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word Sense RAW novel - Chapter 17
11화 내기 (1)
그날을 기점으로 해악천은 더 이상 절벽을 타고 내려가 식량을 구하게 하는 것도 밧줄에 묶어서 절벽에 매달아버리는 것도 하지 않았다.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그는 주기적으로 생단을 가져다주는 패혈 단주 구상웅에게 일러, 육포를 비롯한 벽곡단 등을 가져오게 했다.
덕분에 수련에만 매진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절벽타기가 육신을 단련하는데 좋다는 사실을 인지한 나는 하루에 두 시진 가량을 여전히 절벽타기로 보냈다.
엿새 정도 지난 후에 나는 해악천에게 선천진기를 느꼈고, 바닥에 새겨져 있는 심법의 운기를 시작했다고 알렸다.
물론 실제로는 성명신공의 일성을 연마 중이었다.
하지만 전력의 육 할은 숨길 생각이었다.
지금 우리가 있는 장소는 죽은 남천검객 호종대의 유골이 있는 동굴이었다.
“숙지해둬라.”
해악천이 내게 두 권의 비서를 넘겼다.
하나는 남서역에서 수십 년 전에 사라진 전륜사라는 절에서 파생된 명륜선공(銘輪選功)이라는 무공비서였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놀랍게도 성명검법의 비서였다.
-누가 훔쳤나 했더니 역시 저 자가 범인이었나?
‘범인?’
남천철검이 이를 보고서 분통을 터뜨렸다.
녀석의 말에 의하면 남천검객이 거처를 털린 적이 있었는데, 그때 숨겨두었던 성명검법의 비서를 도둑맞았다고 했다.
그 범인이 바로 해악천이었던 것이다.
-이야. 미친 노인네가 어지간히 이기고 싶었나 보다.
소담검의 말이 옳았다.
얼마나 이기고 싶었으면 상대의 비급서까지 훔칠 생각을 했을까.
내심 동굴 안에 있는 것이라고는 불완전한 심법뿐이었는데, 이것만 가지고 대체 어떻게 겨루라는 건지 의문이 들었었는데 그것이 풀렸다.
‘이게 있으니 그런 소리를 했었군.’
어떤 식으로든 성명검법은 익히게 될 운명이긴 했던 모양이다.
“안타깝게도 이 해골 녀석의 운공법은 본좌 역시 알 수 없다. 하지만 이 명륜선공은 상당히 균형적인 공력 운공법이라 어지간한 무공은 어렵지 않게 소화할 수 있지.”
“…..그래도 불완전하지 않습니까?”
“어차피 그 망아지 녀석들에게도 똑같은 명륜선공을 전수하고 있으니, 불완전하다거나 불리하다는 소리는 꺼내지도 말거라.”
의외로 최대한 동등한 대결이 되도록 신경 쓰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차이는 있을 수밖에 없었다.
성명검법의 비급서를 훔쳤으니, 그것을 토대로 자신의 무공을 보완했을 것이다.
‘치사한 늙은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운휘.
그런 나를 남천철검이 안심시켰다.
‘왜?’
-저 자가 훔친 성명검법은 전 주인께서 보완하기 직전의 원본이다.
남천검객은 비서를 도둑 맞은 후로 검법을 더욱 발전시켰다고 한다.
그렇다면 전혀 문제될 건 없었다.
-반드시 이기게 해주겠다.
남천철검이 전의가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역시 든든했다.
향후의 미래가 걸린 대결이니 무조건 이겨야 했다.
그리고 저 노인네의 경신법도 얻어야 하니까.
* * *
그로부터 한 달의 시간이 지났다.
석양으로 노을 진 하늘.
날이 점점 추워지면서 해가 점점 빨리 지고 있었다.
열흘에 한 번씩 유시(酉時) 무렵, 패혈 단주가 식량과 생단을 가져오기 때문에 그것을 받기 위해 일찍 돌아가야 했다.
평소라면 패혈 단주나 혹은 해옥선 대주가 교인들을 이끌고 왔는데, 오늘은 뜻밖의 손님이 찾아왔다.
“혈세! 혈세! 혈혈세! 대주 오충이 사존께 인사 올립니다.”
동굴 바깥에서 들리는 익숙한 목소리.
그는 바로 오 대주였다.
-쯧쯧, 귀찮은 손님이 찾아왔네.
소담검의 말에 동의한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웬만하면 그와는 별로 마주하고 싶지 않지만 아직까지 해악천이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애초에 식량과 생단을 받는 역할을 내 몫이었다.
-그냥 그 늙은이인척 하고 속여.
‘뭐?’
-목소리 좀 걸걸하게 흉내 내서 식량과 생단만 두고 가라고 하면 놔두고 가지 않을까?
‘그렇게 속을 거였으면 했지.’
저 자도 명색이 대주였다.
파란띠를 한 상급무사는 일류고수였다.
이 정도 거리라면 동굴 안에 나 혼자만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채고 있을 지도 몰랐다.
한숨을 내쉰 나는 혹시 모르니 남천철검을 두고서 밖으로 나갔다.
“중급 수련 생도 소운휘가 대주께 인사드립니다.”
포권을 하며 인사를 하는 내게 오 대주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르신의 종자 노릇은 잘 하고 있나 보구나.”
어지간히 나를 싫어하는 모양이다.
오랜만에 봤는데도 여전히 까칠하기 짝이 없었다.
-적당히 둘러대고 보네. 어차피 그 노인네 언제 올지도 모르잖아.
‘그럴 생각이야.’
어차피 오 대주가 나를 싫어하든 좋아하든 지금 그의 임무는 식량과 생단을 이곳에 날라주는 역할이었다.
그 외에 이곳에 머무를 명분은 전혀 없었다.
“사존 어르신께서는 늦으실 겁니다. 식량과 생단은 제게 주시고 가시면 됩니다.”
그 말과 함께 오 대주가 데리고 온 자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런데 평소에 패혈 단주나 해옥선이 데리고 오는 자들은 정식 혈교의 무사들이었는데, 이 녀석은 수련 생도인 것 같았다.
얼핏 봐도 열여섯, 열일곱 정도 되어 보였다.
“아니 그럴 수야 없지.”
“네?”
“본 대주는 사존 어르신을 뵈어야 하거든.”
“………”
역시나 귀찮게 만들고 있었다.
그럼 여기서 죽치고서 기다리겠다는 소리가 아닌가.
꿍꿍이가 있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럼 그러시든지.
“동굴 안에는 들어갈 수 없습니다. 알고 계시죠?”
그 말과 함께 포권을 취하고서 동굴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멈춰라.”
오 대주가 나를 불렀다.
역시 해악천이 목적이 아니라 나인 듯 했다.
발걸음을 멈추고 몸을 돌리자 그가 웃음기를 지우고서 말했다.
“네놈도 들어갈 필요가 없을 거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어떻게 재수가 좋아서 내 눈을 피해서 어르신의 종복으로 들어갔는지는 모르겠다만. 네놈은 내 손에서 벗어날 수 없다.”
진짜 집요하기 짝이 없었다.
이런 의지로 공을 세우거나 무공을 연마했다면 출세했을 거다.
“그때 혈랑 대주께서 증명을 해주셨을 텐데요.”
“허튼 소리! 네놈이 어떻게 혈랑 대주를 설득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율랑현에서 네놈의 외조부를 보았다는 자는 한 사람도 없었다.”
당연한 이야기였다.
타지 출신이셨던 어머니는 어렸을 적에 외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고 하셨다.
그걸 알기 때문에 끼워 맞추기로 이야기한 것이었다.
나는 빙그레 웃으며 답했다.
“외조부께서는 출신을 숨기셔야 했는데, 어찌 마을 사람들에게 함부로 얼굴을 보이겠습니까?”
약이 올랐는지 나를 찢어죽일 듯이 노려보던 오 대주가 입을 열었다.
“그렇게 나오겠지. 그래. 하지만 네놈의 그 여유도 이제 곧 끝난다.”
“아까부터 계속 왜 그러시는지요?”
“이 시간부로 이 아이가 네놈 대신 어르신의 수발을 거들 것이다.”
수련 생도가 묘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까딱거렸다.
싸가지 없게 생긴 녀석이 마음에도 없는 인사를 하는 게 눈에 훤했다.
어쨌거나 수련 생도를 데리고 온 목적이 밝혀졌다.
대체할 사람을 데려와서 나를 다시 끌고 가겠다는 소리였다.
생도 수련을 받지 못하게 하는 것보다 본인의 시야에 항상 두고서 감시하겠다는 의지가 강력했다.
“힘들 텐데요.”
“힘들어? 이 녀석이라면 어르신도 만족하실 거다.”
저렇게까지 이야기를 하는 걸 보면 그냥 수련 생도가 아닌 듯 했다.
그렇다고 해도 변할 것은 없었다.
“만족하지 못하실 겁니다.”
“흥! 출신 성분이 불분명하다고 이야기 하고 대체할 녀석을 데려왔는데, 어르신이라고 무작정 네놈을 데리고 있을 것 같으냐?”
순간 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
사정을 모르니 저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은 하지만 오 대주 이 멍청이는 그 미친 늙은이를 몰라도 너무 몰랐다.
마음 같아서는 그를 놀려보고 싶었지만 더 자극해봐야 귀찮은 일만 만들 것 같았기에 수긍하는 목소리로 답했다.
“알겠습니다. 어떻게 결론이 내려지든 명에 따르겠습니다.”
그런데 이미 그의 불편한 심기는 끝에 달해 있었다.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있던 오 대주가 눈썹을 치켜 올리며 말했다.
“잘됐구나. 네놈의 버릇도 고칠 겸, 어르신께 잘 보일 필요도 있고.”
“네?”
“녀석에게 상급 수련 생도의 실력을 보여 주거라. 도현.”
‘상급 수련 생도?’
이 재수 없게 생긴 녀석은 상급 수련 생도였다.
내가 등급을 배분 받았을 때 보지 못했다는 것은 선발조인 모양이었다.
“명을 따릅니다.”
-우드득!
도현이라 불린 상급 수련 생도가 자신의 손목을 풀면서 내게 다가왔다.
주먹을 움켜쥐고서 기수식을 취하는데, 정말로 한판해볼 기세였다.
오 대주가 비릿하게 웃으며 말했다.
“본 대주가 책임질 터이니, 버릇을 제대로 고쳐줘라.”
“알겠습니다.”
자신감 넘치게 답한 녀석이 내게 말했다.
“네게 특별히 원망은 없다만 나도 이 기회를 놓칠 수가 없으니, 조금 아프더라도 참기 바란다.”
-건방지네. 이놈.
나보다 소담검이 오히려 짜증이 났나보다.
표정만 봐도 나를 완전 하수로 취급하는 것이 보였다.
하긴 본인은 지금껏 석달이 넘게 상급 수련 생도로서 훈련을 받았고, 나는 중급 수련 생도라고는 하나 여태껏 수발이나 들었다고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다고 여겼다.
-팟!
녀석이 내게 주먹을 뻗었다.
혈교 무사들이 기본적으로 익히는 팔혈권이라고 불리는 권각술이었다.
확실히 상급 수련 생도답게 자세는 완벽했다.
그런데,
-스르르르르!
내게는 너무도 느리게 보였다.
성명신공의 2성의 경지를 연마 중이라 스스로 발전했을 거라 생각은 했지만, 설마 상급 수련 생도가 약하게 느껴질 줄은 몰랐다.
-팍!
나는 가볍게 몸을 비틀어 녀석의 주먹을 피했다.
첫 공격을 피하자 의외라고 생각했는지 인상을 찡그린 녀석이 말했다.
“제법이군. 한데 얼마나 그 운이….”
-퍽!
“컥!”
녀석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내 주먹이 번개처럼 안면에 박혔다.
싸우는데 무슨 말이 그리 많은지.
그래도 선천진기는 사용하지 않았으니까 이 정도는 당연히 버티….
-쿵!
…..지 못했다.
주먹을 한 대 맞은 녀석이 그대로 기절해버리고 말았다.
너무 싱거울 정도로 끝나서 나조차도 놀라웠다.
‘뭐 이렇게 약하지?’
-네 힘이 세진 거 같은데.
그 동안 절벽을 내내 타고 오르면서 근력이 굉장히 늘었던 모양이다.
그래도 상급 수련 생도인데 한 방에 쓰러뜨리게 될 줄은 몰랐다.
“이…이이!”
오 대주의 표정이 가관이 아니었다.
자신이 원했던 그림과는 정반대의 결과가 나오자 어처구니가 없었나 보다.
화를 참지 못한 오 대주가 직접 손을 쓰려 했다.
“이노오오옴!”
그가 신형을 날리려는 순간이었다.
-팍!
“헛?”
누군가 뒤에서 나타나 오 대주의 어깨를 짓눌렀다.
그는 바로 기기괴괴 해악천이었다.
갑자기 그가 나타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는지 오 대주가 많이 당혹스러워했다.
“네놈은 뭐냐?”
“어, 어르신 저는 패혈 단주의 밑에 있는 오충 대주라고 합니다.”
“대주? 고작 대주란 놈이 본좌의 거처 앞에서 설쳐대고 있는 것이냐?”
오 대주가 다급히 상황을 설명하려고 했다.
“어르신. 그게 아니오라…..”
“흥! 뭐가 아니야.”
해악천이 그 커다란 손바닥으로 오 대주의 뒤통수를 후려 버렸다.
-뻑!
“끄억!”
가볍게 때린 것 같았는데, 그가 비명과 함께 내 앞까지 날아와 쓰러졌다.
진짜 괴물은 괴물이었다.
일류고수를 파리채 휘두르듯이 쓰러뜨려버렸다.
“끄으으으….”
미끄러지면서 돌바닥에 쓸려 오 대주의 얼굴이 엉망이었다.
고통의 신음성을 내는 그를 내려다보며 내가 안타깝다는 듯이 말했다.
“힘들다고 했죠.”
난 분명 경고했다.
미친 개는 건드리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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