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word Sense RAW novel - Chapter 127
47화 사대 악인 (1) >
옅은 안개가 낀 장강.
장강의 한복판을 흘러가고 있는 네 척의 배가 있다.
날개처럼 진형을 이루고 이동하는 배들 중 가장 우측에 있는 배 위.
“흐아아암.”
배의 갑판에서 보초를 서고 있는 교인 한 사람이 입을 쩌억 벌리고서 하품을 했다.
그런 교인의 옆에 있는 짙은 눈썹의 교인이 나무랐다.
“졸리면 허벅지라도 꼬집어. 괜히 졸다가 일 그르치지 말고.”
“요 근래 쉬질 못했더니 너무 피곤하군.”
“교대까지 반 시진밖에 남지 않았으니 좀만 버티라고.”
“죽겠구만. 배 위에서 이게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구만. 어차피 수로채에서 나타나도 선두나 선미에서 나타날 텐데.”
“군소리 할 거면….응?”
교인이 말을 하다 멈추고 어딘가를 쳐다보았다.
눈을 가늘게 뜨고 뭔가를 쳐다보자 이상하게 생각한 교인이 짙은 눈썹의 교인에게 물었다.
“왜 그래?”
“……저게 뭐지?”
“저거라니?”
교인이 가리킨 곳에는 배라든지 그런 것이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물 위로 작은 파문이 일어났다.
두 장 거리마다 그 파문이 생겨나는데, 그때마다 흐릿한 그림자가 보였다.
“뭐야?”
이에 놀란 그들이 갑판 쪽으로 달라붙어 장강의 물 위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것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물고기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고 하기에는 이상한 현상이었다.
“대체…앗!”
그 순간 누구 할 것 없이 두 교인 모두가 눈이 휘둥그레졌다.
“….무, 물 위에 사람이….”
그림자가 가까워진 순간 그들은 그것이 사람의 형태임을 알 수 있었다.
당황한 교인 중 한 사람이 다급히 뿔피리를 불려고 했다.
바로 그때였다.
-푹!
뿔피리를 입에 대는 순간 교인의 이마로 무언가가 관통했다.
쓰러지는 교인을 놀라서 붙잡았는데, 이마가 꿰뚫린 교인이 숨을 거둬 있었다.
“저…”
-파파팍!
당황한 짙은 눈썹의 교인이 육성으로 외치려는 순간, 그의 아혈과 마혈로 무언가가 날아왔다.
죽은 교인과 몸이 엉켜 쓰러지려하는데, 누군가 그들이 넘어지려는 것을 붙잡았다.
흑포를 입고 있는 정체 모를 괴인이었다.
‘!!!’
얼굴이 귀신처럼 창백해 소름이 끼칠 지경이었다.
당장에 적습이라고 외치고 싶어도 점혈을 당해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런 그에게 정체모를 괴인이 목소리가 귀를 울렸다.
‘엇?’
* * *
“안 돼요!”
사마영의 외침에 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향했다.
난처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 되었다.
-어쩌냐?
소담검의 말에 나는 인상을 찡그렸다.
그렇지 않아도 상황이 복잡해졌는데, 그녀까지 나타나 더 혼란스러워졌다.
혈수마녀 한백하는 뜬금없이 나타나 끼어든 사마영에게 심기가 불편했는지, 싸늘해진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사마 대주. 당장 물러나라. 네가 간섭할 일이 아니다.”
보통의 대주 급의 교인들이라면 간부인 혈성의 경고에 기겁을 해서 따를 것이다.
하지만 사마영은 그렇지 않다는 게 문제였다.
“그럴 수 없어요.”
‘!?’
당돌한 그녀의 말에 한백하의 한 쪽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심지어 백련하조차도 붉게 상기되었던 얼굴에서 냉랭하게 변해가고 있었다.
한백하가 그녀에게 말했다.
“마지막 경고다. 일개 대주인 그대가 끼어들 일이 아니다. 당장 물러서지 않는다면 엄벌로 다스릴….”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는 말이 있죠.”
“뭐?”
“본교의 수장이라 할 수 있는 혈마께 무례를 범하고 위협하는 건 육혈성이 아니신가요?”
순간 한백하의 말문이 막혔다.
사마영의 말에는 한 점 틀린 것이 없었기에 그런 것이다.
한백하와 나는 여전히 부딪친 채 대치 중이다.
-스릉!
사마영이 검을 뽑고서 대담하게도 한백하를 겨냥하며 말했다.
“당장 혈마께 멀어지세요.”
-아하핫. 역시 사마영.
소담검이 신이 나서 그녀를 치켜세웠다.
네가 사마영을 좋아하는 건 상관없는데 지금 그럴 분위기가 아니다.
혈수마녀 한백하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짓더니,
“끼어들지 말라고 경고했다.”
그 말과 함께 이내 사마영을 향해 손을 뻗었다.
‘앗!’
대치하고 있던 나는 찰나에 그녀의 손목을 발로 차올렸다.
-팍!
덕분에 경로가 틀어지며 손이 위로 향해지고 말았다.
그녀의 펄럭이는 검은 옷자락에서 날카로운 비수 같은 것이 튀어나갔다.
조금만 늦었어도 비수는 사마영에게로 향했을 거다.
‘살수를 쓰다니.’
어이가 없었다.
화가 나려고 하는데, 사마영에게 백련하가 다가가고 있었다.
“사마 소저. 혈마를 지키려 하는 충정은 충분히 알았어요. 이 사태는 제가 수습할 테니, 검을 거둬요.”
이성적으로 말을 하고 있었지만 목소리는 차갑기 그지없었다.
일개 대주가 자신의 심복이라 할 수 있는 혈수마녀 한백하에게 당돌하게 군 것도 모자라 검을 겨눈 것에 분노한 듯 했다.
하지만 사마영은 검을 거두지 않았다.
“육혈성께서 먼저 혈마께 손을 떼고서 죄를 청하는 게 먼저에요.”
백련하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그 눈빛이 마치 예전 육혈곡에서 자신의 뜻을 거슬렀던 혈수마녀를 질책할 당시와 너무도 흡사했다.
“제 말을 우습게 여기는 건가요?”
“혈마를 보호하는 것이 아가씨의 말을 우습게 여기는 게 되나요?”
“당신!”
그런 그녀의 말에 백련하가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몸을 파르르 떨던 그녀가 고개를 돌리지 않고서 혈수마녀 한백하에게 말했다.
“당장 떼요.”
“아가씨!”
“당장 혈마께 손을 떼라고 했어요. 아니면 제 손으로 당신을 벌할 겁니다!”
분노한 백련하의 목소리에 한백하가 당혹스러워했다.
백련하가 다시 사마영에게 말했다.
“됐죠. 이제 검을 거둬요.”
“아직 육혈성께서 손을 거두지 않으셨어요.”
그 말에 백련하의 얼굴이 완전히 싸늘해졌다.
“기어코 선을 넘는군요.”
-팟!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백련하의 신형이 사마영에게로 좁혀 들어갔다.
혈옥수로 두 손이 붉게 물든 상태로 백련하가 지공을 펼쳤다.
이에 사마영이 물러서지 않고 검초를 펼쳤다.
-차차차차창!
순식간에 두 여자의 절초가 격렬하게 부딪쳤다.
혈수마녀의 독문 무공인 혈옥수로 손을 보호한 백련하의 손가락은 검과 부딪칠 때마다 금속성과 비슷한 소리를 냈다.
백련하의 지공이 사마영의 검의 궤적을 파고들며 미간을 교묘하게 찔렀다.
-팍!
당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찰나에 사마영은 백련하의 무릎을 발로 차냈다.
백련하의 균형이 흐트러지자, 도리어 사마영이 그녀의 목 정중앙을 향해 검을 찔렀다.
-파팍!
백련하가 지공으로 검을 위로 쳐내며 뒤로 몸을 날렸다.
짧은 순간에 그녀들은 두 초식 가량을 부딪친 두 사람이 서로 신형을 벌렸다.
백련하의 표정이 굳어졌다.
자신과 붙어도 전혀 밀리지 않고 손색없는 솜씨에 놀란 모양이다.
사마영이 그런 그녀에게 말했다.
“저를 공격해야 하는 게 아니라 아가씨가 말한 대로 아직도 혈마께 무례를 범하고 있는 육혈성에게 벌을 내려야 하는 게 아닌가요?”
“당신이 끼어들 문제가 아니라고 했죠!”
백련하의 다그침에 사마영의 얼굴도 싸늘해졌다.
저 눈만 봐도 그녀가 얼마나 화가 났는지 알 수 있었다.
“끼어들 문제? 저는 혈마를 따르는 거지. 아가씨. 당신을 따르는 게 아니에요.”
“하!”
백련하가 기가 차했다.
그런 사마영의 말에 오히려 혈수마녀 한백하가 분노를 금치 못했다.
“감히 일개 대주 따위가 진정한 혈통을 이으신 아가씨께 무슨 망발을 하는 것이냐!”
그 말과 함께 한백하가 나와 대치하던 것을 풀고서 사마영에게 신형을 날리려 했다.
하지만 그녀의 앞을 내가 가로막았다.
한백하가 내게 말했다.
“당장 비켜요.”
후우.
어지간하면 좋게 풀려고 했다.
한데 아무래도 안 될 것 같았다.
나는 싸늘한 어조로 그녀에게 말했다.
“육혈성께서 아가씨를 향한 충정으로 하시는 말씀이라 생각하여 간언삼아 들으려 했지만, 저를 어지간히 우습게 여기시는군요.”
“나는 당신을 혈마로 인정하지 않는…..”
그녀가 뒷말을 잇지 못했다.
왜냐하면 염을 집중하여 천권의 능력을 발휘했기 때문이었다.
혈마화가 진행되자 그녀의 눈동자가 떨려왔다.
나는 혈수마녀 한백하에게 말했다.
“지금 물러나시면 이번 일은 없던 걸로 하겠습니다.”
“그 말씀은 아가씨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건가요?”
“더 이상 그 이야기는 하지 않습니다. 마지막입니다. 물러나세요.”
“물러나지 않겠다면요.”
“마지막이라는 말을 간과하시는군요.”
나는 말이 끝남과 동시에 허리춤에 차고 있던 혈마검을 뽑아 한백하에게 내리쳤다.
그 순간 한백하가 다급히 혈옥수를 펼친 두 손을 들어 올려 검을 잡아냈다.
그녀의 두 눈이 커졌다.
“흑!”
공력을 더욱 가하자 그녀의 무릎이 굽혀졌다.
그리고 이내 선상의 목판이 갈라지며 두 발이 밑으로 파고들었다.
“으으으!”
한백하가 안간 힘을 써가며 내려치는 검의 방향을 틀어보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혈마화를 한 내게 사혈성 도장호조차 상대가 되지 못했다.
하물며 그보다 서열이 아래인 그녀라고 다르겠는가.
-팍!
나는 망설이지 않고 그녀의 복부를 발로 걷어찼다.
“컥!”
복부를 맞은 그녀의 몸이 튕겨져 나가 뒤로 여섯 보가 넘게 밀려났다.
밀려난 그녀가 비틀거리다 이내 신형을 제대로 잡았다.
그리고 체내로 파고든 나의 공력을 몰아냈다.
-쩌저저적!
그녀의 발바닥 주위로 목판이 갈라졌다.
한백하가 나를 향해 혈옥수로 붉게 물든 두 손을 앞으로 향하며 기수식을 취했다.
끝까지 해보겠다는 의지를 강렬히 보이고 있었다.
“별 수 없군요.”
자신의 고집만 내세운다면 나로서도 어쩔 수 없었다.
만약 이런 식으로 한백하가 하는 말을 들어준다면 필요할 때마다 혈마로서의 내 권위를 무시하고 들 것이다.
혈천대라공을 일으키자 혈마검이 선홍빛으로 물들었다.
“그만!”
그때 백련하가 가운데로 끼어들었다.
“두 분 모두 멈추세요.”
사태를 진정시키려고 하는 그녀에게 혈수마녀 한백하가 말했다.
“아직 확답을 듣지 못했습니다.”
“육혈성!”
백련하가 그녀를 다그쳤다.
하지만 한백하는 전혀 물러설 생각이 없어보였다.
그럴 거였다면 애초에 포기했을 거다.
“끈질기군요.”
“무엇이 어렵다는 거죠? 아가씨도 당신께 마음이 있습니다. 서로간의 신뢰를 위해서 혼인을 하는 게 싫으신 겁니까? 이 혼인을 통해 당신도 혈마로서 더욱 명분을 가질 수….”
“안 돼요!”
그때 사마영이 소리쳤다.
한백하가 무섭게 굳은 얼굴로 그녀를 노려보았다.
보통 사람이라면 기세에 억눌려서 말도 못하겠지만 사마영은 오히려 당당했다.
“네년이 정녕!”
“왜 당신 멋대로 혈마께 혼인을 강조하는 거죠? 혼인을 한다면 혈마께서 원하셔서 해야 옳은 거지. 명분이니 신뢰를 갖다 붙인다고 그게 당연하게 되는 건가요? 이건 감정의 문제가 아닌가요?”
격앙되어 있는 사마영의 모습에 백련하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녀를 빤히 쳐다보던 백련하가 입을 열었다.
“……당신. 혈마를 좋아하는 군요?”
그 말에 사마영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당당한 그녀도 다른 사람의 앞에서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이 거론되는 것이 부끄러운 모양이었다.
혈수마녀 한백하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말했다.
“하! 일개 대주 따위가 정말 오만방자하구나. 아무리 내가 아가씨를 위해서 무례를 범했다고 한들, 고작 네까짓 것이 혈마의 배필로 어울린다고 여기는 것이….”
그때 한백하가 뒷말을 잇지 못했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었다.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한 사이에 그녀의 뒤에 흑포의 사내가 서있었다.
“네까짓 것?”
한 겨울의 서리마냥 싸늘한 목소리.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
이에 당황한 혈수마녀 한백하가 뒤로 몸을 회전시키며 혈옥수를 날렸다.
그런데 뒤에 있던 흑포의 사내가 가볍게 그것을 잡아냈다.
그리고는,
-콰직!
한백하의 팔을 그대로 뽑아내버렸다.
“아아아아아아악!”
그녀의 비명 소리가 장강 한복판을 울릴 만큼 크게 퍼져나갔다.
그 소리가 어찌나 컸던지 선실에 있던 교인들부터 시작해, 해악천과 난마도제 서갈마, 사혈성 도장호 등이 황급히 튀어나왔다.
“이, 이게 대체 무슨….”
그들 모두가 이 상황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흑포를 입은 정체불명의 괴인이 뽑혀진 혈수마녀의 팔을 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해악천이 그에게 일갈을 내질렀다.
“네놈 누구기에 감히 이곳에 들어온 것이냐!”
그 말에 흑포의 괴인이 콧방귀를 뀌더니 이내 머리에 쓰고 있던 흑포를 벗었다.
새하얗고 창백한 얼굴에 콧수염을 기른 학사와 같은 얼굴이 드러났다.
그때 사마영의 외침 소리가 들렸다.
“아버지!”
‘아버지?’
그 말을 듣는 순간 나와 해악천의 얼굴이 동시에 굳어졌다.
사마영이 말하는 아버지는 오직 단 한사람뿐이다.
사대 악인의 일인 월악검 사마착.
끝
ⓒ 한중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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