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word Sense RAW novel - Chapter 157
55화 무정풍신 (4) >
허공에서 여덟 개의 잔상으로 나누어진 무정풍신 진성백이 가짜 천무성을 향해 동시에 권(拳), 장(掌), 각(脚), 지(指), 조(爪), 도(刀), 검(劍), 창(槍)의 초식을 펼쳤다.
마치 여덟 명의 절세고수들이 절묘하게 합공을 하는 듯 했다.
“큭. 이놈!”
잔영들에 둘러싸인 천무성이 검결지를 휘저으며 예기로 회오리를 일으키며 절초에 대항했다.
마치 천무성의 팔이 여덟로 나뉜 것처럼 굉장히 빨라졌다.
가짜라고 해도 그 실력만큼은 경이로웠다.
-차차차차차창!
둘 다 병장기가 아닌 진기로서 겨루고 있는데, 허공에서 격렬한 파공음이 들려왔다.
허공에서 낙하를 하면서도 진성백은 끝까지 그를 밀어붙이고 있었다.
성탑 앞에서 전쟁을 치르고 있던 모든 사람들이 잠시 멈추고 지켜볼 만큼 이 광경은 장관이나 다름없었다.
-무정풍신이 이렇게나 강할 줄이야. 놀랍다. 운휘.
-저런 괴물 같은 자를 어떻게 죽였다는 거야?
나도 모르겠다.
입을 다물지 못할 만큼 절세 초식들이 연이어지고 있었다.
지금 상황만 본다면 오히려 진성백이 좀 더 우위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암수라도 쓴 걸까?’
그럴 수도 있었다.
무림에는 그가 죽었다는 사실만 공표했으니 말이다.
초상승의 무리를 담은 이들의 대결을 계속 지켜보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럴 시간이 없었다.
-촤르르르르!
나는 은연사에 공력을 주입하여 줄이 늘어나도록 했다.
그리고 성탑의 벽을 타고서 내려갔다.
-쟤네도 내려오네.
소담검의 말에 위를 쳐다보았다.
성탑 꼭대기 층에 난 구멍으로 유파장들이 나와 성벽의 구조물을 타고 내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진성백을 돕기 위해 계단이 아니라 저곳으로 내려오는 듯 했다.
하지만 은연사를 타고 내려오는 나보다야 느릴 수밖에 없었다.
-챙챙챙!
거의 지상에 도착해가자 병장기가 부딪치는 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잠시 두 절세고수들에게 시선을 빼앗겼던 양측 세력이 다시 격렬하게 부딪치고 있었다.
그때 외침 소리가 들렸다.
“저놈이다! 저 애꾸눈을 잡아라!”
애꾸눈?
나를 말하는 건가?
의아해하고 있는데, 지상을 밟으려고 하는 내게 누군가 신형을 날렸다.
“죽어랏!”
무천정종의 무사복을 입고 있는 자였다.
놈을 보자마자 나는 은연사의 줄을 회수하는 것과 동시에 남천철검을 뽑아, 그자의 일검을 막아냈다.
-챙!
그리고 그 즉시 한 쪽 발로 놈의 턱을 갈겼다.
턱을 맞은 놈이 외마디 비명과 함께 뒤로 튕겨나갔다.
혹시나 내가 탈출하면 죽이라고 명을 내렸었나보다.
-좌측 옆!소담검의 외침이 아니더라도 빛이 일렁이며 누군가 안대를 쓰고 있는 사각을 노리는 게 느껴졌다.
‘칫!’
이에 몸을 살짝 틀며 뒤로 신형을 날렸다.
한 콧수염의 중년인이 나를 향해 날카로운 검초를 펼치고 있었다.
‘강하다.’
그는 풍영팔류종의 유파장 급의 고수인 듯 했다.
다른 자들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절묘한 검초로 좌측 부위의 요혈들을 노려왔다.
어차피 지금은 난전상황이니,
‘잠합검공!’
진 성명검법 2초식 잠합공검(潛蛤公劍).
폭발적인 기세로 상대의 공격을 맞받아치며 반격하는 검초다.
놈이 펼치는 검초에 일식마다 검 끝을 착(着)의 묘리로 받아냈다.
“이놈?”
놈이 꽤나 놀란 표정이 되었다.
그걸로 놀라면 쓰나.
진 잠합검공의 묘리는 이게 끝이 아니다.
그냥 잠합검공이 검초에 실린 힘을 받아치는데 있다면, 진 잠합검공은 일식마다 검을 받아내다 그 빈틈을 강제로 열어젖혀,
-푸푹!
나는 연거푸 놈의 가슴과 쇄골 쪽을 찔렀다.
“크헉!”
놈이 비명과 함께 비틀거리며 쓰러졌다.
유파장 급의 고수라고는 하나 나 역시도 중단전을 개방하면 이제 혈성이나 존자 급과도 겨룰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적어도 무쌍성 상위 종파의 종주 급의 고수가 아니라면 쉽게 당하지 않는다.
-서둘러.
‘알고 있어,’
나는 무천정종의 성탑으로 향해 경공을 펼치려 했다.
그런데 나를 발견한 무천정종의 무사들이 앞을 가로막았다.
아무래도 이들을 전부 뚫어야 지나갈 수 있을 것 같다.
성앞의 주변에 높은 건물이라도 있으면 은연사를 이용해 위로 갈 수 있을 텐데, 탑 주변에는 그런 건물이 없었다.
‘후우.’
별 수 없네.
금안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할 것 같다.
나는 눈을 가리고 있던 안대를 위로 슬쩍 들어올렸다.
안대로 덮어 있던 부위가 눈꺼풀 정도로만 가려지자 더욱 선명하게 기운의 흐름이 느껴졌다.
기운이 약한 자들 위주로 뚫는 게 이곳을 통과할 활로였다.
-팟!
그곳으로 신형을 날린 나는 파죽지세로 무사들을 공격했다.
놈들이 나를 막기 위해서 달려들었지만 약한 자들을 위주로 뚫고 들어가니, 확실히 앞으로 나아가는데 무리가 없었다.
웬만하면 살인을 자중했지만 상대가 나를 죽이려드니 봐줄 필요도 없었다.
나 역시 미간과 목, 심장 등 노렸다.
-푹!
“크헉!”
아수라처럼 무사들을 베어나가자 피가 온몸에 튀었다.
그래서인지 어느 순간부터 적들이 내게 함부로 덤비지 못했다.
나야 그래준다면 고마울 뿐이었다.
한참을 뚫고 있을 때였다.
-흠칫!
어디선가 기감을 자극하는 방대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곳을 쳐다보았더니 팔대고수 만큼은 아니었지만 전신의 운기 경로가 강한 빛으로 일렁이는 반백의 노인이 내게 신형을 날리고 있었다.
노인이 내 몸통을 두 동강을 낼 기세로 검을 휘둘렀다.
-챙!
다급히 그 자의 검을 막아냈다.
검과 검이 부딪치는 순간 서로가 세 보 가량 신형이 밀려났다.
반백의 노인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제법이군.”
복장을 보면 무천정종의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
중단전을 개방했을 때의 나와 엇비슷한 공력을 지닌 걸로 보아 초절정의 극에 가까운 고수였다.
“어르신은 누구십니까?”
그런 나의 물음에 반백의 노인이 비릿하게 웃으며 말했다.
“사형이 네놈을 제자로 탐낸다고 했을 때, 얼마나 대단한 무재인가 싶었는데 그 나이에 그 정도 경지에 이르다니 놀랍구나.”
‘사형?’
설마 가짜 천무성을 말하는 건가?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반백의 노인에게 말했다.
“사형이란 사람이 가짜 무천검제를 말씀하는 건 아니신지?”
그 말에 노인이 입 꼬리를 슬며시 올렸다.
가짜라는 것을 알면서도 저런 반응을 보인다는 것은 진짜 무천검제의 사제가 아닌, 저 알맹이 속에 있는 자의 사제임을 의미했다.
“……당신도 그 자와 한패로군요.”
“머리가 잘 돌아가는구나. 하긴 그러니 사형의 손아귀를 벗어날 수 있었겠지. 하지만 그 운도 끝이다.”
노인이 내게 검을 겨냥했다.
검 끝에서 날카로운 예기가 일렁였다.
가짜 무천검제처럼 벽을 넘은 고수는 아니었지만 혈성이나 존자 급과 겨뤄도 떨어지지 않을 만큼 강했다.
‘젠장.’
이 자를 상대하려면 적어도 수십 초식은 겨뤄야 할지도 몰랐다.
싸움이 길어질수록 백혜향의 목숨도 위태로워진다.
놈이 내 마음을 읽기라도 했는지 말했다.
“지금쯤이면 계집을 죽이라고 보낸 녀석이 성탑에 당도했겠구나. 후후후.”
일부러 나를 조급하게 만들려고 하고 있었다.
가짜 무천검제 못지않게 간교한 자다.
이 자와 계속 말을 섞을 바에는 조금이라도 빨리 처리하는 게 답이었다.
기수식을 취하려 하는데,
‘응?’
뒤에서 익숙한 검의 이명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이어서 목소리도 들렸다.
“급하시죠?”
목소리의 주인은 다름 아닌 팔대고수의 공동 전인 이정겸이었다.
녀석도 성탑의 꼭대기 층에서 내려온 모양이었다.
내 옆으로 다가온 녀석이 말했다.
“막 재미를 보려던 찰나에 별 일이 다 생기네요.”
“이…..형.”
이정겸이 허리춤에 있던 푸른색 검집에서 자신의 보검을 뽑으며 말했다.
“저 노인네는 제게 맡기고 어서 정인을 구하러 가세요.”
입에 물을 담고 있으면 순간 뿜을 뻔했다.
나는 인상을 찡그리며 답했다.
“……정인이 아닙니다.”
“아. 그래요? 목숨까지 걸고서 구하시려는 것 같아서 오해했네요. 아무렴 어떤가요. 누군가를 구한다는 게 중요한 거죠.”
이정겸이 그 말과 함께 반백의 노인을 향해 검을 겨냥했다.
이 녀석은 이 일에 아무런 연관이 없는데, 갑자기 나를 왜 도우려는 건지 알 수 없다.
의아하게 쳐다보자 녀석이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하 형이 잘못되면 삼차 시험이 싱겁게 끝나잖아요.”
고작 그런 이유인가.
시험을 다시 치를지 안 치를지도 모를 판국인데, 이런 말을 하다니 어지간히 나와 겨루고 싶었나 보다.
무슨 꿍꿍이가 되었든 당장에 호의를 거절할 만큼 상황이 여유롭지가 않다.
“이 빚은 후에 갚겠습니다.”
“뭘 빚까지야.”
나는 녀석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런 우리를 보면서 배알이 뒤틀렸는지 반백의 노인이 일갈을 내지르며 신형을 날렸다.
“누가 네놈을 보내준다고 하더냐!”
나를 노리는데, 이정겸이 빠른 경신법으로 그 앞을 가로막았다.
무당파의 명성이 자자한 신법 제운종(梯雲縱)인 듯 했다.
“노인네의 상대는 접니다.”
“건방진 놈이 어디서!”
반백의 노인이 절초를 펼치며 이정겸을 뚫으려 했다.
이정겸이 피식하고 웃으며 검으로 둥근 원을 그리며 그 자의 검초를 막아냈다.
부드러움과 강함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저 검은 무당파의 태극검법인 것 같았다.
-채채채채챙!
노인이 워낙 강해서 우려했는데, 이정겸은 조금의 밀림도 없었다.
그를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이에 나는 서둘러 멀리 보이는 무천정종의 성탑을 향해 경공을 펼쳤다.
* * *
무쌍성에 존재하는 사대 무종의 성탑.
네 채의 성탑 모두가 같은 층수나 같은 형태를 하고 있지 않았다.
무천정종의 경우는 성탑이 일곱 층으로 되어 있었는데, 칠 층에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는 종주 이외에 누구도 출입이 금지가 되어 있었다.
-타타타타탁!
무천정종의 성탑 5층 계단을 급히 올라가고 있는 한 검은 무복의 사내가 있었다.
육층에 도달하자, 칠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앞을 회색 경장을 입은 두 명의 중년인이 지키고 있었다.
“무슨 일이지?”
검은 무복의 사내가 다가가자 그들이 앞을 가로막고서 물었다.
이에 검은 무복의 사내가 무천정종의 종주 패를 보이며 말했다.
“그 분의 명입니다. 일계가 실패했으니 가둬두었던 계집의 숨통을 끊으라고 하십니다.”
“결국 틀어진 건가.”
“그렇습니다.”
“알았다. 내가 가서 처리하도록 하지.”
중년인들 중에 입가에 흉터가 있는 사내가 이를 자청했다.
“좌호위 전주께서 말씀입니까?”
“어차피 죽이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더냐?”
비릿하게 웃고 있는 그를 보며 또 다른 회색 경장의 중년인이 혀를 차면서 말했다.
“그놈의 악취미는 여전하구만. 죽이기 전에 아랫도리를 놀리려는 게야?”
“어차피 죽일 년인데 무슨 상관이더냐.”
“쯧쯧.”
“신경 끄고 있어라. 금방 처리하고 내려올 테니.”
좌호위 전주라 불린 중년인이 신이 나서 계단을 올라갔다.
무천정종의 꼭대기 층이라 불리는 7층으로 올라간 그는 익숙하게 통로를 따라갔다.
그리고 검은 철문으로 되어 있는 곳의 문을 열었다.
안으로 들어가니 검은 철로 된 쇠창살이 되어 있었고, 그 안쪽의 벽면에 양팔이 흑철 쇠고랑을 차고서 서있는 여인이 있었다.
그녀를 바로 백혜향이었다.
옷이 피투성이 되어 있었고 묶었던 머리카락도 풀려서 축 늘어져 있었다.
“독한 년.”
그녀를 본 좌호위 전주가 혀를 내둘렀다.
쇠고랑에 묶여 있는 백혜향의 양쪽 손목에서는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얼마나 격렬하게 그것을 풀려고 했는지 짐작하게 만들었다.
‘내공도 금제된 년이 독하기 짝이 없군.’
자신이 들어오자마자 독기가 서려서 노려보고 있었다.
무천검제에게 분근착골을 비롯해 꽤나 여러 고문을 당했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녀의 눈빛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뭐 상관없지. 어차피 죽일 년이니까.’
끌려올 때부터 색기가 넘치는 외모에 탐욕을 가졌던 그였다.
마침 무천검제도 없어서 좋은 기회였다.
철창을 열고 들어가며 그가 말했다.
“어이. 계집. 고문 시간이다.”
그녀가 코웃음을 쳤다.
이에 좌호위 전주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 건방진 태도가 얼마나 갈지 볼까?”
“얼마든지 해보시지.”
그런 백혜향의 말에 좌호위 전주가 비릿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번엔 다를 거야. 네년은 색다른 고통의 비명을 지르게 될 거니까.”
좌호위 전주가 허리춤에 묶고 있던 혁대를 풀었다.
그런 그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던 백혜향이 묘한 미소를 짓더니 입을 열었다.
“색다른 고통이 네 아랫도리로 주는 건가 보지?”
예상과는 전혀 다른 그녀의 태도에 좌호위 전주가 인상을 찡그렸다.
격렬하게 거부하거나 그런 반응을 예상했었다.
한데 이건 뭔가 싶었다.
“내게서 그 색다른 비명 소리를 듣고 싶다면 꽤 만족시켜줘야 할걸.”
백혜향이 두 다리를 슬쩍 벌렸다.
이에 좌호위 전주가 입 꼬리를 올리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이년이 나를 감동시킬 줄 아는 구나.”
반항하지 않겠다고 하는데 좋아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백혜향이 윗입술을 혀로 핥으며 색기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하의를 네 손으로 벗겨줬으면 좋겠는데.”
“흐흐흐. 당연히 벗겨드려야지.”
좌호위 전주가 신이 나서 그녀에게 다가가 하의의 허리춤을 잡으려고 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백혜향의 두 다리가 그의 목을 휘감았다.
“컥! 이, 이 년이!”
좌호위 전주가 내공을 끌어올려 그녀의 다리를 펴려고 했다.
그러나 그녀의 다리를 꿈쩍도 하지 않았다.
“네, 네년 내공을?”
놀랍게도 백혜향은 내공의 금제가 풀려 있었다.
목이 점점 조여오자 좌호위 전주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해갔다.
“켁켁…..”
“왜 숨 막혀?”
그녀가 허리를 옆으로 틀었다.
-우드득!
목이 꺾인 좌호위 전주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숨을 거두고 말았다.
죽은 그를 내려다보며 백혜향이 중얼거렸다.
“아랫도리를 함부로 놀리면 안 되지.”
끝
ⓒ 한중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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