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word Sense RAW novel - Chapter 174
61화 사라진 본단 (1) >
늦은 밤 호롱불을 켜놓은 한 집무실.
새하얀 얼굴에 왼쪽 팔소매가 헐렁한 검은 궁장을 입은 여인이 책상에 앉아 잔뜩 쌓인 서지를 살피고 있었다.
그녀는 혈수마녀 한백하였다.
한참을 일에 집중하고 있는데, 누군가 방문을 두드렸다.
-똑똑!
“스승님. 담예화입니다.”
문을 두드린 자는 그녀가 육혈곡에서 받았던 막내 제자 담예화였다.
“들어오너라.”
“네.”
문이 열리며 흰 경장에 오목조목한 이목구비를 지닌 귀여운 인상의 여인이 안으로 들어왔다.
고개를 숙이며 예를 취하려는 그녀에게 한백하가 됐다며 고개를 저었다.
한백하가 그녀에게 물었다.
“사존은 어찌하고 있느냐?”
“사존께서는 매일 같이 낮에는 제자인 송가 쌍둥이들과 수련을 하고 밤에는 술을 진탕마시고 주무십니다. 이젠 정말로 포기하신 것 같습니다.”
사존 기기괴괴 해악천.
그는 제자이자 혈마검의 계승자를 잃은 후로 실의에 빠졌다.
한동안 제자를 찾기 위해 자신의 수하들을 동원하고 직접 움직였으나, 그 행방을 찾을 길이 없었다.
실의에 빠진 해악천은 한동안 주독에 빠져 살았다.
제자이기도 했지만 두 번이나 혈마를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 때문이었다.
하지만 사혈성 도장호를 비롯한 이존 난마도제 서갈마 등이 백련하마저 잃을 것이냐고 설득하고 나서 종일 무공 연마에 힘을 쓰고 있었다.
한백하가 자신의 헐렁한 왼팔 소매를 슥 쳐다보았다.
‘월악검……’
그로 인해 왼팔을 잃었다.
팔을 치료하고 싶었지만 잘린 것도 아니고 뜯겨져나가서 방법이 없었다.
이것은 만사신의라고 해도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기에 포기했다.
‘결과적으로는 잘 됐다.’
한 팔을 잃었지만 그녀는 이렇게 된 것이 전화위복이라 여겼다.
모든 중심이 백련하에게로 모였다.
혈마검을 잃은 것이 안타깝지만 어차피 백혜향은 알지 못했고, 안다고 해도 그녀 역시도 그것을 가질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아가씨는 오늘도 삼존과 수련을 하느냐?”
“네. 종일 삼존 어르신께서 아가씨의 수련을 돕고 있습니다.”
“흐음……”
삼존 혈사왕 구제양.
얼마 전에 그가 자신들에게 합류했다.
설득에 성공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그가 이곳에 오고 나서 한바탕 난리가 났었다.
그녀 자신을 비롯한 다른 간부들은 혈마검과 소운휘에 관해서 삼존 구제양에게 알리지 말자고 합의를 했었다.
삼존이 합류하는 조건이 혈마검의 계승자가 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나 그것을 해악천이 폭로 아닌 폭로를 해버렸다.
덕분에 구제양이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한데…..아가씨를 지지해주기로 했어.’
다행스러운 일이었지만 정말 의아했다.
율법을 중요시한다고 했던 만큼 오히려 해악천을 도와 혈마검과 그 계승자를 찾으리라고 예상했었다.
그러나 구제양은 지금 물심 양면으로 백련하를 돕고 있었다.
심지어 종일 붙어 무공마저 봐주고 있다.
이존 서갈마가 그와 친분이 있어서 겨우 설득했다고 하지만 자신의 말을 번복한 셈이었다.
이런 의구심에 단도직입적으로 백련하를 돕는 이유를 물어봤었다.
그 대답은 이러했다.
게다가 자신과 생각이 같았다.
‘괜한 기우일까?’
구제양의 속내를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 고민하고 있는데, 담예화가 입술을 오물거리며 무언가를 말하고 싶어했다.
“왜 그러느냐?”
한백하가 묻자 이에 담예화가 답했다.
“저…..스승님. 한데 전 본단인 강구현 장원에 남겨뒀던 교인들을 굳이 철수시킬 필요가 있을지?”
담예화는 스승의 명에 따라 철수하라는 전갈을 보내긴 했다.
하지만 그들이 철수하게 된다면 만의 하나 혈마검의 계승자가 살아있다면 이전한 본단을 찾을 수가 없게 된다.
“스승님 적어도 몇 명의 교인은….”
“그만.”
한백하가 냉랭해진 목소리로 그녀의 말을 끊었다.
그리고 경고를 하듯이 말했다.
“네가 관여할 일이 아니다.”
“스승님…..”
“그리고 네가 모셔야 할 자는 아가씨다. 네 본분을 잊지 마라. 더는 토 달지 말고 물러가거라.”
“……네. 알겠습니다.”
그녀의 명에 담예화는 의기소침해져 예를 취하고서 집무실을 나갔다.
한백하는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월악검에게 잡혀간 이상 살아있을 확률은 지극히 낮다. 설사 살아있다고 한들 조금만 견디면 된다. 머지않아 혈교총대회에서 아가씨께서 혈마에 등극할 수 있어.’
* * *
-다그닥! 다그닥!
보름이 넘게 쉬지 않고 경공을 펼치고, 말을 바꿔가며 이동한 끝에 귀주성에 이르렀다.
지금 우리가 향하는 곳은 본단이 있는 강구현의 장원이었다.
머지않아 강구현에 도착할 것 같다.
“앙.”
“소저……아픕니다.”
그녀가 너무 피곤해해서 함께 말을 탔는데, 언제 깼는지 그녀가 내 어깨를 꽉 깨물었다.
요 근래 들어 종종 깨무는데 팔도 깨물고 귀도 깨물고 보이는 족족히 무는 버릇이 생겼는데 왜 이러는지 알 수 없었다.
처음에는 귀여워서 내버려뒀는데 말이다.
“앙.”
그녀가 이번에는 반대쪽 어깨를 깨물었다.
“……소저 저는 먹을 게 아니랍니다.”
“알고 있어요.”
“그런데 왜 못 먹어서 안달입니까?”
그런 나의 물음에 사마영이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제 거라고 표시 내는 건데요.”
“……그런 이유였습니까?”
“네에. 헤에.”
해맑게 웃으면서 또 깨물려든다.
표시를 낼 거면 이 참에 아예 살점을 물어뜯지 그러세요.
라고 말할까 하다가 정말로 그럴까봐 참았다.
-너 은근히 잡혀 사는구나.
소담검 녀석이 키득거리며 말했다.
잡혀사는 게 아니라 부인이 될 사람을 향한 존중이라고.
-마음에 들지 않아. 그 괴물 같은 작자의 딸이 뭐가 좋다고. 쯧쯧.
혈마검이 한심하다는 목소리로 혀를 찼다.
궁시렁 거리는 게 소담검 못지않다.
처음에는 소담검이랑 티격태격하더니 요즘은 한통속이 되어서 뭐라 한다.
그때 어깨를 깨물던 사마영이 내게 말했다.
“한데 공자님. 본단이 괜찮을까요?”
그렇지 않아도 오는 길에 한 가지 소식을 접했던 차였다.
무림 연맹에서 혈교의 잔당들이 창궐하고 있다며 대대적인 토벌을 하겠다고 공표를 했다.
덕분에 정파 무림의 움직임이 심상치가 않았다.
회귀 전에 기억했던 것보다 모든 것이 더욱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무림 연맹에 아직까지 많은 첩자들이 남아 있으니, 본단이 그리 쉽게 당할 리는 없었다.
“괜찮기를 바라야죠.”
“사존도 그렇고 공자님의 쌍둥이 사제들, 조성원 대주까지 다들 보고 싶네요.”
그녀의 말에 나는 피식 웃었다.
다른 사람은 둘째치고 스승님인 기기괴괴 해악천이 보고 싶다는 말을 할 수 있는 건 그녀뿐일 거다.
내가 사라진지 거의 두 달 가까이가 되었다.
그 일이 벌어지고 스승님의 성격상 난리가 나도 한참 났을 텐데, 그 동안 어떤 일이 있었을지 궁금하다.
“서두르죠. 이랴!”
말의 고삐를 흔들며 더욱 속력을 냈다.
그렇게 반나절이 지나고 드디어 장원이 있는 강구현에 도착했다.
서둘러 장원으로 향했는데, 그곳에 도달한 나와 사마영은 당혹감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이사가 들어가는 것 같은데요.”
장원 안으로 수많은 짐마차 행렬이 들어서고 있었다.
물자를 충당하는 것으로 보기에는 장롱부터 시작해 침상까지 수레에 실려 있는 것을 보면 누군가 장원에 입주하는 것 같았다.
“제가 물어볼게요.”
사마영이 말에서 내려 짐을 옮기는 인부들에게 다가갔다.
“실례합니다. 말 좀 물을 게요.”
“무슨 일이오?”
“혹시 여기 장원에 입주하시는 건가요?”
“거 보면 모르겠소. 지금 짐을 옮기고 있잖소.”
역시 보이는 그대로였다.
본단이 제대로 자리가 갖추기까지 이곳에서 계속 머물 줄 알았는데, 예상 밖의 일이었다.
무림 연맹이나 백혜향 파벌에 위치가 노출된 것일까?
그게 아니면 두 달 사이에 본단을 옮길 이유가 없었다.
“혹시 이 장원이 언제 매물로 올라왔는지 알고 계시나요?”
“한 달쯤 되었소. 급하게 헐값으로 매물이 올라와 우리 가주 나으리께서 아주 봉을 잡으셨지.”
매물로 장원을 처분했다면 본단의 이전은 확실했다.
인부와 대화를 마친 사마영이 다가와 내게 말했다.
“공자님. 이를 어쩌죠?”
참 난처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설마 그 사이에 본단을 이전해버리다니.
-완전 시간만 허비한 셈인데. 어떻게 할 거야?
잠깐만 나도 생각을 하자.
나 역시도 회귀 전에도 그렇고 현재도 이렇게 오랫동안 혈교와의 연락망이 끊겼던 적은 처음 있는 일이다.
혈교는 점 조직으로 이루어져서 끊임없이 암호를 바꾸고 위치를 옮긴다.
‘흠.’
적어도 본단에서 내가 생환할 걸 조금이라도 예측했다면 어떤 단서를 남겨놨을 수도 있다. 혈교에서 주로 쓰는 암호 방식 중에 무언가를 남겨놨을 수도 있으니 아무래도 장원 안으로 들어가 봐야 할 것 같다.
“잠시만 기다려봐요. 금방 갔다올게요.”
그녀를 잠시 남겨놓고서 나는 빙 둘러서 장원의 담벽을 월담했다.
안에는 꽤나 많은 인부들이 움직이고 있었는데, 그들의 시선을 교묘하게 회피하고서 장원의 본당 건물로 향했다.
지부나 조직의 위치를 옮길 때 주로 남겨놓는 위치가 바로 본당 건물의 우측 부근 서까래 아래에 암호를 새겨놓고는 한다.
-팟!
가볍게 위로 뛰어올라 서까래 쪽에 매달렸다.
내 예상이 맞다면 이쯤에 뭔가를 남겨놓았을 것 같은데….
‘!?’
-이 긁은 자국은 뭐야? 아예 파낸 것 같은데.
소담검의 말대로 암호가 남겨졌을 부위가 통으로 파져 있었다.
긁어서 파낸 걸로 보인다.
‘……암호를 지웠어.’
아무래도 누군가 이 암호를 지운 것 같다.
대체 누가 이런 짓을 한 거지?
서까래 아래 암호를 남기는 방식을 아는 것은 혈교인들 뿐이다.
그 마저도 한자가 아닌 기호 같은 것으로 써져서 암호를 제대로 숙지한 사람이 아니고는 정확하게 해독할 수 없었다.
일단 우연일 수도 있으니 두 번째 장소로 가보자.
본당 건물 말고 가장 남서쪽에 위치한 건물 안의 대청마루 밑도 주로 암호를 남기는 위치로 사용된다.
마루 밑으로 들어가 그곳을 살폈다.
-여기도네.
역시나 여기도 긁어서 파낸 자국이 남아 있었다.
“후우……”
여기서 추측할 수 있는 건 두 가지가 있다.
일단 외부 세력이 이 암호를 발견한 것인데, 아무래도 그건 아닌 것 같다.
-왜?
외부 세력이라면 암호를 없앨 게 아니라 해독을 위해 통째로 들고 갔을 거다.
한데 이 긁은 자국들은 의도적으로 암호를 지운 것이다.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였다.
‘……누군가 내가 복귀하는 걸 원치 않고 있어.’
-혹시 그 여자 아냐?
아무래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한 것 같네.
나도 머릿속에서 한 사람이 떠올랐다.
누구보다도 내가 아닌 백련하가 차대 혈마가 되길 원하는 인물이 있다.
아마도 그 여자는 내가 살아있다고 해도 혈교로 돌아오는 것을 절대 원치 않을 것이다.
-그럼 어떻게? 이렇게 넋 놓고 당할 거야?
이런 식이라면 다른 방식도 전부 막아놓았을 거다.
뭔가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여기 말고 백련하 파벌의 다른 근거지 같은 데는 없어?
아까 말했잖아.
안가로 쓰이는 곳들이나 은신처들의 대부분은 적어도 보름 이상을 쓰지 않는다.
대부분이 계속 위치를 변경한다.
그렇지 않았다면 진즉에 무림 연맹에 발각되었을 거다.
-이런 식이라면 회귀 전 기억도 하나도 쓸모가 없구만. 그렇게 자주 옮기면 무슨 수로 교인들과 접근할 수….
‘잠깐만.’
그때 머릿속에 문득 떠오른 것이 하나 있었다.
회귀 전의 대부분을 무림 연맹의 첩자로 보냈지만, 유일하게 현역으로 뛴 곳이 있다.
‘혈랑대!’
* * *
호남성 서남쪽 수녕(綏寧)현.
그곳에서 북쪽으로 조금 올라가면 기망이라 불리는 산의 깊은 골짜기에 수렵과 채집꾼들이 모여 사는 산골 마을이 있다고 들었다.
나도 듣기만 들었지 이곳을 찾는 것은 처음이었다.
“정말 여기에 있을까요?”
사마영이 의아했는지 물었다.
사실 나도 거의 반신반의하고 있다.
이 산골 마을은 혈랑대의 대주인 노성구의 고향이었다.
그가 딱 한 번 술에 거하게 취해서 부대주와 나에게 흘리듯이 이곳을 언급했었다.
회귀 전에 혈교에 납치된 후로 유일하게 사람대접을 해줬던 남자의 이야기였기에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누이를 구출하고서 고향에 갔겠어?
일말의 가능성에 거는 거다.
육혈곡에서 나는 그에게 누이동생이 절강성 금해현에 있는 화월 상단의 지부에 있다고 알려줬다.
그 후 그가 혈랑 대주직을 그만두고 사라졌다고 들었다.
-복수를 하려고 잠적했을 수도 있잖아.
‘그 정도로 생각이 없진 않아.’
부친을 죽인 흉수가 일혈성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들었어도 자신의 힘만으로 어찌할 수 없음을 알고 있을 거다.
그의 성품이라면 낙향을 했을 거라 여기지만, 만약 아니라면 가장 까다로운 방법 밖에 없었다.
-뭔데?
‘무림 연맹.’
그곳에 있는 백련하 측 첩자들과 접선하는 방법이다.
그런데 이 방법은 너무 위험부담이 크고 그들의 연락 체계를 여러 번이나 거슬러야 추적이 가능하기에 설사 성공한다고 해도 시간이 오래 걸린다.
“저기 연기가 보여요.”
사마영이 가리킨 방향에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연기가 보였다.
무작정 산골짜기로 들어왔는데, 드디어 발견했다.
연기가 있는 방향으로 산을 타고 내려가자 계곡의 중류 부근에서 멀지 않은 곳에 수풀로 가려진 작은 터가 보였다.
그곳에 열세네 채 정도 되는 오두막 집들이 있었다.
확실히 작긴 작았다.
-…….
귓가를 울리는 작은 이명 소리들.
수렵꾼들과 채집꾼들이 모여 사는 곳에서 몇몇 검의 소리가 들렸다.
뭔가 예감이 좋다.
‘소담. 전에 노성구 대주의 도의 소리 기억하지?’
-아 그 녀석? 기억해.
‘들리면 곧바로 이야기해줘.’
-알겠어.
사마영과 나는 비탈길을 타고서 마을의 입구로 들어섰다.
적이 아님을 알리기 위해서 일부러 눈에 띄게 들어갔는데, 마을 어귀에 있던 털가죽 옷을 입은 사내들이 갑자기 소리를 쳤다.
“외지인이다! 외지인이 나타났다!”
외침이 들리자 갑자기 오두막에서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그들 하나하나가 도끼를 비롯해 날붙이가 든 것들을 들고 나왔는데, 여섯 명 정도가 검과 도를 들고 있었다.
“환대하는 느낌은 아닌데요?”
“그렇네요.”
대략 서른 명 정도 되는 장정들이었다.
장정들 중에 수염을 기른 중년의 남자가 걸어 나왔다.
도를 들고 있는 자였는데, 기감이 맞다면 일류 고수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혈교로 치면 상급 무사였다.
“외지인들이 이 깊은 산골까지 무슨 일이오?”
중년의 남자가 경계심이 가득한 목소리로 우리에게 물었다.
돌려서 이야기할 필요는 없겠지.
“아는 지인이 있어 찾아왔습니다.”
“지인?”
의아해하는 그에게 이름을 이야기 했다.
“노성구란 분입니다.”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중년의 남자의 표정이 굳어졌다.
역시 뭔가를 알고 있는 듯 하다.
그때 장정들 중에 슬그머니 뒤편으로 움직이는 한 흉터의 사내가 보였다.
그를 보는 순간 나는 오래 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기조양 부대주!”
그는 혈랑대의 부대주 기조양이었다.
워낙 오래되었고 수렵꾼처럼 행색을 하고 있어서 이제야 알아보았다.
나의 외침에 어딘가로 가려 하던 흉터의 사내가 놀라서 큰 소리로 외쳤다.
“혈교인이다!”
그 외침에 사내들이 마을 입구를 지키려는 것처럼 막으려 들었다.
사마영이 허리춤에서 검을 뽑으려고 했다.
이에 나는 고개를 젓고서 긴장한 얼굴로 날붙이를 들고 있는 사내들에게 말했다.
“저는 적이 아닙니다.”
그 말에 사내들이 소리쳤다.
“웃기는 소리! 그렇다면 그 무기를 당장 내려놔라.”
“포박을 당한다면 믿어주마!”
어지간히 경계심이 강한 것 같다.
나는 빙그레 웃으며 그들에게 손가락으로 내 눈을 가리켰다.
“여길 보시죠.”
“무슨 소릴…”
그 말에 무의식적으로 사내들이 내 눈을 쳐다보았다.
-털썩! 털썩!
그 순간 마을 입구를 에워싸며 인간 방벽을 쌓고 있던 서른여 명의 장정들이 일제히 눈이 멍해지더니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지보에 남아있던 백(魄)을 흡수하고 나서 환의안의 위력이 올라간 것 같다.
“이, 이게 대체….”
느닷없이 장정들이 쓰러지는 광경을 본 기조양 부대주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금방 정신을 차린 그가 도망을 치려고 했다.
이에 나는 왼손을 뻗었다.
-슉!
그 순간 은연사의 줄이 쏘아지며 도망치려 하던 그의 발목을 휘감았다.
“엇?”
나는 그런 그를 가볍게 잡아당겼다.
은연사의 줄이 줄어들며 그의 몸이 강제로 내 앞으로 끌려와졌다.
-촤르르르르!
“비, 빌어먹을!”
부대주 정도라면 일류 고수에서도 꽤나 실력이 있는 축에 속하지만 내 공력을 버텨내기엔 무리였다.
강제로 끌려온 그가 내게 다급히 도를 휘둘렀다.
그것을 검지와 중지로 잡아냈다.
-팍!
공력을 실은 일격이 너무 쉽게 막히자 기조양이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했다.
그런 그에게 나는 물었다.
“노성구 대주는 어디에 계시죠?”
“네, 네놈 대체 뭐야?”
그런 그의 말에 사마영이 씨익하고 웃으며 말했다.
“부대주였다는 분이 교의 높으신 분께 못하는 소리가 없네요?”
“높으신 분?”
그 말에 부대주 기조양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끝
ⓒ 한중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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