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word Sense RAW novel - Chapter 13
9화 도박
‘단전이 없이도 내공을 다룰 수 있는 방법?’
해악천의 그 말에 내 머릿속에서 수많은 생각들이 맴돌았다.
일단 이 미치광이 늙은이가 대체 왜 이런 제안을 하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게다가 단전이 없이 내공을 다룬다는 게 말이 되는 이야기인가.
평생 처음 들어본다.
“클클, 당연히 믿기 힘들겠지.”
본인도 내 생각을 읽고 있었다.
어차피 들리지도 않을 텐데 소담검이 속삭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야. 저 늙은이가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거 아냐.
‘내 생각도 같아.’
나름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봤다.
한데 이 미친 늙은이는 도무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짐작조차 하기 힘들었다.
지금까지 내게 강제로 시킨 것만 해도 상식을 넘어섰다.
“네 녀석에게 나쁜 이야기는 아닐 턴데. 뭘 그리 의심스러운 표정을 하는 게냐?”
미친 건지 아닌 건지 알기도 힘들다.
기가 막힐 정도로 내 생각을 잘 꿰뚫어 본다.
하긴 기기괴괴라 불릴 만큼 괴팍해도 그 험난한 무림을 수십 년이 넘게 활보한 자였다.
나는 그에게 애송이나 다름없었다.
-운휘. 조심하는 편이 좋을 것 같아. 저 미치광이 노인네가 얼마나 널 고생시켰는지 알잖아.
후우.
녀석의 말이 맞았다.
그렇다면 이 노인네가 대체 내게 왜 그 방법을 가르쳐준다고 하는지 그 진의를 알 필요가 있었다.
고민 끝에 내가 무릎을 꿇고서 말했다.
-쿵!
“사존 어르신. 어르신께서는 저를 그저 수발을 들게 할 목적으로 남으라고 하셨는데, 이렇게 갑자기 어르신의 귀한 재주를 가르쳐주신다는 게 어리석은 소인의 머리로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그런 내 말에 해악천이 피식 웃었다.
그리고는 뒷짐을 지고서 말했다.
“그 동안 입을 다물게 해서 몰랐는데, 제법 입담이 있는 녀석이로구나.”
“……그저 소인이 두려운 마음에 하는 소리입니다.”
솔직하게 이야기 했다.
고작 이 정도로 심기가 불편해 한다면 괴팍한 걸 넘어서 진짜 미친 거다.
한데 해악천의 미간에 내 천(川) 자의 주름이 생겨났다.
“흥. 기껏 몸을 만들어줬더니.”
‘몸을 만들어줘?’
-퍽!
“억!”
해악천이 신경질적으로 내 가슴을 발로 차버렸다.
다행히 내공이 실리진 않았지만 저 우악스러운 발이 아프지 않을 리가 없었다.
꺽꺽 대면서 괴로워하는 내게 해악천이 말했다.
“역시 네놈은 곱게 말해선 안 될 녀석 같구나.”
그 말과 함께 해악천이 품 속에서 피리를 꺼내들었다.
혈고를 난리치게 만드는 피리였다.
내게는 소용없는 물건이지만 저걸 불면 연기를 해야 한다.
-삐이이이이이!
해악천이 피리를 세게 불었다.
그 순간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몸을 웅크리고서 비명을 질렀다.
“으아아아악! 가슴이! 가슴이!”
최대한 그에게 얼굴을 보여주지 않으려 했다.
바로 그때였다.
“가슴은 개뿔이!”
-퍽!
“으억!”
갑자기 해악천이 내 등을 발로 걷어찼다.
덕분에 진짜로 거친 돌바닥을 수 바퀴나 뒹굴어야만 했다.
고통스러워하는 내게 해악천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말했다.
“네놈의 그 어설픈 연기는 꼴 보기도 싫구나.”
“네?”
“몸속에 있지도 않은 혈고를 있는 척 하느라 아주 노고가 많아. 클클.”
‘!!!’
놀란 나머지 순간 나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두 가지를 놀랐다.
반쯤 확신하고 있었지만 해악천 같은 고수가 몸속에 혈고가 없다고 확인을 시켜주니, 그 감각이 거짓이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기뻐할 일이 아닌 게 이 늙은이가 그걸 어떻게 아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당황해하던 나는 변명을 하듯이 말했다.
“그, 그게 무슨 말씀인지.”
“아서라. 네 녀석들의 몸 상태를 본좌가 살펴보지 않았을 것 같으냐?”
‘아……’
생각해보면 수도 없이 그와 접촉을 하긴 했다.
가령 나를 옆구리에 끼고서 절벽을 오르던 것부터 수많은 구타까지.
‘미치겠네.’
그럼 대체 그 사실을 알면서도 지금까지 눈을 감은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상급 무사 이상이 아니고는 혈교인 모두가 몸속에 혈고를 지녀야만 한다.
당혹스러워하는 내게 해악천이 말했다.
“네 녀석이 무슨 수로 혈고를 없앴는지는 모르겠다만. 그것만으로도 당장에 처분할 수 있다는 것 정도는 알겠지?”
“…….”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이 괴팍한 노인네의 속내를 도무지 짐작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혈고가 없는 것을 알았는데도 지금까지 모른 척 한 걸 보면 절대로 그런 이유로 나를 죽이진 않을 것이다.
‘…….이런 식이라면 계속 휘둘릴 거다.’
전생과 전혀 다를 바가 없어진다.
이 노인네가 시키는 대로 끌려 다니다가 버림받을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 주도권을 가져와야 했다.
‘용기를 가지자. 소운휘. 삼류 첩자 인생에서 더 위로 올라가려면 목숨을 걸고 도박도 할 줄 알아야 해.’
-혼잣말 하는 거지?
소담검이 하는 말이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녀석도 내가 중대한 내면의 변화를 겪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호흡을 진정시킨 내가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처분하십쇼.”
“뭐?”
“처분하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하!”
갑자기 강하게 나오는 내 태도에 해악천이 어처구니가 없어했다.
금방이라도 주먹을 휘두를 기세였지만 나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말했다.
“혈고가 제 몸속에 없는 것은 제가 고의로 저지른 일도 아닙니다. 입교식 때 혈고를 받아들인 후에 배가 아팠는데 갑자기 그리 된 것이죠.”
“……..”
“그리고 알게 된 것도 어르신이 그 피리를 불고 나서입니다.”
“본좌 덕분에 알았다고?”
“그렇습니다. 그걸 왜 알리지 않았냐고 물으신다면 저도 목숨이 아까운 한 명의 인간입니다. 제 발로 혈교에 입교했는데, 그런 걸 평생 가지고 있으라면 두렵지 않겠습니까?”
“흥! 열심히 공을 쌓아서 없애면 될 일이….”
“애초에 혈고의 목적은 충성심이 없는 혈교인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입니다. 그걸 혈교인의 피를 잇고 스스로 입교한 제가 꼭 지니고 있어야 할 이유도 없지 않습니까?”
“하……..”
몰아붙이듯이 내뱉은 내 말에 해악천의 표정이 묘해졌다.
아까 전처럼 기가 막히다는 감정보다는 뭔가 나라는 사람에 대해 다시 보게 되었다는 그런 느낌에 가까웠다.
갑자기 해악천이 미친 듯이 웃어댔다.
“크하하하하하하핫.”
그리고는 갑자기 정색을 하더니, 내 목을 움켜잡았다.
-꽉!
“컥!”
아무래도 도박이 실패한 모양이다.
숨이 막혀서 괴로워하고 있는 내게 해악천이 살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목숨이 아깝지 않은 것이냐?”
“켁켁.”
“네놈 하나 없앤다고 해도 누구 하나 본좌를 탓할 것 같으냐?”
“켁…하아…..”
“이게 힘을 가진 자의 특권이라는 것이다. 단전조차 부서져 평생 삼류 인생조차 벗어나지 못할 네놈이 무슨 배짱으로 함부로 지껄이는 것이냐?”
숨이 너무 막혀서 말을 하기도 힘들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정신은 또렷했다.
확실히 절벽에 매달리며 죽음에 대한 공포를 두 달 동안이나 겪었던 것이 내 담을 제대로 키워놓은 모양이다.
나는 해악천의 눈을 또렷하게 쳐다보며 말했다.
“하아….하아….두렵습니다. 하지만…..이렇게 살면 저는 어르신의 말대로…..평생….삼류 인생으로….이용만 당하다가….죽겠지요. 그렇게…..살 바에는 지금….죽겠습니다.”
“이놈이 정녕!”
-꽈악!
“케엑….주, 죽이십쇼!”
눈앞이 점점 새하얗게 변해갔지만 나는 그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해악천이 속모를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자 갑자기 손에 힘을 풀었다.
“쿨럭쿨럭.”
호흡이 돌아오자 나는 미친 듯이 기침을 해댔다.
괴로워하고 있는 나를 내려다보며 해악천이 입술을 실룩거리며 말했다.
“쭉정이는 아닌가 보구나.”
“쿨럭….넷?”
“다시는 그런 객기를 부리지 않는 게 좋을 게다. 힘도 권력도 아무 것도 없는 놈이 알량한 배짱을 부려봐야 그 끝은 뻔하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 해악천의 표정은 썩 나쁘지 않았다.
속내를 확신할 수 없지만 목숨을 걸고 객기를 부린 것을 좋게 평가한 모양이었다.
“하아…..”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도박이나 다름없었지만 뭔가 예전의 나에게서 더욱 탈피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확실히 힘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힘이 없는 만용은 죽음으로 가는 지름길이었다.
-너 진짜 죽다 살아났어! 왜 그런 모험을 한 거야? 네가 죽으면 난….
소담검이 뒷말을 잇지 못했다.
‘걱정마라. 안 죽어.’
-죽을 뻔 했잖아.
‘아니야. 처음부터 죽일 생각이었으면 혈고가 없는 걸 알았을 때 어찌 했겠지.’
나는 그것에 도박을 걸었다.
분명 내게 원하는 것이 있기에 혈고를 눈 감은 것이다.
단순히 단전 없이 내공을 다루는 법을 알려준다는 이유를 넘어선 무언가가 있다고 확신했다.
어느 정도 기침이 진정되자 해악천이 말했다.
“좋아. 네놈이 흥미를 끌 만한 제안을 해주마.”
“흥미라면?”
“네놈이 내가 시키는 대로 잘 따라온다면 혈고가 몸속에 없는 것을 계속 눈감아주마. 어때? 나쁘지 않은 조건이지? 클클.”
확실히 내게 나쁘지 않은 조건이었다.
다시 혈고를 집어넣을 수도 있는데 그걸 눈감아준다는 것이니 말이다.
“그 대신 ‘그것’을 익힌 후에 본좌가 가르친 쌍둥이 녀석들과 무공 대결을 하면 된다.”
“네에?”
전혀 예상지 못한 이야기에 나는 순간 벙 찌고 말았다.
단전 없이 내공을 익히는 법을 알려주는 이유가 설마 그 쌍둥이 녀석들과 대결을 펼치기 위함일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대체 왜?”
“흥! 편의를 봐줬다고 쓸데없는 것에까지 의문을 가지지 말거라!”
그가 무섭게 인상을 쓰면서 경고했다.
궁금하기는 했지만 왠지 물어보면 안 될 것 같았다.
뭔가 그 이유라는 것 자체에 심기가 불편한 사정이 있어 보였다.
“네놈은 그냥 시키는 대로 녀석들과 대결을 하면 될 뿐이다. 알겠느냐?”
“이것도 물어보면 안 됩니까?”
“무엇을 말이냐?”
“말씀하시는 것을 들어보면 ‘그것’이…..혹시 사존 어르신의 재주가 아닌 겁니까?”
그 물음에 해악천이 잠시 입을 다물었다.
정곡을 찌른 모양이다.
잠시 후 그가 굳은 인상으로 말했다.
“그렇다.”
이 정도면 충분했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것은 내게 ‘그것’을 익히게 해서 쌍둥이 형제들과의 대결을 통해서 그 결과를 확인하려는 것 같았다.
“더 질문하면 네놈의 다리를 부러뜨려 버릴 테다.”
“…….알겠습니다.”
“그럼 본좌의 뜻에 따르는 것으로 알겠다. 가자!”
-팍!
“어엇?”
해악천이 갑자기 또 나를 들고서 자신의 옆구리에 끼었다.
그리고는 빠르게 어딘가로 이동을 했다.
산봉우리 정상의 반대편 쪽으로 넘어간 그는 절벽을 타고 내려가다, 어떤 동굴 안으로 들어왔다.
-탁!
“여기다.”
햇빛이 비추는 위치에 있었기에 깊지 않은 동굴의 안이 뚜렷하게 보였다.
그런데 동굴 안에는 부서진 해골 조각들과 녹이 슨 철검 한 자루가 꽂혀 있었다.
‘대체 여긴?’
영문을 알 수 없어하는데, 소담검의 목소리가 머릿속을 울렸다.
-운휘야. 저 검……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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