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word Sense RAW novel - Chapter 181
63화 혈마 (2) >
-백련하가 나중에 정신을 차리면 어떻게 될까?
소담검의 말에 나는 침묵했다.
머릿속에서 수많은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었지만, 백련하가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저 유감스러운 정도로 끝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혈수마녀 한백하는 백련하를 향한 충심이라는 명분을 가지고 언제 어느 때나 내 뒤통수를 칠 수 있는 여자였다.
기강을 위해서라도 그녀를 실각시키는 게 향후를 위해서도 나았다.
“너그럽네. 혈마에 가장 가까운 남자가.”
백혜향의 말에 나는 가볍게 웃었다.
그녀였다면 단전을 파괴시킨 정도로 끝나지 않았을 거다.
모르긴 했어도 말마따나 혀를 자르고 사지를 전부 자르지 않았을까?
-자고로 혈마란 그래야 한다.
‘네네. 그러시겠죠.’
혈마검 녀석.
백혜향을 만난 이후로 은근히 그녀를 마음에 들어한다.
자신이 만났던 자들 중에서 제일 혈마에 가까운 성향을 지녀서이겠지.
하지만 내가 혈마로 집권한다면 지금까지 혈교와는 달라질 거다.
‘쓸데없이 세상을 왜 피로 씻어내.’
교리대로 한다면 무림을 뒤엎고 중원 전체를 피로 씻어내, 혈교의 교리를 따르는 자들만의 세상을 만드는 게 혈교의 숙원이다.
쓸데없이 적들을 계속 만드는 게 혈교의 교리였다.
정파나 무림 연맹의 위선적인 정의를 원하는 건 아니지만 이건 위태로운 방향이다.
외조부도 아버지도 내게 그렇게 조언했다.
나는 나의 길을 간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혈교의 열한 명의 간부들 중에 두 명이 빠졌다.
혈주로 정체가 드러난 삼존 혈사왕 구제양과 끊임없이 선을 넘었던 육혈성 혈수마녀 한백하.
결과적으로 남은 것은 아홉 명이었다.
일존 파혈검제 단위강, 이존 난마도제 서갈마, 사존 기기괴괴 해악천.
일혈성 뇌혈검 장룡, 이혈성 수라도 유백, 삼혈성 혈살귀 양전, 사혈성 백혈검 도장호, 오혈성 권퇴혈우 황강, 칠혈성 혈음마소 섬매향.
-그나마 두 명으로 끝난 게 다행 아냐?
어떤 의미로는 그럴 지도 모른다.
세 세력이 작정하고 붙었다면 이 정도로 끝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물론 아직 혈교 총대회는 끝나지 않았다.
간부들의 수장이라 할 수 있는 일존 단위강이 입을 열었다.
“결론을 내릴 때가 된 것 같소.”
그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들 중에 나를 마음에 들어하는 자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자들도 있을 거다.
그때 스승님인 기기괴괴 해악천이 말했다.
“클클, 결론이랄 것이 있나. 이미 혈마검의 계승자는 나왔고 본교의 율법에 의해 모두가 혈마께 충성하면 될 일을.”
역시 스승님다운 결론이다.
맞는 말이기도 했다.
하지만 율법에 기대는 걸로 끝낼 일이 아니다.
나는 앞으로 나서며 존성들뿐만 아니라 광장에 있는 모든 교인들이 들을 수 있도록 큰 소리로 말했다.
“혈마검의 계승자인 당대 혈마다.”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목소리에 모두가 내게 집중했다.
해악천이 무슨 말을 하려고 그러나 흥미로운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율법에 의거해 내게 충성을 해라……라고 한다면 분명 속에 불만을 담아둔 자가 있겠지.”
-스릉!
나는 혈마검을 검집에서 뽑았다.
그리고 혈천대라공을 운기하여 검을 붉게 변화시켰다.
갑작스러운 나의 행동에 모두가 의아해했다.
나는 공력을 실어 소리쳤다.
“내가 교주의 위에 오르는데 조금이라도 이의가 있는 자는 누구라도 이 자리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주마!”
‘!!!’
그런 나의 외침에 순식간에 광장이 정적으로 물들었다.
이미 율법에 의해 혈마가 기정사실화된 내가 이런 공표를 하리라고는 누구도 생각지 못했겠지.
늘 여유로웠던 사혈성 도장호도 제법 놀랐는지 인상을 찡그렸다.
해악천의 전음이 잔소리처럼 귓가를 울렸다.
한 번 혈교를 나갔던 비월영종의 피를 이었다.
이것에 불만을 가질 자들이 없지 않을 것이다.
이런 나의 결단에 해악천이 수염을 쓰다듬더니 씨익하고 누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나의 대답에 마음에 들어했다.
처음에는 정적으로 물들었던 광장이 조금씩 술렁였다.
혈계로 이어져온 혈마의 자리에 무(武)로써 도전할 기회를 준다고 하니 귀가 솔깃하겠지.
하나 교인들 중에는 누구 하나 쉽게 나서는 이가 없었다.
한두 명 정도는 패기를 보일 줄 알았는데.
-네가 그 혈주를 날려보낸 신위를 보고 쉽게 나오는 게 이상한 일이지.
그런가.
하긴 그 초식을 보고 도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거다.
그때 교인들 중에 누군가 한 명이 걸어 나왔다.
도를 들고 있는 검은 무복에 붉은 띠를 하고 있는 하관이 발달한 중년인이었다.
“중도 단주?”
칠혈성 혈음마소 섬매향이 입을 열었다.
그녀가 아는 자인가 보다.
“칠혈성의 소속이오?”
일존 파혈검제 단위강의 물음에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중도 단주 하종일이라는 자입니다. 음공을 익히지 않아 제 산하라기보다는 강소성 북부에서 독립적으로 단을 이끌고 있습니다.”
‘하종일!’
그의 이름을 들은 나는 속으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에 소담검이 물었다.
-아는 사람이야?
모를 수가 없었다.
회귀 전에 무림 연맹에서 7년차 첩자로 보내던 때, 지령이 내려온 적이 있다.
무림 연맹의 안휘성 북부 지부를 친 간부가 퇴각할 수 있도록 교란을 시키라는 지령이었다.
그때 안휘성에 황룡당과 함께 투입되어 정보를 교란하다 복면을 쓴 그를 보았다.
혼자서 백여 명에 달하는 황룡당 무인들을 도륙하고 유유히 빠져나가는 모습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간부라고?
‘……여덟 번째 혈성이 될 자야.’
-혈성?
그런 자를 이 자리에서 보게 되다니.
지금까지 빛을 보지 못하고 단주 직에 머물러 있었던 모양이다.
“흠.”
“호오.”
일존 단위강을 비롯해 스승님인 해악천이 흥미로운 반응을 보였다.
그럴 만도 한 것이 멀리 있을 때는 몰랐는데, 가까이 다가오니 그의 기도가 범상치가 않았다.
단주 급들 중에도 간혹 초절정의 경지에 이른 자들도 있다.
그러나 훗날 살육도(殺肉刀)라 불릴 그의 기도는 초입이 아닌 완숙함에 이르러 있었다.
하종일이 내게 포권을 취하며 정중히 말했다.
“부족하나마 당대 혈마가 되실 분과 겨룰 수 있는 이런 기회를 어찌 놓치겠습니까? 한 수 가르쳐주십시오.”
나야말로 기회지.
-무슨 기회.
순수하게 내 사람으로 만들 수 있는 기회.
속에서 웃음이 나오려 한다.
당장 써먹어도 아쉬울 이런 인재가 한참 후에서야 혈성으로 발탁되다니.
나는 녀석에게 검을 겨냥했다.
“도전을 받아줘서 감사합니다.”
하종일이 유엽도와는 다른 굵고 큰 도를 뽑았다.
그리고 도법의 기수식을 취했다.
그때 듣기로는 중도술(重刀術)을 쓴다고 들었는데 과연 어울렸다.
“시작해라.”
나는 선수를 양보한다는 듯이 그에게 손짓을 했다.
그런 행동에 하종일의 눈빛이 살짝 날카로워졌다.
무위에서는 모르나 연배로는 자신이 위였기에 너무 하수를 대하는 듯한 태도에 심기가 상했나 보다.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팟!
하종일이 내게 신형을 날렸다.
그가 반월을 그리며 크게 도를 휘두르자 풍압이 일어났다.
무거운 도격을 주로 사용하는 고수답게 휘두르는 궤적만 봐도 무게감이 느껴졌다.
이에 나는 혈마검으로 발검술의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기묘한 경신법을 펼쳤다.
매처럼 나의 신형이 앞으로 쭈욱 뻗어나갔다.
“혈라검천.”
이를 알아본 백혜향의 입에서 초식 명이 흘러나왔다.
-촤아아아아악!
순식간에 앞으로 파고든 나는 발검술을 펼치며 크게 원을 그리며 중도에 혈마검을 위로 올려쳤다.
-채애애애앵!
하종일이 중도술로 무겁게 혈마검을 막아내려 했다.
그러나 그가 초절정의 경지에 오른 고수라고 해도 혈마화를 펼친 상태에서 나는 벽을 넘은 것과 거의 준하는 무위였다.
“큭!”
하종일의 눈동자에 당혹감이 서렸다.
혈마검과 맞닿아있는 그의 몸이 서서히 지면에서 떠올랐다.
“하압!”
기합과 함께 내가 혈마검을 완전히 위로 휘두르자, 하종일의 신형이 위로 솟구쳤다.
그런 그에게 나는 혈마검으로 예기를 날렸다.
하종일이 몸을 비틀며 도로 이를 다급히 막아냈다.
-채채채채챙!
예기에 부딪치면서 녀석의 신형이 허공에서 뒤로 튕겨나갔다.
삼 장이 넘게 밀려난 하종일이 겨우 바닥에 착지했다.
“하아….하아….”
혈라검천의 검세를 막은 것만으로 지쳤는지 하종일의 입에서 거친 숨이 터져 나왔다.
전력을 다해서 막느라 상당히 기운을 소진했을 거다.
-조금도 안 봐주네.
압도적인 무위를 보여줘야 하니까.
“저 정도 고수가 고작 한두 초식 만에 저리 꺾이다니.”
“벽을 넘어선 건가?”
광장의 교인들이 웅성거리며 연신 탄성을 내뱉는 모습만 봐도 내 의도가 먹혀들었음을 알 수 있었다.
“더 하겠나?”
나의 물음에 하종일이 도를 거두며 내게 한쪽 무릎을 꿇고서 포권을 취했다.
“과연 혈마이십니다. 미천한 교인이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패배했지만 그의 얼굴은 만족감으로 가득했다.
천성이 무인인 자였다.
그가 다시 일어나서 들어가려고 할 때 그를 불렀다.
“하 단주라고 했나?”
하종일이 발걸음을 멈칫하며 뒤를 돌아 답했다.
“그렇습니다.”
“모두가 나서지 못하는데 나설 정도면 담대함도 갖췄고, 그 정도 무위라면 단주 직에 어울리지 않는군.”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하종일이 의아해하며 내게 물었다.
이에 나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말했다.
“나의 좌호법이 되어 교주 호위대를 이끌어줬으면 좋겠는데.”
그 말에 하종일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저 도전을 하기 위해서 나왔을 뿐인데, 이 자리에서 즉흥적으로 내가 자신을 중직에 발탁하려하자 놀란 모양이었다.
“굳이 원하지 않는다면 권하지는….”
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하종일이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바닥에 이마를 찧으며 외쳤다.
-쿵! 쿵! 쿵!
“삼가 혈마의 명을 따릅니다.”
중직에 발탁되는 것이 어지간히 좋았나 보다.
몸을 파르르 떨고 있는데, 어찌나 이마를 세게 박았는지 피가 묻어났다.
이 모습에 일부 단주 급 교인들이 부러움에 찬 눈빛으로 엎드려 있는 하종일을 쳐다보았다.
진작에 자신들이 먼저 나설 걸 하는 눈치였다.
-야. 운휘야. 송좌백 쟤 좀 봐라.
소담검이 폭소를 터뜨리며 내게 말했다.
이에 그곳을 쳐다보았더니 송좌백 녀석이 이를 빠득 갈면서 몸을 바들바들 떨고 있는 것이 보였다.
녀석이 화가 나서 입을 벙긋거리고 있었는데, 마치 호법 자리는 자신의 것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 듯 했다.
그래서 나도 벙긋거리며 답해주었다.
‘아직 멀었어.’
그 말에 송좌백이 발을 동동 굴렀다.
쌍둥이 동생인 송우현은 그러거나 말거나 지루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피식하고 웃고는 다시 교인들을 향해 소리쳤다.
“또 내게 도전하고픈 자가 있는가!”
하종일에게 중직을 맡겼으니 누군가는 나설까 했는데, 교인들 중에는 더 이상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
한 초식하고도 몇 수의 예기만으로 꺾은 게 컸나 보다.
이 정도면 충분히 혈마에 어울리는 무위를 지녔다는 것을 증명한 건가.
그때 누군가의 발걸음이 들려왔다.
-이거 제일 큰 산인데.
소담검이 왜 이런 말을 했는지 알겠다.
나에게 다가오는 자는 다름 아닌 일존 파혈검제 단위강이었다.
“일존이야.”
“파혈검제의 검을 보게 되는 건가.”
“저분이 나서다니!”
-스릉!
혈교의 정점이라 불리는 자가 검을 뽑아들면서 다가오니,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시끌벅적했던 광장이 다시 조용해졌다.
무게감이 다른 존성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해악천이나 사혈성 도장호 역시도 이게 가장 큰 난관이라 여겼는지 표정이 사뭇 진지해졌다.
해악천이 내게 경고했다.
물론 나 역시도 단위강이 벽을 넘었음을 알고 있다.
팔대고수였던 무쌍성의 천무성이 가짜 사건으로 목숨을 잃었으니, 이제 그가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될 지도 모른다.
-슥!
일존 단위강이 검을 거꾸로 잡고서 포권을 취했다.
검객으로서 내게 예를 표한 것이었다.
나 역시도 본교 최고의 고수를 향한 예우로 검병을 거꾸로 쥐고서 포권을 취했다.
“일존께서도 교주의 위에 도전하시는 겁니까?”
그 물음에 단위강이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내게 말했다.
“선대부터 교주를 모셔왔던 자로서 어찌 그런 불경한 마음을 가지겠습니까?”
‘응?’
검을 뽑아놓고 이건 무슨 소리지?
나와 겨루려고 그러는 것이 아닌가?
일존 단위강이 포권을 풀고서 검을 아래로 내리며 묵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뛰어난 검객은 일검을 부딪치는 것만으로 상대를 안다고 했습니다.”
“하면 저를 알기 위해서 나오신 겁니까?”
“그렇습니다. 이미 무위는 충분히 보았으니, 일검을 겨룬다면 공자의 무(武)가 어디까지 미쳤는지 알 수 있겠지요.”
일존의 목적은 하나였다.
내 무가 어디까지 이르렀는가 였다.
아니. 벽을 넘어섰는지 아닌지를 확인하고 싶은 듯 했다.
-모르는 거야?
그런 것 같다.
처음부터 상단전을 개방하고 혈마화를 한 채 이곳에 왔다.
제대로 벽을 넘었는지 아닌지 그조차 가늠하지 못하는 게 당연했다.
-전력을 다해야겠네.
그래.
나는 검을 바로 잡고서 입을 열었다.
“본교 최고의 고수에게 한 수 가르침을 받겠습니다.”
-슈우우우우!
진혈금체를 운기하자 피가 빠르게 순환하며 몸에서 수증기가 피어올랐다.
이를 알아본 존성들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그것은 일존 단위강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검을 꽉 잡고서 한 발자국 앞으로 내딛었다.
-슥!
호흡을 가다듬으며 정신을 혈마검에 집중했다.
붉게 물들어 있던 혈마검이 더욱 진해지며 조금씩 검이 진동을 일으켰다.
신검합일과 더불어 검선께서 깨달음을 주신 최고의 일검이다.
월악검 사마착에게는 이것이 통하지 않았지만 그보다 아래인 일존 단위강은 어떨까?
-팟!
일존과 내가 동시에 움직였다.
애초에 초식을 겨루는 것이 아니라 일검으로 자웅을 내는 것이었다.
크게 궤적을 그린 두 사람의 검이 부딪쳤다.
-채애애애앵!
검과 검이 맞부딪치는 순간 검명과 더불어 큰 파공음이 일어났다.
-파아아아아아앙!
그와 동시에 예기와 풍압이 일어났다.
그 여파가 어찌나 큰지 두 사람의 주위로 바닥에 균열이 가고 가까이에 있던 존성들이 뒤로 일부 밀려날 정도였다.
검격에 의한 풍압이 멈추자 모두의 시선이 우리에게로 향했다.
스승님 해악천의 인상이 굳어졌다.
“아……”
몇몇 존성들의 입에서 탄식과 탄성이 섞여 나왔다.
일검에 대한 우위가 결정 났기 때문이었다.
서로 검을 부딪쳤던 지점에서 나는 세 보 가량 밀려나 있었다.
반면 일존 단위강은 고작 한 보 정도 밀려났다.
누가 보아도 단위강의 공력이나 일검이 나보다 한 수 위임을 알 수 있었다.
‘역시 완전히 벽을 넘은 고수와의 간극이 있는 건가.’
나 역시 실망을 금치 못했다.
혈마화에 진혈금체, 신검합일.
모든 전력을 다했기에 동수라도 이루길 바랐건만.
바로 그때였다.
-뚝!
일존 단위강의 손바닥에서 핏방울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존성들의 시선이 바닥에 떨어진 핏방울로 향했다.
단위강이 입 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과연……”
-쩌저저적!
그 순간 단위강이 쥐고 있던 보검에 균열이 일어났다.
나와 검을 부딪쳤던 곳이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던 해악천의 입이 귀까지 찢어졌다.
다른 존성들도 눈이 휘둥그레져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아……”
나 역시도 달라진 결과에 절로 탄성이 나왔다.
금이 간 검을 검집에 집어넣은 단위강이 고개를 슬쩍 돌려 백혜향을 쳐다보았다.
백혜향이 숨을 깊게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일존 단위강이 한 쪽 무릎을 꿇고서 두 손을 모으며 소리쳤다.
“신 단위강이 혈마를 배알합니다.”
‘!!!’
뭐라고 말이 나오지 않았다.
감회가 남달랐다.
회귀 전에는 그저 혈교의 삼류 첩자에 불과했던 내가 혈교 최고의 고수에게 혈마로 인정을 받게 되다니.
그때 백혜향이 내게 다가왔다.
그녀도 내게 무(武)를 겨루자고 할까?
전의가 넘치는 그녀라면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높았다.
그녀가 입을 열었다.
“뭘 그렇게 굳어있지? 왜 겨루자고 할까봐 그래?”
“원한다면 얼마든지.”
“배포가 제법 혈마다워졌네.”
그녀의 입 꼬리가 비릿하게 올라갔다.
역시 마지막 자웅은 그녀인건가.
그런데 백혜향의 입에서 예기치 못한 말이 나왔다.
“처음 보는 단주에게는 좌호법의 자리까지 줬는데, 내겐 어떤 자리를 줄 수 있지?”
끝
ⓒ 한중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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