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word Sense RAW novel - Chapter 22
12화 대결 (4)
‘제자?’
해악천의 입에서 나온 뜬금없는 말에 나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이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그저 이 변덕스럽고 괴팍한 노인네가 약조를 지키기만을 바랐을 뿐인데, 갑자기 제자로 거두겠다는 말을 할 줄은 몰랐다.
-함정일 거야. 저 노인네는 믿을 수가 없어.
-나도 동감이다. 운휘.
그 동안 나와 함께 이 노인네를 쭉 지켜본 소담검과 남천철검이었다.
우리 셋의 의견이 이렇게나 일치할 줄이야.
나도 믿기 힘들었다.
솔직한 심경으로는 무슨 꿍꿍이가 있을 것만 같았다.
“왜 대답을 하지 않는 게야? 일회용 장기말로 죽고 싶은 게냐. 제자로 받아주겠다고 했으면 얼른 절은 못할망정.”
해악천이 인상을 쓰고서 신경질을 냈다.
이런데 내가 믿겠냐?
“너무 갑작스러워서…..”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다.
부축 받고 있는 송좌백 또한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꼭 그 얼굴이 ‘나를 두고서 뜬금없이 왜 쟤를?’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뒷말을 잇지 못하는 나를 쳐다보던 해악천이 피식하고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일회용 장기말로 버리기에는 그 자질이 아깝더구나.”
“……과찬입니다.”
나를 높이 평가한다라.
짐작 가는 부분이 있는데 설마 그건가.
“소위 자질이 뛰어나다고 불리는 것들이 있다. 그런 녀석들은 하나를 가르쳐주면 저 스스로 더 많은 것을 이해하지.”
“저는 그 정도는 아닙니다.”
“본좌의 앞에서 그딴 겸양 따윈 집어치워라.”
“……..”
“고작 네 번 보여줬는데 혼자서 검초를 익히기 쉬울 것 같으냐.”
그걸 알면서도 그런 짓을 했냐.
내게 검의 소리를 듣는 능력이 없었다면 꼼짝없이 일회용 장기말로 죽었을 거다.
남천철검 고맙다.
-흠흠.
“뭐 그 정도라면 제자로 받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네 녀석은 검초의 허실을 살필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더구나. 그런 재능은 종사…..크흠, 아니다. 아무튼 본좌는 네놈을 제자로 받기로 결정했다.”
역시 예상대로였다.
검초의 허점을 찾아낸 것을 높이 평가했다.
내가 찾은 것이 아니라, 당신이 그렇게 꺾고 싶어 하는 남천검객이 보완한 검초다.
원래 의도는 해악천을 깨닫게 하는 것이었다.
당신이 검초를 분석하고 강해지는 만큼 남천검객도 그럴 것이라고 말이다.
-……의도 이상의 결과인데.
소담검의 말대로였다.
본의 아니게 대단한 자질을 지닌 것처럼 포장되고 말았다.
살짝 양심에 걸려하고 있는데 남천철검이 말했다.
-이것도 네 재능이다. 운휘.
‘응?’
-세상에 어느 누가 우리들, 검의 말을 들을 수 있겠나?
녀석의 말에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
어쩌면 불행했던 나의 전생을 보상받기 위한 재능일지도 몰랐다.
물론 지금도 한치 앞을 볼 수 없기는 매한가지인 것 같지만.
-그런데 운휘야. 저 미친 늙은이가 괴팍하긴 한데 혈교에서는 높은 직위에 있다고 하지 않았어?
‘그렇지.’
혈교의 네 절대자라 불리는 사존의 일인이다.
-그럼 제자가 된다면 저 지랄 맞은 성격을 감당하기는 해야 해도 네 목표에 더 빨리 다가갈 수 있지 않아?
‘그 생각을 안 해봤겠어.’
-그럼 저 노인네를 이용하면 되겠네.
문제는 다른데 있었다.
검초의 허점을 발견한 것이 내 재능이라고 쳐도 그것을 가릴 만큼 최악의 단점이 있었다.
그걸 확인하지 않는다면 이 늙은이가 나를 제자로 받으려는 것이 진의인지 아니면 일회용 장기말에서 이회, 삼회용이 될 지 알 수 없었다.
-그럼 한 번 속내를 떠 봐.
‘그러려고.’
“그런데 어르신. 어르신의 독문무공인 진혈…..”
“진혈금체.”
“네. 진혈금체는 저기 쌍둥이 형제들처럼 피가 빨리 순환하는 특수한 체질만 익힐 수 있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어 맞네!
쌍둥이 형제들과 달리 난 그런 체질이 아니다.
경신법이야 배울 수 있다지만 해악천의 본신무공은 무리였다.
“클클, 본좌는 네 녀석에게 권을 가르치지 않을 거다.”
“네?”
“네놈은 본좌에게 감사해야 한다.”
“그게 무슨…..”
“네놈이 익힌 검법은 한때 운남성의 패자라 불리던 남천검객의 검이니라.”
의외였다.
자존심 때문에 끝까지 밝히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이번 일로 깨달음을 얻어 남천검객에 대한 미련을 버리기라도 한 것일까?
나는 의심받지 않기 위해 화들짝 놀라는 척 했다.
“그, 그게 정말입니까? 그 해골이 설마 남천검객이었던 겁니까?”
“그렇다. 행방불명된 남천검객의 유골이지.”
“몰랐습니다.”
“클클, 갓 무공을 배운 네 녀석이 어찌 그걸 알겠느냐.”
“하아…..”
탄성을 흘리며 나는 몸을 파르르 떨었다.
마치 그런 검법을 익히게 된 것을 격하게 감동한 것처럼 말이다.
-와……너, 전부터 생각하긴 했는데 진짜 연기 쩐다.
소담검이 혀를 내둘렀다.
당연하지.
8년을 연기하면서 살았다.
이 정도 연기를 하지 못하면 첩자로 살아남지도 못한다.
그런 나의 반응을 마치 본인이 남천검객이라도 된 것 마냥 흡족하게 바라보던 해악천이 말을 이어갔다.
“본좌는 남천검객의 호적수였다.”
-거짓말!
남천철검이 격하게 소리쳤다.
흥분하지 마.
그렇게 소리치면 내 머릿속만 두통처럼 울린다.
“녀석의 유골을 봤겠지만, 남천검객은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안타깝게도 녀석은 사문도 가족도 없기에 이 유골을 처음 찾은 자가 본좌다.”
그건 남천철검에 들었다.
남천검객은 유족조차 없기에 누구도 그의 행방을 찾지 않았다고 했다.
참으로 공교로운 일이기는 했다.
유일하게 행방을 찾은 자가 그를 꺾고 싶어 안달 났던 해악천뿐이었다.
“그만큼 본좌는 누구보다 남천검객의 검을 잘 알고 있다.”
“그 말씀은?”
“네가 검을 완성할 수 있도록 가르칠 수 있다는 말이다. 클클클.”
미안하지만 그보다 더 진화된 성명검법을 배우고 있다.
검법으로는 당신에게 배울 게 없다.
경신법만 탐날 뿐이다.
“그리고 네놈의 그 부서진 단전을 되살리고 싶지 않느냐?”
‘아!’
내가 두 번째로 의문을 가졌던 것이다.
완벽한 선천심법 덕분에 단전이 부서진 것을 선천진기로 극복할 수 있게 되었지만, 해악천은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
그의 입장에서 나는 원기만 소모하는 애물단지일 텐데, 어째서 제자로 거둔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었다.
한데 자신의 입으로 그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진심이구나!’
정말로 나를 제자로 거두려는 모양이었다.
더 이상 단전을 회생시킬 필요는 없지만 해악천이 진심으로 제자로 받아들이려고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마음이 놓였다.
워낙 괴팍하고 방심할 수 없는 노인네다보니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진심이라면,
-팍!
나는 다급히 바닥에 엎드리고서 그에게 절을 했다.
“혈세! 혈세! 혈혈세! 제자 소운휘가 스승님께 절을 올립니다.”
스승을 모시기 위한 예를 취했다.
정말 제자로 거두는 것이라면 이런 기회도 없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사존이다.
혈교에서 아무런 연고도 없는 나의 입장에서는 네 절대자 중 한 사람인 해악천의 제자로 들어가게 되면 얻게 될 득이 더 컸다.
-……네 입장을 존중한다. 운휘.
남천철검이 아쉽다는 듯이 말했다.
녀석의 기분이 이해됐다.
어찌 보면 자신의 전 주인의 무공을 훔쳐갔던 도둑놈의 제자가 되는 셈이었으니, 달갑지 않은 것도 당연했다.
‘조금만 참아. 언젠가 이 판을 뒤집을 테니까.’
나는 진심으로 그를 스승으로 모실 생각은 없었다.
단지 위로 올라가기 위한 발판으로 생각했다.
-알고 있다. 나도 최선을 다하겠다. 네가 빨리 강해질 수 있도록.
녀석이 수긍했다.
아직 엎드려 있는데 위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클클클.”
작게 웃고 있던 해악천이 크게 광소를 했다.
나를 제자로 받아서 즐거워하는 것치고는 웃음소리가 너무 컸다.
슬쩍 훔쳐봤더니 하늘을 쳐다보면서 웃고 있었다.
“크하하하하핫. 종대야. 종대야. 보았느냐. 네 전인이나 다름없는 녀석이 본좌의 제자가 되었다. 하하하하하핫. 본좌의 승리나 다름없다.”
‘……..하.’
진짜 본심은 이것이었다.
정말 할 말이 없을 만큼 대단한 인간이다.
-진짜 정신 승리인데.
-운휘……방금 한 말은 취소다. 꼭 이 자의 밑으로 들어가겠다면 난 돕지 않을 거다.
제대로 빈 정 상하고 만 남천철검이다.
미친 늙은이.
그냥 속으로 이야기하면 될 걸 뭐가 즐겁다고 저리 내뱉어.
이 녀석을 달래려면 진땀을 빼게 생겼다.
한참을 광소하고서야 그는 만족했는지 멈췄다.
그리고는 말했다.
“일어나라.”
내가 일어나서 고개를 꾸벅하고 숙이자 해악천이 흡족한 목소리로 말했다.
“클클, 제자가 된 이상 본좌의 명성에 부끄럽지 않을 만큼 강해질 각오를 해야 할 거다.”
“명심하겠습니다. 스승님.”
벌써부터 겁을 주고 있다.
6달이나 지켜봤는데 모르겠는가. 이미 각오한 바였다.
그때 어디서 애처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르신.”
쌍둥이의 형인 송좌백이었다.
진혈금체의 후유증이 어느 정도 가라앉았는지, 낯빛이 돌아온 녀석이 반쯤 울먹거리는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나를 제자로 받았기 때문에 자신은 끝이라 생각한 모양이다.
내가 녀석을 쳐다보면서 입을 벙긋거렸다.
‘아닐 걸.’
녀석이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때 해악천이 입을 열었다.
“뭘 그렇게 멀뚱멀뚱 쳐다보는 게야?”
“그, 그게 아니오라….”
“흥. 성에 차지는 않다만 둘 다 제자로 받아주마.”
“네?”
송좌백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를 부축하고 있는 동생 송우현은 그저 인상만 쓸 뿐이었다.
“저는 승부에서 이기지 못했는데……”
“제법 배짱은 있더구나.”
해악천의 시선은 녀석의 상처를 천으로 감은 어깨에 가있었다.
무리해서 진혈금체를 펼쳤다고 나무랐지만 내심 스스로를 희생해가면서 승리를 취하려고 한 강한 승부욕을 높게 평가한 듯 했다.
“계속 서있을 것이냐?”
내가 피식 웃으며 녀석에게 고개를 끄덕이자, 송좌백이 다급히 절을 했다.
“뭐 하는 거야? 따라해.”
“으…응. 알겠다.”
동생 송우현이 따라서 엎드리자 녀석이 크게 소리쳤다.
“혈세! 혈세! 혈혈세! 제자 송좌백이 스승님께 절을 올립니다.”
“혈세! 혈세! 혈혈세! 제자 송좌백이….”
‘!?’
“아니. 네 이름으로 해야지!”
“아…..”
“아가 아니라.”
동생 챙기느라 고생이 많다.
“제자 송우현이 스승님께 절을 올립니다.”
약간의 실수가 있었지만 쌍둥이 형제들도 무사히 스승의 예를 취했다.
“클클, 오냐.”
해약천이 흡족한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사실 나는 승부와 상관없이 해악천이 쌍둥이를 제자로 받을 거라 예상했었다.
피의 순환이 빠른 특수한 체질을 여태껏 찾지 못해서 후인을 기르지 못했다고 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일어나라.”
“넵!”
송좌백은 얼마나 기쁜지 얼굴이 환희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런 녀석에게 내가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
“축하해. 사제.”
환하게 웃고 있던 녀석이 찬물이라도 뒤집은 것 마냥 얼굴이 일그러졌다.
내가 먼저 제자가 되었으니 맞잖아.
서열은 확실히 해야지. 안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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