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word Sense RAW novel - Chapter 2
2화 회귀(回歸)
“바보.”
“멍청이.”
키득거리고 있는 소년들이 나를 보면서 한 마디씩 던졌다.
푸른 옷과 붉은 옷을 입은 두 소년의 얼굴은 거울을 보는 것처럼 많이 닮아 있었다.
이들은 쌍둥이였다.
내 입에서 나도 모르게 헛말이 튀어나왔다.
“……꿈인가.”
그런 내 말에 두 쌍둥이 중 푸른 옷을 입은 소년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물을 끼얹어도 술이 안 깨나봐. 율랑현 망아지.”
오랜만에 듣는 말이었다.
율랑현 망아지.
10년 전에 시도 때도 없이 들어왔던 별명이었다.
“딸꾹.”
내 입에서 딸꾹질이 튀어나왔다.
술을 마시지도 않았는데 술독에 빠진 것처럼 숙취가 느껴졌다.
대체 무슨 영문인지 알 수 없었다.
그때 푸른 옷의 소년이 몸을 숙이며 내 머리 채를 세게 움켜잡았다.
-꽉!
“이 호남쌍쾌도의 송좌백님께서 말씀하시는데 술이 아직 안 깨냐?”
그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송좌백? 송우현?”
“이제 술 좀 깨나보네. 어디서 술 취한 척하면서 슬그머니 넘어가려고 해.”
“그래. 그래. 우리 호남쌍쾌도는 내기에서 이겼다.”
와……
미치겠다.
지금 이 상황이 어처구니가 없었다.
눈앞에 있는 푸른 옷의 소년은 송좌백이라고 쌍둥이의 형이었다.
그리고 추임새를 넣으면서 약간 어눌한 말투를 하고 있는 붉은 색 옷을 입은 소년은 동생인 송우현이었다.
꿈이라도 꾸는 것만 같았다.
10년 전이라고 해도 이 순간만큼은 그림으로 그릴 수 있을 만큼 생생하게 기억했다.
-짤랑!
송좌백이 다른 한 손에 붉은 주머니를 흔들어 보이며 씨익하고 웃었다.
“네가 한 입으로 두 말할까봐 미리 챙겨 놨다. 우리 호남쌍쾌도의 무림 출사를 위한 자금으로 요긴하게 쓰일 거야.”
“그래. 요긴하게 쓰일 거다.”
송우현이 어눌한 말투로 추임새를 넣듯이 따라 말했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알 수 없었다.
분명 나는 모용수의 검에 찔리고 이상한 푸른 불꽃이 몸에 번지면서 정신을 잃었다.
그런데 눈을 떠보니 소년 시절의 백흑쌍귀가 보였다.
이 시절을 제외하고는 말조차 붙여보지 못한 녀석들이었다.
잠깐 설마……
“오늘이 언제냐?”
“뭔 개소리…”
“언제냐고!”
윽박에 놀란 송좌백이 인상을 찡그리며 중얼거렸다.
“갑술년 계유월 아흐레였나.”
말도 안 돼.
갑술년이라고 한다면 딱 10년 전이었다.
꿈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생생했다.
녀석이 잡고 있는 머리채 때문에 통증도 느껴졌기에 거짓이 아니었다.
“진짜…..진짜 갑술년 계유월이야?”
“아니. 갑자기 무슨 소릴 해대는 거야. 그럼 오늘이 갑해년이라도 되는 줄 알았냐? 술을 하도 많이 마셔서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냐?”
녀석이 도통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그런데 이 재수 없는 얼굴마저도 너무나도 반가웠다.
“어어. 너 지금 뭐하냐? 설마 우는 거야?”
녀석의 말대로였다.
눈시울이 붉어졌는지 눈앞이 흐릿해졌다.
나는 내 머리채를 잡고 있는 송좌백을 왈칵 끌어안았다.
“야, 야 이 새끼 미친 거 아냐?”
“미친 거 같다.”
머리채를 잡고 있는데 끌어안으니 녀석이 당혹스러워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지금 기분이 좋아서 날아갈 것만 같았다.
혈교에 납치되어서 첩자로 이용만 당하다가 죽기까지의 모든 일들이 거짓말처럼 없었던 일이 되었다.
하늘에 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경이었다.
-팍!
송좌백이 거칠게 나를 밀쳐냈다.
그런데 녀석의 손에 넘어진 내 입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하하하하하하핫.”
기분이 너무 좋았다.
대(大) 자로 뻗어서 미친 듯이 웃어대는 나를 녀석들이 실성한 사람마냥 쳐다보았다.
상관없었다.
그렇게나 다시 옛날로 돌아가고 싶었다.
가문의 쓰레기니 율랑현의 망아지라 불리던 이 시절마저 너무나도 그리웠었다.
다시는 그 빌어먹을 혈교와는 절대로 엮이….
“…..계유월…..아흐레?”
웃음을 뚝 그치고 갑자기 심각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내 모습에 송가 쌍둥이 형제들이 진심으로 뒤로 슬금슬금 물러났다.
저들이 날더러 진짜 돌았나봐 하는 이런 소리는 하나도 신경 쓰이지 않았다.
중요한 건 지금이었다.
“씨바아아아아아알!”
내 입에서 터져 나오는 거친 욕설에 두 소년이 자신들의 허리춤에 차고 있는 도병으로 손을 가져갔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늦은 밤 객잔 1층에는 어떤 손님들도 보이지 않았다.
왜냐하면 지금 시각은 늦은 새벽 축시였다.
“빌어먹을! 아송? 아송?”
객잔 2층의 사람들이 깰 수도 있었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내 외침 소리에 객잔 한구석에서 잠이 반쯤 덜 깬 삼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눈이 처진 남자가 걸어 나왔다.
“도련님. 사람들 다 깨어요. 에구머니나. 물벼락이라도 맞으셨습니까?”
녀석은 내가 집에서 쫓겨날 때 따라온 하인이었다.
어렸을 적부터 망나니 같던 나를 충실하게 모셔온 유일한 측근이라 할 수 있었다.
“아송. 내 짐은?”
“2층 방에 있는 뎁쇼.”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서둘러 2층 계단으로 뛰어올라가려 했다.
그때 자칭 호남쌍쾌도인 쌍둥이 형제가 가로막았다.
“인마. 너 미치기라도 한 거야?”
“그래. 미친 거냐?”
지금 녀석들을 상대할 시간이 없었다.
“하. 젠장…..니들…….내가 미쳤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지금 당장 너희들 짐 챙겨서 객잔에서 도망치는 게 좋을 거야. 그렇지 않으면 평생 개처럼….”
살 수도 있다고 이야기 하려 했는데, 이 녀석들은 나와 상황이 조금 다르다.
어찌 되었든 두 사람의 인생을 살리는 셈 치고 말했다.
“그냥 도망쳐.”
“뭐라는 거야? 이 새끼가 진짜 술이 덜깼나? 나 호남쌍쾌도의 송좌…”
-퍽!
“억.”
기습적으로 먹인 주먹에 녀석이 자신의 코를 붙잡았다.
“혀, 형! 너 이 녀석!”
송좌백의 옆에 있던 송우현이 도를 뽑으려고 했다.
나는 재빨리 몸을 날려 녀석의 다리를 걷어찼다.
다리가 걸린 녀석이 바닥으로 넘어지자, 나는 녀석의 배를 팔꿈치로 찍어버렸다.
“끄엑.”
녀석의 입에서 돼지 멱따는 소리가 나왔다.
“도……도련님.”
하인인 아송이 눈이 휘둥그레져서 나를 쳐다보았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이 시절의 나는 명문 무가 출신인데도 무공은커녕 박투술 마저도 할 줄 모르는 애송이에 불과했다.
그런 내가 나름 무술을 배웠다는 녀석들을 쓰러뜨리니 놀랄 만도 할 수밖에.
의기양양할 일은 아니었다.
아무리 그 시절에 삼류에 불과하다고 해도 나름 혈교의 무사들이 익히는 기본 외공과 박투술 등을 익혔다.
몸이 그 시절만은 못해도 당장에 이 어리숙한 쌍둥이 정도는 쓰러뜨릴 수 있었다.
“이….이 새끼….언제 무술을 익힌 거냐?”
송좌백이 코피가 나는 코를 부여잡고서 위축된 눈빛으로 물었다.
“됐고 사람답게 살고 싶으면 빨리 도망이나 가!”
그 말과 함께 나는 얼른 계단을 뛰어올라갔다.
기세가 눌린 녀석들은 나를 붙잡을 수 없었는지 영문 모를 표정만 하고 있었다.
2층으로 뛰어올라온 나는 방을 헤맸다.
“왼쪽이에요!”
1층에서 아송이 소리쳤다.
10년 전의 일이다 보니, 묵었던 방을 기억할 순 없었다.
아송의 말대로 방에 들어가 보니, 짐 보따리와 함께 검병에 푸른 실을 감아놓은 가죽 단검 하나가 침상에 올려져 있었다.
“아…..”
오랜만에 보는 단검에 내 입에서 감격의 탄성이 흘러나왔다.
그냥 도망칠 수도 있었지만 이걸 가지러 온 것은 이 단검이 어머니의 마지막 유품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날 유품을 잃어버린 것이 천추의 한이었었다.
빨리 챙겨서 도망쳐야 한다.
-슥!
단검을 붙잡았다.
그 순간,
-끼야아아아아아악!
“헉!”
고막이 찢어질 듯한 날카로운 비명 소리에 놀란 내가 단검을 떨어뜨렸다.
모골이 송연해질 만큼 괴이한 일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나는 바닥에 떨어진 괴물을 쳐다보듯이 단검을 내려다보았다.
우연일까 싶어 다시 단검을 주우려 손을 뻗었다.
-끼야아아아아아아악!
“으악!”
놀라서 어머님의 유품이고 뭐고 단검을 냅다 패대기쳐버렸다.
무슨 귀신 곡소리도 아니고 대체 이게 무슨 괴성인지 알 수가 없었다.
“헉헉.”
소름이 끼쳐서 식은땀마저 흘렀다.
단검을 주우면 또 그 괴성이 들릴까봐 겁이 나서 망설여졌다.
-찌익!
혹시나 하는 마음에 침대보를 찢어서 여러 겹으로 접은 뒤에 단검을 덮었다.
그리고 나서 주워보았다.
그러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무슨 일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렇게 해서라도 들고 가야 할 듯 싶었다.
얼른 방을 나와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아직까지 쌍둥이 두 형제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도망가랬잖아!”
“아직 코피도 안 멎었어. 인마! 그리고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우리가 왜 도망쳐야 하는데?”
형인 송좌백이 도통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되물었다.
아 더는 모르겠다.
어차피 내 몸 하나 구제하기도 바쁜데 이 녀석들을 챙기고 자시고 할 틈이 없었다.
“됐다. 알아서들 해라.”
“뭐?”
“가자. 아송. 서둘러….”
내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객잔 바깥에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끄악!”
‘!!!’
비명소리를 듣는 순간 나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듯 했다.
10년 전으로 회귀했던 환희는 사라진지 오래다.
하필 회귀를 해도 죽어도 다시는 겪고 싶지 않았던 그 순간으로 돌아온 것일까?
“이, 이게 무슨 소리야?”
비명소리에 놀라하는 쌍둥이 형제를 보며 내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혈교.”
“히익!”
내 말에 두 형제가 기겁을 하고 말았다.
우는 아이도 뚝 그치게 할 만큼 악랄한 명성을 자랑하는 사파 최악의 단체 혈교.
명색이 무가 출신인 쌍둥이들이 혈교를 모를 리가 없었다.
“빌어먹을…..”
내 입에서 절망스러운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하고 많은 날 중에서 왜 오늘인가?
갑술년 계유월 아흐레.
내가 이 망할 혈교에 납치되었던 그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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