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word Sense RAW novel - Chapter 162
57화 아버지와 아들 (2) >
“아버님?”
사마영의 갑작스러운 발언에 무정풍신 진성백의 표정이 굳어졌다.
나 역시도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단 둘이 대면한 상황에서 조용히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데, 주변에 무쌍성을 이끌고 있는 사대 무종의 종주들을 비롯해 수많은 사람들이 있는 앞이었다.
소담검이 혀를 내둘렀다.
-부녀가 닮긴 닮았네. 욱해서 저지르고 보는 게.
그런 것 같다.
지금 보니 확실히 닮았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내가 친부인 진성백에게 진실을 이야기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녀는 당혹스러운 나머지 어쩔 줄 몰라했다.
사마영이 내게 전음을 보냈다.
[…..괜찮습니다.]나를 도우려다가 그런 것인데 어찌 나무라겠는가.
당혹스러워하는 그녀를 굳은 얼굴로 쳐다보던 진성백의 시선이 내게로 향했다.
떨리는 눈동자를 보면 충격이 심해 보였다.
‘모르고 있었나?’
그의 반응을 보면 이 사실을 전혀 몰랐던 것 같다.
비월영종의 옥패를 보고서 내가 어머니의 자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조차 조금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은 모양이다.
하긴 모든 진실을 알고 있는 어머니가 입을 다문 채 돌아가셨다.
나조차 한 번 죽고 나서 회귀를 해서야 알 게 된 사실이다.
“영아.”
그때 사마착이 사마영을 불렀다.
그리고 인상을 쓰면서 나무라는 듯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상황이 어떻게 된 건지 짐작하고서 끼어들지 말라고 하는 것 같았다.
굳어진 얼굴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를 쳐다보던 진성백이 입을 열었다.
“……이게 무슨 소린가?”
마치 내게 진실을 묻고 있는 듯 했다.
더 이상 진실을 미루고 있을 그런 상황이 아니었다.
“들으신 그대로입니다.”
“들은 그대로?”
“저도 이걸 알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종주님과 헤어지기 전부터 임신을 하고 계셨습니다.”
-요점만 잘 이야기 했네.
모두가 보는 앞에서 모든 진실을 밝힐 수 없기에 중요한 것만 이야기 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진성백의 몸이 파르르 떨렸다.
방금 전보다 더 충격을 받은 듯 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지금껏 나는…..”
심지어 비틀거리기마저 했다.
그의 그런 모습을 보니 묘한 감정이 들었다.
처음 그의 존재를 알고나서 들었던 감정은 분노와 서운함 등이 강했다.
그러나 막상 무쌍성에 와서 그를 보게 되자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인물임을 알 수 있었다.
강한 책임감을 가지고 있는 자가 과연 어머니와 나를 포기한 게 맞는 걸까?
라고 의문마저 가졌을 정도다.
그런데 저렇게 충격이 심한 모습을 보니 가슴 한편에서 저려오는 것이 느껴졌다.
“종…..”
그런 그에게 말을 걸려고 하는데, 누군가 끼어들었다.
“진 종주. 이게 무슨 말이오?”
“……구양 종주?”
갑작스럽게 끼어든 자는 다름 아닌 섬경무종의 종주 구양경이었다.
특별히 문제가 될 만한 것들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는데, 그가 왜 끼어든 거지?
“지금 이 청년이 그대의 아들이라는 것이오?”
“그건…..”
“대답을 확실히 하셔야 할 것이오.”
몰아붙이는 듯한 태도에 눈살이 찌푸렸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나의 물음에 구양경이 내게 손짓을 하며 말했다.
“아무리 봐도 이 친구는 막 약관을 넘긴 나이로 보이네만.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게 아니라면 그 사건이 있던 이후 진 종주는 누구와도 만나지 않기로 천명하지 않았소.”
“허어. 그러고 보니….”
그 말에 해왕성종의 종주 왕처일도 뭔가를 깨달았다는 듯이 나를 쳐다보았다.
주변의 사람들도 일부 술렁거렸다.
대부분이 젊은 층이라기보다 중장년 층의 무쌍성 사람들이었다.
여전히 충격에 벗어나지 못했는지, 흔들리고 있는 진성백에게 구양경이 말했다.
“말해보시오. 진 종주. 저 젊은이는 혹시 하령의 아이요?”
그의 입에서 어머니의 이름이 나왔다.
아무래도 그는 내 어머니를 알고 있는 듯 했다.
그런데 이렇게 몰아붙인다고 해도 진성백 역시도 이제 막 진실을 알게 된 마당에 입에서 뭔가 매끄러운 말이 나올 리가 만무했다.
“왜 말을 하지 않는 것이오!”
“구양 종주….”
“그 분도 모르고 있던 일이라고 했잖아요! 왜 계속 그런 식으로 몰아붙이나요.”
이를 지켜보고 있던 사마영이 화가 나서 소리쳤다.
구양경이 그녀를 쳐다보고서 미간을 찌푸리더니 이내 말했다.
“부친을 닮아서 씩씩하구려. 하나 이 일은 본성에서도 매우 중요한 일이라오.”
사마착을 의식해서인지 크게 나무라지 않았다.
구양경이 모두가 들으라는 듯이 소리쳤다.
“진 종주가 이 청년이 아들인지 아닌지 모르는 게 중요한 게 아니오. 만약 이 청년이 혈교의 피를 이은 비월영종 하령의 아이라면, 진 종주는 이십여 년 전에 혈교의 씨앗을 탈출시킨 중죄를 지은 것이외다!”
하!
정말 대단한 작자다.
가짜 천무성인 무악 사건으로 무쌍성이 하나로 뭉치는가 싶었다.
그런데 이 기회를 틈타서 친부인 진성백을 이런 식으로 몰아갈 줄은 전혀 예상지 못했다.
“이것은 설사 사대 무종의 종주 중 한사람이라고 해도 그냥 넘어갈 수 없소. 대종주 회의를 통해 중요 안건으로 붙여야 할 일이오!”
구양경은 이 자리를 통해 여론을 몰아가려 했다.
나는 친부인 진성백을 쳐다보았다.
충격이 아직도 가시지 않았는지 떨리는 눈동자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이러다 네 친부가 몰리겠는데.
주변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무쌍성 내에서도 혈교를 배척하는 자가 적지 않은 듯 했다.
그러니 당시에 무림 연맹과 손을 잡고 비월영종을 숙청하는 과감한 짓까지 벌였겠지.
이런 분위기가 점차 나를 화가 나게 만들었다.
진성백이 아무 대답을 하지 않고 있자, 구양경이 내게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물었다.
“진 종주가 젊은이의 아버지라고 했소. 그렇다면 그대의 모친이 누군지 이 자리에서 밝히시오.”
그 말과 함께 손을 들어올리자 섬경무종의 무인들이 근방을 둘러쌌다.
절대로 도망칠 수 없다는 듯이 말이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그런 나의 물음에 구양경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젊은이가 만약 비월영종의 피를 이었다면 이 자리에서 살아서 나갈 수 있으리라 보는가.”
구양경의 몸에서 기운이 발산되었다.
당장에라도 자신의 말이 맞다면 내게 손을 쓸 기세였다.
그런 그의 모습에 나는 깊은 탄식을 내뱉었다.
“하아.”
이런 자들이 있으니, 어머니를 비롯해 외조부, 그리고 비월영종이 그런 운명을 맞이한 것 같다.
가슴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가 없었다.
그런 것도 모르는지 구양경이 나를 닦달했다.
“어서 밝히거라!”
이에 나는 코웃음을 치면서 말했다.
“궁금한 게 있습니다.”
“말을 돌리지 말고 이야기 하거라.”
“아니. 이건 이곳 무쌍성 사람들 모두가 들어야 겠군요.”
“뭐?”
의아해하는데, 나는 좌중이 들을 수 있도록 큰 소리로 소리쳤다.
“비월영종이 혈교의 피를 이었다고 하는데, 이십여 년 전에 그들이 정사 대전에서 혈교를 돕자고 주장하거나 도운 적이 있습니까?”
그런 나의 외침에 주변이 정적으로 물들었다.
당연히 입을 다물 수밖에 없지.
비월영종은 정사 대전 당시에 무림 연맹과의 동맹을 위해서 숙청되었다.
그저 혈마의 피를 이었다는 이유만으로 말이다.
구양경이 나를 노려보며 소리쳤다.
“무림을 쑥대밭으로 만들려던 흉악한 사파인 혈교와 피로 이어졌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위험한지 네놈을 모르고 있구나!”
“제가 묻는 말에나 답변하시죠!”
“이 건방진 녀석이!”
나의 다그침에 화가 났는지 구양경이 내게 장법을 펼쳤다.
하지만 나는 이미 금안으로 그가 공력을 운기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보법을 펼치며 그의 장법을 피했다.
-파파파파팍!
“이놈이?”
내가 자신의 장법을 수월하게 피하자 구양경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그가 나보다 한 수 위의 고수라고 해도 나 역시 중단전을 개방하면 초절정의 극에 가까운 무위를 지녔다.
미리 대응한다면 이런 공격에 당하지 않는다.
나는 보법으로 그와 거리를 벌리며 모두가 들으라는 듯이 소리쳤다.
“무림 연맹과의 동맹을 위해서 비월영종을 숙청해놓고서 말도 안 되는 이유를 갖다 붙이는군요.”
“이놈이!”
“백 번 양보해서 동맹과의 관계를 위해서 그렇다고 칩시다. 하면 지금은 동맹이 파기되었는데, 무엇이 중죄라는 겁니까?”
논리적으로 틀린 것이 하나도 없는 나의 말에 이를 지켜보는 좌중이 웅성거렸다.
그런 반응은 젊은 층들에서 나오고 있었다.
어차피 무쌍성은 무림 연맹과 달리 정파가 아니었다.
순수하게 무(武)를 지향하는 자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중립 단체가 바로 무쌍성이다.
“이놈.”
구양경이 누군가를 의식하듯이 쳐다보고 있었는데, 바로 사마착이었다.
사마착이 나를 보면서 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표정이 흡사,
-흥미로워하는 것 같은데.
아까 전까지 싸늘하게 대하던 것과는 사뭇달랐다.
이런 사마착과 웅성대는 좌중의 반응을 의식했는지 구양경이 외쳤다.
“어설픈 논리로 본 성을 선동하려고 드는 게냐! 살아남기 위해 잔머리를 굴리다니. 역시 네놈은 하령의 아이가 틀림없구나.”
“그 분의 아이가 맞다면 무엇이 잘못되었다는 겁니까?”
“혈마의 피를 이었다는 것만으로도 중죄다!”
“어머니를 모욕하지 마라!”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나는 놈을 향해 신형을 날렸다.
그리고 남천철검을 뽑아 놈의 머리를 벨 기세로 검을 휘둘렀다.
“흥!”
구양경이 고개를 젖히며 이를 가볍게 피했다.
나는 변초를 써서 놈의 가슴을 찔러 넣었는데, 그것을 구양경이 쾌속한 장법으로 검면을 쳐냈다.
-창!
검면을 쳐낸 구양경이 잇달아 내 가슴을 파고들었다.
그리고 안면을 향해 손을 뻗었다.
뒤로 몸을 날리며 피하려던 순간이었다.
-팍!
누군가가 구양경의 손목을 움켜잡았다.
그는 바로,
“진 종주!”
무정풍신 진성백이었다.
진성백이 자신의 손목을 잡자 구양경이 이를 다그쳤다.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것이오.”
“구양 종주. 이 이상 이 아이를 건드리려 한다면 용서치 않을 거요.”
“그대의 죄를 실토하는….”
-퍼퍼퍽!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진성백의 발차기가 바람처럼 그의 안면과 가슴, 복부를 연달아 가격했다.
“크윽!”
이를 맞은 구양경의 신형이 뒤로 십 보나 밀려났다.
그의 무위가 뛰어나다고 하나 상대는 팔대고수 중 한 사람인 무정풍신이었다.
바로 근접해 있는 상태에서 피할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진성백. 그대가 정녕….”
내상을 입었는지 구양경의 입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그것을 전혀 개의치 않는지 진성백이 내게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하령과 나의 아이가 맞느냐?”
떨리면서도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이에 나는 그와 눈이 마주친 상태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진성백이 굳은 결의가 담긴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미안하구나. 나를 원망해도 탓하지 않으마.”
“종주…..”
“하나 이제부턴 이 애비가 너를 지키겠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심장이 쿵쾅거리며 미친 듯이 뛰었다.
애비라는 그 한 마디가 이렇게까지 가슴을 저리면서 뛰게 만들 줄은 몰랐다.
어떠한 사연도 무엇도 묻지 않고서 그는 모든 것을 받아들였다.
그런 감동을 해치려는지 구양경이 소리쳤다.
“진성백! 비월영종의 피를 이은 자를 비호하려는 것이냐!”
이에 진성백이 앞으로 나서며 모두가 들으라는 듯이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외쳤다.
“누구도 내 아들을 건드릴 수 없다!”
단순한 외침이 아니었다.
외침 속에 담겨있는 강렬한 패기에 한순간 좌중이 위압감에 사로잡혀 움찔거릴 정도였다.
구양경조차 순간 말문이 막혀 뒷말을 잇지 못했다.
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렸는지 조금 전보다는 한결 조심스러운 태도로 입을 열었다.
“본 성 전체를 적으로 삼을 작정이오?”
“원한다면 얼마든지. 풍영팔류종!”
“네!!! 종주!!!”
-우르르르!
진성백의 부름에 풍영팔류종의 무인들이 외침과 함께 인파 사이에서 몰려나왔다.
그리고 각 유파장들이 진성백의 뒤에 위풍당당하게 섰다.
섬경무종의 무사들과 대립한 형태가 되었는데, 당장에라도 전쟁이 벌어질 기세였다.
사태가 커지자 구양경이 눈을 굴리며, 주위를 둘러보다 해왕성종의 종주인 왕처일에게 소리쳤다.
“왕 종주. 보셨을 테니, 도와주시오.”
그런 그의 말에 왕처일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본 종은 이번 일에 전혀 관여치 않을 것이오.”
냉정한 거절에 구양경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나 역시도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해왕성종이 무쌍성 내부에서는 섬경무종과 대립한다고 해도, 과거 비월영종을 제거하는데 앞장 섰던 만큼 그들을 도울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그러나 냉정하게 선을 그었다.
-네 아버지 때문이겠지.
아무래도 그럴지도 몰랐다.
자칫 잘못 나섰다가는 팔대고수를 상대해야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오히려 사태를 관망하는 편이 옳은 선택이라 할 수 있었다.
“큭.”
이곳저곳을 쳐다보아도 어떠한 종주들도 나서지 않는 모습에 구양경이 난처함을 금치 못했다.
그러다 그가 손을 뻗은 곳은 다름 아닌,
“사마 형.”
월악검 사마착이었다.
구양경이 사마착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도와주십쇼. 이 아우의 무공이 부족하여 저 자를 상대할 수가 없습니다.”
“이 일은 외인인 내가 개입할 일이 아닌 것 같군.”
“어찌 외인이라고 하십니까? 부디 저 자만 제압해주십쇼. 의형과 저는 이제 사돈 관계가 될 사이가 아닙니까?”
사돈을 강조하는 구양경의 말에 사마착의 눈빛에 실망감이 깃들었다.
누가 보아도 표정에서부터 드러났다.
그를 물끄러미 쳐다보던 사마착이 냉정히 고개를 저었다.
“개입할 일이 아니라고 했다.”
“사마 형! 설마 태중 혼약을 저버리실 작정이십니까?”
명분을 들이대는 구양경이었다.
어떻게든 그를 끌어들여 친부인 진성백만이라도 상대하게 하려는 듯 했다.
만약 그 명분에 넘어가기라도 한다면 사태가 커질 수도 있었다.
“아버지께서 저 자를 돕겠다면 저는 의절하고서 공자님 편에 붙을 거에요.”
사마영의 그 말에 사마착이 인상을 찡그리며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하나뿐인 여식이 그 태중 혼약을 밀어붙였다간 당장에라도 의절할 것 같군.”
“어른들끼리 정한 일에 어찌….”
“의절을 하면 더 이상 내 자식이 되지 않는데, 어찌 하라는 겐가.”
그 말에 구양경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뜻대로 이뤄지지 않으니 많이 곤란해진 듯 했다.
“정녕 이 의제를 저버리시는 겁니까? 사마 형께서 도의를 지켜야 한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런 그의 말에 사마착이 사마영에게 말했다.
“구양경은 이 애비의 의제다. 네가 저 녀석을 좋아한다고 해도 그와의 약조를 어찌 함부로 어길 수 있겠느냐?”
“좋아하지도 않는 자와 혼인을 하라는 건가요?”
“네 말도 일리가 있다. 하면 이렇게 하자꾸나. 구양산이라고 했느냐?”
사마착이 대뜸 자신의 아버지 뒤쪽에 서있는 구양산을 불렀다.
“네…넷!”
“한 사람은 태중 혼약을 했고, 또 한 사람은 내 딸 아이가 좋아하는 정인이다. 딸 아이를 이기는 아비는 없다고 내 마음대로 모든 것을 정할 수가 없구나.”
“하, 하면?”
“너와 저 녀석 둘 모두에게 기회를 주마. 하나 지금은 시의가 적절치 못하니, 사흘 뒤 복안현으로 오거라. 누가 사위에 어울리는지 시험해보겠다.”
“아…….”
“아라니 사위가 되기 싫은 게냐?”
“아, 아닙니다.”
구양산이 마지못해 답하자 사마착이 이번에는 나를 쳐다보았다.
“네 녀석에게는 실망했지만, 딸 아이의 얼굴을 봐서 마지막으로 기회를 주마. 사흘 뒤 복안현으로 오너라.”
복안현은 외조부가 있는 그 마을이었다.
목소리가 한결 부드러운 것이 정말로 내게 기회를 주려는 모양이었다.
나는 두 손을 모아 포권을 취했다.
“알겠습니다.”
“흥. 이제 되었느냐?”
“좋아요.”
사마착의 말에 사마영 또한 한 발 물러섰다.
사마착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서 다시 구양경을 쳐다보며 말했다.
“아직은 누구도 내 사위가 되지 않았으니, 누구의 편도 들 수 없다. 이 일은 의제가 원만하게 풀길 바란다. 가자.”
“앗. 아버지!”
-팟!
그 말과 함께 사마착이 사마영을 안아들고서 경공을 펼쳐서 어딘가로 가버렸다.
더 이상 이 일에 끼어들기 싫은 것 같았다.
그야말로 적절한 대처였다.
반면 사마착이 사라지자 구양경은 이 상황에 난처함을 금치 못했다.
그런 그에게 친부인 진성백이 나서며 말했다.
“지금 끝장을 보겠는가?”
그 말에 분노로 몸을 부들부들 떨던 구양경이 겨우겨우 그것을 가라앉히고서 입을 열었다.
“진 종주. 이 일은 그냥 넘어가지 않을 거요.”
“얼마든지!”
-으득!
이를 갈면서 구양경이 소리쳤다.
“성탑으로 돌아간다!”
“충!!!”
그를 필두로 구양산을 비롯한 섬경무종의 무사들이 일제히 밀물이 빠지듯이 물러났다.
금방이라도 전쟁이 벌어질 분위기가 가라앉자 모든 사람들이 안도했다.
이것은 자칫 무쌍성의 커다란 싸움으로 번질 수도 있는 일이었다.
섬경무종의 무사들이 물러나자, 진성백이 내게로 고개를 돌렸다.
‘아!’
참으로 애틋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무정풍신이라 불릴 만큼 무감정한 얼굴만 하고 있었던 그였는데, 내게 저런 얼굴을 보이다니.
바로 그때였다.
-우르르르!
풍영팔류종의 무사들이 갑자기 주변을 에워쌌다.
무슨 짓인가 싶어 의아해하고 있는데, 유파장들을 비롯한 모든 무사들이 동시에 한 쪽 무릎을 꿇고서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그들이 동시에 우렁차게 외쳤다.
“풍영팔류종이 소종주를 배알합니다!!!”
끝
ⓒ 한중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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