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word Sense RAW novel - Chapter 276
90화 방장의 조건 (2) >
“소림은 들으라!”
공력을 실은 목소리가 회금동 앞의 광장을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일반 무승들이 고통스러운지 누구 할 것 없이 귀를 틀어막았다.
심지어 나한무승들조차 공력이 실린 외침에 인상을 찡그릴 정도였다.
“혀….혈마의 공력이 이리 강하다니.”
“과연 오대악인이다.”
소림의 전력이 몰려들면서 전의가 올랐던 무승들의 얼굴에 경계심이 피어났다.
목소리에 공력을 실은 것은 어느 정도 저들의 사기를 꺾기 위함이었는데, 충분히 효과가 있었던 것 같다.
이제 공력을 가하는 것은 조절해야 겠다.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본좌는 혈교의 교주이자 당대 혈마다.”
광장 전체로 메아리가 되어 퍼져나가는 목소리.
하나 무승들 중에는 누구 하나 미동이 없었다.
이미 내 정체에 관해서는 보고를 받아서 이것에는 큰 반응이 없는 것 같다.
-실망이야?
뭘 이런 걸로 실망해.
내가 주목받는 걸 좋아하는 것도 아닌데.
어쨌거나 소림의 책임자인 방장 진각 대사가 나타났으니 본론으로 들어가야 겠다.
“월악검 사마착 어른은 본좌의 장인어른이시다. 그런 분을 금옥에 가둬두고 있다는 것은 곧 본좌를 가벼이 여기는 것이나 마찬가지인터.”
-웅성웅성!
장인어른이라는 말이 나오자 장내가 소란스러워졌다.
그것은 팔대호원, 십계십승, 나한무승들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똑같았다.
급하다고 내가 소림에 침입한 것만 알린 모양이다.
방장 진각 대사 역시도 지금에야 이 사실을 알았는지 옆에 있는 장경각주 경종 대사와 또 다른 노승과 뭔가 대화를 주고 받고 있었다.
입술 모양을 보면,
생각보다 반응들이 침착하다.
수양 깊은 노승들이라서 그런지, 오히려 사파의 우두머리 격이라 할 수 있는 내가 소림에 침입한 것이 나름의 이유가 있었구나하고 헤아리는 분위기였다.
-원만하게 넘어가는 거 아냐?
그리 된다면 서로 기운을 소진할 일은 없겠지만 과연 그럴까?
속세에 관여하지 않더라도 정종의 중심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소림이다.
어쨌거나 본론을 꺼내야 겠다.
“그것만으로 본교가 소림을 징벌해야 마땅하나, 본디 은원은 확실하게 해야 하는 법. 장인어른의 상세가 위중할 때 소림에서 도움을 주었다고 들었다. 이에 이것으로 서로 간의 불미스러운 일은 없던 것으로 하고자 한다.”
말인즉 너희들이 붙잡아둔 것과 목숨을 연명시켜준 것을 대신하자는 소리였다.
좀 더 교섭의 느낌으로 할 수 있으나 이쪽도 혈교라는 단체를 이끌어가는 수장이라는 입장이 있었다.
소림에 굴복했다는 느낌을 줄 순 없다.
이런 나의 말에 소림의 승려들이 노기를 감추지 못했다.
“저 자가 정녕!”
“아니. 본사에 멋대로 침입해놓고 이를 없었던 일로 하자고?”
“소림을 우습게 보는 것인가!”
역시나 반응은 격하기 짝이 없었다.
어차피 이들과 아무런 격돌도 없이 끝내리란 생각은 없었다.
오히려 이 자리에서 확실하게 소림에게 우위를 점해야만 다시는 장인어른과 사마영을 건드리지 못 한다.
그때 방장 진각 대사의 좌측에 있는 노승이 입을 열었다.
“아미타불. 소승은 역근경전주 경오라고 하오.”
저 자가 역근경전주로구나.
소림이 세 차기 방장 후보들 중 한 사람이다.
장경각과 더불어 무공서를 관리하는 책임자답게 그 무공 또한 보통이 아니었다.
얼핏 느껴지는 기운으로는 초절정의 경지에 이르렀다.
경오 대사가 말을 이어갔다.
“거기 계신 사마 시주가 장인이라면 마땅히 본사에 정식으로 요청을 하는 것이 옳은 처사였소. 한데 이리 함부로 침입한 것은 불가의 성지인 본사를 무시하는 처사가 아니오.”
그 말에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사마영이 불같이 성을 냈다.
“내 아버지를 멋대로 가둬둔 것은 잘하는 처사란 말인가요!”
사마영의 화에 경오 대사가 탄식을 흘리며 답했다.
“아미타불. 보살님께는 전에도 타이르지 않았소. 보살님의 아버님께서는 죄 없는 많은 사람들을 해하였소. 그 겁이 여식인 보살님과 그 후대에까지도 미칠 터인데 어찌 그리….”
“경오 대사.”
그런 경오 대사의 말을 장인어른이 끊었다.
장인어른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이를 보아하니 사마영에게 경오 대사가 이런 말을 한 사실을 몰랐던 모양이다.
“내 여식에게 불가의 가르침으로 겁을 준 것이오?”
“허어. 시주. 어찌 그것을 그리 받아들인단 말이오. 시주께서 참회하고 쌓은 겁을 닦아내지 못한다면….”
“그만하시오!”
장인어른이 그를 다그쳤다.
이렇게 소리 높여 화를 내는 모습은 처음 본다.
여식인 사마영을 생각한 마음이 이렇게나 깊을 줄이야.
장인어른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나 사마착 비록 손에 수많은 피를 묻혔다고 하나, 하나뿐인 자식에게 한 점 부끄럼 없도록 어긋남이 없는 삶을 살려고 하였다. 한데 어느 누가 나의 인생을 폄하하고 내 여식에게 수치를 주려한단 말인가!”
-고오오오오!
장인어른이 진기를 개방하자 강렬한 풍압이 일어났다.
살기가 진득하게 묻어나는 패도적인 기세에 승려들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경을 외워댔다.
“아미타불!”
그 짧은 시간 동안 이만큼의 내공을 회복하다니.
대단하긴 정말 대단했다.
하나 장인어른은 오랫동안 칠대 기문이 봉해져 있었기 때문에 원래의 역량에서 절반 이상을 내기 힘들 것이다.
-네 괴물 장인. 자부심이 대단하네.
그럴 만도 하지.
나도 사마영에게 들었다.
자신의 아버지인 사마착은 수많은 사람들을 해하였으나, 이유 없이 누군가를 죽인 적은 없다고 한다.
장인어른이 죽인 대부분은 악인으로 알려지거나 사마외도의 무리였다고 했다.
이런 기준이 있는데 당연히 평범한 백성들을 건드릴 리도 없었다.
그런 부친이기에 사마영은 조금도 장인어른을 부끄러워하거나 수치스럽게 여긴 적이 없었다.
그러던 차였다.
“허허허. 사마 시주.”
시원한 웃음소리와 함께 정기 넘치는 목소리가 장내를 울렸다.
그 목소리의 주인은 장경각주인 경종 대사였다.
어느새 경종 대사는 장내를 거슬러 장인어른이 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경종 대사.”
구양진경으로 장인어른을 구해준 당사자다.
물론 골수에 이른 한기를 완전히 제거하지 않고서 남겨뒀지만 말이다.
그가 나오자 장인어른의 살기가 한 풀 꺾여들었다.
“시주께서 소승에게 한 말을 기억하시겠소?”
“못 할 리가 있겠소.”
“시주께서는 체내로 파고든 한기를 몰아주는 대가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기로 하였소이다. 한데 이를 어길 참이오?”
경종 대사의 말에 나는 인상을 찡그렸다.
장인 어른이 자신의 입으로 저런 말을 했다고?
의아해하는데 장인어른이 말했다.
“내가 기억하는 바와 다르구려.”
“다르다?”
“대사께서 소림에서 치료를 받게 된다면 불가의 제자로서 수많은 살업을 쌓은 나를 놓아줄 수 없다고 하지 않았소이까? 하여 이를 받아들인다고 하지 않았소.”
서로가 의도한 바가 묘하게 달랐던 것 같다.
경종 대사가 아미타불 하며 경을 외우더니 말했다.
“불가에서 저지른 죄악 중에 가장 큰 것은 당연 살생이오. 사마 시주께서는 그 악행을 너무도 많이 저질렀소이다. 한데 어찌 그냥 보내줄 수 있겠소.”
“그래도 반드시 가야겠다면 어쩌시려고 하오?”
“불가의 제자로서 도리를 다할 것이오.”
-고오오오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경종 대사의 몸에서 뜨거운 열기가 흘러나왔다.
구양진경이 양강의 무공이라고 하더니 과연 명불허전이었다.
경종 대사의 눈빛에 담긴 전의를 보면 승려 이전에 무인으로서의 호승심이 발동한 모양이다.
속세와 단절되어 있는 소림사였다.
무림에서도 다섯 손가락에 꼽히는 절세고수와 겨룰 기회가 얼마나 되겠는가.
다만 지금 장인어른은 완전히 회복된 몸이 아니었다.
설사 경지에 있어서 더 높다고 하더라도 상대는 소림사 최고의 내가 무공인 역근경과 세수경, 구양진경을 대성한 최고의 고수였다.
“목숨을 구해준 대사께는 감사하나 나는 소림을 나가야 겠소.”
“하면 무슨 말들이 필요하겠소.”
-팟!
경종 대사가 먼저 장인어른께 신형을 날렸다.
주홍빛으로 달아오른 그의 두 손에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게, 구양진경의 무공을 펼치려는 모양이었다.
“흥!”
장인어른이 콧방귀를 뀌더니 마찬가지로 신형을 날렸다.
날카로운 예기가 검지와 중지를 모은 검결지에 휘어 감기는 것이 내공이 회복되지 않았으니 처음부터 전력을 다해 상대하려는 듯 했다.
바로 그때였다.
-스륵!
어느새 내 신형이 흐릿해졌다가, 맞부딪치기 직전의 두 고수의 사이에서 나타났다.
“아닛!”
“너!”
갑자기 내가 끼어들 줄은 몰랐는지 둘 모두가 당혹스러워하면서도 초식을 멈추지 못했다.
그러기에는 너무 찰나의 순간이었다.
그러나,
-파파파파팍!
나는 그 자리에 서서 왼손에는 설음지, 그리고 오른손에는 화양선권으로 양대 고수의 초식을 동시에 막아냈다.
구양진경의 양강의 장법을 차가운 한기가 실려 있는 지법으로 막아내자, 경종 대사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한기를 다루다니?”
-타타타탁!
두 초식 가량을 부딪친 경종 대사가 보법을 펼치며 거리를 벌렸다.
반면 장인어른은 기세를 멈출 수 없었던 한 수만을 부딪친 후에 단번에 신형을 물렸다.
평소라면 내게 왜 끼어든 것이냐고 다그칠 장인어른이었지만 한기와 양강의 기운이 담긴 무공을 동시에 펼친 것에 놀랐는지, 가늘어진 눈매로 빤히 쳐다보았다.
그러다 이내 말했다.
“이게 무슨 짓이냐?”
“장인어른께선 막 일곱 기문이 풀려나 아직 몸이 성치 않으신데, 괜히 무리하셔서 원기를 상할까봐 두려워 노파심에 끼어들었습니다.”
“너……”
자존심이 강한 장인어른이라 조심스럽게 이야기 한 것인데 괜찮을려나.
나를 빤히 쳐다보던 장인어른이 한숨을 내쉬더니 이내 말없이 사마영에게로 발걸음을 옮겼다.
내게 완전히 일임한 것이다.
이에 나는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서 경종 대사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그가 탄성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아미타불. 소문으로 혈교의 당대 교주께서 높은 경지에 올랐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소문이 과장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축소된 것 같소이다.”
“과찬의 말씀이오. 소림에 이런 잠룡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누구 하나 몰랐다는 것이 오히려 새삼 놀라운 일이오.”
“출가인이 어찌 명예를 탐하겠소이까.”
-치이이이이!
그렇게 말하는 경종 대사의 손바닥에서 새하얀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설음지의 한기를 구양진경의 양강의 기운으로 몰아낸 것이다.
경종 대사가 기수식을 취하며 내게 말했다.
“소승이 목숨을 걸어야 할지도 모르겠소이다. 하나 무인으로서는 영광스러운 자리가 될 것 같소이다.”
한 초식을 부딪치고서 내가 자신보다 높은 경지임을 단번에 알아차린 경종 대사였다.
그런데도 호승심이 가라앉지 않는 걸 보면 천상 무인이었다.
소림사 최고의 고수를 제압한다면 그들의 기세를 한층 꺾을 수 있을 거다.
그때 누군가의 외침 소리가 들렸다.
“멈추시오.”
그 목소리의 진원은 다름 아닌 소림의 방장 진각 대사였다.
진각 대사가 앞으로 걸어 나오고 있었다.
그 혼자서는 승산이 없다고 여겨서 합공이라도 하기 위한 것일까?
그런데 그의 입에서 예상 밖의 말이 나왔다.
“장경각주는 물러나시오.”
“방장 대사!”
“불도를 닦는 이가 호승심을 이기지 못해서야 어찌 하겠나.”
그런 그의 다그침에 경종 대사가 부끄럽다는 듯이 고개를 숙이며 합장했다.
“아미타불.”
경종 대사가 뒷걸음으로 뒤로 몇 발자국 물러나자, 방장 진각 대사가 법장을 끌고서 걸어오며 내게 말했다.
“아미타불. 소개가 늦었소이다. 빈승은 부족하지만 이곳 소림을 맡고 있는 방장 진각이라고 하오.”
합장을 하며 고개 숙여 인사하는 방장 진각 대사였다.
그것에는 조금의 무례함도 없었다.
팔십을 훌쩍 넘긴 노승이 이런 정중함을 갖춰 인사를 하니, 일부러 기세를 억누르기 위해오만하게 굴 순 없을 듯 하다.
“혈교의 교주를 맡고 있는 진가요.”
나 역시 포권을 취하며 고개 숙여 인사했다.
그러자 방장 진각 대사가 내게 말했다.
“당대 혈교의 교주께선 노부가 알고 있던 혈마와는 다른 것 같소이다.”
“……그게 무슨 말씀이시오?”
“본사의 제자들 누구에게도 살수를 펼치지 않은 것을 알고 있소이다.”
“부처님의 땅에서 피를 보고 싶지 않았을 뿐이오.”
그런 나의 말에 방장 진각 대사가 인자하게 웃으며 말했다.
“귀교의 교주들 중에는 그 쉬운 일조차 가벼이 생각하는 자들이 많았소. 하나 교주께서는 그것을 지키는 것도 모자라 본사의 모든 승려들을 이곳으로 불러 모으지 않았소이까?”
“대사께서는 큰일도 아닌 것에 의미를 두시는 구려.”
내가 의도한 것과 다른 것에서 의미를 부여하는 것 같다.
무슨 속셈인지 읽기 힘들었다.
그때 방장 진각 대사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리 모두를 불러 모았다는 것은 교주께서 무공으로 이 난관을 헤쳐나갈 자신이 있기에 그런 것이 아니오?”
‘!?’
나는 내심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설마 내 본심을 꿰뚫어보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이것은 지략이 뛰어나거나 그런 개념이 아니라 방장 진각 대사의 혜안이 내가 생각한 것보다 뛰어난 것 같다.
그를 물끄러미 쳐다보다 나는 말했다.
“내 의도를 아셨으니 방장 대사께서는 어찌 하실 것이오?”
“대쪽 같이 강해도 부러진다는 말이 있고, 얇은 가지들이 모이면 부러뜨리기 힘들다는 말이 있소. 설령 교주께서 무공이 천하제일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해도 본사의 승려들이 합심한다면 어떠한 위기라도 이겨내지 못하리라 여기진 않소.”
방장 진각 대사의 말에는 조금의 자만심도 상대를 경시하는 느낌도 없었다.
그럼에도 조금의 굽힘도 없었다.
이것이 진정한 정종이라는 것을 몸소 느끼게 했다.
어쨌거나 양보를 할 수 없다는 의지는 내게 피력했다.
그렇다면 결론은 정해졌다.
“하면 끝까지 부딪칠 수밖에 없겠구려. 이쪽은 장인어른을 모시고 나가야 하는 입장이니 말이오.”
“서로를 해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오.”
“그럼 길을 열면 되오.”
“본사에도 정해지니 법도가 있고, 교화 중이던 시주를 외압에 의해 쉽게 포기한다면 어느 누가 본사의 가르침을 받으려 하겠소이까? 하나 교주께서 동의한다면 빈승이 좀 더 평화적인 방법을 제안하고 싶소.”
평화적인 방법이라…….
대체 어떤 방법을 제안하려고 그러는 거지?
방장 진각 대사의 눈을 바라보니 어떠한 사심도 없어보였다.
“그 평화적인 방법이 무엇이오?”
“교주께서 빈승이 제안한 방법으로 사마 시주를 데려간다면 본사의 승려들도 그렇고 속세의 사람들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할 것이오.”
그를 빤히 쳐다보던 나는 이내 흔쾌히 말했다.
“좋소. 나 역시 소림과 원만하게 일을 해결하고 싶소.”
“아미타불. 역시 빈승의 눈이 틀리지 않았나 보오.”
“의례적인 칭찬은 삼가여도 되니, 어서 조건을 이야기해주시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방장 진각 대사가 바닥에 법장을 찍었다.
-쿵!
“나한무승들은 백팔나한진을 펼쳐라.”
“합!”
대사의 명이 떨어지자 나한무승들이 힘찬 기합과 함께 이내 일사불란하게 몰려와 백팔나한진의 진식을 펼쳤다.
그 광경이 사마영이 황당하다는 듯이 소리쳤다.
“이게 뭐가 평화적인 방법이란 거에요?”
그녀와 같은 생각이었는지 장인어른 역시도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이에 나는 물었다.
“이러면 별 반 차이가 없소만.”
“다르오.”
“무엇이 말이오?”
“혈교의 교주께선 백팔나한진을 상대로 일 각 안에 누구에게도 경미한 부상을 입히지 않고 모두를 제압하면 되오.”
그 말에 장인어른이 버럭 소리쳤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했다.
장인어른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방장 진각 대사에게 말했다.
“벽을 넘은 절세고수를 상대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소림의 백팔나한진이 아닌가. 한데 조금의 상처도 없이 일각 안에 모두를 제압하라니 불가능한 일을 행하라는 것이 아니오!”
그런 장인어른의 말에 방장 진각 대사가 말했다.
“한 번의 기회만 드리는 것이 아니오.”
“그게 무슨 말이오?”
“본사 역시도 시주를 내보내려면 그럴 만한 명분이 필요한데, 피를 보지 않고서 그만큼의 무위를 증명하는 일에 어찌 가벼운 시험을 제시할 수 있겠소이까? 본사에서는 혈교의 교주께 납득할 만큼의 기회를 제공할 것이오. 하나 이것을 통과하지 못한다면 당연히 시주를 데리고 나갈 순 없소.”
그런 방장 진각 대사의 말에 장인어른이 노기에 차서 내게 소리쳤다.
“됐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제안을 받아들일 필요 없다. 나 역시도 손을 거들 터이니….”
“아닙니다. 받아들이겠습니다.”
“뭐?”
나의 말에 장인어른이 기가 막혀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라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그런 장인어른을 뒤로 한 채 진각 대사에게 말했다.
“방장 대사가 내건 조건이 얼마나 터무니 없는지는 본인이 잘 아실 거라 생각하오?”
“소림의 전력 전체와 목숨을 걸고 겨루는 것보다는 훨씬 낫지 않소이까?”
혜안만 뛰어난 게 아니라 늙은 너구리다.
이에 나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불리한 조건을 받아들이는 것이니 이쪽의 요청도 받아주는 것이 어떻겠소?”
“조건이라 함은?”
“만약 백팔나한진을 상처 없이 반 각 내로 제압하시면 어쩌시겠소?”
“……반 각?”
그런 나의 말에 방장 진각 대사가 자신도 모르게 헛웃음을 지었다.
일 각 조차도 터무니없는 일인데, 반각이라 한다면 절대로 불가능하다고 여겼기 때문일 거다.
헛웃음을 짓던 진각 대사가 이내 내게 말했다.
“좋소이다. 교주께서 그리 할 수 있다면 사마 시주를 놓아주는 것뿐만이 아니라 본사의 보물이라 할 수 있는 대환단을 내어드리겠소이다.”
-웅성웅성!
진각 대사의 말에 이번엔 승려들 쪽이 소란스러워졌다.
대환단이라 한다면 소림사에서 제조한 영약이었다.
구할 수 있는 약초가 워낙 희박하고 제조 기간만 삼십여 년이나 걸려, 소림사에서도 몇 알이 없다고 알려진 최고의 영약이었다.
“이 정도면 되겠소이까?”
소림사의 보물을 걸면서도 방장 진각 대사의 얼굴에는 여유가 있었다.
절대로 가져가지 못할 조건이라 확신하는 듯 했다.
“약조 꼭 지키기 바라오.”
“아미타불.”
방장 진각 대사가 합장을 하고서 고개를 숙인 후에 진 안에서 물러났다.
그러자 나한승들이 짚고 있던 봉을 들어 내게 겨냥했다.
“합!!!”
그 기세가 보통이 아니었다.
이 광경을 지켜보며 장인어른이 혀를 찼다.
진 밖으로 나간 방장 진각 대사가 일반 무승들에게 명했다.
“가서 일 각짜리 향을 들고 오거라.”
이에 무승들이 합장을 하고서 뛰어가려 하는데,
“그럴 필요 없소.”
그 말과 함께 나는 뒷짐을 지고서 가볍게 진각을 밟았다.
-쿵!
-털썩! 털썩! 털썩!
그 순간 내게 봉을 겨냥하고 있던 백팔 명의 나한승들이 일제히 눈이 뒤집어지며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방장 진각 대사의 두 눈이 튀어나올 듯이 커졌다.
끝
ⓒ 한중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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