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word Sense RAW novel - Chapter 11
8화 기기괴괴(奇奇怪怪) (2)
가파른 산봉우리를 오르는 두 명의 인영이 있다.
그들은 절벽을 평지마냥 몇 장씩 훌쩍 뛰어오르며 범인들이 할 수 없는 기행을 보여줬다.
절벽을 오르는 와중에 두 사람 중 한 명이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제 불찰입니다. 단주.”
그 한 명은 해옥선 대주였다.
수련 생도들을 이끌고 오르던 도중 제대로 봉변을 당한 그녀였다.
그녀보다 더 가벼운 신형으로 절벽을 오르고 있는 패혈 단주 구상웅이 고개를 저었다.
“대주가 어찌할 수 있는 분이 아니오.”
괘념치 말라고 말은 했지만 구상웅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그는 해옥선 대주에게서 중급 수련 생도 연무장에 난입한 자의 용모파기를 듣고서 골치가 아픈 일에 휘말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칫. 종종 그 미친 노인네가 이곳에 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설마 수련 생도에게 손을 댈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는 혈교의 네 절대자인 사존자들 중에 가장 기괴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같은 사존자들조차도 상대하기 꺼려할 만큼 미치광이다.
어디로 튈지 모를 성격 모두가 두려워 할 정도다.
“설마 그 녀석들을 죽이진 않았겠죠? 하급도 아니고 중급 수련 생도들은 구하기도 힘든데.”
“모르네.”
솔직한 심경으로 구상웅도 그건 확신할 수 없었다.
그가 전임자에게 듣기로는 기기괴괴 해악천은 워낙 괴팍해서 기분에 따라서는 같은 혈교인에게조차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고 한다.
서둘러 산을 오르던 그들은 봉우리의 고지에 자리하고 있는 동굴을 발견했다.
동굴 안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여기다.’
동굴의 앞에 선 그들의 얼굴이 긴장감으로 물들었다.
-팍!
구상웅이 한 쪽 무릎을 꿇고서 포권을 취하자, 해옥선도 이를 따라했다.
“혈세! 혈세! 혈혈세! 사존이시여. 올해부터 육혈곡의 생도들을 맡게 된 구상웅 단주가 인사 올립니다.”
동굴 안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해옥선이 전음으로 물었다.
[어쩌죠? 들어가봐야 하나요?] [기다리게. 그분의 심기를 건드려서 좋을 건…]바로 그때였다.
-슉!
동굴에서 뭔가 암기 같은 것이 날아왔다.
구상웅이 엄청난 속도로 발도를 하며 그것을 막아냈다.
-팍!
그 순간 이를 막은 구상웅의 신형이 뒤로 다섯 보 정도 밀려났다.
-촤르르르르!
“헛!”
다섯 보 밀려난 구상웅이 발바닥으로 내공을 집중하며 겨우 균형을 잡았다.
조금만 더 밀려났으면 그대로 절벽 아래로 떨어질 뻔 했다.
그런데 자신의 도를 살펴본 구상웅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씨?”
그의 도날에 반쯤 갈라져서 붙어 있는 그것은 열매의 씨앗이었다.
놀라운 일이었다.
씨앗에 담긴 힘이 어찌나 오묘했던지, 그것을 베지 못하고 도리어 신형만 밀려난 것이다.
‘괴물이로군.’
감탄을 하고 있는데 동굴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단주라고 하더니 제법이로구나. 클클.”
-팍!
구상웅이 다시 무릎을 꿇고서 소리쳤다.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저 같은 것은 사존의 발꿈치도 쫓지 못합니다.”
“흥. 당연한 이야기를 하는 구나.”
신경질적인 목소리에 구상웅이 인상을 찡그렸다.
띄워주는 말을 했는데 저런 반응을 보일 줄은 몰랐다.
‘정말 괴팍하구나.’
소문은 사실이었다.
괜히 심기를 거슬렸다가 무슨 사달이 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여기까지 올라와서 수련 생도들을 그냥 내버려두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구상웅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사존이시여. 저희가 관리하고 있는 수련….”
“본좌가 그 아이들에게 해코지라도 할까봐 겁이 나는 것이냐?”
“아, 아닙니다.”
“하면 그만 신경 끄고 하산 하거라.”
“하오나 사존. 그 아이들은 본교의 무사로 키울…..”
-슉! 팍!
“컥!”
날아온 열매가 구상웅의 가슴을 때렸다.
어떻게든 막자면 막을 수 있었지만 두 번이나 그의 공격을 막아내면 일이 더 복잡해질 거라 여긴 그는 이를 감수했다.
덕분에 내상을 입었는지 속이 들끓었다.
“클클, 데려간 아이들은 자질이 그럭저럭 쓸 만한 듯 하여 이곳에 머무는 동안 본좌가 몇 가지 재주를 가르쳐볼 생각이노라.”
‘!!!’
그 말을 들은 구상웅과 해옥선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사존 중 한 사람인 해악천이 가르침을 전한다는 것은 전인으로 삼겠다는 말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여태껏 이 늙은이는 제자를 받지 않았는데.’
사존들 중에 유일하게 세력이나 제자를 두지 않는 그였다.
“그런 뜻인 줄도 모르고….”
“착각하지 말거라.”
“네?”
“그저 이곳에 머무는 동안 적적함을 달래기 위함이다.”
제자로는 두지 않겠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 같은 절세고수의 가르침은 기연이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사존의 일인인 해악천의 가르침을 받은 자를 누가 가벼이 대할 수 있겠는가.
한데 여기서 의아한 점이 하나 있었다.
“하온데 사존. 데려가신 생도들 중에 소운휘라는 아이는 단전이 부서져서, 사존께서 가르침을 내리기에는….”
“클클, 누가 이놈을 가르친다고 했느냐. 이놈은 본좌가 이곳에 머무는 동안 수발을 들게 할 것이다.”
말인 즉,
시종처럼 부려먹겠다는 소리였다.
구상웅이 난감해했다.
그때 해옥선이 잘됐다며 전음을 보냈다.
[괜찮지 않습니까? 단주. 어차피 녀석이 중급 패를 받았다고 해도 잘 가르쳐봐야 하급 무사에 불과합니다. 다른 생도들에게 관심을 돌리지 않게 내어주시죠.] [흠……]고민을 하던 구상웅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말대로 괜히 저 미치광이 늙은이가 다른 생도들에게 해코지를 하지 못하게 계륵이나 다름없는 소운휘를 내줘도 괜찮을 듯 했다.
[녀석이 익양소가 출신이라 나중에 무림 연맹으로 보내는 첩자로 써먹어도 괜찮다 싶었는데, 별 수 없군. 그렇게 하세.]소운휘가 들었다면 화들짝 날 뛸 이야기였다.
혈교에는 이미 그를 첩자로 활용할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구상웅이 포권을 취하며 정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팍!
“알겠습니다. 하면 소인들은 물러나도록 하겠습니다.”
* * *
‘이런 미친!’
밖에서 들리는 구상웅의 목소리에 나는 정신이 혼미해졌다.
지금 저놈들 나를 이 미치광이 늙은이의 수발이나 들라고 남겨두고 가는 것이었다.
망연자실해하고 있는 내 모습에 송좌백이 키득거리며 웃었다.
‘빌어먹을!’
이놈 정신을 못 차렸다.
깨어나서 미친놈 마냥 해악천에게 덤벼들었다가 죽사발이 나도록 얻어터진 그였다.
한데 제 놈에게는 재주를 가르쳐주고 나는 시종처럼 부려먹겠다는 말에 즐거워하고 있었다.
“제자가 스승님께 절을 올리겠습니다. 뭐해?”
“어어…..저, 절을 올리겠습니다.”
송좌백이 동생과 함께 해악천에게 절을 올리려 했다.
그의 대단한 정체를 알고 나니, 어떻게든 잘 보이기 위해 안달이 난 모양이다.
그런데 어쩌나.
“누가 네놈의 스승이라는 거냐.”
-퍽!
“어억!”
절을 하는 녀석의 머리통을 해악천이 발로 걷어찼다.
진짜 미치광이 늙은이었다.
괜히 기기괴괴라고 불리는 것이 아니었다.
‘아아….’
이런 변수가 생겨날 줄은 몰랐다.
최악의 상황이었다.
해악천이 얼마나 이곳에 머무를지는 모르겠지만 만약에 일 년이 넘게 머무른다면 단전을 소생시키는 계획은 완전히 물 건너 간다.
‘어떻게 하지?’
도망을 가자니 이 미치광이 늙은이는 너무 괴물이었다.
그렇다고 도망에 성공해도 이미 단주가 나와 이 녀석들을 해악천에게 넘기기로 한 통에 중급 훈련장으로 복귀도 할 수 없었다.
당황해하고 있는데 해악천이 뜬금없이 내게 말했다.
“두 시진 내로 먹을 걸 구해와라.”
“네?”
“고기가 먹고 싶구나. 클클.”
“……..”
이 늙은이가 돌았나.
아까 전에 봤는데 이곳은 거의 낭떠러지 수준의 절벽이었다.
워낙 가파르기 때문에 경공술을 익힌 무림인이 아니고는 오르고 내려가는 게 굉장히 힘들어보였다.
“여길 무슨 수로 두 시진….”
‘잠깐.’
차라리 도망치는 편이 나을까.
전생에 귀가 따갑게 들었던 말이 있었다.
기기괴괴 해악천의 괴행은 모든 혈교인들조차 그를 꺼리게 만들 정도였다.
어차피 이놈에게 찍혔다면 혈교에서 뭔가를 해볼 생각을 하지 말고 어떻게든 탈출을 시도하는 편이 나을 지도 몰랐다.
‘후우.’
진정하고 최대한 감정을 숨기고 말했다.
“……알겠습니다. 한데 저는 무공조차 익히지 못해서 무기라도 없으면 고기는커녕 뭐 하나 잡기도 힘듭니다.”
소담검을 되찾기 위한 생각한 잔꾀였다.
돌려 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클클.”
그때 해악천이 나를 향해 손가락을 튕겼다.
-콰득!
나의 뺨을 스치고 지나간 열매 씨앗이 동굴의 벽에 박혔다.
피가 흘러내리는데 고개를 돌리지 못하겠다.
“잔꾀가 많은 놈이로구나. 클클, 지루하지 않겠다만 그럴수록 네놈의 명줄이 짧아진다는 것을 명심 하거라.”
“……..”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진짜 거짓말 안하고 오줌을 지릴 것 같다.
-탁!
꼼짝도 못하고 있는 내게 해악천이 뭔가를 집어던졌다.
얼떨결에 그것을 받아들었는데 소담검이었다.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해악천을 쳐다보자 그가 이죽거리며 말했다.
“가져가라. 그깟 낡은 단검 따위는 본좌도 필요 없다.”
녹슨 소담검을 그대로 방치해둔 게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내 머릿속에 소담검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끼야아아아아! 저 털복숭이 야인 놈이 나를 막 만져댔어. 완전 극혐.
극혐? 그건 대체 무슨 말이야?
되찾아서 반갑기는 한데 지금 네가 투정 부리는 것을 받아줄 때가 아니다.
어떻게든 도망을 쳐야 했다.
내가 소담검을 허리에 차고 동굴 바깥으로 나가려 하자, 해악천의 목소리가 귀에 꽂혔다.
“혹 도망치려다 들키면 죽을 각오하는 게 좋을 거다.”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참 특이하다.
도망치지 말라고 위협하니까. 더 도망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굴 바깥으로 나간 나는 밑을 쳐다보았다.
침을 꿀꺽 삼켰다.
-진짜 가파르다. 이래서 빨리 도망칠 수 있겠어?
‘무슨 수를 내든 해봐야지!’
나는 절벽의 바위를 붙잡고 조심스럽게 다리를 내렸다.
그냥 타고 내려가기에는 너무 가파랐다.
후들거리는 손과 발을 조심스럽게 하나씩 내리면서 밑으로 향하는데, 위쪽에서 갑자기 비명 소리가 들렸다.
“우와아아악!”
“으어어!”
위를 쳐다보니, 말도 안 되는 광경이 보였다.
‘!!!’
해악천이 쌍둥이 형제를 양 옆구리에 끼고서 이 가파른 산봉우리를 평지 걷듯이 달리며 산꼭대기 쪽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바로 앞에서 보였던 것이 어느새 점이 되어 사라졌다.
소담검이 내게 무거운 목소리로 물었다.
-…….진짜 도망칠 수 있겠어?
씨바. 의욕상실하게 만드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