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word Sense RAW novel - Chapter 262
86화 추적 (2) >
도화선의 남쪽 입구.
진운휘가 밖으로 나간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다.
정양 진인이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진운휘가 사라진 곳을 바라보며 말했다.
“허허허. 모든 것이 순리대로 풀렸으면 좋겠구먼.”
그런 그의 말에 음양판을 들고 있는 도인이 빙그레 웃으며 답했다.
“그리 될 것입니다. 적은 재주라고 하나, 저희 모두가 처음으로 한 사람에게 전수를 했습니다. 대리인이기 이전에 공동 제자나 다름없습니다.”
“공동 제자라.”
그의 말에 도인들이 하나 같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
도를 수양하고 있으나 언젠가부터 문하의 도인들을 두고서 경쟁을 했던 그들이다.
한데 공동의 목표를 위하여 처음으로 뜻을 모은 것이다.
짧지만 그 기간이 의미있게 느껴졌다.
추억에 젖어드는 듯이 서로를 쳐다보던 차에 정양 진인이 말했다.
“이제 돌아가서 각자 제자들을 가르치도록 하여라.”
“알겠습니다.”
도인들이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아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정양 진인의 신형이 흐릿해지며 사라졌다.
이를 따라 다른 도인들도 하나둘씩 축지의 수법으로 떠나갔다.
검선도 순양전으로 돌아가려 할 때였다.
“한데 사형. 밖으로 보낼 지보를 만든다고 하더니, 그것은 완성하신 겁니까?”
퉁소를 허리춤에 차고 있는 도인이 그에게 물었다.
이에 검선이 웃으며 답했다.
“순리대로라면 남겨둬야 하지 않겠나.”
그것을 남겨둬야만 지금의 인연이 닿을 수 있으니 말이다.
“그렇지 않아도 저 역시도 속세에 아무 것도 남기지 않은 것이 그러한 듯하여 미련을 두지 않기 위해 음곡에 대한 작은 깨달음을 적어서 보내려하는데, 제 제자들이 순례길을 돌 때 같이 맡기시죠.”
“허허. 그리하면 되겠군.”
“알겠습니다. 때가 되면 말씀해주시….”
그의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이었다.
도화선 남쪽 입구의 안개가 일렁이며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를 본 검선과 퉁소의 도인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양선아!”
안개를 뚫고서 나타난 이는 다름 아닌 검선의 둘째 제자인 여양선이었다.
비틀거리며 걸어오는 그녀의 상태는 그리 좋지 않았다.
온몸에 검상으로 보이는 상처들과 초췌해 보이는 얼굴만 보더라도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
퉁소의 도인이 넘어지려하는 그녀를 붙들었다.
“괜찮느냐?”
“하아…..스….스승님은….”
힘겹게 내뱉는 그녀의 말에 퉁소의 도인이 검선에게 시선을 돌렸다.
검선이 가까이 다가와 그녀에게 말했다.
“이게 어찌 된 일이느냐?”
“스승님! 아아아아.”
검선의 얼굴을 본 그녀가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자신을 배신한 제자 자경정에게 납치당했던 그녀가 이런 모습으로 돌아오자 검선은 마음이 찢어지는 듯 했다.
검선이 그 감정을 겨우 억누르고서 그녀에게 말했다.
“녀석에게서 어찌 벗어난 게냐?”
“하아….하아….”
그의 물음에 호흡조차 가다듬지 못하던 여양선이 힘겹게 말했다.
“스승님…..사형을…..사형을 막아주세요.”
“녀석을 막으라니? 그게 무슨 소리인 게야?”
“사형이…..황제를…..”
“황제?”
그녀의 입에서 나온 뜻밖의 말에 검선과 퉁소의 도인이 심각해진 얼굴로 서로를 마주보았다.
* * *
군대의 가장 선두열에 곳곳히 보이는 장대 깃발.
그것에 적혀 있는 황(皇)이라는 커다란 글씨는 오직 황제의 군대만이 쓸 수 있다.
기이한 일이다.
황제가 군을 이끈다는 것은 친정이나 다름없다.
설사 황제가 직접적으로 군을 이끌지 않다고 해도 저렇게 대놓고 깃발을 올리지 않는다.
오히려 황제를 보호하기 위해 군을 실질적으로 이끄는 장군의 깃발을 올린다.
한데 이 군대는 보란 듯이 황제의 깃발을 올렸다.
그 뒤에 나란히 있는 깃발에는 나라의 명이 적혀 있다.
-연이라 적힌 거 맞지?
연(沇)?
그럼 이 군대가 연나라의 군대라고?
연나라가 세워진 것을 감안한다면 적어도 내가 있던 시기와 비교해 그리 멀지 않다.
적어도 수백 년 이내 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럼 지금이 어느 황조인지만 알아도 저 군대를 직접 이끄는 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다.
‘저긴가.’
확실히 군에 황제가 있는 게 틀림없는 것 같다.
보통 장수나 장군들은 선두에서 진군을 하는데, 한 가운데 집 채를 통째로 옮겨놓은 듯 한 마차가 석 대 정도 있었고 그 주변으로 경비가 삼엄했다.
선천진기를 안력에 집중해서 군을 전체적으로 살피니 얼핏 아는 얼굴은 없다.
‘흠.’
저리 커다란 마차들을 끌고 다니다니.
황제의 군대답게 뭔가 상상 이상이다.
‘남천 더 위로 올라가.’
-알겠다.
남천철검이 고도를 높였다.
-우드득! 우드득!
나는 서둘러 체화만변술로 얼굴의 형태를 바꾸었다.
고도도 훨씬 높였고 거리가 있어서 군에서 나를 발견할 확률은 없을 테지만 혹시의 상황에 대비할 필요는 있었다.
-일단 수가 많으니 가까이 다가가진 않을 테지?
‘그래.’
남천철검의 말대로 섣불리 접근하긴 힘들다.
약 2리 정도 떨어져 있다고 해도 여기서 고도를 낮추게 되면 눈치 챌 확률이 높다.
-어떻게 할까? 운휘.
잠깐만 생각을 좀 하자.
-파르르르!
격렬하게 흔들리는 추침판의 바늘을 보면 분명 법구가 저 황군 안에 있다.
게다가 지금 대놓고 법구를 사용하고 있는 듯 하다.
그 말인즉 황제의 군대 안에 검선을 배신한 제자인 자경정이 있다는 의미다.
-대체 저기에 왜 있는 거야?
나라고 그걸 알 도리가 있나.
다만 자경정을 잡아오기 위해 그에 대해 검선이 알고 있는 모든 정보를 숙지하긴 했다.
-뭐? 민생을 생각하고 성품이 나쁘지 않다는 그거?
그래.
문제는 거의 칭찬에 가까운 정보들이다.
검선에게 자경정에 대해서 들으면 들을수록 오히려 명문 정파인들보다도 훌륭하다.
백성의 안위를 걱정하고 도인들이 이렇게 도화선에 갇혀서 살게 된 현실을 안타까워하는 인물이었다.
-그런 놈이 왜 그렇게 삐뚤어졌대?
인간의 심성을 나라고 어찌 다 알겠는가.
-그럼 황제의 밑으로 들어갔을까?
황제의 밑으로?
그러기에는 뭔가 이상하다.
왜냐하면 검선과 자주 부딪쳤던 것도 자경정이 황실에서 도인들과 무림인들을 탄압하고 있는 것을 도화선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서 도와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했다.
그런데 대뜸 황제의 산하에서 벼슬자리라도 한다고?
완전히 어불성설(語不成說)이었다.
-…..그럼 혹시 황제를 죽이려고 저기 잠입한 거 아냐?
‘황제를 죽여?’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서 황군의 진군을 바라보았다.
확실히 황실에 붙어서 벼슬을 하는 것보다는 좀 더 아귀가 들어맞았다.
그 정도의 무위에 법구라면 황제를 죽이는 것도 고려했을 수도 있다.
다만 황실이라고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다.
황실이 아무런 힘도 없었다면 무림인들이 절대로 눈치를 보는 일도 없었을 거다.
-그냥 수로 밀어붙이는 거 아냐?
황실의 백만대군도 무섭지만 그 안에 숨겨진 힘이 있다고 들었다.
무림인들의 무위를 상대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으니 시도 때도 없이 관에서 무림을 복속시키려고 하지 않았겠나.
-그럼 그것 때문에 잠입해서 기회를 엿보고 있다는 거야?
아무래도 그럴 확률이 높아 보인다.
이제 어느 정도 윤곽이 잡혀간다.
내 짐작이 맞다면 자경정 역시도 법구만으로 무작정 황실을 상대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어떤 식으로든 황실에 잠입을 한 것 같다.
그래서 황제의 신임을 얻어서 뭔가를 도모하려는 걸지도 모른다.
-그럴 수도 있겠네? 그럼 너도 저기 잠입할 거야?
그게 문제다.
황군 안에 잠입을 해야 놈을 잡든지 할 수 있는데, 그냥 무작정 껴들 수가 없다.
차라리 저 군대가 차출되는 과정이었다면 모를까 한참 진군을 하고 있는 도중에 무슨 수로 들어가나.
-야. 너한텐 체화만변술이 있잖아.
지금 당장에는 무리야.
저들 중 한 사람으로 변장하려고 해도 밤이 돼서 주둔이라도 하면, 몰래 들어가서 한 사람을 흉내내면 된다지만 지금은 진군 중이다.
-그럼 어쩌려고?
하늘의 태양을 보니 적어도 한 시진 가량이 지나면 해가 질 것 같다.
차라리 밑으로 내려가서 거리를 두고 주변을 맴돌면서 저들이 주둔하길 기다려야 겠다.
그때를 노려도 늦지 않다.
밤이 되면 아무리 군율이 삼엄해도 어느 정도 빈틈이 생길 테니 말이다.
-그럼 일단 이곳을 벗어나겠다.
당장에 고도를 낮추면 저들에게 보일 테니 그래야지.
그나저나 참 공교롭다.
이대로 계속 진군하게 되면 도화선이 있는 안개 숲에 도달하게 된다.
물론 도화선이야 얼마 있지 않으면 사라질 터이니 저들이 접촉할 일은 없겠지만 우연치고는 뭔가 시점이 교묘하다.
뭐 이건 우연일 수도 있다.
도화선이 저 자리에서 머물고 있는 것과 저 군대의 진군 속도를 감안하면 절대로 안개 숲과 마주칠 수가 없다.
어찌 되었든 저 안에 잠입하는 것만 우선 적으로….
-슉!
그 순간 나는 빠르게 날아오는 무언가를 낚아챘다.
그것은 다름 아닌 장대처럼 긴 화살이었다.
‘화살?’
이 정도로 대의 두께가 두껍고 길이가 긴 것을 쏘려면 평범한 궁사들로서는 불가능하다.
게다가 이것이 날아온 방향은 다름 아닌 황군이 진군해오는 쪽이었다.
‘설마……’
2리나 떨어진 곳에서 화살을 날렸다고?
게다가 고도까지 계산하면 거리가 훨씬 늘어나게 된다.
타고난 신력을 가졌다고 해도 이건 너무 멀었다.
이 정도 되는 거리에 이 정도 고도에 있는 자를 정확하게 겨냥하는 것은 설령 벽을 넘은고수라고 해도 쉽지 않았다.
흐릿한 점처럼 보이는 것을 보고서 쏠 수 있는 자라면 궁술 솜씨가 가히 궁신이라고 불려도 과언이 아니었다.
‘정말 저기서 날아온 게 맞는 건가?’
좀 더 가까이서 날아온 걸 수도 있지만 바로 근방에는 아무도 없다.
의아해하고 있던 찰나였다.
-슈슈슈슉!!
정확하게 황군이 있는 방향에서 화살이 연달아 날아오는 것이 보였다.
그것은 군대의 중심부 쪽에서 날아오고 있었다.
-파팍!
나는 가볍게 손을 휘저어 날아오는 화살들을 전부 잡아냈다.
‘설마 자경정이 쏜 건가?’
놈의 무위나 수양이라면 나를 발견했을 수도 있다.
한데 분명 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안력을 집중하여 화살이 날아온 방향을 정확하게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집 채 만한 마차의 앞 쪽에서 점처럼 희미하게 보이는 누군가가 내게 시위를 겨냥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워낙 작게 보여서 흐릿했지만 절대로 자경정은 아니다.
‘저 자가 날 보았다고?’
하면 절대로 평범한 자가 아니었다.
거리가 워낙 떨어져서 무위를 판별할 수 없지만 적어도 안력이나 공력만큼은 벽을 넘어선 고수에 버금가는 궁사임은 틀림없었다.
‘남천. 빨리 벗어나자.’
궁사의 주변 사람들이 뭔가 싶어 다들 이곳을 쳐다본다.
저들에게 눈에 띌리야 없겠지만 소란이 커지면 자경정에게 들킬 수도 있다.
어검비행으로 나는 서둘러 군대에서 멀어졌다.
거리가 멀어지면서 나조차도 진군하는 황군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젠장.’
-어떡하냐?
이래서야 저들이 과연 주둔해서 편히 쉴지 의문이다.
저런 말도 안 되는 안력을 가진 자가 있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어느 정도 눈에 띄는 각도였다면 모를까 그리 높은 고도에 있는 것을 우연이라고 해도 발견했다는 게 놀라울 지경이었다.
-네가 검을 타고 날고 있는 것도 본 거 아냐?
그건 불가능하다.
도화선에서 수련을 쌓고 더욱 강해진 나로서도 고도를 높인 그곳에선 선천진기로 안력을 드높여도 그 궁사가 점처럼 흐릿하게 보였다.
아무리 그 궁사가 안력이 좋다고 해도 검처럼 얇은 것이 보일 수가 없다.
봐도 하늘을 날고 있는 걸로 보였을 거다.
-그렇다 해도 이걸 계기로 경계심이 엄청 높아졌겠는데.
난감하다.
이렇게 되면 주둔하길 기다리는 것은 무리다.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어쩌지?
-운휘야. 저길 봐.
‘어디?’
-남동쪽!
소담검의 말에 그곳을 내려다보았다.
그곳에 삼십여 명 정도 되는 무리의 사람들이 보였다.
스무 명 정도가 말을 타고 있었는데,
‘군복?’
저들은 앞서 발견했던 황군과 비슷한 갑주를 입고 있었다.
보아하니 아무래도 정찰병들인 것 같았다.
그러지 않고서야 정확하게 황군이 있는 방향으로 돌아갈 리가 없었다.
‘아!’
잘됐다.
저들을 이용하면 황군에 잠입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쩌려고?
‘남천 저들의 가까이로 가줘.’
-알겠다.
남천철검이 고도를 낮춰서 그들이 있는 방향으로 다가갔다.
멀리서 볼 때는 희미해서 몰랐는데, 가까이 가니 말을 타고 있는 정찰병으로 보이는 자들이 밧줄로 열 명 정도 되는 이들을 끌고 가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포로처럼 보였다.
더 흥미로운 것은 평범한 정찰병인 줄 알았는데, 저들 중 한 사람은 절정의 고수였고 나머지는 일류 고수들이었다.
-저놈들 완전 잔인한데.
말을 타고 있는 황군들은 포로들이 넘어져서 바닥에 끌려가는 것을 전혀 개의치 않고 나아가고 있었다.
개중에는 십오세 정도로 보이는 소년까지 있었다.
어른들보다 다리도 짧고 느린 소년은 피범벅이가 되어서 끌려가는데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였다.
-팟!
나는 망설이지 않고 남천철검에서 뛰어내렸다.
그리고 말을 타고 가고 있는 놈들의 바로 앞에 착지했다.
-쿵!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나를 보고서 황군들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들이 허리춤에서 병장기를 뽑아들었다.
-챙!
“누구냐!”
우두머리로 보이는 절정의 고수가 내게 소리쳤다.
나는 그들을 향해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건 알 거 없고, 뒤에 그 자들을 풀어줘야 겠다.”
“뭐얏!”
그런 나의 말에 밧줄에 상체가 포박되어서 달리느라 지친 사람들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런데 또 이렇게 내려와서 보니 저들의 복부 쪽이 피로 물들어 있었다.
정확하게는 단전 쪽이었다.
아무래도 무공을 익혔던 자들인 것 같은데, 단전을 파훼한 걸로 보였다.
“이놈들을 구하러 왔구나. 놈을 잡아랏!”
“네. 천부장!”
정찰병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천부장 씩이나 됐어?
천부장이라고 하면 휘하 병사들을 천 명이나 다루는 장수를 말한다.
어쩐지 무공이 제법이라고 했다.
천부장의 명에 휘하 일류 고수들로 이루어진 황군이 말을 타고서 내게 돌진해왔다.
이에 나는 슬며시 뒷짐을 지었다.
선두에서 창을 쥐고서 돌진해오는 황군이 어처구니가 없어했다.
“이놈이 겁을 상실했…”
-쾅!
그때 나는 바닥을 향해 진각을 세게 밟았다.
-파앙!
“흐헉!”
“억!”
그 순간 강렬한 풍압과 함께 동시에 돌진해오던 앞 열에 있던 열 명 가량의 황군이 말 위에서 이내 튕겨나갔다.
그 광경에 황군을 비롯한 포로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설마 이 정도로 엄청난 고수가 나타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는 표정이다.
“도, 도망가랏!”
워낙 대단한 신위를 보여줘서 일까?
천부장이라 불린 자의 판단력은 매우 빨랐다.
그 외침이 떨어지기 무섭게 황군들이 포로를 잡고 있는 밧줄을 놓고서 도망치려 했는데,
-딱!
손가락을 튕기는 순간 천부장을 비롯한 남은 열 명의 황군이 그대로 기절해서는 말 아래로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몇 명은 운이 없게도 머리부터 떨어져 목이 꺾이고 말았다.
‘이크.’
이렇게 죽일 생각은 없었는데 어쩔 수 없지.
고개를 돌리니 밧줄에 묶여 있던 포로들이 어안이 벙벙해져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어찌나 놀랐는지 말조차 못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가자 몇몇 사람들이 내게 물었다.
“대체 어떤 고인이시기에 저희를….”
-촥!
“헛?”
나는 이에 답하지 않고 검결지를 쥐고서 휘둘러 예기로 그들의 밧줄을 잘랐다.
밧줄에서 풀려난 그들이 의아해하기에 말했다.
“됐고 지금 이곳으로 수만의 황군이 오고 있으니 서둘러 도망치시오.”
“히익!”
수만의 황군이라는 말에 그들이 경기를 일으켰다.
어찌나 당한 게 많으면 이런 반응을 보이는지 절로 혀를 내두르게 했다.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존성대명이라도 알려주십시오.”
남은 밧줄들을 풀며 포로들이 내게 물었다.
하나 나는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이들과 나는 이걸로 인연이 끝이었고, 이곳에 머물러 있지 않을 것이기에 알려줄 가치를 느끼지 못했다.
몇 차례 묻던 그들은 이내 그것을 포기하고서 감사의 인사와 함께 반대편으로 도망쳤다.
한데 단 한 명이 남아 있었다.
그것은 가장 어린 십오세 정도로 보이는 소년이었다.
말에 끌려오느라 상처투성이가 된 소년의 몰골은 참혹하기 그지없었다.
“왜 가지 않고 있느냐?”
그런 나의 물음에 소년이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내게 갑자기 절을 했다.
“은공의 도움에 감사합니다. 하나 무가의 자손으로 무공을 익힐 수 없는 몸이 되었으니 어찌 산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흠.’
단전이 파훼된 것 때문에 그런 것 같다.
이 소년도 다른 포로들과 마찬가지로 복부 단전 쪽이 피로 물들어 있었다.
정말 피도 눈물도 없는 자들이었다.
이래서 자경정이 황군을 증오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소년에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단전이 파훼되었다고 방법이 없는 게 아니다. 목숨을 부지했다면 운명이라 생각하여 어떻게든 살아볼 생각을 해라.”
그런 나의 말에 소년이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더니 바닥에 황군이 떨어뜨린 검 자루를 대뜸 주워들었다.
그리고는 검으로 자신의 목을 베려는 것이 아닌가.
“이 녀석!”
나는 신형을 날려 녀석의 검을 잡아내려했다.
한순간에 거리를 좁히자 놈이 놀랐는지 내게 소리치며 자신도 모르게 검을 휘둘렀다.
“말리지 마십쇼!”
그런데 놈이 발을 움직이며 휘두르는 검에 나는 순간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이건?’
나는 베어 들어오는 소년의 검을 두 손가락으로 잡아냈다.
아무리 공력이 없다지만 너무도 쉽게 막힌 검에 소년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아아…..”
나는 그런 소년에게 물었다.
“지금 이 검 누구에게 배웠느냐?”
그런 나의 물음에 소년이 당황해하며 말을 더듬었다.
“그, 그건 왜 물으시는 겁니까?”
“대답이나 해라.”
이에 소년이 죽상을 하고서 내게 말했다.
“저희 가문의 검법입니다.”
“가문의 검법?”
“그건 대체 왜 물으시는 겁니까?”
“너 어디 출신이지?”
“……운남성입니다.”
내가 이것을 묻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녀석이 무의식적으로 휘두른 이 검식은 투박하다고 하나 성명검법의 기본 식이었다.
나는 녀석에게 다시 물었다.
“이름이 뭐지?”
“아니. 대체 왜 그러시는 겁니까? 아무리 은공이시라지만 제 손으로 제가 죽는 것을 어찌 이리….”
“묻는 말에나 답해라.”
위압감을 실은 목소리에 소년이 화들짝 놀라했다.
그러다 눈치를 보면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호….호종원입니다.”
‘!!!’
끝
ⓒ 한중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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