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word Sense RAW novel - Chapter 118
44화 피 (4) >
나의 변화에 복면인들이 술렁거리고 난리가 났다.
“머, 머리가 붉어졌어!”
“저 눈……”
“아가씨와 같잖아.”
반신반의 했지만 다행히도 혈천대라공의 경지에 올랐을 때와 같은 현상이 발현되었다.
확신할 수 없지만 이것은 혈마의 원념이 담긴 백(魄)을 흡수해서 일지도 몰랐다.
-운휘. 너 괜찮아?
머릿속에서 소담검의 목소리가 울렸다.
‘괜찮아.’
-놀랐잖아. 또 망령에게 몸이 빼앗겼나 싶어서.
-나도 놀랐다. 운휘.
녀석들도 갑작스러운 내 변화에 놀랐나 보다.
어찌 되었든 예상대로 혈마의 염(念)을 일으키면 외적인 변화가 생긴다.
그 덕분에 복면인들이 놀라면서도 당혹스러워하고 있었다.
다른 자들의 반응은 중요하지 않다.
오직 단 한 사람.
이들을 모두 통제할 수 있는 사혈성 도장호가 어떻게 나오느냐가 중요했다.
“혈마검을 저는 다룰 수 있습니다. 사혈성.”
그런 나의 말에 사혈성이 인상을 찡그린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떨리는 눈을 보면 분명 흔들리고 있었다.
‘어떻게든 속아 넘겨야 해.’
솔직히 나 역시도 이 현상을 이해할 수 없었다.
-재밌는 놈이네. 자기 피에 뭐가 섞여있는 줄도 모르고.
혈마검 녀석이 내게 했던 말이 떠올라서 순간의 기지로 저지른 짓이다.
어머니와 비월영종에 어떤 비밀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위기를 타개하려면 무엇이든 써먹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때 다른 복면인들과 마찬가지로 놀라하던 문 단주가 입술을 뗐다.
“흔들리지 마라! 그분의 피를 이은 것은 우리 아가씨와 백련하 아가씨뿐이다.”
술렁이는 분위기를 잡으려 들었다.
그의 외침에 복면인들이 어쩔 줄 몰라 했다.
나는 그런 복면인들을 향해 외쳤다.
“보고도 믿지 못하는 겁니까? 단 둘만 남았다고 어떻게 확신하십니까?”
에라 모르겠다.
어차피 저질렀는데 여기서 더 못할 게 어디 있겠나.
나는 문 단주를 쳐다보고서 밀어붙였다.
“당신의 잣대로 그걸 확신할 수 있습니까? 그리고 설마 이걸 보고도 본교의 율법을 무시하는 겁니까?”
“그건……”
문 단주가 순간 말문이 막혔다.
율령까지 들먹이니 당황스럽겠지.
신물인 혈마검의 주인이야말로 차기 교주이자 혈마가 된다.
내 입으로 말하면서도 참 대담하다 싶다.
어찌 보면 지금 나는 혈교인들의 앞에서 내가 새로운 혈마라고 이야기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하하핫. 좋은 마음가짐이로군. 이 몸의 부하로 삼은 보람이 있구나.
‘입 다물어.’
전부 너 때문에 벌어진 일이잖아.
그때 무겁게 입을 꾹 닫고 있던 사혈성 도장호가 입을 열었다.
“볼 때마다 본좌를 놀라게 하는 재주가 있군.”
“…….인정하지 않으실 겁니까?”
“그분의 피를 이은 또 다른 후계자라…..”
-스릉!
‘!?’
어라. 이건 의도한 상황이 아닌데.
사혈성 도장호가 검집에서 검을 뽑아 내게 겨냥했다.
이를 본 문 단주가 화색이 돌아왔다.
“사혈성!”
그런데 사혈성 도장호는 그에게 손을 내밀며 가만히 있으라는 신호를 보냈다.
문 단주가 의아해하는데, 그가 내게 말했다.
“보여주게. 정말 그분의 진전을 이었는지.”
-팟!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도장호의 신형이 내게 뻗어왔다.
그의 검이 동시에 여덟 방위로 검영이 갈라지더니, 바깥에서부터 안쪽으로 좁혀 들어왔다.
직접 검을 섞어 나를 시험하려는 건가.
그렇다면 보여주는 수밖에 없다.
‘후우.’
정신을 집중하자 손등의 천권의 점이 더욱 진하게 붉은 빛을 냈다.
시험해보고 싶었지만 이런 식으로 쓰게 될 줄이야.
상단전의 염(念)이 반응을 하면서 마치 오래 전부터 무공을 써왔던 것처럼 내 몸이 저절로 움직였다.
혈마검이 붉은 궤적을 그리며 물 흐르듯이 원을 그렸다.
-채채채채채챙!
그러자 여덟 방위로 좁혀오던 도장호의 검영이 바깥으로 튕겨나갔다.
그 상태에서 나는 검을 앞으로 내질렀다.
도장호가 빠르게 검면으로 막아냈다.
-챙!
막힘과 동시에 혈마검의 검 끝이 진동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빠르게 떨렸다.
그와 함께 검면에 충격이 가해졌다.
-파팍! 팡!
“흡!”
도장호의 신형이 뒤로 튕겨나가 다섯 보 정도 밀려났다.
-우우우웅!
도장호의 검이 검명을 내며 검신 전체가 떨리고 있었다.
그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나 역시도 내 손으로 직접 펼쳤지만 내심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게 혈천대라검.’
혈마의 비전 검법이었다.
혈천대라검 제 3초식 경원무혈(勁原武血).
검 끝에 기운을 집중하여 발경(發勁)이나 침투경(浸透勁)과 같이 경력의 효과를 내는 검초였다.
최상승의 검예라고 할 수 있었다.
“과연. 그렇다면 이건 어떤가.”
도장호가 보법으로 다섯 보 정도 물러나며 느슨하게 검병을 움켜쥐었다.
그리고는 바닥에 검끝을 닿게 내려놓았다.
“받아보게.”
그 말과 함께 도장호가 바닥에 검을 끌면서 앞으로 달려왔다.
-치치치치치!
바닥에 끌리는 검 끝에서 마찰로 푸른 불꽃이 튀었다.
그 상태에서 도장호가 검으로 독특한 궤적으로 그리자 검초에 푸른 불꽃이 달라붙은 채 눈을 부시게 만들었다.
“오오오!”
“검뇌!”
복면인들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이게 그 유명한 사혈성의 검뇌(劍雷)인가 보다.
어째서 검초에 뇌라는 말이 붙느냐 했는데 과연 명성대로였다.
-제법이군. 보여줘라. 혈우만천을.
혈마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녀석의 말처럼 도장호의 검초를 보는 순간 머릿속에서 혈천대라검의 제 5초식 혈우만천(血雨萬穿)이 떠올랐다.
나는 발검술을 펼치듯이 검을 왼쪽으로 끌어당겨 허리를 최대한 틀었다.
그리고 검을 내질렀다.
-촤촤촤촤촤촤촤!
그 순간 몸이 팽이처럼 빠르게 회전하며 무수한 붉은 검의 궤적들이 폭우가 쏟아지듯이 사혈성 도장호의 검뇌를 향해 폭사되었다.
-채채채채채채챙!
빗속을 뚫듯이 도장호가 앞으로 억지로 파고들었다.
그러나 푸른 불꽃은 이윽고 그 빛을 잃고 도장호의 신형이 뒤로 밀려났다.
-촤르르르르!
미끄러지듯이 뒤로 밀려나간 도장호의 곳곳에 검흔이 남았다.
그래도 대단한 게 주요 요혈들은 전부 막아냈다.
한데 주변은 정적으로 물들어 있었다.
주위를 슬쩍 보니 복면인들이 어안이 벙벙해져서 쳐다보고 있었다.
나와 도장호의 초식이 부딪친 곳에 폭우라도 몰아친 것처럼 수십 갈래의 검흔이 날카롭게 파여 있었다.
‘하!’
나 스스로도 믿기지가 않았다.
중단전의 힘만으로 겨뤘다면 사혈성 도장호의 무위가 나보다 한두 수 위였을 것이다.
그런데 혈마의 백(魄)의 힘을 끌어내자, 오히려 내가 그보다 우위를 점했다.
다만 상단전의 염(念)의 소모가 컸다.
지금으로선 천권으로 혈마의 힘을 유지하는 건 길어야 반각이 한계로 보였다.
-쯧쯧, 한참 모자라군.
혈마검이 혀를 찼다.
그 정도는 나도 안다.
직접 연마한 힘이 아니라 온전히 혈마의 수준에 이르는 초식을 구현할 수 없었다.
그래도 지금은 이 정도로 충분하다.
사혈성 도장호가 바닥을 향해 진각을 밟았다.
-쿵!
그러자 그의 발바닥을 타고서 바닥에 수 갈래의 금이 생겨났다.
몸을 파고든 예기를 몰아낸 것이었다.
‘역시 사혈성.’
혈교의 최고수들 중 한 사람답다.
모두가 긴장된 얼굴로 그와 나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때 도장호가 호흡을 가다듬더니 검 끝을 밑으로 향하게 하고는 내게 포권을 취했다.
‘!?’
갑작스럽게 예를 갖추는 모습에 복면인들이 놀라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도장호가 내게 말했다.
“사혈성 도장호가 공자께 인사드립니다.”
모두가 술렁였다.
지금 갖춘 예는 나를 혈교의 후계자 중 하나로 인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혈교의 최고 간부 중 한 사람인 그가 예를 갖추자, 복면인들이 머뭇거렸다.
이에 문 단주가 일그러진 얼굴로 소리쳤다.
“사혈성!”
도장호가 그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보지 않았나? 혈천대라공을 익힌 게 틀림없네. 그렇다면 공자께서도 그분의 피를 이은 후계가 맞네.”
그 말에 문 단주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사혈성마저 인정한 상황이기에 부정하기 힘들어서일 것이다.
복면인들이 하나둘씩 예를 갖추려했다.
“그만!”
그런 그들에게 문 단주가 소리쳤다.
그리고 내게 검을 겨냥하며 말했다.
“사혈성. 설사 그렇다고 할지언정 저희는 아가씨께 충성을 맹세하지 않았습니까? 그렇다면 저희가 할 일은 하나입니다.”
“……..”
“검을 빼앗아서 아가씨께 바쳐야 합니다!”
문 단주가 사혈성에게 반기를 들자 예를 갖추던 복면인들이 이를 멈췄다.
그들의 난처한 기색이 보였다.
나는 이를 흔들어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사혈성과 문 단주, 복면인들을 향해 목소리에 힘을 주고서 외쳤다.
“율령을 어길 셈입니까? 검을 가진 이상 지금 저는 본교의 혈마입니다.”
‘!!!’
그 말에 사혈성 도장호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기 힘들었다.
그의 모호한 모습에 문 단주가 안 되겠다 싶었는지 복면인들에게 외쳤다.
“혈마검진을 전개하라! 우리의 혈마는 오직 아가씨뿐…”
그때였다.
-쾅!
안가 쪽에서 굉음이 터져 나왔다.
뒤를 돌아보니 부서진 벽면에서 강렬한 기세를 내뿜으며 누군가 성큼성큼 걸어 나오고 있었다.
“스승님!”
그는 바로 기기괴괴 해악천이었다.
-오! 미친 노인네가 회복했어!
소담검이 신이 나서 내게 소리쳤다.
녀석의 말대로 해악천에게서 흘러나오는 기운을 보며 확실하게 회복했다.
본인이 호언했던 시각보다는 길어졌지만 산공독을 몰아내는데 성공한 모양이다.
“사, 사존…..”
해악천이 나타나자 문 단주를 비롯해 복면인들 모두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거구의 그가 풍기는 기세에 압도당한 듯 했다.
이제야 구색이 맞춰졌다.
나는 해악천에게 반갑게 전음을 보냈다.
그런데 해악천이 나를 쳐다보며 묘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전음을 보냈다.
의아해하고 있는데 해악천이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복면인들을 향해 귀청이 울릴 만큼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외쳤다.
“누가 혈마의 앞에서 당당히 서있는 것이냐! 꿇어라!”
‘!?’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겁니까?
시간을 끌기 위해서 임시방편으로 저지른 짓인데.
그런데 해악천의 외침 소리가 끝난지 얼마 되지 않아, 절반이 넘는 복면인들이 우르르 무릎을 꿇고서 예를 갖추기 시작했다.
이에 당황한 문 단주가 그들을 다그쳤다.
“네, 네놈들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건지 아는 것이냐? 당장 일어나라! 일어나지 못할까!”
그의 외침에도 무릎을 꿇은 복면인들은 조금도 미동이 없었다.
어쩔 줄 몰라하고 있는데 사혈성 도장호가 입을 열었다.
“사존 어르신. 오랜만에 뵙습니다.”
“흥! 오랜만이고 자시고 네놈은 무릎을 꿇지 않을 것이냐?”
해악천의 다그침에 도장호가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말했다.
“세상일은 참 알기 어렵군요. 제가 이곳에 오게 된 것도 운명이겠지요?”
“무슨 개소리를 지껄이는 것이냐?”
“제 판단이 옳기를 바라야 겠군요.”
알 수 없는 말을 내뱉은 도장호가 시선을 문 단주에게로 돌렸다.
“문 단주. 본좌는 율령에 따라 지금부터 공자를 새로운 혈마로 모실 걸세. 하나 자네는 그렇지 않겠지?”
“사혈성! 어찌 아가씨를….”
-촥!
그의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도장호의 검이 문 단주의 목을 스치고 지나갔다.
목이 갈라지며 문 단주의 머리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문 단주의 목을 벤 도장호가 내게 한 쪽 무릎을 꿇고서 예를 갖추며 말했다.
“혈마이시여. 명을 내려주십시오. 화근들을 제거하겠습니다.”
도장호가 말한 화근들은 무릎을 꿇지 않은 복면인들이었다.
끝
ⓒ 한중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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