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word Sense RAW novel - Chapter 196
68화 요검(妖劒) (2) >
내가 고자라니?
순간 어처구니가 없었다.
제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다고 지금 누굴 남자 구실 못하는 사람으로 치부하는 건가.
잡념이 없어지다 못해서 화가 나는데.
그때 절세미녀가 나를 보면서 혀를 차며 말했다.
-상관없다. 어차피 세상 남자들은 이 몸의 노예.
‘노예?’
갑자기 유혹하는 모습에서 돌변했다.
조금 전의 몽환적인 말투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응?’
그런데 갑자기 절세미녀의 모습에 변화가 생겨났다.
머리카락이 점점 새하얗게 바뀌더니 이윽고 완전히 백발이 되었다.
방금 전에 색기 넘치는 아름다운 절세미녀였다면 지금은 마치 도도한 여왕을 보는 것만 같은 느낌이다.
그녀가 내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이 몸에게 복종하거라.
절세미녀의 눈동자에서 기묘한 빛이 일렁였다.
이를 보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검병을 잡고 있는 손으로 뭔가 사이한 기운이 파고들며 육신을 침범하려 했다.
‘아!’
경험한 적이 있었다.
이것은 혈마검에 있던 혈마 조사의 원념 가득한 백(魄)이 내 몸을 조종하려고 했던 것과 거의 비슷한 현상이었다.
이 요검에도 원념이 담겨있는 것 같다.
-이딴 것도 견디지 못하지 않겠지. 인간.
혈마검의 목소리가 머릿속을 울렸다.
당연하지. 한 번 당했던 것을 두 번씩이나 당할 것 같은가.
-복종해라.
절세미녀가 내게 무릎을 꿇으라는 듯이 손바닥을 밑으로 내렸다.
몸을 파고드는 사이한 기운이 이것을 실제로 행하게 하려고 전신을 잠식하려 들었다.
그러나 내게는 선천진기가 있다.
-우우우웅!
원기라 할 수 있는 선천진기가 사이한 기운을 밀어내며 이를 버텨냈다.
절세미녀의 미간을 찡그렸다.
-제법 강하구나. 그렇다고 버틸 수 있을 것 같아?
사이한 기운이 더욱 강해졌다.
이 요검에 담겨있는 기운도 보통이 아니었다.
어지간한 평범한 이들은 이 자리에서 졸도해버릴지 모를 만큼 강렬했다.
-무릎을 꿇고 너 스스로를 찔러서 검에 피를 바쳐라.
‘…….허튼 소리.’
나를 어지간히 우습게 봤다.
상단전을 개방했다.
그러자 나의 몸에 변화가 생겨났다.
이를 본 절세미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너 설마…..
혈천대라공을 운기하자 전신에서 붉은 기운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요검의 사기가 강하다고는 하나 혈마의 백을 흡수한 나의 염과 혈천대라공의 기운은 이를 뛰어넘었다.
절세미녀가 당혹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너 혈마검의 주인이구나!
혈마화를 하면서 이를 알아챈 것 같다.
혈마의 위명이 대단하기는 한가보다. 이런 원념이 가득한 백(魄)조차 아는 것을 보면 말이다.
혈마검이 웃으면서 말했다.
-주인은 무슨 주인. 이 몸의 수하로 받아준 거지. 눈치채봐야 늦었다. 사련검(邪連劍).
사련검?
검의 정체가 드러났다.
혈마검이 이 검을 알고 있을 줄이야.
그런데 다른 검들은 저게 보이지 않는 것 같은데, 혈마검 이 녀석은 저 여인의 모습이 보이는 건가?
-망할 것들!
-파르르르르!
사련검의 검신이 파르르 떨렸다.
마치 내 손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듯 했다.
나를 정복하는 게 힘들어져서 그런가 본데, 이를 어쩌나.
‘그 백(魄) 가져가겠다.’
나야말로 사련검에 담겨 있는 백을 흡수해야 겠다.
손등의 북두칠성의 점들 중에 네 번째 점인 천광이 붉은 빛에서 푸른 빛으로 일렁였다.
그러자 절세미녀의 아름다운 얼굴이 무섭게 일그러졌다.
-아아아악!
[념(念)조차 이치가 통하면 통제할 수 있을 지어니. 천권(天權)이 열렸도다.]그것이 바로 천권의 힘이다.
절세미녀의 모습이 점차 흐려져갔다.
그러더니 이내 그 모습이 자주빛으로 물들어갔다.
사련검에 스며들어있는 원념으로 가득한 백(魄)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안 돼! 안 돼에에에!
절규성이 터져나왔다.
‘그만 포기해라.’
천권의 빛이 더욱 강해졌다.
그러자 이윽고 자주빛 백(魄)이 회오리를 치며 연기처럼 손등의 점으로 빨려 들어왔다.
백이 손등으로 빨려 들어오자 머릿속에 수많은 사념들이 떠올랐다.
백에 담겨있는 기억들이었다.
사념으로 가득한 수많은 기억들과 백에 담겨있는 힘 때문에 상단전의 염(念)이 더욱 불어나갔다.
‘행운이다.’
다만 흡수하는 과정이라 몸이 떨리면서 제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러나 혈마검 때만큼은 그리 길진 않았다.
이윽고 백을 완전히 흡수하자 그 떨림이 완전히 멎었다.
‘아……’
검의 주인이 누군지 알았다.
먼 옛날 그 명맥이 완전히 끊겨 무림인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 향화열락궁의 궁주 주사련이라는 사파의 악명 높은 여고수였다.
사술로 남자들을 유혹하여 수백 명을 죽였는데, 그 손속이 잔인하여 무림 공적으로 몰리면서 멸문한 것 같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혈마검 때와는 완전히 달랐다.
-뭐가 다르다는 거야?
나는 오른손에 쥐고 있는 사련검을 쳐다보며 말했다.
-이봐. 사련검.
검신이 미묘하게 떨리며 아까 전 절세미녀의 목소리가 머릿속을 울렸다.
-너 대체 뭐야? 어떻게 인간이 내 말을 들을 수 있는 거지?
‘내게 특이한 힘이 있거든.’
다른 검들과 마찬가지로 사련검이 놀라했다.
내게 보여준 백(魄)의 원념 때문에 대화가 가능했다고 여긴 모양이었다.
-백의 원념을 보여줬다고?
그래.
혈마검은 혈마 조사의 힘이 너무 강해서 오히려 그 백(魄)이 더욱 이면에 드러났다.
그러나 사련검은 백(魄)보다 검의 힘이 더 강했다.
그래서 검이 오히려 백을 마음대로 다룰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 절세미녀는 검에 남아있던 원념 가득한 백을 움직여 눈앞에 보이게 만든 사련검의 기이한 힘이었다.
-주인의 백조차 다루다니 무서운 검이구려.
남천철검의 혀를 내둘렀다.
이에 사련검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흥. 누가 주인이라는 거야? 이 몸에게는 주인은 없어.
오만한 것이 어떤 면에서는 혈마검과 닮았다.
요검이라 불리는 것들은 하나 같이 그 자아가 굉장히 강한 것 같다.
사련검이 내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너…..굉장히 흥미로운 인간이구나. 내 노예가 될 생각 없니?
-이 인간은 내 수하다. 너 같이 남자들을 홀리는 천한 것과 상종할 것 같으냐?
혈마검이 웬일로 나를 사수하려들었다.
같은 요검이라고 더 견제하는 건가?
-깔깔깔. 네가 남자를 모르는구나. 남자란 자고로 부리기 쉬운 노예들이지. 내가 살살 건드려주기만 하면 내 검신을 할짝거리며 정신을…..
……이거 생각보다 위험한 검인데.
오만한 걸 넘어선다.
사련검이 내게 입맛을 다시듯이 말했다.
-흥미로워. 검과 대화를 나누는 인간이라니.
-흥! 인간. 무시해라. 천한 검과 상종해봐야 하등 쓸모가….
그런 혈마검의 말을 끊고서 사련검이 내게 끈적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마음에 들었어. 이 몸이 너를 노예로 받아주마. 그 혀로 내 검신을 핥으면서 주인님이라고 부르면….
도저히 안 되겠다.
나는 염으로 사련검의 목소리만 소거시켰다.
검신이 묘하게 떨려왔지만 더 들었다간 피곤해질 것 같다.
-어우. 피곤한 신입이네.
소담검이 혀를 내둘렀다.
신입은 무슨.
나도 욕심이 강해서 웬만하면 보검이라면 사족을 못쓰지만 사련검은 갖고 싶지 않다.
검마다 각기 성향이 다른 줄 알았지만 지금까지 중에 가장 최악인 것 같다.
뭐 어차피 이건 내 검이 아니라 경왕의 것이니까.
-운휘. 나는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참 매력적인 검이다.
…….내가 잘못 들은 건가.
남천철검 설마 사련검이 마음에 든 거냐?
나의 물음에 남천철검이 계속 헛기침을 해댔다.
그때 경왕이 놀랍다는 표정을 지으며 내게 다가왔다.
“그 모습은 대체 무엇이냐? 머리카락과 눈이 마치 피처럼 붉게 변했구나.”
혈마화를 아직 풀지 않아서 경왕이 신기해하고 있었다.
이에 나는 상단전을 닫고서 혈마화를 푼 후에 감고 있던 왼쪽 눈을 떴다.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는 모습에 경왕이 탄성을 흘렸다.
“그대는 참으로 기이한 능력을 많이 가졌구나.”
“작은 재주들입니다.”
“남이 하지 못하는 것들이 어찌 작은 재주이냐? 그래. 요검은 제압한 것이냐?”
“그렇습니다.”
“황궁에서 무위 꽤나 높은 금의위 무사들도 보갑을 열자마자 혼이 나갔는데, 참으로 대단하구나.”
경왕이 나를 칭찬했다.
요검을 제압하여 기분이 좋은가보다.
“그 자주빛 이상한 것이 요검의 요성인가?”
“요성이 아니라 원념이 담긴 백입니다.”
“어찌 되었든 그것을 해결했다는 것이 아니더냐?”
“그렇습니다.”
“과연 무림을 양분했다던 혈교의 교주다운 신기로군. 그대가 무림인이 아니라면 데려가서 중히 쓰고 싶을 정도구나.”
“과찬이십니다. 전하.”
“약조를 하였으니 본 왕이 이를 지키도록 하마. 하면 검을 이리 주거라.”
감탄을 하던 경왕이 내게 손을 내밀었다.
이에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요검에 담겨있는 원념이 담긴 백은 어찌 해결했지만 검 자체가 워낙 사념이 강해서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경왕이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도통 무슨 소린지 알 수 없구나.”
“요검이란 것들은 주인을 선택하는 귀물입니다. 주인이 아닌 자를 거부하기도 해서 직접 만지시는 것은 위험할 것 같습니다.”
혈마검도 주인이 아닌 자의 혈맥을 폭주시킨다.
요검이라 불렸던 사련검이기에 그런 힘이 남아있지 않다고 확신할 수 없었다.
그 말에 인상을 쓰던 경왕이 수하를 불렀다.
“네가 검을 살펴보도록 하여라.”
“네. 전하.”
경왕의 수하가 내게서 사련검을 받았다.
검을 이리저리 살피기 위해 검신을 잡던 수하가 갑자기 전신을 파르르 떨었다.
“끄으으으.”
경왕이 화들짝 놀라서 물러나며 말했다.
“이게 어찌 된 일이냐?”
“아무래도 검이 그를 거부하는 것 같습니다.”
그때 경왕의 수하가 멍한 눈으로 검신을 잡더니 이내 혓바닥을 길게 내밀었다.
대체 왜 저러나 싶었는데, 경왕의 수하가 갑자기 대뜸 사련검의 검신을 정신없이 핥기 시작했다.
아주 지극정성으로 말이다.
‘!?’
경왕과 나는 그 광경에 순간 어처구니가 없어 말문을 잃고 말았다.
머릿속에 사련검이 했던 그 말이 떠올랐다.
이를 떠올리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소담검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는지 연신 혀를 찼다.
주인으로 인정하지 않은 자를 제 마음대로 조종하여 저런 더러운 행위를 하게 만들다니.
정말 기가 차다.
“이벽! 지금 무얼 하는 게냐!”
말문을 잃었던 경왕이 자신의 수하를 다그쳤다.
그때 정신없이 검을 핥고 있던 이벽이라 불렸던 경왕의 수하가 갑자기 검병을 거꾸로 쥐고서 검끝을 자신에게로 향했다.
“멈춰라!”
경왕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이벽이라 불린 수하는 자신의 가슴을 향해 검을 찔렀다.
그러나 검은 그의 가슴을 관통하지 않았다.
내가 검 끝을 검지와 중지로 잡아냈기 때문이었다.
-팍!
“윽!”
나는 다급히 이벽이라는 자의 손목을 쳐서 사련검을 떨어뜨렸다.
검이 손에서 떨어지자, 이벽이라는 자가 정신을 차렸는지 눈을 멀뚱멀뚱 뜨고서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전하. 이게 어찌?”
“아무 것도 기억이 나지 않느냐?”
“그, 그렇사옵니다.”
“이런 요물을 보았나.”
경왕이 떨어진 사련검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표정을 보아하니 질린 것만 같았다.
나는 바닥에 떨어진 사련검을 주워서 경왕에게 두 손으로 내밀었다.
그러자 경왕이 강한 거부감을 보였다.
“저리 치우거라.”
“검이 필요하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본 왕에게 가까이 가져오지 말라는 뜻이다.”
어지간히 사련검이 질렸나 보다.
치가 떨린다는 듯이 사련검을 쳐다보던 경왕이 내게 말했다.
“보아하니 그 요검이 그대를 주인으로 여기는 듯 하구나.”
“아닙니다. 제가 원념을 제압하여 그런 것이니, 그 점은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런 나의 말에 경왕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그대의 입으로 말하지 않았더냐? 요검은 주인으로 인정한 자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고 말이다.”
“전하.”
제발 그런 식으로 몰아가지 마라.
나도 주인으로 인정받고 싶지 않은 검이다.
그러나 경왕은 선심을 쓴다는 듯이 내게 말했다.
“본 왕은 그저 그 검에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는 것뿐이니, 감사의 의미로 그대에게 하사토록 하마.”
‘!!!’
그야말로 청천벽력과도 같았다.
끝
ⓒ 한중월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