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word Sense RAW novel - Chapter 247
82화 소문이 사실이었군 (2) >
“도, 도련님?”
다소 쉬었지만 익숙한 목소리다.
코 끝이 찡해졌다.
“이,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구만요.”
“생시야.”
그 말에 녀석이 자신의 볼을 세차게 꼬집었다.
그러더니 시무룩한 얼굴이 되었다.
“아…..꿈이구나. 하긴 납치당한 도련님이 내 앞에 나타나 눈시울이 붉어져서 쳐다보는 게 말이 안 되는 일이지.”
눈시울이 붉어졌었나?
아무튼 간에 이 녀석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생시라고 하는데 뜬금없이 왜 꿈…..설마?
나는 다급히 녀석에게 다가갔다.
녀석을 살펴보려고 하는데, 갑자기 아송이 대뜸 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그리고 혼자 넋두리 하듯이 중얼거렸다.
“이렇게 꿈에서라도 한 번 안아드려야지 했수다. 도련님. 지랑 마님도 없이 혼자서 그런 곳에 지내려니 외로우시죠? 지가 꼭 도련님을 찾을 겁니다! 그때까지 좀만 참고 계….”
“아송.”
“꿈이지만 목소리도 참 다부지셨네. 지금쯤이면 이런 모습이겠지요?”
“나 맞아.”
“어휴. 그려그려.”
“나 맞다고 아송. 이거 꿈 아니야.”
“…….네?”
은근히 허당끼가 있었는데 그게 여전하구나.
이런 모진 고생을 해서도 변한 게 하나도 없다니.
나는 녀석의 옆구리를 꾹 눌러보았다.
‘아…..’
이 부분을 누르면 꽤 아플 텐데 전혀 고통을 느끼지 못했다.
기맥은 어찌 연결했지만 고통을 느끼는 신경 계통은 복구가 되지 못한 것 같다.
그래서 제 볼을 꼬집고 나서 꿈이니 어쩌고 한 것이다.
그때 아송이 나를 살짝 밀쳤다.
“아니 왜 옆구리를 찌르는 거여요?”
“너?”
허참.
힘이 장사나 다름없다.
반시로 있을 때와 거의 다를 게 없었다.
아무래도 완전히 원래대로 돌리지 못했든지 아니면 반시로 있다가 돌아오면서 생겨난 부작용으로 보였다.
“아송. 아무래도 길지 않다고 해도 몇 년을 반시 상태로 있어서 그런지 완전히 원래대로는 돌아온 것 같지 않다.”
“몇 년 동안? 그게 무슨 말인가요? 지는…..”
순간 아송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뭔가 안좋은 기억이라도 떠오른 것 마냥 녀석이 갑자기 거친 호흡을 내뱉었다.
“아송!”
“헉….헉…..이…..이거 생시인가요? 지는 무림 연맹으로 가던 도중에 납치를 당해서….헉….헉.”
녀석이 숨을 제대로 못 쉬었다.
이해가 간다.
멀쩡한 인간을 강시처럼 만드는 비술을 당한 것도 모자라 눈과 입을 강제로 꿰매는 고통까지 당했다.
그 끔찍한 기억이 떠올랐는지 녀석이 자신의 눈과 입을 더듬었다.
“지…..지 얼굴이?”
“괜찮아. 내가 원래대로 돌아오게 했어. 아니 완전히는 아니지만.”
아송이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눈물이 그렁그렁해져서는 내 손을 붙잡았다.
“정말 도련님인가요?”
“나라고 했잖아.”
“아이고 도련님!”
녀석이 눈물을 흘리며 나를 얼싸안았다.
감격에 겨워하는 녀석의 등을 토닥거렸다.
못난 주인 때문에 모진 고생을 한 녀석에게 정말 미안하다.
어머니의 부탁이 아니었다면 녀석도 가문에서 허드렛일이나 하며 조용히 지낼 수 있었을 텐데.
그때 아송이 몸을 떼고서 내게 말했다.
“도련님 어찌 그곳에서 탈출한거여요? 무공도 익히지 못하는 양반이…..헉! 도련님 이럴 게 아니라 일단 도망쳐야 해요!”
“도망?”
“그, 그…..괴물 같은 노파가 지를 잡으러 올지 모르구만요. 아, 아니다. 지가 어떻게든 해볼 터이니 도련님은…..”
나는 아송의 팔을 붙들고 말했다.
“이제 끝났어. 아송.”
“도련님. 가볍게 들을 일이 아니어라. 그 괴물 같은 노파는 멀쩡한 사람을 붙잡아다가 눈과 입을 꿰매고 하는 미친 년이어요. 그, 그래. 그 악명 높은 사대 악인 중 한 사람인 악심할매라고….”
“풋.”
순간 웃음이 터져나왔다.
맞는 말이기는 한데 악심할매라고 하니 뭔가 어감이 이상하다.
나는 아송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악심할매는 이제 더 이상 네게 아무런 해를 끼칠 수 없으니 걱정 마.”
아송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어라?”
나는 녀석의 옆 쪽을 손으로 가리켰다.
그곳에 반 토막이 난 노파의 시신과 방울이 달린 지팡이가 있었다.
“힉!”
그것을 본 아송이 경기를 일으켰다.
그러다 지팡이를 보고서 두 눈이 커졌다.
“저건?”
악심파파 철수련이 들고 다니던 것을 기억했나 보다.
아송이 당최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내게 말했다.
“대체 이게 무슨 일입니까요? 혈교에 납치된 도련님이 제 발로 지 앞에 나타나질 않나. 무공도 익히지 못하시는 양반이 지를 어찌 구했다고….”
녀석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검결지를 옆으로 그었다.
-촤악!
그러자 허공이 일렁이며 날카로운 예기에 의해 바닥에 검흔이 파였다.
아송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도, 도련님? 설마 무공을 익힌 겁니까?”
단전이 파괴되어 무공을 평생 익히지 못한다고 여겼는데, 내 손에서 이런 신위가 발휘되자 많이 놀란 것 같다.
나는 녀석에게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가자. 가면서 이야기 해줄 테니 따뜻한 뭐라도 먹으면서 얘기하자.”
* * *
홍호현의 포구 마을.
객잔의 1층 구석 편에 앉아 식사를 하고 있는 네 사람이 있다.
그들은 사마영과 쌍둥이 형제인 송좌백, 송우현, 그리고 좌백의 스승이 된 귀살권마 장문량이었다.
“휴.”
송좌백이 국수가 다 불도록 한숨을 내쉬고 있는 사마영에게 말했다.
“좀 드시죠. 한숨에 땅 꺼지겠습니다.”
“입에 면이 들어가나요?”
그녀는 밤새 아무 소식이 없어 걱정이 되었다.
궁금해서 찾아갈까 싶었는데, 다들 만류했다.
오대 악인의 일인인 악심파파가 있는 곳에 갔다가 오히려 진운휘에게 방해가 될 거라고 말이다.
“어르신이 가셨으니 괜찮을 겁니다.”
“괜찮을지 아닐지 어떻게 알아요. 밤을 꼬박 새고 벌써 정오가 다 되었는데요.”
그런 그녀의 말에 장문량이 혀를 찼다.
“주공께서는 괜찮을 것이오. 그리고….”
장문량이 속삭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리 그 노괴가 강하다고 해도 월악검에 주공 두 사람을 어찌 감당하겠소이까?”
상식적으로 전력에서 전혀 꿀릴 게 없다고 보았다.
오대 악인의 두 명과 한 명의 대결 구도라면 누가 봐도 승률은 전자 쪽이 높이 않은가.
다만 밤새 여전히 깜깜 무소식이니 우려가 되긴 했다.
‘존주 그 놈의 말이 맞는 건가?’
그 괴물 같은 놈이 악심파파를 건드리지 말라고 할 정도라면 분명 뭔가 숨겨진 한 수가 있을 건 틀림없었다.
다만 그걸 이야기하면 사마영이 더욱 죽상이 될 것 같아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던 차에 밖에 웅성거리는 소리들이 들렸다.
여섯 명 정도 되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객잔 안으로 들어오는데, 주변인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뭔데 이렇게 소란스럽….헉!”
송좌백이 무심결에 그곳을 쳐다보았다가 고개를 낮췄다.
“뭘 봤기에….아!”
사마영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무리의 사람들 중에 아는 얼굴이 둘이나 있었다.
그런데 그냥 아는 얼굴 정도가 아니었다.
“열왕패도!”
가장 선두에 뒷짐을 지고 있는 강렬한 인상에 짧은 턱수염을 기른 중년인.
그는 바로 열왕패도 진균이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진균의 손자인 진용도 있었다.
장문량이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리키며 송좌백에게 말했다.
“흐트러진 것은 없느냐?”
인피면구가 흐트러졌나 확인하는 그였다.
장문량은 그와 한두 번 정도 마주친 기억이 있었다.
그때마다 악인과 팔대고수라는 대립 관계로 인해 겨뤘던 기억이 있다.
한데 지금은 아직 무공을 1할도 회복하지 못한 상태였다.
‘저 무공에 환장한 놈이 여길 왜?’
열왕패도 진균은 악인이라하면 치를 떠는 인간이었다.
괜히 정체라도 들통 나면 어찌 나올지 모르기에 당혹스럽기 짝이 없었다.
송좌백이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아니 무슨 여기가 만남의 광장이야. 무슨 초인의 집합소도 아니고.”
어제는 월악검 사마착이 불쑥 찾아오질 않나.
오늘은 열왕패도 진균까지 나타나니 황당하다 못해 참으로 공교롭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귀를 열고 집중하니 저들 일행이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이곳이 맞나?”
“맞습니다. 선배님.”
진균의 물음에 삼십대 중반으로 보이는 사내가 공손히 답했다.
그런데 진균의 옆에 서있는 손자 진용이 투덜거리 듯이 말했다.
“조부님. 정말 그 소문을 믿으시는 겁니까? 그때 직접 보시지 않았습니까? 고작 몇 달 만에 벽을 넘는다는 게 말이 됩니까?”
그런 진용의 말에 진균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무쌍성에서 뭐 하나라도 배우고 온 줄 알았더니 여전하구나.”
그 말과 함께 진균이 객잔의 구석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 사마영 일행을 쳐다보았다.
이에 송좌백이 화들짝 놀라서 시선을 회피했다.
진용이 눈을 가늘게 뜨더니 알아봤다는 듯이 말했다.
“어라. 저 두 거구들. 후기지수 논무 때 봤던 자들입니다.”
그 역시도 후기지수 논무에 참여했었고, 송좌백과 송우현 쌍둥이 형제들은 워낙 인상이 강렬하여 잊을 수가 없었다.
그런 두 형제를 쳐다보던 진균이 작게 탄성을 흘리며 말했다.
“네 대에는 참으로 뛰어난 자들이 많구나.”
“네?”
“부단히 갈고 닦지 않으면 이름을 날리기 어려울 게다.”
진용은 도통 진균이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의 조부는 손자인 자신뿐만 아니라 어떤 누구에게도 칭찬이 인색하다.
한데 저들을 보며 칭찬을 했다.
‘대체 왜 그러지?’
특히 저 쌍둥이 거구 중에 머리털이 있는 녀석은 후기지수 논무에서 그 남천검객의 후인과 겨뤄서도 패하지 않았던가.
한데 대체 무엇이 뛰어나다는지 알 수가 없었다.
“사람들이 많으니 2층으로 가자꾸나. 기다리다보면 볼 수 있을 테지.”
“선배님 저희가 모시겠습니다.”
일행들로 보이는 자들이 진균의 비위를 맞췄다.
자세히 보면 두 명은 표식이 그려진 옷을 입고 있었는데, 보아하니 무림 연맹의 사람들로 보였다.
일행들이 윗층으로 올라가려 하는데, 진용은 아니었다.
“조부님. 저들이 녀석의 일행일지도 모르니, 제가 가서 물어보고 오겠습니다.”
손자를 빤히 쳐다보던 진균이 숨을 내쉬며 말했다.
“예에 어긋남이 없도록 하여라.”
“알겠습니다.”
진균과 일행들이 위로 올라가자 진용이 사마영 일행이 있는 탁자로 다가왔다.
이미 들려오는 대화로 저들이 누구를 찾는지 짐작한 사마영과 일행들은 뭐라고 이야기를 해야 할지 전음으로 입을 맞췄다.
진용이 그들에게 다가와 두 손을 모아 포권을 취하려고 할 때였다.
그때 객잔 입구 쪽이 또다시 소란스러워졌다.
진용이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 햇빛을 등지고 서있는 두 인영이 보였다.
“공자님!”
사마영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객잔 안으로 들어오는 두 인영은 다름 아닌 진운휘와 아송이었다.
한데 입구에 있던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것은 그들이 나타나서도 있었지만 아송이 지고 있는 피에 얼룩진 커다란 포대 자루 때문이었다.
객잔으로 들어온 진운휘의 시선이 사마영과 일행들을 먼저 쳐다보았다가 2층 쪽으로 향해졌다.
“이보게!”
진용이 객잔 입구로 위풍당당하게 걸어가며 진운휘를 불렀다.
위를 힐끔 쳐다보며 눈치를 본 진용이 가볍게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소 소제 오랜만이로군.”
보자마자 아우 취급을 한다.
그런 진용의 말에 진운휘가 피식 웃었다.
무쌍성에서 본 적이 있는데, 인피면구에 안대까지 착용하고 있었기에 자신을 전혀 알아보지 못하고 있었다.
굳이 풍영팔류종의 소종주로서의 정체를 드러낼 필요는 없었다.
한데 그것이 진용의 심기를 건드렸다.
‘웃어?’
불쾌해지려고 하는데, 조부의 눈치가 보였기에 애써 이를 참았다.
그런데 오랜만에 보는데 이상하게 무쌍성에서 보았던 그놈과 같은 느낌이 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무튼 간에 조부가 그를 보고 싶다 했으니 데려가야 한다.
그때 진운휘도 가볍게 인사를 했다.
“오랜만이오.”
“소 소제. 요 근래 명성이 아주 자자하더군.”
그래봐야 과장이 심한 명성이겠지만 말이다.
소문이 사실인지 마음 같아서는 곧바로 확인하고 싶었다.
무쌍성에서 풍영팔류종의 팔류 중 두 무공을 배우고서 전보다 역량이 한층 발전했기에 나름 자신감에 차있는 진용이었다.
‘조부님께서 자리를 만들어주실 수도 있다.’
그렇지 않아도 그를 처음 만났을 때 자존심이 상한 것 마냥 자신을 나무라지 않았던가.
그때 이후로 그에 관한 소문만 들어도 괜히 이가 갈릴 정도였다.
어쨌거나 굳이 이곳까지 들린 것을 보면 자신과 이 녀석을 비교해보기 위한 것일지도 몰랐다.
‘비무를 시켜볼지도 모른다.’
판이 깔아져서 겨뤄보면 소문이 과장이 얼마나 되었는지 확인해볼 수 있을 거다.
한데 그냥 데려가자니 이 여유로운 태도가 꽤나 거슬렸다.
진용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도 무공 연마를 하기보다 자네처럼 명성을 쌓으러 다녀볼 걸 그랬네. 그랬다면 자네처럼 참 근사한 별호가 생겼을 텐데 말이네. 하하하하핫.”
얼핏 칭찬처럼 들리나 명백히 도발이었다.
주위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그렇게 느끼고 있으니 말이다.
그때 아송이 등에 지고 있던 포대를 바닥에 털썩 내려놓으며 말했다.
“아이고 무거워라.”
자연스레 진용과 사람들의 시선이 포대로 향했다.
그렇지 않아도 피로 얼룩져 있어서 저게 무엇인가 궁금했던 차였다.
이에 진용이 은근슬쩍 떠보듯이 말했다.
“그게 뭔가? 누가 보면 시체라도 담아서 들고 다니는 줄 알겠군.”
그런 진용의 말에 아송이 너스레를 떨며 말했다.
“이야. 참 눈썰미가 좋은 분인 것 같습니다. 도련님.”
“뭐?”
진짜로 시체가 들어있단 말인가?
진용이 인상을 찡그리며 포대를 쳐다보았다.
명색이 정파에서 이름을 떨치고 있는 자가 시신이 담겨 있는 포대를 객잔까지 가지고 오다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하나 마음이 바뀌었다.
이 참에 곤욕스럽게 해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니 소 소제. 백주대낮에 시신을 담아서 돌아다니다니 이게 무슨 짓인가?”
“무림 연맹에 보내야 할 시신이라 어쩔 수 없었소.”
“무림 연맹?”
“최근에 여자들을 납치하는 사건의 주모자요.”
얼핏 이곳으로 오면서 무림 연맹의 사람들에게 들은 것 같다.
인악면이라는 자가 무차별적으로 여자들을 납치하는 사건이 벌어져서 새로 창설된 봉황당의 당원들이 파견되었었다고 했다.
범인을 잡지 못했다고 들었는데 이 포대 안에 그 범인이 들어있다고?
“누군지 밝혀낸 건가?”
“그렇소.”
진용의 물음에 진운휘가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악심파파 철수련의 시신이오.”
“뭐엇?”
그 순간 진용은 자신도 모르게 경악을 숨기지 못했다.
-웅성웅성!
그것은 주위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악심파파 철수련이라고 한다면 오대 악인의 일인이 아닌가.
끝
ⓒ 한중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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