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word Sense RAW novel - Chapter 23
13화 만사신의(萬死神醫) (1)
기기괴괴의 제자가 된 그 날 밤은 오랜만에 술자리를 가졌다.
처음으로 제자를 받았다며 기분이 흥한 해악천이 산 밑으로 내려가 직접 술독을 가져와, 이걸 전부 비우지 않으면 재우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런데 이게 웬 걸.
해악천은 생각했던 것보다 술이 약했다.
몇 잔 마시지도 않았는데, 술에 취해서 주사를 해댔다.
젊은 시절의 무용담을 늘려놓는가 하면, 사모했던 여자들을 만났다가 차인 이야기를 하다가 눈물까지 뚝뚝 흘렸다.
보통 내공이 깊은 고수는 주독을 날릴 수 있다.
하지만 이 늙은이는 술은 취하라고 있는 거라며 주사를 해대는 통에 그 제자들인 우리들만 곤욕스러웠다.
윗사람과 술을 마신다는 게 그랬다.
간혹 웃긴 얘기도 간간히 섞여 있긴 했었다.
그게 함정이었다.
“풋.”
“웃어?”
‘!?’
방심하고서 웃음이 터졌던 송좌백은 그 자리에서 주먹 찜질을 당했다.
눈두덩이 새파랗게 멍이 들고서 정신을 차렸는지, 바짝 긴장해서 술을 독약 먹듯이 마셨다.
그렇게 당하고도 방심하는 걸 보면 아직 멀었다.
이튿날 아침,
술에 골아 떨어져서 자고 있을 거라 생각했던 해악천이 보이지 않았다.
워낙 제멋대로인 자라 그러려니 했다.
잘됐다 싶어 남천철검의 기분도 달래줄 겸 날을 갈았다.
-슥슥!
녹이 슨 부분은 대장장이의 도움을 받아야 할 것 같았지만 날을 가는 것 정도야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하악. 그래. 거기…..
이 자식 처음에는 뾰로통하더니 이제는 콧구멍 벌렁거리는 숨소리와 함께 즐기고 있다.
마음 같아서는 닥치라고 하고 싶었지만 대의를 위해서 참는다.
-하아. 너무 좋…
-까득!
-억!
아 미안.
날을 갈다 순간 손이 삐끗했네.
그래도 한철을 섞어서 만들었다고 튼튼해서 그런지 날이 상하진 않았다.
“아침부터 뭐하냐?”
옆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술독을 비우느라 얼굴이 띵띵 부은 송좌백이 인상을 찌푸리며 쳐다보고 있었다.
한쪽 눈은 밤탱이가 되어가지고 쯧쯧.
“왜 반말이냐? 사형한테.”
내 말에 송좌백이 입술을 실룩거리며 소리쳤다.
“야! 그게 무슨 사형이야? 겨우 그 정도 차이는 동문이지.”
어제는 해악천이 앞에 있어서 따지지 못했던 녀석이었다.
그런데 밤새 억울했나 보다.
“그래서 누가 먼저 제자가 됐는데?”
반각이 되었든 하루가 되었든 간에 먼저 들어오면 사형이지.
무슨 잔말이 많아.
“야. 치사하게 굴래? 너 나한테 목숨 빚졌잖아.”
“아. 빚?”
“그래. 내 덕분에 목숨도 살았는데, 그냥 동문으로 하자.”
어지간히 사형이라고 부르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그것도 그렇네.”
“맞지? 흐흐. 그럼 동문으로 하는 거다. 네가 스승님께 말씀드려.”
나는 녀석을 향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그래. 그럼 주군이라고 불러.”
“뭐?”
“내기했잖아.”
“아니. 그건 거의 무승부나 다름없는데.”
“스승님이 중간에 개입하지 않았으면 너 지금쯤 삼도천 건넜다. 알고 있지?”
“그, 그건…..”
삼도천(三途川)은 불도에서 저승으로 가는 도중에 있는 강이다.
내 말에 녀석이 뒷목을 잡으려고 한다.
아직까지 내상이 완전히 호전되지 않았으니, 아마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를 것이다.
“그래도 내공으로는 내가 앞섰잖아!”
“뭘 구차하게 그런 걸로 계속 따져. 그래서 졌어? 안 졌어?”
-으득!
녀석이 이까지 갈면서 분에 겨워했다.
그래도 끝까지 제 놈이 이겼다고 우기지 않는걸 보면, 그 상황이 더 지속되었으면 무조건 패하리란 것은 확실히 인지하고 있었던 것 같다.
한참을 노려보던 송좌백이 치를 떨면서 중얼거렸다.
“…..형.”
“뭐?”
“사형.”
“아아…..요새 귀가 안 좋은 건지 잘 안 들리네. 뭐라고?”
“아오! 사형하라고!”
녀석이 버럭 소리를 지르고는 화를 이기지 못해서 그 자리에 드러누워 버렸다.
피식하고 웃음이 나왔다.
미운 정이라도 들었나.
이제는 저러는 모습이 귀엽기마저 하네.
십년 후에는 그 악명이 자자한 백흑쌍귀가 될 녀석인데 말이다.
“젠장. 내공은 내가 앞섰는데…..”
많이 억울했는지 투덜대고 있었다.
아마 일부러 들으라고 하는 소리겠지.
-그때 운휘. 네가 성명신공을 3성으로 끌어올렸다면 저런 소리도 못할 텐데.
소담검의 말을 녀석이 들을 수 있다면 놀랐을 거다.
왜냐하면 나는 그때 절반의 선천진기만을 운용해서 싸웠다.
그때 해악천이 조금만 늦게 개입했어도 나 역시도 성명신공을 3성으로 끌어올려서 전력을 다할 뻔했다.
-3성으로 끌어올렸다면 결과가 어땠을까?
‘글쎄.’
녀석이 20년에 미치지 못하는 내공이고, 나는 15년 수준의 선천진기였다.
내공보다 강한 힘을 지닌 것이 선천진기다.
절반으로는 밀렸지만 다 쓴다면 비등하거나 그 이상이지 않을까?
-3성을 완성한다면 확실했을 거다.
남천철검의 말대로 아직까지 3성 초입에 불과하다.
3성까지는 큰 깨달음 없어도 선천진기의 양과 부단한 연마만으로 이루어지기에 시간이 관건이었다.
하지만 4성부터는 완전히 궤를 달리한다고 했다.
그때부터는 기(氣)에 대한 깨달음을 요하기 때문에 오래 걸릴 수도 있고, 오성에 따라서는 짧아질 수도 있다고 한다.
‘6성까지 과연 얼마나 걸릴까?’
남천검객이 오른 영역.
그는 고작 6성의 경지만으로 운남성의 패자로 군림했다.
정식으로 입문한지는 오래되지 않았지만 성명신공은 무림에서 손가락에 꼽힐 수 있는 신공일지도 몰랐다.
-네가 하기 나름일 거다. 운휘.
‘피똥 쌀 만큼 해야겠네.’
적어도 남천검객의 명성에 누가 되지 않으려면 말이다.
-좋은 의지다. 그 의지로 다시 날을 갈아…
“클클.”
그때 동굴 입구에서 들리는 익숙한 목소리.
“깨었구나.”
해악천이 돌아왔다.
어디에 갔다 온 것인지 그의 기분이 평소보다 더 좋아보였다.
“네놈은 운이 타고났구나.”
“네?”
“가자.”
“그게 무슨?”
영문을 몰라 하고 있는데, 성큼성큼 다가온 해악천이 나를 번쩍 들어서 옆구리에 끼고는 동굴 바깥으로 나갔다.
언제까지 이 인간의 옆구리 냄새를 맡아야 하는 걸까?
나를 짐짝처럼 챙긴 해악천이 산 위가 아닌 산 밑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기겁을 하겠지만, 이젠 적응이 되어서 말이라도 탄 것처럼 편안한 목소리로 물었다.
“스승님 대체 어디로 가시는 겁니까?”
“네놈의 단전을 고치러 간다.”
“네?”
지금 단전을 고친다고?
당장 그게 가능하단 말이야?
* * *
눈앞에 있는 검은 기와에 붉은 기둥의 전각(殿閣).
이곳은 육혈곡의 본당 건물로 들어가는 입구였다.
육혈곡의 책임자를 맡고 있는 패혈단주 구상웅과 산하 대주들과 혈교의 정식 무사들이 머무는 곳이었다.
진짜 오랜만에 와본다.
혈랑대로 배치 받았을 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이곳에 왔었다.
입구를 지키고 있던 하급 무사 두 명이 거구의 해악천을 보고서 화들짝 놀라서 인사했다.
“혈세! 혈세! 혈혈세!”
해악천을 보고서는 놀라하던 그들이 나를 보고선 의아한 눈빛을 보였다.
하긴 나라도 수련 생도의 복장을 한 녀석이 사존의 일인인 해악천과 함께 나타났으니 의문이 생길 것이다.
“따라와라.”
“네.”
해악천을 따라서 전각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자 넓은 마당과 함께 2층 높이의 본당 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응?’
그런데 마당에는 고풍스러워 보이는 마차가 있었고, 그 주변에는 면사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 여섯 명의 여인들이 서있었다.
여인들 이외에도 중급 무사들도 스무 명이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분위기를 보면 이곳 육혈곡의 혈교인들이 아닌 듯 했다.
육혈곡 출신들은 해악천을 보면 기겁을 하기 일수였는데, 저들은 곧바로 알아보지 못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타타타타타!
그때 전각 뒤쪽에서 누군가 헐레벌떡 뛰어 들어왔다.
그녀는 패혈단주 산하의 여자 대주인 해옥선이었다.
경공까지 펼쳐가며 앞으로 다가온 그녀가 난처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어르신! 지금은 곤란하다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해옥선은 우리가 본당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으러 달려온 듯 했다.
이에 해악천이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흥! 무엇이 곤란하다는 게야.”
“그, 그게….”
해악천의 물음에 그녀가 머뭇거리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상대는 혈교의 네 절대자 중 한 사람인 해악천이었다.
대주가 낮은 직위는 아니었지만, 그녀의 위치에서는 그를 절대로 거스를 수가 없었다.
“본좌를 막을 셈이냐?”
“아닙니다. 어르신. 그게 아니오라….”
“허어!”
역시 기기괴괴의 명성이 어디로 가겠는가.
막무가내였다.
난처해하고 있는 그녀를 무시하고서 해악천이 본당을 향해 소리쳤다.
“만사신의 게 있는가?”
‘!!!’
만사신의라고?
이제야 해악천이 나를 이곳에 왜 데려왔는지 의문이 풀렸다.
‘오늘이었구나!’
-네가 말한 그 날이야? 그 귀인이랑 만사신의가 온다는?
소담검도 내 말을 기억했나 보다.
‘맞아.’
전생을 되짚으면 여섯 달을 조금 넘겼을 때 왔으니, 시기적으로 정확했다.
그렇다면 해악천이 이야기 했던 단전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은 내가 계획했던 것과 동일하다는 말이었다.
소문으로만 들었던 현장에 직접 와있는 셈이었다.
“어르신….이러시면 제가….”
-드르륵!
그때 본당의 문이 열리며 두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한 사람은 패혈 단주인 구상웅이었고, 다른 한 명은 처음 보는 여자였다.
첫 느낌만 본다면 마치 저승사자를 보는 듯 했다.
창백할 정도로 새하얀 얼굴에 보랏빛의 입술하며 눈매 또한 짙고 날카로웠다.
저런 얼굴에 온통 검은 옷으로 치장을 했으니, 어지간한 사람들은 흠칫하고 놀라서 다가가기조차 힘들어 보였다.
-나이가 좀 있어 보이는데?
소담검의 말처럼 한 사십대 중후반처럼 보였다.
그런데도 관리를 잘한 것인지 섬뜩한 느낌과 달리 외양은 아름다웠다.
-탁!
차가운 눈빛을 가진 여인이 해악천을 향해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사존.”
그녀의 인사에 해악천이 피식하고 웃더니 말했다.
“클클, 자네가 그 귀인이었나?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곱상하구만. 혈수마녀.”
‘혀, 혈수마녀?’
그녀의 정체를 알게 된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혈수마녀(血手魔女) 한백하.
그녀는 혈교의 칠혈성 중 한 사람으로 서열 6위인 육혈성이었다.
전생에는 그렇게나 보기 힘들었던 혈교의 고위 간부들이 어째 회귀 후에는 벌써 세 명째 보게 되었다.
그녀의 정체를 알게 된 나는 본능적으로 예를 취하려 했다.
무릎을 굽히려는 순간,
-팍!
누군가 내 뒷목의 옷깃을 붙잡았다.
덕분에 무릎을 꿇지 못했다.
“뭐하는 짓이냐?”
내 옷깃을 잡은 사람은 해악천이었다.
해악천이 못마땅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말했다.
“본좌가 옆에 있는데 어디서 무릎을 꿇으려고?”
“아!”
순간 실수를 할 뻔 했다.
그때 혈수마녀 한백하가 입을 열었다.
“본교의 수련 생도라면 당연히 갖춰야 할 예를 취한 것뿐이니, 그 아이를 너무 나무라지 마시지요.”
그녀의 말에 해악천이 클클 거리며 웃더니 말했다.
“뭘 나무라. 명색이 제자란 녀석이 스승을 옆에 두고도 본좌보다 아랫사람에게 예를 취하게 내버려두란 소리냐?”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본당 앞 마당이 한순간에 고요해졌다.
모두가 놀란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표정 하나 바뀌지 않을 것만 같던 혈수마녀 한백하조차도 고운 미간을 살짝 찡그리면서 중얼거렸다.
“사존께서 제자를 거뒀다고요?”
아아…..
예상치 못하게 공표하는 자리가 되어버렸다.
사존의 일인인 기기괴괴 해악천이 처음으로 거둔 제자가 나라고 말이다.
-이야. 눈 도장 제대로 찍네.
소담검이 재잘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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