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word Sense RAW novel - Chapter 222
75화 장강수로십팔채 (5) >
장강수로십팔채의 총채주 갈용의 얼굴이 당혹스러움으로 가득했다.
욕이 튀어나오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저들 장강사객 삼형제의 역량은 합공에서 비롯되는데, 그것을 끊어놨으니 전력이 제대로 분산된 셈이었다.
사실 합공이 아니라면 저들 한 명 한 명이 내 상대가 될 리가 만무했다.
-크하핫, 쪼끄만 한 녀석의 눈이 돌아가는군.
혈마검이 신이 나서 떠들어댔다.
너도 어째 점점 소담검이랑 많이 비슷해지는 것 같다.
혈마검의 말대로 갈용은 총채주로서의 위신이 있기 때문인지 다른 배에서 지켜보는 수적들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난감할 거다.
비겁하다고 하자니 애초에 삼대일로 겨루는 것이었고, 이기어검을 거론하자니 진실이 어찌 되었든 간에 다른 사람들 눈에는 나 혼자서 이 모든 것을 펼치는 거나 다름없었다.
어떻게든 이 상황을 극복하려고 머리를 팽팽 굴리는 것이 보이지만 내버려둘 수야 있나.
정파라면 좀 더 군자답게 대했겠지만 이들은 사파 중의 사파다.
그에 걸맞게 대우해줘야 굴복시킬 수 있겠지.
확실하게 밀어붙여야 한다.
내가 앞으로 한발자국 내딛자 놈이 소리쳤다.
“잠깐….”
잠깐은 무슨.
-팟!
신형을 날린 나는 곧장 갈용을 향해 뻗어나갔다.
“칫!”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오자 당황한 갈용이 날카로운 발톱으로 조법을 펼쳤다.
범이 연거푸 앞발을 휘두르는 것만 같다.
이에 나는 상체를 가볍게 움직여 놈의 공격을 피해냈다.
확실히 절정의 고수들보다는 움직임이 비교도 안 되게 빠르고 현란하기 짝이 없었다.
“이노오오옴!”
-촤촤촤촤촥!
놈이 삼 초식 가량을 밀어붙여도 통하지 않자 변초를 썼다.
나름 초식에 변화를 줬지만 이렇게 하체를 공략하면,
-팍!
“억!”
쉴 새 없이 움직이던 놈의 한 쪽 다리를 걷어차자, 신형이 앞으로 고꾸라지려 했다.
그러나 용케도 균형을 잡고 뒤로 허리를 젖혔다.
‘빈틈!’
찰나에 그것이 눈에 들어왔다.
검지 손가락으로 전광석화처럼 놈의 팔꿈치의 혈도를 찔러 올렸다.
-푹!
“큭!”
왼쪽 팔이 위로 튕겨져 올라갔다.
그 틈에 놈의 가슴을 향해 회전하며 발차기를 날렸다.
억 소리와 함께 놈의 신형이 뒤로 열 보가 넘게 밀려났다.
-촤르르르르!
“끄웩!”
가슴을 정통으로 맞아 내상을 입었는지 갈용이 피를 한 움큼 게워냈다.
혈마화와 진혈금체를 펼친 상태다보니, 삼성 공력으로 적당히 했는데도 그 위력이 더 강해져서 그런지 갈용이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혀, 형님!”
“빌어먹을!”
갈용의 두 아우들이 동시에 소리쳤다.
그들은 당장에라도 갈용이 있는 곳으로 달려오고 싶었지만, 혈마검과 사련검에 막혀서 싸우기 바빴다.
‘선천진기 소모가 커졌어.’
옥형으로 다루는 검의 자루 수가 많아질수록 선천진기가 닳는 속도가 빨라진다.
그런데 검들이 무공 초식까지 펼치니, 마치 그 무공을 내가 펼치는 것처럼 진기의 소모가 더욱 빨라졌다.
이 정도라면 반 시진 채 버티지 못할 것이다.
되도록 여러 검을 다룰 경우에는 검초까지 자유자재로 펼치게 하는 건 피해야 할 것 같다.
“하아….하아….”
갈용이 입가에 흐르는 피를 닦았다.
나를 노려보다 이내 놈이 몸을 돌려 어딘가로 신형을 날렸다.
그곳은 장강사객 삼형제 중 둘째인 갈호가 있는 곳이었다.
놈이 갈호가 상대하고 있는 혈마검의 뒤를 노렸다.
-슉!
-흥! 어딜!
혈마검이 갈용이 휘두르는 발톱을 피해서 위로 날아올랐다.
검들의 시야는 인간과는 다르게 사방을 전부 다 볼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단지 녀석들이 주로 보는 곳으로 초점이 맞춰진다고 해야 할까.
“이때다! 호야!”
그 찰나에 갈용과 갈호가 막내인 갈융이 있는 곳으로 신형을 날렸다.
어떻게든 한곳으로 모이려는 모양이다.
일대일로는 도저히 안 된다고 판단했을 테니 옳은 선택이긴 하다.
다만 그걸 내가 그냥 지켜볼 거라고 생각하진 않겠지.
‘혈마검 돌아와.’
-명령질 하지 마라.
부를 때마다 삐딱하게 구는 것 좀 봐라.
말은 그래놓고도 잘도 오긴 한다.
혈마검의 검병을 잡은 나는 배의 갑판을 향해 세차게 검을 꽂았다.
‘혈정검세’
혈천대라검 제 7초식 혈정검세(血征劍勢).
월악검 사마착과 장강에서 겨뤘을 때 펼쳤던 초식이다.
그때는 한계를 뛰어넘어서 펼쳤었는데, 벽을 넘은 지금이라면 과연 어떨까?
-촤촤촤촤촤촤촤!
그 순간 검을 꽂은 곳을 중심으로 선홍빛 예기가 갑판 바닥에서 파도가 범람하여 해일이 일어나듯이 부채꼴의 형태로 솟구쳤다.
예기와 함께 부서지며 튀어 오르는 갑판 파편들에 한 곳으로 모이던 장강사객 삼형제의 표정이 굳어졌다.
“이게 대체….”
“형님들!”
“닥치고 막앗!”
장강사객 삼형제가 멈춰 서서 다급히 파도처럼 퍼져나가는 붉은 예기를 향해 각자의 절초를 펼쳤다.
비기라고 할 만큼 그 기세들이 강했으나,
-파파파파팍!
“으헉!”
“무, 무슨 예기가!”
그들이 펼치는 절초가 혈정검세의 붉은 예기의 파도와 부딪치는 순간, 그들의 신형이 이에 휩쓸리며 동시에 뒤로 튕겨져 나갔다.
그 위력이 어느 정도냐 묻는다면 셋 모두가 배 바깥까지 튕겨나갈 정도였다.
갈용, 갈호 형제는 맞은 편에 있던 배로 막내 갈융은 북동쪽 방향에 있던 배의 갑판까지 튕겨나갔다.
-쾅! 콰지직!
특히 둘째 갈호의 경우 배의 돛대마저 부러뜨렸다.
주위의 배 위에서 이를 지켜보던 모든 수적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괴….괴물이야.”
“이게 검초라고?”
“총채주와 채주님들이 상대가 되질 않아.”
이들의 술렁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 정도면 충분히 압도적인 무위를 증명이 되었을까?
-끼이이이이! 쿠르르르르!
그때 배가 심하게 흔들거리더니 서있던 곳이 위로 솟구쳤다.
안 그래도 일련파획으로 상갑판을 양단냈는데, 그것도 모자라 혈정검세로 배 내부와 갑판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더니, 배가 이를 버티지 못했다.
무게 중심을 이기지 못한 배가 뒤에서부터 천천히 가라앉으려 했다.
배를 옮겨 타야 할 것 같다.
그때 누군가 소리쳤다.
“쏴라! 저 괴물이 넘어오게 하면 안 된다!”
“포든 화살이든 전부 쏴라!”
배 위에 있는 수적들이 이에 동조했는지 활의 시위를 겨냥하고, 이리저리 포에 불을 붙이려고 이리저리 뛰는 모습이 보였다.
쉽게 굴복하지 않겠다는 건가.
그렇다면 별 수 없군.
‘혈마검, 사련검. 배에다 구멍을 내.’
-재밌겠군.
-깔깔깔! 좋아.
내 말에 두 검이 신이 나서 동시에 우측 편과 뒤 편에 있던 배를 향해 쇄도했다.
“배, 배로 검이 날아오고 있어!”
“막아랏! 검들을 막아!”
수적들이 자신들의 배로 날아오는 혈마검과 사련검에 놀라서 이들을 잡으려고 했다.
화살을 쏘고 그물망을 던지고 난리도 아니었다.
그러나 하늘 높이 날아서 움직이는 검들을 무슨 수로 잡는단 말인가.
-슉! 푹!
검들이 높이 날아올랐다가 그대로 배의 갑판을 뚫고서 파고들었다.
“배 안으로 들어갔어!”
“밑으로 내려가서 막아랏!”
-쿠르르르!
“헉!”
“배, 배가….”
그러나 수적들이 뛰어 내려가기 전에 배가 심하게 흔들거렸다.
그들은 모르겠지만 난 검들의 시야가 보인다.
천천히 가라앉힐 정도로 내놓아도 되는데, 아주 배 밑창을 작살을 내고 있는 혈마검과 사련검이었다.
“배 안이 물로 가득차고 있습니다!”
“가라앉을 겁니다!”
이곳이 장강 한복판의 배 위라는 게 오히려 내게는 이득이 되었고, 정작 수적들인 녀석들에게는 사지로 몰리기 좋은 여건이 되었다.
두 검이 잠시 움직였을 뿐인데 배 두 척이 가라앉으려 했다.
“배가 가라앉는다! 당장 넘어가랏!”
“옆의 배로 넘어가라고!”
그 외침 소리에 수적들이 우왕좌왕 누구 할 것 없이 다른 배로 넘어가려고 했다.
아수라장 그 자체였다.
그런 수적들을 기겁하게 만드는 광경이 벌어졌다.
-팍! 팍!
배에 구멍을 낸 두 검이 갑판을 뚫고 나와 다른 배를 향해 날아갔다.
재미가 들렸는지 이번에는 낮게 강물 위를 저공을 하며 곧장 배의 밑창으로 뚫고 들어가려 했다.
“검이 이쪽으로 온다!”
“막아라! 막아야 한다!”
이를 본 그 배의 수적들이 아연실색하여 막으라고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배로 날아오는 검들이 아주 무섭게 느껴질 것이다.
저승사자라도 된 것처럼 말이다.
바로 그때였다.
“그만! 그만하시오!”
내공이 실린 커다란 외침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총채주 갈용의 목소리였다.
내상을 입어서 창백해진 안색의 갈용이 갑판까지 걸어와 가라앉은 배 위에 서있는 내게 소리쳤다.
“졌소! 혈교주 우리가 졌으니 제발 그만 하시오!”
그의 입에서 항복 선언이 들려왔다.
목소리에서 다급함이 느껴졌다.
여차하면 배들을 전부 가라앉힐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조급해졌나 보다.
“총채주!”
“어찌 그런!”
수적들이 그를 만류하기 위해 외쳤지만 소용없었다.
“그럼 배들을 이곳에서 전부 잃을 참이더냐!”
그런 그의 외침에 총채주를 외치던 수적들의 입이 다물어졌다.
확실히 수장으로서 통솔권은 제대로 가지고 있었다.
더이상 누구 하나 불만을 제기하지 않는 걸 보니 말이다.
‘그만해.’
-벌써? 아쉬운데 흐응.
-피도 보지 않고 끝났군.
요검들이 아니랄까봐 사상자가 없다고 아쉬워하고 있었다.
어쨌거나 날아가던 혈마검과 사련검이 멈추고서 다시 내게로 돌아오자, 주위의 수적들이 안도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하나 같이 십년감수했다는 듯 한 얼굴들이다.
그러는 사이에 내가 있던 배가 곧 가라앉을 것 같았다.
나는 훌쩍 뛰어서 총채주 갈용이 있는 맞은 편 배로 넘어갔다.
갈용이 질린다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납득할 수 없다면 더 해도 된다만?”
그런 나의 말에 놈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내게 말했다.
“……정말 할 말이 없게 만드는군. 전대 혈마도 괴물 같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그대는 그보다 더하구려.”
전대 혈마와 비교까지 당하다니.
이걸 영광이라고 해야 하나.
옥형의 능력에 감사해야 할 것 같다.
여태껏 얻었던 능력들 중에서 이렇게 적들에게 위압감을 주기 좋은 능력은 없었다.
“이제 내게 복종하겠나?”
그 물음에 놈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자존심이 상하겠지.
하나 패배를 인정한 이상 답은 오직 하나였다.
나는 놈을 내려다보며 오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꿇어라.”
“하아……”
볼 살까지 파르르 떨며 분해하던 총채주 갈용이 모든 것을 체념한 사람처럼 긴 탄식을 하더니, 이윽고 내게 한 쪽 무릎을 꿇었다.
갈용이 그 상태로 내게 물었다.
“귀교는 다시 사파를 통합할 것이오?”
“그렇다.”
나는 놈의 말에 부정하지 않았다.
“……하면 그 장대한 걸음에 우리 수로채가 첫 번째이겠구려?”
놈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것 같다.
이 와중에 챙길 건 챙기려고 하다니 수적다운 발상이다.
채찍도 충분히 먹였으니 이제 당근을 줄 차례인가.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가장 먼저 들어온 만큼 대우는 섭섭하지 않게 해주지.”
-팍!
그런 나의 말에 갈용이 두 손을 모아 강하게 포권을 취하며 외쳤다.
“장강수로십팔채는 사파의 우두머리이신 혈마께 충성을 맹세하겠소.”
사파 통합의 첫 번째 목표인 장강수로십팔채가 내 손에 들어오는 순간이었다.
* * *
시간이 많지 않은 상황이기에 나는 장강수로십팔채에 나중에 따로 찾아가 금안의 조직에 관해서 이야기하기로 하고서 그들을 보냈다.
처음에는 배의 표물, 즉 금화평 상단의 재화를 전부 가져가게 해달라고 허락을 구하기에 빈손으로 보내기는 그래서 이할 가량을 챙겨서 가게 했다.
그 정도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그런 와중에 총채주 갈용이 내게 승전품을 양보한다는 듯이 타구봉을 넘겼다.
어차피 본인들에게 쓸모없는 물건이기에 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자신들이 그것을 가지고 있으면 개방 사람들이 필사적으로 개방의 신물을 탈환하려 들 거라는 우려도 있기에 그랬을 거다.
‘소득이 크군.’
장강수로십팔채를 얻은 것도 모자라 개방의 방주와 후개를 처리했다.
이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조성원을 방주로 추대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쉬운 것은 방주의 두 절기라 할 수 있는 타구봉법을 모른다는 게 흠이었지만, 그거야 방주가 죽어서 그 대가 끊긴 거나 다름없으니 문제는 없다.
-우린 언제까지 이 위에 있어야 하냐?
소담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표물선의 돛대 위에 남천철검과 함께 두고 내려온 참이었다.
그런데 아직 할 일이 더 있어.
-할 일?
일인 이역의 연기를 해야 한다고 해야 할까?
-!?
* * *
표물선에 있는 표사들과 선원들이 한두 명씩 깨어나기 시작했다.
깨어난 그들은 주변을 둘러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자신들을 포위했던 장강수로십팔채의 배들이 사라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런 그들의 귓가로 위에서 병장기가 부딪치는 소리들이 들려왔다.
표사들 중 누군가 외쳤다.
“저 위를 봐!”
“위에서 누가 싸우고 있나봐.”
그들이 가리킨 어두운 하늘 위로 손톱보다도 작게 보이는 두 인영이 싸우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대체 뭐야?”
“누구지?”
배의 등불도 전부 꺼져서 희미하게 보일 뿐이었다.
검과 검이 부딪치는 소리가 나는 걸로 봐서는 격렬하게 싸우는 것 같았다.
그때 하늘 위에서 외침 소리가 들려왔다.
“혈마. 이 자리에서 끝장을 보자!”
외침 소리를 들은 표사들 중 한 사람이 눈이 휘둥그레져서 소리쳤다.
“소, 소운휘 대협이다! 소운휘 대협이 혈마와 싸우고 있나봐!”
끝
ⓒ 한중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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