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word Sense RAW novel - Chapter 282
92화 평왕의 릉 (3) >
“……반할 것 같구나. 연생아.”
‘!?’
경왕의 그 말에 순간 나는 귀를 의심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파궁귀 초사의 기세에 억눌려 당혹스러워 하던 자가 맞나?
소담검이 배꼽이 아프다는 듯이 깔깔 웃어대며 말했다.
-황자가 여자 모습을 하고 있는 네가 마음에 들었나 보다.
‘……..’
만약 그런 거라면 참 대단한 작자다.
여색을 밝히는 척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상황에서든 마음에 드는 여자가 있으면 들이댄다는 것이 되니까 말이다.
하나 내가 겪어본 경왕은 그리 가벼운 자가 아니다.
나는 애써 경왕이 했던 말을 무시하고서 파궁귀 초사의 가슴을 발로 짓누르며 말했다.
“그 자는 어디에 있지?”
“하아….하아….”
그런 나의 물음에 놈이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입을 꾹 다물었다.
그래. 그렇게 나오시겠지.
자그마치 삼백 년이나 금상제를 모셨는데, 고작 한 번의 물음에 술술 불 리가 없었다.
그때 경왕이 내 뒤로 다가오며 말했다.
“배후에 어떤 자가 있는지 알아내려는 것이냐?”
“……그렇습니다.”
“놈의 배후는 진왕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을 거다.”
또 이상한 소리를 하려나 싶었는데, 다시 이성을 되찾았나 보다.
오랫동안 주색에 빠진 연기를 해가며 모두를 속인 작자이니 무공의 고하를 떠나서 어느 정도 상황에 대한 판단은 했을 것이다.
“아까 이 자가 했던 말을 기억하느냐?”
“무엇을 말입니까?”
“진왕 전하처럼 올바른 신념을 가졌다면 그분께서도 어여삐 보셨을 텐데, 참 안타깝다고 내게 말했다. 적어도 나를 죽이기 전에 한 말이니 허튼 소리는 아닐 게다.”
“……영민하시군요.”
역시 통찰력이 있다.
초사가 한 말을 듣고 어느 정도 정황을 추측해냈다.
나도 어쩌면 금상제가 진왕과 밀접한 관계가 있을 지도 모른다고 여겼었다.
경왕이 가볍게 웃으며 내게 말했다.
“네 무위만 하겠느냐? 하늘거리는 녹색 경장을 휘날리며 그런 대단한 무위를 보이다니. 참으로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그 가녀린 팔에서 어찌 그런 힘이….”
“잠시 송구하겠습니다.”
“뭐?”
-타타탁!
“윽!”
나는 예고도 없이 기습적으로 경왕의 혈도를 점했다.
훈혈이 눌려진 경왕은 단말마의 소리와 함께 그대로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후우.”
역시 재우는 편이 나을 것 같다.
여자의 모습을 하고 있어서 그런지, 아니면 여자의 모습으로 그런 무위를 보인 것에 흥미가 생겼는지 경왕이 상당한 관심을 보이는 것이 말투에서 확연하게 느껴진다.
-너 허벅지에 닭살 돋았다.
치마 속에 있어서 곧바로 알아차린 소담검이었다.
어찌 되었든 중요한 건 경왕이 아니라 파궁귀 초사였다.
놈의 얼굴에 불룩불룩 튀어나왔던 핏줄이 다시 가라앉으며 전신에서 흘러나오던 검은 아지랑이가 사라져갔다.
“하아…하아….”
불길한 기운이 가시자 놈이 식은땀까지 흘리며 호흡이 거칠어졌다.
공력이 폭증했지만 급격하게 지친 걸 보면 피를 빠르게 순환시키는 진혈금체처럼 후유증이 있는 듯 했다.
한데 나는 이것을 본 적이 있다.
검선 스승님을 배신한 파문제자 자경정이 비장의 수법이라며 내게 보이려 했었다.
짙고 어둠이 잠식되는 듯 한 기운이었다.
-방심하다 죽었지.
그래. 정작 제대로 발휘해보지도 못하고 죽었다.
힘을 끌어내기까지 허점이 많았다.
한데 파궁귀 초사는 자경정과 흡사한 그 불길한 기운을 훨씬 빠르고 능숙하게 다뤘다.
삼백여 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개량했을 수도 있다.
나는 파궁귀 초사에게 물었다.
“자경정한테서 배웠나?”
그런 나의 물음에 놈이 찰나에 인상을 찡그렸다가 의식했는지 표정 조절을 했다.
뭐지 이 반응은?
자경정에게 배운 것이 아닌 건가?
그를 빤히 쳐다보다 나는 질문을 바꿨다.
“금상제는 어딨지?”
단도직입적인 나의 물음에 놈이 이를 갈며 나를 노려보았다.
무림인 출신인데도 오랫동안 그를 모셨다고 충성심이 보통이 아니다.
놈이 분에 겨운 목소리로 말했다.
“내 입을 열 수 있으리라 생각하나? 괜히 욕보이지 말고 죽여라.”
“몸을 하나씩 자른다면 입을 열까?”
방법을 바꿔서 협박을 섞었다.
그러자 놈이 콧방귀를 뀌며 내게 말했다.
“마음대로 해라. 그런다고 내가 입을 열 것 같으냐? 어리석은 년.”
-꽈아아악! 두드득!
“끄읍!”
놈의 가슴을 세게 짓눌렀다.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날 정도이니 얼마나 세게 밟았겠는가.
나는 살기어린 목소리로 놈에게 말했다.
“오래 살고도 입이 거치네.”
“……흥! 그분을 위해 네년을 죽이지 못하는 것이 한이다.”
기가 죽지 않고 할 말을 했다.
삼백 년이나 살았다고 죽음에 대해 초탈한 건지 아니면 나를 어찌해볼 방법이 없어서 체념한 건지는 알 수 없다.
좀 더 고문을 해서 입을 열어보게 하고 싶었지만, 삼백 년의 충심이 고통으로 무너져 내릴 것 같진 않았다.
그렇다면 금상제의 전력을 줄이는 것이 답이겠지.
“좋아. 어차피 중요한 건 알게 되었으니까.”
나는 그 말과 함께 눈짓으로 아무 것도 새겨지지 않은 석벽문을 가리켰다.
저 문이 저리 굳건히 닫혀있다는 건 금상제의 손에 서복이 숨겨놓은 보물이 들어가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만으로도 큰 성과였다.
놈이 아직 완전한 불로불사가 아님을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나는 도를 들고서 마지막으로 물었다.
“기대는 하지 않지만 마지막이다. 지금이라도 입을 열면 목숨은 보장해줄 수 있다만.”
“살아남은 치욕은 한 번이면 족하다.”
삼백 년 전의 일을 아직도 잊지 않았다.
주인이나 수하나 닮았네.
나는 놈의 목을 망설임 없이 그대로 내리쳤다.
-촥! 데구르르르!
놈의 머리통이 바닥을 뒹굴었다.
-화르륵!
그런 녀석의 몸통에 삼매진화를 일으켜 불이 붙게 만들었다.
살이 타들어가는 소리가 매섭기 그지없다.
회복 능력을 가진 자이니, 아무리 목을 잘랐어도 확실하게 후환이 없게 하기 위해 몸을 전부 태우는 편이 나았다.
그의 머리통까지 불속에 집어넣은 나는 발걸음을 옮겼다.
공동에 있는 다섯 개의 석실 중에서 유일하게 아무 것도 새겨지지 않은 곳이 있다.
이 안에 완전한 불로불사의 비밀이 있을 테지.
일단 석면을 부숴보실까.
나는 주먹을 꽉 쥐고서 석면을 향해 주먹을 뻗었다.
파궁귀 초사는 이것을 일격에 부수지 못했지만,
-콰아아아앙!
나의 일격에 부딪친 곳을 중심으로 석면 전체가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그런데 확실히 벽이 단단하기는 했다.
이 정도라면 누구도 침입하지 못하게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만든 것 같다.
손을 휘젓자 석면이 부서지면서 앞을 가리고 있던 먼지가 가셨다.
-있어?
소담검의 물음에 나는 인상을 찡그렸다.
* * *
한 쪽 눈동자가 금빛으로 빛나는 사내가 어두운 금옥으로 들어왔다.
그가 들어오자 안에 있던 뭔가를 하고 있던 복면을 쓴 자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예를 갖췄다.
그들의 뒤편에는 벽면에 흑철로 만들어진 구속구로 팔 다리를 비롯해 전신을 봉해놓은 한누군가가 고개가 밑으로 늘어져 힘겹게 숨을 내뱉고 있었다.
그런 그를 바라보며 한쪽 눈이 금안인 자가 물었다.
“여전히 그렇나?”
그 물음에 복면인들 중 한 사람이 답했다.
“회복이 너무 빨라서 그런지 환마독과 여러 암시들을 계속 반복해도 그리 오래 가지 않습니다.”
“환마독의 투여량을 늘려라.”
그 말에 복면인이 화들짝 놀라서 말했다.
“지금 투여량도 과한데 여기서 더 투여하면 회복 능력이 문제가 아니라 뇌가 완전히 녹아내릴 수도 있습니다.”
“상관없다. 더 이상 놈에게 들을 말은 없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복면인이 탁자에서 뭔가를 챙겨 고개가 축 늘어진 누군가에게로 다가가려 할 때였다.
그 자가 힘겹게 고개를 들어올렸다.
얼굴을 가리고 있는 긴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두 눈동자의 금빛 광채.
지쳐 보였지만 여전히 그 눈빛은 살아있었다.
“크흐흐흐.”
구속되어 있는 금안의 사내가 한 쪽 눈이 금안인 사내를 발견하고는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이놈이!”
그 모습에 복면인들이 다급히 그에게 고통을 가하려 했다.
그때 한 쪽 눈이 금안인자가 이를 제지시켰다.
“멈춰라.”
“하나 존주…..”
“물러나라.”
그 말에 복면인들이 양 옆으로 물러섰다.
한쪽 눈이 금안인 자가 앞으로 걸어가 구속되어 있는 금안의 사내와 마주보며 말했다.
“왜 웃었지?”
“……아….쉽….습니다…….폐하.”
“…..아쉬워?”
“직접…..가실…..줄…..알았는데…..조심성 하나만큼은….여전하시군요.”
“뭐?”
그 말에 한 쪽 눈이 금안인 자의 굵은 점 같은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런 그를 보며 금안의 사내가 웃으며 말했다.
“세상에……쉬운….일은….없습니다. 고작….몇….자루로…..예측이…..가능할….것 같다면…..뭐하러….다섯…..자루를…..만들었을…..것 같습니까?”
“……네놈!”
-콰직!
한쪽 눈이 금안인 사내가 분노를 금치 못하고 그의 머리를 내리쳤다.
으깨진 머리를 쳐다보던 금안의 사내가 다급히 금옥 밖으로 나가며 어두운 복도에 서있는 누군가에게 명했다.
“초사에게 섣불리 무덤 안으로 들어가지 말라고 전해라.”
“충!”
***
석실 내부는 오각 형태로 이루어져 있었고, 그 오각의 벽면에는 관 정도 크기의 돌로 만들어진 석함 다섯 개가 떡하니 놓여 있었다.
석실의 가운데는 텅 비어있었다.
-관 같은 것만 있다고?
그래.
배치 구도가 특이하다.
왜 가운데는 비어놓고서 저렇게 석함을 비치했는지 모르겠다.
일단 석함 안에 불로불사의 비밀을 숨겨뒀을 수도 있으니 한 번 살펴봐야 겠다.
그렇게 석실 안으로 들어가려는 순간이었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안 들어가?
잠깐만.
나는 다시 뒤를 돌아 누군가에게 다가갔다.
그는 혈도가 점해져서 죽은 듯이 기절해 있는 경왕이었다.
나는 바닥에 쓰러진 경왕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어떻게 혈도가 점해지지 않은 겁니까?”
-그게 무슨 소리야?
무슨 소리냐고.
그때 기절해 있던 경왕이 슬며시 눈을 떴다.
그리고 나를 쳐다보고서 말했다.
“어찌 알았느냐?”
‘하!’
나는 경왕의 능청스러운 물음에 어처구니가 없었다.
정요 환의경이 통하지 않았던 것도 그렇고 이제는 직접적으로 혈도를 점했는데, 그것이 통하지 않을 줄은 몰랐다.
설마 실력을 숨긴 것일까 싶었는데, 기감에 느껴지는 것은 고작 일류 수준 기운이었다.
이 정도 내공으로는 자의로 나의 점혈을 풀 수 없다.
대체 어떻게 푼 거지?
경왕이 아무렇지 않게 몸을 일으켜 세우며 내게 다시 물었다.
“짐을 기절시키려 했던 것을 책망하지 않겠다. 어찌 알아차린 것이냐?”
내가 두렵지 않은 건가?
적어도 자신이 알고 있던 진짜 연생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았을 텐데.
빤히 쳐다보는 경왕에게 나는 말했다.
“호흡이 달라졌습니다.”
“호흡?”
“기절한 자의 호흡은 일정한데, 문이 부서진 순간 전하는 숨을 쉬는 것을 한순간 멈추더군요.”
“그 작은 소리를 들었단 말이냐?”
경왕이 놀랍다는 듯이 반문했다.
“그리 작은 소리도 아닙니다.”
내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른 고수들도 알아차릴 거다.
그보다 그가 어떻게 깨어났는지 그 의문을 풀어야 겠다.
가장 좋은 방법은 기감이 아니라 직접적으로 그의 몸 상태를 확인하면 나를 속인 것인지 알 수 있을 거다.
“전하 잠시 무례를 범하겠습니다.”
-팟!
나는 금나수로 경왕의 손목을 낚아챘다.
무공을 숨긴 것이라면 이를 피할 수 있을 정도로 속도를 조절했다.
그런데 경왕은 손목이 잡히는 것조차 후에 알아차렸다.
경왕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투로 말했다.
“벌써 두 번째로구나. 내게 일방적으로 통보한 후에 무엄하게 행동한 건.”
“통보가 없이도 무례를 범할 수 있다는 것도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만.”
그 말에 경왕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그래. 네가 마음만 먹는다면 언제든 나를 죽일 수 있겠지?”
“잘 아시는군요.”
“하나 죽일 마음이 있다면 애초에 저 재가 되어가고 있는 놈이 나를 죽이려 했을 때, 그냥 내버려뒀을 테지. 안 그렇느냐?”
경왕은 내가 자신을 죽이지 않을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세상에 절대라는 말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전하.”
나는 그 말과 함께 경왕의 맥으로 내공을 불어넣었다.
그의 몸 상태를 살피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맥으로 내공을 집어넣은 순간 나는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왜 그래?
모든 맥의 흐름이 정상적이지가 않다.
원래도 사람의 맥은 무림인이나 의원들이 아는 것보다도 훨씬 많이 존재한다.
그런데 그런 맥들이 주요한 맥들의 흐름과 교차를 하면서 얽인 실타래처럼 복잡하게 구성하고 있었다.
게다가 기본이 되는 주요 경맥이 막혀있다.
그곳에 뜨거운 양강의 기운이 혈맥을 틀어막고서 원활한 흐름을 방해하고 있었다.
나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대체 이 고통을 어찌 견딘 겁니까?”
이 정도 몸 상태라면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을 거다.
이렇게 멀쩡하게 걸어 다니는 것이 오히려 기적 같은 일이라 할 수 있었다.
경왕이 아무렇지 않게 피식하고 웃으며 답했다.
“이를 태양절맥(太陽絶脈)이라고 하더구나.”
“태양절맥!”
모든 맥이 전부 꼬이고 주요 맥들이 양강의 기운에 틀어 막히는 증상이다.
구음절맥이 음기로 생기는 병이라 한다면 태양절맥은 양기에 의한 불치병이라 할 수 있다.
오히려 구음절맥보다도 더 희귀한 병이라 들었다.
이 병에 걸린 자들은 평생을 시름시름 앓다가 단명한다고 한다.
“다른 자들은 알고 있습니까?”
“폐하나 다른 왕들은 모른다. 사실 몇 되지 않는데, 오늘로서 네가 그 중 하나가 되었구나.”
같은 황실 사람들에게 알렸을 리가 만무하긴 했다.
그리 된다면 자연스럽게 황위 계승자의 지위가 박탈될 터이니 말이다.
참으로 대단한 자다.
“그래서 불로불사의 비밀을 찾아다닌 겁니까?”
경왕이 나의 물음에 부정하지 않았다.
“만사신의라는 건방진 의원 놈이 내게 말하더구나. 애초에 이 약으로 폭주하는 양기를 제어하더라도 완치할 수 없을 뿐더러, 서른에서 마흔을 넘기기 힘들 거라고 말이다.”
‘만사신의?’
경왕이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가죽으로 된 주머니였는데, 그것을 열자 차가운 한기가 흘러나왔다.
이를 보아 음기를 집약시킨 약인 듯 했다.
경왕은 이걸로 폭주하는 양기를 계속 제어해왔던 것 같다.
죽은 자가 아니라면 모든 병을 치유할 수 있다고 알려진 만사신의조차 고작 수명을 늘리는데 그칠 정도라면 최악의 불치병임은 틀림없었다.
경왕이 내게 진지하게 말했다.
“약을 먹고 술을 마셔가며 고통을 참아내고, 매일 같이 수많은 여인들에게서 채음(采陰)을 해가며 목숨을 늘려가는 것도 본 왕은 지쳤다.”
그게 그저 다른 사람의 눈을 속이기 위한 연기만은 아닌 셈이었다.
“무엇을 말씀하시고 싶으신 겁니까?”
“본 왕과 거래를 하자꾸나.”
“거래?”
“나는 그저 이 고통 속에서 낫고 싶을 뿐이다. 그리고 네 뒤에 있는 저 불로불사의 비밀이 유일한 희망이자 그 탈출구다.”
“……..”
“나 혼자 불로불사가 되지 않아도 좋다. 네가 누군지는 모르겠다만 나와 그 비밀을 공유해다오. 하면 네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들어주마.”
당당하게 말했지만 경왕의 눈빛에서 절박함이 보였다.
그가 불로불사의 야심 때문에 그 비밀을 알고 싶어하는 줄 알았더니, 이건 참 의외의 상황이었다.
그를 빤히 쳐다보던 나는 입을 열었다.
“송구하오나 그러긴 어려울 것 같군요.”
“뭐라?”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장차 황위를 계승할 전하께서 몸이 낫는 것은 둘째치고 불로불사의 몸이 되신다면 앞으로 벌어질 일들이 걱정되는군요.”
“무엇이 말이느냐?”
“전하께서 만약 소위 말하는 폭군이 되신다면 그 뒷감당은 온전히 백성들이 지게 됩니다. 저는 그런 불상사를 만들고 싶지 않습니다만.”
그런 나의 말에 경왕이 갑자기 웃어댔다.
“폭군이 돼? 하하하하하하하핫.”
미치기라도 한 걸까?
아니면 자신을 모욕한 게 어처구니가 없어서 그런 것일까?
의아해하고 있는 경왕이 웃던 것을 멈추고서 내게 말했다.
“본 왕에게 이런 직언을 한 여인은 네가 처음이다.”
“……..”
당연히 그렇겠지.
누가 차기 황위 계승자 중 한 사람인 경왕에게 함부로 직언을 하겠는가.
경왕이 내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네 진짜 이름을 모르니 연생이라고 일단 부르마.”
“마음대로 하십시오.”
“하면 연생아. 이것은 어떻겠느냐?”
“무엇을 말입니까?”
“본 왕이 네게 약조하마. 설령 불로불사의 몸이 되었다고 해도 본 왕이 용좌에 오른다면 삼십여 년의 통치를 끝으로 물러나도록 하겠다.”
그 말에 나는 인상을 찡그릴 수밖에 없었다.
경왕이 진심으로 이런 말을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으나, 황제의 자리에 스스로 기간을 정해두겠다고 이야기할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
하지만 이 말에는 허점이 많았다.
“단순히 말로 약조한다면 그게 진짜로 이루어질지 어찌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 나의 말에 경왕이 내게 말했다.
“하면 네가 내 옆에서 지켜보며 판단해다오.”
“제가 말입니까? 송구하오나 저는…..”
“수하가 되어달라는 것이 아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나의 물음에 경왕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본 왕이 황제가 된다면 네가 황후가 되어다오.”
‘!!!’
순간 나는 황당함에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경왕의 입에서 설마 이런 말이 나올 거라고 누가 알았겠는가.
소담검이 미친 듯이 웃어대는 것이 머릿속을 울렸다.
-황후라니. 푸하하하하하핫.
얼토당토하지 않아 입이 떼어지지 않는데 경왕이 계속 말을 이어갔다.
“네가 황후가 되어 내 곁에서 폭군이 되지 않도록 직언해주고 약조를 어기지 않게 지켜봐주면 되지 않겠느냐?”
“………”
정말 기가 막히다.
경왕은 그러거나 말거나 자신의 할 말을 했다.
“너 같이 나를 두려워하지 않고 직언을 할 줄 알고, 나를 지켜줄 만큼 강한 여인이라면 천군만마를 얻은 것이나 다름없지 않겠느냐?”
“……굉장히 당혹스럽게 만드시는군요.”
“진심으로 하는 말이다.”
그런 경왕에게 나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제가 여자로 보이십니까?”
“얼굴이야 인피면구로 바꿀 수 있다지만 그 몸과 목소리는 여자가 아니라면 어찌 낼 수 있겠…..”
-두드드드득!
나는 체화만변술로 몸에 변화를 일으켰다.
그 광경에 경왕이 당황해하며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
내가 변화시킨 모습은 다름 아닌 경왕 그 자신이었다.
그것뿐이라면 그나마 나았겠지만, 하늘거리는 여인들이 입는 경장을 입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거울처럼 마주하게 된 경왕이었다.
이에 경왕은 차마 못 볼 꼴을 봤다는 듯이 오만상을 찌푸리더니 내게 말했다.
“……본 왕을 능멸하는 것이더냐?”
“백문이 불여일견이지요.”
심지어 경왕과 목소리가 똑같았다.
이에 소름이 끼쳤는지 경왕이 경기를 일으키더니, 매우 실망스럽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여자의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느냐?”
“가능합니다.”
“하면 당장 연생이로 돌아와라.”
끝
ⓒ 한중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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