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word Sense RAW novel - Chapter 205
71화 표물 운송 입찰 (2) >
살갑게 인사하던 분위기가 한순간에 싸늘해졌다.
소란스럽던 객잔도 고요하기 그지없었다.
당혹스러운지 표두 장경의 말문이 막히자, 자신의 위치를 각인시키기 위해 내게 살갑게 대하던 개방의 후개 홍걸개의 다소 식은 목소리로 말했다.
“객원 표사라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소 형.”
“말 그대로요. 황영 표국의 객원 표사로 일하기로 했습니다.”
“하……”
홍걸개가 나와 황영 표국의 표두인 여자 표사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이렇게 되면 표두 장경이 지금까지 했던 행동들은 황영 표국만이 아니라 나조차 모욕한 게 되어버린다.
-이런 쪽으로는 비상하단 말이야.
소담검이 키득거렸다.
주위에서 조금씩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를 의식했는지 후개 홍걸개가 불쾌함을 감추지 않고 내게 말했다.
“정말 객원 표사가 확실합니까?”
그리고 시선을 여자 표사에게로 가져갔다.
잠시 놀라했던 여자 표사가 아무렇지 않은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아요. 저희가 이번 표물 입찰을 위해 고용했어요.”
눈치가 없진 않다.
전음을 보낸 것도 아닌데 잘 맞춰주는걸 보니 말이다.
여기서 기회를 놓칠 수야 없지.
나는 표두 장경을 더욱 밀어붙였다.
“아까 저희 표두께 다른 일이 어울린다고 이야기한 것 같은데, 대체 무슨 일인지 알려줄 수 있겠습니까?”
“…….”
표두 장경이 굳어진 얼굴로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기분이 나쁜가봐.
아니.
기감을 열어서 날 살피고 있어.
-기감을?
나도 처음 알았다.
벽을 넘고 나니 상대가 나를 가늠하는 것이 느껴진다.
기감이라는 것은 상대에게서 흘러나오는 기운으로 어느 정도 무공 수위에 이르렀는지 추측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
지금 나는 모든 기운을 갈무리하고 있다.
작정하고 숨겨두고 있기에 이곳에 있는 누구도 나를 가늠할 수 없다.
하지만 이신성으로 알려진 명성이 있으니, 기운을 숨기고 있다는 것 정도는 바보가 아니라면 어느 정도 추측할 수 있을 거다.
‘살짝 자극을 줘볼까?’
기감에 경계심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기운을 저 자에게로 집중하면…..
-흠칫!
표두 장경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많이 놀랐는지 당혹스러운 기색으로 후개 홍걸개를 쳐다보았다.
개방의 차기 방주인 그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 같다.
눈치가 빠른 표두 장경과 달리 약관의 나이에 불과한 후개 홍걸개는 젊고 자신의 위치를 과신하는지 내게 힘을 주어 말했다.
“소 형. 그대가 황영 표국의 객원 표사라면 나 역시 옥양 표국의 객원 표사요. 우리 표두를 압박하는 것은 곧 나를 무시하는 것이고 나아가 개방을 무시하는 것이오.”
역시 개방을 내세웠다.
그래 조직도 하나의 힘이니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아쉽네.
내세울 조직이 세 곳이나 있어도 지금 당장 써먹을 수 있는 곳은 별로 달갑지 않은 익양 소가 한 곳뿐이다.
아무리 명성이 자자하더라도 구파일방의 하나인 개방에 비하면 조족지혈이니 굳이 내세울 가치가 없다.
그때 누군가가 나섰다.
“개방의 이념은 충의보국과 강호정의인데, 언제부터 표국의 일에 자신들의 이름을 걸고 나섰는지 모르겠구려.”
나선 자는 다름 아닌 조성원이었다.
그와 함께 사마영과 송우현이 오고 있었다.
스승님만큼은 아니지만 근육질의 거구에 머리털과 눈썹까지 없어서 험악한 인상을 하고 있는 송우현의 인상은 위압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송좌백 저 녀석은 뭐하고 있는 거야?
‘나참.’
송우현의 뒤쪽에 가려있었는데 볼이 잔뜩 부풀어져 있다.
……이제 국수가 나왔는지 허겁지겁 입에 쑤셔 넣고 나온 모양이다.
후개 홍걸개가 불쾌하다는 듯이 조성원에게 말했다.
“당신은 뭔데 개방이 어쩌고저쩌고 따지는 거요.”
“나는 소운휘 공자를 주군으로 모시고 있는 원성이요.”
이성을 잃어서 난리 칠까봐 우려했는데 다행이 조성원은 침착했다.
목소리도 변조해가면서 홍걸개가 자신의 정체를 눈치 채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홍걸개가 조성원을 향해 피식 웃더니 내게 빈정거리며 말했다.
“고작 아랫사람이었군. 소 형은 아랫사람들 관리가 안 되는 모양이오? 눈치도 없이 이리 끼어드는 것을 보면 말이오.”
“거지 주제에 아랫사람 윗사람 따지는 게 웃기네요.”
역시나 가만히 있을 사마영이 아니었다.
안 그래도 계속 벼루고 있던 그녀다.
홍걸개가 얼굴이 확 달아올라서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
“하! 거지 주제에? 네놈은 내가 누군 줄 알고 그딴 소리를 지껄이는 거냐?”
“거지가 거지라고 했다고 성질내는 건 처음보네.”
맞는 말이다.
“뭐!”
“하긴 거지가 구걸해서 먹지 않고 객잔에 들어와서 멀쩡한 사람들이랑 겸상부터 하는 게 문제가 있는 거지만.”
“이놈!”
결국 참지 못한 후개 홍걸개가 사마영을 향해 장법을 펼쳤다.
항룡십팔장의 항룡유회(亢龍有悔)였다.
과연 장법으로는 무림에서 세 손가락에 꼽힌다는 명성만큼이나 웅후한 위력을 지녔다.
재능이 떨어진다는데도 장세가 굉장했다.
다만 사마영의 무공 실력이 녀석보다 훨씬 위라는 게 문제지만.
-스스스슥!
사마영이 가볍게 상반신만을 움직이며 홍걸개의 장법을 피해냈다.
그 광경에 객잔 내 사람들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명색이 개방의 후개의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아……”
사마영을 여자 표사도 눈을 반짝이며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거지인 홍걸개와 달리 인피면구로 잘생긴 귀공자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사마영이 멋있어 보이나 보다.
“이놈. 한수 재간이 있었구나. 좋다. 네놈의 그 건방진 주둥이를 부숴주마!”
화가 난 홍걸개가 장초를 이어가려고 했다.
초식에 살기마저 실려 있다.
나는 그런 그의 손목을 전광석화처럼 움켜잡았다.
-팍!
“이거 놔!”
홍걸개가 공력을 끌어올려 억지로 손목을 뿌리치려 했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놈의 동공이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렸다.
초인의 영역에 이른 내게 녀석의 공력은 그야말로 조족지혈에 불과했다.
“홍 형. 이쯤 합시다.”
나는 그에게 낮은 어조로 경고했다.
홍걸개의 눈이 좌우로 빠르게 돌아갔다.
주위에 보는 눈이 많아서 그런지 눈치를 보던 홍걸개는 결국 공력을 거두었다.
계속 해봐야 망신 당할 걸 본인이 더 잘 알 것이다.
“……동료들이라고 했소? 이번만큼은 소 형의 체면을 봐서 이쯤으로 끝내겠소.”
그 와중에 자신의 체면을 챙긴다.
사마영이 한 마디 더 쏘아붙이려는 걸 고개를 저어서 만류했다.
그녀가 아쉽다는 듯이 입맛을 다셨다.
어차피 이들의 체면은 구겨진 상태였고 이 이상 더 해봐야 실력으로 갑질 밖에 되지 않는다.
정도의 이신성에 걸맞는 모습을 보여주려면 여기서 끝내는 게 깔끔하다.
“장 표두. 아까 바쁘다고 하지 않았소?”
“맞습니다.”
“그럼 이럴 겨를이 없겠구려.”
“아아! 그렇지요. 아쉽지만 식사는 미루시지요.”
후개 홍걸개의 말에 눈치가 빠른 표두 장경이 동의했다.
그들은 오리탕이 나오지도 않았는데, 가게문이 닫히는 것 마냥 다급히 객잔을 빠져나갔다.
객잔 내 표사들과 손님들이 속이 시원하다는 표정들을 짓고 있었다.
명분이 받쳐주니 주위 사람들의 응원도 받고 좋은 일이다.
조성원이 내게 전음을 보냈다.
그래. 나도 고작 이 정도로 네 복수라고 생색낼 생각은 없다.
어쨌거나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으니, 이제 저 여자 표사와 대화를 나눠 볼 까나.
그때 송좌백이 먼저 나서서 여자 표사에게 말을 걸었다.
“소저. 괜찮습니까?”
…….아.
-저거저거 또 치명적인 척 하네.
여자 표사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더니 기어코 말을 거는구만.
국수를 뱃속에 쑤셔 넣기 바빴던 녀석이 뭐라도 한 것 마냥 낯짝도 참 두껍다.
-그보다 시선처리부터 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소담검의 말대로 송좌백 녀석 말하는 내내 눈이 계속 여자 표사의 가슴 쪽을 힐끔 거리고 있다.
아무리 눈을 뗄 수가 없어도 저러면 좋다가도 싫어지겠다.
그때 여자 표사가 녀석을 지나쳐 내 쪽으로 다가와 포권을 취하며 인사했다.
“황영 표국의 표두 황혜주라고 합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에 송좌백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러게 목소리도 평범하게 하고 시선처리 좀 하지.
송좌백이 저러거나 말거나 황혜주라고 하는 여자 표사가 내게 계속 말을 이어갔다.
“과연 명성만큼이나 의협심이 높으신 분 같습니다.”
“아닙니다.”
“한데 어찌 해서 저희를 도와주신건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나를 쳐다보는 그녀의 눈동자는 의구심으로 가득했다.
상황 상 이쪽의 도움을 받기는 했는데, 쉽게 믿음이 가지 않나보다.
표두 황혜주가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혹 저에게 관심이 있으신 거라면…..”
황혜주의 뒤에 있는 사마영의 눈동자가 나를 빤히 응시하고 있었다.
무감정한 눈빛이었는데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나는 재빨리 황혜주의 말을 끊었다.
“그런 게 아닙니다. 황 표두님의 말씀처럼 저희도 부탁드릴 게 있어서 부득이 이걸 기회삼아 나선 겁니다.”
“휴우.”
그 말에 황혜주가 마치 다행이라는 듯이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뭐지?
이건 이거 나름대로 뭔가 기분이 찝찝한데.
묘한 기분이 들고 있는데 황혜주가 내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 부탁이 뭔지 여쭤 봐도 괜찮겠습니까?”
“일단 자리를 옮기시죠.”
여기서 이야기하기에는 이목도 듣는 귀도 많았다.
그렇게 황영표국의 표사들과 우리들은 객잔을 빠져나와 인적이 드문 골목으로 장소를 옮겼다.
이목이 드문 곳으로 위치를 옮기자 표사들의 경계심이 한층 강해졌다.
이들의 표두 황혜주가 재차 물었다.
“이제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이에 나는 빙그레 웃으며 답했다.
“황 표두께서 저희를 객원 표사로 고용해주셨으면 합니다.”
“네?”
경계심이 가득했던 그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려운 부탁이라도 할까봐 곤란해하고 있었는데, 정말로 객원 표사로 써달라는 말에 당황한 듯 했다.
그때 황영 표국의 다른 표사 한 사람이 말했다.
“대체 무슨 의도이십니까? 아무리 저희가 작은 표국이라고 해도 이신성 쯤 되시는 분의 유희 거리가 아닙니다.”
이걸 또 이렇게 받아들일 수 있구나.
하긴 특별한 이유도 없이 그저 객원 표사로 받아달라고 하니 의심부터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사정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사정이요?”
여기서 본래 목적을 말할 수는 없다.
장강수로십팔채의 수적들과 접촉하기 위해서라고 하면 어떤 반응을 보이겠는가.
적당히 둘러댈 핑계 거리를 생각해뒀었다.
나는 진지하게 그들에게 말했다.
“이 이야기는 여러분들만 알고 함구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함구요?”
“다른 곳에 새어나간다면 여러분들도 위험해질 수 있습니다.”
그 말에 황영 표국의 표사들이 서로를 쳐다보며 사뭇 심각해졌다.
목젖이 떨리는 것을 보니 전음으로 상의를 하고 있었다.
이윽고 표두 황혜주가 내게 말했다.
“설사 객원 표사로 받지 않는다고 해도 죽을 때까지 함구하도록 하겠습니다.”
발을 뺄 여지는 여전히 남겨놓는다.
작은 표국이라고 해서 만만하게 볼 일은 아닌 것 같다.
이에 나는 목소리를 낮추고서 말했다.
“개방의 후개나 개방 방도들이 객원 표사로 나서는 게 이상하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습니까?”
“그건…..”
이상하게 여길 수밖에 없다.
거지로 살아가는 자들이 객원 표사로 지원하는 것도 이상하지만, 그들이 굳이 이런 일을 할 이유가 없다.
백만 방도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 만큼 개방은 중원 전역에 큰 인력망을 갖추고 있다.
그런 그들이라면 굳이 표국과 연을 맺지 않아도 자체적으로 모든 게 가능하다.
“우린 그걸 조사하고 있습니다.”
나름 그럴 듯한 이유에 표두 황혜주가 주위를 둘러보고서 내게 속삭이듯이 물었다.
“혹시 무림 연맹의 밀명입니까?”
그것까진 생각해본 적 없는데 좋은 핑계거리네.
나는 긍정을 표하듯 슬쩍 미소를 지었다.
“아아아!”
이에 그녀가 납득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말이 통하려나 싶었는데, 그녀가 날카롭게 지적했다.
“한데 그렇게 중요한 밀명이라면 굳이 저희 같은 작은 표국보다 중견 표국들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낫지 않습니까?”
이 여자 순진한 것 같으면서 은근히 날카롭다.
뭐 그렇지만 내가 이런 자들을 한둘 상대해봤겠는가.
“원래는 그러려고 했습니다. 한데 저희도 사람인지라 여러분들께 민폐를 끼치게 되었습니다.”
“민폐라뇨?”
“저희가 끼어들면서 옥양 표국이나 개방에서 저나 동료들 말고도 귀 표국을 아니꼽게 여기고 있을 겁니다.”
‘!?’
이건 염두하지 못했나 보다.
-너 설마 그래서 거지 놈을 상대로 적당히 끝낸 거야?
그것도 어느 정도 포함되었지.
그래서 사마영이 나서서 녀석을 약 올렸을 때도 가만히 내버려둔 거다.
이들이 자신들 스스로 우리를 원할 수 있도록 말이다.
예상대로 황혜주와 표사들이 난처해하고 있었다.
이제 쇄기를 박아야겠다.
“황 표두. 혹시나 저희가 객원 표사인 것이 아닌 게 알려지기라도 한다면 여러분들이 피해를 입을까 제 마음이 무겁습니다. 하니 부디 객원 표사로 받아주셔서 저희가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소 대협…..”
그 말에 표두 황혜주를 비롯한 표사들이 감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마치 진정한 협객을 보는 듯한 그런 눈빛들을 하고 있었다.
반면 일행들은 나의 입에서 물 흐르듯이 나오는 거짓말에 혀를 내두르고 있었다.
* * *
그렇게 황영 표국의 객원 표사가 된 우리들은 이들과 함께 입찰이 이뤄질 적하물 창고가 있는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포구의 배가 정박한 곳 앞이었는데, 얼마 있지 않아 표물 운송 입찰을 시작한다고 한다.
금화평 상단은 이곳 호남성 뿐만이 아니라 중원에서도 다섯 손가락에 꼽히는 거대 규모의 상단이기에 경쟁이 치열할 거라고 했다.
한데 아까부터 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다.
송좌백은 표두 황혜주에게 푹 빠졌는지 한시도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정작 녀석의 마음을 훔친 황혜주는 나와 나란히 걷고 있는 내내 흡사 소녀와 같은 얼굴로 사마영을 힐끔힐끔 쳐다보고 있었다.
-이거 영영이 때가 생각나는데.
어쩜 나와 한마음일고.
다음부터는 사마영에게 잘생긴 얼굴의 인피면구는 피하라고 해야 겠다.
아주 여심을 울린다. 울려.
피해를 막기 위해서라도 나중에 여자라고 알려줄 까나.
그때 귓가로 표두 황혜주의 전음이 들려왔다.
왜 전음을 보내는 거지?
의아해하고 있는데 그녀의 입에서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이 나왔다.
…….어라.
그걸 어떻게 안 거지?
내가 놀라서 쳐다보자 황혜주가 손사래를 치면서 전음을 보냈다.
그 말을 하고서 새초롬하게 고개를 돌리며 얼굴을 붉혔다.
‘!?’
내가 대체 뭘 본 거지?
갑자기 머리가 지끈거리려고 한다.
그러던 차에 골목을 지나자 수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포구의 광장이 드러났다.
열려 있는 창고 안으로 커다란 목함으로 보이는 적하물들이 보였고 그 주위로 거의 천여 명에 이르는 인파가 몰려 있었다.
‘흠.’
아무래도 이 정도로 큰 규모라면 한 표국에만 입찰을 내어줄 것 같진 않다.
이거 너무 큰 판에 끼어든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황혜주가 약간 위축된 목소리로 말했다.
“저희가 입찰에 성공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괜히 임….아니 하시는 일에 누를 끼치는 건 아닌지.”
“아닙니다.”
괜히 이런 모습을 보니까 무르기도 그렇다.
저 정도 규모의 적하물들이라면 확실히 수적들의 표적은 잘 될 것 같긴 하다.
물론 무사히 입찰에 성공하여 표물 운송에 참여한다는 전제하에서 말이다.
지금으로서 제일 견제되는 곳은 개방이 돕고 있는 옥양 표국이다.
객잔에서는 몰랐는데 이곳에 거지들만 수십 명이 보였다.
‘물량 승부인가.’
그래도 요즘은 이신성이라는 칭호의 무게가 더욱 무거울 테니 해볼 만은 할 거다.
그렇게 그들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
뭔가 강한 이명들이 머릿속을 울렸다.
이 정도 느낌을 받으려면 상당한 보검이어야 가능한 일이다.
-흠칫!
온몸에 전율이 느껴질 만큼 강렬한 기운에 나는 그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포구 쪽으로 파란 깃발을 들고 있는 한 무리의 표사들 속에 범상치 않은 누군가가 보였다.
얼굴 전체가 흉터로 가득한 중년인이었다.
등 뒤로 검 두 자루를 교차시켜서 차고 있었고, 허리에는 호랑이 가죽을 두르고 있어서 눈이 절로 갈 수밖에 없었다.
-왜 그렇게 놀라는 거야?
……벽을 넘은 고수야.
-뭐어? 정말이야?
확실해.
기운을 갈무리하고 있으나 내게는 감각을 자극할 만큼 확연하게 느껴진다.
마치 흉폭한 야수를 보는 듯 강한 기운이 내재되어 있다.
그때 인파 속에서 외침이 터져 나왔다.
“나, 낭왕이다!”
“낭왕이 나타나다니!”
외침에 난리가 났다.
수많은 인파들의 시선이 그에게로 집중되었다.
-그게 누구야?
하…..
낭왕(浪王) 혁천만.
무림 팔대 고수의 일인이자 낭인들의 정점이라 불리는 자다.
회귀 전에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여기서 보다니.
대체 금화평 상단에 무슨 표물을 옮기기에 저런 거물 급이 나타난 거지?
의아해하고 있는데 낭왕 혁천만의 시선이 갑자기 내게로 향했다.
서로 정확하게 눈이 마주쳤다.
“이신성이다!”
“남천검객의 제자도 나타났다.”
몇몇 외침 덕분에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도 몰렸다.
이게 대체 무슨 소란인지 모르겠다.
다만 이신성이라는 칭호도 팔대 고수에 비하면 격이 낮기에 대다수가 여전히 낭왕 혁천만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저자가 왜 쳐다보는 거야?
나조차도 저 자의 존재를 감지했다.
그런데 저 자라고 나를 느끼지 못한다는 게 말이 안 되지.
그때 낭왕 혁천만의 신형이 움직였다.
-스륵!
눈 깜짝할 사이에 그가 내 앞에 서있었다.
멀리서 볼 때는 미처 몰랐는데 체구가 쌍둥이들보다 조금 컸다.
스승님인 해악천 이후로 이런 거구는 처음 본다.
한데 왜 내 앞으로 온 거지?
의아해하고 있는데 낭왕 혁천만이 내게 말했다.
“언제부터 팔대 고수 급에 들어와 있어야 할 자가 고작 신성이라 불리게 된 거지?”
‘!!!’
그 순간 사방에서 난리가 났다.
끝
ⓒ 한중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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