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word Sense RAW novel - Chapter 121
45화 피의 근원 (2) >
호북성을 벗어나 북상하게 되면 신야(新野)에 이른다.
신야에서 동북쪽으로 이십 리 정도 올라가면 야북현이라는 작은 마을이 있다.
마을의 북쪽에 자리한 한 장원.
장원 내 별실의 상석에서 탁자 위로 하얗게 드러난 다리를 올리고서, 부채질을 하고 있는 붉은 머리카락의 여인이 있었다.
그녀는 혈교의 교주 후보 중 한 사람인 백혜향이었다.
백혜향의 우측 옆에는 뇌혈검 장룡이 탁자 위에 펼쳐진 중원 전도를 손으로 짚으며 열심히 무언가를 설명하고 있었다.
지겹다는 듯이 부채질을 하며 듣고 있는데,
-똑똑!
누군가 별실의 문을 두드렸다.
“누구지?”
일혈성 장룡의 물음에 밖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백혈 단주 나심형입니다.”
“들어와라.”
문이 열리고 나심형이 들어와 백혜향에게 예를 취했다.
그녀가 귀찮아하며 손을 휙휙 젓자 나심형이 난처하다는 목소리로 보고했다.
“문제가 생겼습니다.”
“문제?”
“장강 쪽에서 올라왔어야 할 전서구가 끊겼습니다.”
보고를 듣는 둥 마는 둥 하던 백혜향이 부채질을 하던 것을 멈췄다.
그리고 나심형에게 물었다.
“장강이면 홍호시 근방의 부두?”
“네. 파경 단주 문율이 임무를 맡은 곳입니다. 그쪽의 전서구만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속단하기 이르지만 보고를 드려야 할 것 같아서….”
그 말에 일혈성 장룡이 중얼거렸다.
“공교롭군.”
단 한 번만 날아오지 않은 전서구.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단 두 가지뿐이었다.
도중에 전서구로 쓰는 비둘기에 문제가 생기거나, 보내는 쪽에서 문제가 생긴 것이다.
속단하기 힘들다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한 말이었다.
“보고는 그것뿐인가?”
“아닙니다. 무림 연맹에서 무림 대회 당시 사망한 자들을 공표했는데……그 중에 일군사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
장룡이 놀라서 되물었다.
“일군사, 아니 제갈원명이 죽었다고? 그게 정말이느냐?”
“틀림없습니다.”
“아가씨?”
장룡이 고개를 돌리자 백혜향의 인상이 무섭게 굳어져 있었다.
이에 장룡이 나심형에게 말했다.
“그 외에 다른 소식은 있나?”
“무림 연맹의 본단에 각 파의 장로 급 이상의 인사들이 모여들고 있습니다.”
“……본교와 관련된 어떤 공표도 없었나?”
“그렇습니다.”
“…….알겠다. 나가 있게나.”
“충!”
나심형이 포권을 취하고서 별실 바깥으로 나갔다.
기척이 완전히 멀어지자 장룡이 입을 열었다.
“아가씨. 우려가 사실이 되었습니다.”
“…….제갈원명이 살해 당했다라.”
이것은 그들이 저지른 짓이 아니었다.
하지만 무림 연맹에 있는 첩자들을 통해서 일군사 제갈원명의 행방이 묘연하다는 소식은 이미 접해서 알고 있었다.
이때 장룡은 그녀에게 우려를 표했었다.
만약에 제갈원명이 살해당했다거나 하는 일이 생겼다면 진짜 혈마검은 백련하 쪽에서 탈취했을 수도 있다는 가설을 제기했었다.
“부두 쪽의 상황도 그렇고 아귀가 맞아 떨어집니다. 아무래도 대비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진짜 혈마검이 백련하 쪽에 들어가면 사태가 어떻게 변할지 예측할 수 없게 된다.
존자들과 혈성들 중에는 율령을 더 우선시 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들은 신물을 손에 넣은 자를 추대하려 들 것이다.
“재밌네. 아주 재밌게 돌아가.”
사태가 심각해졌는데도 백혜향은 오히려 담담한 모습을 보였다.
이런 점 때문에 장룡이 그녀를 따르는 것이기도 했다.
백혜향이 부채로 전도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탈 확률이 있는 자가 누구지?”
“6할 확률로 칠혈성입니다. 그는 누구보다 율령을 우선시 하는 자입니다.”
“그놈의 율령. 흥! 나머지는 믿을 수 있나?”
그런 백혜향의 물음에 장룡이 미소를 지었다.
“애초에 그럴 거였다면 정통성에 더 가까운 백련하 아가씨를 지원했을 겁니다. 지금의 본교는 보다 강한 혈마를 원합니다.”
백련하의 무위는 백혜향에 미치지 못한다.
설사 혈마검을 얻어 검에 숨겨져 있는 무공 비전을 얻는다고 해도 백혜향을 따라잡기에는 성장 속도도 재능의 격차도 너무 컸다.
‘아가씨라면 가능하다. 팔대고수와 사대악인의 아성에 다가갈 수 있다.’
초인의 영역에 다가서고 있는 그 일존마저도 그녀의 천부적인 무재를 인정했다.
백혜향의 물끄러미 지도를 쳐다보다 두 곳을 가리켰다.
“관건은 삼존과 이혈성이로군.”
“그렇습니다.”
삼존 혈사왕 구제양, 이혈성 수라도 유백.
구제양의 명성이야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이고, 수라도 유백 역시도 일혈성과 마찬가지로 존자 급에 비견된다고 할 정도로 뛰어난 무공 실력을 지녔다.
문제는 두 사람이 제의한 것이었다.
삼존 구제양은 신물을 손에 넣는 이를 모시겠다고 했고, 이혈성 유백은 자격을 갖춘 자를 따르겠다고 했다.
그들 두 사람이 만약 백련하의 산하로 들어가게 된다면 전세는 순식간에 역전되고 만다.
열한 명의 존성들 중 일곱 명이 백련하에게 붙는 사태가 벌어지는 것이다.
“대책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말해.”
“첫 번째는 검이 백련하 아가씨의 손에 들어가기 전에 강탈하는 수가 있습니다. 안 그래도 사혈성이 근방에 있을 테니 동원할 수 있지요. 하지만 강탈하는 것은 기기괴괴 어르신이 지키고 있어서 힘들 겁니다.”
사실 장룡의 머릿속에는 한 가지 수가 더 있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존 해악천과 소운휘를 죽인다면 혈마검을 빼앗을 수 있다.
하지만 이미 광마 단주와 파경 단주를 보낼 때에도 그들을 생포하라고 했었다.
백혜향의 유일한 단점.
‘……욕망.’
가지고 싶은 것에 대한 집착이 남다르다.
이미 한 번 소운휘를 죽이려고 시도했기 때문에 이번에도 거스른다면 그녀의 분노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때 그녀가 입을 열었다.
“검을 빼앗는 게 가장 상책이야?”
“……그렇습니다.”
“좋아. 그럼 빼앗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단 소운휘는 살려서 데려와.”
“네?”
“한 사람만 살리라고.”
뜻밖의 명에 어안이 벙벙했던 장룡이 그녀의 마음이 바뀌기라도 할까봐 얼른 답했다.
“명대로 하겠나이다.”
전부를 생포하는 것은 어떤 식으로든 어렵다.
하지만 단 한 사람인 소운휘만 살려서 데려오는 것은 문제가 달라진다.
백혜향이 계속 말을 이어갔다.
“삼존이 있는 곳이 섬서성 낙천이지?”
“그렇습니다.”
“가깝네. 좋아. 구제양과는 내가 담판 짓겠어.”
“아가씨께서 직접 말입니까?”
“그 아이의 산하로 들어가게 내버려두란 것이냐?”
“…….옳으신 말씀이십니다!”
그녀가 직접 나선다는 말에 장룡은 속으로 대견하게 여겼다.
혈사왕 구제양이 그런 제안을 했다고 해도 혈교의 교주 후보가 직접 찾아간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다.
“이혈성의 근거지가 안휘성에 있다고 했나?”
“안휘성에는 제가 직접 다녀오겠습니다.”
“말귀는 어둡지 않군.”
장룡이 빙그레 웃으며 답했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가장 상책은 검을 빼앗는 것이지만 그것이 실패할 때를 대비해 삼존과 이혈성을 어떻게든 설득할 수 있다면 전세는 여전히 그들이 앞서게 된다.
백혜향이 자리에서 일어나 새초롬한 목소리로 말했다.
“할 일이 정해졌으면 움직여.”
“장룡이 명을 받듭….”
-쾅!
“끄악!”
그의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이었다.
바깥에서 큰 굉음 소리와 함께 비명이 터져 나왔다.
시끄러운 소리들이 연달아 터져 나오자, 누구 할 것 없이 두 사람 모두 별실 밖으로 뛰어나갔다.
별실 바깥으로 나간 백혜향이 고운 미간을 찡그렸다.
“이게 어찌…..”
장룡은 눈앞에서 벌어진 일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별실 앞을 지키고 있던 교인들이 하나 같이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져 있었고, 백혈 단주 나심형이 정체 모를 누군가에게 목을 붙잡혀 들려 있었다.
나심형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컥컥…..모, 모른다고….했….”
“모른다?”
-콰직!
“끄아아아아악!”
나심형의 왼팔이 무를 뽑듯이 강제로 뽑혀져 나갔다.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벌어진 일이었다.
“네놈 대체 누구야!”
장룡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정체를 알 수 없는 괴인을 향해 신형을 날렸다.
흑포를 뒤집고 있는 괴인이 나심형을 바닥에 내팽개쳤다.
그리고는 발검술을 펼치는 장룡을 향해 손을 뻗었다.
‘어리석은 놈! 그대로 베어주마.’
장룡이 단숨에 놈의 팔을 베어버리려고 했다.
그 순간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팅!
괴인의 손에 닿은 검이 휘어지며 이내 튕겨져 나가고 말았다.
“큭!”
손바닥이 찢겨나가는 고통이 느껴졌다.
‘말도 안 되는 공력이다.’
속으로 많이 놀랐지만 장룡은 침착하게 괴인의 머리를 향해 각법을 펼쳤다.
발차기가 잔영을 만들어냈다.
그런데 그런 그의 발을 괴인이 아무렇지 않게 잡아버렸다.
-팍!
‘헛?’
“잔재주가 많군.”
아차 하는 순간에 그의 가슴에 괴인의 검결지가 닿아 있었다.
날카로운 예기가 가슴의 요혈들을 파고들었다.
-파파파팍!
장룡이 다급히 경신법을 펼치며 검결지가 파고드는 것을 피하려들었지만, 괴인의 신형도 따라붙고 있었다.
‘어찌 이런 괴물이 있단 말인가?’
장룡은 초절정에서도 극에 가까운 고수였다.
그런 그를 아이 다루듯이 상대는 몰아붙이고 있었다.
-촥!
그 순간 붉은빛의 궤적이 그들의 사이를 갈랐다.
‘아가씨!’
백혜향이 나선 것이었다.
괴인이 자리에서 멈춰 섰다.
덕분에 장룡은 위험을 피할 수가 있었다.
“예기를 몰아내.”
“아, 알겠습니다.”
오장육부를 찢어놓으려고 하는 날카로운 예기 때문에 이를 몰아내기 위해 전력으로 운기를 해야만 했다.
“너 뭐야?”
백혜향이 선홍빛으로 물든 모조 혈마검을 괴인에게 겨냥하며 물었다.
흑포를 머리에까지 뒤집어써서 코밑 부분만 희미하게 보이는데, 풍기는 기운이 심상치가 않았다.
괴인이 입을 열었다.
“혈마의 후인이 살아있을 줄이야.”
그 말에 백혜향의 붉은 눈동자에 살기가 어렸다.
백혜향의 손이 번개처럼 움직이며 검이 복잡하게 궤적을 그리며 괴인을 뒤덮었다.
이에 괴인이 뒷짐을 진 채 발을 움직였다.
‘이럴 수가!’
이를 지켜보는 장룡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백혜향이 펼치는 검초를 괴인은 그저 다섯 보 안의 거리 정도로만 발을 움직이면서 유유히 피하고 있었다.
최소한의 움직임만으로 말이다.
‘서, 설마…..’
백혜향이나 자신을 상대로 이 정도 무위를 보여줄 자는 세상에 많지 않았다.
무림에서 초인의 영역에 들어섰다고 불리는 열두 명의 괴물들.
그들만이 저런 신기가 가능했다.
‘대체 누구지?’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아 정체를 가늠하기가 힘들었다.
괴인이 백혜향의 검을 피하며 입을 열었다.
“굉장한 재능을 지녔구나. 이 나이에 극에 이르다니.”
너무도 쉽게 검을 피하면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은 그녀를 자극하게 만들었다.
“죽인다. 너!”
백혜향의 눈동자에 서린 붉은 안광이 강해졌다.
그 순간 그녀의 검이 지금까지의 속도보다 훨씬 빨라지기 시작했다.
이에 괴인이 뒷짐을 지던 손 중에 하나를 풀었다.
그리고는 펄럭이는 흑포 자락으로 백혜향이 휘두르던 검을 휘감았다.
-팍!
검이 묶이자 괴인이 쾌속한 손놀림으로 그녀의 손목을 움켜잡았다.
백혜향이 인상을 찡그렸다.
공력을 아무리 가해도 손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나보다 공력이 강하다고?’
믿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일존마저 인정할 만큼 괴물 같은 내공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 자신이 공력으로 밀린 것이다.
“혈마의 후예라면 네가 이곳의 수장이겠지? 그렇다면 잘 알겠구나.”
“……무슨 헛소리를 지껄이는 거야!”
백혜향이 검에서 손을 떼고서 지공을 펼쳤다.
그녀의 왼손의 검지가 한 자루의 투창처럼 강렬한 기세로 괴인의 미간을 노렸다.
너무도 가까웠기에 피하기 어려운 거리였으나,
-팍!
그녀의 검지가 괴인의 검지와 중지 사이에 걸려버리고 말았다.
“괄괄하고 호전적인 것이 누구와 빼닮았구나.”
괴인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손가락을 비틀었다.
이와 함께 그녀의 몸이 빙글빙글 회전하며 이내 바닥에 곤두박질을 치고 말았다.
백혜향이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키려 하자,
-퍽!
괴인이 그녀의 목을 수도로 내리쳤다.
그러자 그녀가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강단있군. 비명조차 지르지 않다니.”
괴인이 혀를 차더니 이내 그녀의 머리 위로 발을 올렸다.
“안돼에에에!”
예기를 완전히 몰아내지 못한 장룡이 그녀의 위기에 운기를 포기하고서 신형을 날렸다.
“멈추는 게 좋을 거다.”
‘!?’
백혜향의 머리 위에 있는 괴인의 발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보고서 멈춰야만 했다.
“끄윽!”
장룡의 피를 한움큼 게워냈다.
공력을 일으키면서 날카로운 예기가 속을 뒤집어놓았기 때문이었다.
장룡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멈추시오. 대체 귀하께서는 누구시기에 이러는 것이오?”
“그건 네놈이 알 바가 아니다.”
괴인이 이와 함께 품속에서 서지 하나를 꺼냈다.
서지를 펼치자 그 안에 상당한 미남의 얼굴이 그려져 있었다.
놀랍게도 그 얼굴은 사마영의 인피면구의 얼굴이었다.
장룡이 눈살을 찌푸렸다.
‘누구?’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이 자의 흔적을 따라 광동성과 광서성 사이에 있는 산봉우리들이 지천인 곳으로 갔더니, 그곳을 무림 연맹의 문파들이 습격을 했더군.”
‘습격? 설마…..’
무슨 말인가 싶어 곰곰이 생각하던 장룡의 머릿속에 육혈곡이 스쳐지나갔다.
최근에 본교와 관련되어 무림 연맹과 부딪친 곳은 오직 그곳뿐이었다.
“이 얼굴을 아느냐? 모르느냐?”
“모르오.”
안타깝게도 그는 저 얼굴을 본 적이 없었다.
만약 등정 객잔에 있었다면 짐작할 수 있었겠지만, 백혜향에게도 마음에 드는 계집이 있다는 식으로만 전해 들었기에 더욱 짐작하기 어려웠다.
“대체 누구기에 이렇게….”
“네놈들이 있을 만한 흔적을 뒤쫓다보니 이곳까지 오게 되었다. 전서구의 암호가 생각보다 간단하더구나.”
‘하!’
장룡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 말인즉 자신들이 쓰고 있는 전서구를 잡아다가 암호를 해독하고서, 추적을 했다는 소리가 아닌가.
괴물 같은 무공만큼이나 머리가 굉장히 좋은 자였다.
‘!!!’
그때 그의 머릿속에 두 명이 떠올랐다.
팔대고수와 사대 악인 중에서 뛰어난 두뇌를 지녔다고 알려진 두 사람이 있었다.
만박자 두공과 월악검 사마착.
그 중에 검을 쓰는 자는 단연 후자였다.
‘워, 월악검?’
장룡은 그가 월악검 사마착이라 확신했다.
제갈세가와 더불어 사마세가의 두뇌는 무림 이절로 칭해지지 않는가.
‘사대 악인이라니….’
최악의 사태였다.
월악검 사마착의 악명이나 잔인한 손속을 무림인치고 모르는 이가 누가 있겠는가.
한 동안 무림에서 자취를 감췄던 괴물이 하필 이곳에 나타난 게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그럼 저 그림 속의 젊은이가 월악검의 분노를 샀단 말인가?’
그렇지 않고서야 이 악명 높은 괴물이 이렇게까지 뒤쫓을 리가 만무했다.
흑포의 괴인이 발밑을 쳐다보며 말했다.
“이 아이를 살리고 싶겠지? 그럼 어디에 있는지 찾아내라.”
장룡은 머리가 멍해졌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얼굴을 찾으라니 답답할 지경이었다.
장룡은 속이 답답해졌다.
저 자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하필 사대 악인의 분노를 사고서 본교에 숨어들어와 이렇게 곤란하게 만드는지, 오히려 자신이 놈을 찾아내 응징하고 싶은 심경이었다.
‘아!’
그 순간 장룡은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육혈곡으로 향했다면 어차피 저쪽에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사실을 알려주면 된다.
단지 한 가지 사실을 덧붙여서 말이다.
“계속 숨기겠다면 어쩔 수 없군. 나는 성미가 급한 사람이다.”
“잠깐! 기다리시오. 뭔가 오해가 있는 듯 하오.”
“오해?”
“본교는 정사 대전 이후 오래 전에 파벌이 나뉘었소.”
“파벌이 나뉘어?”
“육혈곡에서 그 자의 흔적을 찾았다면 우리 쪽에서 데리고 있는 자가 아니오.”
“허튼 수작 부리지 마라.”
괴인의 발에 힘이 들어가려 했다.
장룡이 다급히 외쳤다.
“정말이오! 원한다면 그들의 소재를 알려줄 수 있소. 그들이 귀하가 찾는 자를 숨겼을 거요.”
“……그걸 내가 어찌 믿지?”
“내 주군의 목숨이 달려있는데 어찌 거짓을 말하겠소. 증거를 원한다면 얼마든지 댈 수 있소.”
이에 괴인이 고민을 하는 듯이 턱을 쓰다듬더니 말했다.
“그놈들이 어디에 있지?”
그 말을 들은 장룡이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전화위복이라는 말이 이럴 때 쓰이는 것만 같았다.
‘손도 대지 않고 코를 풀 수 있겠구나.’
* * *
안개가 짙은 장강의 배 위.
선실에 들어가자 해악천이 혼자서 술을 따라 마시며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산공독으로 그렇게 데이고서 또 술을 마시다니 어찌 보면 대단하다.
“클클, 앉으십시오.”
아….
이상하게 말투가 불편하게 느껴진다.
백련하에게 존대를 할 때도 어색하게 느껴졌는데, 나한테 하니까 더욱 그렇다.
맞은 편에 앉자 해악천이 내게 말했다.
“그간을 생각하면 노부가 참 무례하게 굴었던 것 같습니다.”
‘……..’
순간 머릿속에 그가 절벽에 거꾸로 나를 매달리게 했던 것과 구타를 비롯해 여러 지옥 같은 나날들이 스치고 지나갔다.
-좋네. 이럴 때 갚아줘.
소담검이 내게 말했다.
뭘 갚으라는 건지.
그때는 왜 그러셨어요? 라고 따지기라도 하란 말인가.
아직 내가 정말로 혈마의 피를 이었는지도 정확히 알 수 없는데, 그런 말은 언감생심 입 밖으로도 안 나온다.
“……스승님. 그냥 편하게 대해 주십쇼.”
해악천이 내게 커다란 손바닥으로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노부가 어찌 혈마께 그런 우를 범하겠습니까? 불편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굉장히 불편하다.
굉장히 어색하고.
“둘만 있을 때는 편하게 대해주십시오. 그게 편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스승으로 모시는데 한 번 더 권하는 게 맞겠지.
그러자 해악천이 씨익하고 웃더니 말했다.
“클클, 알겠다. 이놈아.”
‘하!’
어떻게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받아들이지?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미친 노인네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해악천이 내 바로 앞에 있는 잔에 술을 따라주며 말했다.
“돌려서 말하기도 그렇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으마. 혹시 네 조부나 모친이 무쌍성의 비월영종과 관계가 있느냐?”
‘!!!’
순간 나는 말문이 막혔다.
끝
ⓒ 한중월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