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word Sense RAW novel - Chapter 255
84화 기이한 연 (3) >
“속세에서는 검선이라고 불렸다고 했던가. 무림인들은 별호로 부르는 거 좋아하잖아?”
아아아!
이제 순양자가 누군지 알겠다.
검선의 도명이었다.
그렇다면 스승님의 도라고 말한 것이 이기어검이 아닌 옥형의 힘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단 말인가?
팔대고수나 악인들조차 이를 알아보지 못했건만.
그러고 보니 이 여자 마치 검선이 자신의 스승인 것처럼 말했다.
우화등선한 그를 존경하기라도 하는 걸까?
“……당신 대체 누구요?”
“나?”
여인이 피식하고 웃더니 내게 포권을 취하며 당당하게 말했다.
“나. 순양자 어른의 정식 둘째 제자인 여양선.”
“정식 둘째 제자?”
이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마치 살아있는 검선의 제자인 것처럼 이야기를 한다.
스스로를 여양선이라고 밝힌 이 여인이 정말로 검선의 진전을 이었다면 마지막 세 번째 지보를 얻었을 것이다.
한데 둘째니 뭐니 한다는 것은 그녀말고도 검선의 진전을 같이 이은 자가 있다는 건가.
의아해하고 있는데 그녀가 말했다.
“여기까지 왔다는 건 부름을 받고 속세를 떠나기 위해 도화선으로 들어왔다는 건데, 이제 슬슬 정체를 밝히지?”
“정체?”
“그래. 동문인지 아닌지를 알아야 족보를 정리할 거 아냐?”
이 여자 생각보다 익살스럽다.
표정 변화가 이렇게 다채로운 여자는 처음 보는 것 같다.
-어떻게 할 건가? 운휘.
한 번도 검선의 진전을 이었다고 밝힌 적이 없다.
그 이유는 무림 최고의 검수라 불리는 검선의 진전을 이었다고 한다면 그것이 낳을 파장이 굉장할 것이라 여겨서였다.
하나 이 여양선이라는 여자도 검선의 진전을 이었다면 굳이 숨기는 것보다 차라리 나 역시도 검선의 계보임을 밝히는 것이 나을 듯 하다.
이에 나는 그녀에게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검선 어르신의 진전을 이은 소운휘라고 하오.”
굳이 진전을 둘씩이나 이었다고 말할 필요는 없겠지?
괜히 긁어 부스럼만 생길 터이니 말이다.
그런 나의 말에 여양선이라 밝힌 여자가 그러면 그렇지라는 말과 함께 뽑았던 검을 검집에 다시 집어넣었다.
그러더니 작게 중얼거렸다.
“나 참. 스승님도 참 너무하네. 다른 제자가 있다면 있다고 말해줄 것이지. 괜히 숨겨서는 사형이 열을 내는 것도 당연하잖아.”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의아해하는데 그녀가 주위 도사들에게 포권을 취하며 공손한 목소리로 말했다.
“동문이 민폐를 끼친 것에 다른 계보의 도사님들께 사죄의 말씀 올립니다.”
그런 그녀의 말에 도사들이 쓰러진 이들을 부축하며 투덜거렸다.
“진즉에 말했으면 오죽 좋소.”
“어쩐지 괴물 같았던 것이…..”
“됐네. 도당으로 갑시다. 하여간 저쪽 계보는 너무 짓궂소이다.”
여양선은 철면피처럼 빙그레 웃는 낯으로 연신 포권을 취하며 고개를 숙였다.
도사들이 물러나자 그녀가 내게 다가오며 말했다.
“얼마나 수련했어?”
검선의 지보를 얻고서 얼마나 연마했는지를 묻는 건가?
무공 연마와는 궤를 달리하여 이걸 연마의 기준으로 봐야 할지 모르겠다.
뭐라고 이야기를 해야 하나 싶은게 그녀가 말했다.
“나는 스승님의 밑에서 얼추 오십여 년 정도 연마했거든. 스승님에게 사형조차 배우지 못한 재주를 전수받았다면 적어도 백 년은 넘게 수련했겠네? 또 사형이 생기는 건가. 에휴.”
‘!?’
오십 년?
지금 이 여자 오십 년을 연마했다고 말했나?
아무리 얼굴을 봐도 고작해야 스무 살 남짓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백혜향에 맞먹는 무재라고 여겼던 것이었는데.
“오십 년이라니? 그럼 세수가 육십, 칠십은 되었단 말이오?”
“스승님께 금단(金丹)을 받았다면 네가 나보다 훨씬 연배가 윗줄일 터인데 뭘 그리 놀라고 그래?”
“그게 무슨 소리요? 나는 이제 스물둘….”
“뭐?”
나의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여양선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녀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아니. 그럼 고작 몇 년 채 배우지 않았는데, 네게 그런 엄청난 재주를 전수해줬다는 거야? 이거 진짜 너무한데. 사형이 따질 게 아니라 나도 따져야 겠어.”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요?”
도통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만 하고 있다.
나도 내 볼일이나 말해야 겠다.
“소저….”
“너! 고작 몇 년 밖에 익히지 않았으면 사저(師姐)라고 불러야지.”
“사저?”
“어머. 그럼 사저지. 사매니? 내가 이렇게 젊고 어여뻐보여도 너보다 수십 년을 더 스승님께 배웠는데 소저가 뭐니?”
‘…….’
이 와중에 족보 정리를 하려는 건가?
그녀가 내게 활짝 웃으며 말했다.
“자. 한 번 해봐. 사저.”
뭔가 굉장히 즐거워 보인다.
말하는 투가 자신의 밑에 사람이 생겨서 즐거워하는 그런 느낌이다.
-그냥 맞춰줘라. 운휘.
나보다 훨씬 먼저 검선의 진전을 이었다면 사저라고 대우해주는 것도 틀린 말은 아니다.
한숨을 푹 내쉬며 나는 말했다.
“그렇게 부를 터이니.”
“사저!”
“알겠으니….”
“사저!”
“……사저. 이제 그 새하얀 얼굴….”
-꽉!
“웁!”
그때 여양선이 예고도 없이 나를 꽉 끌어안았다.
“꺄아! 나도 밑에 사제가 생겼다. 막내 생활 끝이야.”
그녀의 가슴에 얼굴이 압사당할 것 같다.
경장에 옷이 펄럭여서 몰랐는데 생각보다 가슴이 굉장히 크다.
그곳에 얼굴이 파묻힌 것이 민망한 나머지 나는 그녀를 다급히 밀쳐냈다.
“그만 하시오. 남녀가 유별한데 이리….”
“어머. 쑥스러움도 타는 거야? 우리 사제 귀여운데.”
그녀가 히죽거리며 내게 말했다.
꼭 아이 취급을 받는 느낌이라 기분이 오묘해진다.
나는 표정을 가다듬고서 그녀에게 말했다.
“됐고 이제 그 사내가 어디 있는지 말해주시오. 그 단검은 내게 매우 소중한 것이오.”
소담검은 내게 가족과도 같은 존재이자 어머니의 유품이다.
그런 녀석을 다른 누군가에게 빼앗길 수는 없었다.
그런 나의 말에 여양선에 웃으며 말했다.
“귀한 단검인가 보네. 그런데 사제. 네가 말하는 그 하얀 얼굴의 사내가 사형인 것은 알고 하는 소리야?”
“사형?”
“그래. 사형이라고. 아니 이제는 대사형이라고 불러야 겠네. 아무튼 대사형이 사제의 단검을 부러뜨리기라도 할까봐 그러는 거야? 아무렴 그럴까.”
여양선은 자신을 둘째 제자라고 칭했다.
하면 그 사형이라는 자는 검선의 세 번째 지보를 먼저 익힌 자인 것 같다.
하긴 옥형으로 날고 있는 소담검을 강제로 허공섭물로 끌어들일 정도라면 보통 사람은 아닐 거라 생각했다.
참으로 공교로운 일이다.
우연히 안개 숲으로 들어왔는데, 세 번째 지보를 익힌 자들과 이렇게 만나다니.
다만 도사들도 그렇고 무릉도원을 보는 듯한 이곳의 풍경부터 갑자기 밤낮이 바뀌는 조화까지 모든 게 심상치가 않다.
왜 그런 것인지 호기심이 생겼지만 일단 소담검이 먼저였다.
“일단 그를 만나게 해주시오.”
“어지간히 급한가 보네. 뭐 어차피 스승님께 가려던 참이니까.”
“스승님을 만나러 가? 그 자는 검선 어르신의 사당에 있는 것이오?”
그런 나의 물음에 여양선이 입술을 실룩거렸다.
그러더니 갑자기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
“깔깔깔. 사당이라니? 무슨 소리야. 누가 보면 스승님이 옛적에 등선이라도 한 줄 알겠다.”
“……그게 대체 무슨 말이오?”
아까부터 뭔가 대화에서 느꼈던 미묘한 이질감.
검선은 600여 년 전에 우화등선했다고 알려졌고, 심지어 그의 넋이라 할 수 있는 백(魄)과 만나서 대화까지 나누지 않았던가.
한데 그녀는 지금 검선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말하고 있다.
“무슨 말이긴 무슨 말이야. 스승님은 저기 순양전에 계신데 사당이 오히려 불경스러운 말이지.”
그녀가 배꼽이 빠지겠다는 듯이 웃어댔다.
당최 영문을 알 수가 없다.
여양선이 가리킨 곳을 쳐다보니 한 성전으로 보이는 건물의 현각에 순양전(純陽殿)이라고 커다랗게 적혀 있었다.
‘검선이…..살아있다고?’
* * *
나는 여양선을 따라서 순양전의 건물로 들어왔다.
건물의 1층에는 대전이었고 커다란 원시천존의 상 앞에서 스무 명 정도 되는 젊은 도사들이 경전을 외우고 있었다.
그 분위기가 자못 엄숙하기 그지없었다.
여양선이 내게 검지로 자신의 입가를 갖다 대며 조용하라는 시늉을 했다.
그녀를 따라서 대전의 측면을 가로지르자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계단을 올라서 2층을 곧바로 지나쳐 3층 꼭대기로 올라갔다.
3층으로 올라가니 문풍지로 벽 전체를 발라놓은 곳이 보였고, 그 앞에 등이 굽은 한 노인이 서기처럼 글을 적고 있었다.
여양선이 허리를 ㄱ자로 숙이며 그에게 인사를 했다.
“사숙.”
“양선이가 왔구나. 당과 하나 먹고 가렴.”
등이 굽은 노인이 책상 위의 그릇에 올려진 오색 당과를 슬쩍 밀었다.
이에 여양선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어요. 스승님을 뵈러 왔는데, 사형도 안에 있죠?”
“그렇단다. 하나 지금은 들어가기 좀 힘들 것 같구나.”
“아아…..기어코 사달이 났군요.”
노인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저 둘을 보면 예전에 사형이 스승님 밑에 있던 시절이 새록하구나. 한데 숭양전에 도복을 입지 않고 들어온 이 젊은 친구는?”
이제야 내게 관심을 보이는 노인이었다.
내가 직접 포권을 취하며 인사를 하려하자 여양선이 먼저 말했다.
“아아. 스승님께서 몰래 거두신 제자에요.”
“몰래 거두어?”
“네. 스승님의 도까지 익힌 걸 보면, 정식 제자가 틀림없어요.”
“허어? 그래?”
노인이 흥미롭다는 듯이 나를 쳐다보니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나도 포권을 취하며 고개를 가볍게 숙였다.
“어쩐지 네가 신이 난 이유가 있었구나.”
여양선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저 두 분 사제의 지긋지긋한 뒤치다꺼리도 끝이죠. 뭘.”
그녀는 내가 정말로 사제가 된 것처럼 굴고 있다.
모든 궁금증은 이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면 풀릴 것 같다.
여양선의 말대로 검선이 살아있는 것이라면 정말 놀라운 일이다.
그때 문풍지 바깥으로 호통 소리가 들렸다.
-고얀 놈. 와서 한다는 소리가 또 그런 것이더냐?
‘!?’
순간 나는 귀를 의심했다.
이 목소리는 정말로 검선의 그것이 틀림없었다.
심상의 세계에서 마주쳤을 때나 북두칠성의 새로운 별을 개방할 때마다 들려왔던 목소리와 똑같았다.
다른 게 있다면 목소리에 서려있는 노기였다.
저리 화를 내고 있는데 여양선은 늘상 있는 일인 것처럼 내게 키득거리며 말했다.
“봤지? 사제. 왜 멀쩡히 살아계신 스승님을 사당으로 모시려고 해.”
이런 그녀의 말보다 나는 문풍지 너머의 목소리에 더욱 귀를 기울였다.
언성이 워낙 높아져서 청력을 가다듬으니 선명하게 들렸다.
-애꿎은 황실의 탄압에 불쌍한 백성들의 도탄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를 어찌 지켜만 보고 있는단 말입니까?
이 목소리.
그 자의 것이 틀림없다.
소담검을 가져간 자다.
“하루가 멀다하고 네 사형도 참 대단하구나.”
“스승님의 주름을 늘리는데 재능이 타고난 거죠.”
안으로 들어가고 싶은데 계속 기다려야 하는 건가.
문풍지 안에서 소담검을 들고 간 그 자의 목소리가 이어서 들려왔다.
-무림인들을 탄압하고 나면 그걸로 끝날 것 같습니까? 아닙니다. 그 야욕이 넘치는 자는 저희처럼 숨어든 도인들도 노릴 겁니다.
-허어. 그들이 무슨 수로 우릴 찾아낸다는 게야? 이곳은….
-모산파를 간과하실 겁니까?
뭐지?
지금 모산파라고 했나?
멸문한 모산파를 그가 왜 거론한 건지 알 수 없다.
귀를 더욱 쫑긋 세우게 만든다.
-그들을 왜 거론하느냐?
-거론해야지요. 죽은 자를 농락한다하여 여러 스승님들께서 도화선으로 초대하지 않지 않으셨습니까?
-그들이 추구하는 도는 애초에 우리와 달리한다. 한데 어찌 함께 할 수 있겠느냐?
-그 원망의 화살이 무림과 저희에게로 향한다고 하여도 말입니까? 모산파가 만약 그 자와 손을 잡기라도 하면 어쩌실 겁니까?
대화를 듣는 내내 점점 혼란스럽다.
마치 오래 전 멸문한 모산파가 현존하는 것처럼 이야기를 하고 있다.
아니면 모산파가 아직까지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것일까?
-하아. 이제 그만 하거라. 어찌 가면 갈수록 심해지느냐? 네 사제를 조금이라도 본 받거라. 더욱 수양이 깊어야 할 녀석이 이렇게 세속에 미련이 있어서야.
-스승님이나 사백께서도 예전에는 그러지 않으셨습니까? 저보다 더 하면 더했지.
-허어. 그래서 네 사백이 어찌 되었는지 알고 있지 않느냐? 너도 그리 되고 싶은 것이더냐?
-…….
잠시 정적으로 물들었다.
나와 마찬가지로 안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집중하고 있었는지, 여양선이나 등이 굽은 노인도 입을 쩝쩝 다시고 있었다.
이윽고 다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차피 그러실 생각이 아닙니까? 스승님은 이미 마음 속에서 저를 지우시지 않으셨습니까?
-네가 어찌 그런…..
-아니면 여 사매와 제 관계를 인정해주시지 않으실 리가 없지요.
-도인이 어찌 그런 세속적인 관계에 집착하는 것을 인정한다는 말이더냐? 네가 정녕 정신을 차리지 못했구나. 그만 물러가서 화평암에서 면벽….
-아니요. 물러나지 못합니다.
-뭐야?
점점 두 사람의 대화는 격해지고 있었다.
이게 늘상 있는 일이라고 하기에는 극으로 치닫는 느낌이다.
방금 전까지 웃고 있던 여양선 또한 표정이 어두워졌다.
-스승님께서 정녕 저를 법도의 후계로 생각하셨다면 이렇게 제자를 들이지 않으셨겠죠. 이게 뭘 것 같습니까?
-그 단검은 무엇이더냐?
단검?
설마 소담검을 보이고 있는 건가?
나도 모르게 몸을 움찔하며 앞으로 튀어나가려 하자, 여양선이 팔을 붙잡았다.
“기다려. 사제.”
그녀의 말에 나는 숨을 내쉬며 멈춰 섰다.
계속 해서 문풍지 안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스승님이 직접 읽으실 수 있지 않습니까?
-네가 검의 기운을 강제로 압박하고 있는데, 어찌 소통을 한 단 말이더냐?
-…….제가 그렇게 미덥지 못했습니까? 도탄에 빠진 백성들과 도화선의 스승님과 사형제들을 걱정하는 것이 그리 잘못입니까?
-경정아……
-어째서 제게 기회를 주지 않느냐는 말씀입니다!
-네게 늘 기회를 주고 있다.
-아니요. 한데 어째서 칠십여 년간 스승님을 모신 제가 아니고, 다른 자에게 스승님의 도를 전수할 수 있단 말입니까?
-노부가 누구에게 도를 전수해?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게야? 사념이 너를 사로잡았구나. 이리 오너라.
-이걸 보고도 그런 소리가 나올까요.
-쾅!
그 순간 문풍지의 문이 뜯겨져나가며 열렸다.
부서진 앞에 이곳을 향해 손바닥을 내밀고 있는 창백한 얼굴의 청년이 보였다.
청년의 뒤쪽으로 새하얀 백의에 선풍도골의 노인이 뒷짐을 지고서 인상을 쓰며 이곳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검선!’
나는 두 눈이 휘둥그레질 수밖에 없었다.
정말로 검선이 안에 있었다.
그것도 심상 속에서 보았을 때보다 조금 더 젊고 정정해 보이는….
‘좀 더 젊어?’
내 눈이 잘못된 게 아니라면 지금도 노인이지만 좀 더 젊어 보이는 느낌이다.
머리카락도 완전한 백발이라기보다 검은 머리가 조금씩 섞여 있다.
창백한 얼굴의 청년이 손으로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 자는 어찌 설명하실 겁니까? 스승님의 숨겨둔 제자가 아닙니까?”
그런 그의 말에 검선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노부는 네가 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구나. 저 자는 누구이기에 도화선에 들어온 것이냐?”
검선의 표정을 보면 나를 정말로 모른다는 듯한 얼굴이다.
심상 속에서 그리 보았는데 나를 모르는 건가?
아니면 대체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저 검선은 대체 뭐지?
“사형. 이제 그만해요. 이건 사형답지 않아요.”
여양선이 앞으로 한 발자국 나서며 창백한 얼굴의 청년에게 말했다.
그럼에도 청년은 꿈적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가 차다는 듯이 검선에게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하! 끝까지 시치미를 떼시는군요. 제자가 아닌데 어찌하여 이 단검으로….”
-콱!
놈의 말이 끝나기도 전이었다.
어느새 청년에게 신형을 좁힌 나는 소담검을 쥐고 있는 그의 손목을 움켜잡았다.
청년이 무섭게 일그러진 얼굴로 내게 고개를 돌렸다.
“이게 무슨 짓이지?”
나는 놈에게 싸늘하게 식은 목소리로 말했다.
“남의 것을 훔친 주제에 당당하군.”
“훔쳐? 하!”
놈의 손에 점점 공력이 올라갔다.
공력으로 반발력을 일으켜 튕겨내려는 것 같은데 그리 쉬울까?
나 역시도 공력을 끌어올렸다.
-파르르르르!
놈과 나의 손이 동시에 떨려왔다.
‘!?’
반발은커녕 붙잡힌 손이 계속 빠져나와지지 않자, 나를 쳐다보는 녀석의 눈매가 점차 가늘어져갔다.
나는 청년에게 낮은 어조로 경고했다.
“젓가락질이라도 하고 싶으면 소담검을 그 손에서 놓는 게 좋을 거야.”
끝
ⓒ 한중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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