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word Sense RAW novel - Chapter 28
14화 하선부설초 (3)
“끄헉!”
몸속에서 폭발이라도 일어나는 것만 같다.
뜨거운 독기와 차가운 한기가 부딪치면서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고통이 잠식해왔다.
선천심법으로 체내의 선천진기를 활성화하여 고통을 아우르려고 했지만, 오히려 그것을 자극한 꼴이 되었다.
-콱!
“억!”
곧게 펴고 있던 허리가 구부러졌다.
-운휘 정신 차려야 한다. 운기를 멈추지 마라.
남천철검이 나를 다독였다.
오장육부가 찢겨나가는 고통 때문에 너무 괴로워서 운기를 할 수 없었다.
-야! 이렇게 죽으려고 회귀한 거야? 정신 차려!
그때 소담검의 외침이 머릿속을 울렸다.
그 순간 냉수를 끼얹은 것 마냥 머릿속이 차가워졌다.
녀석의 말이 맞다.
죽어서 다시 기회를 잡았다.
그런데 고작 이런 고통 하나 이겨내지 못하고 진다면 결국 전 인생만도 못하지 않은가.
덕분에 마음을 단단하게 부여잡을 수 있게 되었다.
체내에서 미친 듯이 날뛰는 뜨거운 독기와 한기에 집중했다.
‘두 기운이 부딪치면서 싸우고 있다.’
두 기운 모두가 호의적이지 않다.
서로가 나를 해하려고 들다보니, 저들끼리 체내에서 맞부딪치고 있었다.
내 몸이 무슨 전장터도 아니고.
‘집중하자.’
날뛰는 두 기운에 휩쓸리면 안 된다.
중단전에 있는 선천진기를 고요한 호수로 상상했다.
주변에서 천둥 번개가 쳐도 담담하고 고요하게 버티는 호수.
마음에 평정이 찾아왔다.
‘천천히…..아주 조심스럽게…..’
-똑!
심상으로 그리고 있는 고요한 호수에 물방울이 떨어지며 작은 파문이 일어나, 천천히 주변으로 퍼져나갔다.
-둥! 둥! 둥!
그 순간 가슴 속에 자리 잡고 있던 선천진기의 고동이 느껴졌다.
고동이 점점 커지면서 호응했다.
체내에서 미친 듯이 날뛰는 두 기운을 아우를 만큼 선천진기가 점점 늘어갔다.
-불끈!
전신의 핏줄이 곤두서는 것이 느껴진다.
이를 무시하고서 오직 심상 속의 파문에만 집중했다.
‘아!’
선천진기가 점점 강해지자, 격렬하게 부딪치던 두 기운이 점차 수그러들어갔다.
정확하게 말한다면 점점 섞이는 느낌이었다.
차가운 한기와 뜨거운 독기가 섞이면서 마치 유순한 독주를 감미 하듯이 오장육부가 편안해져갔다.
-남천! 저것 봐. 발등의 상처부위가 낫고 있어.
-일단 지켜봐라. 방해가 되면 안 된다.
녀석들이 뭐라고 말하는데 웅얼거리는 것처럼 들린다.
대체 뭐라고 하는 거지?
나를 걱정하는 건가?
녀석들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려고 했다.
그런데 웅얼거리는 소리가 녀석들에게서만 들리는 게 아니었다.
-………..
-………..
속삭이는 소리들이 사방에서 들려왔다.
머릿속에서 소리들이 여기저기서 들려오는데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이 소리들은 뭐지?
대체 나에게 뭐라고 하는 거지?
그때 뚜렷한 목소리가 머릿속을 울렸다.
-검청(劍聽)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으니, 천선(天璇)이 열리리라.
‘이 목소리?’
정신이 화들짝 들었다.
감았던 눈을 떠보니 오른손에 푸른 불꽃이 일렁이고 있었다.
-치이이이!
뭔가 타는 소리와 함께 손등의 점에 변화가 생겨났다.
‘이건?’
북두칠성의 형태의 일곱 개의 점들 중에 두 번째 별에 해당하는 천선(天璇)이 푸른색으로 변하고 있었다.
그리고 완전하게 푸른 점이 되자 불꽃이 수그러들었다.
마치 내 손등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정신이 들었어?
-운휘. 독기가 진정되었나?
소담검과 남천철검이 걱정스러운 듯이 물었다.
‘방금 푸른 불꽃 못 봤어?’
-푸른 불꽃? 그게 뭔가?
-뭐야? 너 전에도 그런 얘기하지 않았어?
또 였다.
전에 마차에 있을 때도 이걸 보지 못했는데,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이 괴이한 현상은 나만 겪은 건가?
대체 내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여전히 감이 잡히지 않았다.
-운휘. 몸은 괜찮은 건가?
혼란스러워하고 있는 내게 남천철검이 되물었다.
일단 몸 상태를 확인해봐야 할 것 같다.
‘음?’
그런데 몸이 상쾌했다.
분명 운기에 들어가기 전만 하더라도 오장육부가 불타고 얼어붙을 것만 같았는데, 지금은 편안한 것을 넘어서 몸 전체가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후우.”
선천진기를 운기해서 몸 내부도 살펴봐야 겠다.
호흡을 가다듬고서 선천심법을 운기했다.
중단전에 있는 선천진기의 기운을 움직여서…..어라?
-왜 그러는 거냐? 문제라도 생긴 거냐?
남천철검이 놀라서 물었다.
문제라면 문제였다.
하도 놀라운 일이 벌어져서 말문이 막혔다.
‘늘어났어.’
-무엇이 말이냐?
‘……선천진기.’
가슴의 한 가운데, 중단전에 자리 잡고 있던 선천진기가 늘어났다.
그것도 조금 늘어난 게 아니었다.
-얼마나 늘어났나?
‘이 정도면 두 배는 되는 것 같은데?’
원래 내가 가진 선천진기는 15년 수준이었다.
그런데 그 크기가 두 배로 커져 있었다.
수치라도 친다면 30년 수준에 이르는 선천진기의 정(精) 되어 있는 셈이었다.
-대박!
-맙소사!
소담검과 남천철검이 놀라서 동시에 소리쳤다.
너희들이 어째 더 놀라냐?
나도 이런 일이 생길 줄은 꿈에도 몰랐다.
-어떻게 이런 일이……전 주인께서 말씀하기를 선천진기는 원기에 가까워서 어지간한 영약으로도 키우기 힘들다고 하셨다. 오직 부단한 운기와 극한의….아!
-말을 하다 말아?
-알 것 같다.
‘뭐를 말이야?’
나도 궁금하다.
어째서 선천진기가 두 배로 늘어났는지 말이다.
-선천진기는 생명이라 할 수 있는 원기와 직결되어있기 때문에 극한의 상황에 처할수록 더욱 자극받게 되어 있다.
‘그럼 내가 독 때문에 이렇게 되었단 말이야?’
-독도 그렇고 네가 먹은 그 영초의 지독한 한기도 아마 자극이 되었을 거라 짐작한다.
그랬던 건가.
체내에서 치러졌던 두 기운의 전쟁이 극한의 상황으로 몰았던 것 같다.
너무 고통스러워서 죽을 것만 같았을 정도니까.
참으로 공교로운 일이었다.
‘죽을 고통을 이겨내면 더 강해진다고?’
선천진기란 알면 알수록 내공과는 완전히 궤를 달리했다.
어쨌든 내게는 이번 일이 기연으로 작용했다.
두 배나 되는 선천진기라면 내공 수위로 친다면 일류고수를 훨씬 압도하는 수준이었다.
-축하한다. 운휘.
-자식. 운이 너무 좋잖아!
녀석들이 기뻐하니까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이게 기연이라는 건가.
그런데 아까부터 느낀 건데 어두웠던 동굴이 생각보다 잘 보인다.
분명 어두웠는데 이렇게 잘 보이는 게 이상했다.
마치 두 눈이 밝아진 것 같았다.
-왜 그래?
‘이상해. 동굴이 잘….’
“헉!”
주위를 둘러보다가, 등받이처럼 기대고 있던 남천철검의 뒤를 무의식적으로 쳐다봤던 나는 화들짝 놀라서 뒤로 엉거주춤 물러났다.
남천철검이 꽂혀있는 바닥의 뒤쪽에 난자되듯이 잘려나간 거대한 괴생명체가 있었다.
몸통만 보면 뱀처럼 생겼는데 그 크기가 거대했다.
‘이게 뭐야?’
그런데 머리통 쪽은 뱀이 아니라, 마치 사람의 얼굴 형태를 하고 있었다.
완전히 사람의 얼굴이라고 하기에는 뾰족한 송곳니부터 네 개의 눈알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는데, 꼭 개구리처럼 보였다.
그 모습이 너무 징그러워서 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대체 정체가 뭐지?
-글쎄. 아마도 영물이 아닐까 싶다.
‘이게 영물이라고?’
-그렇지 않고 이런 형태의 생물을 설명할 길이 없다.
남천철검의 말이 일리는 있지만 영물치고는 너무 징그럽게 생겼다.
그리고 미처 몰랐는데, 두 눈이 환하게 보이면서 동굴 내부도 잘 보였는데, 곳곳에 뼛조각으로 보이는 것들이 널려 있었다.
아마 이 인두의 괴물 녀석이 해친 자들의 유골인 듯 했다.
‘하!’
영물치고는 너무 상스러웠다.
그리고 진짜 영물이라면 죽을 때 내단 같은 거라도 뱉어야 하잖아.
혀만 길게 늘어져서 죽어있었다.
‘영물? 그냥 괴물이겠지.’
궁금해진다.
회귀 전에 하선부설초를 구했다는 녀석도 이 괴물 놈과 조우했을까?
그때 남천철검이 내게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운휘. 내 목소리가 들리는 건가?
‘전부터 들었는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갑자기 처음 만난 것처럼 묻는 녀석의 물음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런데 문득 나는 녀석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게 되었다.
‘어?’
나는 지금 남천철검과 전혀 접촉하고 있지 않았다.
그런데 녀석의 목소리가 들렸다.
* * *
폭포수 동굴 바깥으로 나온 나는 서둘러 경공을 펼쳤다.
독기를 이겨내기 위해 운기를 했던 게 벌써 한 시진 가까이나 됐다고 했다.
짧게 느껴졌었는데 그만큼이나 지났다니.
-거참 신기하네.
소담검의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머릿속을 울렸다.
녀석의 말대로 나 역시 놀라웠다.
원래는 검과 직접적으로 몸에 접촉을 해야만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었다.
손에서 떼고 있어도 목소리가 들렸다.
-얼마큼 멀리 떨어져도 들을 수 있을까?
시간이 여의치 않아서 제대로 확인해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남천철검과 대략 5장(丈)이 넘게 떨어져 있어도 그 목소리가 들렸던 걸로 보아선 거리가 꽤 멀어도 들리는 듯 했다.
‘이것도 검선비록의 힘인 건가.’
확실한 것은 그 목소리가 들리고 난 이후부터 달라졌다.
내 손등의 점을 힐끔 쳐다보았다.
설마 점의 색깔이 바뀔 때마다 점점 이 신비로운 능력이 강해지는 것일까?
점점 의문이 깊어져갔다.
역시 육혈곡을 벗어날 기회가 생긴다면 검선비록을 찾아봐야 할 것 같다.
-타타타타!
그때 귓가로 작게 발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그곳을 쳐다보았다.
멀리서 누군가가 내가 있는 방향으로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하연 소저?’
달려오는 자는 하연 소저였다.
꽤 멀었는데도 누군지 정확하게 구분이 갔다.
‘하…..’
선천진기가 강해지긴 한 모양이었다.
원래는 저 정도 거리라면 뚜렷하게 보이지 않거나 잘 들리지 않았을 터인데, 안력과 청력이 한층 발달한 느낌이다.
-좋은 현상이다. 선천진기를 더 쌓게 되면 상대가 기척을 감춰도 알아차리게 될 거다. 물론 운휘 너보다 약하다는 전제 하겠지만.
입에 바른 말만 하지 않는 남천철검이다.
이런 변화를 체감할수록 강해질 맛이 나는 것 같다.
“헉헉! 공자님!”
하연 소저가 헐떡거리며 나를 불렀다.
땀을 어찌나 흘렸는지 머리카락에 살얼음이 붙어 있었고, 얼굴이 새빨갰다.
얼마나 고생했는지 눈에 훤히 보일 정도였다.
‘설마 지금까지 녀석들을 추격하다 온 건가?’
그게 맞다면 정말 대단한 여자였다.
살집이 워낙 커서 달리는 것조차 보통사람보다 체력소모가 클 텐데, 강한 정신력을 가진 듯 했다.
“소저. 무사해서 다행입니다.”
“하아….하아….”
거칠게 숨을 내쉬던 그녀가 호흡을 골랐다.
그리고 내게 물었다.
“하아…..하아…공자님 괜찮은 건가요?”
“저는 괜찮습니다.”
“미안해요. 점혈을 풀어드리고 쫓았어야 했는데.”
이 여자 생각보다 마음씀씀이가 괜찮았다.
보자마자 사과부터 할 줄은 몰랐다.
“아닙니다. 상황이 여의치 않지 않았습니까. 다행히 약하게 혈도를 점했는지 이렇게 풀려났습니다.”
“하아…..다행이에요. 혹시나 추위에 몸이 상하셨을까봐.”
사실대로 이야기해줘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선천진기까지는 아니더라도 금방 풀려났고 진짜 하선부설초를 찾았다고 말이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하기도 전에 그녀가 먼저 웃으며 말했다.
“좋은 소식이 있어요.”
“좋은 소식이요?”
“저희를 습격했던 그 자들을 잡았어요. 다행히 스승….앗! 공자님 발등이 왜 그래요?”
“아….이건….”
“그 자들의 짓이로군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녀가 앙칼진 목소리로 분노를 토했다.
덕분에 그 괴물과 조우했던 것은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기연은 남에게 알려서 좋을 것은 없을 테니까.
“봐요. 많이 다쳤나요?”
“괜찮습니다. 살짝 찍힌 정도에 불과해요.”
“가죽신에 핏자국이 이렇게 많이 묻었는걸요.”
이거 보이면 곤란한데.
운기를 하고나서 상처가 말끔히 나아 있었기 때문에 보이기 껄끄러웠다.
화제를 다급히 돌렸다.
“그보다 습격했던 자들을 잡았다고 했는데, 그럼 하선부설초도 되찾은 겁니까?”
“아!”
내 물음에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 스승님께서 계셔서 그 자들을 잡았어요.”
“육혈성께서요?”
“네. 운이 좋았어요.”
“범인들은 누구였습니까?”
“……육혈곡의 대주 분들이더군요.”
역시 예상대로였다.
그들 외에 누가 그런 짓을 했겠는가.
그래도 참 운이 없는 자들이었다.
덜 자란 하선부설초를 훔쳐간 것도 모자라서 도중에 혈수마녀에게 잡히다니. 쯧쯧.
그런데 하연 소저가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공자님. 그런데 먼저 사과부터 드릴게요.”
“네?”
“혹시 몰라서 저희 스승님께 먼저 약초를 가지고 신의께 가달라고 부탁드렸어요. 오해는 하지마세요. 그래도 각패는 무조건 공자님께 드릴 거에요.”
그걸 혈수마녀에게 맡겼다고?
가짜라서 상관없긴 하다만 그녀가 제자의 부탁만 듣고서 각패를 과연 내게 넘겨줄까?
표정에서 내 감정이 드러났는지 그녀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무조건 공자님께 각패는 주실 거에요.”
“그걸 어떻게 믿죠?”
“……..단지 공자님의 스승님이신 사존께 각패를 드리는 대가로 부탁을 하나 하실 것 같아요.”
음…….
그게 그냥 주는 건가.
이러면 이야기가 좀 달라지는데.
* * *
육혈곡의 본당 우측에 있는 객당 앞.
신의가 머무는 거처 앞에 기기괴괴 해악천과 혈수마녀 한백하가 마주 서서 서로를 쳐다보고 있었다.
해악천의 표정이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
인상을 찡그리고 있었는데, 불만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런 그에게 한백하가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로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말씀드린 그대롭니다. 사존께서 제 부탁을 들어주신다면 신의의 각패는 넘기도록 하겠습니다.”
그녀의 말에 해악천의 인상이 더욱 무섭게 굳어졌다.
대체 무슨 부탁을 했기에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일까?
“본좌는 그 일에 끼어들지 않겠다고 했을 텐데.”
“어차피 머지않아 선택하셔야 합니다.”
“선택이고 자시고, 본좌가 고작 제자의 단전 하나 살리자고 자네의 부탁을 들어줄 것 같나?”
“쉽게 말씀하시는군요.”
“여차하면 녀석은 포기해도 그만이야.”
강하게 나오는 해악천의 태도에 그녀가 입을 꾹 다물었다.
‘허세일까? 아니면 진심일까?’
냉철한 한백하지만 기기괴괴 해악천은 그녀에게 있어서도 설득하기 까다로운 인물이었다.
하지만 모처럼의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아가씨를 지지해주시는 게 그리 힘든….”
-드르륵!
그녀의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방문이 열렸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오.”
객실에서 만사신의가 걸어 나왔다.
이에 그녀가 해악천에게 고개를 안타깝다는 듯이 말했다.
“어쩔 수 없군요. 그렇다면 저로서도 각패를 드리긴 힘들 것 같습니다.”
그 말과 함께 한백하가 품속에 있던 천으로 감싸놓은 하선부설초를 만사신의에게 넘겼다.
“받으시죠. 영초입니다.”
“빨리 찾으셨구려. 며칠은 걸릴 줄 알았는데.”
만사신의가 흡족해하며 약초를 받았다.
이를 지켜보는 해악천의 표정은 심기가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전부 뒤집어 엎어버리고 싶은 심경이었다.
“스승님!”
마침 객당 쪽으로 소운휘와 하연이 나타났다.
해악천이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이미 늦었다. 네놈의 단전은 평생 고치기 글렀….”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이었다.
“안타깝구려. 육혈성. 이건 다 자란 영초가 아니오.”
“네?”
만사신의의 말에 혈수마녀 한백하가 인상을 찡그리며 반문했다.
하연 역시도 예상지 못한 결과에 당혹스러워했다.
그렇게나 고생을 해가며 추격전까지 벌였는데, 약초가 다 자란 것이 아니라고 하니, 결국 모든 상황이 도로아미타불이 된 것이다.
“크하하하하핫!”
이 상황을 반기는 것은 당연히 해악천이었다.
신의의 각패를 이대로 빼앗기는가 싶어서 심기가 불편했었는데, 어느새 그것이 말끔히 씻겨 내려갔다.
해악천이 신이 나서 말했다.
“혈수마녀. 이를 어쩌나. 다시 영초 찾기를 해야 겠구만.”
“하아…..”
한백하가 한숨을 내쉬었다.
괜히 설레발을 친 격이 되어버렸다.
그때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소운휘가 끼어들었다.
“말씀 중에 죄송합니다. 스승님.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뭐?”
소운휘가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어둠 속에서 은은한 녹색 빛을 내는 일곱 개의 구슬을 품고 있는 보랏빛 꽃송이.
그것은 완전히 자란 하선부설초였다.
‘!!!’
이를 바라보는 모두의 표정이 각양각색으로 나누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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