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word Sense RAW novel - Chapter 172
60화 결착 (1) >
-채채채채챙!
쇳소리와 함께 날카로운 검광이 연무장을 가득 메웠다.
수십 갈래로 이어지는 검의 궤적이 틈도 없이 밀어붙이고 있는데, 아버지 진성백은 현묘한 보법으로 이것을 쉽게 피하고 있었다.
-대단하다. 과연 팔대고수의 명성에 걸맞는다.
남천철검의 탄성이 연신 내 머릿속을 울렸다.
그럴 만도 한 것이 나의 모든 공초가 전혀 통하지 않았다.
나름 깨달음을 얻어 초인의 영역에 준하는 경지에 이르렀다고 여겼는데, 내 모든 초식을 아버지는 꿰뚫어보고 있었다.
-너 거의 밑천이 떨어져 가는데.
아직 그 정도는 아니거든.
진혈금체, 혈마화, 혈천대라검, 신로 성명검법의 후반부는 쓰지 않았다.
애초에 혈천대라검은 혈마검이 없으면 펼치기도 힘들고 말이다.
-다른 무공들은 써도 되잖아.
대련이잖아.
목숨을 걸고 겨루는 대결도 아닌데 그것들을 쓸 이유가 없다.
진혈금체, 혈마화는 결이 다르다.
이건 아버지께서 내가 여태껏 배운 무공들이 얼마나 조화를 잘 이루는지, 그리고 이를 얼마나 잘 활용하는지 보고 싶다고 해서 대련하는 것이었다.
외적인 능력을 발휘하는 것은 정확하게 파악하시는데 독이 된다.
-말은 그렇게 해도 뭐라도 보여줘야 하는 거 아냐? 네 아버지 완전 표정이 좋지 않은데.
녀석의 말대로 대련하는 내내 아버지의 표정이 굳어있다.
나 역시도 뭔가 많이 부족한 건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좀 그럴 듯한 걸 보여줘.
그럼 신로 성명검법의 제 6초식 축아광회검(逐亞廣回劍)을 펼쳐볼까?
후반부 초식들은 위력이 천차만별이라 자중하고 있었다.
뭔가 실망하는 거라면 적어도 제대로 된 초식을 보여주긴 해야 할 것 같다.
그때 아버지가 신형을 벌리며 손을 내밀었다.
“여기까지 하자꾸나.”
“네?”
“충분히 본 것 같구나.”
으음.
도중에 찝찝하게 끝낸 것 같은 기분인데.
검집에 남천철검을 착검하자 아버지 진성백이 말했다.
“하나 같이 상승 무공들인데, 참으로 기이하구나.”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괜히 걱정이 앞섰다.
혹 많은 무공을 익힌 것이 내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쳤을까 말이다.
그러나 아버지의 입에서 나온 말은 의외의 것이었다.
“네가 익힌 무공들은 하나하나가 그 기운이 강해서 양립하기 어려운데, 전혀 그것들을 펼치는데 영향을 끼치지 않는 것 같더구나.”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건….”
의아해하는데 아버지 진성백이 연무장의 바닥에 검결지를 쥐고서 예기로 무언가를 그렸다.
-촥! 촤촥! 촥!
내가 펼쳤던 무공의 초흔들인 것 같다.
하나는 성명검법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혈천대라지공이었다.
혈마의 양대 무공은 지공과 검법이었는데, 혈마화나 혈마검이 없이 펼칠 수 있는 무공은 오직 지공 하나였기에 선천진기로 펼칠 수 있었다.
-촤촥!
지금 흔적을 남기는 것은 섬영비도술인 것 같다.
-촤촥!
지금 남긴 것은 해원명륜권의 초흔이었다.
중단전이 성명신공이 중심이라면 하단전은 명륜선공을 중심으로 무공을 펼칠 수 있었다.
이렇게 흔적을 남긴 아버지가 말했다.
“무공을 익히면 그에 맞는 운기법이 존재한다. 그러다보면 그 무공에 맞는 독특한 기운이 파생되게 되어 있다.”
“아……”
“많은 무공을 배울수록 그런 기운들이 파생되면서 체내에서 상충할 수밖에 없지.”
이건 몰랐다.
유일하게 제대로 무공을 전수해준 스승이 기기괴괴 해악천이었다.
다만 해악천에게도 많은 것을 숨겼었기 때문에 이런 부분에 관해서는 조언을 들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위험한 상태인 건가?
걱정하고 있는데 아버지가 말했다.
“한데 기이하구나. 네 무공들은 전혀 상충하지 않는 것 같다.”
“네?”
“전부 상승 무공인데도 전혀 상충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기운이 발현되는 걸 보면 아무래도 네가 익힌 그 선천심법과 성명신공에 비밀이 있는 듯 하구나.”
나는 아버지께 정기신의 기(氣)를 선천심법을 통해 열었다고 이야기했었다.
사실 회귀하면서부터 열려있었으나, 이건 차마 밝힐 수가 없었다.
“하면 기(氣), 아니 중단전으로 무공을 소화했기에 그런 겁니까?”
그 말에 아버지가 바닥에 여덟 가지 초흔을 그렸다.
-촤촤촤촥!
그것들은 권(拳), 장(掌), 각(脚), 지(指), 조(爪), 도(刀), 검(劍), 창(槍)의 초흔이었다.
“본 종은 여덟 가지 무공으로 나누어진다. 같은 신공에 무공이 파생되었기에 그나마 기운이 덜 상충되었으나, 그렇다고 부딪치지 않는 것은 아니란다.”
그럼 그때 그건 무엇이지?
아직도 그 광경을 잊을 수가 없다.
아버지는 무악과 대결을 할 때 동시에 여덟 가지 무공을 펼쳤었다.
선천심법이나 성명신공을 익힌 것도 아닌데 말이다.
이에 아버지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풍영팔류를 만든 개파 조사께서는 여덟 무공들의 조화를 이루기 위해 우리 가문의 비전인 조화경을 창시했단다.”
“조화경!”
“조화경을 익히게 되면 그 경지에 이를수록 더욱 많은 무공의 초식들의 조화를 이룰 수 있게 된단다.”
“그것이 중단전과 어떤 연관이….”
“조화경의 최고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벽을 뛰어넘어 정기신의 기(氣)를 열어야 한다. 이 애비도 정작 기를 열고서도 조화경의 비밀을 알 수 없었는데, 네 무공들이 상충하지 않는 것을 보니 이제야 그 이유를 알 것 같구나.”
“아아!”
아버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것 같다.
호흡을 통해 인위적으로 쌓는 정(精)과 달리 태초의 기운이라 할 수 있는 선천진기야 말로 가장 조화에 적합한 기운인 것이었다.
“네게 기를 열어준 선천심법을 창안한 자는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대종사인 듯 하구나.”
아버지는 오히려 선천심법의 창시자에게 탄복한 것 같다.
선천심법은 남천검객이 창안한 것은 아니었다.
그 역시도 이것을 우연히 찾아냈었다고 했다.
벽을 넘어야만 열 수 있는 기(氣)를 이렇게 처음부터 익힐 수 있도록 만든 창시자는 과연 누구일까? 진심으로 궁금해졌다.
그때 아버지 진성백이 내게 말했다.
“어쨌든 잘됐구나. 사실 네가 익힌 검법이나 지공, 권법은 본 종의 것들보다 뛰어나면 뛰어났지 부족함이 없단다. 굳이 무리해서 풍영팔류의 무공들을 익히는 것보다 조화경을 익히는 게 더욱 도움이 될 거다.”
참 사람의 마음이란 게 특이했다.
그렇게 뛰어난 무공을 배워놓고도 새로운 무언가를 배울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아버지 진성백이 독특한 보법의 자세를 취하며 말했다.
“그 전에 네게 조화경과 풍영팔류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풍영보부터 전수해주마.”
풍영보(風影步)!
그것은 진성백을 풍신(風神)이라 불리게 만든 경신법이다.
“좀 더 여유가 있다면 네게 더 많은 것을 가르치고 싶은데 안타깝구나.”
나도 그것이 안타까웠다.
그때 문득 머릿속에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아버지.”
“왜 그러느냐?”
“아버지께서 쓰시던 검이 있습니까?”
“검? 벽을 넘기 전에 쓰던 것이 있다만 왜 그러느냐?”
그 말에 입 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 * *
이튿날 정오.
복안현의 거리.
“많이 피곤해 보이는구나. 괜찮느냐?”
“……괜찮습니다.”
아버지의 물음에 괜찮다고 답은 했지만, 한숨도 자지 않아서 꽤나 피곤했다.
아버지의 여덟 병장기 중 하나인 정풍검(正風劍)을 통해 천기로 아버지의 연무를 무리해서 심상으로 체화했더니 피로감이 말로 이룰 수가 없었다.
-적당히 하지.
검을 돌려드려야 하니까.
사실 처음에는 검을 한동안 빌려 달라고도 해볼까 싶었다.
그런데 정풍검은 어머니께서 선물한 검이라고 하셨다.
결국 만족할 만큼의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 밤새 천기를 펼치다보니 이렇게 되었다.
“녀석. 밤새 조화경을 연마했나보구나. 무리하지 말거라.”
그래야 할 것 같다.
천기는 하면 할수록 심력소모가 너무 크다.
“저곳이느냐?”
아버지가 거리에 자리한 의원을 가리키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아버지가 경공까지 펼쳐가며 의원 안으로 먼저 들어갔다.
외조부 하성운이 빨리 보고 싶은 모양이었다.
죽은 줄만 알았던 장인어른을 뵙는 순간이니 이해가 간다.
의원 안으로 들어가니 아버지가 외조부 하성운의 앞에 무릎을 꿇고서 오열을 하는 모습이 보였다.
“어르신! 늦어서 송구합니다.”
“이 사람아. 울긴 왜 울어.”
외조부 하성운 또한 붉어진 눈시울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이십여 년 만의 해후였다.
두 어른의 감격스러워 하는 저 모습을 보니 나 역시도 눈이 따가워진다.
어제 하도 많이 울어서 더는 눈물을 흘리고 싶지 않았는데.
어머니가 이 자리에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네 어머니도 하늘에서 지켜보면서 흐뭇해하실 거야.
소담검 녀석의 말에 결국 눈물이 떨어졌다.
그때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 방울을 누군가가 손으로 닦아주었다.
“사마 소저?”
그녀는 다름 아닌 사마영이었다.
부친인 월악검 사마착과 있을 줄 알았는데, 이곳에 있을 줄은 몰랐다.
내 부탁을 지킨다고 지금까지 외조부를 돌보고 있었던 건가?
사마영이 나를 쳐다보며 눈물을 글썽였다.
“에이. 괜히 저도 눈물이 나네요.”
그녀 역시도 이 광경에 눈물이 났던 모양이었다.
이런 애달픈 해후를 보면서 감동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외조부를 돌봐줘서 고마워요. 사마 소저.”
“고맙기는요. 저 때문에 괜히 곤란해져서 공자님이 고생하셨는걸요.”
그녀는 여전히 어제의 일로 미안해했다.
이에 나는 괘념치 말라고 고개를 저었다.
그때 외조부가 나를 불렀다.
“운휘야.”
“외조부.”
“그 아이와 이리 오거라.”
우릴 가까이로 부른 외조부 하성운이 아버지 진성백의 손을 꽉 잡고서 말했다.
“이보게. 사위.”
“말씀하십쇼. 어르신.”
“우리 운휘가 이 아이와 연이 있는 것을 알고 있는가?”
‘아……’
얼마 전만 하더라도 사대 악인의 딸인 사마영을 그리 탐탁지 않게 여겼던 외조부였다.
그런데 한결 그녀를 지칭하는 말투가 부드러워졌다.
아버지 진성백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알고 있습니다.”
이에 외조부 하성운이 호흡을 가다듬으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사위. 부디 놀라지 말고 듣게.”
순간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올 뻔했다.
그녀의 정체를 알려주려고 하는 것 같은데, 저렇게 조심스럽게 말하는 걸 보니 아버지가 의외로 잘 놀라는 성격인 걸 잘 아시는 듯 했다.
다행히 아버지께서도 그녀의 정체를 알기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알고 있습니다. 어르신.”
“알고 있다고?”
“월악검의 여식이 아닙니까.”
“허허허. 운휘 저 아이가 말했나 보군.”
“아닙니다. 무쌍성에서 월악검과 함께 보았습니다.”
외조부 하성운이 그걸 모르는 걸 보니, 사마영이 어제의 일이 미안해서 이야기 하지 않은 것 같았다.
결과적으로 잘 해결되었으니 그녀가 부담스러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외조부 하성운이 깊은 숨을 내쉬며 말했다.
“사람의 연이라는 것은 하늘이 내리는 것이니, 그 누구도 쉽게 막지 못함은 자네가 누구보다 잘 알지 않나?”
“……..”
“저 두 아이가 원한다면 서로 만나도 괜찮겠나?”
“할아버님.”
외조부 하성운의 말에 사마영이 감격을 금치 못했다.
집안의 최고 어른이라 할 수 있는 외조부에게 인정을 받는 듯 하여 그런 것 같았다.
잠시 좋아했던 그녀가 살짝 긴장한 눈으로 아버지 진성백을 쳐다보았다.
어떤 대답이 나올지 몰라서 두려운가 보다.
나는 그녀에게 전음을 보냈다.
사실 나는 이에 관해서 아버지와 이미 대화를 나눴다.
그렇기에 그 대답을 알고 있었다.
아버지가 사마영을 바라보며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두 아이가 좋다면 애비 된 자가 어찌 이를 막을 수 있겠습니까?”
그 말에 사마영의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흘러나왔다.
울음까지 터뜨릴 정도로 좋아하니 내가 다 민망해질 지경이었다.
이를 겸연쩍게 바라보던 아버지 진성백이 외조부에게 걱정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다만 월악검 그도 같은 생각인지는 알 수 없군요.”
문제는 아버지나 외조부가 아니었다.
그녀의 부친이 나를 여전히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백혜향의 일로 더욱 그랬다.
그렇기에 더더욱 그와 결착을 내야 했다.
나는 사마영에게 물었다.
“부친께서는 어디 계시죠?”
* * *
복안현의 서쪽 편에는 대나무 밭이 펼쳐져 있었다.
이곳에서 사마영의 부친인 월악검 사마착이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네 아버지를 부르지 않아도 괜찮겠어?
소담검이 걱정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사마영과 단 둘이 이곳으로 왔다.
아버지 진성백이 같이 가주겠다고 말을 했지만, 이를 거절했다.
괜히 일이 더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공자님.”
그녀도 걱정스럽게 나를 쳐다보았다.
부친의 성정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그럴 것이다.
어차피 부딪쳐야 할 일이었다.
나는 그녀를 안심시키기 위해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저깄어.
나도 알고 있다.
월악검 사마착이 가지고 있는 보검의 이명 소리가 머릿속을 울렸기 때문이었다.
대나무 밭은 한 복판에 사마착이 커다란 바위를 의자 삼아, 풍류를 즐기는 서생처럼 서책을 읽고 있었다.
저런 모습을 보면 악인처럼 보이지가 않았다.
“아버지!”
사마영의 외침에 사마착이 읽던 서책을 조용히 덮었다.
그리고 나를 쳐다보았는데, 그의 표정이 묘했다.
나는 그런 그에게 포권을 취하며 정중히 인사를 했다.
“후배 진운휘가 선배께 인사 올립니다.”
이제는 아버지의 성을 따르기로 한 나였다.
입에 익지는 않았지만 익양 소가가 아닌 풍영팔류종의 소종주이니까.
포권을 취한 상태로 있는데, 사마착이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달라졌군.”
역시 사대 악인이었다.
마주치자마자 아버지 진성백처럼 내 무위가 향상되었음을 곧바로 알아차렸다.
“작은 기연이 있었습니다.”
“부친께 가르침을 받았나 보군.”
아버지의 가르침을 통해서 얻은 깨달음은 아니지만 부정하진 않았다.
검선의 지보를 얻은 것을 이곳저곳 알릴 필요는 없으니까.
사마착이 피식하고 웃으며 말했다.
“그것도 네놈의 복이지. 어찌 되었든 여기까지 혼자 온 걸 보니 배짱이 없진 않구나.”
아버지를 데려올 줄 알았나 보다.
나의 선택이 옳았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사마착이 다시 서책을 펴고서 말했다.
“의제의 아들이 도착하지 않았으니 잠시 기다리도록 하여라.”
“그는 오지 않습니다.”
사마착이 미간을 살짝 찡그리며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지?”
“그의 부친인 구양 종주가 무악과 결탁하고 있었던 것이 드러났습니다.”
“무악과 결탁을 해?”
이에 나는 그 동안 있었던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이를 전부 들은 사마착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실망의 빛을 감추지 않았다.
“호부에 견자로구나.”
호랑이 새끼가 개라는 말이었다.
이런 그의 반응을 보면 사마착이 그를 의제로서 그렇게 아끼는 느낌을 받을 수가 없었다.
어째서 그와 같은 소인배와 의형제를 맺었을까?
의아해하고 있는데 사마착이 서책을 덮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뒷짐을 쥐고서 내게 말했다.
“결국 기회를 쥔 것은 네놈뿐이로구나.”
-척!
나는 그에게 포권을 취하며 정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르신을 실망시켜드리는 일은 없을 겁니다. 부디 사마 소저와의 만남을 허락하여 주십쇼.”
그런 나의 말에 사마착이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하면 내 시험을 통과 하거라.”
역시 그냥 넘어가는 법은 없었다.
구양산이 없어서 자연스럽게 넘어가길 바랐는데 말이다.
사마착이 내게 걸어오며 말했다.
“내 딸과 만나고 싶다면 내가 펼치는 초식을 열 번을 막아 보거라.”
‘!?’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사마영이 화가 나서 끼어들었다.
“정말 너무 하신 거 아니에요? 그냥 인정해주시면 될 텐데, 이제는 아버지의 초식마저 견디라는 거에요?”
그녀의 입장에서는 어처구니가 없을 만도 했다.
부친이 사대 악인 중의 한 사람인 월악검이다.
게다가 초인이라 불리는 열두 고수들 중에 다섯 손가락에 꼽히는 고수였다.
그런 부친의 초식을 혼자서 열 번을 막으라는 것은 허락을 안 해준다는 소리처럼 들렸을 것이다.
그런 그녀의 말에 사마착이 나무라듯이 말했다.
“네 어미도 이 아비의 악인이라는 칭호 때문에 잃었다. 하물며 저 녀석은 혈마다. 애비 못지않게 적이 많은 위치에 있는데, 그런 자에게 어찌 함부로 여식을 맡기겠느냐?”
그 말에 사마영이 차마 답을 하지 못했다.
무작정 부친이 고집을 부린다고 여겼었는데, 이런 속내를 밝힐 줄은 몰랐던 모양이다.
나 역시도 그 말을 듣고 나니, 심경이 이해가 갔다.
사마착이 내게 말했다.
“아직 혈교조차 완전히 장악하지 못한 네놈이 걸어가는 길은 가시밭길이나 다름없다. 그 길에 내 딸을 데려가려면 그에 합당한 힘을 증명하는 게 맞지 않느냐?”
“……어찌 부정하겠습니까.”
“하면 내 십 초식을 받아 보거라. 이걸 견뎌낼 수 있다면 내 딸을 네놈에게 맡기마.”
-척!
나는 다시 한 번 강하게 포권을 취하며 결의를 보였다.
“선배님의 시험을 받겠습니다.”
그 모습에 사마착이 작게 콧방귀를 뀌었다.
무시한다는 느낌은 없었다.
사마영이 나를 걱정스러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괜찮다며 그녀에게 물러나라고 말했다.
“공자님……”
그녀가 무거운 발걸음으로 물러나자 나는 사마착의 앞에 당당하게 섰다.
무림에서 최고로 꼽히는 절세고수가 눈앞에 서있다.
사마착이 기운을 발산하자 주변의 공기가 답답해지며 분위기가 스산해졌다.
“선공을 양보하마.”
사마착이 검을 뽑지 않은 채 말했다.
선공을 양보한다니 이를 거절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후배 전력을 다하겠습니다.”
“그래야 할 거다. 그렇지 않으면 한 초식도…..”
-고오오오오!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중단전과 상단전을 동시에 개방하며 혈마화를 펼쳤다.
그것도 모자라 전신의 혈액을 빠르게 돌리며 진혈금체까지 시전했다.
-슈우우우우우!
그러자 내 몸에서 뿌연 연기가 솟구쳤다.
‘!?’
그 광경에 노심초사하고 있던 사마영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심지어 방금 전까지 여유롭게 왼팔을 뒷짐지고 있던 사마착의 표정이 일순간에 굳어졌다.
끝
ⓒ 한중월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