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word Sense RAW novel - Chapter 164
57화 아버지와 아들 (4) >
“이게 대체…..”
상단전을 개방하면서 혈마화 한 나의 모습에 아버지 진성백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말문이 막혔는지 입까지 살짝 벌리고 있었다.
-더 이상 놀랄 게 없다고 하지 않았어?
소담검이 키득거렸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놀라지 않는 것이 더 이상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정파의 신성으로 명성을 날린 것이 자랑스럽다고 했던 아버지 진성백이었다.
그런데 한순간에 사파의 끝이라 할 수 있는 혈교의 당대 혈마가 되어버렸다.
그 충격은 이미 얼굴에서 전부 드러났다.
기가 막혔는지 진성백은 헛기침마저 터뜨렸다.
그때 누군가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종주. 무천정종에서 사람을 보냈습니다.”
목소리의 주인은 팔층을 지키는 문형창류의 유파장 서문극이었다.
“들여보내도….”
그때 정신을 차린 아버지 진성백이 다급히 말했다.
“누구도 들여보내지 마라!”
“네?”
“기다리라고 하여라.”
“알겠습니다.”
어째서 이렇게 말했는지 알 것 같다.
혈마화를 하고 있는 상태에서 혹여 누군가가 들어 올까봐 당황했던 것 같다.
서문극의 기척이 근방에서 사라지자 아버지 진성백이 말했다.
“대체 이게 어찌된 일이느냐?”
목소리가 사뭇 심각해져 있었다.
이에 나는 상단전을 다시 닫고서 원래대로 돌아왔다.
“놀라지 않는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네가 이 애비라면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느냐?”
그 말에 부정하기는 힘들었다.
“애비는 도무지 영문을 모르겠구나. 방금 전의 그 모습은 흡사 혈마…..”
“혈천대라공을 익히면 육신에 발현되는 현상입니다.”
“하아…..”
아버지 진성백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어지간히 충격이 가시지 않는 모양이다.
외조부도 이 사실을 알았을 때 경악하기는 했는데, 아버지도 그에 못지않았다.
몇 차례 탄식을 내뱉던 아버지 진성백이 내게 물었다.
“……어찌 된 일인지 이야기해줄 수 있겠느냐?”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야 할지 모르겠군요.”
이에 나는 회귀 후에 겪었던 일들을 외조부에게 했던 것처럼 그대로 이야기 했다.
시작은 모든 사건의 발단인 단전이 파훼되었을 때부터였다.
단전이 파훼되고 익양 소가에서 망나니 취급을 받으며 쫓겨난 이야기를 할 때, 아버지 진성백의 표정은 그야말로 야차와도 같아졌다.
외조부처럼 말로서 분노를 토해내진 않았지만 눈앞에 익양 소가가 있었다면 당장에라도 멸문시켜버릴 기세였다.
“그렇게 소가를 나온 저는…..”
그 이후에 겪었던 일들을 차례대로 이야기했다.
혈교에 납치되어 육혈곡에 들어가 기기괴괴 해악천의 제자가 되었고, 그로 인해 벌어진 일들을 천천히 나열했다.
파란만장한 이야기에 아버지 진성백은 연신 탄식을 반복했다.
외조부에게 한 후로 다시 이야기하는 것이었지만 내가 생각해도 참 살아남은 게 용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만약 회귀 전의 일을 이야기했다면 기절초풍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차마 이것만큼은 외조부에게도 아버지에게도 말할 수가 없었다.
믿어줄 지도 의문이었고 말이다.
“혈마검의 선택을 받았다니…..하아. 어찌 이런 운명이……”
지금까지 입을 다물고 듣기만 하던 아버지 진성백이 처음으로 중간에 말을 꺼냈다.
내가 혈마검의 선택을 받게 된 것을 듣고서였다.
“피는 속일 수 없단 말인가.”
비월영종은 초대 혈마에게서 이어져 내려왔다.
그 이유 하나만으로 무쌍성에서 피의 숙청을 당하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결과적으로 무림 연맹과 무쌍성의 입장에서는 비월영종을 그리 만든 것이 틀린 선택이 아니게 되었다.
그들이 만약 어머니를 놓치지 않았다면 당대 혈마인 내가 탄생했을 리도 만무했을 테니 말이다.
-계속 저러는 거 보면 실망하거나 만류하는 거 아냐?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혈교와 연이 있다는 것만으로 벌어졌던 비극들.
이를 겪은 당사자로서 아버지는 외조부 이상으로 이를 더욱 싫어할 지도 몰랐다.
그때 아버지 진성백이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혈교와 그리 깊은 연을 맺게 되었다고 하니, 그곳에 대해 이 애비보다 모를 리는 없다고 생각되는구나. 이것만 묻고 싶구나.”
“어떤 것을 말입니까?”
“상황이 그리 만든 게냐? 너 스스로가 혈마가 되려고 하는 것이냐?”
처음 혈마검의 선택을 받았을 때 이 질문을 받았다면 대답을 하지 못했을 거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나 스스로가 혈마가 되기로 결심했다.
단순히 선택을 받아서가 아니라 힘을 쟁취하기 위해서였다.
“후자입니다.”
“후자라…..”
“피의 길을 걸으려고 이것을 선택한 건 아닙니다. 혈교의 수장이 되어 저만의 길을 걸어보려고 합니다.”
“너만의 길?”
“백정도 칼만 버리면 부처가 된다고 했습니다. 혈마라는 칭호도 혈교도 제가 어떻게 하기에 따라 변할 거라 생각합니다. 아니 그렇게 만들 겁니다.”
“허어.”
굳은 결의가 담긴 내 말에 아버지 진성백이 나지막한 탄성과 함께 눈을 감았다.
“고집도….신념도….령아와 많이 닮았구나.”
어머니를 떠올린 것인가.
아버지가 깊게 숨을 들이켰다가 내뱉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그의 눈동자에는 더 이상 흔들림이 없었다.
“네 결심이 그러하다면 애비로서는 존중해줄 수밖에 없구나.”
“아버지……”
“더 이상 이것에 관해서 왈가왈부하지 않으마. 다만 이거 하나만 기억하거라. 네게는 이제 이 애비가 있다. 네 어미는 지키지 못했지만 애비는 너를 지킬 것이다.”
가슴이 짠해진다.
솔직히 아버지 진성백이 나를 설득할 거라 여겼다.
풍영팔류종의 소종주가 될 녀석이 혈교의 수장이 웬 말이냐고 말이다.
그러나 어떠한 반대도 없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아버지의 눈을 보면, 어머니께 못했던 모든 것을 내게 해주겠다는 굳은 의지가 보였다.
“……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 나의 말에 진성백이 옅은 미소를 보였다.
정말로 기분이 좋아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짓는 미소 같았다.
“한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지금이 아니더라도 언젠가 이게 알려진다면 무쌍성에서의 아버지께서 곤란해지시는 게….”
“개의치 말 거라.”
“어찌 그럴 수 있습니까?”
“자식이 가는 길을 막는 부모가 어디 있겠느냐.”
“자식이 부모에게 누가 되는 것도 효에 어긋나지요.”
“그걸 잘 아는 녀석이 애비에게 혈마가 되었다고 당당히 이야기 하는구나.”
무뚝뚝한 사람이 아들을 편하게 해주려고 농까지 하고.
난생 처음 부자의 정이라는 것을 느낀다.
“이 애비가 있는 한 무쌍성에서 네 발목을 잡는 일은 없을 것이다. 아니 그리 만들 것이다.”
그 말에서 뭔가 결의가 느껴졌다.
단순히 하는 말이 아니었다.
무쌍성에서 벌어지는 일들도 회귀 전과는 완전히 달라졌다.
이제 어떻게 변할 지는 아버지인 무정풍신 진성백의 손에 달려 있어보였다.
“아!”
도중에 말이 끊겨서 전부 이야기하지 못했다.
사마착과 봉림곡에 떨어졌던 이야기를 할까 하다가 곧장 본론을 말했다.
“하나 더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더 있다고?”
아버지 진성백이 의아해하며 인상을 찡그렸다.
“이번에도 놀라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네가 혈마가 된 것 이상으로 놀랄 일이 더 있겠느냐?”
“외조부께서 살아계십니다.”
“뭣!”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진성백이 화들짝 놀라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혈마가 되었다고 했을 때보다도 더 놀란 것 같다.
하긴 죽은 줄 알았던 사람이 살아있는 것만큼 놀라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하도 놀라서 네 왼쪽 눈은 못 보여주겠는데.
사실 아버지 정도 되는 명성과 지위를 가졌다면 금안에 관해서 알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것 역시 이야기할까 했다.
지금 당장은 힘들 것 같다.
“어, 어르신께선 무사하신 것이냐?”
“네. 몸이 편찮으시지만 지금 의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아아아.”
아버지 진성백의 눈시울이 또다시 붉어졌다.
고개를 들어올려 천장을 쳐다보며 어머니의 이름을 연달아 중얼거렸다.
“하령…..하령…..죽어서도 모두를 지킨 거요?”
그 말에 뭔가 울컥 올라왔다.
생각해보면 어머니만 이 자리에 있었어도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오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게 우리 두 부자를 서글프게 만들었다.
감정적으로 진정이 되었는지 아버지가 물었다.
“네 외조부께선 어디 계시느냐?”
“복안현의 의원에 있습니다.”
“당장 어르신을 모시러 가야겠구나.”
이제 아버지께서는 외조부를 지킬 수 있는 힘이 있었다.
당장 모시러 가려는지 나갈 채비를 하려고 하는데, 그때 누군가 다급히 달려와 문을 두드렸다.
“종주!”
급한 부름에 아버지와 나는 미처 깜빡했던 것을 떠올렸다.
무천정종에서 손님이 왔었는데 그걸 잊고 있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어찌나 급했는지 문형창류의 유파장 서문극이 문을 열고 들어와 말했다.
“지금 급히 성내 금옥으로 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무슨 일이기에 그러느냐?”
“지하 금옥에 침입자가 들어온 것 같습니다. 지하 금옥을 지키던 무사들과 죄수 무악의 상태가 위중합니다.”
“침입자가 들어와?”
그 말은 단순히 생각할 게 아니었다.
그것은 무악 이외에도 무쌍성 내 연관자가 있다는 말이 된다.
잠시 고민하던 아버지 진성백이 내게 말했다.
“먼저 금옥부터 다녀와야 겠구나.”
“외조부께서는 의원에서 치료를 받고 계시니, 먼저 급한 일부터 해결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알겠다. 이곳에서 쉬고 있거라.”
그 말을 끝으로 아버지 진성백은 급히 집무실을 나갔다.
같이 가자고 할 줄 알았는데, 그런 이야기가 없는 걸 보면 혹시나 위험한 상황일지도 모른다고 우려한 것 같았다.
내 무위와 상관없이 아들이라고 걱정하는 건가.
새삼 처음 느껴보는 것들이 많다.
아버지의 집무실 안에 남아있기가 그러해서 나갔는데, 멀리서 무천정종의 무사 한 명이 서있는 것이 보였다.
지금까지 기다렸는데, 일이 터져서 발걸음만 수고스럽게 되었다.
이에 그에게 다가가 말했다.
“아버지께서는….”
“소종주.”
-팍!
무천정종의 무사가 내게 포권을 취했다.
풍영팔류종의 사람도 아니었는데 내게 예를 갖춰주다니 의외였다.
게다가 그는 어떤 의미로 몇 시진 전까지 풍영팔류종과 싸웠던 적이나 다름없는 자가 아닌가.
겸연쩍어하는데, 그가 뜻밖의 말을 했다.
“저희 종주께서 소종주를 잠시 뵙기를 청하십니다.”
“저를 말입니까?”
아버지가 아니라 나를 말인가?
의아해하는데 그가 내게 웃으면서 말했다.
“소종주께서는 본 종의 은인이나 다름없으십니다. 종주께서 당시에 경황이 없으셔서 감사의 인사를 전하지 못한 것에 유감스럽게 여기시는 듯 합니다.”
그것 때문이었구나.
해왕성종의 종주 왕처일에게 그를 넘겨준 후로 보지 못했었다.
워낙 오랫동안 갇혀 있어서 몸이 약해졌기에 당연히 치료를 받겠거니와 생각했었다.
-한 번 가봐. 혹시 감사의 의미로 재화라도 챙겨줄지 어떻게 알아.
재화라.
지금은 별로 그리 필요치 않은데.
-배가 불렀구나.
어쨌거나 악의가 없이 보자고 청한 것이니, 특별히 거절할 이유도 없었다.
진짜 천무성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도 하나 있고 말이다.
나는 무천정종의 무사에게 말했다.
“가시죠.”
* * *
무쌍성의 동서쪽에 있는 삼층 건물.
이곳은 성내에서 자체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의원이었다.
무천정종의 성탑에 있을 거라 여겼는데, 치료를 위해서 이곳으로 옮긴 모양이었다.
하긴 성탑 전체가 거의 피로 물들어 있었다.
정리도 안 된 그곳에서 요양을 하기는 여러모로 거북스러웠을 것이다.
진짜 무천검제 천무성이 있는 곳은 삼층이었다.
그곳에 천무성이 침상에서 상반신을 살짝 들어올린 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미 안면이 있었기에 편안하게 포권을 취하며 인사했다.
“종주를 뵙습니다.”
“어서 오게.”
치료를 받아서 그런지 낮에 보았을 때보다 한결 편안해보였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천무성이 누군가에게 눈짓을 했다.
그러자 3층을 지키고 있던 무천정종의 무사들이 조용히 아랫 층으로 내려갔다.
의아하게 쳐다보자 천무성이 웃으며 말했다.
“괜한 오해를 하게 했군. 둘이서 보았으면 해서 잠시 저들을 내려 보낸 거라네.”
“그렇군요. 어르신과 같은 얼굴을 하고 있던 그 자가 불렀다가 한 번 봉변을 당했더니, 저도 모르게 당황하게 되는군요.”
“허허허. 어찌 노부가 그러겠는가.”
진짜 천무성은 가짜였던 무악과는 정반대의 성격인 듯 했다.
뭔가 인자한 할아버지를 보는 것 같다.
내가 침상 앞에 도착하자, 그가 불편한 몸을 움직이며 내게 포권을 취했다.
“이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어찌 은인에게 감사의 예를 취하지 않는단 말인가. 자네가 아니었으면 노부는 죽을 때까지 그 감옥 속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걸세.”
천무성이 포권을 취하고서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진심으로 내게 감사를 하는 듯 했다.
나도 덩달아 포권을 취하며 고개를 숙여 같이 예를 취했다.
그러자 천무성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사실 노부는 자네를 볼 낯이 없네.”
“어째서입니까?”
“노부 역시도 무림 연맹과의 동맹을 찬성했던 종주들 중 한 사람일세. 자네가 원망하더라도 할 말이 없는 처지일세.”
한순간에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원망이라.”
그 말에 나는 기분 좋게 답변할 수 없었다.
사실 무쌍성에 있는 대부분의 자들은 내 외가를 풍비박살 낸 원흉들이었다.
어떤 변명을 대더라도 그 사실은 변할 수가 없었다.
“노부가 무슨 염치가 있어서 자네에게 용서를 바라겠는가.”
“여기까지 하도록 하죠. 더는 종주님과 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 않군요.”
스스로 죄를 인정했지만 이를 떠올리니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냉랭한 나의 말투에 천무성이 입을 다물었다.
그런 그에게 나는 물어보았다.
“하나만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얘기해보게.”
“아무리 생각해도 한 가지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 있더군요.”
“무엇이 말인가?”
“이번 일은 가짜 천무성, 아니 무악이라는 자가 종주님을 살려두지 않았다면 이렇게 발각될 사태도 벌어지지 않았을 겁니다.”
그 말에 천무성의 얼굴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내가 이것을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볼 줄은 몰랐겠지.
뭔가 숨겨진 사연이 있어보였다.
“한데 어째서 이런 위험부담을 감수해가면서까지 종주님을 살려뒀을까요?”
“……그건 노부도 모르네.”
천무성이 아무 것도 모른다는 식으로 둘러댔다.
대체 무엇을 숨기는 거지?
그가 숨긴 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가짜를 연기했던 무악이 그를 살려두면서까지 그것을 얻어내려 했다면 놈의 조력자들도 이것을 노릴지도 몰랐다.
이를 자극해봐야 겠다.
-어떻게 자극하려고?
이렇게.
“혹시 금옥에 있었던 일을 들으셨습니까?”
“금옥?”
나의 물음에 그가 의아해했다.
정말 모르는 눈치다.
아무래도 가짜 천무성과 연루되어있었기에 무천정종에는 이 정보가 가지 않은 모양이다.
차라리 잘됐다.
나는 천무성에게 능청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저런…..모르셨나보군요. 성내 금옥에 누군가 잠입해 지키는 무사들과 무악을 노렸습니다.”
“무악을 노렸다고?”
천무성의 인상이 굳어졌다.
모든 것이 원만하게 끝났다고 생각하고 긴장의 끈을 놓았던 것 같다.
흔들리는 모습에 나는 슬며시 마음이 동할 만한 말을 던졌다.
“오늘 그 난리가 있었는데도 금옥까지 대범하게 노릴 정도면 이곳에도 무슨 사달이 일어나도 이상할 일이 아닐 것 같군요.”
“…..허어.”
천무성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어떤 의미로 이런 말을 했는지, 아마 본인이 더욱 잘 알 것이다.
“크흠.”
고민에 빠진 듯이 연신 신음을 흘리던 천무성.
초조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공이 폐해져서 오랫동안 갇혀 있었던 지금의 그는 예전 팔대고수의 역량을 잃은지 오래다.
노쇠하고 무력한 노인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그에게 말했다.
“말씀하고 싶지 않은 비밀이라면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괜한 질문을 드린 것 같군요. 그럼 저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그리고 몸을 돌리는데,
“잠깐!”
걸렸다.
아무런 내색을 하지않고 다시 몸을 돌렸다.
천무성이 씁쓸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자네의 말이 맞네. 노부가 어리석었어. 그 고생을 하고도 욕심에 이것을 숨길 생각을 하다니…..”
그 말과 함께 천무성이 자신의 품속에서 무언가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반으로 접혀 있는 낡은 서지였다.
“그게 뭡니까?”
“이게 무악 그 자가 오랫동안 노부를 살려둔 이유일세.”
“살려둔 이유?”
“검을 다루는 검객이라면 누구라도 이것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을 걸세.”
대체 저 서지가 무엇이기에 그런 거창한 소리까지 하는 걸까?
의아해하는 내게 천무성이 놀라운 말을 꺼냈다.
“먼 옛날 검의 일인자라 불리던 검선께서 남기신 지보일세.”
‘검선!?’
끝
ⓒ 한중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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