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word Sense RAW novel - Chapter 175
61화 사라진 본단 (2) >
혈랑대의 부대주 기조양의 눈이 휘둥그레져서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이런 그의 모습을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사실 회귀한 후에 꼭 보고 싶었던 얼굴들 중 한 명이었다.
늘 퉁명스럽게 굴면서도 대주 못지않게 챙겨줬던 자였는데, 그 역시도 노성구 대주를 따라 그의 고향에 왔을 줄이야.
“높으신 분이라니? 대체…..”
그가 날 아는 것이 이상한 일이었다.
노성구 대주가 누이를 되찾고 나서 곧장 잠적했으니 내가 사존의 제자가 된 것인지, 혈마인지 무엇 하나 아는 게 없을 것이다.
아니. 혈마가 된 것은 전혀 모르겠구나.
그건 정보 유출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완전히 차단했으니 말이다.
의아해하던 부대주 기조양이 입을 열었다.
“…..교에서 나온지 제법 되었다고는 하나, 그대와 같은 자가 높은 직위에 있다는 것은 들어본 적이 없소.”
“당연히 그렇겠죠. 지금 제 얼굴은 인피면구로 가리고 있거든요.”
“뭐?”
복안현에서 떠나기 전에 나는 장인어른이 된 월악검 사마착에게서 인피면구 몇 개를 받게 되었다.
원래의 얼굴은 무림에서 이신성으로 알려졌기 때문에 위치가 쉽게 발각될 수도 있기에 인피면구로 얼굴을 가릴 수밖에 없었다.
기조양이 입술을 질끈 깨물더니 말했다.
“하나만 묻겠소? 화월 상단 쪽과 관련이 있소?”
화월 상단이라.
그걸 묻는 이유는 간단했다.
일혈성 장룡과 관련이 있는지를 묻는 것이었다.
역시 외지인이 우리가 들어오자마자 잔뜩 경계심을 보인 이유가 있었구나.
그런 그에게 나는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
“노성구 대주에게 누이 분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준 사람이 저입니다. 그런 의심은 거두시죠.”
“대주께 알려준 사람이 그대라고?”
“절강성 금해현 화월 상단의 지부. 이 정도면 되겠습니까?”
“그건 화월 상단에서도 알 수 있는 일이오.”
쉽게 믿지 못하는 것 같다.
“노성구 대주가 나와 만난다면 모든 의구심이 풀릴 것 같습니다만.”
“섣불리 안내 해줬다가 그대가 대주의 살(殺)이 될지 누가 알겠소.”
“그럼 어찌해야 믿어주시겠습니까?”
그런 나의 물음에 기조양 대주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화월 상단이라고 해도 모를 정보가 있소. 우리 대주께서 어디서 누구에게 그 정보를 들었는지 말해보시오.”
그건 간단한 일이었다.
“육혈곡. 중급 수련 생도. 소운휘.”
‘!?’
그 말을 듣자 부대주 기조양이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일혈성이 사람을 보내서 자신과 대주를 처리하려 했을까봐 많이 긴장한 모양이다.
숨을 돌린 기조양이 내게 말했다.
“따라오시오.”
기조양의 안내를 받아 우리는 산골짜기를 더욱 들어갔다.
마을에서 생활할 거라는 예상과 달리 거처를 더욱 은밀한 곳에 마련해둔 것 같다.
일각 정도 걸리는 거리에 눈에 띄지 않는 작은 오두막 하나가 있었다.
-저 안에 그 도가 있어.
소담검이 내게 속삭였다.
‘기척이 둘.’
한 명은 평범한 사람의 기척이었다.
발걸음이 가볍고 떨리는 느낌이 있는 것이 여인이었다.
다른 한 사람은 의외였다.
‘생각보다 강했구나.’
대주 급이라 여겨 일류 고수들 중에서도 뛰어난 축일 거라 여겼다.
한데 안에서 느껴지는 감각은 적어도 절정 초입에 이른 듯 했다.
그와 만난 지도 일 년하고도 몇 달을 훌쩍 넘겼으니 그 사이에 강해졌을 수도 있었다.
“대형!”
부대주 기조양의 외침에 오두막의 인기척 중 하나가 움직였다.
문이 열리며 모습을 드러낸 콧수염에 안대를 착용하고 있는 삼십대 후반의 사내.
그는 혈랑 대주 노성구였다.
‘흉터가 늘었다.’
그 사이에 얼굴에 잔 상처의 흔적들로 가득했다.
누이를 탈출시키려고 많은 고생을 한 것 같다.
부대주 기조양의 뒤에 있는 나를 발견한 노성구가 허리춤에서 차고 있던 도집에서 도를 뽑았다.
“어째서 그 자들을 이곳에 이끌고 온 것인가!”
대주 노성구가 노기에 찬 목소리로 기조양을 다그쳤다.
이에 기조양이 나를 고개 짓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위험한 자들이 아닙니다.”
“무엇이 위험하지 않다는 건가.”
그 정도 되는 고수라면 기감으로 나와 사마영의 무위를 파악할 수 없다는 것 정도는 눈치챘을 것이다.
경계심을 가지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귀밑의 피부를 잡고서 조심스럽게 인피면구를 벗었다.
내 얼굴을 보는 순간 대주 노성구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소운휘?”
이름을 정정해줄까 하다가 아직은 그럴 필요가 없으니 말했다.
“대주님 오랜만이로군요.”
그가 인사를 받아줄까 싶었는데,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니 이내 갑자기 내게 신형을 날렸다.
-팟!
노성구가 나를 향해 도초를 펼쳤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르겠지만 아직까지 의구심을 안 푼 것 같다.
나는 그런 그가 휘두르던 도초의 사이로 손을 불쑥 집어넣고서 이내 도면을 손바닥으로 따귀 때리듯이 쳐내버렸다.
-차아앙!
“큭!”
그의 도가 손에서 빠져나와 이 장 밖까지 날아가 바닥에 꽂혔다.
도신이 흔들리는 도를 보면서 노성구의 두 눈이 커졌다.
예전에는 그의 한수에 제압당했었는데, 이제는 상황이 완전히 뒤바뀌어버렸다.
“대….대체 누구냐?”
“소운휘입니다.”
“허튼 소리! 놈은 단전이 파훼되어서 무공도 익힐 수 없는 몸이었다. 그런 녀석이 고작 이 년 채도 되지 않아 이런 경지에 이른다고?”
내가 생각해도 장족의 발전이라 할 만 했다.
아니 믿기 힘들 정도의 성장이다.
하긴 내가 그라고 해도 쉽사리 믿기지 않을 것이다.
“수련 생도의 등급을 매길 때 제가 이 단검을 썼던 것은 기억하실 텐데요?”
나는 그에게 소담검을 슬며시 보였다.
소담검의 검병을 본 순간 대주 노성구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일 년이 훌쩍 넘었지만 역시 알아본 것 같다.
그가 소담검과 나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며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어찌 이런 일이…..”
“뭐. 저라고 해도 믿기 힘들 거라곤 생각합니다.”
“어떻게 단전을?”
“스승님의 도움으로 만사신의에게 치료를 받았습니다.”
“만사신의?”
만사신의라는 말에 그가 인상을 찡그렸다.
그리고는 의아해하며 물었다.
“네 스승이 누구이기에 만사신의와 만나게 해주고 그 짧은 사이에 이런 무위를 지닐 수 있게 한단 말이느냐?”
나는 빙그레 웃으며 아무렇지 않게 답했다.
“기기괴괴 해악천입니다.”
“뭐?”
지금까지 경계심만 보이던 대주 노성구가 처음으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혈교의 교인인 이상 사존 기기괴괴 해악천을 모를 리가 없었다.
당혹스러운 눈으로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던 노성구가 포권을 취하며 머리를 숙였다.
“전 혈랑 대주 노성구가 사존의 제자를 뵙습니다.”
“전 혈랑 부대주 기조양이 사존의 제자를 뵙습니다.”
부대주 기조양 역시도 이를 듣고서 놀랐는지 이어서 예를 갖췄다.
이제야 대화가 제대로 이뤄질 것 같다.
대주 노성구가 떨리는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사존의 제자께서 어찌 저를 찾으신 것인지?”
“그대가 내게 했던 약조를 기억합니까?”
-아! 그때 그걸 얘기하는 거구나.
소담검 녀석도 기억이 났나 보다.
대주 노성구는 내게 자신의 누이를 구할 수 있게 된다면 평생의 은인으로 모시겠다고 약조를 했었다.
그런 나의 물음에 대주 노성구가 인상을 찡그리다 이내 그것을 떠올렸는지 커진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내가 물끄러미 쳐다보자 그가 입술을 질끈 깨물다 입을 열었다.
“기억하고 있습니다.”
“하면 그 약조를 지킬 용의도 있으시겠군요.”
“……비록 쫓기는 몸이 되었으나, 어찌 사내가 한 입으로 두 말을 하겠습니까?”
역시 내가 기억하는 그다운 대답이었다.
혈랑대주 노성구는 호기롭고 스스로가 한 말을 반드시 지키는 사내였다.
“다만.”
“다만?”
“공께서 사존의 제자이시라고 하나, 저는 일혈성과 척을 지을 수밖에 없기에 본교를 등지고 이렇게 낙향했습니다. 이런 제가 공자께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대답을 하기 전에 망설였던 이유를 알 것 같다.
네 존자들에 못지않은 세력을 구축한 일혈성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아마도 부친의 복수마저 포기하고서 누이를 지키기 위해 낙향을 했으니 그런 것일 테지.
“선대부터 혈랑 대주를 맡아왔으니 그대만큼 혈랑대와 유대가 끈끈한 사람은 없겠죠.”
“…….”
그는 내 말에 부정하지 않았다.
혈랑대에서 나왔으니 부대주가 따라올 정도로 인망이 두터운 자였다.
당연히 마음먹으면 언제든 혈랑대와 접촉할 수 있을 것이다.
혈랑대는 일혈성과 척을 지고 나서 백련하 산하로 편입되었으니, 노성구는 내게 다시 복귀할 수 있는 활로인 셈이었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만약 일혈성과의 결자해지를 할 수 있고, 다시 본교로 명예롭게 복귀하여 누이를 보호할 수 있다면 저를 따를 수 있겠습니까?”
“……일혈성과 결자해지?”
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부친을 해한 배후와 결자해지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고 하는데, 그것이 귀에 들어오지 않을 리가 없었다.
“하나 일혈성의 뒤에는 장차 혈마가 되실 백혜향 아가씨가 계십니다.”
그는 일혈성만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 뒤에 있는 차기 교주 후계자인 백혜향도 두려워했다.
사마영이 나를 향해 배시시 웃으며 허리춤을 슬그머니 쳐다보았다.
이에 나는 피식하고 웃으며 허리춤에 있던 혈마검을 뽑았다.
-스릉!
갑자기 검을 뽑자 그가 의아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대주 직에 있다고 하나 혈마검을 봤을 리가 없을 테니, 선뜻 알아보지 못했다.
나는 상단전을 개방하고서 염을 일으켰다.
그 순간,
-스르르르!
혈마검의 검신이 선홍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
검뿐만 아니라 나의 모습에 일어나는 변화에 대주 노성구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입이 벌어져서 아무 말도 못하고 있었다.
혈마검을 몰라본다고 해도 혈마화를 한 모습마저 알아보지 못할 리가 있겠나.
“이, 이게 어찌….”
부대주 기조양조차도 어안이 벙벙해져 있었다.
그런 그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노성구, 기조양.”
나의 부름에 경악해하던 노성구가 두 무릎을 꿇고서 이마를 바닥에 세차게 박았다.
혈교에서 취할 수 있는 극존의 예였다.
-쿵! 쿵!
“미, 미천한 교인이 삼가 혈마를 배알합니다!”
기조양도 얼떨결에 그를 따라 납작 엎드려서 이마를 바닥에 박았다.
“삼가 혈마를 배알합니다.”
그들 역시도 혈교의 율법을 인지하고 있었다.
혈마검의 주인이 곧 혈마다.
“혈마로서 그대들에게 명한다. 혈랑대의 대주와 부대주로의 복귀를 허한다.”
나의 명에 두 사람의 등이 파르르 떨렸다.
노성구와 기조양이 엎드린 채 동시에 큰 소리로 외치려 했다.
“명을 받!”
“아직 안 끝났다.”
멈추고서 의아해하는 그들에게 나는 덧붙였다.
“이 시간부로 혈랑대를 본 혈마의 호위대로 명한다.”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두 사람이 화들짝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
호위대로 명한다는 말에 굉장히 놀란 듯 했다.
“왜 대답이 없지?”
그런 나의 말에 두 사람이 감격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이내 외쳤다.
“삼가 혈마의 명을 받듭니다!”
혈교의 교인 중에 혈마의 직속 호위대가 될 수 있는 기회를 누가 영광스럽지 않게 여기겠는가.
이 광경에 소담검이 키득거리며 중얼거렸다.
-회귀 전에 잘 대해준 덕분에 출세하네.
-이래서 전주인께서 말하길 사람 일은 모르는 것이니, 누구에든 예로써 잘 대해주라고 했다.
-그놈의 전주인 이야기는 질리지도 않도록 하는구만. 쯧쯧.
* * *
그로부터 보름 후.
광서성 남쪽에 자리한 령산(靈山).
이곳은 과거 혈교의 성지라 불렸던 곳이다.
이십여 년 전, 정사 대전에서 패한 후 혈교의 남은 교인들은 혈마가 탄생했다고 불리는 이 령산으로 더 이상 모이는 일이 없었다.
그러나 그런 령산에 수많은 인파가 몰리고 있었다.
그들은 중원 전역에 점조직으로 흩어져 있던 혈교의 교인들이었다.
지금까지 모인 숫자만 하더라도 거의 만 명에 육박했다.
그런데도 줄을 이어서 계속해서 숫자가 늘어났다.
령산의 초입에 버려진지 오래된 성터가 있었는데, 성터의 한복판에는 수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광장이 있었다.
광장의 한복판에 놓여진 단상의 석좌에 피처럼 붉은 머리카락의 여인이 앉아 있었다.
얼핏 보면 백혜항을 연상시켰지만 그녀는 백련하였다.
단상의 아래쪽 좌측 편으로 이존 난마도제 서갈마, 삼존 혈사왕 구제양, 사존 기기괴괴 해악천이 앉아 있었다.
그리고 우측 편으로 삼혈성 혈살귀 양전, 사혈성 백혈검 도장호, 육혈성 혈수마녀 한백하가 앉아 있었다.
석좌에 앉은 채로 눈을 감고 있는 백련하의 귓가로 외침 소리가 들려왔다.
“누구 마음대로 석좌에 앉은 것이더냐?”
그녀가 감고 있던 눈을 떴다.
광장의 한복판을 둘러싸고 있던 수많은 교인들의 인파가 갈라지며 붉은 머리카락에 검은 궁장을 입은 여인이 범상치 않은 고수들을 대동하고서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바로 백혜향이었다.
끝
ⓒ 한중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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