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word Sense RAW novel - Chapter 238
79화 재회 (4) >
믿기지가 않았다.
내 눈이 잘못 된 것이 아니라면 분명 아송이다.
녀석의 눈과 입을 꿰매어 닫게 만들었어도 어렸을 적부터 내 수발을 들었던 이 얼굴을 어찌 잊을 수가 있겠는가.
‘어떻게 이런 일이….’
본교의 정보 단체와 하오문을 동원해도 찾지 못했다.
마치 한 사람이 세상에서 증발한 것처럼 그 흔적이 사라졌다.
그런데 그런 아송이 이런 꼴이 되어 있다니 순간 말문이 막혔다.
‘…….아송.’
익양소가에서 그런 수난을 겪으면서도 나를 찾겠다고 떠난 녀석이다.
그것을 알게 되었을 때 얼마나 가슴이 뭉클했는가.
“으으으으으.”
내게 목이 붙잡혀 있는 아송이 바등거리며 내 손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가만히 있어!”
나는 아송의 한쪽 팔을 뒤로 꺾어서 머리와 등을 짓눌렀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마치 외공을 극한으로 익힌 것처럼 강한 힘이다.
벽을 넘어서는 나이기에 압도적인 공력으로 누른 거지만 어지간한 고수들도 방심하면 안 될 만큼 괴력에 가깝다.
‘무슨 짓을 한 거지?’
나는 마차를 노려보았다.
여전히 스산하면서 사이한 기운을 풍기는 마차.
그 모습을 볼 수가 없는데도 마치 악심파파 철수련이 나를 지켜보는 것만 같다.
-이런!
혈마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곳으로 시선을 돌리니, 검날이 목을 반쯤 파고들었는데 그것을 죽립인이 붙잡았다.
어처구니가 없는 광경이었다.
‘저 상태로도 움직이다니?’
인간이라 부를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혈마검이 빠져나가려 했지만 다른 죽립인이 달라붙어 혈마검의 날을 붙잡은 바람에 그대로 묶여버렸다.
-이 건방진 인간 놈들이!
혈마검이 화가 났는지 요력을 일으킨 것 같다.
그러자 검을 붙잡고 있는 죽립인들의 손등에서 혈맥이 폭주했는지, 핏줄이 터져나갔다.
-이것들이?
한데 놈들은 혈마검을 손에 놓지 않았다.
고통을 느끼지 못해서 그런지 핏줄이 터져나가는 것을 개의치 않고 붙잡았다.
고통을 모른다는 게 이런 식으로 활용될 줄이야.
‘소담검! 혈마검을 도와줘!’
-알았….뒤를 봐!
알고 있다.
그 정도는.
뒤에서 달려오는 두 명의 발걸음 소리.
나는 발로 아송의 꺾은 팔목 채 등을 고정한 후에 죽립인들 중 한 명의 다리로 오른손을 뻗었다.
그러자 은연사가 튀어나오며 죽립인의 발에 휘감겼다.
애초에 은연사 따위는 신경쓰지 않는다는 기세로 죽립인이 달려들었다.
-팍!
이에 나는 은연사를 옆으로 잡아당겼다.
그러자 죽립인의 균형이 옆으로 쏠리며 같이 달려오던 다른 죽립인과 부딪쳤다.
나는 은연사를 팽팽하게 하며 그 상태로 몸을 돌려가며 무게 추처럼 다리가 걸린 죽립인을 다른 죽립인을 향해 날려버렸다.
-쿠당탕!
은연사에 묶여서 날아간 죽립인이 혈마검을 붙들고 있는 두 명의 죽립인을 쓰러뜨렸다.
그 사이 소담검이 놈들의 손목을 관통하며 혈마검을 빠져나오게 했다.
-빌어먹을 놈들!
혈마검이 혀를 내두르는 소리가 들렸다.
손아귀에서 혈마검을 놓친 죽립인은 목이 저리 베였어도 비틀거리며 움직였고, 혈맥이 폭주한 죽립인도 부들부들 떨면서 일어났다.
누가 봐도 기가 질릴 상황이다.
‘돌아와.’
-이 몸이 직접….
‘돌아와!’
-칫!
강압적인 나의 목소리에 혈마검이 말없이 허공을 가로질러 내 손으로 빨려 들어왔다.
지금은 네가 상대하고 자시게 둘 상황이 아니었다.
목이 베이는 순간을 노려서 붙잡는 비정상적인 방식을 취할 만큼 말도 안 되는 짓거리를 하는 놈들이다.
-딸랑!
그때 방울 소리가 마차 안에서 울려 퍼졌다.
그러자 꺾인 팔로 등을 고정하고 있던 아송의 등이 활처럼 뒤로 꺾였다.
‘아니?’
이 자세는 도저히 등을 꺾을 수 있는 자세가 아니었다.
그런데 이를 꺾더니 두 다리로 나를 감싸려고 했다.
순간 머릿속에서 아송의 두 다리를 자르거나 꺾어버리는 심상이 떠올랐지만 차마 이를 녀석에게 행할 수 없었다.
-팟!
뒤로 몸을 날리며 나를 휘어잡으려 했던 두 다리를 피했다.
그러자 아송이 번개처럼 뛰어올라 몸을 일으켜 세웠다.
도저히 무공 하나 모르던 녀석이라 볼 수 없는 몸놀림이었다.
“아…..”
젠장.
저 노괴가 있는 곳에서 원래 목소리로 아송을 마냥 부를 수 없었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전음을 취했다.
그때 나를 향해 달려들려 하던 아송의 움직임이 잠시 멈칫했다.
마치 나의 목소리를 알아듣기라도 한 것처럼 녀석의 몸이 파르르 떨렸다.
실에 꿰매진 눈과 입 부근이 들썩이는 게 보였다.
“으으으으!”
그런 나의 전음에 아송이 신음성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완전히 악심파파 철수련의 뜻대로 움직이는 건 아닌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저 꿰매진 실을 풀어줘야 겠다.
-딸랑!
그때 방울 소리가 또 다시 울려 퍼졌다.
그러자 아송이 자신의 머리를 부여잡고 고통스럽게 비틀거렸다.
나는 고통스러워하는 녀석에게 다가가 부축했다.
[아송 정신 차려라. 저 노괴의 사술에 넘어가면 안 돼!]“으으으…..”
‘아!’
[도련님.]신음 소리에 불과했지만 그 어조는 틀림없이 아송이 나를 부를 때 그 투였다.
내 목소리를 알아들었다면 충분히 빠져나올 가능성도 높았다.
그때 귓가로 죽립인들이 달려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방해하지 마라!”
혈마검의 검신이 붉게 물들었다.
나는 십성 공력으로 전력을 다해 달려드는 죽립인들을 향해 혈천대라검의 일련파획의 검초를 펼쳤다.
-촤아아아아아아!
날카로운 붉은 예기가 넘실거리는 파도처럼 허공을 가로지르며 놈들을 덮쳤다.
맨손으로 펼치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되는 위력에 앞 열에 있던 죽립인들 세 명의 몸이 그대로 반으로 잘려나갔다.
뒤에 있던 자들은 위력이 줄어들며 운이 좋게도 몸이 반쯤 베여 튕겨나갔다.
‘계속 싸우고 있을 상황이 아니야. 아송을 데리고 가야 해.’
정작 가장 위험한 저 노괴가 움직이지 않았다.
악심파파 철수련이 움직이게 되면 아송을 데리고 도주할 수 없을 지도 모른다.
머릿속에 결심이 서자 나는 곧바로 이를 행하기 위해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아송에게 다가가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혈도를 점했다.
“으으으으….”
[조금만 참아.]그리고 아송을 들쳐 메려는 순간이었다.
-푹!
“헉!”
화끈거리는 고통에 나도 모르게 앞으로 일장을 뻗었다.
이에 아송이 뒤로 튕겨나가고 말았다.
-운휘야!
허공을 날아다니던 소담검이 부리나케 내게 날아왔다.
가슴 한가운데 날카로운 비수가 꽂혔다.
심장까지 닿았는지 숨을 쉬기 힘들만큼 그 고통이 말로 형용할 수가 없었다.
“끄으으으.”
너무 고통스럽다.
하지만 이대로 비수를 계속 꽂고 있을 수도 없었다.
나는 힘겹게 손으로 비수를 뽑았다.
-탱그랑!
회복 능력이 없었다면 진즉에 죽었을 지도 모를 상황이었다.
“으으으으.”
튕겨나갔던 아송이 몸을 일으켜 세우는 모습이 보였다.
설마 혈도를 점했는데도 움직일 수 있을 거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
조금 전과 다르게 녀석은 다른 죽립인들처럼 기이한 신음 소리만 흘려댔다.
처음부터 정신을 차리지 못했던 것처럼 말이다.
설마 이걸 노렸단 말인가?
나는 고개를 돌려 마차를 쳐다보았다.
바로 그때였다.
-끼이이이이익!
마차의 옆문이 열렸다.
열린 문으로 누군가 나왔다.
-딸랑! 딸랑! 딸랑!
방울이 울리는 소리와 함께 지팡이를 땅에 짚는 소리가 들려왔다.
꾸부정하게 허리를 숙이고서 네다섯 살 정도에 남아인지 여아인지 구분이 안 되는 창백한 얼굴의 아이를 업고 있는 중년의 여부인의 옆모습이 보였다.
‘노파이지 않나?’
옆모습만 보면 40대 중반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무공이 높을수록 노화가 늦어진다고 해도 팔구십의 노파와는 관련이 멀었다.
-스윽!
여부인이 고개를 돌리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두 눈동자에 동공이 보이지 않았다.
백안(白眼) 그 자체였다.
앞을 보지 못한다고 들었는데 그것 때문에 그런 것일지도 몰랐다.
한데 어떻게 정확하게 내가 있는 방향을 쳐다보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때 여부인이 입을 열었다.
“너 그 남자와 무슨 관계지?”
마차 안에서 들려오던 그 목소리였다.
그럼 이 중년의 여부인이 악심파파 철수련이라는 소리였다.
나는 목소리를 변조하고서 그녀에게 말했다.
“나야 말로 묻겠소. 이 자에게 무슨 짓을 한 거지?”
아송을 손으로 가리켰다.
그러자 철수련이 느닷없이 기괴한 웃음소리를 냈다.
“크카카카카카카칵!”
멀쩡한 얼굴로 어떻게 저런 노파들의 웃음소리를 내는 거지?
듣는 것만으로도 계속 거슬릴 정도다.
막 웃어대던 철수련이 웃음을 뚝 그치더니 말했다.
“그 아이가 아송이더냐?”
‘!!!’
순간 나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입 밖으로 아송에 대해서 거론한 적이 없었다.
‘……말도 안 돼.’
그렇다는 것은 전음을 엿들었다는 건가?
심장이 뛰는 소리를 마차 안에서 듣고 있었다는 것보다 훨씬 충격적이었다.
말문이 막혀하는데 철수련이 기괴한 형태에 방울이 달려 있는 지팡이를 바닥에 찍었다.
-쿵! 딸랑!
“으으으으!”
그러자 아송이 고통스럽다는 듯이 자신의 머리를 움켜잡았다.
아송의 얼굴이 순식간에 새빨개지며 이마의 핏줄들이 터질 것처럼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철수련!”
“그 남자와 아는 사이인지 물었다.”
지팡이를 짚고 있는 그녀의 손가락이 까딱거리며 움직였다.
자신이 조금만 손을 써도 아송을 죽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인 듯 했다.
“당장 멈춰!”
“묻는 말에나 답하거라.”
“대체 누구를 말하는 거냐?”
“너희들이 존주라고 부르는 자.”
대뜸 이게 무슨 소리지?
애초에 동맹을 맺으려 했던 것도 존주의 약점을 알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철수련이 계속 입을 열었다.
“네 주인을 배신하려는 것이더냐?”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지? 당장 멈추지 않으면…..”
-딸랑!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방울이 울려 퍼졌다.
그러자 머리의 핏줄이 부풀어 올라 고통스러워하던 아송이 자신의 한쪽 팔을 스스로가 그대로 꺾어버렸다.
-콰득!
팔꿈치의 뼈가 살점을 뚫고 튀어나왔다.
“철수련!”
나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악심파파 철수련에게 신형을 날렸다.
순식간에 매처럼 미끄러져가며 거리를 좁힌 상태에서 혈마검으로 반달의 궤적을 그렸다.
혈천대라검의 혈라검천이다.
철수련이 사술을 부리는 것을 멈출 방법은 두 가지 뿐이었다.
그녀를 제압하든지 죽이든지다.
그런데 믿기지 않은 일이 벌어졌다.
내가 휘두르는 검의 경로를 철수련이 물 흐르듯이 상체를 슬쩍 움직이며 그대로 결을 따라서 피하는 것이 아닌가.
‘어떻게?’
정말 장님이 맞는지 의심이 갈 정도였다.
아니 설사 눈을 뜨고 있다고 해도 혈라검천의 궤적은 단순하면서도 오묘한데, 이를 이리 쉽게 피한다는 것은 그녀의 무위가 상상 이상임을 의미했다.
-팍!
철수련의 지팡이의 머리 부분이 내 가슴을 노려왔다.
나는 보법을 펼치며 이를 피해냈다.
지팡이가 움직이는 궤적은 그야말로 전광석화였다.
‘빠르다.’
마치 쾌검을 보는 듯 하다.
나는 그런 그녀의 지팡이의 궤적에 맞춰 혈마검을 휘둘렀다.
‘혈천대라검 제 3초식 경원무혈(勁原武血).’
-챙!
검 끝에 기운을 집중하여 침투경(浸透勁)과 같은 경력의 효과를 내는 검초였다.
지팡이를 타고서 흘러들어간 경력이 그녀의 손에 미칠 것이다.
그런데,
-쩌저저저적!
철수련의 발바닥 부분의 땅이 갑자기 갈라졌다.
그것은 경력이 타고 흐르는 순간 몸 밖으로 순식간에 배출했다는 의미였다.
이 짧은 시간에 이런 대처를 할 수 있다니 입이 벌어질 만큼 역량의 차원이 달랐다.
-딸랑!
그때 귓가로 방울 소리가 들려왔다.
그 순간 누군가 내 다리를 움켜쥐는 듯한 소름 끼치는 감각이 느껴졌다.
‘이게 대체?’
묶여있을 틈이 없었다.
공력을 끌어내서 이를 뿌리치려는 순간 철수련의 지팡이가 나의 가슴을 세차게 두드렸다.
-퍽!
“크헉!”
가슴을 타고서 전신을 파고드는 경력에 입에서 선혈이 뿜어져 나왔다.
진혈금체로 몸을 보호하고 있는데도 고작 일수에 이런 위력이라니 기가 막힐 정도다.
철수련이 입 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경력은 이렇게 쓰는 거란다. 애송아.”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철수련의 지팡이가 내 안면을 노려왔다.
나는 다급히 검으로 지팡이를 쳐냈다.
-챙! 촤르르르!
그런데 지팡이에 실려 있는 심후한 공력에 다섯 보 가까이나 밀려나고 말았다.
혈마화와 진혈금체를 동시에 운용하는데도 그녀의 공력이 나보다 한 수 위임을 알 수 있었다.
이 노괴는 정말 괴물 그 자체였다.
벽의 벽을 넘었다는 말이 실감이 갈만큼 너무도 강했다.
조금만 방심해도 사지로 가는 것은 한순간의 일일 것이다.
온몸의 감각이 예민해졌다.
그때 철수련이 내게 말했다.
“심장이 찔려도 멀쩡하고 경력이 오장육부를 침투했는데도 멀쩡히 내 지팡이를 받아내는 것을 보면 분명 시술을 받았는데 시치미를 뗄 작정이더냐?”
‘!!!’
…….이 여자 내가 회복능력을 가졌음을 눈치 챘다.
아송에게 기습적으로 심장을 찔렸을 때 알아챈 게 틀림없었다.
철수련이 내게 지팡이를 겨냥하며 말했다.
“심장이 떨리는 것을 보아하니 꽤 많은 비밀이 있는 것 같구나. 그 입으로 직접 실토하게 만들어주마.”
-팟!
그 순간 철수련의 신형이 앞으로 흐릿해지며 뻗어왔다.
더 이상 모든 패를 아껴두고 할 그런 상황이 아니었다.
지금으로서 유일하게 이 노괴를 상대할 방법은 풍영팔류와 신로 성명검법뿐이었다.
풍영팔류를 펼치기 위해 운기를 하려는 순간이었다.
-채앵!
내게 쇄도해오던 철수련이 갑자기 멈추고서 뭔가를 쳐냈다.
앞이 보이지도 않는데 그녀가 인상을 찡그렸다.
-툭! 데구르르르!
그때 바닥에 무언가 떨어지며 구르는 것이 보였다.
그것은 작은 쇠구슬이었다.
‘이건……’
철수련이 어딘가를 쳐다보며 경계심이 섞인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누구냐?”
그녀가 바라보는 곳에서 새하얗고 창백한 얼굴에 콧수염을 기른 학사와 같은 풍모를 지닌 중년인이 뒷짐을 지고서 걸어오고 있었다.
중년인이 나를 한 번 슬쩍 쳐다보더니, 철수련에게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그 녀석의 장인이다.”
끝
ⓒ 한중월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