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word Sense RAW novel - Chapter 278
91화 월악검의 과거 (1) >
일렁이는 모닥불.
그림자가 나풀거리듯이 춤을 추는 듯 하다.
검게 타들어가는 나무 조각 사이로 불똥이 타탁거리는 소리를 냈다.
소림을 벗어나 남서쪽으로 쉬지 않고 내려가길 이틀.
인적이 드문 산골짜기에 숨겨진 비어있는 암자에 와서야 가던 길을 멈추고 이렇게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해체한 꿩 고기를 나무 꼬챙이 꽂아 굽고 있는데, 한동안 식사를 하지 못해 사마영이 지글지글 타들어가는 살에 눈을 떼질 못했다.
“고생이 많구나.”
이틀 동안 말이 없었던 장인어른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소림을 벗어나며 장인은 어딘가로 급히 향해야 한다고 말했고, 그곳이 바로 이 암자였다.
사실 평범한 암자로 보이는 이곳을 찾기 위해선 여러 방위에 설치되어있는 진을 통과해야 했는데, 장인어른은 이것을 지도를 보듯이 꿰고 있었다.
그렇게 이곳에 도착한 장인어른은 암자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고서 실망을 금치 못했다.
왜 그런지 의아해하던 참이었다.
“이곳은 두공과 내가 숨겨둔 안가다.”
“두공?”
두공이라 함은 팔대고수의 일인인 만박자다.
그러고 보니 장인어른은 악인의 칭호를 가졌음에도 그와 교분을 맺고 있다고 하였다.
“한데 어찌 이곳에?”
“두공과 이곳에서 만나기로 했다.”
“만박자 어른과 말입니까?”
“그래.”
장인어른이 옅은 탄식과 함께 타들어가는 모닥불을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고개를 돌려서 사마영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이 자못 씁쓸하기 그지없다.
어째서 만박자 어른과 만나기로 했다는 이야기를 하고서 자신의 딸인 그녀를 저렇게 바라보는 것일까?
물끄러미 그녀를 바라보던 장인어른이 다시 입을 열었다.
“드디어 그 자를 찾았다.”
그 말에 사마영이 화들짝 놀라서 장인어른을 쳐다보았다.
그녀의 두 동공이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렸다.
“그, 그게 정말이에요?”
“그래.”
그 자라니?
누구를 말하는 거지?
의아해하고 있는데, 장인어른이 내게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모든 것을 해결하고서 밝히려 했으나, 나로 인하여 영이와 너도 위험해질 수 있으니 여기서 이야기해야 겠구나.”
“장인어른……”
그렇지 않아도 부상을 당해서 소림사로 오게 되었던 장인어른이다.
무림을 통틀어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장인어른에게 부상을 입힐 정도로 강력한 존재라면 경계심을 가지지 않을 자가 누가 있겠는가.
“말씀하시기 힘든 것이라면 후에….”
“내 사위가 되었으니 너도 우리 집안 사람이나 마찬가지다.”
이제는 완전히 나를 인정해줬구나.
뭔가 뭉클한 느낌이다.
장인어른이 모닥불로 마른 나뭇가지를 더 집어넣으며 말했다.
“…….영이가 첫 돌을 맞이할 무렵, 나는 사마세가에서 촉망받던 차기 가주였다.”
이건 꽤 유명한 일화였다.
장인어른이 지금은 오대악인이라 불리지만 당시 사대악인이라 불리게 된 근본적인 사건.
사마세가의 태상 가주의 팔순 잔치가 그 원인이었다.
그 날 사마세가를 방문했던 수백에 달하는 명문 정파의 사람들이 살해당했다.
몇 안 되는 살아남은 사람들은 하나 같이 그 흉수로 사마세가의 차기 가주 사마착을 지목했다.
이에 분노한 정파 무림인들은 사마세가에 책임을 물었다.
사마세가의 당대 가주였던 사마종은 소가주의 목숨으로 이를 갚겠다며 공식적으로 가문의 호적에서 장인어른을 내쳤다.
“……그렇게 나는 사마세가를 비롯한 수많은 무림인들의 추격을 받았다.”
여기까지는 내가 알고 있던 것과 동일했다.
이후에 벌어진 일이 내가 알고 있는 대로라면 장인어른이 추격해온 사마세가와 명문 정파의 무림인들마저 몰살시키며 악인의 칭호를 받게 된다.
과연 여기에 어떤 사연이 있었을까?
그때 사마영이 입술을 질끈 깨물며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애초에 아버지껜 제가 심한 고뿔에 걸려 팔순 잔칫날 용한 의원을 찾아갔었잖아요.”
“…….그래.”
그 자리에 없었다고?
그렇다면 진범이 있었단 말인가?
장인어른이 계속 말을 이어갔다.
“천라지망까지 펼쳐지며 지쳐가는 아내와 영이의 모습에 나는 결심을 했다. 부친이셨던 당대 가주를 기다렸다.”
사마세가는 자신들에게 씌워진 오명을 벗기 위해 가장 앞장서서 추적에 나섰다.
그렇기에 누구보다 빠르게 도착할 수 있었다.
“나는 부친인 당대 가주와 담판을 지었다. 보름 안에 진범을 찾지 못한다면 나 스스로 자결하여 가문의 오명을 씻어주기로 말이다.”
“아…….”
끝까지 책임지려고 했던 장인어른이었다.
“그리고 약조를 받았다. 아내와 영이만큼은 결과가 어찌 되든 가문에서 내치지 말아달라고 말이다.”
그런 장인어른의 말에 사마영의 뺨으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자신을 희생해가며 어머니와 자신을 보호하려 했던 것에 울컥했나 보다.
“나는 사건의 진원지였던 한정호 만월장으로 가서 현장을 살폈다. 그리고 그곳에서 벌어졌던 모든 일들을 역추적하고 죽은 자들의 상흔을 살펴 진범을 찾아내려 했다.”
그러나 이런 장인어른의 노고에도 불구하고 범인은 용의주도했다.
이미 만월장과 관련되거나 조금이라도 접촉했던 모든 자들은 살해당했고, 심지어 그날 사건에 희생된 모든 자들의 시신이 이미 화장되었다.
조금의 증거도 남아있지 않아있던 것이다.
“결국…..나는 아내와 영이를 위해 내 목숨을 바치려 했다.”
그렇게 보름 동안 아무 성과도 없이 천라지망을 펼치고 있던 추적단으로 돌아간 장인어른은 충격적인 광경을 보고 말았다.
추적단의 모든 무림인들이 살해당해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사마세가의 당대 가주이자 부친이었던 사마종도 사지가 절단되어 목숨을 잃고 말았다.
친부의 죽음에 장인어른은 오열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렇게 우는 와중에 장인어른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오직 두 사람뿐이었다.
“……영이와 아내를 찾아야 한다고 여겼다.”
장인어른은 죽은 수백여 명이나 되는 무림인들의 시신을 뒤졌다.
시신들의 대부분이 훼손이 심해서 하나하나 일일이 살필 수밖에 없었다.
시신을 살피던 장인어른은 뒤늦게 도착한 추적단의 후발대와 마주치게 되었고 그들의 오해를 사고 말았다.
“아무리 부정해도 그들은 믿지 않았다.”
시신들에 남겨진 상흔은 하나 같이 사마세가의 검초에 의한 상처들이었다.
그것도 사마세가 역사상 최고의 검수라 불리는 자신에게 버금갈 만큼 완벽한 검흔이었다.
무림인들은 장인어른을 추포하려 했다.
“하나 나는 잡힐 수 없었다. 영이와 아내의 죽음을 확인하기 전까지 내 목숨을 던질 수 없었다.”
장인어른은 이틀밤낮으로 추적단과 싸웠다고 한다.
하나 장인어른은 절대로 그들을 죽이지 않았다.
자신이 이들을 죽이게 되면 누군지 모르겠으나 자신에게 누명을 씌운 자의 뜻대로 될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었다.
장인어른은 그들을 기절시켜가며 추적단의 주둔지를 중심으로 산골짜기를 헤매가며 어떻게든 아내와 영이의 흔적을 찾으려 했다고 한다.
하늘이 돕기라도 했을까 장인어른은 그곳에서 삼 리 정도 떨어진 계곡의 하류에서 여인의 비명소리를 듣게 되었다.
-으득!
이야기를 하다 말고 장인어른이 이를 갈았다.
붉게 상기되다 못해 붉어진 눈시울에서 슬픔과 분노가 묻어나왔다.
한참을 그렇게 가만히 있던 장인어른이 이야기를 이어갔다.
“하류 계곡으로 내려간 나는……물가에서 한 무리의 무림 문파인들을 발견했다.”
그곳에서 장인어른은 평생 지울 수 없는 광경을 목격했다.
그 한 무리의 무림인들이 아내를 욕보이고 있던 것이다.
이를 본 장인어른은 분노를 금치 못했고 그 자리에서 그 무리의 무림인들을 전부 도살해버리고 말았다.
-뚝뚝!
주먹을 쥐고 있는 장인어른의 손바닥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사마영은 흐느끼면서 울고 있었다.
-쿵! 쿵!
그녀 역시도 슬픔과 더불어 분노에 젖었는지 연신 바닥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이들의 깊은 원한과 슬픔이 감화되었는지 나 역시 마음이 무거워지다 못해 코끝이 찡했다.
“치욕을…..당한 아내의 온몸은 너무나도 차가웠다.”
그리고 온몸이 퉁퉁 불고 손바닥이 쭈글쭈글해져 있었다고 한다.
계곡의 하류에는 물길이 동굴로 이어지는 샛길이 있었는데, 장모님께서는 아기였던 사마영을 보호하기 위해 이틀밤낮 아이를 위로 들고서 물속에 있었다고 한다.
내공으로 사마영의 심맥을 보호했지만, 원기마저 얼마 남지 않아 그마저도 힘들어져 지친 몸을 이끌고 나온 그녀는 하필 추적단과 마주쳤던 것이다.
“흑……어머니…..”
결국 오열을 금치 못하는 사마영이었다.
그런 그녀의 손을 꽉 쥐자 품으로 파고들어 엉엉 울어댔다.
그런 사마영의 모습에 장인어른의 뺨으로 눈물 한 방울이 흘러내렸다.
‘아…..’
그것은 피눈물이었다.
분노한 자의 눈에서 피눈물이 흘렀다는 이야기는 속설로만 들어왔다.
한데 정말로 흘러내리는 것은 처음 본다.
피눈물을 한 방울 흘린 장인어른이 말을 이어갔다.
“영이를 살리기 위해 모든 원기마저 소모한 아내는 죽어가고 있었다. 내 진기를 모든 소진해서라도 그녀를 구하려 했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차가운 계곡 동굴의 물속에서 이틀밤낮을 버틴 그녀였다.
원기마저 소진했으니 가망이 있을 리가 만무했다.
“끝내…..아내는 숨을 거뒀다.”
아내를 잃은 장인어른은 세상이 떠나가라 울었다.
부친에 이어 아내마저 잃은 그는 더 이상 살아갈 의욕마저 잃었다고 한다.
“그 자리에서 목숨을 끊고 싶었다.”
그런 그때 아기였던 사마영이 울었다.
응애하며 우는 그 모습을 본 장인어른은 아이를 부둥켜안고서 같이 울었다.
울지라도 않으면 정신줄을 놓을 것만 같았을 것이다.
그렇게 울고 있는데 그 소리를 듣고서 정파 무림인들이 나타났다고 한다.
그들은 울고 있는 장인어른과 아이를 보면서도 그것을 기회라고 여겨 합공으로 공격했다.
“그때 생각했다. 이들이 그렇게 원한다면 악인이 되주리라고 말이다.”
장인어른은 그들을 전부 죽였다.
그리고 추적자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찾아내서 죽였다.
추적자들을 전부 죽인 장인어른은 그들의 문파를 하나씩 찾아가 멸문시켰다고 한다.
‘아아아……’
이것이 장인어른이 악인이 된 계기였다.
듣는 내내 마음이 무겁다.
나라고 해도 장인어른과 같은 처지에 놓였었다면 세상 모든 것을 뒤엎어버리고 싶었을 것이다.
과연 이런 장인어른을 세상은 악인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아버지…..”
내 품에 있던 사마영이 장인어른에게로 가서 그를 끌어안았다.
장인어른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네게 이야기하지 못한 것이 있단다.”
“네?”
“네 어미는 숨을 거두기 전에 내게 말했다. 한쪽 눈이 금안인 자가 혼자서 주둔지를 습격해왔다고 말이다.”
‘!!!’
한 쪽 눈이 금안인 자.
존주였다.
‘……또 그 자인가.’
이 자는 대체 얼마나 많은 일을 벌인 것인가.
결국 장인어른이 악인으로 불리게 된 것은 전부 그 자가 원인이었다는 것이 아닌가.
장인어른이 계속 사마영에게 말을 이어갔다.
“네 할아버지께선 네 어미와 너를 풀어주고서 도망치게 했다. 그때는 네 어미가 어찌 살아남았는지 몰랐으나 지금은 알 것 같구나.”
“그게 무슨 말인가요?”
“어떤 연유인지 모르나 그자는 물을 꺼리는 듯 했다.”
‘아!’
역시 장인어른은 그 자를 만난 것 같다.
그렇지 않고 금상지체의 시술을 받은 존주의 약점을 모를 리가 없었다.
나는 장인어른에게 물었다.
“그럼 여태껏 장인어른께서는 진범을 찾으시려 한 겁니까?”
“……그래.”
그 자로 인해 모든 것을 잃은 장인어른이었다.
당연히 존주를 잡고 싶었을 것이다.
‘금상제……’
처음으로 후회가 된다.
차라리 훗날이 어떻게 되든지 상관없이 놈을 죽이는 게 답이었을까?
그랬다면 사마영이 어머니를 잃지 않았을까?
하나 확신할 수 없다.
작은 일 하나라도 많은 것이 훗날 수많은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직접 체감하고 있었다.
“대체 그 자는 어찌 찾은 겁니까?”
존주 그 자는 매사에 신중하다.
그렇기에 확실한 일이 아니면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그런 그를 끌어낼 만한 무언가가 있지 않고는…..
“그 자처럼 한쪽 눈만이 아닌 두 눈동자가 금안인 자를 발견했다. 그 자가 필시 놈과 관련이 있을 거라 여겼다.”
“아! 봉림곡에서 나타났던 그 자로군요.”
사마영이 그를 기억하고서 말했다.
그러고보니 장인어른이 그 자를 보고서 놀라서 쫓아갔었다고 했다.
하면 이때까지 계속해서 자리를 비웠던 것도 그 자의 흔적을 쫓았던 거였구나.
두 눈이 금안인 자 그 자의 진짜 정체가 뭘까?
금상제의 곁에서 관직까지 하고 있었는데, 대체 무슨 목적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두공은 그 자를 서복이라고 부르더구나.”
“서복?”
나는 인상을 찡그렸다.
혹시 내가 알고 있는 그 서복을 말하는 건가?
-그게 누군데?
역사를 저술한 몇몇 사기에서 한 번씩 거론된 자다.
지나가는 식으로 말이다.
자는 군방(君房).
당시에 유명했던 방사다.
진나라 시황제의 명을 받고서 불로불사의 방법을 찾기 위해 수천 명의 동남동녀를 데리고 떠나서 사라졌다고 알려진 자다.
“정말 서복이라고 하였습니까?”
“그 자도 그리 부르는 걸로 보아 진짜 서복일 수도 있겠지.”
장인어른은 반신반의하는 말투다.
하나 나는 아니었다.
정말 서복이라면 이 자는 멸망한 진나라 시절부터 살아왔다는 말이 된다.
혈마검을 통해 보았던 천기의 심상 속에서 그 자는 명장 구야자에게 다섯 요검의 주조를 부탁했었다.
구야자는 전국 시대에서 진으로 통일되기까지 살았던 자다.
시기적으로 거의 동일하다.
그 말은 서복은 정말로 불로불사의 방법을 찾았다는 건가?
‘불로불사……아!’
그러고 보면 금상제 또한 불로불사를 원했었다.
나와 마주쳤던 그 시기에는 강하기는 했으나 금상지체의 시술을 받지 않았던 것 같다.
두 눈이 멀쩡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서복이 금상제에게 그 시술을 해준 것인가?
-그런 거라면 대단하네. 기어코 원하는 바를 얻어낸 셈이잖아.
소담검의 말대로다.
금상제와 관련되었던 자들이 수명을 뛰어넘어 장수한 것을 보면, 서복에게서 그 방법을 알아낸 것 같다.
그런데 어째서 서복을 봉림곡에 가뒀던 거지?
자신에게 영생을 갖다 준 자인데 말이다.
그게 의문이다.
“혹시 그 서복이라는 자가 한 쪽 눈이 금안인 자에 대해서 뭔가 말한 게 없습니까?”
“없다. 그저 계곡 물 속으로 도망치라는 말뿐이었다.”
장인어른에게 그렇게 말했다면 서복은 금상지체 시술의 약점을 알고 있었다는 게 된다.
그것 때문에 봉림곡에 갇혀 있었던 것일까?
그때 보았을 때 서복은 황제였던 금상제를 모셨다.
관직까지 한 것도 모자라 그렇게 바라던 영생을 주었는데 왜 그런 건지 의문이 풀리지 않는다.
일단 장인어른이 겪은 일을 들어봐야 할 것 같다.
“하면 장인어른께서는 그 자와 겨루다가 부상을 입게 된 것입니까?”
그런 나의 물음에 장인어른이 인상이 무섭게 굳어졌다.
벽의 벽을 넘어선 장인어른이다.
그만큼 누구보다 정확하게 지금의 금상제가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르렀는지 판단이 갈 것이다.
“그래.”
“아버지께 그 자가 부상을 입혔다고요?”
사마영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반문했다.
그녀에게 있어서 장인어른은 천하제일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장인어른이 누군가에게 패했다는 사실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장인어른의 입에서 놀라운 말이 나왔다.
“놈은 나보다 강했다. 두공과 서복이란 자가 도와서 겨우 상대할 수 있을 만큼 괴물 같은 무위를 지녔다.”
장인어른마저 상대가 되지 못했다라.
역시 놈은 세월을 허투루 보내지 않았다.
아마도 내게 당했던 수모를 갚기 위해 강해졌을 것이다.
그런 자를 상대로 살아남다니 그래도 운이 좋았다.
“놈은 마치 세상의 모든 무공을 알고 있듯이 꿰고 있었고, 상식을 벗어나는 말도 안 되는 내공을 지니고 있었다.”
그렇겠지요.
그 시절에도 벽을 넘어선 초인이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강한데다 오랜 세월의 경험과 영생의 능력이 더해졌다.
게다가 금안으로 상대의 기운마저 읽을 수 있으니 그런 괴물도 없을 것이다.
“……하면 아버지. 그 자와 싸우다가 계곡 물에 뛰어들어서 도망치신 거에요?”
그 물음에 장인어른이 탄식을 흘리며 말했다.
“아니다. 서복이란 자가 어떻게든 저 자를 계곡물로 끌어들이면 죽일 수 있을 지도 모른다고 하더구나. 그래서 놈을 계곡 쪽으로 유인하였다.”
도망치기 위해 계곡 물에 뛰어든 것이 아니었다.
하긴 평생을 기다려왔던 원수였다.
그런 자를 두고서 아무리 강하다고 한들 도망치고 싶겠는가.
“그래서 어떻게 되었는데요?”
“그렇게 놈을 계곡 앞 절벽까지 유인하였는데, 놈은 마치 알고도 이곳까지 왔다는 듯이 말하더구나.”
“알고서요?”
“그래. 오히려 나를 도발했다.”
“뭐라고요?”
장인어른이 심기불편한 모습으로 회상하듯이 놈이 했던 말을 그대로 이야기 했다.
“……월악검이여. 네놈은 본좌로 인해 최고의 악인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너를 이렇게 만든 무림에 복수를 하고 싶지 않느냐? 원한다면 본좌의 손을 잡아라. 그럼 네게 피의 복수와 더불어 영생을 주마……라고 하더구나.”
“하!”
그 말에 사마영이 어처구니가 없어했다.
어머니를 죽게 만든 원흉이 그런 소리까지 했다니 분노할 수밖에 없을 거다.
“놈을 죽이기 위해 나는 절벽을 무너뜨렸다. 놈이 이를 가볍게 피해서 벗어나려하자 서복이 몸이 반 토막이 되어서도 놈을 붙들더구나.”
-어우…..
그 자의 상식을 초월하는 재생 능력이라면 가능한 일이었다.
없던 팔마저도 순식간에 나지 않았던가.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고 생각한 나와 두공은 서복과 더불어 놈을 붙들고서 계곡으로 뛰어내렸다.”
“그래서요?”
사마영이 궁금했는지 보챘다.
장인어른이 탄식을 내뱉듯이 콧바람을 길게 쉬었다.
“뭐가 잘못된 건가요?”
“그때…..”
장인어른이 대답하기도 전에 내가 먼저 말했다.
“은발의 여자가 나타나지 않았습니까?”
그 말에 장인어른이 인상을 찡그리며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걸 어찌 알았느냐?”
“장인어른의 골수까지 침투한 한기 때문입니다.”
역시 그녀도 살아 있었다.
당시 천하십이절로 불리던 북해빙궁의 설백.
지금 무림에는 그 정도 한기를 다루는 무공은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이 사실을 아는 것이 의아했는지 나를 빤히 쳐다보던 장인어른이 말을 이어갔다.
“계곡의 격류에 휩쓸리기 전에 그 여자가 나타나 등에 일장을 날렸다. 곧바로 반격을 해서 은발의 그 여자를 밀어냈지만 체내로 파고드는 한기로 물에 빠진 순간 나는 금안의 그 남자를 놓치고 말았다.”
“다른 사람들은요?”
사마영의 물음에 장인어른이 씁쓸하게 고개를 저었다.
“급류에 휩쓸려 겨우 벗어나 모두를 찾아보려 했지만, 놈과 싸우면서 입은 내상에 체내로 침투하는 한기로 운기조식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장인어른은 어떻게든 서둘러 회복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미 한기는 오장육부를 비롯해 골수까지 파고들었다.
그런 와중에 그 자의 수하들로 짐작되는 복면인들이 습격을 하면서 장인어른은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놈들을 겨우 처리했지만 갈수록 원기를 소진해갔기에 나는 고심 끝에….”
“소림사로 간 거로군요.”
“그래.”
소림사는 정파라고는 하나 속세와는 단절된 곳이다.
그리고 유일하게 악인이라고 해도 장인어른을 치료해줄 수 있는 곳이었다.
장인어른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그런 선택을 한 것이었다.
사마영이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아버지가 그렇게 혼자서 고생하는데 저는 그것도 모르고…..”
“네가 무사한 것만으로 이 애비는 짐을 한시름 덜 수 있었다.”
“하지만…..”
“괜찮다고 하지 않았느냐.”
장인어른이 그런 사마영의 눈물을 소매로 닦아주었다.
그러다 장인어른이 내게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이야기를 마치기 위해 묻지 않았다만 그 여자 고수는 내 평생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자다. 그 여자를 어찌 알고 있느냐?”
그 물음에 사마영도 의아해하며 쳐다보았다.
이에 나는 숨을 깊게 들이켰다 내쉬었다.
장인어른까지 이렇게 깊이 관여되어 있다면 어느 정도 사실을 알려주는 게 맞았다.
“…….그 여자의 이름은 설백. 삼백여 년 전 지금의 팔대고수나 사대악인의 칭호나 다름없는 천하십이절의 일인입니다.”
그 말에 장인어른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나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그 여자는 북해빙궁의 출신으로 장인어른이 붙잡으려 했던 그 외눈의 금안을 모시고 있는 자입니다. 솔직히 지금까지 살아있을 줄은 저도 몰랐습니다.”
“…….삼백여 년 전의 고수와 꼭 만나본 것처럼 말을 하는 구나.”
장인어른의 물음에 나는 사실대로 답했다.
“만났었습니다.”
“뭐?”
만나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차마 말하진 못하겠다.
그래서 말을 돌렸다.
“장인어른께서 원수를 갚으시려 하는 외눈의 금안. 그 자는 존주라 불리는 자이며 삼백여 년 전에는 무림 박해와 무림 말살을 행하려 했던 자입니다.”
“설마…….”
“네. 최악의 폭군 금상제입니다.”
‘!!!’
그의 정체를 들은 장인어른과 사마영이 동시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금안의 남자가 삼백여 년 전의 황제였을 거라고 말이다.
놀라워하던 장인어른이 잠시 후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내게 물었다.
“…….대체 그것을 네가 어찌 아느냐?”
나는 잠시 고민하다 이내 사실을 답해줬다.
“삼백여 년 전 그 자를 제가 쓰러뜨렸었습니다.”
‘!?’
그 말에 장인어른과 사마영이 당최 이게 무슨 소리냐는 표정이 되었다.
끝
ⓒ 한중월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