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word Sense RAW novel - Chapter 209
72화 표행의 목적 (2) >
이제야 어느 정도 그림이 맞춰진다.
표물로 둔갑한 커다란 함 안에 귀식대법을 펼친 채 숨어있던 고수들.
포구에서 있었던 표행 입찰식에서 낭왕이 배의 선두에 설 거라고 공언한 것도 혹시 있을 수적들의 눈과 귀를 속이기 위함이었다.
늦은 밤에 출발한 것도 이렇게 배의 순서를 바꾸기 위해서였다.
미처 몰랐는데 원래라면 배 전체에 등불을 밝힐 만도 한데, 후미에만 살짝 밝힌 것도 앞서 지나갈 배들이 부딪치지 않게 하기 위한 정도일 거다.
나는 낭왕 혁천만에게 물었다.
“그럼 표행의 진짜 목적은 무엇입니까?”
“사제에게는 미리 말해두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짐작가는 것은 있다.
그것이 맞는지 확인하는 것뿐이다.
“이 배는 수로채 놈들에게 나포될 걸세.”
고의적으로 잡히려고 하는 건가?
“……배의 순서를 바꿨다고는 하나 사형께서 선두에 있는 것을 아는데, 저들이 쉽사리 그런 짓을 할까요?”
낭왕 혁천만은 벽을 넘어 초인의 경지에 이르렀다.
게다가 짧지만 겨뤄본 결과 그는 벽의 벽이라 불리는 극경에 이르렀을지 모른다.
이 정도 고수라면 등평도수(登萍渡水)의 경공을 펼치는 것은 일도 아니다.
강은 그에게 있어 장애가 될 수 없다.
“그들을 가볍게 보고 있군.”
“가볍게 보다니 무슨?”
“그들은 수적일세. 건질 게 있다면 어떤 식으로든 움직이게 되어 있네.”
“낭왕이 있다는 정보가 있어도 말입니까?”
“왜 여태껏 무림 연맹이나 관이 놈들을 일망타진 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나?”
역으로 질문을 했다.
생각해보니 그도 그렇다.
수적들이라고 해도 관이나 무림 연맹이 작정하면 굳이 소탕 못할 이유가 없다.
“장강의 수로에는 여러 협곡들이 있지. 경치가 좋고 물살이 느린 곳이 있는 반면에 물살이 빠르고 소용돌이가 쳐 위험한 협곡들도 있네.”
“…..그렇지요.”
“그 중 장강에서 가장 험한 혐로라 불리는 스물다섯 곳의 협곡이 있네. 그곳에는 배에 사고가 일어나 물에 빠지면 무림인들조차 쉽게 헤어 나올 수 없지.”
“그들이 지형적 위치를 노린다는 겁니까?”
나의 말에 낭왕 혁천만이 피식 웃었다.
“역시 똑똑하군. 사제의 말대로네. 일개 수적에 불과한 자들이나 그들은 장강에서 수백 년이 넘게 살아온 자들일세. 그들의 조타술이나 항강술은 기상천외할 정도로 발달했지.”
“그래서요?”
“십여 년 전에 무당파의 태극검제 종선 진인이 무림 연맹의 당원들을 이끌고 수로채를 친 적이 있네.”
아 들어본 것 같다.
그때 십여 척의 배가 동원될 만큼 규모가 컸다고 한다.
하나 그 배의 절반 이상이 침몰하여 수로채에 관한 토벌이 실패로 돌아갔다.
“어째서 실패한 건지 아는 겁니까?”
생각해보면 그 자리에 팔대 고수의 일인이 있었다.
한데 어째서 소기의 목적조차 달성하지 못했는지 궁금하긴 하다.
“물에서 경공을 펼쳐본 적이 있나?”
“……아직 없습니다.”
벽을 넘고 나서 기에 대한 이해도나 감각이 완전히 달라졌다.
마음만 먹는다면 물 위에서도 경공을 펼칠 수 있을 것 같기는 하다.
낭왕 혁천만이 강 위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이 정도만 되어도 물 위에서 등평도수로 경공을 펼치는 것은 힘든 일이 아니지. 사제도 요령만 안다면 충분히 할 수 있을 걸세.”
나중에 시험해보고 싶기는 하다.
물 위를 경공으로 달리면 어떤 기분일까?
“한데 말일세. 격류를 만난다면 절대로 등평도수를 시도할 생각은 하지 말게.”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애초에 등평도수는 천근추와 반대로 진기로 몸을 가벼이 하여 발바닥에 물이 닿을 때마다 반탄력을 일으키는 것이 요령일세.”
오.
좋은 걸 배웠다.
이래서 요령이라고 말했던 거구나.
“하지만 물살이 거칠고 격류인 곳에서는 그게 불가능하네. 오히려 반탄력을 이용하다가 격류가 흐르는 쪽으로 튕겨나가게 될 걸세. 나도 예전에 멋도 모르고 그러다 물에 빠졌었지.”
“아…….”
“행여나 격류에 경공을 펼칠 생각은 버리게.”
그 정도로 물살이 심한 곳에서는 등평도수를 펼치기 힘들구나.
그렇기에 절세고수들도 쉽사리 수로채를 토벌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이유를 알고 나니 납득이 갔다.
수로채에서는 그 같은 이점을 노린다는 거로구나.
“격류에 이르면 배는 방향을 바꾸기 힘들지. 수로채는 늘 그걸 이용하여 습격을 하지. 어떤 식으로든 그들과 물에서 겨루는 것은 불리하기 그지없네.”
“해서 이런 방법을 떠올린 겁니까?”
“맞네. 암도진창의 계지.”
-그게 뭐야?
병법에 암도진창(暗渡陳倉)이라 불리는 적전계가 있다.
한의 고조인 유방이 초패왕 항우가 모르게 진창을 건너 삼진을 건넌데서 유래된 계책이다.
정확한 암도진창은 정면에서 공격할 것처럼 속이고서 뒤를 노리는 것이다
첫 번째 배에 모든 전력이 있는 것으로 속이고 진짜 전력들은 가장 후미의 표물 속에 숨어있으니 암도진창 계의 정수라고 할 수 있다.
상대의 허점을 찌르는 방법이다.
만약 이 계책이 성공한다면 정말로 장강십팔수로채에 타격을 줄 수 있다.
다만,
“…….이건 적뿐만이 아니라 표국들도 속인 거잖습니까?”
애초에 표행은 적으로부터 표물을 지키기 위함이다.
그런데 수적들을 속이기 위해 아군이라 할 수 있는 표국들을 전부 속였다.
이 배에 타고 있는 또 다른 표국인 제원 표국도 이를 모를 거다.
“적을 속이려면 아군을 속이라는 말이 있지.”
“그 아군은 표사들입니다. 낭인도 아니고 표물을 지키는 표사들을 상대로 속인 겁니다.”
“뭐. 인정하네.”
“인정한다는 문제를 넘어섭니다.”
나는 그에게 강하게 의견을 피력했다.
여기서 정말로 이 계책이 성공하게 되면 장강수로십팔채와 손을 잡는 게 불가능해진다.
낭왕 혁천만이 내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사제. 자네가 화를 내는 것도 이해하네. 하나 완전히 속이는 것도 아닐세. 다른 배들에는 정말 호 노사의 재화들이 있지.”
“네?”
“수적들이 바보들인 것 같나. 표행의 행세만 해서는 냄새를 맡을 게 뻔하지.”
완전히 속이는 표행이 아니구나.
그렇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이 배에 있는 표국들은요? 그들이 속았다는 것은 변함없지 않습니까?”
나의 물음에 낭왕 혁천만이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잘 듣게. 이번 의뢰에 성공하지 못한다면 무림은 다시 이십여 년 전의 정사 대전의 전란에 휩싸일 걸세.”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나 역시 이 의뢰를 듣고 많이 고민했지. 혈교와 장강십팔수로채가 손을 잡을 걸세. 그리 된다면 장강 이남 지역은 피로 얼룩질 걸세.”
‘……..’
아아아.
역시 이 계획은 그곳에서 벌인 건가?
“무림 연맹의 의뢰입니까?”
“그렇네.”
“…….사형은 원래 정사 간의 일에 참여하지 않지 않습니까?”
내가 알기로 낭왕 혁천만은 중립에 가까운 인물이다.
그래서 무림 연맹이나 사파 쪽에서 양측에 타격을 입히는 임무를 의뢰하면 모두 거절한 것으로 알고 있다.
심지어 정사 대전 또한 참여하지 않았던 자였다.
그런데 새삼 무림 연맹의 이런 의뢰를 맡았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
낭왕 혁천만이 뒷짐을 지고서 어두운 강을 바라보며 말했다.
“스승님께서 사라지신 후 나는 낭인의 삶을 살아왔다. 낭인인 내게 정사는 의미가 없었지. 하나 사제가 나타난 후 많은 고민을 했지.”
“네? 제가 나타나고 말입니까?”
“사제는 정사 대전을 겪어보지 않았지?”
“그건…..”
“비록 나 역시 정사 대전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그 시대를 살아왔기에 중원 무림에 얼마나 많은 피바람이 몰아쳤는지 지켜봐서 알고 있다.”
“……..”
“무림 연맹의 말대로 혈교와 수로채가 손을 잡게 되어 장강의 수로가 막히게 된다면 또 다시 그때의 일이 벌어질 거다. 나는 새로운 세대인 사제가 그 참사를 겪지 않길 바라네.”
말문이 막혔다.
그의 말에 뭐라 답변하기가 힘들었다.
나름의 신념과 정의를 가지고 결정한 행동이었다.
“이 배에 탄 표국 사람들에게도 이야기할 테지만 그들에게는 표행비를 열 배로 올려줄 걸세. 그만큼 위험부담이 큰일이니.”
이 표행에 한 표국이 지급받는 금액이 기본 금 천 냥이었다.
여기서 참여하는 표사 인원 당 금액이 추가된다.
한데 열 배가 더해지면 그야말로 엄청난 액수로 불어나게 될 거다.
-표국에서는 더 좋아할 수 있겠네.
그렇겠지.
성공만 한다면 무림사에 한 획을 그을 수 있다.
장강수로십팔채를 해체시키는데 일조한 표국으로 말이다.
낭왕 혁천만이 내 어깨를 지그시 누르며 말했다.
“명색이 남천검객의 제자로서 사제도 앞으로 일어날 혈사를 막고 싶지 않나?”
……혈사를 일으킬 생각은 없는데.
이것 참 뭐라고 해명할 수도 없고 답답하기 짝이 없다.
일단은 연기는 해야겠지.
나는 포권을 취하며 감명 받았다는 듯이 말했다.
“사형께서 그런 깊은 뜻이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정파인의 한 사람으로서 돈과 상관없이 정의를 위해 돕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요.”
“하하하하핫. 역시 그분의 제자다운 배포로군.”
내 대답에 만족스러웠는지 낭왕 혁천만이 호탕하게 웃었다.
이런 면은 마음에 들긴 한데 가는 길이 다르다는 너무 정반대다.
“그럼 나는 다른 표국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할 터이니, 사제는 황영 표국과 자네 일행들을 설득해주게나.”
“여부가 있겠습니까?”
그렇게 낭왕 혁천만이 갔다.
그가 가자마자 절로 한숨이 나온다.
“후우.”
-어떡할 거야? 이 표행이 성공하면 여기까지 온 게 무산되는 거 아냐?
무산 정도가 아니다.
장강수로십팔채가 없어지면서 사파의 힘이 더 약화된다.
그리 된다면 힘의 균형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꼬여도 어떻게 이런 식으로 꼬이냐?
내가 하고픈 말이다.
그도 그렇지만 무림 연맹도 만만치 않다.
총군사 제갈원명이 죽고 나서 큰 그림을 못 볼 거라 여겼는데 전혀 아니다.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치다니.
이거 까딱하면 내 손으로 우군을 치게 생겼다.
-차라리 네 정체를 낭왕한테 이야기하는 게 어때?
‘내 정체를?’
-너를 사제로 생각한다면 정파 쪽이 아니라 네 쪽을 도와줄 수도 있잖아.
그건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
-어째서?
일단 사형제 간을 떠나서 낭왕 혁천만은 낭인이다.
낭인들이 제멋대로 살아가는 것 같아도 그들 역시도 나름의 법도가 있다.
그것은 바로 의뢰를 중시하는 것이다.
그가 나를 돕게 되면 낭인의 법도를 어기게 되는 것이고, 나아가서는 무림 연맹과 척을 지게 될 거다.
그런 위험부담을 과연 지려고 할까?
-혈교에 받아준다고 해.
만약 그게 통하지 않는다면?
-어….음…..
여기서 내 정체가 만천하에 공개가 된다.
그리 된다면 낭왕 혁천만은 둘째 치고 무림 연맹은 모든 전력을 투입해 나를 잡기 위해 천라지망을 펼칠 거다.
지금보다 더 최악의 상황이 될 수도 있다.
이런 상황이 아니라면 도전해볼만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진퇴양난이네. 그럼 어떡할 거야? 이대로 같이 장강수로십팔채를 없애는데 일조할 거야?
그렇게 내버려둘 순 없지.
-좋은 방법이 있어?
없어.
내가 제갈공명도 아니고 상황이 일어나면 계책이 뚝딱하고 만들어지냐?
미치겠다.
적어도 낭왕 혁천만만 없어도 어떻게 해보겠는데.
-그럼 어쩌게?
이 배가 수로채로 들어갈 수 없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게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다.
그런데 방금 전에도 말했지만 낭왕 혁천만이 가장 걸림돌이다.
-배에 구멍이라도 뚫는 건 어때? 그럼 애초에 갈 수 없을 거 아냐.
그것도 좋은 방법인데 무슨 수로 뚫냐?
증거를 남기지 않고 뚫어야 하는데, 배 밑창은 창고다.
지금 창고 안에는 귀식대법에 깨어난 무림 연맹의 고수들로 넘쳐난다.
저들의 수가 작기라도 하면 환의안으로 암시를 걸어서 누군가에게 시키기라도 하겠다만.
-그건 그렇네.
그렇다고 물 안으로 들어가면 첨벙 소리가 나서 갑판을 지키는 자들이나 낭왕이 바로 알아차릴 거다.
어떤 식으로든 배를 가라앉히는 건 불가능하다.
대놓고 내가 범인이라고 알릴 생각이 아니라면 말이다.
-아오. 답답해. 차라리 내가 움직일 수라도 있으면 몰래 가서 구멍이라도 내주는데.
……그러게 말이다.
네가 직접 움직일 수 있다면 좋겠네.
말이라도 고맙다.
-말이 아니라 진짜로 도와주고 싶어서 그렇지. 맨날 네가 곤란할 때마다 그냥 지켜볼 수밖에 없는 게 얼마나 답답한데…..
바로 그 순간이었다.
-검의 의지와 뜻이 하나가 되었으니, 옥형(玉衡)이 열리리라.
‘이건?’
검선의 목소리였다.
놀라서 오른손을 쳐다보니 푸른 불꽃이 일렁이고 있었다.
-치이이이!
뭔가 타는 소리와 함께 손등의 점에 변화가 생겨났다.
북두칠성의 형태의 일곱 개의 점들 중에 다섯 번째 별에 해당하는 옥형(玉衡)이 푸른색으로 변하고 있었다.
이윽고 그것이 완전히 푸른 점이 되자 불꽃이 수그러들었다.
뭐야?
한 동안 북두칠성의 점이 개방되지 않았는데, 갑자기 이런 일이 벌어졌다.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지?
머릿속에 기이한 환영 같은 것이 보였다.
꼭 마치 누군가의 시선을 대신 보는 것만 같았다.
그 누군가를 바라보는데 그건 바로 나였다.
-우…..운휘야.
잠깐만 있어봐.
왜 머릿속에 내 모습이 보이는 건지 그것부터 밝혀야 할 것 같다.
이것도 북두칠성의 점과 관련된 능력 같은데.
-이것 좀 보라고!
아니 왜 그러는…..!?
순간 나는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검집에 있어야 할 소담검이 내 바로 코앞의 허공에 둥둥 떠 있었다.
‘!!!’
끝
ⓒ 한중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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