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word Sense RAW novel - Chapter 149
53화 성탑의 시험 (3) >
이런 상황은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무쌍성의 두 절대고수 중 한사람인 무천검제 천무성이 나를 찾을 줄은 몰랐다.
-회귀 전에 네 친부를 죽였을 수도 있다는 사람 아냐?
소담검이 호들갑을 떨었다.
순간 머릿속에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설마 내 정체를 의심한 것일까? 아니면 의심받을 실수를 한 것일까?
어쩌면 친부인 진성백과 만나기 위해 만든 가짜 신분이 문제 되었을 수도 있었다.
-유검문인가 뭔가 그거?
유검문은 백여 년 전 행방이 묘연해진 일인전승 무가로 외조부가 젊은 시절까지도 회자가 되었던 곳이라고 한다.
애초에 오래 전에 행방이 묘연해진 무가라 의심받을 그런 건 없어 보이지만, 차후 무쌍성의 성주가 될 자가 찾는다고 하니 괜히 불안해졌다.
-어떻게 할 거야?
피할 방도가 없다.
여기서 피하게 되면 더욱 의심을 사게 되니까.
나는 포권을 취하며 놀랍다는 표정을 지으며 근육질의 중년인에게 말했다.
“무천검제를 뵐 기회가 생기다니 무인으로서 영광입니다.”
“그럴 거라 생각했습니다. 따라오시죠.”
그런 나의 태도에 흡족해하며 중년인이 앞장서서 안내를 했다.
풍영팔류종의 성탑 근처를 벗어나자 무림인들의 인파가 급격히 줄었다.
보이는 대부분이 무쌍성의 무사들이었다.
이때까지는 말없이 걸어가고 있었는데, 서북쪽의 무천검종의 성탑 부근 쪽으로 도착해 가자 근육질의 중년인이 입을 열었다.
“인사가 늦었군요. 무쌍성의 패원권종의 종주인 갑원춘이라고 합니다.”
누구인가 궁금하긴 했는데, 예상과 다르게 무천정종의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무쌍성 내 한 종파의 수장이었다.
그런 자가 마치 무천정종의 하수인처럼 나를 안내할 줄이야.
‘……그런데 어떻게 풍영팔류종의 시험을 치를 때, 이 자가 입구를 지키고 안에까지 들어오게 된 거지?’
그 점이 의문이었다.
물어보지 않을까 하다 자연스럽게 둘러서 이야기해보았다.
“저는 성탑 안으로 안내를 해주시기에 풍영팔류종의 종파원이신 줄 알았습니다.”
그런 나의 물음에 갑원춘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본인은 그저 입회자일 뿐입니다. 무쌍성 내의 모든 종파는 타종파의 입회자가 없이 따로 공식적인 행사를 진행할 수 없습니다.”
“아아. 그렇군요.”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지만 덕분에 좋은 정보를 알았다.
이 자는 무쌍성의 성칙에 의거해 풍영팔류종의 시험을 지켜본 것이다.
그리고 지금 상황을 보면 그는 풍영팔류종보다 무천정종과 긴밀한 연을 맺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서로를 견제하는 것 같다. 운휘.
그래.
성칙도 그렇고 내부에서 두 파로 나뉘었다는 게 사실인 모양이다.
왠지 무천검제가 나를 찾는 이유가 단순히 정체를 의심해서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윽고 길 안내를 하던 갑원춘이 한 건물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곳입니다.”
‘저긴…..’
무천정종의 성탑이 아니었다.
기와 건물이었는데, 천들을 나무에 매달아놓고 한 모습이 영락없이 사당처럼 보였다.
이 주변에는 심지어 무쌍성의 무사들도 없었다.
사당처럼 보이는 건물 앞으로 다가가자 안에서 하나의 기척이 느껴졌다.
-들리지? 너도.
소담검의 말처럼 하나의 검의 소리도 들렸다.
이명이 뚜렷하게 들리는 걸 보니 보검인 듯 했다.
다만 느껴지는 기척은 팔대고수의 일인이라고 하기에는 기운이 너무 선명했다.
지금까지 만났던 팔대고수들은 기감으로조차 느낄 수가 없었다.
의아해하고 있는데 갑원춘이 내게 말했다.
“안으로 들어가시죠.”
“같이 들어가는 게 아닙니까?”
“제 일은 여기까지입니다. 저는 다시 성탑에 입회를 하러 가야합니다.”
흠.
그냥 핑계 같다.
애초에 제대로 입회를 서려면 자리를 지켜야 맞았다.
아마 나만 들어오라고 했겠지.
잠시 사당 같이 생긴 건물을 쳐다보던 나는 대문 전각을 통과해 건물의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 등불로 밝혀놓은 안이 모습을 드러냈다.
‘사당이 맞네.’
향내가 코끝을 자극했다.
안에는 신주를 모시는 제단이 차려져 있었고, 그 앞에는 뒷짐을 지고 서있는 백의를 입은 반백의 사내가 서있었다.
그리고 그 앞쪽에는 좌선을 하고서 눈을 감고 있는 말끔한 외모에 이십대 후반으로 보이는 청년이 있었다.
청년의 앞에는 보검으로 짐작되는 검집이 놓여 있었다.
기척의 주인은 이 청년이었던 것 같다.
-끼이이익!
문을 닫은 나는 제단의 앞에 뒷짐을 지고 있는 사내를 향해 포권을 취했다.
“후배. 하운이 대선배님께 인사 올립니다.”
인사에도 불구하고 뒷짐을 지고 있는 사내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오히려 향을 하나 빼들고서 불을 붙여, 향로에 꽂았다.
가묘의 제사 도중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포권을 취한 상태로 지켜보고 있는데, 향을 꽂아 넣은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검은 무엇인가?”
뜬금없는 물음에 나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인사도 아무 것도 없이 대뜸 물으니 대답이 떠오를 리가 있겠나.
‘검이 뭐지?’
질문에 뭔가 의도가 있을 것 같다.
섣불리 대답하기에는 답을 정해놓는 것 같아 조심스럽게 되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사내가 다시 입을 열었다.
“검은 만병지왕이다.”
-맞는 소리다. 운휘.
남천철검이 그 말에 동의를 했다.
누가 검이 아니랄까봐 모든 병장기들의 왕이라는 말에 괜스레 좋아한다.
그때 반백의 사내가 제단에서 몸을 돌렸다.
단정하게 머리를 위로 올린 강인한 인상의 장년인이었다.
흰 머리카락이 반을 채우고 있었지만 얼굴은 겉보기만 보면 오십대 초반처럼 보인다.
실제 나이는 팔십을 넘긴 노인으로 알고 있었다.
-흠칫!
순간 장년인과 눈을 마주쳤는데, 강렬한 눈빛에 압도당하는 듯 했다.
눈빛이 검처럼 날카로웠는데, 관통당하는 느낌이었다.
이 자가 무쌍성에서 최강의 무인이라 불린다는 무천검제 천무성인가.
천무성이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백일창, 천일도, 만일검이라고 했다. 자네는 만일 간의 단련의 길을 걷고 있으면서 어찌해서 잡스러운 것들을 배우려고 하는 건가?”
“잡스러운 것들?”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설마 풍영팔류종을 의미하는 건가?
“만일을 단련해도 모자라 평생을 함께해야 하는 것이 검이다. 한데 어째서 외도의 길을 걸어가려고 하는가? 자네가 가지고 있는 검들이 울고 있는 것이 느껴지지 않나?”
‘…….’
-이건 또 뭔 소리야. 우리가 울긴 왜 울어.
-흐음. 전주인도 우리 같은 검들을 좋아했지만 저 자는 진성 검 신봉자인 것 같다.
남천철검이 검 신봉자라 표현했지만 무천검제 천무성은 검에 대한 자부심이 굉장히 강한 것만은 확실한 듯 했다.
찾았다고 해서 들어왔는데 계속 검 얘기만 하고 있다.
들은 그대로만 하면 검객이 검을 익히지 않고 어째서 다른 무공을 탐내는지를 꼬집는 것 같다.
뭔가 께름칙해지고 있다.
잠시 망설이던 나는 입을 열었다.
“선배님.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어째서 찾으셨는지 여쭤 봐도 괜찮을지?”
그때 좌선하고 있던 청년이 눈을 뜨고서, 좌선하고 있는 앞에 놓여 있던 검집을 쥐고서 입을 열었다.
“스승님. 검을 섞어 봐도 괜찮겠습니까?”
‘검을 섞어?’
이건 또 무슨 소리지?
지금 나와 겨뤄보겠다는 건가.
청년의 물음에 천무성이 대답대신 그의 이름을 불렀다.
“무혁.”
“네. 스승님.”
‘무혁?’
저 청년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강무혁.
무천검제의 제자이자 훗날 소무천검이라 불리며 무쌍성을 대표할 두 명의 신진 무인들 중 한 사람이었다.
무림 연맹을 대표하는 이정겸과 종종 비교가 되는 자였다.
확실히 풍겨지는 기운이 여느 후기지수들과는 비견이 되지 않을 만큼 강했다.
열왕패도의 손자인 진용보다도 말이다.
-그럼 이정겸이랑 비슷한 급의 실력자란 거야?
그건 아닌 것 같다.
이정겸은 하단전을 개방한 상태로 그 역량을 가늠하기 힘든 반면, 강무혁은 어느 정도 실력인지 감을 잡을 수 있었다.
강무혁의 시선이 내게로 향하고 있었는데, 눈에서 전의가 느껴졌다.
녀석은 하단전을 개방한 나와 비슷한 역량을 지녔다.
비슷한 역량을 지닌 고수를 눈앞에 두고 있는데 호승심이 생기지 않을 무인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천무성의 대답은 그의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못했다.
“네겐 무리다.”
“네?”
“범이라 생각해서 불렀더니 가히 용이로구나.”
“스승님!”
그 말에 자존심이 상했는지 강무혁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당장에라도 나와 겨뤄서 자신이 우위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고 싶어하는 듯 했다.
이에 천무성이 일갈을 내질렀다.
“갈!”
“큭!”
사자후와 같이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절로 인상이 찡그려졌다.
가까이에 있던 강무혁은 스승의 단호한 일갈에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천무성이 말했다.
“아직 정(精)도 단련을 마치지 못한 녀석이 무슨 수로 기(氣)를 열은 녀석과 겨루겠다는 게야.”
‘아!’
내심 당혹스러웠다.
이 자도 중단전을 느끼고 있었다.
월악검 사마착도 내가 원기인 선천진기를 단련하고 있음을 알아차렸는데, 그 역시도 이것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괜히 초인이라 불리는 것이 아니었다.
천무성이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고작 유검문의 진전을 이었다는 녀석이 정기신의 기(氣)를 열다니 참으로 놀랍구나.”
뭐라고 답변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차피 선천진기를 익힌 것을 들켰다면 속일 수도 없었다.
‘일단 숙이고 들어가자.’
당장에 팔대고수를 상대하는 건 무리였다.
잠시 고민하던 나는 포권을 취하며 고개를 숙이며 겸손한 목소리로 말했다.
“과찬이십니다. 후배. 선배께서 하는 칭찬에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그 나이에 그런 경지에 이르렀다면 칭찬을 받아 마땅하지.”
뭔가 원만한 분위기로 이어지는 것 같다.
그런데 천무성의 입에서 전혀 예상 못한 말이 나왔다.
“풍영팔류종의 시험을 포기하거라.”
“네? 그게 무슨 말씀인지?”
“네게 필요한 것은 잡기나 다름없는 새로운 무공을 가르칠 스승이 아니다. 더 높은 검의 경지로 이끌어줄 스승이 필요하다.”
순간 말문이 막혔다.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았지만 이건 자신의 제자가 되라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이게 뭔 일이라냐?
내가 하고픈 말이다.
의심받을 만한 무언가가 있어서 부른 줄 알았더니 당혹스럽다.
만약 친부를 만나러 온 게 아니었거나 여느 무림인들이라면 기뻐하며 받아들일 일이었지만 내게는 아니었다.
이미 하오문의 정보를 통해서 무천정종이 풍영팔류종, 해왕성종과 대립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무천검제의 제자가 된다면 풍영팔류종과 대립하게 된다.
“선배님. 만약 시험을 포기하면 저는 삼 년 동안 풍영팔류종의 식객이 되어야 합니다.”
돌려서 나는 거절의 의사를 밝혔다.
천무성이 뒤를 돌아 제단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말했다.
“팔대고수의 공동 제자인 이정겸을 상대로 경쟁에서 이길 수 있을 것 같으냐?”
“길고 짧은 것은 대봐야 알지 않겠습니까?”
“제법 승부심도 있구나. 한데 네가 모르는 게 있다.”
“네?”
“무정풍신은 제자나 후계자를 뽑으려고 하는 게 아니다. 너는 그 시험을 치르더라도 결국 떨어지고서 풍영팔류종의 식객 노릇이나 하게 될 거다.”
“……어떤 식으로든 떨어질 거라는 말씀입니까?”
“제자 하나를 뽑는데, 이런 식으로 시험을 치르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느냐? 지금까지 왔던 고수들 중에 누구 하나 통과하지 못했다.”
“…….”
이건 나 역시도 의구심을 가졌던 부분이다.
하지만 내게는 그를 만나야 할 이유가 있었다.
천무성이 제단 위에 올려진 위패들을 만지며 말했다.
“무정풍신은 그저 자신의 세를 늘리려는 것뿐이다. 만약 네가 내 제자가 되겠다고 한다면 놈으로부터 보호해주마.”
“식객이 되는 것으로부터 말입니까?”
“그렇다.”
순수한 의도로 이런 말을 하는 걸까?
만약 그런 것이라면 제자가 되는 것을 거절해도 이를 나무라지 않을 것이다.
그의 자존심을 생각해 잠시 뜸을 들이고서 말했다.
“선배님의 호의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하나 저는 이미 풍영팔류종의 시험을 치르고 있습니다. 신의라는 것이 있는데 어찌 시험을 치르는 도중에 포기할 수 있겠습니까?”
“노부의 호의를 거절하겠다는 게냐?”
“저 때문에 선배님께서 무정풍신과 대립하길 원치 않습니다.”
이 정도로 이야기했으면 충분하다고 여겼다.
기분이 상하지 않게 최대한 둘러서 말했으니 더는 제자가 되라고 강요하지 않을 것이다.
천무성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그놈 참 고집이 세구나.”
“죄송합니다.”
“별 수 없구나.”
“선배님의 호의는 절대 잊지….”
“그럴 필요 없다.”
“네?”
“네게 생각할 시간을 주마.”
이 노인네도 어지간히 포기를 모르는 인간인 것 같다.
고집을 부리는 게 내가 아니고 본인이라는 것을 모르는 건가.
그때 천무성이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을 했다.
“호의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 된다면 그 생각이 바뀔 테지. 며칠 동안 푹 쉬면서 고민해 보거라.”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바로 그 순간이었다.
-쾅!
“헉!”
갑자기 서있던 발밑의 바닥이 꺼졌다.
너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나는 그대로 밑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 * *
소운휘가 밑으로 떨어지자 천무성은 밀고 있던 위패에서 손을 뗐다.
-쿠르르르!
그러자 기계음이 들리며 밑으로 반으로 갈라지며 꺼졌던 바닥이 다시 위로 올라왔다.
천무성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쓸 만하다 싶은 녀석들은 쓸데없이 고집이 세구나.”
그런 그의 말에 제자 강무혁이 대답했다.
“말하는 것을 보면 그 자 못지않게 고집이 있어보였는데, 며칠이 지난다고 설득이 되겠습니까?”
“상관없다. 어차피 내일 정오까지 2차 시험을 치르지 못한다면 꼼짝없이 풍영팔류종의 식객노릇을 해야 한다. 그런 상황에서 제깟 놈이 신의니 뭐니 하며 떠들 수 있을 것 같으냐.”
스승 천무성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강무혁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스승님. 한데 만약 놈이 풍영팔류종의 식객이라도 하겠다고 나오면 어떡할지?”
“그렇다면 그 녀석과 마찬가지로 고집이 꺾일 때까지 가둬두는 수밖에.”
“알겠습니다. 하면 산독향과 수면향이 빠지는 데로 금제를 해서 옥에 가둬놓도록 하겠습니다.”
“네게 맡기마.”
그 말과 함께 천무성과 제자 강무혁은 사당의 바깥으로 나갔다.
밑으로 꺼졌던 사당 바닥의 반대편.
그곳에 은빛의 얇은 실 같은 것이 바닥 밑의 작은 구멍에 묶여 있었다.
그 실을 따라 내려가면 거미처럼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는 누군가가 있었는데, 그는 바로 소운휘였다.
끝
ⓒ 한중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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