끝
ⓒ 한중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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