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word Sense RAW novel - Chapter 153
54화 공조 (4) (수정) >
“봤구나.”
단 한 마디에 불과했지만 전신에 닭살이 돋을 만큼 소름이 끼쳤다.
사당에서 보았던 무천검제 천무성과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였다.
팔대고수라는 느낌보다 오히려 악인에 가까울 만큼 극도로 위험하면서도 악한 위압감이 느껴졌다.
천무성이 나와 백혜향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봤느냐고 물었다.”
살이 떨린다.
흡사 월악검 사마착을 처음 보았을 때의 기분이다.
공동 안의 공기가 살기로 팽배했다.
조금이라도 긴장을 늦추면 당장에라도 심장과 머리가 관통당할 것만 같다.
-슥!
백혜향의 딛고 있는 발에 힘이 들어갔다.
발바닥의 용천혈로 공력이 집중되는 현상이었다.
그녀 역시도 대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남천철검의 검병을 꽉 쥐고서 곁눈질로 흑철 감옥 안을 쳐다보았다.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었다.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무쌍성 아니, 무림을 통틀어 대사건이라 할 만한 일을 우리는 눈앞에서 목격한 셈이다.
그때 동굴과 공동 사이로 천무성이 한 발자국 내딛으려 했다.
나는 생각할 시간을 벌기 위해 다급히 입을 열었다.
“선배님……저 안에 있는 분이 누군지는 모르나, 이런 일로 선배님과 더는 안 좋게 엮이고 싶지 않군요.”
“그건 그 안을 보기 전의 일이지.”
그 말에 나는 애써 시치미를 뗐다.
“제대로 보지 못했습니다.”
“잔머리를 굴리지 말거라. 그 안에 나와 비슷한 얼굴의 노인네가 있다는 것을 너희들 눈으로 똑똑히 보지 않았느냐.”
자신의 입으로 그 말을 할 줄이야.
감옥 안에는 피골이 야위긴 했으나 그와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는 노인이 누워있었다.
멀쩡한 모습이었다면 누구라도 눈앞에 저 무천검제 천무성이라고 생각했을 거다.
그때 은연사에 묶여 있던 강무혁이 소리쳤다.
“스, 스승님.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제….제 이 눈을 보십쇼. 저들이 강제로….”
녀석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천무성이 혀를 차며 말했다.
“쯧쯧, 스스로 쓸모없음을 이런 식으로 증명하는구나.”
그리고 검지와 중지를 모은 검결지를 검처럼 강무혁에게 겨냥했다.
그 순간 날카로운 예기가 느껴졌다.
‘설마?’
나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본능적으로 예기가 느껴지는 방향을 향해 남천철검을 휘둘렀다.
-채앵!
쇳소리와 함께 검을 잡고 있는 신형이 뒤로 세 발자국 정도 밀려났다.
검신이 심하게 떨려왔다.
단지 예기를 쳐냈을 뿐인데, 이 정도의 위력을 가지다니.
“저….저를….”
한순간에 미간이 꿰뚫릴 뻔한 강무혁은 사색이 된 얼굴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정말 녀석의 말대로였다.
조금이라도 제자로 여겼다면 목숨을 앗아가려 하지 않았을 거다.
“옳은 수순이지. 입이 가벼운 녀석에 대한 대가니까.”
백혜향은 전혀 이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 말을 들은 천무성이 안타깝다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쉽구나. 너희 두 녀석 모두 저 쓸모없는 놈보다 나으니 말이야. 가만히 있었으면 둘 모두 중히 인재로 썼을 터인데.”
살기가 더욱 강해지고 있다.
“……그 말씀이 꼭 저희를 죽이겠다는 말로 들리는군요.”
“이곳에 들어오지 말았어야지.”
머리를 굴려서 빠져나갈 상황이 아니었다.
이 자와 어떤 식으로든 부딪칠 수밖에 없었다.
온몸이 긴장으로 떨려온다.
저 자의 정체가 어찌되었든 분명 팔대고수의 역량에 버금가는 괴물이었다.
나는 남천철검의 검신을 들어 올리며 천무성에게 물었다.
“죽일 거라면 저승에서 답답하지 않게 속이라도 시원하게 해주시죠. 누가 진짜입니까?”
나의 물음에 천무성이 불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글쎄. 누가 진짜일까?”
-슥!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천무성이 우릴 향해 일 자로 검결지를 그었다.
그러자 눈앞의 공기가 일렁이며 날카로운 예기가 허공을 갈랐다.
단번에 우릴 베어낼 작정이었다.
“네놈이 가짜겠지!”
백혜향이 검을 들어 날아오는 예기를 향해 휘둘렀다.
나 역시도 중단전을 개방하며 은연사를 회수함과 동시에 그녀와 호흡을 맞추기라도 하듯 검을 휘둘렀다.
-촥!
우리 두 사람의 검과 부딪친 예기가 사방으로 튀었다.
벽에 예기가 파고들자 검으로 내려친 것 같은 흔적들이 생겨났다.
-쩌저적!
공동이 천장의 벽이 갈라지며 미세하게 흔들렸다.
흑철 감옥이 튼튼한 것에 비해 이곳 공동은 지하를 파내서 만들어서 그런지 생각보다 지반자체가 약한 것 같다.
‘아!’
순간 머릿속에 좋은 생각이 번뜩였다.
백혜향을 쳐다보니 그녀 역시 공동의 천장을 쳐다보고 있었다.
우리의 생각을 알아채기라도 했는지 천무성이 다가오며 싸늘해진 눈빛으로 말했다.
“어리석은 생각들은 버리거라. 그런다고 네놈들이 내 손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으냐.”
“해보면 알겠지.”
백혜향의 몸에서 붉은 아지랑이가 일어났다.
그러자 그녀가 쥐고 있는 검의 검신이 선홍빛으로 물들어갔다.
-끄아아아악!
검의 비명 소리가 머릿속을 울렸다.
역시 평범한 검은 혈천대라공의 기운을 견뎌내지 못한다.
붉게 물든 검을 본 천무성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네년 혈마의 후손이었나?”
꽤나 놀란 모양이었다.
백혜향은 놈의 물음에 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모든 공력을 검에 집중하고 있었다.
-쩌저저적!
검에 균열이 생겨났다.
나 역시도 남천철검으로 모든 공력을 집중했다.
가장 큰 위력이 낼 수 있는 초식을 펼치기 위해서 말이다.
백혜향이 내게 말했다.
“내 신호에 맞춰라.”
“흥!”
뻔히 무슨 수를 펼칠지 아는데 천무성이 이를 그냥 내버려둘 리가 없었다.
그가 드디어 직접 움직였다.
백혜향이 그를 향해 선홍빛으로 물든 검을 뻗었다.
-콰드드득! 파파파파!
균열이 갔던 검이 완전히 갈라지며 파편들이 앞으로 날아갔다.
혈천대라검의 검초가 아니었다.
그녀가 만든 검초인 듯 했다.
혈천대라공으로 붉게 물든 검의 파편들이 회오리를 치듯이 천무성을 뒤덮었다.
“지금이야!”
백혜향과 내가 동시에 천장을 향해 뛰어올랐다.
그런데 예상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촤촤촤촤촥!
부러진 검의 파편들을 파죽지세로 뚫은 천무성이 우릴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젠장!’
이러다간 천장에 타격을 가하기도 전에 우리가 먼저 당할 지도 몰랐다.
나는 천장으로 향하던 몸과 검의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 두 손으로 검병을 쥐고서 검결지를 휘두르는 천무성을 향해 검초를 펼쳤다.
‘유성낙검!’
진 성명검법의 제 5초식 유성낙검(流星落劍).
내가 백혜향의 앞을 가로막고서 자신에게 검초를 날리자 천무성이 일갈을 내질렀다.
“어리석은 것! 반으로 갈라주마!”
-차아아앙!
그의 검결지에서 흘러나온 날카로운 예기가 순식간에 유성낙검을 펼치는 남천철검을 튕겨냈다. 검병을 쥐고 있던 손바닥이 처참하게 찢겨나갔다.
이를 악물고 참았지만 어느새 예기가 복부에 닿았다.
‘견뎌야 해!’
찰나에 금혈지체를 운공하며 모든 기운을 복부로 집중했다.
그러나 예기가 닿는 순간 그것이 무색해질 만큼 복부가 갈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촥!
“끄아악!”
참을 수가 없는 고통에 절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복부의 근육마저 베어내고 파고든 예기가 오장육부를 베어낸 것 같다.
순간 정신이 아득해지려고 했다.
그때였다.
-콰아아아아앙!
“이런!”
엄청난 굉음과 함께 천장이 갈라지며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이내 무너져 내렸다.
천장이 무너져 내리자 천무성이 다급히 뒤로 신형을 날렸다.
반면 나는 파편들에 맞고서 밑으로 떨어지려 했다.
-팍!
그 짧은 찰나에 누군가 내 목덜미를 잡았다.
바로 백혜향이었다.
-쿠르르르르!
눈앞에 무너져 내린 천장의 돌 파편들이 공동의 반을 막아버린 장벽이 되어주었다.
계획이 성공적으로 이뤄진 것 같다.
-운휘!
-너 괜찮아?
전혀 안 괜찮다.
배를 중심으로 절반이나 몸이 갈라졌다.
목구멍으로 핏물이 올라왔고 당장에라도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았다.
“너!”
백혜향이 그런 나의 모습에 울컥했는지, 잔뜩 일그러진 얼굴이 붉게 상기되었다.
복부로 뭔가가 흘러내리려고 했다.
이에 백혜향이 다급히 나를 눕히고서, 상의를 거칠게 뜯어버리더니 두 손바닥을 갈라진 상처부위에 갖다 댔다.
“이 꽉 깨물어.”
-치이이이익!
“끄으으읍!”
열양장(熱陽掌)이라도 익혔는지 그녀의 손에서 흘러나온 뜨거운 기운에 살점이 타들어갔다.
갈라진 상처부위를 지져서 막으려는 듯 했다.
상처를 지진 그녀가 자신의 겉옷을 벗어 복부 쪽을 동여맸다.
“끄억! 쿨럭쿨럭.”
핏물이 입에서 계속 나왔다.
백혜향이 그런 나를 다그쳤다.
“미련한 놈! 어쩌자고 그런 짓을 한 거야!”
어쩌자고 했겠는가.
내가 막아서지 않았다면 둘 다 당했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백혜향의 양팔을 보니 그녀 역시도 천무성에게 당했는지 옷자락이 피로 얼룩져 있었다.
천장을 무너뜨리려는 것을 어떻게든 저지하려 했나 보다.
“끄으으….피차….마찬가지가….아닙니까?”
“멍청이! 복부가 반으로 갈라진 것과 같나!”
“그만….뭐라고….쿨럭.”
목구멍이 핏물에 막혀서 말을 하기도 힘들었다.
그런 나를 백혜향이 다급히 업었다.
들쳐 매려는 그녀의 팔이 심하게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죽지마라. 넌 내거다. 나는 내 것을 죽게 하지 않는다.”
이 상황에서도 탐욕을 부리다니 지극히 백혜향스러운 말이었다.
지금만큼은 그렇게 거부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소운휘! 소운휘!”
내가 정신을 잃을까봐 그녀가 계속 말을 걸었다.
자신도 그리 상태가 좋지 않는데도 모든 신경을 내게 집중하는 그녀였다.
“귀….아픕니다. 저도 죽을….생각은….없습니다.”
“하! 입은 살았구나.”
그녀에게 말할 수 없지만 딱 하나 믿고 있는 것이 있었다.
그게 통할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너 설마 그 회복 능력을 말하는 거야?
그래.
손바닥의 상처도 오래 걸리지 않고 회복시켰다.
금안의 남자만큼은 아니더라도 부디 잘린 몸이 회복되길 바라고 있다.
-너 그러다 낫지 않으면 어쩌려….
-쾅! 쾅!
그때 무너져 내린 돌 파편 장벽에서 커다란 굉음 소리가 들렸다.
이어서 건너편에서 목소리가 울렸다.
-어리석은 것들! 이런 잔수작으로 내 손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으냐!
-쾅!
돌 파편 장벽이 들썩거렸다.
기세를 보면 금방이라도 뚫릴 것만 같았다.
이를 본 백혜향이 입술을 질끈 깨물더니 나를 업고서 황급히 경공을 펼쳤다.
흔들릴 때마다 통증에 정신이 아득해 진다.
“정신 차려.”
-운휘!
-눈을 감으면 안 돼!
백혜향과 소담검, 남천철검이 계속 정신을 잃지 않게 말을 걸었다.
실눈을 뜨고서 앞을 보는데 통로의 끝이 보였다.
위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었다.
그때 통로 뒤쪽에서 커다란 굉음이 들렸다.
아무래도 천무성이 돌 파편 장벽을 부수는데 성공한 것 같았다.
이러다 금방 따라잡힐 듯 했다.
“칫!”
백혜향이 서둘러 계단을 올라갔다.
계단을 올라가자 다른 출구와 마찬가지로 철문 하나가 이를 가로막고 있었다.
철문을 밀고 올라가자 밀폐된 작은 공간이 드러났다.
“이게 뭐야?”
백혜향이 신경질적으로 그것을 위로 쳐냈다.
재질이 나무로 만든 무언가 같았는데, 밖으로 나오니 우리가 나온 곳은 다름 아닌 커다란 궤짝이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이런 궤짝들로 가득했다.
아무래도 이런 궤짝들을 보관하는 창고로 보였다.
백혜향이 뒤를 돌아 우리가 나왔던 궤짝을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갑자기 주변의 궤짝들을 하나씩 열어젖히기 시작했다.
“쿨럭…쿨럭….지금…..뭐하시는….”
“조용히 해.”
궤짝을 열어젖히던 그녀가 비어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녀가 업고 있던 나를 들어서 그 궤짝 안으로 집어넣었다.
안에 눕히고 나서 그녀가 가슴에 점혈법을 행했다.
“귀식 대법이다. 여기서 숨어있어라. 나는 놈을 유인할 거다.”
‘!?’
백혜향이 팔 소매를 거두며 상처부위를 이빨로 물어 더욱 피가 나오게 했다.
설마 핏 자국을 남겨서 유인하려는 건가.
그녀가 피가 묻은 손으로 내 뺨을 만지며 말했다.
“죽지 마라. 만약……죽는다면 약조하마. 그놈뿐만이 아니라 이 무쌍성에 살아 숨 쉬는 모든 것을 죽여버릴 거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그녀가 지공으로 마지막 혈도를 눌렀다.
그러자 호흡이 막히며 눈이 스르륵 감겼다.
* * *
얼마나 시간이 흐른 것일까?
-운휘?
-정신 차려!
귓가를 울리는 남천철검과 소담검의 목소리.
이에 나는 감고 있던 눈을 떴다.
사방이 어둡기 그지없었다.
아직도 나는 궤짝에 있는 것 같다.
-너 괜찮아?
소담검의 말에 나는 얼떨결에 복부를 만져보았다.
놀랍게도 통증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프지 않아.’
-정말?
거짓말이라도 하겠는가.
나는 그녀가 복부에 동여맸던 옷자락을 풀었다.
‘아!’
매끈하다.
배에는 어떠한 상처도 없었다.
심지어 백혜향의 열영장에 입은 화상조차 자국이 없는 것 같다.
-와…..이거 완전 도마뱀 수준인데.
정말 놀라웠다.
반신반의하고 있었지만 회복 능력이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살았다.’
이번만큼은 정말 죽는 줄 알았다.
이 엄청난 회복 능력이 없었다면 꼼짝없이 죽었을 상처였다.
‘후우.’
나는 중단전을 개방한 상태로 기감을 열어서 주변의 기척을 살폈다.
다행히 주변에 어떠한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궤짝의 문을 슬쩍 열었다.
‘빛?’
슬며시 밖을 보았는데 창고의 기와 사이로 햇빛이 흘러들어오고 있었다.
대체 내가 얼마나 여기서 있었던 거지?
-너 거의 꼬박 몇 시진은 정신을 잃고 있었어. 그 귀식 대법인가 때문인지 숨도 안쉬어서 죽은 줄 알았잖아.
그만큼이나 정신을 잃고 있었던 건가.
‘혹시 내가 쓰러져 있는 사이에 어떻게 되었는지 알아?’
-우리도 갇혀 있어서 소리만 들었다.
-그래. 너 정신 잃고 나서 백혜향이 창고 바깥으로 나간 것 같더라.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서 그 무서운 노인네도 나왔어. 다행히 곧장 그 계집애를 쫓아간 것 같아.
-네가 백혜향과 같이 도망간 줄 알고 있는 것 같다.
정말로 그녀의 유인책이 통했던 모양이다.
나는 궤짝의 문을 열고 몸을 일으켜세웠다.
궤짝 창고의 목판 바닥에는 백혜향의 것으로 추측되는 핏자국들이 입구까지 이어져 있었다.
“…….”
설마 그녀가 나를 위해서 이렇게까지 해줬을 줄은 몰랐다.
그 오만하던 여인이 말이다.
백혜향이 무사히 도망쳤는지 궁금하다.
상대는 팔대고수에 버금가는 역량을 지닌 괴물이었다.
-잡혔다면 뭔가 난리가 나거나 이쪽으로 시신을 가져오지 않았을까?
그 말도 일리는 있었다.
그가 지닌 비밀을 생각하다면 우리를 대놓고 해칠 수가 없었다.
‘대체 누구지?’
그 자의 정체가 궁금했다.
흑철 감옥 속에 있던 자는 무천검제 천무성과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말은 우리를 죽이려 들었던 그 자가 진짜 무천검제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무쌍성의 사람들은 이 사실을 분명 모르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니 그 자가 살인면구를 하려 했던 것이다.
‘…..그놈이 친부를 죽인 자일까?’
가장 유력하게 생각하고 있던 자가 무천검제였다.
그런데 그 자에게 이렇게 커다란 비밀이 숨겨져 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친부를 만나기 위해 왔다가 이런 일에 휘말리다니.
머리가 복잡하다.
-의도치 않게 그 자의 비밀을 알긴 했지만, 네 선에서 어찌해볼 수 있는 문제가 아닌 듯 하다. 운휘.
남천철검의 말이 맞다.
무쌍성의 외인에 불과한 내가 이것을 무턱대고 건드려봐야 오히려 위험해질 수도 있다.
게다가 상대는 팔대고수에 버금가는 절세 무공을 지녔다.
세력이나 무(武), 어떤 걸로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때 소담검이 말했다.
-그건 그런데 너 괜찮겠어?
뭐가 괜찮냐는 거지?
-얼마 안 있으면 곧 정오일 것 같은데?
‘정오? 아!’
뜻밖의 일에 휘말리면서 잠시 깜빡했다.
정오까지 풍영팔류종의 성탑의 팔층으로 오지 않으면 이차 시험에 탈락하고 만다.
그때 문득 머릿속에서 뭔가가 스쳐지나갔다.
‘외인인 내가 건드릴 수 없는 문제라면….’
* * *
정오가 되기 반 각 전.
해가 중천이 되어가고 있을 무렵인데, 풍영팔류종의 성탑 앞은 사람들도 붐볐다.
원래라면 한참 시험이 진행되어야 하지만 그것이 멈춰져 있었다.
이는 이차 시험이 진행될 거라는 공표 때문이었다.
처음으로 일차 시험을 세 명이나 통과했다는 소문 때문에 무림인들은 실망과 제발 그들이 떨어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아니. 왜 아직 한 명이 오지 않지?”
“그 안대를 쓴 애꾸눈 말이야.”
“정오가 다 되가는데 설마 이차 시험을 포기한 건가?”
“상대가 팔대고수의 후인들이라서 그런 걸지도 모르지.”
“하긴 일차 시험에 통과했어도 그들의 실력을 그 눈으로 보았을 테니.”
“그래도 시험을 치러 볼만도 할 텐데. 의외로 포기가 빠른 녀석이로군.”
아직 오지 않은 단 한 사람 때문에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런 그들을 지켜보는 입회자 갑원춘이 속으로 웃었다.
왜 그가 못 오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저들끼리 떠드는 모습이 우습기 짝이 없었다.
-웅성웅성!
그런데 어디선가 술렁이는 소리가 들렸다.
‘뭐지?’
의아해하고 있는데 사람들이 양떼 사이에 맹수라도 나타난 것 마냥 양옆으로 갈라지고 있었다.
그곳에서 온통 피로 얼룩진 누군가가 걸어오고 있었다.
이를 발견한 갑원춘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아니 저 자가 어떻게?’
그는 바로 하운이었다.
지하에 갇혀 있어야 할 자가 아닌가.
성탑의 입구 앞으로 다가오는 하운을 갑원춘이 다급히 가로막았다.
‘대체 어떻게 된 거지?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영문을 모르겠지만 그를 이곳에 들여보낼 순 없었다.
조금만 더 있으면 정오다.
이렇게 된 이상 잠시라도 시간을 끌어야 했다.
갑원춘이 시치미를 떼고 말했다.
“소협. 대체 몰골이 왜 그런 거요? 무슨 일이라도 있던….”
그는 말을 전부 이을 수가 없었다.
하운, 아니 소운휘가 살기 어린 눈빛으로 노려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장에라도 살수를 날릴 것만 같아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안 돼. 내가 막을 수 있는 놈이 아니야. 괜히 이 녀석을 자극했다가 사실이라도 폭로하면 곤란해져.’
여기서 버티고 있다가 소운휘가 성탑 안으로 들어가면 무천정종에 이 사실을 알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아, 안으로 들어가시오.”
갑원춘이 옆으로 비키며 길을 내어주었다.
빨리 그가 안으로 들어가길 바랐다.
그런데 소운휘가 자신의 눈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있었다.
‘왜 안 들어가는 거지?’
의아해하고 있는데, 눈을 한 번 깜빡였더니 갑자기 주변의 풍경이 바뀌었다.
‘엇!?’
믿기지가 않는 일이었다.
분명 바깥이었는데, 어느새 성탑의 안으로 들어와 있었다.
심지어 성탑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이, 이게 대체?”
“입회자는 무슨 개뿔.”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서 고개를 돌리는데,
-콱!
소운휘가 그의 목을 움켜쥐었다.
그는 절정의 극에 달한 무인이었지만 소운휘의 공력은 그것을 훨씬 상회했다.
소운휘가 그에게 차갑게 식은 목소리로 말했다.
“시간이 없어서 미루고 넘어가기에는 제 기분이 썩 좋지가 않군요.”
-푸욱!
“크헉!”
그 순간 소운휘의 손이 흉기처럼 그의 복부를 파고들었다.
끝
ⓒ 한중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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