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word Sense RAW novel - Chapter 246
82화 소문이 사실이었군 (1) >
서복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안개 속에서 날카로워지는 금빛 안광.
그것을 본 반백의 중년인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떠본 것이 어쩌면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년인의 이름은 두공.
중원 무림의 팔대고수의 일인이자 만박자라고 불리는 현인이었다.
만박자라는 별호답게 기문진법에도 능한 그는 오랫동안 추적해왔던 이 자를 잡기 위하여 함정을 파서 기문팔방진에 끌어들일 수 있었다.
다만 그를 제압할 능력이 부족하여 이렇게 나흘 째 팔방진을 보수해가며 그를 억지로 붙잡고 있었던 것이다.
“군방이라 하여 혹시나 했는데 정말이었구려.”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시치미 떼지 마시오
“……서복이라니 뜬금없는 소리군.”
“수많은 사람의 상을 보았지만 천기에서 벗어나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상은 그대가 처음이오. 죽은 자도 그런 상을 할 수가 없소.”
그런 두공의 말에 금빛 안광의 존재가 혀를 내둘렀다.
“방술을 공부하지 않았는데, 이 정도로 공부가 깊다니 과연 현인이로군.”
“그저 익혀나갈 뿐이오. 서복.”
확신에 찬 말투에 금빛 안광의 존재가 졌다는 듯이 말했다.
“…….아직도 그 이름을 기억하는 자가 있었다니.”
사실 군방이라는 이름을 안 것도 우연에 불과했다.
나흘 가까이 있으면서 둘째 날까지는 서로 대화 없이 벗어나려는 자와 붙잡아두려는 자의 싸움의 연속이었다.
그러다 지쳐서 한두 마디씩 나누던 게 계기가 되었다.
두공은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다.
“사기에서나 나올 법한 전설적인 인물을 만나 뵙게 되다니 영광이오.”
“사기?”
사기라 하면 역사서를 말한다.
“기문과 천기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그대가 얼마나 유명한지 모르는가 보오?”
“알 길이 있나.”
“그대를 실제로 본다면 묻고 싶은 말이 있었소.”
“묻고 싶은 말?”
“그대가 지금껏 살아있다면 정말로 ‘그것’을 찾았다는 말인데, 어찌하여 시황…..”
그런 두공의 말을 끊었다.
“그만두지. 나흘을 갇혀있다 보니 그대의 말재간에 넘어갈 뻔했군.”
그 말에 두공이 아쉬운 듯이 입맛을 다셨다.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가려 했는데, 상대가 잘 넘어오지 않는다.
“귀하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가 보오?”
“이젠 기억에서 희미한 일이다. 지나간 일과 죽은 자들을 일일이 열거해서 어찌 하겠다는 것이냐?”
참으로 무미건조한 말투였다.
무감정한 목소리 속에 담긴 초탈함은 세월에 무감각해졌음을 보여준다.
두공이 옅은 숨을 내쉬었다.
다른 방위로 걸어가 돌을 줍는데 진 속에 있는 자가 물었다.
“이쯤에서 그만두는 것이 어떻겠나?”
“그 자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을 말한다면 언제든지 놓아줄 수 있소.”
“참으로 끈질기군.”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이오.”
“계속 이곳에 있게 된다면 그대나 나나 이로울 게 전혀 없다.”
그런 그의 말에 두공이 웃으며 말했다.
“그대조차 이 진 속에 잡아두었소. 그 자를 왜 그리 두려워하는 것이오? 그대는 인류가 바라는 것을 이룬 유일한 인간이지 않소.”
“유일하다라……”
진 속에서 콧방귀를 뀌는 소리가 들렸다.
“그것이 감옥이리라고는 생각지 못하나 보군.”
“감옥?”
“현인이라 한들 그대가 어찌 알겠나?”
“모르오. 불로불사를 살아보지 않았으니 알 길이 있소.”
“모르는 게 약이라고 하지. 자네와 그 친구는 긁어 부스럼을 만드려하는군.”
그 말에 돌탑에 돌을 올려놓은 두공이 진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금빛의 안광을 정면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거두절미하고 다시 묻겠소. 그대가 그리 두려워할 정도의 자라면 얼마든지 뒤에서 모략을 꾸미지 않더라도 무림에 모습을 드러낼 수 있소이다. 한데 그 자는 그러하지 않았소. 오히려 분란을 야기시
키며 뒤에서 지켜보고만 있소.”
“……..”
“그 자에 대해 알려주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이오?”
“……왜 그렇게까지 알고 싶어 하지?”
“그 외눈의 금안인 자로 인해 그 친구는 아내를 잃고 가문에 쫓겨나고 무림에선 공적으로 몰리다시피 하였소.”
“복수를 하고 싶다는 것이냐?”
“복수라면 복수일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 그 친구의 명예를 되찾아주고 싶소. 그는 이대로 악인이라 불리며 썩히기 아까운 인물이오.”
“대단한 벗을 두었군.”
빈정거리는 말투에 두공이 한숨을 내쉬었다.
대화를 통해 설득해 나가려고 해도 상대는 한결 같았다.
그 입을 열게 하기가 쉽지 않다.
월악검이 온다고 해도 힘들 것 같다.
진 안을 빤히 쳐다보던 두공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대가 입을 열지 않는다면 내가 짐작한 바를 말해보겠소.”
“…….”
“그 정도로 철두철미하고 강한 자가 전면에 나서지 않고서 배후에서 무림의 판도에 손을 대고 있는 것은 그 자가 두려워하는 무언가가 있어서가 아니오?”
“…….”
“그렇지 않고는 이리 흔적조차 찾기 힘들만큼 자취를 감추는 것이 말이 되지 않소.”
그런 두공의 말에 진 안의 안광이 가늘어졌다.
뭔가가 있다고 생각한 두공이 말했다.
“나는 그것이 귀하라고 생각하오.”
그 말에 진 속에서 한바탕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하하하하하하핫!”
“…..아니오?”
“제대로 헛다리를 짚었군. 그 자는 나를 두려워하지 않아.”
“그럼 왜 그대를 찾는단 말이오? 혹시 그대의 두 눈이 금안인 것과 관련이 있는 것이….”
두공이 도중에 말을 멈췄다.
그리고 다급히 뒤로 몸을 돌리며 손을 내밀었다.
-팍!
그 순간 그의 손으로 길다란 화살이 잡혔다.
조금만 늦었어도 몸이 관통당할 뻔했다.
-파르르르!
화살이 남아있는 공력의 여파로 살짝 휘어진 상태로 떨렸다.
‘무슨 화살이?’
보통 화살보다 훨씬 길고 두꺼웠다.
범을 잡기 위한 화살도 이만큼 크지 않을 것이다.
이 정도 길이라면 적어도 보통의 화살보다 훨씬 먼 거리에서 날리기 위한 걸로 보인다.
‘이 주변에도 진을 깔아뒀건만.’
두공이 화살이 날아왔던 곳을 쳐다보았다.
그때 진 속의 사내가 말했다.
“기어코 사달이 벌어졌군. 진을 열고 당장 도망쳐라.”
“무슨 소리를 하는 거요?”
“놈과 엮이고 싶지 않다면 당장….”
-슉!
-팍!
두공이 몸을 회전하며 날아오는 또 다른 화살을 일장으로 위로 쳐냈다.
그런데 화살은 하나가 아니었다.
연달아 날아오는 화살이 노린 것은 자신이 아닌 방위에 쌓여 있던 돌탑 중 하나였다.
-쿠르르르!
돌탑이 화살에 의해 무너져 내렸다.
‘생문!’
그 돌탑은 기문팔방진의 생문(生門)이었다.
다른 돌탑은 무너져도 진을 곧바로 보수할 수 있지만 생문은 아니었다.
돌탑이 무너져 내리는 순간 짙은 안개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안됏!”
-팟!
그러기가 무섭게 진 안에 있던 인영이 흐릿해졌다.
“이런!”
두공은 기감을 곤두세우며 인영이 사라진 방향을 감지하려고 했다.
그러나 위치가 바뀌어서 날아오는 화살에 집중력이 흐트러지고 말았다.
-팍!
화살이 날아오는 속도나 공력은 그냥 무시할 수준이 아니었다.
게다가 갑자기 화살의 숫자가 늘어났다.
속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연달아 날아오는 화살에 두공은 이를 잡아내는 것을 포기하고서 경신법을 펼칠 수밖에 없었다.
-파파파팍!
그가 발을 내딛은 곳마다 화살이 연거푸 꽂혔다.
바닥에 거의 박혀서 깃만 보일 만큼 화살의 위력은 경이롭기마저 했다.
‘이 정도 궁사가 존재하다니.’
이런 커다란 화살로 속사에 가까울 만큼 빠르게 공격해와 정신이 없을 지경이었다.
가히 신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궁으로 경지에 이른 자였다.
이를 피하면서 두공은 확신할 수 있었다.
‘붙잡아두려는 건가?’
마치 진 속에 있던 자가 도망칠 수 있게 시간을 버는 것 같다.
얼핏 그를 돕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목적은,
‘그를 노리고 있다!’
이렇게 화살에 붙잡혀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그때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엄청난 속도로 화살 한 대가 정확히 그의 가슴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그런데 이것만이 아니다.
이어서 화살 다섯 대가 신체의 요혈들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전부 피할 수 없어.’
가장 치명적인 이 화살을 막거나 피하게 되면, 후에 날아오는 다섯 대를 전부 피할 여력이 부족하여 한두 발은 무조건 맞게 된다.
그러나 가슴을 관통당할 수는 없기에 어느 정도 각오는 하는데,
-팍!!
가슴으로 날아오던 화살을 누군가 맨몸으로 막아냈다.
‘서복!’
도망갔다고 생각한 그 자였다.
덕분에 두공은 동시에 요혈로 날아오던 나머지 화살들을 피할 수 있었다.
“어째서?”
의아해하자 팔목에서 관통한 화살을 쑤욱 뽑아낸 서복이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혼자서 빠져나가기는 그른 것 같거든.”
그 말은 부정하기 힘들었다.
점점 다수의 기척이 이곳으로 접근해오고 있었다.
두공이 마른 침을 삼키며 공력을 끌어올렸다.
‘이보게 착. 서둘러야 할 것 같네.’
* * *
반시(半屍).
말 그대로 반은 죽은 상태다.
악심파파 철수련의 백을 흡수하면서 알게 되었는데, 이것은 강시를 만드는 비법을 살아있는 인간에게 시행하면서 탄생한 것 같다.
이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반시도 거의 강시와 다를 바가 없어지는 것 같다.
거의 시체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아송……’
나는 아송의 눈꺼풀을 닫고 있는 실을 끊어냈다.
오감을 통제하기 위해서라고 해도 철수련이 사람들이나 아송에게 한 짓은 정말 끔찍한 짓이었다.
꿰맨 자국이 남아 있지만 그래도 실을 전부 빼내니 예전의 모습에 가까워졌다.
-처음 만났을 때 생각나네.
소담검도 녀석을 기억하고 있었다.
오랫동안 어머니의 유품으로 함께 해왔어도 처음 대화를 나눈 것은 그 날이었으니 말이다.
나는 아송의 눈꺼풀을 강제로 들어보았다.
눈동자의 동공이 멍하다.
게다가 그 색이 상당히 탁해져 있었다.
마치 죽은 사람의 눈동차처럼 말이다.
-왜 이래?
반시 상태로 오랫동안 유지하면 강시나 다름없어져.
그나마 아송은 이 상태가 된지 그리 오래 되지 않아서 가망이 있을 지도 모른다.
-어떻게 하려고?
공력으로 기맥을 잇고 비술을 역순으로 해봐야지.
철수련의 기억 속에 반시로 만든 경우는 있어도 그 반대로 풀어준 경우는 고작 한 번에 불과했다.
딱 한 번뿐인 사례가 기억에 있어서 다행이다.
다만 철수련이 내게 협박을 한다고 금제를 폭주시킨 게 문제다.
까딱 원래대로 돌아오지 못할까봐 두렵다.
-일단 해봐. 밑져야….
절대 본전 아니거든.
실수를 하면 아송은 의사소통조차 제대로 못하는 완전한 반시로 살아가게 될 거다.
나는 녀석을 일으켜 정좌 상태로 앉혔다.
그리고 오른손으로 머리의 다섯 혈도에 다섯 손가락을 올리고, 등 허리의 명문혈로 손바닥을 얹었다.
‘꼭 살린다.’
돌아가신 어머니와 나를 끝까지 모셨던 녀석이다.
지금이야 외조부와 아버지도 있고 아내가 될 사마영도 있지만, 그 전까지 영영이와 더불어 유일하게 가족과 같은 녀석이었다.
나는 동시에 머리의 다섯 혈과 명문혈에 공력을 주입했다.
관건은 균일한 힘으로 이를 주입하여 기맥을 잇고 피가 잘 순환토록 도와야 한다.
그렇게 다섯 시진이 넘도록 나는 밤을 꼬박 새웠다.
녀석의 기맥이 손상되지 않고 끊임없이 이어지도록 하기 위해 공력을 세밀하게 조종해야 했는데,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날이 밝아서 녀석의 얼굴이 또렷하게 보인다.
-이제 사람 같아 보이네.
밤새 고생한 보람이 있다.
창백했던 얼굴에 생기가 돌고 있었다.
수풀을 뚫고 들어오는 햇빛에 비춘 얼굴이 볼 만 하다.
“후우.”
할 수 있는 건 다했다.
이제 숙소로 데려가서 깨어나길 기다려야 겠다.
녀석을 어깨에 들쳐 메려고 하는 때였다.
“으아아아악!”
갑자기 아송이 비명을 지르며 발버둥을 쳤다.
그래서 다급히 녀석을 내려놓았다.
그러자 아송이 겁에 질린 얼굴로 두 팔로 뒷걸음질을 치다 내 얼굴을 보고는 두 눈이 왕방울만하게 커졌다.
“하!”
익숙한 모습에 나도 모르게 탄식이 흘러나왔다.
은근히 겁이 많아서 놀랄 때마다 저 표정을 짓는 녀석이었다.
“아송.”
“도, 도련님?”
끝
ⓒ 한중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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