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word Sense RAW novel - Chapter 241
80화 반시(半屍) (3) >
-계집. 이리 오거라.
-히익!
이백여 년의 세월, 그녀는 그 동안 타인의 육신을 차지하기 위해 수많은 혼(魂)들을 접해왔다.
대부분의 혼들은 오랜 세월 동안 살아오며 강해지고 악독해진 그녀의 혼을 견디지 못하고 쫓겨나다시피 했다.
그러나 진운휘의 심층부에 자리하고 있는 이 혼.
그것은 여태껏 접해왔던 혼들과는 완전히 궤를 달리하고 있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두터운 혼돈 속에 분노와 살의, 파괴가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혼…..그것과 달라. 설마 백인가?
이것은 백(魄)이 틀림없었다.
죽은 자의 원념과 혼의 잔재가 남은 것.
그런데 그 백이 이렇게 강할 줄이야.
-대, 대체 뭐야? 어떻게 몸 속에 이런 존재를…..
방술과 사술에 능한 그녀조차 접해보지 못한 상위적 존재였다.
이렇게 강한 백은 처음 본다.
-이건 밀어낼 수 없어.
오래된 백은 잘못 건드렸다가 오히려 역으로 먹히는 수가 있다.
그녀는 어떻게든 자신을 잠식하려 드는 백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방술을 강구했다.
-급급여율령(急急如律令). 여적경순(勵迪境循)!
하다 못해 사귀를 쫓는 주술까지 외울 지경에 이르렀다.
백은 일종의 원념이나 다름없었다.
그렇다면 이 주술이 통할 지도 모른다.
-급급여율령!
-스르르르!
그것이 효과가 있는 것일까?
자신의 혼을 잠식해오던 기운이 잠시 약해졌다.
찰나에 그녀는 있는 힘을 다해 그 악한 기운에서 벗어나 도주를 시도했다.
-벗어나야 해!
오랜 세월을 살면서 얻게 된 진리가 있다.
아니다 싶을 때 미련을 가지면 안 된다.
어째서 몸에 이런 괴물을 가두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저것을 밀어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벗어나야 해! 서둘러….
육신이 있는 것도 아닌데 헐레벌떡 심층부를 벗어나려는 그녀의 혼.
그러나 도중에 뭔가에 막히고 만다.
설마 그 백이 자신을 따라온 것인가 싶었는데, 그것과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다.
-녀석의 혼인가?
만약 그런 것이라면 운이 좋다고 할 수 있다.
기본이 되는 혼만 밀어내도 육신을 조종할 수 있으니 말이다.
-뒷걸음질 치다 쥐를 잡는 격이구나. 크카카카카칵.
아까 전과 같은 백이 아니라면 두려울 것도 없었다.
자신감을 되찾은 철수련의 혼이 그것을 밀어내기 위해 다가갔다.
그런데 귀에 거슬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까득까득!
손톱을 뜯는 것만 같은 소리.
그것에서 느껴지는 초조함에 철수련의 혼은 확신했다.
분명 당대 혈마의 혼이 틀림없다고 말이다.
자신이 잠식했던 모든 혼들은 두려움과 초조함을 가지고 있다.
-찾았다. 이놈.
이제 이 혼을 밀어내기만 하면 된다.
고작 스무 해 정도 살아온 애송이의 혼이 강해봐야 얼마나…..
-콰득!
그 순간 그녀의 혼을 초조해하던 그것이 갑자기 붙들었다.
혼과 혼이 접촉하는 순간 철수련의 혼은 또 다시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분명 극도로 초조해하고 있던 혼이었다.
한데 자신과 접촉하는 순간 아까 전에 만났던 혼보다는 아니었지만 상상을 불허하는 거대함을 느꼈다.
-이, 이게 뭐야?
-새로 들어왔니?
-이, 이것도 혼이 아니잖아. 너…..너 대체 뭐야?
이것 역시도 백(魄)이었다.
당대 혈마의 혼이 아니었다.
섬세하고 감정이 확연히 느껴지는 것을 보아 여자의 백이었다.
한데 자신보다도 훨씬 더 연륜이 있고 심지어 사악함과 요사스러운 기운이 요동을 칠 만큼 강렬했다.
-신입이 당당하구나. 남자면 좋았을련만.
-뭐?
-그래도 갖고 놀기는 좋아 보이네.
야릇하면서 위협적인 목소리가 소름 끼쳤다.
강한 경계심을 느낀 철수련의 혼은 또 다시 자신을 붙들고 늘어지는 이 정체 모를 백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 힘을 썼다.
-이놈 대체 뭐야? 하나의 몸에 어째서 이런 괴물 같은 것이 또?
경험으로 미루어 볼 때 이 혼 역시도 수백 년은 묵었다.
자신의 배가 넘는 세월을 살아온 혼이라는 소리다.
-깔깔깔 어차피 이곳을 못 벗어난단다. 포기하렴. 그 괴물들보다 본녀를 수발하는 게 더 좋을 거야.
철수련의 혼은 미칠 노릇이었다.
야금야금 잡아먹듯이 자신의 혼을 붙들고 잠식해오는데 점점 힘이 빠졌다.
이러다간 완전히 먹힐 지도 몰랐다.
-급급여율령(急急如律令). 여적경순(勵迪境循)!
철수련의 혼은 또 다시 사귀를 쫓는 주문을 외웠다.
이들은 육신이 없는 영적인 상태의 백이기에 이 주문만큼 효과적일 수가 없다.
잠식해오던 백이 붙들던 힘이 약해졌다.
-지금이야.
철수련의 혼은 미친 듯이 이 사이한 영혼에게서 벗어났다.
-여기서 도망칠 곳은 없어.
울리는 목소리에 오히려 자신이 더욱 초조해졌다.
더 이상 이놈의 몸을 빼앗고 싶은 마음은 사라졌다.
어떻게 심층부에 이런 괴물들이 갇혀 있는지 모르겠지만, 벗어나지 않으면 이들에게 먹힐 지도 몰랐다.
-벗어나야 해. 여긴…..여긴…..
감옥이나 다름없었다.
이곳에 갇히면 영원히 고통 속에 휘말릴 지도 몰랐다.
심층부의 윗편으로 희미한 빛이 보였다.
철수련의 혼은 있는 힘을 다해 그곳으로 뻗어나갔다.
-밖으로 가서……아이들을…..불러야…..
조금만 더 올라가면 된다.
손을 위로 뻗듯이 빛에 닿기만 하면 이 몸을 벗어날 수 있다.
심층부 밑에서 느껴지는 사악하고 사이한 혼들이 자신을 붙잡기 전에 어떻게든!
-치이이이이!
-아아아아악!
그 순간 그녀는 타들어가는 듯한 엄청난 고통에 사로잡혔다.
빛에 닿는 순간 혼이 육신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이건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이, 이게 대체….
환한 빛은 마치 자신과 상극처럼 느껴졌다.
다시 한 번 진입을 시도하려 했으나 똑같은 고통이 느껴졌다.
-치이이이이!
-아아아악! 뜨거워! 너무 뜨거워!
염열지옥(炎熱地獄)이 있다면 그런 고통일까?
불꽃이 자신의 혼을 불살라서 태워버리는 것만 같았다.
철수련의 혼은 그제야 이것이 심층부를 벗어나는 출구가 아님을 깨달았다.
-출구….출구가 아니야? 이건…..설마….
그녀는 이 빛이 당연히 출구일거라 여겼다.
워낙 강한 빛을 발하고 있어서였다.
그러나 이 푸른 빛은 자신과는 완전히 상극되는 기운이었다.
-서, 선기?
그것은 바로 선기(仙氣)였다.
자신이 음(陰)이라면 이것은 양(陽)의 기운이다.
양의 기운이 작다면 대항이라도 하겠지만 이것은 말로 형용키 어려울 만큼 크고 강했다.
-어떻게 한 몸에 그 사악한 백과 이런 선기를 가진…..
-허허허. 객이 늘었구나.
머릿속을 울리는 정기 넘치는 목소리.
그녀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절대적인 존재였다.
이것은 그냥 백이 아니었다.
신(神)적인 영역으로 들어선 존재였다.
-다, 당신 대체 뭐야?
-속세의 사람들은 노부를 검선이라고 불렀다네.
-거, 검선!
철수련의 혼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무(武)를 연마하는 자라면 검선의 위명을 모르는 자가 세상에 있을까?
-…….말도 안 돼.
자신이 들어온 육신의 주인은 당대 혈마다.
사파 중의 사파라 불리는 혈교의 수장의 몸에 어째서 검선의 백이 있단 말인가?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노부는 그저 백의 조각에 불과하네. 하나 자네는 살아있는 혼이 어찌하여 이곳으로 들어왔는가?
-나….나는…..
-이 아이의 육신이 탐이 났던 겐가?
이미 그녀의 목적을 꿰뚫고 있었다.
아무리 악명을 떨치고 사람들을 두렵게 만든 악심파파 철수련이라고 하나, 검선이라는 신적인 영역에 들어선 백과 접촉하니 너무도 두려울 수밖에 없었다.
말문이 막혀서 어떠한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검선의 백의 조각이 말했다.
-안타깝도다. 안타까워. 어찌 욕심을 부려 스스로를 잃는 겐가.
-그게 무슨?
-이곳은 념(念)이 통제되는 천권(天權)의 세상. 한 번 들어온 백(魄)은 나갈 수 없는 막다른 곳이네.
다른 것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한 번 들어오면 나갈 수 없다는 말밖에 들어오지 않았다.
-안 돼! 안 돼!
그럴 수 없었다.
이백 년 가까이 되는 세월을 어찌 버텼는가.
오직 하나의 목적만을 위해 살아왔다.
그것을 이루지도 못했는데, 이런 무간지옥과도 다름없는 감옥에 갇힐 수 없었다.
-이제 주제파악을 했느냐? 계집.
울려 퍼지는 피로 얼룩진 것만 같은 사악한 목소리.
육신이 없음에도 그녀의 혼은 떨려왔다.
-도망칠 수 없다고 했지.
이들의 백이 자신을 먹잇감처럼 여기고 있었다.
괴물 같은 백들에 둘러싸인 그녀는 절망에 빠져들었다.
철수련의 혼은 계속해서 주술을 외웠다.
-급급여율령(急急如律令). 여적경순(勵迪境循)!
그러나 그것은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멍청한 계집.
-악귀를 쫓는 주술이라니. 깔깔깔.
오히려 이에 적응하기라도 한 것처럼 비웃으며 혼들이 그녀의 혼을 붙들었다.
그리고 밑으로 끌어내렸다.
지옥으로 끌려 내려가듯이 철수련의 혼은 잠식되어 갔다.
-스르르르르!
-안 돼! 안 돼에에에에에에!
* * *
-우우웅!
손등에 있는 북두칠성 형태의 점 중에 네 번째 점인 천권이 강렬한 빛을 내며, 순간 잃었던 정신이 화들짝 깨어났다.
‘이게 무슨 일이지?’
나는 이 상황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악심파파 철수련이 내 몸이 탐난다는 말을 하고 나서 정신을 잃었었다.
한데 뭔가 강한 힘에 의해 다시 끄집어내진 것만 같다.
‘아!’
여전히 내 등에 악심파파 철수련이 매달려 있었다.
그녀를 떼어내려고 하자 갑자기 손등에 있는 네 번째 점인 천권이 보랏빛으로 물들었다.
-화아아아악!
그 순간 머릿속으로 수많은 기억의 파편들이 갑자기 밀려들어왔다.
복잡한 기억들과 정보들이 머릿속에 각인되듯이 새겨지며 어지러움이 몰려왔다.
“큭!”
마치 혈마검과 사련검에서 백(魄)을 흡수했을 때와 같은 현상이었다.
내가 겪어보지 못했던 그런 기억들과 함께 방대한 기운도 동시에 밀려들어왔다.
그것은 등에 매달린 철수련의 몸을 타고 들어오고 있었다.
‘내공?’
염(念)뿐만이 아니라 내공도 들어오고 있었다.
심후한 내공이 밀려들어오면서 머릿속에 알지 못하는 구결들이 저절로 떠올랐다.
구결에 맞춰서 운기를 하자 방대한 내공이 단전으로 들어와 기존에 있던 내공들과 섞여갔다.
영문을 모르겠지만 분명 내겐 기연이었다.
어떻게든 이 내공을 흡수해야 한다.
“후우.”
선천진기와 달리 내공은 성질이 달라 얼마만큼 소화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 기회를 놓칠 수야 있나.
머릿속에 떠오른 운기 구결에 맞춰 내공을 받아들였다.
어떻게 이 작은 체구의 아이의 몸에서 이만큼 방대한 내공이 있는지 모르겠다.
한참 그렇게 흡수하고 있던 찰나였다.
-팟!
수풀을 뚫고서 누군가가 나타났다.
그는 장인어른인 월악검 사마착이었다.
“이건…..”
사마착이 내게 매달려 있는 철수련을 보고서 놀라서 다가왔다.
그러나 이윽고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꼈는지 내게서 철수련을 떼어놓으려다가 물러났다.
그녀의 몸에 있던 기운이 내게 밀려들어오는 것을 알아챘나 보다.
여기서 함부로 떼어내면 둘 다 위험해질 수 있다.
“대체 무슨 짓을 하는 거냐? 노괴.”
사마착은 내가 노괴에게 당하고 있다고 여긴 모양이다.
그는 주위를 돌며 나와 붙어 있는 철수련을 유심히 살폈다.
기회를 노려서 떼어내려는 모양이었다.
“쿨럭…..”
순간 입에서 핏물이 흘러나왔다.
그것은 입 뿐만이 아니라 코에서도 나왔다.
이미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내공의 한계를 넘어서며 경맥들에 과부하가 온 것이다.
바로 그때였다.
“아아아악!”
가만히 붙어서 내공을 빼앗기고 있던 철수련이 몸을 갖다대던 것을 강제로 밀어냈다.
서로 기운을 유착하던 상태에서 강제로 떨어졌기에 동시에 입에서 선혈을 내뿜고 말았다.
“풋!”
“끄웩!”
그 순간을 사마착이 그녀를 내게서 떼어내려고 했다.
하지만 철수련이 다급히 내 목을 움켜잡았다.
“하아…하아….다가오지마!”
“노괴!”
사마착의 검이 도중에 멈췄다.
거친 호흡을 내뱉으며 철수련이 손아귀에 힘을 주고서 내게 말했다.
“네놈…..네놈 대체 뭐야?”
그녀의 목소리는 공포심으로 가득했다.
마치 지옥이라도 겪은 사람마냥 붙어있는 신체 부위들이 심하게 떨렸다.
알 수 없는 말에 사마착이 검을 겨냥한 채 말했다.
“노괴. 그 녀석에게서 떨어져라.”
그 말에 철수련이 사마착을 노려보았다.
그러더니 갑자기 허공을 쳐다보며 기괴한 외침 소리를 냈다.
“까가가가가가가가가각!”
숲 전체를 울리는 외침.
대체 무슨 짓인가 싶어 사마착이 인상을 쓰는데, 이윽고 주변에서 인기척 소리들이 들려왔다.
-파파파파파파파!
뭔가 많은 수의 인기척이 이곳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어림잡아도 수십 명에 이르는 듯 했다.
수풀을 뚫고서 그 존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들은 다름 아닌 눈과 입을 실로 꿰맨 괴인들이었다.
강 건너편에 이렇게 많은 자들을 숨겨놓았을 줄은 나 역시 예상하지 못했다.
악심파파 철수련이 괴인들에게 소리쳤다.
“놈을 막아!”
그 명이 떨어지기 무섭게 괴인들이 일제히 사마착을 향해 달려들었다.
철수련이 손에 힘을 주고서 말했다.
“죽고 싶지 않다면 서쪽으로 달려!”
나를 데리고 도망치려고 하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콱!
철수련이 손톱이 파고들만큼 힘을 주며 소리쳤다.
“가!”
그런 그녀에게 나는 말했다.
“노괴……상황이 달라진 것 같다.”
“뭐?”
나는 손을 들어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딱!
그 순간 사마착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들던 괴인들이 얼음이라도 된 것 마냥 멈춰 섰다.
그들이 멈추면서 주위가 고요해졌다.
괴인들을 베어나가던 사마착도 이 괴이한 현상에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철수련이 당황한 얼굴로 소리쳤다.
“놈을 공격해!”
그러나 괴인들은 그 자리에서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에 나는 말했다.
“꿇어라.”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쿵! 쿵! 쿵!
수십 명이나 되는 괴인들이 동시에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 철수련이 어처구니가 없어했다.
“내, 내 아이들이 어째서…..”
끝
ⓒ 한중월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