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word Sense RAW novel - Chapter 131
48화 삼대 금지 (1) >
-다그닥! 다그닥!한 밤중.
마차가 정신없이 달리고 있다.
마차 안에 탐스러운 붉은 머리카락을 공작처럼 활짝 펼치고서 누워있는 여인이 있었다.
그녀는 바로 혈교의 교주 후보 중 한 사람인 백혜향이었다.
그런 백혜향을 내려다보고 있는 이가 있었으니, 일혈성 장룡이었다.
한참을 달리고 있던 때였다.
아무리 마차가 덜그덕 거리며 흔들려도 깨지 않고 있던 백혜향이 눈을 떴다.
“아가씨! 정신이 드십니까?”
붉은 안광이 조금씩 살아나며 그녀가 입을 열었다.
“나 진 건가?”
일어나자마자 그녀는 그것부터 물었다.
이에 장룡이 씁쓸하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위로하듯이 말했다.
“상대가 나빴습니다.”
상대는 무림의 열두 초인 중 한 사람이면서 다섯 손가락에 꼽히는 괴물이다.
아무리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백혜향이라고 해도 그 격차는 너무 컸다.
백혜향이 다시 입을 열었다.
“누군지 알아?”
잠시 망설이던 장룡이 답해주었다.
“사대 악인 월악검 사마착입니다.”
장룡은 내심 걱정스러웠다.
백혜향은 지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한다.
혹 그것에 미련을 가질까봐 우려가 되었다.
“그놈이 왜 습격한 거지?”
그녀의 물음에 장룡은 준비해둔 대답을 말했다.
“누군가를 찾던 것 같은데 그 자가 저희에게 있다고 오해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없다는 것을 증명하니 물러났습니다.”
그런 장룡의 말에 그녀의 고운 미간에 주름이 갔다.
불쾌함으로 가득해 보였다.
“제멋대로 그 난리를 쳐놓고 봐줬다는 건가?”
그 자로 인해 서른 명이나 되는 호위 일류고수들이 몰살당했다.
심지어 자신조차 패배했고 말이다.
그녀가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장룡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너무 상심하지 마십쇼. 사대 악인 정도면 무림에서도 재해라 불리는 괴물들입니다. 그들의 행동은 범인의 상식으로 예측할 자들이 아닙니다. 그러니 어떤 단체에도 속하지 않고 안하무인으로….”
“세네.”
“네?”
“세다고.”
백혜향이 선뜻 상대를 인정하자 장룡이 의아해했다.
“놈은 강했고 나는 약했어. 그에 따른 결과인데 뭐가 있어.”
“아…….”
일존에게 그렇게 패해도 인정하지 않고서 비무를 하자고 아득바득 달려들던 그녀가 냉정하게 자신의 패배를 받아들였다.
“더럽게 세네.”
“……달리 초인이라 불리는 것이 아니죠.”
“이런 놈들을 그나마 일존이 상대할 수 있다고?”
일존은 명실상부 혈교 최고의 고수다.
그리고 그들 중에 유일하게 열두 고수에 가장 근접한 실력을 가진 절세고수다.
지금은 폐관에 들어가 있지만 다시 나왔을 때는 완전히 초인의 영역에 들어설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면 일존은 지금껏 봐주면서 날 상대했던 거네.”
그녀의 말에 장룡은 부정하지 않았다.
혈교의 충성스러운 신하이자 그를 주군으로 받드는 일존이다.
백혜향을 상대로 사정을 봐주지 않고 월악검처럼 무자비한 손속을 보이는 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그런 놈들이 공식적으로 열두 명이나 된다고? 아니 일존까지 합하면 열세 명인가.”
‘……설마 본인보다 확실히 강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을 말하는 건가?’
그녀의 말투를 보면 그런 듯 했다.
사실 이것에 관해서는 논하기가 어렵다.
백혜향은 초절정의 극에 도달했기에 또래에서는 상대가 없는 것은 분명하다.
심지어 무림을 통틀어도 상위 1푼에 속하는 강자임도 틀림없다.
하지만 중원은 넓고 무림인들은 수없이 많다.
새로운 강자가 늘 나타나기 마련이었고, 숨겨진 은거 기인까지 친다면 몇 명이 내 위에 있다는 식의 수치는 무의미하다.
‘그…..금안의 괴물 놈만 하더라도 그렇지 않은가.’
육존 십이혈성 시절,
정사대전 도중 갑자기 나타나 당대 일존을 죽였던 그 괴물.
이십 여 년이 넘게 그 자의 흔적을 찾으려 했지만 발견하지 못했다.
누구도 그 자에 대해 아는 자들이 없었다.
그것을 떠올리고 있던 찰나,
“나 폐관에 들어가야겠어.”
“네? 폐관이라뇨?”
“놈과 싸우면서 깨달은 게 있어.”
“깨달은 게 있다고요?”
그 말에 장룡이 내심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끊임없이 성장하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패배를 당한 와중에 심득을 얻었다는 게 대단하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하나 아가씨 지금은….”
“보름, 아니 한 달 안에 나올 거야.”
“……그 정도면 충분하시겠습니까?”
“내공의 문제가 아니잖아.”
“알겠습니다. 하면 혈마검은…..”
“얘기했던 대로 진행해. 수단과 방법 가리지 않아도 상관없어.”
“삼존을 직접 설득하신다고 한 것은?”
“네가 맡아. 장자방 소리 들으려면 그 정도는 해야지.”
그 말에 장룡이 속으로 탄식을 내뱉었다.
결국 자신이 이 세 가지 일을 전부 맡아야만 했다.
‘그래도 나쁘지 않군.’
다행히 그녀가 패배로 인한 각성 때문인지 모든 신경이 자신의 무위를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쏠려있다는 점이었다.
혹 월악검과 다시 승부를 볼 거라며 행방을 캐물어 볼까봐 우려했던 그였다.
굳이 변명을 할 필요도 없었다.
‘월악검이 잘 해주길 바라야 겠구나.’
그가 자신들에게 와서 했던 것처럼 원하는 방향대로만 움직여줘도 모든 것이 원활하게 돌아가게 될 것이다.
* * *
보름하고도 이틀 후.
사천성 계월곡.
험준한 산중턱에 작은 초가가 있었다.
천연의 요새처럼 뒤에는 높은 절벽과 그 앞은 우거진 수풀과 낭떠러지 계곡으로 가려져 있어 쉽게 찾기 어려운 위치에 있었다.
초가의 앞에는 기기괴괴 해악천과 난마도제 서갈마, 혈수마녀 한백하, 사혈성 도장호, 백련하 등이 있었고, 그 주변에는 송좌백, 송우현, 조성원과 같은 대주들이 교인들을 데리고 초가 주변을 비롯해
인근을 수색하고 있었다.
심기 불편한 얼굴로 서있는 해악천에게 난마도제 서갈마가 말했다.
“정말 계월곡이 월악검의 은신처가 맞소이까? 해 형.”
“맞다고 하지 않나.”
해악천이 신경질적으로 답했다.
그로서도 답답한 것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하면 더했지 작을 수가 없었다.
장강의 한복판에서 제자인 소운휘가 납치되었다.
그 주변을 샅샅이 수색한 것도 모자라 결국에는 월악검 사마착의 근거지라 알고 있는 계월곡까지 오게 되었다.
한데 벌써 이틀 째 계곡 전체를 수색하고 있지만 아무 것도 나오지 않았다.
심지어 이 초가마저도 텅텅 비어있었다.
‘이 녀석아….’
해악천도 이 근거지에 관한 것은 소운휘에게 들었던 이야기였다.
한데 아무런 흔적조차 발견할 수 없으니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사혈성 도장호가 입을 열었다.
“…….거처를 옮겼을 가능성도 있지 않겠습니까?”
“거처를 옮겨?”
“아까 전에 아가씨도 그렇고 사존께서도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사마영이라는 월악검의 여식이 계월곡에서 왔다고 했다고 말입니다.”
“그랬지.”
“월악검처럼 똑똑한 자가 한 번 드러난 은신처를 계속 쓰겠습니까?”
그 말에 모두가 일리가 있다고 여겼는지 고개를 끄덕거렸다.
하지만 해악천의 얼굴은 더욱 어두워졌다.
만약 은신처를 옮긴 것이라 한다면 소운휘를 찾는 것은 말 그대로 모래 속에서 진주를 찾는 격이 되어버린다.
-으득!
해악천이 이를 갈면서 말했다.
“설사 그렇다고 해도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찾아야 한다!”
중원을 전부 뒤집어 놓는 한이 있더라도 찾을 작정이었다.
제자이자 혈교의 중심이 될 혈마였다.
한데 다른 이들의 생각은 다른 것 같았다.
난마도제 서갈마가 난처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해 형. 우리 모두 그대와 같은 마음이요. 하나 마냥 이렇게 모든 전력을 동원해서 수색에 전념할 수는 없소.”
“그게 무슨 소리느냐?”
“월악검을 상대할 수도 있는 상황이라 모든 전력이 함께 온 것이지만, 사천, 아니 중원 전역을 수색하기 위해 이 전력을 낭비할 수 없소. 자칫하면 무림 연맹을 비롯해 백혜향 아가씨 측에 우리가 노출될 수 있소이다.”
“그럼 제자, 아니 혈마를 포기하기라도 하겠다는 것이냐!”
“그런 말이 아니지 않소. 이런 식으로는 우리 모두가 위험해질 수 있다는 거요.”
그 말에 화를 내던 해악천이 입을 다물었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미 혈마검이 탈취된 사건으로 무림 연맹에서도 혈교가 다시 일어서려는 낌새를 알아차렸을 것이다.
게다가 백혜향 측 역시도 혈마검을 이쪽에서 탈취한 것을 눈치 챘을 것이기에 더욱 압박을 가해올 것이 틀림없었다.
“……첩첩산중이로군요.”
도장호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한참 빠르게 움직여 본교의 모든 전력을 통합해도 모자란 판국에 정말 최악이나 다름없었다.
혈마검도 혈마도 사라진 셈이었으니 말이다.
해악천이 노기에 차서 말했다.
“그렇다면 노부가 혼자서라도 찾을 것이다!”
그 말에 혈수마녀 한백하가 조심스럽게 말문을 뗐다.
“사존……만에 하나로 공자, 아니 혈마께서 이미 월악검의 손에 운명을 달리하신 것이라면 어떡하실 겁니까?”
“뭐얏!”
-콱!
화가 난 해악천이 단숨에 그녀의 멱살을 잡고서 들어올렸다.
당장에라도 사달이 날 것만 같았다.
그때 백련하가 입을 열었다.
“사존. 고정하세요.”
“아가씨! 하나!”
“냉정하게 생각하셔야 해요. 저 역시 그런 상황은 원치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의 운명이 걸려있는 일입니다. 모든 변수를 고려해야 합니다.”
백련하의 그 말에 해악천이 이를 악물더니 이내 한백하의 멱살을 놓았다.
마음 같아서는 전부 때려 부수고 박살내고 싶은 심경이었다.
하지만 냉정하게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여야 했다.
“아가씨께서는 묘안이 있으십니까?”
그런 해악천의 말에 백련하도 아무 대답을 하지 못했다.
차라리 무림 연맹에 납치를 당한 것이라면 그 행방을 찾기라도 했을 텐데, 이것은 시간을 들여서 전역을 수색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답답해하고 있는 찰나에 도장호가 입을 뗐다.
“별 수 없군요.”
“네놈도 포기하자는 것이더냐?”
“포기는 아닙니다. 하지만 마냥 모든 인력을 수색에만 매달리게 하기에는 위험한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하면 어쩌자는 거냐?”
“상황에 맞게 대처해야지요.”
“상황에 맞게?”
“백혜향 아가씨 측에서는 저희 쪽에서 혈마검을 탈취했다고 확신하고 있을 겁니다.”
“그래서?”
“하나 누가 그 주인이 되었는지는 아직 모릅니다. 당연히 아가씨라고 생각할 겁니다.”
그 말과 함께 도장호가 고개를 돌려 백련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자신이 생각하는 해법을 이야기했다.
“이 상황을 이용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 말은 진짜 혈마의 존재를 숨기자는 것이더냐?”
“당대 혈마의 행방이 묘연해진 것이 알려져 봐야 유리해지는 것은 백혜향 아가씨 측입니다.”
“…….”
이 역시 부정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혈마에 관한 정보는 월악검의 행방을 찾을 때까지 숨기도록 하죠. 당분간은 아가씨를 중심으로 본교 통합을 이어나가도록 해야 합니다. 삼존 어르신과 이혈성을 포섭하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이견을 제기하기에는 딱히 묘수가 없었다.
그런 도장호의 제안에 서갈마와 한백하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사실 그들도 이 방안을 떠올렸었다.
하지만 소운휘를 지지하는 해악천이나 도장호가 반대를 하여 전력이 분산되는 상황이 발생할까봐 쉽게 입 밖으로 내뱉지 못했던 것 뿐이었다.
모두가 해악천을 바라보았다.
이제 그의 결정만이 남았다.
팔짱을 끼고서 고민에 빠져 있던 해악천이 못마땅한 목소리로 말했다.
“혈마를 찾을 때까지다.”
해악천이 하늘을 쳐다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놈아. 살아 있거라. 죽으면 본좌가 용서치 않을 것이야!’
* * *
-쏴아아아아아아!
태어나서 이런 곳은 처음 본다.
반경 십 장 정도 되는 너비의 큰 구멍으로 계곡물들이 폭포수가 되어 떨어지고 있었다.
그 광경이 아슬아슬하게 그네다리 밑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폭포수처럼 떨어지는 물들이 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데 그 깊이가 가늠이 되지 않았다.
‘대체 여기가 어디야?’
-섬서성의 어딘가라는 것밖에 모르겠다.
‘섬서성?’
남천철검의 말에 나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도중에 건포나 주먹밥 같은 것을 주고 대소변을 가리기 위해 일각 정도씩 깼었다.
그것도 하루에 한 번 꼴로 말이다.
그때마다 도망을 시도하고 싶었지만 팔과 다리, 척추에 박아놓은 장침으로 인해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젠장. 보름씩이나 이러고 있었다니.’
지금도 목이 살짝 돌아가는 것 외에는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사마영이 그런 나를 안쓰럽게 쳐다보고 있었다.
-너 그러고 있는 동안 사마영이 여러 번 네 몸에 박혀있는 장침을 빼내려고 시도했었는데 죄다 실패했어. 저 괴물 같은 작자가 아주 귀신같이 깨더라.
소담검이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뒷짐을 진 채 나를 쳐다보고 있는 사마착이 보였다.
이곳에 오는 동안 사마착의 행동은 강압적이었고, 심지어 무슨 말을 해도 대답조차 해주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대답해줄 것 같았다.
적어도 식사와 대소변을 위해 깨운 것이 아니니까 말이다.
조심스럽게 입술을 뗐다.
“……선배님 어째서 저를 이곳으로 데려왔는지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그런 나의 물음에 못마땅하게 쳐다보던 사마착이 입을 열었다.
“원래는 네놈을 죽일까 했다.”
그건 이미 알고 있다.
그러지 않고서 그렇게 배 위에서 죽일 듯이 몰아붙였겠는가.
“하나 뭐가 좋다는 건지 이 아이가 네 녀석을 끔찍이 여기더군.”
사마영이 쑥스럽다는 듯이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사마착이 계속 말을 이어갔다.
“아내와 사별한 후 내게 남은 것은 오직 이 아이 하나뿐이지. 네놈이 그 소중함을 알겠느냐?”
“……..”
괜히 말 잘못했다가 사달 날까봐 답변을 못하겠다.
아무 대답도 못하고 있는데, 사마착이 내게 다가오며 말했다.
“나 사마착이 평생 자유롭게 살아왔으나 보은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그게?”
“내 딸 아이를 살리려고 목숨을 거는 것을 보았다.”
아…..장강에서 사마영이 물에 빠졌을 때를 이야기하는 것 같다.
가까이 다가온 사마착이 심드렁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그래서 네놈에게 내 아이와 맺어질 수 있는 기회를 주려고 한다. 그것을 받아들이겠느냐?”
끝
ⓒ 한중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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