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word Sense RAW novel - Chapter 280
92화 평왕의 릉 (1) >
어검비행으로 밤낮으로 쉬지 않고 날아가며 나는 이틀 만에 무한시로 도착할 수 있었다.
정확하게는 무한시의 서북쪽 평왕의 릉이 있는 곳에 도달했다.
오는 내내 운기조식을 통해 체력을 안배했지만 소림사를 벗어난 후로 나흘 동안 잠을 통 자지 않아서 그런지 눈꺼풀이 무겁고 피곤하긴 하다.
평왕의 릉에 숨겨진 보물의 유무만 확인하고 수면을 취해야 할 것 같다.
-그런데 릉을 무슨 수로 뒤질 거야?
무슨 수로라.
어두운 밤을 노려야 하지 않을까?
연나라 황조의 무덤은 아니지만 옛 왕조의 무덤은 국가에서 관리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왜?
그 안에는 수많은 보물들이 내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보물들이?
왕의 릉은 보통 사람들의 무덤과는 규모부터가 다르다.
거의 하나의 요새 수준에 버금갈 만한 크기로 지어진다고 들었다.
그러다보니 생전에 왕이 아끼던 보물 재화를 묻는다. 심지어 살아있는 충복, 가신, 후궁들마저 매장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살아있는 사람을 매장해? 별 희안한 장례 의식이네. 아무튼 운휘 네 말대로면 거길 파서 안으로 들어가는 데만도 시간이 꽤 소요되겠는걸.
글쎄 꼭 그런 것만도 아닐 걸.
안으로 들어가면 내부는 여러 공동 형태로 방을 이루고 있을 거다.
다만 평왕의 릉이 제작된 시기가 자그마치 육백 년을 훌쩍 넘기고 있으니, 공동이 무너져 네 말따나 흙으로 가득 찼을 수도 있다.
-흙 파개를 할 만한 삽이라도 준비해라. 설마 맨손으로는 안할 거고 설마 나나 남천철검으로 파겠다는 건 아니겠지?
‘그거 좋은 방법인데.’
-뭐야!
소담검이 삐쳤는지 궁시렁 거리며 난리도 아니었다.
그러던 차에 머릿속에 남천철검의 목소리가 울렸다.
-운휘……저기가 네가 말했던 그 평왕의 릉이 맞나?
남천철검의 그 말에 왜 그러나 싶어서 아래쪽을 내려다보았는데,
‘이게 대체…..’
초나라의 옛 도읍 영(郢).
영의 북서쪽 노감현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평왕의 릉이 있다.
국가에서 관리하고 있다고는 하나 많아봐야 오십에서 백여 명 정도의 관군이 지킬 거라 여겼던 차였다.
한데 예상 밖의 광경이 보였다.
밤 중인데도 횃불로 밝혀놓은 거대한 릉 주변에 거의 오천여 명에 이르는 관군이 주둔지를 형성하고 있었다.
게다가 릉에는 수백여 명에 이르는 인부들이 바삐 움직이며 한참 발굴 작업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하……’
이게 대체 무슨 영문인지 알 수가 없다.
관군이 어째서 선수 쳐서 평왕의 릉을 발굴하고 있는 것일까?
-이거 어쩌냐?
늦은 밤 중에도 저렇게 횃불로 사방을 밝히고서 릉을 발굴하고 있다는 건 밤낮으로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는 소리였다.
이래서야 평범한 방법으로 조용히 왕릉을 살피는 게 힘들어졌다.
관군들부터 인부들까지 너무 많았다.
‘어째서지?’
명장 구야자가 만든 요검 다섯 자루에 숨겨진 비밀을 풀거나, 혹은 이를 숨긴 서복의 입을 열게 하지 않고는 평왕의 릉에 특별한 무언가가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그렇게 의아해하고 있던 차에 나의 눈에 뭔가가 띄었다.
그것은 관군의 주둔지의 한복판에 있는 화려한 막사에 걸려있는 깃발이었다.
‘경왕?’
깃발에는 황자를 상징하는 깃발이 걸려 있었고, 경(景)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그것은 저곳이 경왕의 막사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경왕은 황자들 중에 훗날 차기 황제가 될 운명을 가지고 있는 자였다.
-저 관군을 이끌고 릉을 발굴하고 있는 게 경왕이야?
그런 것 같다.
황자이자 왕인 그가 직접 발굴에 나서다니…..
‘설마?’
그러고 보니 경왕 또한 다섯 요검을 찾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 역시도 다섯 요검이 가리키고 있는 보물을 찾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데 경왕은 고작 해야 단 한 자루, 사련검의 탁본을 지니고 있었다.
나머지 요검들 중에 한 자루인 겁살검은 오대악인의 일인인 절심의 손에 있고, 호작검은 금상제의 손에 있다.
-혈마검은 복주머니에 있지.
그래.
무엇이든 들어가는 복주머니 안에 사련검과 같이 있다.
설사 유일하게 행방이 묘연했던 악즉검을 운이 좋아 얻었다고 한들 고작 두 가지 단서로는 일모도원의 비밀을 푸는 것이 요원할 터인데, 무슨 수로 평왕의 릉을 알아낸 거지?
-어쩔 거야?
소담검의 물음에 나는 경왕의 막사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 * *
경왕의 막사 안.
그곳에서 경왕은 누군가와 독대를 하고 있었다.
흡족해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는 경왕이 현령의 관복을 입은 콧수염을 기른 한 중년인에게 친히 술을 따라주었다.
“노강연이라고 하였나?”
“네. 전하.”
“이 일은 본 왕이 절대 잊지 않겠다.”
“아니옵니다. 전하. 신은 그저 전하께서 용좌에 앉기를 간절히 바랄뿐이옵니다.”
노강연이라 불린 현령의 말에 경왕이 호탕하게 웃어댔다.
평소라면 자신의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경왕이었지만, 이곳에 있는 모든 자들은 자신의 수족과도 다름없는 자들이었다.
그렇기에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참으로 마음에 드는 자로구나. 하하하하하핫.”
“그리 봐주셔서 황공할 따름이옵니다.”
“본 왕이 약조하마. 내 용좌에 앉는 그 날, 네 공을 높이 사 상서의 자리를 주도록 하겠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현령 노강연은 마치 경왕이 황제에 등극하기라도 한 것처럼 그를 대우했다.
아첨을 하는 자를 가까이 하지 않는 경왕이었지만 그의 이런 행동을 어여삐 대하는 것에는 그가 세운 공이 있기 때문이었다.
경왕의 탁자 위에는 세 장의 탁본이 있었다.
그리고 한 장의 서지로 탁본의 문양들이 겹쳐져서 네 가지 글씨가 적혀 있었다.
중간중간에 비어있는 곳의 밑으로 途(도)라는 글자와 陵(릉)이 적혀 있다.
그랬다.
경왕은 일모도원의 비밀을 풀어낸 것이었다.
이 비밀을 풀어내는데 큰 공을 세운 것이 바로 앞에 앉아 있는 현령 노강연이었다.
경왕이 기분 좋게 술잔을 비우며 말했다.
“노 현령 그대는 본 왕에게 있어서 장자방이나 범증이나 다름없구나.”
“신이 어찌 그분들의 위명에 비견될 수 있겠습니까?”
“겸손이 지나치구나. 황실의 재고를 채운다는 빌미로 각지의 모든 릉들을 발굴하는 지휘권을 얻으라 한 것도 전부 그대가 알려준 것이 아니더냐?”
경왕은 이 발굴 작업의 총 책임자로 임명되었다.
그래서 평왕의 릉뿐만이 아니라 여러 릉들을 동시에 발굴 중이었다.
“덕분에 릉이나 파헤친다며 쓸모없는 짓거리를 한다는 오명을 얻긴 했어도 다른 황자들의 이목도 피하고 그들의 견제도 막게 되었다.”
그 말 그대로였다.
누구도 경왕을 의심하지 않았다.
오히려 한참 공을 세워 병약해진 황제의 눈에 들기에도 모자랄 판국에 쓸데없는 짓을 한다며 기뻐하고 있었다.
덕분에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고서 이렇게 발굴 작업에 집중할 수 있었다.
경왕이 잔에 술을 따라주며 말했다.
“너 같은 자를 진즉에 알아보지 못한 것이 한탄스럽다.”
“황송하옵니다.”
“이제 발굴도 막바지라고 하니 기쁘기 그지없구나. 노 현령은 오늘 댁에 들어갈 생각은 버리거라. 오늘은 짐과 밤새도록 어울려줘야 겠다.”
“이를 말이겠습니까? 전하.”
비위를 잘 맞춰주는 현령 노강연에게 기분이 좋아진 경왕이 명했다.
“여봐라. 밖에 누구 없느냐?”
“네. 전하.”
“막사로 기생들을 들이거라.”
“명대로 하겠나이다.”
얼마 있지 않아 기다렸다는 듯이 안으로 화려하게 치장한 기생들이 들어왔다.
어여쁜 기생들의 등장에 현령 노강연의 입 꼬리가 귓가까지 찢어졌다.
“자! 그럼 한껏 취해보자꾸나.”
기생들이 들어오고 한바탕 술잔치가 시작되었다.
옆에 기생들을 끼고서 그녀들의 악기 연주까지 들어가며한참 술을 거하게 마시고 취기가 오를 무렵이었다.
잔도 모자라 병을 나발로 마시던 경왕이 흥에 겨워 한 기생에게 말했다.
“연생이 네가 이리 퉁소를 잘 부는 줄 알았더라면 진즉에 계속 연주하게 할 걸 그랬구나.”
“황공하옵니다. 전하.”
“한 곡조 더 뽑아 보거라. 봐서 본 왕을 더 즐겁게 해준다면 오늘은 너와….”
경왕의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이었다.
누군가 막사 앞으로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전하!”
밖에서 들리는 소리에 경왕이 소리쳤다.
“별 일 아니라면 방해하지 말거라. 오늘은 노 현령과….”
“발굴단의 단주가 막 왕릉의 중앙 공동을 발견했습니다!”
“뭐야!”
그 말에 화들짝 놀란 경왕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드디어 기다려왔던 소식이 당도한 것이었다.
실룩거리던 경왕의 입 꼬리가 올라가더니 웃음이 터져나왔다.
“하하하하하하하핫!”
그런 경왕을 향해 노 현령을 비롯한 기생들이 고개를 숙이며 축하했다.
“경하드리옵니다. 전하.”
* * *
-저벅저벅!
동굴처럼 이어지는 이곳은 무덤의 안이었다.
왕의 릉이라 그런지 동굴의 통로는 황궁의 복도를 연상케 할 만큼 넓었다.
이러하다 보니 발굴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었다.
호위 관군으로 보이는 자들이 앞장 서서 들어가고 있었고, 그 뒤로 경왕이 양 옆에 기생들을 끼고서 걸어가고 있었다.
그런 그를 보며 현령 노강연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한데 전하 굳이 릉 안까지 기생들을 데려가실 필요가 있을지…..”
그의 입장에선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경왕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일일 텐데, 그 자리에 기생을 다섯이나 데려간다.
처음에는 그저 연기를 하기 위해서 그러나 싶었는데, 이렇게 여인들을 데려가니 정말 주색을 즐긴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그런 현령 노강연에게 경왕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이 아이들이 그저 평범한 기생인줄 아느냐?”
“네?”
반문하는 현령 노강연에게 한 기생이 배시시 웃고는 자신의 치맛자락을 슬쩍 들어올렸다.
치맛자락 속으로 보이는 날카로운 병장기의 모습.
이를 본 현령 노강연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그냥 기생이 아니로구나.’
경왕의 기생들은 전부 훈련받은 호위 무사들이었다.
겉보기와 다르게 그녀들의 무술 실력은 금군 백인장들 수준에 버금갈 정도였다.
“한데 자네가 데려온 그 친구의 활은 참으로 비범하기 짝이 없구나.”
경왕이 현령 노강연의 뒤에 있는 자를 눈짓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노강연의 뒤로 어지간한 사람들은 들기 힘들 만큼 커다란 궁과 화살통, 도집을 등에 매고 있는 한 중년인이 있었다.
“가히 신궁이라 부를 수 있는 자이옵니다.”
“호오. 그래?”
“차후에 솜씨를 보일 기회를 마련해주신다면 그 궁술 실력을 볼 수 있을 겁니다.”
“자네가 그리 칭찬하니 궁금해지는군.”
말은 이렇게 하고 있었지만 경왕의 관심은 딱 거기까지였다.
그의 모든 신경은 오직 평왕의 릉 안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곳에 그렇게 기다려왔던 것이 있다.
‘……수많은 황제들이 이루지 못한 단 한 가지를 오늘 이룰 수 있겠구나.’
경왕은 자신이 그 보물에 다가가게 된 것이 매우 기뻤다.
그렇게 한참 동안 통로를 따라 지하로 내려갔다.
미로처럼 얽혀 있는 통로에는 수많은 핏자국들이 보였다.
“흠.”
경왕이 옅은 신음성을 흘렸다.
이에 관군들보다 앞서 걸어가며 안내하고 있던 발굴단의 단주가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신경 쓰지 마시옵소서. 통로 안에 있는 기관진식들은 전부 해제되었습니다.”
이곳을 발굴하는 과정에서 서른일곱 명의 발굴자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 안에 숨겨진 함정들과 기관진식 때문이었다.
기관진식의 전문가나 다름없는 자들이 동원되었기에 그나마 이 정도로 끝난 것이기도 하다.
“밑으로 내려갈수록 오히려 따뜻해지는구나.”
경왕의 물음에 발굴단의 단주가 답했다.
“왕릉을 만들 때 관이 있는 중심부로 가까워질수록 수맥과 차가운 기운이 닿지 않도록 설계가 되어서 그렇습니다.”
“그것 참 신기하구나.”
새로운 것을 알았다는 듯이 경왕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렇게 계속 내려가던 차에 안쪽에서 환한 빛이 보였다.
“오오오!”
통로를 따라 들어가자 관군을 비롯한 경왕, 현령 노강연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온통 황금으로 가득한 커다란 공동이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었다.
그곳에는 갖은 재화들이 한 가득 쌓여 있었다.
왕릉의 중심부에 도달한 것이다.
“이곳이구나.”
“맞사옵니다.”
발굴단의 단주가 공동의 북쪽 벽면으로 다가가, 막아놓은 문처럼 보이는 석벽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안에 초왕의 관이 있습니다.”
그것은 굳이 그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짐작할 만한 것이 석벽문에 平王(평왕)이라는 글씨가 커다랗게 새겨져 있었다.
공동에는 이 같은 석벽문이 네 개가 더 있었다.
평왕의 관이 있다는 석벽 우측 편에는 충(忠)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었는데, 발굴 단주는 그곳 안에는 평왕을 모시던 가신들이 매장되어 있다고 했다.
그리고 좌측 편에는 비빈(妃嬪)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남은 두 석벽 중에 한 곳에는 축(畜)이라고 적혀 있었고, 유일하게 아무 것도 적혀 있지 않은 석벽이 존재했다.
‘이곳이구나.’
경왕은 본능적으로 그곳으로 다가갔다.
이 안에 자신이 찾던 보물이 있을 거라고 확신하였다.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경왕이 명했다.
“이곳을 열도록 하여….”
바로 그때였다.
-푹!
“컥!”
뒤에서 들린 비명소리에 경왕이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 후미에 서있던 관군들이 가슴이 관통되어 피를 흘리며 쓰러져가고 있었다.
관군들을 찌른 자들은 또 다른 관군이었다.
이에 놀란 기생들이 소리쳤다.
“전하를 보호해라!”
-챙!
그러자 기생들이 치맛자락에서 병장기를 뽑고서 경왕의 주위를 둘러쌌다.
“전하를 지켜라!”
그 앞으로 아군인 관군들도 막아섰다.
상황이 묘하게 돌아갔다.
관군과 배신한 관군들이 대치하는 형태가 되었으니 말이다.
경왕은 대체 이게 무슨 영문인지 알 수 없었다.
“이게 무슨 짓들이냐!”
그의 다그침에 누군가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는 현령 노강연이 데려온 신궁이라 할 만한 자라고 했던 중년의 호위였다.
“치워라.”
중년의 호위가 명하자, 그의 뒤편에서 다른 관군을 찔렀던 관군들이 경왕을 보호하고 있는 관군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들은 놀라운 무위를 지닌 자들이었다.
경왕의 관군들은 일부 무공을 익힌 자들이 있었는데, 그들을 순식간에 도살해버렸다.
-촥!
“끄악!”
관군이 제압되기까지 고작 열을 셀 시간에 불과했다.
남은 자들은 경왕을 둘러싸고 있는 기생들뿐이었다.
배신한 관군들이 그들에게까지 다가가자,
“멈춰라.”
커다란 궁을 매고 있는 중년의 호위가 그들을 멈추게 하였다.
그리고 앞으로 걸어 나오며 말했다.
“계집들이 아무 쓸모가 없다는 것은 전하께서도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만.”
그런 그의 말에 경왕이 일그러진 인상으로 입을 열었다.
“네놈은 누구냐?”
“누군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전하.”
“무엄하다!”
경왕의 다그침에 중년의 호위가 피식하고 웃었다.
그리고는 천천히 아무 것도 새겨지지 않은 석벽으로 걸어갔다.
놀란 경왕이 그런 그에게 소리쳤다.
“당장 멈추지 못할까!”
그런 경왕의 외침에도 들리지 않는다는 것처럼 중년의 호위는 석벽 앞에 섰다.
그러더니 이내 석벽을 향해 주먹을 뻗었다.
-쾅!
전광석화와도 같은 주먹에 커다란 굉음이 퍼져 나왔다.
그런데 놀랍게도 석벽은 조금의 흠도 없이 멀쩡하기 그지없었다.
경왕과 기생들 또한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어찌…..”
“역시로군요.”
중년의 호위는 짐작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는 다시 한 번 석벽을 향해 주먹을 내지르려고 하는데,
“당장 멈추지 못할까!”
경왕이 그를 다그쳤다.
이에 중년의 호위가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무엇을 멈추라는 것입니까?”
“네놈은 대체 누구이기에 감히 본 왕의 것을 탐내는 것이냐?”
그런 경왕의 말에 중년의 호위가 큰 소리로 웃었다.
“하하하하하핫.”
그 웃음에 심기가 불편해진 경왕의 무섭게 그를 노려보며 소리쳤다.
“어찌 감히!”
“분수에 맞지 않는 힘을 탐하지 마십시오. 전하.”
“뭐라?”
“발굴을 지휘하느라 고생했지만 이곳에서의 전하의 역할은 딱 여기까지입니다.”
그 말에 경왕이 어처구니가 없어했다.
대제국의 황자이자 왕인 자신에게 역할을 운운한 것에 분노를 참을 수가 없었다.
이곳을 찾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던가.
그러거나 말거나 중년의 호위는 이죽거리며 경왕에게 말했다.
“화가 나십니까?”
그런 그의 도발에 경왕이 겨우 화를 가라앉히고서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진왕이 보냈느냐? 아니면 영왕이 보낸 거냐?”
“호오.”
경왕은 그의 배후에 그들 중 한 사람이 있다고 확신했다.
그런 그의 물음에 흥미롭다는 듯이 경왕을 바라보던 중년의 호위가 입을 열었다.
“확실히 다른 전하들보다는 영민해보이시는군요. 감정 조절에도 능숙하시고요.”
“뭐?”
“진왕 전하처럼 올바른 신념을 가졌다면 그분께서도 어여삐 보셨을 텐데, 참 안타깝습니다.”
그 말과 함께 중년의 호위가 배신한 관군들에게 눈짓을 했다.
눈짓이 가리킨 곳은 다름 아닌 경왕이었다.
-스릉!
배신한 관군들이 검날을 치켜 올리고서 경왕과 그를 호위하고 있는 기생들을 향해 살기를 흘리며 걸어왔다.
마치 사냥감을 앞두고 있는 늑대마냥 그들은 즐기고 있었다.
그때 기생들 중에 녹색 경장을 입은 여인이 걸어 나왔다.
“연생아!”
기생들이 그녀의 이름을 소리쳤다.
그런데 여인은 개의치 않고서 관군들을 향해 앞으로 걸어 나갔다.
관군들 중 한 사람이 피식하고 웃으며 말했다.
“먼저 죽고 싶은 모양….”
-딱!
그때 연생이라 불린 기생이 손가락을 튕겼다.
그 순간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크헉!”
“컥!”
“끄으으으.”
경왕과 기생들을 향해 걸어오고 있던 배신한 관군들이 갑자기 뭔가에 찔린 것처럼 몸을 부여잡더니 피를 토하며 바닥에 쓰러졌다.
몸을 부르르 떨던 관군들을 그대로 숨을 거두고 말았다.
‘!?’
경왕을 비롯한 기생들의 어안이 벙벙해졌다.
“연생아…..너 도대체….”
자신들이 알고 있는 그 연생이 맞는지 알 수 없었다.
그때 그들에게 경왕을 죽이라 명했던 중년의 호위가 다급히 등에 매고 있던 궁으로 손을 가져갔다.
그 순간이었다.
-콰직!
“끄악!”
그의 손목이 비틀리며 부러져 뼈가 튀어나왔다.
그런데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그의 손목을 부러뜨린 것도 모자라 목을 움켜잡고서 벽에 강하게 밀어붙였다.
-쾅!
석벽이 갈라지며 뒤로 함몰되다시피 했다.
중년의 호위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자신의 목을 움켜쥔 여인을 쳐다보았다.
가녀린 팔목에서 어떻게 이런 힘이 나온 지 알 수가 없었다.
“네, 네년 대체 뭐야?”
그런 그의 물음에 여인이 입을 열었다.
“잘린 팔을 버리고서 도망쳤다고 들었는데, 용케 멀쩡해졌네?”
‘!!!’
그 말에 중년의 호위의 눈동자가 터질 듯이 커졌다.
끝
ⓒ 한중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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