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word Sense RAW novel - Chapter 202
70화 악인의 칭호 (1) >
풍영팔류(風影八類).
팔대고수 중 바람의 신이라고 불리는 무정풍신 진성백의 비기다.
아무리 연마를 해도 벽을 넘기 전에는 잔상을 최대 넷 이상 만들기 힘들었는데, 한순간의 깨달음이 비기의 진수를 한층 위로 끌어올렸다.
여덟로 나누어진 잔상들이 각기 다른 무공을 펼친다.
권(拳), 장(掌), 각(脚), 지(指), 조(爪), 도(刀), 검(劍), 창(槍)의 초식들이 조화를 이루는데, 마치 여덟 절세고수가 합공을 하는 듯 하다.
-차차차차차차창!
여덟 잔영들이 만들어낸 절초의 향연을 가짜 혈마가 검결지로 만들어낸 예기의 검망으로 정신없이 이를 막아내고 있었다.
확실히 벽을 넘은 초인은 초인이다.
비기 풍영팔류의 끊임없는 압박에도 어떻게든 힘겹게 검초를 막아내고 있었다.
경험이란 부분을 무시할 수가 없다.
결정적인 수들은 어떻게든 피하고 있었다.
‘서둘러야 해.’
-버틸 수 있겠어?
소담검이 걱정스러운지 물었다.
놈과 겨루는 도중 스스로의 한계를 깨면서 벽을 넘어섰지만 지금 나는 꽤나 오랫동안 혈마화와 진혈금체를 펼치고 있었다.
그 덕분에 막 벽을 넘어선 내가 가짜 혈마를 밀어붙이고 있지만, 곧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한계에 부딪칠 거다.
그 전에 빠르게 승부를 봐야 한다.
-경신술에서 앞선다고 해도 저 자의 쾌검은 여전히 너보다 빠르다. 운휘.
알고 있어.
저 손을 멈추게 해야 한다.
아니면 저 속도로도 감당할 수 없는 공격을 가하거나.
-검법을 꼭 풍영팔류의 검법으로 해야 해?
소담검의 그 말에 나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지금 내가 펼치고 있는 검법은 풍영팔류의 무영검법이었다.
한데 풍영팔류는 여덟 무공이 조화를 이루는데 거기서 다른 무공을 펼친다면 과연 이 조화가 유지될지, 내 몸이 버틸지 장담할 수 없다.
-무리하지마라. 운휘. 기존의 무공을 갑자기 변형시킨다는 것은 그만큼의 위험부담을 져야 한다.
알고 있어.
한데 너희 둘이 하는 말 모두 일리가 있다.
만약 풍영팔류에 기존의 팔류종이 아니라 더 강한 무공을 활용할 수 있다면 초식의 위력은 기존을 훨씬 상회할 거다.
충분히 위험부담을 질만한 가치가 있다.
-팟!
무영검법에서 검초를 변화시켰다.
신로 성명검법의 제 1초식 호아세검(虎牙勢劍)이다.
-두드드득!
‘으윽.’
검초를 펼치는 순간 기존의 풍영팔류를 펼칠 때와 달라졌다.
그렇지 않아도 풍영보로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며 여덟 절초를 펼치고 있었는데, 그 중 한 초식이 절세 검초가 되자 육체의 부담이 배가 되었다.
무리한 움직임으로 근육이 파열되어 비명을 지르는 것이 느껴질 정도다.
하지만 그 효과는 곧바로 나타났다.
-차차차차차차창!
“이, 이게 대체…..”
정신없이 풍영팔류의 초식을 막는데 급급하던 가짜 혈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렇지 않아도 겨우 막고 있었는데, 신로 성명검법이 더해지자 결국 그 아슬아슬하던 고비가 무너지고 말았다.
-파파파파파파파팍!
“크헉! 컥!”
호아세검을 비롯한 풍영팔류의 여덟 초식들을 펼치는 잔상들이 그를 관통하듯이 스쳐지나갔다.
잔상은 온몸을 난도질 하듯이 베고 찌르고 타격을 가했다.
풍영팔류에 갇힌 놈은 허공을 이리저리 튕겨나가며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끝을 낸다!’
마지막 일검으로 놈의 목을 노려야 한다.
목이 잘리면 아무리 재생력을 가져도 살아날 수 없다.
나는 놈의 목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기다렸다!”
-팟!
목으로 검이 날아가는 순간 놈의 검결지가 내 미간을 찔러왔다.
날카로운 예기가 전광석화처럼 날아들었다.
‘!!!’
당하면서도 마지막 한 수를 숨겨두고 있었던 것이다.
찰나의 순간 나는 빠르게 몸을 밑으로 비틀었다.
그리고 놈의 검결지를 아슬아슬하게 피함과 동시에 원래의 목표였던 목이 아닌 허리를 통째로 베어냈다.
-촤악!
“끄아아아악!”
허리가 갈라지며 놈의 입에서 절규에 가까운 비명이 터져 나왔다.
상반신이 흘러내리며 놈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갈라진 하반신에서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목을 잘라!
그래야지.
몸을 반 토막으로 냈다고 해도 방심할 수 없다.
나는 앞으로 고꾸라진 놈에게로 서둘러 다가가려 했다.
그 순간이었다.
-두드득! 두드득!
번개를 맞는 것처럼 온몸이 엄청난 통증으로 짜릿해졌다.
-털썩! 댕그랑!
그 고통이 얼마나 강한지 저절로 무릎이 꿇려졌다.
검마저 떨어뜨렸다.
-운휘!
-괜찮아?
전혀 안 괜찮다.
풍영팔류에 성명검법을 더한 그 반작용이 이렇게나 심할 줄은 몰랐다.
전신의 근육이 완전히 파열되었는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슈우우우우우!
유지하고 있던 진혈금체도 의지와 상관없이 풀렸다.
-혈마화도 풀렸어.
그렇겠지.
상단전의 염도 거의 바닥이 났다.
호흡이 거칠어진다.
“하아….하아…..”
벽을 넘어서기 전부터 한계 이상으로 육신을 몰아붙인 것 같다.
회복 능력으로도 이를 감당하지 못했다.
그때 눈앞에 꿈틀거리며 다가오는 뭔가가 보였다.
-세상에. 저러고도 움직이다니.
소담검이 혀를 내둘렀다.
꿈틀거리며 기어오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몸이 반으로 잘려나간 가짜 혈마였다.
상반신만 남았는데 용케 숨이 붙어 있었다.
“쿨럭….쿨럭…..나…..혼자…..갈 것 같으냐.”
지독하다.
회복능력 때문에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것 같다.
반면 나는 단순한 상처가 아니라 육신을 한계 이상으로 혹사시켜서인지 몸이 아직 움직이지 않았다.
조금만이라도 회복되면 놈의 목을 벨 수 있는데 꿈적할 수가 없다.
“크흐흐…..기다려라. 다 와간다.”
기어오는 놈과 나의 사이는 고작 두 보 정도에 불과했다.
놈이 바닥에 떨어진 남천철검으로 손을 가져갔다.
‘움직여! 움직이라고!’
가짜 혈마가 검을 움켜쥐려는 순간이었다.
-푹!
“컥!”
놈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들었는데 놈의 등에 검이 꽂혀 있었다.
“우리 혈마님은 늘 위험을 달고 사는군.”
이죽거리는 목소리를 듣는 순간 온몸에 긴장이 풀렸다.
가짜 혈마의 등을 찌른 자는 바로 백혜향이었다.
무림 연맹의 포위망에 갇혀서 못나올 거라 여겼는데, 그녀가 이곳까지 오다니.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해결할 일이 있었다.
“아쉽게 되었군. 나를 죽이고 싶었을 텐데.”
놈이 분노로 일그러진 얼굴로 나를 노려보았다.
그런 놈에게 물었다.
“네놈들 조직은 대체 뭘 하려는 거지?”
“……그걸….내가……이야기할 것…..같으냐?”
역시 입이 무겁다.
백혜향이 그런 놈의 머리통을 밟으며 이죽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다 죽어가는 놈이 꼴에 의리를 지키는 거냐?”
-꽈악!
그녀가 발에 힘을 주자, 놈의 머리가 바닥에 짓눌려서 파고들었다.
금방이라도 머리통이 박살날 것만 같다.
“끄으으으으.”
“말해.”
“끄으으….죽여라.”
“원하는 대답이 아닌데.”
그녀가 더욱 힘을 주는데도 놈은 죽이라는 말만 되풀했다.
이에 백혜향이 어깨를 으쓱하며 나를 쳐다보았다.
“그렇다는데?”
어차피 놈이 입을 열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죽여야 해.”
“이 상태면 고통스럽게 죽을 텐데? 설마 편안하게 보내주려는 거냐? 자비로운 혈마님이시로군.”
“……목을 자르지 않으면 계속 숨이 붙어있을 거야.”
“뭐?”
그녀가 그 말에 신기하다는 듯이 놈을 내려다보았다.
고통스러워하지만 여전히 살아있다.
“끄으으으.”
“몸이 반 토막이 나고 심장을 찔렀는데도 죽지 않는다라. 고문하기 딱 좋은 몸이군.”
‘!?’
그 말에 가짜 혈마의 표정이 굳어졌다.
저런 발상을 떠올리다니, 한편으로는 참 대단하다.
놈을 잠시동안 흥미롭게 쳐다보던 그녀가 이내 심장부에 꽂았던 검을 뽑고는 단번에 목을 내리쳤다
-촥!
놈의 머리가 바닥을 뒹굴었다.
눈을 부릅뜨고서 죽은 놈을 보니 이제야 안도가 된다.
벽을 넘어선 고수가 회복 능력까지 갖추니 정말 까다롭기 그지없다.
대체 이놈의 정체가 뭘까?
의아해하는데 백혜향이 내게 다가왔다.
“주위를 보아하니 한바탕 전쟁이라도 치른 것 같군.”
그녀의 말대로 주변 일대가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주변의 나무들이 부러지고 수많은 검흔에 난리도 아니었다.
초인의 영역에 이른 두 고수가 겨룬 것이니, 오히려 이 정도로 끝난 게 양호하다고 할 수 있다.
백혜향이 나를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너 혹시 벽을 넘었나?”
그런 그녀의 물음에 나는 부정하지 않았다.
이에 그녀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하!”
나의 성장 속도에 기가 막혔나 보다.
나 역시도 이런 상황에서 벽을 넘을 줄은 몰랐다.
확실히 위기는 사람을 성장시키는 큰 원동력이 되는 것 같다.
나도 그녀에게 궁금한 것을 물었다.
“한데 광서성 일대를 무림 연맹에서 틀어막았을 텐데, 어떻게 온 거지?”
“경공으로.”
“…….”
설마 농담을 한 건가?
그녀의 농담은 처음 들어보는 것 같다.
백혜향이 피식 웃더니 말했다.
“소수 정예로 왔다. 명색이 본교의 교주인데 고작 무림 연맹의 함정 따위에 죽게 내버려둘 순 없잖아.”
“내가 죽으면 당신이 교주가 될 수 있을 텐데?”
“뭐. 그것도 나쁘지 않지만 아직 너를 맛보지 않아서 말이야.”
‘!?’
색기 넘치게 혓바닥으로 윗입술을 핥으며 하는 그녀의 말에 헛웃음이 나왔다.
지극히 그녀다운 이유였다.
-두드드드득!
온몸의 근육이 풀리는 것이 느껴졌다.
확실히 벽을 넘고 나니 회복 속도가 빨라진 것 같다.
전신의 근육이 파열된 것조차 고작 일다경 안에 낫는 것을 보면 말이다.
“소수 정예면 나머지는?”
“그 느려터진 것들은 언제 도착할지 모르겠군.”
나를 도우려고 혼자서 서둘러서 왔다는 건가.
묘한 기분이 든다.
누구도 따를 것 같지 않던 그 오만하던 여자가 갈수록 색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백혜향이 내게 말했다.
“아무튼 계속 여기 있으면 귀찮은 것들이 달라붙을 테니, 이제 본교로 돌아가도록 하지.”
본교로 돌아가는 그녀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이에 그녀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설마 이 와중에 우군도독부와의 일을 마무리하려는 거냐?”
“이미 그건 해결했어.”
“뭐?”
그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내가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거라고 여겼었나?
“경왕과 거래를 했으니 더 이상 무림 연맹에서 관을 움직여 본교를 노리는 짓은 하지 못할 거야.”
“경왕이라면…..설마 황자를 말하는 거냐?”
“맞아.”
황자까지 거론되니 그녀가 놀라했다.
그저 우군도독부에서의 재판 정도로 여겼는데, 대연제국의 황위 계승자로 거론되는 세 황자들 중 한 사람과 거래를 했다고 하니 이런 반응이 나오는 것도 당연했다.
나는 그 거래에 관한 이야기를 그녀에게 간략하게 이야기해주었다.
물론 요검에 관한 것은 제외하고 말이다.
“하! 하다하다 황족과 거래를 한 거냐? 너란 녀석은 정말…..”
뒷말을 잇지 못한 백혜향이 나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그러다 내게 말했다.
“하면 이제 본교로 돌아가도 될 텐데, 왜 가지 않겠다는 거지?”
“그리 된다면 광서성 일대가 막혀서 계획대로 사파를 통합하는데 지장이 생길 거다.”
그런 내 말에 그녀가 고운 미간을 찡그리며 말했다.
“벽을 넘어섰으니 너와 일존이 함께 움직여서 태극검제와 무당파를 처리하면 활로가 생길 텐데?”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렇게 된다면 무림 연맹은 그걸 빌미로 전력으로 싸우려들 거다.”
지금은 중독된 포로들의 해독제를 찾는다는 명분으로 잠시 휴전 상태라 할 수 있다.
그런 와중에 무림의 명숙이자 무림 연맹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두 팔대 고수 중 한 사람이 죽기라도 한다면, 대대적인 전쟁의 명분을 주게 되는 셈이다.
사파를 통합하기도 전에 말이다.
“그럼 어쩌려고?”
그녀의 물음에 나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마침 내게는 무림 연맹의 이신성 중 하나인 남천검객의 제자라는 신분이 있지.”
아직까지 정파 무림 연맹의 누구도 눈치 채지 못한 신분이다.
그 말에 그녀의 한쪽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너……설마 혼자서 움직일 셈이냐? 제정신이 아니군. 지금 네 신분은 단순한 교인이 아니라 혈마….”
“여기 나를 대신해줄 혈마가 있잖아.”
그런 나의 말에 백혜향의 표정이 묘해졌다.
* * *
-타타타타탁!
혈도를 점한 것을 풀자, 얼마 있지 않아 전진교의 교주 만종 진인이 정신을 차렸다.
깨어나자마자 그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내게 물었다.
“소 소협?……이게 어찌 된 일인가?”
“진인. 도중에 또 다른 혈마가 나타났습니다.”
“또 다른 혈마?”
“그자가 아니었으면 진인과 저 모두 죽을 뻔 했습니다.”
만종 진인이 도통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게 대체 무슨 소린가? 그러고 보니 자네 아까 전에…..”
바로 그때였다.
우리 앞으로 뭔가가 굴러 떨어졌다.
그것은 부서진 가면을 쓰고 있는 머리통이었다.
“이, 이 자는….”
한 번 싸워봐서 그런지 곧바로 알아보았다.
-팍!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머리통 옆으로 붉은 색으로 검신이 도금 되어 있는 가짜 혈마검이 꽂혔다.
“이건 대체?”
“진인. 저깁니다!”
나는 막 뭔가를 눈치 챈 것 마냥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그곳에 악귀 가면을 쓴 붉은 머리카락에 흑포를 두르고 있는 누군가가 서있었다.
만종 진인이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
“혈마!”
그런 만종 진인에게 악귀 가면을 쓴 붉은 머리카락을 흩날리는 혈마가 말했다.
“고작 가짜 따위에게 휘둘리다니 어리석기 짝이 없군.”
“뭐?”
악귀 가면의 혈마가 허리춤에 차고 있던 검을 뽑았다.
그러자 은빛 검신에 독특한 문양을 하고 있는 혈마검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윽고 붉은 빛이 일렁이며 혈마검의 검신이 붉게 변했다.
‘!!!’
“이게 진짜 혈마검이라는 거다.”
그 말에 만종 진인이 붉게 도금된 검을 어처구니가 없어하며 쳐다보았다.
가짜 혈마검이라는 것이 드러났으니 말이다.
나는 다시 검집에 혈마검을 집어넣는 악귀 가면의 혈마를 향해 눈을 찡긋했다.
-팟!
그러자 그가 어딘가로 신형을 날렸다.
나는 혼란스러워하는 만종 진인에게 경악스러워하는 척하며 말했다.
“이럴 수가! 저 자가 진짜 혈마라면 이 자는 대체 누구란 말입니까?”
끝
ⓒ 한중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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