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word Sense RAW novel - Chapter 168
58화 지보 (4) >
-훌륭하다. 길을 열어줬다고 한들 체득하지 못하면 무의미한 법.
‘검선 어르신의 가르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좀 더 시간이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남아있는 백(魄)은 선천진기와 염(念)으로 체화하는 것이 네게는 더 득이 되는 일이겠지.
‘더 가르침을 주십쇼. 어르신께서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지금의 제게는 깨달음이 필요한 시기라고.’
-배움의 열망이 강하구나. 하나 그리하고 싶어도 더 이상 네게 시간이 없구나.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심상의 세상이 아무리 바깥보다 느리게 흐른다고 해도 이를 멈출 수는 없느니라. 이제 돌아가도록 하여라.
검선의 그 말과 함께 안개가 점차 사라져갔다.
나는 사라지는 검선에게 다급히 말했다.
‘하나만 하나만 더 가르쳐주십쇼. 제가 다시 과거로 돌아간 것도 어르신의 안배입니까?’
그 물음에 흩어져 가는 검선이 말없이 웃었다.
웃고 있는데 어째서 그것이 긍정이라고 느껴지지 않는 것일까?
* * *
-이게 무슨 일이래? 방금 그거 어떻게 한 거야?
소담검이 놀라서 내게 물어보았다.
‘예기를 날렸어.’
검이나 도와 같은 병장기를 다루는 자들은 경지에 이를수록 기운을 날카롭게 벼를 수도 있게 된다.
그것이 바로 예기(銳氣)이다.
벽을 넘어선 고수들은 몸속의 기를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체득화 할 수 있기에 이 예기를 자유롭게 다룰 수 있게 된다.
-그럼 벽을 넘어선 거야?
아니.
아쉽지만 벽은 넘지 못했다.
벽에 턱걸이를 했다고 하는 표현이 옳을 것이다.
-턱걸이? 그럼 초인의 영역에 이르지 못했다는 거야?
애매하다.
검선께서 주신 가르침을 체화했어도 내 자신의 깨달음이 부족했다.
심상에서 있던 것이 바깥보다 느리게 흘러갔다고 해도 벽을 완전히 넘어설 만큼 충분하지 않았다.
지금 나는 초인 영역에 준한다고 할 수 있다.
팔대고수나 사대 악인들처럼 손과 발을 이용하여 예기를 자유로이 다룰 정도는 되지 못하지만 검을 매개체로는 그것이 가능해졌다.
지금으로서는 이것이 한계였다.
그나마 이것도 원래는 벽을 넘어야만 가능한데, 나는 그 모든 것을 검선비록에 남겨져 있던 북두칠성의 힘으로 정기신을 모두 열었기에 가능했다.
남천철검이 놀라워하며 물었다.
-방금 전에 우리의 말을 듣지 못하고 가만히 있었던 게 검선을 만난 것이었나?
‘맞아. 그분의 가르침을 받았어.’
-그럼 진짜 검선의 지보였네?
호들갑을 떠는 소담검에게 그렇다고 했다.
전혀 예상치 못하게 천고의 기연을 만나게 된 것이었다.
-죽은 저 노인네만 불쌍하게 되었네.
소담검이 말한 노인네는 천무성이었다.
내가 생각해도 그는 참으로 불운한 자였다.
겨우 감옥에서 나왔는데, 정작 검선의 지보를 익힐 수도 없는 몸이 된 것도 모자라 목숨마저 잃게 되었다.
이런 걸 보면 운명이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어쨌거나 이 일로 인해 기연을 얻어 한층 더 성장했으니 일단은 만족해야 할 것 같다.
-아쉽네. 팔대고수가 눈앞이었는데.
‘깨달음을 얻는데, 조급해하지 말라고 하셨으니까. 그리고….’
지금이라면 염(念)으로 혈마의 힘을 더욱 끌어낼 수 있을 거다.
지보에 남아 있던 검선의 백(魄) 또한 몸으로 받아들였으나, 아직 제대로 흡수하지 않았으니 성장가능성은 열려있다.
“노, 놈을 막아랏!”
내게 손짓을 하는 저 자가 이 복면인들의 우두머리인 것 같다.
저 자만 복면인들 중에서 가장 우월한 힘을 가지고 있다.
잠깐이나 손을 섞어본 감각이 맞다면 초절정의 극에 이른 무위를 지니고 있었다.
-저놈이 너한테 저걸 먹이려고 했어
놈의 손에 있는 저 환단.
저것이 마음에 걸린다.
일단 제압하면 정체가 무엇인지 그 목적까지 알 수 있겠지.
-조심해!
소담검의 외침에 나는 검을 옆으로 비스듬하게 쳐올렸다.
-챙!
“흐헉!”
가볍게 쳐낸 검에 내게 도를 휘둘렀던 복면인의 신형이 뒤로 밀려났다.
벽에 걸친 것만으로 공력이 확연하게 달라졌다.
-팍! 촥!
“끄윽!”
옆에서 달려드는 복면인의 팔목을 걷어차고서 허벅지를 베어버린 나는 계단으로 도망치는 복면인의 우두머리를 향해 검을 그었다.
공간이 일렁이며 날카로운 예기가 놈의 등으로 날아갔다.
“큭!”
예기를 느꼈는지 놈이 다급히 바닥으로 몸을 굴렸다.
초절정의 극에 오른 자였기에 기감만큼은 예민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예기를 이런 식으로 날려도 피할 수 있을까?
-촤촤촤촤촥!
나는 예기를 피할 틈이 없도록 종횡무진으로 날려댔다.
“이놈!”
놈도 그것을 피할 수 없다고 여겼는지 몸을 돌려서 날아오는 예기들을 향해 화려한 장법을 펼쳤다.
손바닥의 잔영이 수십 개로 늘어나며 방패처럼 앞을 가렸다.
-파파파파팍!
장법의 초식과 예기가 부딪쳤다.
놈이 물샐 틈 없는 방어로 예기를 막아내려 했지만, 신형이 뒤로 튕겨져 나갔다.
-쾅!
‘응?’
놈이 튕겨지는 힘을 이용해 건물의 벽면을 부숴버렸다.
계단으로 내려가는 것보다 그것이 빠른 방법이기도 했다.
이대로 놓칠 것 같아.
“하압!”
복면인들이 놈을 어떻게든 탈출시키기 위해 내 앞을 가로막았다.
검초와 도초를 펼치는데 이를 상체만 가볍게 움직이며 피했다.
확연한 실력 차에 복면인들이 어처구니가 없어했다.
“빈틈.”
나는 복면인들 중 한 명의 미간을 검으로 찔렀다.
놈이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쓰러졌다.
또 다른 복면인이 당황해서 도망치려고 했지만 그 자의 옆구리에 일권을 먹였다.
-퍽! 우드득!
“끄악!”
갈비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놈이 피를 토하며 날아갔다.
절정의 고수들조차 내게 일초지적이 되지 않는 것을 보면 무위가 정말 강해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더 이상 막을 놈들이 없자 소담검이 소리쳤다.
-빨리 쫓아가!
‘잠깐만.’
나는 바닥에 놓여 있는 시신 한 구를 향해 은연사를 날려 잡아당겼다.
그것은 천무성을 죽인 그 자의 시신이었다.
놈은 양손으로 은연사를 썼었는데, 나 역시도 섬영비도술을 익혀서 연습만 한다면 충분히 두 개를 다룰 수 있을 것 같았다.
-찰칵!
시신의 팔에서 은연사의 양팔 갑주를 빼내서 하나는 허리춤에 차고, 다른 하나는 오른팔에 찼다.
-고사이 그걸 챙기는 구나. 너답다.
아깝게 이걸 버리고 갈까?
다른 사람들의 손에 들어가면 내 밑천이 벗겨지는 셈인데.
은연사를 요긴하게 챙긴 나는 복면인의 우두머리 놈이 뚫어놓은 구멍으로 신형을 날렸다.
-어딘지 알 것 같아?
나는 안대를 내리고 감았던 눈을 떴다.
금안이 개방되며 어두운 무쌍성의 성내가 눈에 들어왔다.
놈과 잠시 대립하면서 그 기운을 확실하게 파악해뒀기에 안대를 벗은 경우라면 더더욱 멀리까지 내다볼 수 있다.
수많은 사람들의 기운이 눈에 형상화되었다.
그들 중에 급하게 도망치고 있는 익숙한 빛의 형상이 보였다.
놈이었다.
-따라잡을 수 있겠어?
‘가능…..할지도.’
-무슨 수로? 저 거리면 도망쳐서 숨고도 남을 텐데.
나는 양팔을 벌렸다.
-뭐해?
-촥! 촥!
그리고는 양 손목에 있는 은연사를 양쪽 벽면에 발사해 구조물에 묶이게 했다.
-뭐 하려는 거야? 너 설마?
나는 구멍이 뚫려 있는 반대편의 벽면을 향해 내달렸다.
그러자 고정되어 있는 은연사의 줄이 쭈욱하며 늘어났다.
감겨 있는 줄을 빼낸 게 아니라 탄력에 의해서 늘어난 것이었다.
고정되어 있는 은연사의 줄이 구조물을 잡아당길 듯이 팽팽해지자, 나는 그 힘에 몸을 맡겼다.
-태앵! 파아아앗!
누군가 나를 날려주듯이 은연사의 탄력에 의해 내 몸이 건물 구멍을 빠져나와 하늘을 그대로 직선으로 뻗어갔다.
하나가 아닌 둘을 이용하니 그 탄력의 힘이 굉장했다.
마치 활을 쏘듯이 몸을 날린다는 경공술 궁신탄영(弓身彈影)을 펼친 것처럼 내 신형이 무쌍성의 허공을 가로질렀다.
-슈우우우우!
금안으로 놈이 보였다.
미행을 따돌리려는 것처럼 이리저리 골목을 휘젓고 있었다.
허리춤에 소담검의 검병에 은연사의 줄을 채웠다.
-또야?
소담검이 체념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나는 놈이 있는 방향의 건물 벽면을 향해 은연사를 쏘았다.
-콰득!
벽면에 소담검이 꽂히자, 은연사에 공력을 주입하여 줄어들게 만들었다.
앞으로 날아가던 몸이 은연사가 있는 방향으로 틀어졌다.
방향이 틀어지자, 벽에 꽂혀 있던 소담검을 잡아 당겨 은연사를 회수한 후에 나는 몸을 회전시키며 어딘가로 날아갔다.
그곳은,
-탁!
“헉!”
복면인의 앞이었다.
갑자기 느닷없이 내가 하늘에서 떨어지자 놈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복면에 드러난 눈동자가 미친 듯이 떨리고 있었다.
“대, 대체 어떻게?”
이에 나는 빙그레 웃으며 위를 가리켰다.
하늘로 가로질러 온 건 맞으니까.
당혹스러워하던 놈이 싸워볼 생각이 없는지 반대편으로 몸을 틀려고 했다.
-촥!
나는 은연사를 발사해 놈의 다리를 낚아챘다.
“이건 또 뭐야?”
뭐긴 뭐야. 줄이지.
나는 은연사를 잡아당겼다.
놈이 이를 풀어내려고 발버둥을 치다가 안 되겠다 싶었는지, 나를 향해 신형을 날렸다.
복면인의 우두머리가 내게 장법을 펼쳤다.
놈의 손바닥이 쾌속하게 내 얼굴과 가슴의 요혈들을 노려왔다.
‘보인다.’
놈의 앞에 서면서 금안을 가리기 위해 왼쪽 눈을 감았지만, 굳이 기운의 흐름이 아니더라도 초식의 연계 사이로 허점들이 선명히 보였다.
검선의 가르침이 절대로 헛되지 않았다.
나는 상체만을 움직이며 놈이 펼치는 장초들을 피해냈다.
그리고 놈에게 파고들어,
-퍽!
“끄엑.”
복부에 육성 공력을 실은 일권을 먹였다.
주먹을 맞은 놈이 토악질과 비슷한 소리를 내며 뒤로 밀려났다.
놈이 고개를 들어올리며 나를 향해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네, 네놈 무위를 숨겼던 것이냐?”
급격한 역량의 상승에 많이 놀랐나 보다.
그런 그에게 말했다.
“구양 종주. 당신이었습니까?”
“뭐?”
놈이 놀라서 다급히 자신의 얼굴을 더듬었다.
그의 얼굴에 쓰고 있던 복면은 벗겨져 있었다.
사실 그것은 내 손에 있었다.
복부에 일권을 먹이는 순간 검을 잠시 손에서 놓고서, 복면을 벗겨버렸다.
“크윽. 이놈.”
구양경이 어처구니가 없어했다.
나야말로 그렇다.
같은 파벌이라 할 수 있는 무천검종의 종주가 가짜인 것이 밝혀진 후로 어떻게든 나를 몰아붙이려고 한 것은 알고 있지만 이런 식으로 암수를 쓰려들 줄은 몰랐다.
여기서 한 가지 의심이 들었다.
“……당신도 그 자들과 한패였습니까?”
무악과 스스로를 비도살왕 한지상의 스승이라 칭했던 그 자.
아무래도 그들과 연관이 있어보였다.
구양경이 눈알이 이리저리 돌아가는 걸 보면 내 말은 귀에도 안 들어오는 것 같다.
그저 이 상황을 어찌 빠져나가야 하나 머리를 굴리는 듯 했다.
-……
그때 이명과 더불어 기감을 자극하는 기척들이 느껴졌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허공을 가로지를 때 나를 발견한 자들이 있었던 모양이다.
기감이 나보다 약한 구양경도 뒤늦게 그것을 알아차렸는지, 더욱 어쩔 줄 몰라 했다.
“빌어먹을!”
놈이 발목에 묶여 있는 은연사를 풀어내려 했다.
그렇게 내버려둘 수야 있나.
나는 은연사를 잡아당겼다.
이를 버티려고 하던 놈이 갑자기 눈을 질끈 감더니,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환단?’
그것은 놈이 내게 먹이려고 했던 그 환단이었다.
“네놈만은 용서할 수 없다.”
아무래도 낌새가 좋지 않았기에 나는 이를 막기 위해 예기를 날렸다.
-촥!
그러자 놈이 다급히 몸을 낮추어 예기를 피하더니 환단을 집어삼켰다.
놈에게 신형을 날린 나는 놈의 목을 움켜쥐었다.
“컥!”
복부를 쳐서 그것을 게워내게 하려고 했는데,
‘뭐지?’
갑자기 구양경의 얼굴에서 검은 핏줄이 불룩불룩거리며 튀어나왔다.
기이한 현상이었는데, 목에 있는 혈맥이 과도하게 팽창하는 것이 느껴졌다.
놈을 제압하기 위해 가슴 부위로 다급히 점혈술을 펼쳤다.
-타타타타탁!
그런데 팽창하는 혈맥으로 방대한 기운이 올라와 점혈을 방해했다.
안되겠다 싶어서 놈의 가슴에 일권을 날렸다.
-퍽!
일권을 날린 구양경의 입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피 색깔이 검게 물들어 있었다.
구양경이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아. 기분이 좋구나.”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구양경이 내 머리를 향해 일장을 날렸다.
나 역시도 다급히 놈의 손바닥으로 권을 뻗었다.
장과 권이 부딪치는 순간 서로의 신형이 뒤로 밀려났다.
-촤르르르르르
갑자기 놈의 공력이 굉장히 올라갔다.
혈맥이 폭주하기에 자결을 하나 싶었는데, 그게 아닌 모양이다.
눈동자는 실핏줄이 올라와 붉어져 있었고, 얼굴 전체가 검게 올라온 핏줄들로 뒤덮여 징그럽기 짝이 없었다.
-우르르르르!
때마침 골목 사이로 수십 명의 인파가 몰려왔다.
그 앞에는 해왕성종의 종주 왕처일이 있었다.
아버지인 무정풍신 진성백은 보이지 않았다.
“구양 종주? 소종주? 이게 무슨 일인가?”
그의 외침에 나는 놈이 혹시나 선동이라도 할까 싶어 먼저 선수쳤다.
“구양 종주님이 의원에 있던 저와 무천정종의 종주님을 노렸습니다. 저 복면이 그 증거입니다.”
바닥에 떨어진 복면을 가리켰다.
이에 왕처일이 인상을 찡그리며 구양경을 쳐다보았다.
누가 봐도 그의 복장은 복면과 잘 어울렸다.
게다가 지금 상태가 매우 기이했다.
“구양 종주.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요?”
왕처일의 외침에 구양경이 비릿하게 웃더니 대뜸 일갈을 내질렀다.
“네놈들은 꺼졋! 저 놈은 내 손에 죽는다!”
평소 말투와는 확연히 달랐다.
거칠기 짝이 없었다.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요! 구양 종주. 당장 멈추지 않는다면 그대를 제압할 수…”
-팟!
구양경이 갑자기 왕처일을 향해 신형을 날렸다.
이에 나는 그것을 막기 위해 은연사를 확 잡아당겼다.
그런데 예상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방해하지마랏!”
-뿌드득!
구양경이 발목에 걸려 있던 은연사의 줄을 끊어버렸다.
어디까지 그 탄력이 유지되나 궁금하기는 했는데, 이런 식으로 알 게 될 줄은 몰랐다.
은연사로 묶어두기에는 완전히 글렀다.
내가 나서려고 하자 왕처일이 손을 내밀며 소리쳤다.
“위험하니 나서지 말게! 본 종주가 제압하겠네.”
왕처일이 허리춤에 있던 도를 뽑아 구양경에게 신형을 날렸다.
과연 그의 도법은 명불허전이었다.
사대 무종의 종주들 중 한 사람이자 무천검제와 같은 시대를 지내온 도객답게 패도적인 도초를 구사하고 있었다.
-촤촤촤촤촤촤!
도법 실력으로 치면 난마도제와 거의 비등했다.
그런데 문제는 구양경이었다.
그 단환의 효과 때문인지 공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한 구양경이 쇄도해오는 도초를 손바닥으로 만들어낸 수십의 잔영으로 밀어붙여버렸다.
-파파파파파팡!
왕처일도 더욱 강하게 도를 휘둘렀지만,
“이 자가 미치기라도 했나?”
구양경은 도에 베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지, 장법으로 막지 못한 도초들을 팔목이나 맨몸으로 받아내 버렸다.
살갗이 베이기는 했으나, 강한 공력으로 만들어낸 반탄력에 의해 오히려 왕처일의 도식이 튕겨져 나가고 말았다.
도가 튕겨지며 틈이 생겨나자 구양경은 놓치지 않았다.
그의 일장이 왕처일의 가슴을 때렸다.
-팡!
“크헉!”
왕처일이 피를 뿜으며 뒤로 밀려나더니, 이내 한 쪽 무릎을 꿇었다.
고작 세 초식 만에 압도적인 공력으로 승부를 낸 것이었다.
구양경의 몸에도 많은 도상이 생겨났는데,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듯이 광소를 터뜨리며 말했다.
“크하하하핫! 왕처일 네놈도 별 것 아니구나!”
“이 자가!”
내상을 입은 왕처일이 무릎을 일으키려 했다.
그때 내가 소리쳤다.
“구양 종주. 당신이 노리던 상대는 제가 아닙니까?”
그 말에 왕처일에게 다가가던 구양경이 고개를 획하고 돌렸다.
왕처일이 놀라서 황급히 외쳤다.
“소종주! 자네의 상대가 아닐세. 구양 종주를 자극하지 말게!”
그러나 그가 만류한다고 될 상황이 아니었다.
이미 구양경의 신형이 내 코앞까지 다가왔다.
놈이 내 머리를 향해 장법을 날렸다.
이에 나는 남천철검을 위로 베며 놈의 팔을 잘라버리려고 했다.
-파파파팍!
구양경이 변초를 펼쳐 검면을 쳐낸 후에 심상부를 향해 장법을 틀었다.
이에 보법으로 뒤로 물러나며 놈의 손목을 위로 차올렸다.
그 후에 놈의 가슴을 향해 검을 찔러 넣었다.
“흥!”
구양경이 콧방귀를 뀌며 검 끝으로 일장을 날렸다.
-파아아앙!
순간 강한 풍압이 주위로 일어났다.
어찌나 공력이 강한지 검이 손바닥을 꿰뚫지 못하고 서로의 신형이 또 다시 밀려났다.
그 광경을 본 왕처일과 사람들이 어안이 벙벙해졌다.
내가 강해진 그와 싸워도 밀리지 않자 많이 놀란 모양이었다.
-몸이 단단해진 거야?
‘그건 아냐.’
손바닥에 일시적으로 공력을 집중해 날카로운 검 끝에 대항했다.
다만 내 공력도 만만치 않기에 상처는 났다.
구양경의 손바닥에 흘러내리는 저 피가 증거였다.
다만 미치기라도 했는지 아니면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지 전혀 개의치 않고서 내게 다시 달려들고 있었다.
“죽어랏!”
순식간에 구양경과 내가 두 초식 가량을 더 부딪쳤다.
그의 폭증한 공력이 조금 더 우위였으나, 애초에 무위가 오른 것이 아니라 단환의 약기운에 의존한 것이었기에 거의 동등했다.
-파팍!
“큭!”
놈의 장법이 내 오른쪽 가슴을 때렸다.
나 역시 발차기로 놈의 복부를 걷어찼지만, 고통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
신형이 틀어지지 않고 나를 노려왔다.
-주르륵!
입가로 흘러내리는 핏물을 보더니, 왕처일이 위기라 생각했는지 소리쳤다.
“구양 종주가 마성에 빠졌다. 그를 제압해야 한다.”
“충!!!”
그의 명에 해왕성종의 고수들이 합공을 하려는지 우르르 나서려고 했다.
그들의 무위로는 끼어들어봐야 피해만 커진다.
이에 나는 다급히 소리쳤다.
“멈추십쇼!”
“무슨 소린가! 자네 혼자서는 무릴세.”
왕처일의 외침에 나는 별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어쩔 수 없군요. 멀쩡히 제압하기는.”
“뭐?”
-파파파팍!
나는 연달아 발차기로 구양경을 밀어낸 후에 보법으로 다섯 보 정도 거리를 벌렸다.
그리고 검병의 파지법을 바꾸고서 검날을 반대쪽 허리 뒤쪽까지 잡아당겼다.
마치 자세만 보면 검초가 아닌 발도술이라도 펼치는 듯 하다.
“죽여주마!”
그런 나를 향해 구양경이 신형을 날려 왔다.
‘신로(新路) 성명검법 제 4초식 회룡승검(回龍昇劍).’
-쾅!
나는 앞으로 세차게 진각을 밟으며 남천철검에 예기를 극도로 끌어올렸다.
그리고 검으로 원을 그리며 몸을 회전시켰다.
“소용없…”
-차창!
“엇?”
그 순간 장법을 펼치던 구양경의 양손이 튕겨나가며 그의 몸이 검세에 떠올랐다.
-촤촤촤촤촤촤촥!
검세에 이어서 몰아치는 예기의 회오리가 구양경을 휘감았다.
구양경의 전신이 예기가 갈가리 베어들며 계속해서 위로 솟구쳤다.
-이게 회룡승검이라고?
남천철검이 달라진 검초에 믿을 수가 없어했다.
-쿵!
이윽고 예기의 회오리에 휘말렸던 구양경이 바닥에 떨어졌다.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그가 몸을 일으켜 세우려 했지만, 전신의 근맥이 잘려나가서 바닥에서 꿈틀댈 뿐 일어나지 못했다.
나는 검에 묻은 핏방울을 털어내며 고개를 돌렸다.
왕처일과 해왕성종의 고수들이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자네…..대체…..”
끝
ⓒ 한중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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