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word Sense RAW novel - Chapter 193
67화 세 황자 (1) >
이거 꽤나 난감한 상황이다.
도착하자마자 세 황자 중 한 사람인 영왕이 나를 찾아오다니.
이런 식이라면 엮이기 싫어도 엮일 수밖에 없다.
옆에 엎드려 있는 부사 고조택이 슬쩍 고개를 들고서 내게 눈짓을 보내왔다.
당부했던 것을 강조하는 느낌이었다.
-어떻게 할 거야?
어떡하긴.
지금 영왕과 안 좋게 엮여서 좋을 건 없었다.
최대한 원만하게 가야 한다.
우선 도중에 인사가 끊겼기에 영왕에게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영왕 전하를 뵙습니다.”
그때 어디선가 큰 외침 소리가 들렸다.
“감히 어느 안전(案前)이라고 무릎을 꿇지 않는 것이냐!”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실려 있는 정기.
그곳을 쳐다보니 회색 무복을 입은 한 중년의 사내가 서있었다.
기감 상으로 느껴지는 기운은 절정의 무위를 지녔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기에 누군지 알 수 없었다.
“대 연제국의 황자 전하의 앞에서 어찌 이런 무엄함을 보일 수…”
그의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영왕이 손을 들었다.
말을 하지 말라는 소리였다.
“전하!”
“누가 자네더러 나서라고 했나. 가 호위.”
호위?
저 자의 정체는 영왕을 보호하는 호위였던 모양이다.
호위 무사조차 제법 뛰어난 무위를 지닌 것을 보니, 영왕이 정말 무(武)에 관심이 많다는 것이 실감이 간다.
가 호위라 불린 자가 성큼성큼 다가와 입을 열었다.
“하나 전하 이것은 황실에 대한….”
“어허. 본 왕이 괜찮다고 하는데, 그대가 어찌 나서는 게야. 그리고 무림인에게는 그들만의 법도가 있을 터인데, 이를 어찌 강요하느냐?”
“……송구하옵니다.”
그 말에 가 호위란 자가 결국 고개를 숙이며 사죄했다.
의외였다.
관과 무림이 조약을 맺었다고 하나, 고위 관료들이나 황실의 사람들 중에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이 꽤 많다.
우려와 달리 영왕은 생각보다 열린 사고관을 가지고 있는 듯 하다.
아니면 무(武)에 대한 강한 열망 때문에 그러는 것인가?
그때 영왕이 내게 말했다.
“호위 무사의 무례함을 이해해주게. 원래 황실의 법도란 그런 것이니.”
“아닙니다. 호위의 충의를 어찌 불쾌하게 받아들이겠습니까.”
그런 나의 말에 영왕이 눈에 이채가 띠었다.
“듣던 것과는 많이 다르군.”
“그게 무슨?”
“정도 무림 연맹의 사마 군사라는 자가 이르길 혈교나 사파의 무림인들은 흉폭하고 무식하여 품격이 떨어지는 자들이 많으니 가까이 하지 말라고 하더군.”
사마 군사?
이곳에 무림 연맹의 군사가 와있다고 하여 제 삼군사인 백위향일 거라 여겼는데, 그가 아니라 사마중현이 있었구나.
한데 어지간히 사전에 밑밥을 쳐놓은 것 같다.
영왕 이외에 다른 황자들에게 어떻게 이야기했는지 눈에 훤하다.
이에 나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좀 더 자유분방하고 욕심에 솔직한 자들이 많다고 하나, 그것이 무식하고 품격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지요.”
“그대를 보니 그런 것 같구나.”
“좋게 봐주시니 감읍할 따름입니다.”
“하하하. 혈교라 하여 과연 어떠한 자인지 궁금했는데, 이리 말이 잘 통하니 오히려 잘됐구나.”
뭔가 일이 술술 풀리는 느낌이다.
한데 슬쩍 고개를 들어서 나를 쳐다보는 부사 고조택의 표정은 여전히 좋지 않았다.
왜 저러는 거지?
그때 영왕이 전혀 예기치 못한 말을 꺼냈다.
“이렇게 연을 맺게 되었으니, 본 왕이 그대에게 도움을 주고 싶구나.”
“도움이라니 무슨?”
영왕의 눈이 반짝이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
지금까지 호의적인 모습을 보였던 것과는 다르게 뭔가 사욕이 보인다.
부사 고조택의 불안이 이것인가?
“국령을 어긴 혐의로 소환되었다고 들었다.”
“…….그렇습니다.”
“그 혐의를 본 왕의 권한으로 덮어주마.”
혐의를 덮어주겠다고?
이미 그것은 도독부 쪽에서 물증을 전부 없애서 굳이 혐의를 덮고 자시고 할 문제가 아니었다.
“무슨 말씀인지 도통 모르겠군요. 아직 재판도 시작되지 않은 일입니다.”
일단 선을 그었다.
본능적으로 이 자와 엮이면 피곤하겠다는 느낌이 커졌다.
영왕이 내게 웃으며 말했다.
“관과 부딪치지 않기 위해 도독부의 소환에 응한 것을 알고 있다.”
“…….”
부조 고조택조차 알고 있으니, 영왕 정도 되는 자가 작정하면 모를 일이 아니겠지.
한데 이것을 꺼내는 본의가 무엇일까?
“그 불안을 본 왕이 없애주겠다는 것이다.”
이에 나는 영왕에게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전하의 배려는 감사하오나, 말씀대로 관과의 원만한 관계를 위하여 소환에 응했으니 재판도 받아들일 것입니다.”
“후후후, 그리 된다면 그 바람이 무색해질 터인데 괜찮은가?”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그런 나의 물음에 귓가로 전음이 들려왔다.
[이곳에는 본 왕 이외에도 형님 전하들도 왕림하셨네.]굳이 전음으로 이런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다른 이들이 듣지 않기를 원한다는 거겠지.
영왕이 내게 계속 전음을 이어갔다.
이건 이미 들어서 알고 있다.
세 황자들이 이 사건에 흥미를 느끼고 있다고 부사 고조택이 말했었다.
전진교의 교주 천둔검객 만종 진인.
무림 연맹의 제 6장로이자 정파에서도 수위에 드는 검객이다.
회귀 전에도 몇 차례 보았었는데, 호방한 성격과 다르게 사도에는 용서가 없는 자였다.
사실 이것보다 걸리는 것은 그가 도인이라는 것이다.
부사 고조택은 진왕이 도교를 숭상한다고 했었다.
어쩌면 이 점을 이용하여 재판에 진왕이 간섭하게 할지도 몰랐다.
그건 부정할 수 없다.
[형님 전하께서는 필시 재판에서 다른 혐의들까지 끌고 와 개입하여 그대를 몰아붙일 걸세. 그리 된다면 자네의 바람은 이뤄지지 않게 되겠지.]피곤해지고 있다.
황자들만 엮이지 않았으면 이렇게 어려울 일이 아니다.
무림 연맹에서부터 이들까지 엮이면서 복잡한 양상이 되어버렸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
이건 전혀 예상치 못한 요구였다.
설마 나와 혈교를 통으로 원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이게 나쁘지 않은 요구라고?
현 황제가 병양해진 것을 말하는 것 같다.
내가 모른다고 생각할 터이니, 그 사실을 대놓고 말하진 못하겠지.
그런데 그게 무슨 관계라고 꺼내는 거지?
‘!!!’
말인즉 대연제국과 호의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정도 무림 연맹을 제외하고 금상제처럼 전부 탄압하겠다는 의미였다.
그런 무시무시한 속내를 가지고 있었다니, 이건 꽤 놀라웠다.
큰 기대.
이게 무슨 의미인지 알겠다.
무림 연맹은 진왕이 보위에 오를 거라 여기는 듯 하다.
황태후의 소생이이니 충분히 그렇게 예측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관과 호의적으로 연을 맺고 있는 것도 단순히 당장의 이익만이 아니라, 향후를 위한 대비책이었다.
-그럼 진왕이 황제가 되는 거야?
안타깝지만 아니다.
무림 연맹이 제대로 헛다리를 짚었다.
진왕은 황태후의 소생이지만 끝내 황제가 되지 못한다.
-잉? 그럼….
소담검이 내게 다른 것을 물어보려 했지만 그 전에 영왕의 전음이 귀를 파고들었다.
[자네와 혈교가 본 왕의 산하로 들어온다면 내 약조하지.] [어떤 것을 말입니까?] [반대급부라고 하지 않았나? 진왕 형님께서 정파와 무림 연맹을 비호한다면 본 왕은 혈교를 지원토록 하겠네.] […….저희를 지원하겠다는 겁니까?] [그렇네. 그대가 할 일은 무림 연맹이 주제넘게 형님 전하를 지원하는 일을 막아주면 되네. 그렇게 해준다면 머지않아 본 왕이 만인지상의 자리에 오르게 되면 무림 연맹은 영원히 사라지게 될 것이야.]자신의 포부를 밝히는 영왕이었다.
끝에 와서는 보위의 욕심을 보인 셈이다.
제안한 대로만 이뤄진다면 절대로 나쁜 일은 아니었다.
-무슨 제안을 했길래 그래?
소담검의 물음에 나는 간략하게 그것을 알려줬다.
그러자 소담검이 말했다.
-나쁘지 않은 거 아냐? 그럼 관과 문제가 생기면 영왕이 보호해주겠다는 거잖아. 무림 연맹도 진왕을 이용하는 거라면 너도 그러면 되잖아.
쉽게 생각하면 그렇겠지.
한데 절대 그렇지 않다.
-왜?
어느 쪽이 황위에 오르든 무림은 예전과 달라진다.
-그게 무슨 소리야?
한 번 관과 결탁하게 되면 쉽게 빠져나올 수 있을 것 같아?
이건 가볍게 생각할 일이 아니다.
진왕이 황제가 되더라도 무림 연맹은 계속해서 관과 연을 맺어야 하고, 영왕이 황제가 된다면 이쪽에서도 관과 계속 연을 맺게 된다.
금상제 이후로 맺었던 조약이 무실해지고 무림도 관의 영향을 크게 받게 되는 것이다.
-자유를 박탈당한다는 거네?
그 말 그대로다.
영왕은 내게 자신의 수하가 되라고 했다.
달콤한 말로 이야기를 했지만 한 번 수하가 되면 빠져나갈 수 없다.
결국 진왕이나 영왕은 자신들의 입맛대로 무림을 이용한 후에 그 산하로 끝까지 부려먹겠다는 의미가 된다.
-무림 연맹 걔네는 그걸 감수하겠다는 거야?
모른다.
영왕의 말대로라고 하면 그런 것 같은데, 무림 연맹이 그리 호락호락한 자들인가.
아마도 손해 보지 않도록 진왕과 따로 조약을 맺었을 수도 있다.
그것도 아니라면 영왕이 나를 속이는 걸 수도 있고.
-어떻게 할 거야? 뭐가 어찌 되었든 여기서 거절하면 이 영왕이라는 자도 적으로 돌변하는 거 아냐?
그럴지도 모른다.
영왕의 저 웃음.
어떤 식으로든 내가 빠져나갈 수 없다고 여기는 듯 하다.
부사 고조택의 우려가 현실이 되었다.
영왕이 내게 물었다.
그런 그에게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전하의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군요.] [하면 본 왕에게 충성을….] [하루만 생각할 시간을 주시지요.]그 말에 영왕의 한 쪽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하루? 내일 정오면 재판이 시작될 터인데 괜찮겠나?] [전하께서 힘을 써주시면 혐의와 재판을 없애실 수 있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그런 나의 말에 영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내게 말했다.
“좋네. 하루의 말미를 주지. 충분히 생각해보도록 하게. 부디 좋은 결론을 내는 것이 그대와 혈교에 이로운 결과를 가져올 것이야.”
그 말과 함께 영왕은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영왕이 가자 자리에서 일어난 부사 고조택이 내게 말했다.
“기어코 이런 사달이 벌어졌구만. 영왕은 고집이 센 자일세. 둘이 대체 무슨 대화를 나눈 것인가?”
전음으로 나눈 대화라 궁금했던 모양이다.
이에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이로울 게 없는 대화요.”
“이로울 게 없다고?”
의아해하는 그에게 나는 물었다.
“고 형. 경왕 전하는 어디 계시오?”
“그건 왜 묻나?”
“그냥 묻는 것이오.”
고조택이 한숨을 내쉬며 내게 경고했다.
“자네는 혐의가 있어서 소환되었네. 내일 재판까지는 우군도독부를 벗어날 수 없으니 제발 자중하게.”
“그러도록 하죠.”
말은 이렇게 했지만 그럴 생각이 없다.
가만히 앉아 있으면 내일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모르니까.
* * *
그날 늦은 밤.
술시(戌時) 말엽.
경왕이 우군도독부의 관사 처소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은 나는 그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진진교의 교주인 만종 진인과 함께 도교의 경문을 읽으며 처소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진왕이나 종일 연무장에서 무예를 익히고 있다는 영왕과는 달랐다.
그는 낮부터 나가서 지금까지 주루에 틀어박혀 술을 마시며 기생을 탐했다고 한다.
-대단하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세 황자들 중에 가장 모난 자다.
그 때문에 부사 고조택은 혹여나 경왕만큼은 찾아가지 말라고 당부를 했었다.
황자들 중에 가장 포악하면서 어디로 튈지 모를 만큼 비뚤어진 자이기에 상대를 하지 않는 것이 나을 거라 했다.
하지만 그를 만나야 한다.
왜냐하면,
-진짜 그 망나니 같은 인간이 황제가 되는 거 맞아? 잘못 기억하는 거 아냐?
맞다.
그러니까 찾아가는 거 아니겠어.
경왕이 머무는 관사 처소 쪽이 시끌벅적하다.
아직도 술판이 벌어진 것 같다.
관사 처소로 들어가는 전각 문 사이를 관군 경비들이 지키고 있었다.
저들과 상대해봐야 들어가기 힘들겠지.
-스륵!
나는 풍영보를 써서 관서 처소의 담벼락을 넘었다.
그리고 시끌벅적한 곳으로 향했다.
정원 한복판에는 상다리를 펴놓고서 기생들을 데려와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
경왕의 수하들로 보이는 자들이 같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
“경왕 전하.”
그런 나의 부름에 상의를 풀어헤치고 술병을 들고 있던 새하얀 얼굴에 긴 머리카락을 뒤로 묶은 미남자가 나를 쳐다보았다.
얼굴에 살짝 취기가 돌았는지 상기되어 있는데 반쯤 풀린 눈으로 물었다.
“그대는 누구지?”
이 자가 경왕인가?
생각보다 굉장히 잘생긴 미남이었다.
조각을 깎아낸 것처럼 생겼고 풀어헤친 상의로 보이는 가슴도 근육이 두터워보였다.
그런 그를 빤히 쳐다보다 대답했다.
“저는 혈교의 교주입니다.”
“뭐?”
그 말을 들은 경왕의 잘생긴 미간에 주름이 생겼다.
자신의 관사 처소로 내가 이렇게 나타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나보다.
경왕이 술병을 한 모금 들이키더니 말했다.
“내일 재판에 국령을 어긴 혐의로 회부될 자가 이 늦은 밤에 본 왕의 처소로 오다니, 배짱이 두둑하군.”
“잠시 경왕 전하를 독대하고 싶어 찾아왔습니다.”
“독대?”
“길게는 아닙니다. 잠시만 시간을 내어주시지요.”
그런 나의 말에 경왕이 피식 웃었다.
그리고는 술병을 들어서 한 번에 벌컥벌컥 마시며 이를 비우고는 병을 바닥에 거칠게 던졌다.
-쨍그랑!
“보다시피 술을 많이 마셔서 그대와는 할 말이 없구나. 돌아가거라. 본 왕이 오늘은 기분이 좋으니 그냥 보내는 것을 감사히 여기고 말이다.”
이에 나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내일이 재판이라 그러기는 힘들 것 같군요.”
그 말과 함께 경왕에게로 다가가기 위해 한 발자국 앞으로 걸어갔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슈슈슈슈슉!
그림자처럼 열 명 정도 되는 검은 무복에 복면을 쓴 자들이 나타나 앞을 가로막고서 검과 도를 겨냥했다.
은신술에 제법 능한 자들이었다.
복면인들의 장벽에 가려진 경왕의 목소리가 들렸다.
“더는 선을 넘지 말거라. 이게 마지막 경고이다. 왕의 심기를 건드리고 무사하길 바라지는 않겠지?”
이에 나는 복면인들을 스윽 훑어보았다.
그들이 경계심이 가득한 얼굴로 내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방해가 되니 잠시 자고 있으시오.”
“이 자가 지금 무슨 말을….”
-쿵!
복면인 중 한 사람이 뭐라 말을 하려다 이내 바닥에 쓰러졌다.
그런데 그 한 사람뿐만이 아니었다.
-쿵! 쿵! 쿵!
다른 아홉 명의 복면인들도 검과 도를 잡고서 달려오려다 이내 쓰러지고 말았다.
상판 앞에 앉아 있던 경왕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무슨 짓을 한 거지?”
끝
ⓒ 한중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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