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word Sense RAW novel - Chapter 112
43화 망령 (1) >
“거추장스럽군.”
소운휘가 묶고 있던 머리카락을 풀었다.
길게 늘어진 붉은 머리카락이 목선을 따라 하늘거리며 내려왔다.
평소 그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늘 격을 갖추고 자신을 낮추는 모습이 소운휘였다면 지금은 오만하면서도 패기 넘치는 모습에 가까웠다.
“마음에 들어.”
선홍빛 안광을 보이고 있는 눈동자가 가늘어지며 눈웃음을 짓고 있었다.
“쿨럭.”
갑자기 들리는 사마영의 기침 소리에 조성원이 걱정스러운 듯이 물었다.
“내상이 심한 겁니까?”
영문을 알 수 없지만 지금 최악의 사태가 벌어졌다.
그런 와중에 사마영이 내상으로 움직일 수 없게 된다면 수습을 하기 힘들어진다.
“마영?”
대답이 없어서 쳐다보니, 사마영이 소운휘를 바라보며 살짝 상기된 얼굴로 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마영! 뭐하는 겁니까?”
“뭔가 되게 색기…”
“뭐요?”
“아, 아니에요.”
사마영이 다급히 얼버무렸다.
그때 북영도성 곽형직이 심각해진 목소리로 소운휘에게 말을 걸었다.
“소형제. 아직 제 정신이라면 검을 내려놓게.”
말은 이렇게 하고 있었지만 곽형직의 도병을 잡고 있는 손에 힘이 들어가고 있었다.
소운휘에게서 느껴지는 불길한 기운과 지독한 살의는 도저히 그와는 관련이 멀었다.
오히려 먼 옛날에 경험했던 그것과 흡사했다.
“사형!”
사마영도 그를 불렀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손짓을 해가며 말했다.
“검의 요성에 사로잡히면 안돼요. 부디 검을 내려놓으세요.”
“검에 굴복하시면 안 됩니다!”
조성원도 긴장된 목소리로 말을 덧붙였다.
한데 소운휘는 그들의 말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고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뭔가를 감미 하는 듯 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런 육신이 있을 줄이야. 직계보다도 괜찮군.”
무슨 소린지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혼자 중얼거리고 있었다.
곽형직이 도를 겨냥하며 외쳤다.
“소형제. 검을 내려놓게!”
이에 소운휘가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내려놓게 해보거라.”
오만함이 가득한 목소리에 곽형직이 인상을 찡그리며 기수식을 취했다.
그런 그에게 사마영이 말했다.
“설마 사형에게 해코지를 하시려는 건 아니시죠?”
“자네도 검을 들게. 자네 사형을 보면 모르겠나? 지금 검의 요성에 사로잡혔네.”
“어쩌시려고요?”
“검을 손에서 놓게 해야 할 것 아닌가.”
사마영이 미덥지 못하다는 듯이 쳐다보며 물었다.
“정말이죠?”
“제자에 대한 빚을 졌는데, 내가 자네 사형에게 해코지라도 할 것 같은가. 그리고 지금 그럴 상황이….”
-스륵!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눈앞으로 인영이 아른거렸다.
‘!?’
곽형직이 다급히 도를 위로 들어올렸다.
그 순간 도날로 묵직함이 실린 검이 내리쳐졌다.
-채애애앵!
‘이게 무슨!’
굉장히 가볍게 내리친 것 같았는데, 곽형직이 그 힘을 이기지 못하고 무릎이 구부려지고 말았다.
만약 오른팔만 있었어도 일 장이나 일 권을 날려 견제했겠지만, 지금의 그로서는 내려치는 힘을 견디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그를 검으로 내려친 자는 다름 아닌 소운휘였다.
“소….소형제! 정신차리게!”
“한 팔로 제법이군.”
“소형제!
“뭐라고 하는 것이냐?”
소운휘가 그대로 그의 가슴을 걷어찼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고수답게 그 찰나에 들고 있던 도를 놓고서 과감하게 뒤로 몸을 젖혔다.
그 상태에서 뒤로 손을 짚어 공중제비를 돌며 발로 도의 손잡이 부분을 낚아챘다.
낚아채면서 곽형직의 발이 슬쩍 움직였다.
-슉!
그러자 도가 회전을 하며 소운휘의 옆으로 날아들었다.
당연이 피할 거라 여겼지만,
-콰직!
‘!?’
물구나무로 위를 쳐다보던 곽형직의 두 눈이 커졌다.
회전하는 도를 소운휘가 잡아냈다.
그것도 모자라 손가락들이 도날을 뚫고 나와 있었다.
“기발하구나. 외팔을 이런 식으로 극복한 것이냐?”
소운휘가 흥미롭다는 듯이 말했다.
한데 그런 칭찬이 전혀 달갑지 않았다.
왜냐하면 몸을 바로 일으켜 세우려고 하는 그의 심장부로 소운휘의 피처럼 붉게 물든 혈마검이 찔러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슬아슬한 순간에 소운휘가 검의 경로를 바꿨다.
그리고 누군가의 일검을 막아냈다.
-채앵!
“윽!”
뛰어올라 검을 내리쳤던 사마영의 신형이 도리어 위로 밀려났다.
사마영은 깃털이라도 된 것처럼 밀려난 상태에서 몸을 회전시키더니 다시 한 번 소운휘를 향해 검초를 날렸다.
정확하게 말하면 검을 잡고 있는 손목을 노리고 있었다.
“계집이 제법 검을 다루는군.”
‘!?’
사마영이 순간 흠칫했다.
그러는 찰나에 그녀의 검을 소운휘가 검지와 중지로 잡아냈다.
“그 얼굴 좀 볼까?”
혈마검이 그녀의 얼굴로 날아왔다.
놀란 사마영이 검병을 놓고서 회피하려 들었지만 검이 너무 빨랐다.
“나를 잊은 것이냐!”
그 찰나에 곽형직이 왼쪽 다리로 소운휘의 손목을 휘감으며 그대로 오른발로 번개처럼 걷어찼다.
-퍽!
‘이런…..’
물러나게 하려고 걷어찬 것이었는데 그대로 맞고 말았다.
운이 없으면 목이 꺾일 수도 있다.
한데 소운휘는 멀쩡했다.
“다했나?”
굵은 통나무라도 된 것처럼 소운휘의 목의 근육이 단단해져 있었다.
곽형직이 어처구니 없어하는데, 소운휘의 뒤로 누군가 달려와 굉장한 기세로 두 손으로 양장을 날리고 있었다.
소운휘가 피식하고 웃었다.
그리고는,
“아닛?”
-팟!
다리를 감고 있는 곽형직을 그대로 들어 올려 뒤로 던져버렸다.
“헉!”
조성원이 다급히 양장을 거뒀지만 곽형직과 부딪치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
부딪친 두 사람은 서로 엉켜서 바닥을 몇 바퀴나 굴렀다.
“그 사이에 피한 것이냐?”
소운휘가 고개를 돌리며 열 보 이상 떨어진 사마영에게 말했다.
사마영의 눈동자가 떨렸다.
‘장명이랑 달라.’
폭주한 장명은 살의로만 움직였다.
한데 지금 소운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겉모습만 같은 괴물을 상대하는 기분이었다.
‘…….제압할 수가 없어.’
묶어두려고 해도 세 명이서 어쩔 수가 없었다.
처음 장명을 제압했을 때보다 자신들은 지쳐있었고, 설사 멀쩡하다고 한들 불가능해보였다.
“벌써 전의를 상실한 것이냐?”
소운휘가 실망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이에 사마영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당신 대체 누구에요?”
단순히 검에 사로잡혀 미쳤다고 하기에는 사람이 달라졌다.
이에 소운휘가 입 꼬리를 올리며 답했다.
“나는 망령이다.”
“망령?”
“피로 세상을 물들일 망령이지.”
-스륵!
소운휘의 신형이 흐릿해지며 어느새 사마영의 앞으로 나타났다.
사마영이 다급히 검초를 펼치며 뒤로 몸을 날리려고 했지만 소운휘는 검이 뱀처럼 그녀의 검에 얽히더니, 이내 손에서 검을 떨어뜨려버렸다.
“검은 이런 식으로 놓게 하는 것이다. 계집.”
-팍!
“악!”
소운휘가 왼손으로 그녀의 목을 움켜쥐었다.
고통스러워하며 그녀가 발버둥을 치는데, 소운휘가 비릿하게 웃으며 말했다.
“나는 죽여도 죽지 않는다. 내가 누군지 알겠느냐? 계집.”
“컥컥….”
그녀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고통스럽느냐? 그게 죽음의 순간이란…..”
“개…..”
“개?”
“개…소…리 좀 지껄이지마!”
-휙!
그녀가 자신의 목을 움켜쥐고 있는 소운휘의 왼쪽 팔목을 두 다리로 휘감았다.
그리고 십성 공력으로 소운휘의 팔목을 꺾어버리려고 했다.
“아으으으!”
사마영이 안간 힘을 쓰며 꺾으려들었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소운휘의 팔목에 매달린 꼴만 되었다.
“어리석구나. 살수를 펼쳐도 나를 막을 수 있을까 말까인데.”
“으으으.”
“검을 떼어내면 이 몸의 주인을 원래대로 돌려놓을 수 있을 것 같으냐?”
그때 소운휘가 피식하고 웃더니 갑자기 쥐고 있던 혈마검을 손에서 놓았다.
‘!?’
혈마검이 손에서 떨어졌는데 소운휘는 전혀 변함이 없었다.
여전히 강렬한 살기를 내뿜고 있었다.
사마영은 이 상황을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 어째서?”
“이 몸은 이미 내 것이다. 검을 뗀다고 변할 것은 없다. 그리고….”
-팍!
소운휘가 발로 떨어져 있는 사마영의 보검을 위로 튕겨냈다.
그리고는 손으로 검병을 뒤로 쳐냈다.
-슉!
검이 엄청난 속도로 날아갔다.
왜 그러는가 싶었는데 곽형직이 뒤를 노리고 있었다.
“젠장!”
곽형직이 날아오는 사마영의 보검을 다급히 막아냈지만, 그렇지 않아도 소운휘의 손가락에 반쯤 금이 가있던 도가 완전히 부서지고 말았다.
-쨍그랑!
여파로 뒤로 밀려난 곽형직이 비틀거렸다.
그의 입가로 피가 흘러내렸다.
내상을 입은 것이다.
‘낭패다.’
곽형직은 이 상황을 절망스러워할 수밖에 없었다.
혈마검을 손에 놓았는데도 저런 모습이라면 소운휘를 되돌릴 방법이 없다는 의미였다.
연거푸 이어지는 싸움으로 내력도 3할 가량 밖에 남지 않았다.
곽형직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동귀어진의 수밖에 없나.’
그의 예상이 맞다면 소운휘는 그저 혈마검에 사로잡힌 정도가 아니었다.
한없이 그 존재에 가까워졌다.
차라리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이 자리에서 죽이는 것이 답일 수도 있었다.
그때 어디선가 기척이 느껴졌다.
‘아!’
곽형직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경으로 외쳤다.
“누군지 모르겠지만 도와….”
하지만 그는 그 말을 전부 이을 수 없었다.
‘!?’
수풀을 뚫고서 나타난 세 명의 모습에 오히려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거구의 근육질의 세 사내였다.
특히 한 명은 굉장한 거구였는데, 털복숭이의 야인처럼 보이는 모습을 보는 순간 곽형직은 단번에 알아볼 수밖에 없었다.
‘기기괴괴!’
혈교의 존자들 중 한 사람이 아닌가.
20여 년 전의 정사 대전에서 그와 몇 번이나 부딪쳤었다.
‘최악이다.’
하필 나타나도 그가 나타나다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갈지 전혀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그때 기기괴괴 해악천이 소운휘의 변한 모습을 발견하더니,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소운휘 역시도 그를 쳐다보더니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호오. 본 적이 있는 얼굴이구나.”
‘!!!’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해악천이 한 쪽 무릎을 꿇고서 예를 갖췄다.
그리고 고개를 숙이며 황급히 외쳤다.
“혈마이시여!”
끝
ⓒ 한중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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